https://hygall.com/547146856
view 5259
2023.06.07 23:53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21 / 22 / 23 / 24 / 25 /26 / 27 / 28 / 29 / 30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41 / 42 / 43 / 44 / 45 / 46 / 47 / 48 / 49 / 50
51 / 52 / 53 / 54 / 55 / 56


늑대와 달


76. 여름의 낙원


옥사나의 생일을 앞두고 이고르가 귀한 과일을 선물로 보내왔다. 더운 나라에서 난다는 여지였다. 이고르는 여지는 미인의 과일이라며, 피트에게 유난스러운 애정을 과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편지를 전해준 어린 심부름꾼은 이고르가 피트를 위해 지었다는 낯뜨거운 시까지 외웠다. 피트는 임신을 축하하며, 무사히 아이를 낳길 바란다는 이고르의 편지를 몰래 찢어버렸다. 이고르가 자신의 몫으로 따로 보내준 여지는 옥사나에게 보낸 선물과 합쳤다.

여지는 이 근방에서는 먹어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워낙 귀한 과일이라, 옥사나는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기로 했다. 그녀는 이웃에게 나눠줄 여지와 자리를 비운 아들에게 줄 여지를 따로 챙겨두고, 톰과 피트 그리고 아이벡을 불러내어 함께 나눠 먹는 자리를 마련했다.

옥사나는 여지의 새빨간 껍질을 벗겼다. 반투명하고 새하얀 속살이 드러나며 향기로운 꽃향기가 퍼졌다. 아름다운 이국의 정원이 눈 앞에 펼쳐진 듯했다. 저렇게 달콤한 향기를 뽐내는데, 맛은 얼마나 좋을까. 피트는 침을 꼴깍 삼켰다. 옥사나는 가장 먼저 피트에게 여지를 건넸다.

“할머님, 과일에서 꽃향기가 나요. 신기하다.”

피트는 과즙 묻은 손가락을 빨았다. 달콤하고 각별한 맛이었다. 마음이 절로 풍요로워졌다. 앞니로 둥그스름한 끝을 살짝 물자 입안에서 호사스러운 맛이 터졌다. 눈이 빙글빙글 돌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고르 백부님이 너를 참 아끼신다. 네 몫까지 따로 보내주시고.”
“그래.”

톰이 넌지시 말을 건네자, 피트는 차갑게 대꾸했다.

“백부님은…….”
“과일이나 먹어.”
“피트, 우웁.”

피트는 톰의 입에 여지를 마구 쑤셔 넣었다. 톰의 뺨이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과일이나 먹어. 알았지?”

피트가 단호하게 이르자, 톰은 턱을 타고 흐르는 과즙을 훔쳐내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톰은 입안에 든 여지를 턱이 뻐근하도록 씹었다. 삼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아이벡은 낮게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여지를 먹었다.

“톰, 론이랑 내일 말을 데리고 나간다고 했지?”

옥사나가 물었다.

“예, 할머니. 일주일 내로 돌아올 겁니다.”

톰은 여지 껍질을 벗기며 대답했다. 피트가 대뜸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렇게 오래 걸려? 전에는 사흘 정도 걸리지 않았어?”
“이번에는 데리고 나가는 말이 많다. 조만간 말을 좀 정리해야겠어. 아니면 말을 돌볼 사람을 구하거나. 우리가 다 돌보기에는 좀 벅차다.”

톰은 껍질을 벗겨낸 여지를 피트의 입으로 쏙 집어넣었다.

“나도 따라가도 될까?”

피트는 우물거리면서 물었다. 여지를 집던 톰이 멈칫했다.

“너도?”
“응.”
“글쎄, 괜찮을까. 네 몸이 걱정이다. 좀 어때?”

톰은 영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요즘은 아픈 데 없어. 잠도 잘 자고, 입맛도 좋아. 봐, 오늘은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먹었잖아.”

피트는 입에 든 여지를 얼른 삼켰다. 톰은 시원스레 허락을 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피트는 톰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은근히 졸랐다. 그래도 톰은 요지부동이었다. 묵묵히 껍질을 까기만 했다. 아무래도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초조해진 피트는 옥사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할머님, 저도 같이 가도 되죠? 네?”
“이제 안정기니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벡 선생의 생각은 어떤가?”

이처럼 간절하게 매달리는데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다. 게다가 피트는 어떻게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고 마는 성미다.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하면 종일 귀찮게 졸졸 따라다닐 것이다. 마음이 약해진 옥사나는 선뜻 대답하려다가 자신을 말없이 응시하는 톰을 보고, 아이벡에게 은근슬쩍 부담을 떠넘겼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아이벡은 사레가 들려 컥컥거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흠흠, 바람을 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뭣보다 부인은 남편이랑 같이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고. 그러니까 부부가 떨어져 지내는 것보다 같이 있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아이벡은 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제 생각을 밝혔다.

“그래, 선생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음 놓겠소.”

옥사나가 거들었다.

“톰, 들었지? 선생님이 가도 된대. 할머님도 허락하셨어. 나도 가게 해줘. 말썽부리지 않고 얌전히 지낼게. 일주일이나 혼자 자기 싫어서 그래.”

피트는 기뻐하며 톰을 졸랐다. 톰은 차가운 눈초리로 아이벡을 쏘아본 다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피트에게는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알았다. 대신에 일을 거들겠다고 나서지는 마라. 넌 두 손 가볍게 다녀오는 거다, 나와 약속해라.”
“약속할게. 얌전히 놀기만 할게.”
“네가 얌전히 놀 것 같진 않다만…….”
“하하. 나를 너무 잘 아네. 살려두면 안 되겠다.”

피트는 씩 웃으며 팔꿈치로 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톰은 그저 웃기만 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피트는 톰의 옆구리를 간질였다. 톰은 좀처럼 간지럼을 타지 않아 반응이 심심하다. 오기가 생겨 꼬집었더니 그제야 “피트, 하지 마라.” 하고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피트는 기세등등해져서 톰의 등을 때렸다.

“아!”

그러다 돌연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냈다. 모두 깜짝 놀라 피트를 쳐다보았다.

“수박.”

피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세 사람은 귀를 의심했다. 피트는 배를 살살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수박이 먹고 싶어요.”
“넌 참 종잡을 수 없구나.”

옥사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제 배가 수박보다는 크죠?”
“수박도 수박 나름이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이 괘씸하다. “다신 이런 식으로 사람 놀라게 하지 마라.” 옥사나는 피트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죄송해요. 배가 부르니까 자꾸 수박이 생각나요.” 피트가 이마를 매만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옥사나는 장난을 치느라 느슨하게 풀어진 피트의 두건을 단단히 여미며 말했다.

“알료샤한테 수박을 사다 놓으라 하마. 다녀와서 먹어라.”
“네.”

피트는 명랑하게 웃었다. 제멋대로 굴어도 받아주는 가족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조언을 구할 수 있는 현명한 가족, 언제나 우직하게 비바람을 막아서며 지켜주는 가족, 내킬 때마다 장난을 칠 수 있는 가족. 평생 꿈꿨던 소망. 가을이면 태어날 아이에게 물려 줄 아름다운 꿈이다.

 
***


다음 날 아침, 먼저 나와서 톰과 피트를 기다리던 론은 피트를 보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피트의 옷차림이 평소보다 화려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얇은 여름 옷감이 마치 매미의 날개처럼 하늘하늘하게 휘날렸다. 큼지막한 귀걸이가 흔들릴 때마다 종이 울리는 듯했다. 론은 새삼 피트가 오밀조밀하고 화려한 생김새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매일 보는 얼굴이고 젖형제의 아내이니 그 생김새가 어떤지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았는데, 확실히 어디를 가나 눈에 띄는 외모다. 

“피트, 나들이 가는 것도 아닌데 뭘 이리 요란스럽게 꾸몄어?”
“오랜만에 멀리 나가는 거잖아. 기분 좀 냈어.”

피트는 들고 있던 짐을 론에게 맡겼다. 식기와 반짇고리, 붕대, 약, 어제 먹다 남은 여지와 복숭아, 과도, 그밖에 잡다한 물건을 챙긴 짐이었다. 론은 짐을 수레에 실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가봤자 말 풀 뜯는 것만 볼 건데. 지루하다고 딴소리하기 없기다.”
“말 구경하는 건 한참 해도 안 질려. 말 타는 것도.”
“그래, 넌 말 타는 걸 유달리 좋아하긴 하더라.”
“난 사람을 타는 것도 아주 좋아하지.”

피트는 짓궂게 웃으면서 톰의 엉덩이를 철썩 때렸다. 화들짝 놀란 톰이 “매버릭.” 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뻐끔거렸다. 그리고 혹여나 누가 봤을까 봐 주변을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피트는 뒷짐을 지고 시치미를 뚝 잡아뗐다.

“톰이 고생이군.”

론은 오늘따라 피곤해 보이는 톰을 동정하는 뜻으로 피식 웃었다. 톰은 피트에게 잔소리를 하려다가 말고 론과 함께 짐을 마저 실었다. 힘을 쓰는 일은 두 사람에게 맡기고, 피트는 타르르크를 찾았다.

“타르르크!”

피트는 타르르크의 얼굴을 꼭 끌어안았다. 타르르크가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피트의 얼굴을 핥았다. 피트 못지않게 설렌 눈치였다.

“오랜만에 실컷 달리자.”

피트는 가뿐하게 타르르크 위에 올라탔다. 타르르크가 힘차게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피트는 손으로 햇살을 가렸다. 여름 아침의 열기, 눅눅한 열정, 피부에 스며드는 싱그러운 풀 내음. 더운 바람이 정다웠다.

세 사람은 길을 출발했다. 피트가 심심하다고 보채서 톰이 노래를 불렀다. 론이 후렴구를 이어받고, 피트는 안장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다. 멀리서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정교하게 세공한 장신구처럼 아름다웠다. 말발굽에 뿌옇게 일어나는 싯누런 먼지는 마치 황금처럼 찬란했다. 푸른 하늘을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은 젊은 연인들이 하늘에 실어 보낸 비밀스러운 연신. 그 새파란 축복 아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톰은 재잘재잘 떠드는 피트의 입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젯밤에도 무한한 사랑을 쏟아낸 입술. 그 입술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미소를 던질 때면, 톰의 가슴은 벅차게 뛰었다. 청춘의 한창때를 보내는 젊은 아내의 행복이 곧 그의 행복이었다.

론에게 정말 말을 길들이다가 떨어져서 별명이 슬라이더냐며 이죽거리던 피트는 곧 톰의 시선을 눈치챘다. 피트는 고개를 돌렸다. 또 저렇게 바보처럼 쳐다보네. 피트는 이맛살을 살포시 찡그리며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름답다.”

톰은 고삐를 쥔 피트의 손을 잡았다. 휘감긴 손가락 끝에 떨림이 전해졌다. 미숙한 풋정의 떨림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불변하는 청금석처럼 변하지 않을 사랑은 남자의 눈동자를 닮았다. 피트는 환하게 웃었다. 톰은 정직한 사람이다. 사랑을 숨기지 못한다. 정념도 숨기지 못한다.

작년에는 이 무더위가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정말 좋아.

피트는 전율했다. 등을 내리쬐는 햇살이 따사로웠다. 그는 이 순간 자신이 넘치는 사랑과 축복 속에 안전히 보호받고 있음을 알았다. 그의 오랜 친구인 외로운 유령은 이 따사로운 방벽을 감히 넘지 못할 것이다.

 
***


해가 저물고 세 사람은 하룻밤 자고 갈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말들이 뛰놀 방목지까지는 앞으로 하루를 더 가야만 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마른풀이 향기롭고 땅이 평평한 곳이 있었다. 톰과 피트가 자리를 깔고 론은 불을 피웠다. 넘실거리는 불꽃이 뜨거웠다. 론은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움직여 저녁 식사를 차렸다. 

키르케가 구운 빵은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모처럼 먼 길을 나와서 몹시 허기졌던 톰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먹었다. 배가 불러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톰을 보며 피트는 언젠가 꼭 키르케보다 더 맛있는 빵을 굽겠다고 결심했다.

세 사람은 피트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만의 별을 찾았다. 별자리마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잠깐이었다. 피트와 론이 또다시 옥신각신 다투기 시작했다.

“내 별이 제일 커.”
“아닌데. 내 별이 더 큰 것 같다.”
“그냥 네 덩치가 무식하게 큰 거겠지.”

피트가 비아냥거리자 론은 섭섭한 마음에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인마, 피트. 우리 이제 친해졌잖아. 왜 그렇게 심하게 말해?”
“칭얼거리지 마, 남자가. 진짜 없어 보이거든.”

피트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오기가 생긴 론은 톰에게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청했다.

“톰, 오직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말해라. 내 별이 크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피트의 별이 크다고 생각하나?”
“내 생각은…….”

톰은 론이 가리킨 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 그만 잘 시간이 됐다고 생각한다. 너무 늦었다.”

톰은 피트의 눈을 손으로 덮었다. “나 아직 안 졸려.” 피트가 톰의 손목을 잡으며 토를 달았다. “아니, 넌 졸리다. 몸이 따끈따끈하잖아. 그만 자라.” 톰은 딱 잘라 말하며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렸다.

 
***


나무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은 피트는 저 멀리, 말을 모는 톰과 론을 구경했다. 단단한 근육 잡힌 말의 몸이 보기만 해도 황홀했다. 강인한 발돋움, 나부끼는 꼬리, 푸르른 땅이 생기로 가득했다. 가장 돋보이는 건 역시 타르르크였다. 눈이 부신 햇살 아래, 타르르크의 황금빛 갈기가 빛났다. 

톰이 무리를 이탈하는 말을 쫓으며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피트는 땅이 진동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 소리 들리지? 네 아버지랑 삼촌이 말을 모는 소리.”

피트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말은 네 아버지보다 내가 더 잘 타. 최고의 기수는 나야. 그러니까 말 타는 법이랑 말을 길들이는 법은 내가 가르쳐줄게.”

올가미에 목이 걸린 말이 애처롭게 울었다. 톰은 밧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말은 사납게 바동거렸다. 옆에서 론이 따라붙었다. 포위당한 말이 마지막으로 뛰어오르며 발악했다. 피트는 가만히 그 광경을 응시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너에게 가르쳐줄게. 기쁨도, 슬픔도, 미움도, 쓸쓸함도 모두. 그리고 시련을 이겨나가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줄게. 네가 무사히 어른이 될 때까지 지켜줄게.”

피트는 자신의 꿈을 담아 아이에게 속삭였다. 마침내 말을 제압한 톰이 피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움푹 팬 뺨이 오늘따라 근사해 보였다. 그의 날렵한 콧등 위에 파란 나비 한 마리가 살포시 앉았다. 피트는 활짝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톰에게 손을 흔들었다.

“넌 외롭지 않게 해줄게. 널 꼭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로 만들어 줄 거야.”



77. 탄생과 소멸의 밤


방목지에 온 지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말들이 살이 오르면서 풍성했던 풀들이 여위어 갔다. 붉은 노을이 짙게 깔린 대지는 애처로웠다. 꺼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숨결이 바람에 실려 하늘로 흩어졌다.

저녁을 지으려고 피운 모닥불이 부산스레 튀었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론이 오늘의 전리품인 살찐 토끼를 흔들며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다. 축 늘어진 토끼는 한눈에 보아도 덩치가 컸다. 게다가 털이 고왔다. 피트는 토끼 가죽으로 아이가 겨울에 입을 조끼를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기다렸나?”

론이 호탕하게 외쳤다. “아니, 토끼를 기다렸지.” 피트는 론을 향해 걸어갔다. 발밑에 부드러운 흙이 기분 좋게 꺼졌다. 수면 위를 걷는 듯했다. 두 팔을 벌려 론을 맞이하던 피트는 갑작스레 등골을 훑는 찌릿한 통증에 배를 부여잡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

“피트!”

깜짝 놀란 론이 피트의 이름을 외치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피트는 급히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숙였다. 통증 때문에 허리를 똑바로 세울 수 없었다. 톰과 론은 거의 동시에 피트에게 도착했다. 잠깐 사이에 피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배가, 배가 아파…….”

피트는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론은 조심스럽게 피트를 부축했다. 무심코 피트의 발밑을 본 론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발목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톰, 양수가 터졌어. 아무래도 애가 곧 나올 것 같다.”
“벌써? 아직 산달이 아닌데.”

피트의 눈동자가 가파르게 흔들렸다.

“애는 일찍 나오기도 한다. 나즐다도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애를 낳았어.”

론은 누구보다 당황했을 피트를 생각해서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피트의 불안함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어떡해? 아이는 무사한 거야? 내가 또 뭘 잘못했어? 내가 또 망쳤어?” 피트는 울먹이면서 톰을 찾았다. 손이 떨려서 톰을 붙잡을 수 없었다. 톰은 미끄러지는 피트의 손을 대신에 잡아주었다. 론이 피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를 격려했다.

“안심해라. 우리가 망아지나 새끼 양을 한두 번 받아봤나.”
“하지만…….”
“아이도 받아봤다. 나즐다가 출산할 때, 나도 곁에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론은 그렇게 말하며 톰에게 눈짓했다. 톰은 곧바로 피트를 둘러업었다. 두 사람은 미리 합을 맞춘 것처럼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론은 바닥에 융단 두 겹을 겹쳐 깔았다. 그리고 베개를 꺼내서 피트가 누울 자리를 마련했다. 톰은 피트를 조심스럽게 자리에 눕히고 바지를 벗겼다. 젖은 옷은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톰은 허리춤에 찬 단도를 꺼내어 옷을 찢었다. 그 사이 론은 냄비에 물을 가득 받은 다음 불 위에 올렸다.

“이제 어떻게 해?”

피트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동자로 톰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진통이 시작될 건데, 자궁이 열릴 때까지 견뎌야 한다.”

톰은 땀에 젖은 피트의 이마를 쓸었다. 론은 자신의 단도에 천을 칭칭 감은 다음 톰에게 건넸다. “아프다고 마냥 참으면 어금니가 나간다. 못 참겠거든 이걸 대신에 물고 있어라.” 톰은 천으로 감싼 단도를 피트에게 내밀었다. 피트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이 끓어오를 동안 론은 준비를 마저 했다. 탯줄을 자를 가위를 준비하고, 몸을 닦을 천을 몽땅 꺼냈다. 대야도 따로 준비했다. 진통이 시작되자 피트는 손등이 새하얗게 질리도록 자신의 옷깃을 그러쥐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얼떨떨했다. 자신이 꿈을 꾸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톰은 피트의 다리에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론에게 말했다.

“론,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 너는 당장 돌아가서 아이벡 선생과 후투가 어른을 모셔와라.”
“알았다.”
“가지 마. 같이 있어 줘. 나만 두고 가지 마.”

피트가 울먹이며 론을 붙잡았다.

“네 남편이 곁에 있겠다는데 왜 두려워하고 그래. 걱정하지 마라. 내가 얼른 가서 어른들을 모셔 올 테니, 조금만 견뎌.”

론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말과는 달리 편치 않았다. 그도 불안했다. 방목지에서 영지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 그 사이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론은 불길한 생각을 애써 떨쳐냈다. 일단 아이벡과 후투가를 데리고 오면 아이를 돌볼 수는 있을 것이다. 무사히 태어나기만 한다면. 조산이기 때문에 아이벡의 힘이 절실했다.

“다녀올게, 피트. 곧 다시 만나자.”

채비를 마친 론은 피트에게 인사했다. 피트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떠나는 론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응시했다.

 
***


밤이 깊어졌다. 진통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아이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톰은 피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자궁이 열렸는지 확인했다. 피트의 두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가 견디고 있을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서워.”

피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서워, 톰.”

진통이 찾아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지칠 대로 지쳤다. 온몸에 감각이 둔해졌다. 허리 아래로는 거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괴로워하는 피트를 두고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톰은 무력함을 느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조상과 이 땅에 깃든 모든 신성한 존재에게 부디 무사히 이 고비를 넘길 수 있게 해달라며 간청했다.

“피트, 힘들어도 지금은 정신 놓으면 안 된다. 그러면 둘 다 위험해진다.”

톰은 피트의 손을 다잡고 그를 격려했다.

“응, 버틸게.”

피트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수와 피를 너무 쏟아낸 탓에 오한이 들었다. 손과 발도 차가워졌다. 피트의 손을 더듬던 톰은 그의 체온이 식은 것을 알아차리고 불을 끌어왔다. 그리고 덮을 이불 두 장을 더 꺼냈다.

머리가 멍해……. 피트의 눈이 가물가물 감겼다. “피트.” 톰은 그가 정신을 놓지 않도록 뺨을 때려 깨웠다. 그리고 물을 마시게 했다. 피트는 너무 지쳐서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절반은 그냥 흘렀다. 방법을 모색하던 톰은 자신의 입에 물을 머금고 피트에게 입을 맞췄다. 겨우 물을 삼킨 피트의 눈동자에 어느 정도 생기가 돌아왔다. 

이어서 톰은 자궁이 열렸는지 확인했다. 밑에 깔아둔 천이 흥건하게 젖어 새로 갈아야만 했다. 그러나 깨끗한 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저분해지고 말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이대로 간다면…….’ 두려움이 엄습한 나머지 톰은 목이 멨다. 내색하지 말자. 무너져선 안 된다. 톰은 마음을 다잡았다.

“됐다. 이제 됐어. 피트, 이제 됐다.”

희망이 언뜻 보였다. 마침내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마쳤다.

“정말? 난 잘 모르겠어.”

피트는 간신히 고개를 가누었다.

“아이가 나올 수 있게 힘을 줘라, 피트.”

톰이 강단 있게 말했다. 피트는 그가 시킨 대로 힘을 줬다. 하지만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긴가민가했다. 그저 불안하고 막막했다.

“천천히. 숨 내쉬면서 힘줘라.”
“뭔가, 뭔가가…… 톰, 나 혹시 실수한 거 아니지? 너한테 부끄러운 꼴 보이고 싶지 않은데…….”
“괜찮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 피트, 날 믿지?”
“응.”
“내 말대로 해라.”

피트는 단도를 입에 물었다. 끔찍한 고통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하도 힘을 줘서 눈에 실핏줄이 전부 터져버렸다. 그러나 아이는 좀처럼 나오지 못했다. 피트의 가슴이 가파르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급히 숨을 몰아쉬었지만,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기어이 눈앞이 새카맣게 번지더니 순간 귓가에 이명이 울렸다. 정신을 잃은 피트의 팔이 툭 떨어졌다. 톰은 다급히 산도를 확인한 다음 피트를 깨웠다. 피트는 눈은 떴으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락가락했다. 버틸 힘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피트, 내 말 잘 들어라. 아이가 거꾸로 들어섰다.”

톰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피트는 대답할 기력도 없어 겨우 눈만 깜빡거렸다.

“아이를 똑바로 돌려놓을 건데, 고통스러워도 견뎌야 한다.”

톰의 숨소리도 거칠었다.

“나를 믿어라. 너도 아이도 죽지 않는다. 내가 반드시 살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다 함께 무사히 돌아갈 거다. 헛된 생각은 하지 말고, 좋은 생각만 해라.”

피트는 톰을 믿는다는 뜻으로 미소 지었다. 톰은 심호흡한 다음, 마음을 추스르고 피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피로 얼룩진 국부를 닦아내고 그 안을 살폈다. 이윽고 톰은 이를 악물고 손을 집어넣었다. 피트가 숨이 넘어가도록 비명을 질렀다. 

“버텨라, 피트. 너는 할 수 있다. 버텨.”

단숨에 끝내야 한다. 피트를 고통으로부터 해방해주어야 한다. 톰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손목을 타고 피가 흘렀다. 산도가 좁아 아이의 어깨가 턱 걸렸다. 꺼내려면 팔을 부러뜨려야만 했다. 우드득 소리가 났다. 잗다란 뼈는 힘을 주지 않아도 손쉽게 부러졌다.

마침내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몸 여기저기에 푸른 반점이 얼룩덜룩한 아이는 미숙했다. 열달을 다 채우고 나오지 못한 터라 아직 눈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백막이 덮여 있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죽은 듯이 얌전했다. 톰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톰은 다시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다시. 마침내 아이가 물을 토해내며 힘차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피트는 정신을 차렸다.

“아이가…….”
“장하다, 피트. 정말 장하다.”

톰은 발버둥 치는 아이를 천에 꽁꽁 감싸, 얼른 피트에게 보여주었다.

“봐, 피트. 우리 아들이다. 네가 해냈어.”
“우와…… 못생겼어. 대체 누굴 닮은 거야.”

아이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피트가 인상을 찡그렸다. 톰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피트, 애가 서운해한다.”
“그치만 못생겼어. 쪼글쪼글해. 자그마치 반년 넘게 고생했는데…… 이렇게 못생기다니. 너도, 나도 안 닮았어.”

피트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밉살스럽게 투덜거렸다.

“이제 막 태어나서 그래. 며칠 지나면 인물이 날 거다. 자, 다시 봐라. 자세히 봐. 우리 아들은 못생기지 않았다.”

톰은 안달이 나서 피트를 어르고 달랬다. 피트는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다시 봐도 못생겼는데.” 
“피트.”
“브래들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뽀얗고 예뻤는데.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잖아. 그렇게 예쁜 아기는 처음 봤어. 앞으로도 못 볼 거야.”
“남의 집 자식이랑 우리 아이를 왜 비교해?”

톰은 섭섭한 나머지 피트의 뺨을 찔렀다. 그래도 피트는 고집스럽게 불만을 토로했다.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브래들리가 더 예뻐. 이 애는 못생겼어.”
“정말 못 말리겠군. 내가 다 서운하다.”
“그래도 계속 보니 귀엽다. 코는 널 닮은 것 같아.”

피트는 언제 심통이 났냐는 듯이 웃었다.

톰은 아들의 탯줄을 자르고 몸을 닦였다. 부러진 팔이 어긋나지 않고 붙을 수 있도록 부목을 대고 고정했다. 그 사이에도 피트의 하혈은 멈추지 않았다. 밑에 깔아둔 천이 피로 흥건했다. 톰은 깨끗한 수건으로 피트의 다리를 닦았다. 피가 멎지 않는다. 피트의 몸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게 시들고 입술도 새파랬다. 톰은 자신이 살아서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을 예감했다.

“아이 이름, 톰…… 우리 아이 이름.”

피트 역시 톰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힘없이 톰을 찾았다. 그에게로 손을 뻗고 싶은데, 그를 만지고 싶은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남지 않았다. 톰은 얼른 피트의 손을 잡았다. 지금 자신이 피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네가 원하는 이름으로 짓자.” 
“정말 그래도 돼?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지어도 돼?”

피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럼. 네가 고생해서 낳은 아인데, 네가 원하는 이름으로 지어야지.”
“고마워…….”
“어떤 이름이 좋겠어? 생각해둔 이름이 있어?”
“톰.”
“응, 뭐든 말해라.”
“톰.”
“그래.”

톰은 피트의 말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답답해서 욕을 해주고 싶은데 그럴 기운이 없다. 그리고 말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피트는 사력을 다해 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염이 올라와 거칠거칠한 뺨. 피트는 간신히 입술을 달싹였다.

“난 톰이라는 이름이 좋아.”
“아…….”
“톰이 좋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 이름이야.” 

피트는 열없이 웃었다. 톰이 먼저 떠난 아이에게 스바로그라는 이름을 지어준 그 날부터 줄곧 마음속에 간직한 이름이었다. 혁혁한 무공을 세운 위대한 영웅이나, 절망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한 현자의 이름은 그에게 어떠한 의미도 되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의 무용담은 쓸쓸한 노래일 뿐이다. 피트에게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은 자신에게 하늘을 열어준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이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했으며 좋았다.

“사실 딸인 줄 알고, 토마신이라고 짓고 싶었어. 그런데 아들이니까…… 톰.”
“줄곧 생각하고 있었구나.”
“응…….”
“진작 말하지 그랬어.”

톰은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해서 잠깐 고개를 들었다. 그는 가까스로 뜨거운 눈물을 삼키고 다시 피트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초점이 풀린 피트의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점점 숨소리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자식 이름은 아버지가 짓는 거니까…….”
“어디 내 자식이기만 한가. 우리 자식이다. 그래, 우리 아들 이름은 톰이다.”
“톰 카잔스키.”

피트는 자신이 사랑하는 두 남자의 이름을 되뇌었다. 이제야 속이 후련해졌다. 더는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톰…… 나 피곤해. 이만 자고 싶어. 나 이제 쉬어도 돼? 잠깐만 자고 일어날게.”
“그래. 내가 곁에 있어 줄 테니 마음 놓고 잠들어라. 아무 꿈도 꾸지 마라. 곤히 자고 일어나서 다시 만나자.”

톰은 어머니와 작별하던 날, 눈물을 보인 것을 후회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웃었다. 흘리지 못한 눈물이 심장에 고였다. 가슴이 곧 터져나갈 것처럼 욱신거렸다.

“톰, 있잖아…….”
“작별 인사는 하지 마라. 우리가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다시…….”
“반드시 꼭. 우린 다시 만날 거다.”
“내 얼굴이 변해도 날 알아봐 줄 거지?”
“물론이다.”
“응, 우리 다시…….”
“그만. 자꾸 말하면 지치기만 할 뿐이다. 이제 말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나를 사랑해?”
“사랑해. 나의 달, 나의 새벽별, 나의 주인.”

톰은 피트의 이마 위로 손을 가져갔다.

“잘 자라, 피트.”

떨리는 손으로 톰은 피트의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감겨주었다.

“잘 자라, 매버릭.”

피트는 자신에게 미소 짓는 톰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가슴에 아로새겼다.

“잘자, 매브.”

이윽고 피트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그는 힘을 모두 소진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비죽 나와 있었다. 톰은 피트에게 입을 맞춰 혀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자신의 사랑과 함께.

두 사람의 아이는 삶을 향한 의지가 강했다. 한 번 터진 울음을 쉬이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이는 마구 몸부림치며 울었다. 톰은 아이의 얼굴을 매만지며 덤덤하게 타일렀다.

“아들아. 네 어머니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울지 마라. 피트를 깨우지 마라.”

말문도 트이지 않은 아이가 영특하게도 울음을 그쳤다. 톰은 아이를 피트의 옆에 뉘었다. 그리고 피트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밤하늘에 달과 별이 사라졌다. 바람도 더는 불지 않았다. 푸른 신록은 옷을 벗고, 앙상하게 죽은 가지가 뻗어나갔다. 들판에 활짝 핀 꽃은 모두 시들고 풀벌레는 더는 울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삶과 죽음의 경계선. 슬픔도 기쁨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생의 희로애락은 이제 무의미하다. 황금이 녹아내리고 녹음이 소멸한 땅을 뒤덮는 지고의 어둠. 모든 것이 멈추고, 오직 눈물만이 톰의 뺨을 타고 쉼 없이 흘러내렸다.

=

아이스매브 아이스맨 매버릭
2023.06.09 08:08
ㅇㅇ
모바일
센세ㅠㅠㅠㅠㅠ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ㅠㅠㅠㅠㅠㅠ제바류ㅠㅠㅠㅠㅠㅠㅠ
[Code: 5faa]
2023.06.09 17:21
ㅇㅇ
모바일
센세 진짜 이런 법은 없는거ㅠㅠㅠㅠ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제 좀 행복해지나 했는데ㅠㅠㅠㅠㅠ
[Code: cf79]
2023.06.10 00:35
ㅇㅇ
모바일
센세ㅠㅠㅠ 나 계속 들어오고 있어 자꾸 눈물난다 하 ㅠ
[Code: c7ef]
2023.06.10 01:30
ㅇㅇ
모바일
센세 나 울어 진짜 현눈이 펑펑 나잖아ㅠㅠ
[Code: 48ac]
2023.06.10 01:31
ㅇㅇ
모바일
이럴 법은 없는겨 ㅠㅠ 둘이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하는 거만 남았자녀 아녔어?ㅠㅠ
[Code: 48ac]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