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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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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달


멀리서 걸어오는 옥사나를 발견한 알렉세이는 개를 쓰다듬다 말고 몸을 일으켰다. 벌렁 드러누워 배를 보이고 꼬리를 흔들던 개가 아쉬운지 낑낑 울었다. 알렉세이는 녀석의 머리를 툭툭 가볍게 쳤다. 그래도 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알렉세이의 발치에 엎드렸다. 옥사나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어머니.” 알렉세이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옥사나는 알렉세이의 어깨에 가지고 온 숄을 둘러주었다. 해가 저물자 바람이 쌀쌀했다. 

“피트가 타마라의 패물을 가지고 있더군. 네가 주었다지?”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것 아닙니까.”

알렉세이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랬지. 이다음에 며느리를 들이거든, 가장 착한 아이에게 물려주라고도 말했다.”

옥사나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알렉세이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팔짱을 끼고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옥사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목석같은 아들이다.

“알료샤, 마음이 바뀐 이유가 뭐냐?”
“1년. 톰에게 1년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알렉세이는 지평선 너머로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그의 이마와 광대뼈에 내려앉은 어둠이 쓸쓸한 남자를 한층 엄숙하게 보이도록 했다.

“톰은 자신이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에 놈이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피트는 제가 책임지고 다른 곳에 보낼 겁니다. 이 일대에 제 뜻을 알렸습니다.”
“그거야 톰이 알아서 할 일이지, 네가 피트에게 타마라의 장신구를 준 이유는 아니지 않느냐.”
“…….”
“알료샤.”

옥사나는 알렉세이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녀는 바위로 만들어진 듯한 단단한 남자의 얼굴에서 어린 시절의 흔적을 찾아냈다. 수염으로 뒤덮인 다부진 턱이 둥글고 얇은 입술이 우물거리며 손가락을 빨던 시절을. 미숙아로 태어나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아들이다. 잔병치레도 많았다.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준 것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톰은 제 아들입니다, 어머니.”

알렉세이는 어렵게 말을 이었다.

“타마라와 저, 우리 두 사람의 아이.”

옥사나는 알렉세이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우리’라는 그 말에 많은 의미가 담겼다. 알렉세이는 고개 숙여 노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옥사나의 손을 잡았다.

“톰은…….”

알렉세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제야 알게 된 겁니다.”

알렉세이는 코를 훔치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가 도로 풀었다.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을 때, 그의 버릇이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렉세이는 잠깐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옥사나도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모자는 함께 길잡이 별을 찾았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그 노랫소리를. 다시, 알렉세이는 자신의 별을 두 눈에 담으며 말을 이었다.

“닿기만 해도 부서질까 봐 두려워서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그 절박함을.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은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깨닫고 절망하겠지요.”

알렉세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오만한 놈이 이제야 두렵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톰은 제 후계자입니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가장 강인한 자부터 시작해서 가장 약한 자의 마음까지 전부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네 뜻을 톰에게 직접 말해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

옥사나의 눈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녀는 흘러내린 숄을 단단히 여몄다. 알렉세이는 흉터투성이 손으로 숄의 끝단을 그러쥐었다. 옥사나는 거듭 입술을 축이며 그의 손등을 다독였다. 알렉세이는 도무지 입을 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옥사나는 고개를 숙여 지저분한 아들의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조만간 새로 만들어 줘야겠다.

“그럴 생각은 없지? 이 어미가 부탁해도?”
“예.”

이제 와서 새삼. 알렉세이는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가슴이 돌에 짓눌린 듯 무거웠다. 모자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매달리던 개가 슬그머니 꼬리를 말고 어디론가 비척비척 사라졌다. 그 쓸쓸한 뒷모습. 알렉세이는 아들의 등이 떠올랐다.

 
***


천막 문이 열리는 소리에 피트는 거울을 내려놓고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뒷짐을 지고 발끝을 세웠다. 그리고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들꽃처럼.

“저녁도 안 먹고 어디 다녀오는 거야?”

피트가 넌지시 물었다. 톰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문 앞에 선 채로 손만 쥐락펴락했다. 피트를 마주하니 또다시 입이 말랐다.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꽉 움켜쥔 것처럼 아프기도 했다.

“이번엔 개가 아파?”
“……아니.”
“그럼?”

톰은 말없이 바닥만 응시했다.

“네가 아픈 건 아니지?”

피트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제야 톰은 고개를 들어 피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러 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늘어져야 할 그의 어깨가 허전한 것을 알아차리고 톰은 휘둥그레 눈을 떴다. 피트가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자 등에 늘어트렸던 머리카락이 앞으로 스르륵 내려왔다. 한 갈래로 땋은 머리카락. 그것의 의미를 알고 톰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것도 잠깐, 못 보던 장신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목걸이는 웬 거야?”
“어르신이 주셨어. 봄이잖아.”

피트는 얼굴을 붉히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너무 화려해서 부담스러웠는데, 키르케가 잘 어울린다고 말해줘서 이제는 마음에 든다. 톰도 예쁘다며 좋아할 거라고 말했다. 옥사나가 준 새 옷도 몸에 딱 맞는다. 이제는 톰도 알아주려니 했다. 그런데 톰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해졌다. 처음 보는 그의 얼굴에 피트는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화가 난 건가?’ 도무지 모르겠다. 그저 무서웠다.

“무, 무슨…….”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톰의 기세에 덜컥 겁을 먹은 피트는 뒷걸음질 쳤다. 톰이 손을 뻗었다. 피트는 그가 제 뺨이라도 때리는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불이 붙은 듯 뺨이 화끈거릴 줄 알았는데, 가여울 정도로 떨고 있는 손길이 느껴졌다. 피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무어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얼굴. 

톰은 피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우뚝한 콧등을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이윽고 서로 입술이 닿았다. 조심스러운 입맞춤. 피트는 어렴풋이 톰의 망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이 아닌 체온을 통해.

입술이 떨어졌다. 피트는 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매번 이랬다. 입을 맞추면서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서로 혀가 엉키는 순간,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차고 온몸에 힘이 빠져서 톰에게 매달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른쪽 귓불에 톰의 손이 닿자 피트는 간지러워서 움찔했다. 톰은 손끝으로 피트의 귓불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더니 귀걸이를 빼냈다. 바닥으로 귀걸이 한 짝이 툭 떨어졌다. 이어서 반대쪽도. 피트는 가만히 숨을 죽였다. 톰은 품에서 지난번 바자르에 들렀을 때 산 터키석 귀걸이를 꺼냈다. 피트는 귀걸이와 톰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다시 톰의 손이 피트의 귓바퀴를 가볍게 스쳤다. “아…….” 피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돌연 아랫배가 당기며 몸이 뜨거워졌다.

뺨에 닿는 톰의 숨결이 거칠고 뜨거웠다.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진 피트는 이번에도 그의 망설임과 불안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곧 그가 되고, 그가 곧 자신이 된 듯한 순간이었다. 톰도 몸을 떨고 있었다. 턱이 파르르 떨려 입을 제대로 다물지도 못했다.

귀걸이 침이 평소 피트가 차던 귀걸이보다 굵었다. 좁은 구멍을 힘겹게 비집고 들어갔다. 살이 벌어지며 귓불이 발갛게 부었다. 꼭 처음 귀를 뚫었을 때처럼 아팠다. 피트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톰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톰은 자꾸만 미끄러지는 손끝에 신경을 집중하고 마침내 귀걸이 침을 완전히 밀어 넣었다. 피트의 두 눈동자가 바람을 만난 수면처럼 흔들렸다.

“아파…….”
“참아라.”
“아.”
“곧 끝나.”
“흐윽.”
“곧.”

어느새 톰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의 손아귀에 든 귀걸이가 잘그락거렸다. 톰은 숨을 참고 반대쪽으로 손을 옮겼다. 기다란 침이 피트의 살을 가르고 밀려드는 순간을 전부 눈에 담았다. 가슴이 뻐근해졌다.

이윽고 톰이 반대쪽 귀걸이까지 끼우자 피트는 긴장이 풀려 톰의 품에 쓰러지듯이 안겼다. 톰은 헐떡이는 피트의 어깨와 등을 매만지며 그의 이마와 두건으로 덮인 머리카락을 입술로 지분거렸다. 다시, 톰은 피트의 얼굴을 보물처럼 감싸며 입을 열었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준 건 네 몸에 닿지 않게 해라.”
“어르신이 무슨 남자야. 어르신이지.”

피트는 핀잔을 주며 톰의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쳤다. 톰은 피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찧었다.

“나이 많고 점잖은 남자가 좋다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나랑 오래오래 함께 살아 줄 건강하고 젊은 남자가 좋아.”

피트는 그렇게 말하며 화끈거리는 귀를 만지작거렸다. ‘나 혼자 괜한 걱정을 한 건가.’ 톰은 새삼 부끄러워졌다. 정말이지 피트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실없이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매브.”
“어? 웃었다. 너 오랜만에 웃네.”

피트가 키득거렸다. 뺨이 동그랗게 부풀었다. 톰은 사무치는 애틋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와락 껴안았다.

“숨 막혀.”

피트는 바동거리며 톰의 등을 때렸다. 톰은 피트를 더더욱 힘껏 껴안으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흐느꼈다. 피트는 깜짝 놀라 손을 멈췄다.

“왜 그래?”
“왜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아? 왜 날 원망하지 않아?”
“누가 아니래? 조심해, 카잔스키. 너 지금 내 손아귀에 있어. 까딱하면 목을 그어버릴 거야.”

피트는 장난스레 말하며 톰의 모자를 벗겨 멀리 던졌다. 모자에 눌린 머리카락이 푸스스 흩어졌다.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랗고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이다. 금발은 정말 좋네. 피트는 괜스레 마음이 들떴다. 자신도 톰처럼 금발 머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널 피하는 걸 알잖아.”

톰은 피트를 놓아주며 말했다.

“알지.”

피트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데 왜 그 이유를 묻지 않지?”
“그야…… 너는 그렇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 시달려서 생각할 게 많은데, 나까지 옆에서 뭐라고 말하면 아무리 너라도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어서 확 숨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또…….”

피트는 잠깐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당장에 급한 불만 끈답시고 나한테 되도 안 되는 변명 늘어놓으면서 거짓말할 사람 같진 않아.” 
“…….”
“시간이 좀 걸려도 언젠가는 솔직하게 말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리기로 했어. 네가 마음 편히 얘기할 준비가 될 때까지. 너도 내가 무섭다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잖아.”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처럼 신뢰받은 적이 있던가. 톰은 전율이 일었다. 자신을 외면하는 아버지의 매몰찬 등과 각자 원하는 바가 있어 자신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톰은 이 순간 흔들림 없이 평온한 피트의 두 눈동자 속에 빠져 헤엄치고 싶었다. 그에게 자신의 심장을 주고 싶었다.

“요즘 네가 죽는 꿈을 매일 같이 꾼다.”

톰은 손바닥에 반달 모양의 손톱자국이 남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세찬 바람 앞에 내몰린 것처럼 몸이 떨리고, 정신을 잃을 것 같아서 뭐라도 매달릴 것이 필요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나도 너를 따라서 죽고 싶어진다.”
“…….”
“나는 지금까지 너 없이도 잘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너를 몰랐던 그 긴 세월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 이렇게 될 줄 몰랐다.” 
“…….”
“넌 아름답고, 강하고, 선량하니까 좋은 신붓감이라고만 생각했어. 내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가 될 사람이니, 부족한 것 없이 챙겨주고 아껴주면 된다고만 생각했어. 서로 부대끼며 살다 보면 정이 들고, 한 침대에 누워 살 맞대고 잠드는 게 당연해지겠지.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래, 남들처럼만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르겠다.” 

톰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나는 분명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네 앞에 서면 그 수고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나는 가진 것 하나 없고 내 손으로 이룬 것 하나도 없는 초라한 남자가 된다.”

울음이 커졌다. 그가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피트는 톰이 처음으로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톰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무엇도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급류에 떠밀려 내려가는 것처럼.

“두려워.”

톰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피트. 너를 잃어버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도 몰라. 그러니까 잃어버리지 마.”

피트는 톰에게 다가갔다. 젖은 그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뒤꿈치를 들어 입술로 눈물을 훔쳤다. 짠맛이 났다. 갈증이 일었다. 더욱더 목이 마를 걸 알면서도 자꾸만 눈물을 축이게 됐다. 새벽 어스름처럼 푸르고, 잿빛 그늘이 술렁이는 이 감정은 짠맛이 났다. 



21. 가족의 울타리


날이 따뜻해지면서 닉의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부러진 뼈가 완전히 붙고, 다리에 근육도 단단해졌다. 이제 목발 없이도 수월하게 걸을 수 있게 됐고, 잠깐이지만 뛸 수도 있었다. 그를 성심껏 보살핀 바샤 영감은 조만간 닉이 말이랑도 나란히 달릴 수 있을 거라며 자신했다.

닉과 피트는 함께 들판을 거닐었다. 빽빽하게 깔린 초지 위로 듬성듬성 들꽃이 피었다. 두 사람은 날이 좋을 때면 이처럼 아무 목적 없이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발바닥이 욱신거릴 정도로 한참 걷다 보면, 오랜 고민거리도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카잔스키가 잘못했다면서 싹싹 비는데, 진짜 웃겼다니까. 너도 봤어야 해.”

피트는 쉼 없이 재잘거렸다. 그늘 한 점 얼씬거리지 못하고 봄볕처럼 화사한 그의 얼굴과 명랑한 목소리는 정답지만, 닉은 그 애틋한 얼굴로 자꾸만 카잔스키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게 거슬렸다. 닉은 걷다 말고 우뚝 멈췄다.

“매브.” 
“응?”
“너 요즘 톰 카잔스키 얘기만 하는 거 알아?”
“내가? 무슨 소리야.”

피트는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 없다는 투로.

“톰 카잔스키가 좋아졌어?”

닉이 진지하게 되물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구나.’ 피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일.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던 일. 피트는 차마 닉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겨우내 오랫동안 닉이 고통스러워했는데, 마냥 들떠서 헤프게 웃은 자신이 한심하고 미웠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 날 어떻게 생각하실까. 캐롤은. 브래들리는. 브래드쇼 가족의 이름을 떠올리자 스스로 뺨이라도 때리고 싶어졌다.

“카잔스키는 아일라우를 죽였고, 널 다치게 했어. 그런 놈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모자랄 판국에.”

그렇게 말하는데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것처럼 아팠다.

“내 얼굴 봐, 매브.”
“아니야.”

피트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부정했다.

“아니라고.”

피트는 허공에 대고 외쳤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사람이 죽고, 넌 힘든데, 나만 행복해지면 안 돼.”

자신을 바라보는 톰의 눈빛이 다정해서 그동안 잊고 지냈다. 그와의 첫 만남은 불길 아래, 그리고 피 웅덩이 위에서. 애써 외면했던 죽은 사람들의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떠올랐고, 그들이 시커먼 입을 쩍 벌리며 원망하는 말이 들렸다.

“넌 행복하게 살아야지.”

닉은 비틀거리는 피트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캐롤이랑 브래들리가 널 걱정하고 있어. 아저씨랑 아주머니도.”
“어디 내 걱정만 할까? 네 걱정도 해.”
“너 이제야 겨우 걷는데…….”

피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내가 카잔스키랑 잘 지내면……. 죽은 사람은 뭐가 되고, 그 사람 대신해서 복수해주겠다고 결심했던 나는, 나는 뭐가 되고…….”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바보 같은 피트. 닉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자꾸만 손이 가는 아이.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는 아이. 먼발치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낡은 공을 툭툭 차던 피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매버릭, 잘 들어. 카잔스키가 너한테 진심으로 잘해주고, 아껴주고, 그래서 네가 카잔스키가 좋아졌다면 나는 뭐라고 안 해. 네가 좋다면 나도 좋아. 잘된 일이야. 혹여나 너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닉은 피트의 어깨를 단단히 붙들고 단호한 어조로 그를 타일렀다. 그러나 피트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따스했다. 닉은 누구보다 혼란스러운 사람은 바로 피트라고 생각했다. 그가 행복을 코앞에 두고 혼란에 빠져 무너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구스.”
“어제만 해도 좋았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싫어질 수도 있고, 죽도록 미웠던 사람이 어느 순간 좋아질 수도 있어. 사람 마음은 본인도 어쩌지 못하는 거야. 근데 이건 알아야 한다, 피트.”
“뭘…….”
“중요한 건 네 마음이야. 네가 자기 자신한테 얼마나 정직하냐는 거야. 다른 사람은 속여도 네 마음은 속이면 안 돼.”
“…….”
“네 마음에 확신이 서면, 그때가 바로 내 곁을 떠나는 날이야.”
“내가 뭐 잘못했어? 왜 그런 말을 해.”

비장한 닉의 말에 피트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했다. 닉의 곁을 떠나는 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숨을 쉬는 것처럼 그는 당연한 존재였고, 그림자처럼 언제나 함께하는 존재였다. 때때로 피트는 닉의 등 뒤로 뭉게구름처럼 새하얀 날개를 보고는 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모든 모진 말과 미움을 막아주는 커다란 날개.

“언제까지 내가 널 대신해서 사람들 앞에 나설 순 없어. 내 등 뒤에 숨어서는 당장 편하겠지만, 그렇게 살면 영원히 외로울 거야. 네가 그렇게 바라던 가족도 생기지 않고.”

울먹이는 피트의 모습에 닉은 가슴이 미어졌다. 말하는 게 버겁다. 그도 할 수만 있다면 사는 내내 피트를 자신의 울타리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삶의 형태 역시 다양했다.

“내 가족은 너야, 구스. 너하고 아저씨, 아주머니, 캐롤, 브래들리가 내 가족이야. 날 버리지 마. 내가 잘할게. 시집 안 가도 돼. 평생 브래들리 뒷바라지하면서 살게. 아주머니랑 아저씨도 내가 모실게.”

피트는 애처롭게 매달렸다. 닉은 울컥해서 언성을 높였다.

“멍청이, 누가 이제 가족이 아니래? 당연히 넌 우리 가족이지.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져도 넌 내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동생이야.”
“그럼 왜?”
“가족은 많을수록 좋잖아. 남편이 생기고, 자식들이 생기고, 그 자식들이 결혼해서 손주를 보고…… 너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잖아. 그렇게 살아야지. 우리 다 너 그렇게 살길 바란단 말이야.”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닉은 훌쩍거리면서 어렵게 말을 이었다. 하여튼 피트랑 함께 있으면 눈물이 많아진다. 그만큼 웃음도 많지만. 그래서 피트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구스.”
“하지만 아직 일러. 톰 카잔스키가 너 고생시킨 게 있는데 쉽게 허락할 순 없지. 그 자식이 제대로 못 하면 너 안 보낼 거야. 너도 지금 마음 싱숭생숭하다고 흔들리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닉은 눈물을 훔쳐내며 신신당부했다. 피트는 피트고, 톰 카잔스키는 톰 카잔스키다. 피트가 톰 카잔스키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해서 자신도 너그럽게 그를 받아 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톰 카잔스키는 이미 한 번 피트의 꿈을 망가트렸다. 피트는 잊어도, 자신은 잊지 않을 것이다. 톰 카잔스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사는 내내 자신의 잘못을 갚아야 한다.

“지금은 고생 안 시켜. 내가 먹고 싶다고 할 때마다 삶은 달걀 가져다주고, 어제는 설탕 단지도 줬고, 후추도 엄청 많이 사줬어. 난 후추가 좋아. 후추 뿌리면 고기가 더 맛있어.” 
“매브, 네 입에 들어가는 거 아끼는 놈은 네 남편 될 자격 없어.”

벌써 싸고돌아? 언제 울었냐는 듯이 톰을 대신해서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는 피트의 모습에 닉은 기가 찼다.

“구스, 넌 후추 별로야? 카잔스키가 네 음식에도 후추 뿌려도 된대서 엄청 많이 뿌렸는데. 내 입에는 맛있어서 너도 맛있을 줄 알았거든.”
“좋아해! 어쩐지 맛있더라. 그래, 네가 만든 요린데 당연히 맛있지.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거짓말이다. 사실 후추를 하도 많이 뿌려서 혀가 얼얼하게 매웠다. 톰 카잔스키가 자신을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줄 알았다. 조만간 그의 목을 비틀어 앙갚음해 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피트가 자신을 생각해서 만든 요리라니, 이제 매워도 참고 먹는 수밖에.

“예쁜 옷감도 잔뜩 주고, 비단실도 잔뜩 줬어. 실 아끼느라 머리 굴리지 않아도 돼. 맘껏 써도 남아.”
“그럼 네가 입을 옷 아무거나 주워오겠어? 당연한 거야. 내가 넝마를 입고 다니는 한이 있어도, 캐롤은 예쁘고 좋은 옷을 입어야지. 남자라면 그래야 해.”

닉은 으름장을 놓았다.

“벽걸이랑 카펫 내 마음대로 바꿔도 다 괜찮대.”

피트는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덧붙였다. 그래도 닉의 성에 차지 않았다.

“네 살림인데 네 마음에 드는 걸로 바꿔야지! 너는 애가 바라는 게 왜 이렇게 소박해? 카잔스키 집안 거덜 낼 만큼 좀 큰 거 바라는 건 없어?”
“그리고, 그리고…….”

피트는 말끝을 흐렸다. 기분 좋은 걸 잘해. 이 말을 닉에게 해도 괜찮을까? 잘 모르겠다. 톰이 자신에게 입을 맞출 때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몽롱해진다. 그가 입안에 비밀스럽게 하는 말이 좋았다. 특별해진 기분이 들어서 괜히 우쭐거리게 된다. 그러니까 톰이 시답잖은 말은 관두고 ‘그 짓’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뭐? 너 왜 얼굴이 빨개져?” 

닉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곧 피트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는지 알아차렸고, 노발대발하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설마…… 내 그 자식을!”
“아니야,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피트는 쩔쩔매며 닉을 말렸다. 닉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닉이 톰과 싸우면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처참하게 질 것 같았다. 이제야 몸이 다 나았는데, 도로 다치게 할 순 없었다.

“그 날도, 그러니까 그런 날. 그, 그 날. 내가 무섭다고 하니까 그냥 안아주기만 했어.”
“매브.”

닉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톰 카잔스키가 피트에게 아직 손을 대지 않았다니 일단 마음은 놓이는데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않았는데 초야를 치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현실적으로 약탈혼으로 맺어진 관계이니, 남들처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수많은 손님에게 축복받을 수야 없다. 그래도 닉은 약소한 형태로나마 의식을 치렀으면 했다. 그래야만 피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톰 카잔스키의 전리품이 아닌, 그의 아내로서. 다만 같은 남자로서 톰 카잔스키의 인내심과 노력은 인정한다. 동정하기도 한다.

“톰 카잔스키 그 자식이 좀 안쓰럽다.”

열을 올렸더니 힘이 쭉 빠졌다. 닉은 피트의 어깨에 턱을 괴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피트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게 있어.”

닉은 말을 아꼈다. 대신에 피트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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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매브 아이스맨 매버릭
2023.02.28 03: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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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가...이렇게....개..야한...장신구..였구나............
[Code: 5389]
2023.02.28 03: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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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근데 자기 감정에 흔들리는 피트ㅠㅠㅠㅠㅠㅠ안쓰럽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하긴 10대면 그럴수 있지 그렇지만...그렇지만...ㅠㅠㅠㅠㅠㅠㅠㅠㅠ바보야 자각을 해라ㅠㅠㅠㅠㅠ
[Code: 5389]
2023.02.28 07: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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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걸어주는 거 텐션 도랏 ㅌㅌㅌㅌㅌㅌㅌㅌ
[Code: b41d]
2023.02.28 07: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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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가 좋아서 그것만 했으면 좋겠는 피트 핡
[Code: e9ac]
2023.03.01 00: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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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걸어주는거 너무 야릇하고 꼴려서 미치겠어요 센세...어떡해...너무좋다진짜...하
[Code: 81ec]
2023.03.01 16: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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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너무 좋고 매번 새로워ㅠㅠㅠㅠ 알렉세이는 정말 좋은 지도자고ㅠㅠㅠ톰을 기다려준 피트는 생각이 깊고 착해ㅠㅠㅠ 귀걸이 걸어주는 씬은 헠헠 말모... 최고다ㅌㅌㅌㅌㅌ센세 사랑해
[Code: 75d8]
2023.03.02 00: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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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너무 좋아서 너무 재밌어서 이 창을 나갈수가 없다...
[Code: 3e3e]
2023.03.03 17: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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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애애애애앰!!!!!!!!미친!미친! 귀걸이 걸어주는게 이렇게 야할 수 있다니ㅠㅠㅠㅠ이건 진짜 섹스씬 아니 섹스보다 더 야하다ㅠㅠㅠㅠ톰 바보녀석 사온 귀걸이 국끓여먹었냐 했는데 우와 우와 숨도 못쉬고 읽었음ㅠㅠㅠㅠ저 터질듯한 섹텐 어쩌면좋나ㅠㅠㅠㅠ진짜 눈 앞에 저 장면이 시각 청각 후각적으로 펼쳐진듯 했음ㅠㅠㅠㅠ 숨소리와 피트의 약한 신음소리가 바로 귓가에 울리는줄ㄷㄷㄷㄷ그리고 저 대화...첫날밤 대화잖아요ㅠㅠㅠㅠ하 미친 너무 야해...ㅠㅠㅠㅠㅠ
[Code: 5bd0]
2023.03.03 17: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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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카잔스키 사랑 앞에서도 오만한 남자였네ㅎㅎㅎ피트도치열한 자신의 삶에서 모자란 부분, 남들도 다 누리고 갖고있는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다가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삶 전체보다 훨씬 큰 존재가 되었으니 그 두려움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된다ㅠㅠ피트가 없어진다면 글자그대로 우주 전체가 사라지는 게 될테니ㅠㅠㅠㅠ피트에게 자기 마음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고백하고 아마 태어난 이후 가장 많이 울었을듯ㅠㅠㅠㅠ그리고 그 눈물을 입술로 훔치면서 마시는 피트ㅠㅠㅠㅠ그 눈물은 사랑의 정수 그자체일텐데 그걸 마실수록 목이마르다니 그 사랑을 마셔도 마셔도 부족하다는 뜻일까요?ㅠㅠㅠㅠ
[Code: 5bd0]
2023.03.15 23: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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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 귀걸이씬 은유 머야머야 섹텐 미쳤어ㅌㅌㅌㅌㅌ 옥사나랑 알렉세이 대화씬 다음에 톰이 피트한테 고백하는 씬 나와서 좋다 부자가 얼마나 절절한 사랑을 하는중인지 보여줘서 안타깝고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어ㅠㅠㅠㅠ 닉도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고 구스랑 맵은 서로 아껴주는 모습이 진짜 피보다 진한 가족같아서 찡해.. 근데 피트 대화는 집어치우고 그짓만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거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곸ㅋㅋㅋㅋㅋㅋ
[Code: b809]
2023.04.02 05: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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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알렉세이 찐 어르신이구나 37살에 속을뻔했어 옥사나 앞에서는 속터놓는 아들이라니 이 모자 너무 보기좋아 귀걸이 껴주는게 뭐라고 이렇게 야할수가 있나...진짜 나까지 긴장되서 벌벌 떨리는 기분이였어
[Code: 7892]
2023.04.18 00: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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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너무 좋다ㅠㅠ
[Code: 4d29]
2023.04.26 15: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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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걸 잘해. 이 말을 닉에게 해도 괜찮을까? 잘 모르겠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치게 귀엽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는 정말 완벽하시다ㅜㅜㅜㅜ
[Code: f342]
2023.05.25 05:1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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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체인지가 이렇게 야할 일인가요 센세? 이게 다 센세의 개쩌는 필력 때문이다. 햐 센세 진짜 이건 문학이야
[Code: 1e41]
2023.08.09 12: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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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가..! 귀걸이가...!!! 미쳤어 너무 야해 센세...! 모자 대화랑 톰 절절한 고백, 매브의 혼란한 진심 다 너무 저은데 귀걸이가..!!!
[Code: 2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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