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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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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달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은 낡은 이정표가 우뚝 선 갈림길. 동쪽으로 호시 마을, 서쪽으로 라리테흐. 라리테흐 방향으로 일주일을 달리면 브래드쇼 일가가 가을부터 봄까지 머무는 에쿨 마음이 나타난다. 익숙한 지명에 피트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마음의 고향. 유년기의 추억이 서린 곳. 외롭고 서러웠던 기억도 뭉클함에 희석되어 어떤 반짝이는 표상이 되었다.

정오의 태양이 높게 떴다. 이고르 카잔스키와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행은 말에서 내렸다. 얼마 전에 비가 내려 근방에 풀들이 푸릇푸릇했다. 질척질척한 흙길 군데군데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어르신, 말들 배를 좀 채우고 오겠습니다.” 론이 나섰다. “너는?” 하고 피트가 묻자 론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으며, “가는 길에 대충 해결하면 된다.” 하고 말했다. 어쩐지 꽁무니를 빼는 모양새라 피트는 의아했다. 의심 어린 피트의 눈초리에 론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더니 기어이 사라졌다.

커다란 상수리나무 아래 톰은 자리를 깔았다. 알렉세이가 바닥이 차갑다며 피트가 앉을 자리는 융단을 한 장 더 깔라고 지시했다.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어 피트가 점심을 차리겠다고 나서자 알렉세이는 간단하게 때우면 된다고 앉아서 쉬라고 만류했다. 그가 워낙 완강해서 뜻을 꺾을 수 없었다.

피트는 무릎을 모으고 앉아 바쁘게 움직이는 남자들을 구경했다. 닉과 톰이 땔감으로 쓸 잔가지를 구해왔다. 불을 붙이는 건 알렉세이의 몫이었다. 그는 상아로 만든 고급스러운 통에서 부싯돌을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잿빛 연기가 하늘 높이 피어올랐다. 피트가 부싯돌 통에 관심을 보여서, 알렉세이는 물이 끓을 동안 가지고 놀라며 통을 피트에게 넘겼다. “망가트리지는 마라. 네 시어머니 유품이다.” 알렉세이는 신신당부했다.

세 사람은 마유를 섞은 차를 마셨지만, 알렉세이는 어김없이 끓인 맹물을 마셨다. 점심으로는 말고기 육포와 건포도 한 줌, 그리고 빵 한 덩이를 먹었다. 지난겨울 볕이 좋아서 육포가 제법 잘 말랐다. 고깃결이 부드럽게 찢어지고 씹을 때마다 진한 풍미가 녹아났다. 론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멀리 간 모양이었다.

알렉세이가 연주하는 돔브라 반주에 맞춰서 피트는 노래를 불렀다. 닉은 긴장을 풀지 않고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알렉세이는 대단한 스승이었다. 그라면 개에게도 노래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피트의 노래는 그럭저럭 들어줄 만했는데, 톰은 정말 듣기 좋다며 손뼉을 치면서 장단을 맞췄다.

돔브라 줄을 튕기던 알렉세이의 손이 멀리서 걸어오는 말을 발견하고 멈췄다. 그는 돔브라를 내려놓고 그늘 밖으로 나왔다. 세 사람도 뒤따라 나왔다. 톰과 닉은 피트를 자연스레 맨 뒤로 숨겼다.

유난히 몸집이 크고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는 흑마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말 위에 탄 사내는 오른쪽 뺨에 큰 흉터가 있었다. 그는 목이 어린애 허리처럼 굵직했고, 대춧빛 안색에 풍채가 대단히 좋았다. 떡 벌어진 어깨에 팔뚝이 굵어서 옷이 당장에라도 터질 듯했다.

“알료샤! 오랜만이구나.”

사내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가 이고르 카잔스키다. 상수리나무 앞에 말을 세운 이고르는 거대한 체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날렵한 동작으로 말에서 내렸다. 그의 발이 땅에 닿자 풀썩 먼지가 일었다. 알렉세이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했다.

“오래 격조했습니다, 형님.”
“내 귀여운 동생, 어서 이 형님 품에 안겨라! 형제의 우애를 나누자꾸나. 너를 오랜만에 봐서 기분이 정말 좋다.”

이고르가 껄껄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피트는 까치발을 하고 닉과 톰의 어깨 너머로 이고르를 훔쳐봤다. 이고르는 알렉세이와 키가 엇비슷했지만, 덩치는 족히 두 배는 됐다. 알렉세이도 건장한 체구의 소유자였으므로 어마어마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피트는 태어나서 이고르처럼 큰 사내는 처음 봤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사람이라기보다는 커다란 통나무 세 개를 묶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예.”

알렉세이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이고르와 포옹했다.

“여전히 뻣뻣하군. 좀 더 활기차게 받아다오.”

이고르는 섭섭한 눈치를 보이며 알렉세이를 더욱 힘껏 껴안았다. 알렉세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 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이고르는 수염이 덥수룩한 뺨을 알렉세이의 뺨과 비비고는 포옹을 풀었다.

“자, 어디 보자. 조카 놈 마음을 사로잡은 우리 질부는 어딨지?”

이고르가 잿빛 눈동자를 번뜩였다. 그는 손바닥을 비비며 입맛을 다셨다. 피트는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이고르는 커다랗고 두툼한 손으로 피트의 어깨를 덥석 잡더니 이리저리 흔들었다. 힘이 어찌나 좋은지 피트는 나뭇잎처럼 팔랑거렸다.

“톰, 너 이 자식 네 아비처럼 얼굴 무진장 밝히는구나! 그래, 삶에는 미인이 있어야 즐겁지. 미인은 나이가 들어도 곱거든. 익어가는 맛이 있어. 톰, 네가 인생을 안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이고르는 꼭 독한 술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켠 듯한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고르의 목청에 피트는 귀가 먹먹했다. 어안도 벙벙했다. 카잔스키 집안 사람들은 다 옥사나와 알렉세이, 그리고 톰처럼 말수가 적고 차가운 줄 알았는데 이고르는 불붙은 숯덩이 같은 사내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려요. 듀크 미첼과 나제쥬다 미첼의 아들 피트예요.”
“나는 티무르 카잔스키와 옥사나 카잔스키의 아들 이고르다. 이고리카라고 불러도 좋다. 어머니께서는 날 이고리카라고 부르시거든.”

이고르가 또다시 피트를 마구 흔들었다.

“불편해요.”

피트는 얼떨결에 정색하며 말했다. 이고르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다. 집안 어른이니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잘 보여야 한다는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사람이 넉살이 좋다 못해……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싶었다.

“이야, 이거 성격이 있구먼. 웬만해선 내 면전에서 입도 벙끗 못하는데. 알료샤, 너랑 톰이 고생 좀 했겠다. 자아, 어려운 것 없다. 따라 해봐라. 이—고—리—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지저귀렴.”
“불편해요.”

피트의 낯가림에도 이고르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굵직한 검지를 좌우로 휘저으며 자신의 애칭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이고리카. 어서.” 이고르가 다시 말했다. 피트는 이제야 왜 론이 말의 핑계를 대며 슬금슬금 자리를 떴는지 알게 되었다. 이고르가 부담스러워서 일찌감치 피신한 것이다. 

“불편해요.”

피트는 어깨를 움츠리며 눈을 흘겼다.

“새침데기구먼, 아주. 질부, 꿀에 절인 대추 좀 먹을래?”

이만하면 물러날 법도 한데 이고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말과 동시에 품에서 찌그러진 종이 꾸러미를 꺼냈다.

“네, 감사합니다.”

피트는 꾸러미를 받았다. 꿀이 묻어 찐득찐득해진 바람에 종이가 서로 달라붙어 열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꾸러미를 열자 향기로운 대추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트는 손에 꿀이 묻는 게 싫어서 꾸러미를 손바닥에 놓고 입술을 뾰족하게 오므려 대추 한 알을 입에 물었다. 보기에는 썩 별로였지만 맛은 좋았다.

“아유, 복스럽게 잘도 먹네. 우리 막내딸이랑 먹는 모습이 똑같네, 똑같아. 미인이 먹는 모습을 보니, 시름이 싹 달아나고 흥이 절로 난다. 내숭 떨지 말고 많이 먹어라. 그래야 애를 잘 낳는다.”

이고르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피트는 대추를 마저 먹으며 슬그머니 알렉세이와 톰의 표정을 살폈다. 그들도 이런 이고르의 괴팍한 활기에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피트가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자 알렉세이는 아예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고르는 피트가 꾸러미에 든 대추를 다 먹을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봤다. 절대로 이고리카라고 부르지 말아야지. 피트는 입술에 묻은 꿀을 핥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


해가 저물고 세 시간을 더 달렸지만, 마을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노숙하기로 했다. 이 근방은 길이 험하고 땅이 메말라서 마을이 띄엄띄엄 떨어졌다. 사람들도 그리 자주 왕래하지 않았다. 대부분 호시 마을에서 회포를 풀었다.

종일 이고르에게 시달린 론과 닉은 일찌감치 곯아떨어져 코를 쿨쿨 골았다. 먼 길을 달려왔으니 고될 만도 했지만, 보기 흉했다. 톰과 피트는 모닥불 앞에 앉아 불을 쬈다. 이고르와 알렉세이는 의논할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 눈을 부릅뜨면 작은 점처럼 까맣게 번진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트는 손바닥의 우묵한 곳을 문지르며 그 작은 점을 노려보았다. 움찔거리는 입술을 보아하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매브, 네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안다.”

톰은 착잡한 심정으로 피트에게 말을 걸었다. 피트는 톰의 목소리가 마치 저 멀리 굽이진 협곡에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들렸다. 하루 내내 이고르가 떠드는 소릴 들었더니 귀가 먹은 모양이었다. 피트는 답답해서 목을 비스듬히 꺾고 귀를 만지작거렸다.

“정말 백부님이 맞으시다. 일단 아버지와 외모는 닮았잖아. 백부님께서 풍채가 더 좋으시지만.”

톰이 변명을 늘어놓는 것처럼 말했다. 피트는 대답 대신에 코를 찡긋거렸다.

“백부님은 할아버지를 닮으셨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쾌활하신 분이셨거든.”

톰이 서둘러 덧붙였다.
 
“저런 건 쾌활한 게 아니야.”

피트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이고르의 표현을 따르자면 표독스럽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론이 쾌활한 거야.”

피트는 치를 떨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얄밉고 싫던 론이 이고르를 만나니 다르게 보였다. 밉살스러운 웃는 얼굴도 근사하게 느껴졌다. 너스레를 떠는 것도 유쾌했다. ‘론이 들었으면 기뻐했을 텐데.’ 톰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고르의 등장으로 피트가 론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누그러졌는데, 이 일을 마냥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건 아니야.”

‘저건’이라고. 피트의 과격한 표현에 톰은 턱을 매만졌다. 오죽 싫으면 이렇게까지 말하나 싶었다. 평소라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좋지 않다고 타일렀겠지만, 오늘은 눈감아 주기로 했다.

“네 할아버지는 대체 어떤 분이셨던 거야?”

피트가 따지듯이 물었다.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만……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를 늘 피곤해하셨어. 성가시다고. 할아버지는 정이 많으신 분이셨고, 그 표현이 남다르셨다. 그래, 왜 할머니께서 성가셔하셨는지 말하다 보니 알겠군.”

말하는 중에 톰은 깨달았다. 티무르는 아내 옥사나를 나의 샛별이라고 불렀다. 고고한 샛별을 숭배하는 노래도 종종 부르고는 했다. 술을 좋아해서 자주 취했는데, 취하면 옥사나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자식들에게도 허물이 없고 친구처럼 장난을 치기도 하는 남자였지만, 막내아들인 알렉세이와는 서먹했다. 알렉세이는 티무르의 장난을 잘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티무르 카잔스키도 말 위에 오르고 검을 들면 초원의 전사였다. 알렉세이는 아버지 티무르에게서 적을 무찌르는 법을 배웠다. 오늘날 타타흐 부족의 세력을 확장하고 악명을 이끈 것이 바로 티무르 카잔스키였다. 티무르는 전투 중에 칼에 찔린 상처가 감염되어 죽었다. 죽어가면서 그는 옥사나가 준 부적 덕분에 전사다운 최후를 맞이한다며 기뻐했다.

톰은 기억을 더듬었다. 티무르의 얼굴은 흐릿하게 떠올랐다. 깎아지른 것처럼 높은 광대뼈와 갈라진 아래턱, 풀피리를 부는 얇은 입술, 상처투성이 거친 손, 걸걸한 음성, 술에 취해 불콰하게 달아오른 낯빛. 잘 들어라, 톰. 너에게 대적하는 놈이 있다면 다신 일어설 수 없도록 짓밟아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감히 복수도 꿈꾸지 않는다. 티무르는 그렇게 말했다.

“너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돼?”

피트는 울상을 지었다. 그는 아득히 먼 미래가 벌써 걱정됐다. 이고르처럼 웃고 이고르처럼 말하는 톰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도저히 한 이불을 덮고 잘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럴 일 없다. 절대로.”

톰은 허둥지둥 피트의 손을 잡았다.

“믿어줘. 절대 저렇게 되지 않을 거다.”

톰은 어떻게든 피트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애를 썼다. 사실 그도 자신의 미래가 이고르처럼 될까 봐 경계했다. 카잔스키 집안의 남자들은 서른 줄에 접어들면 뼈대가 더 굵어지고 체격이 좋아진다. 보통은 알렉세이처럼 보기 좋게 건장해지지만, 간혹 이고르처럼 버거울 정도로 커지기도 했다.

“매버릭, 네가 싫다면 수염도 기르지 않을게.”
“그건 네 맘대로 해.”

피트는 삐뚜름하게 턱을 기울였다. 남자들은 결혼하고 어른으로 인정받으면 수염을 기른다. 닉도 브래들리를 얻고 콧수염을 길렀다. 풍성한 수염은 남자들의 자부심이었다. 물론 수염을 기르지 않는 남자들도 드물지는 않았다.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은 깔끔하게 면도하는 게 유행이었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젊은이들을 찾으면 열이면 아홉은 턱이 매끈했다. 늙은이들은 허옇게 센 수염을 쓰다듬으며 요즘 젊은것들은 멋을 모른다고 흉을 봤다.

도시라면 모를까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민들은 유행에 둔감했다. 더군다나 톰은 보수적인 남자였고, 자신의 아버지와 친척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이가 들면 수염을 기르는 것이 멋스럽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피트가 이고르에게 진저리를 치는 것을 보니,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됐다.

피트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알렉세이의 턱수염이 멋있어서 톰이 수염을 길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다. 움푹 패서 그늘진 뺨이 수염에 가려지면 아쉬울 것 같다. 얼룩처럼 뺨에 묻은 점이 가려져도 섭섭할 것 같다. 그래도 알렉세이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진데. 모르겠다. 피트는 생각을 관뒀다.

아, 그렇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피트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톰의 몸을 여기저기 더듬었다. 시장에 내다 팔 양을 고르는 것처럼 신중하게.

“왜 그래?”

톰이 팔을 들며 물었다. 피트는 톰의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쑥 집어넣어 그대로 긁어내리듯이 상체를 훑었다. 부러진 갈비뼈에 자극이 오자 톰은 작게 기침했다. 흐려지는 피트의 얼굴을 보고 그는 기침을 꾹 참았다.

“너는 너무 마른 것 같아.”

이상해, 이상해. 피트는 연신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응.”
“그런가. 내가 말랐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게다가 처음 듣는 소리다. 톰은 의아했다. 그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키가 큰 편이었고, 팔다리는 늘씬하니 길었고, 어깨가 넓고 몸은 탄탄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이고르가 문제였다. 이고르 앞에 서면 웬만한 남자들은 다 어린애가 되고 만다. 피트의 눈에 오늘따라 톰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였다.

피트는 미간을 좁혔다. 톰의 얼굴을 찰흙처럼 주물렀다. 선이 굵고 강인한 이고르의 얼굴과 비교하니, 톰의 얼굴이 상대적으로 선이 부드럽고 앳되게 보였다. 젖내도 나는 것 같았다. 자신보다 마냥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산뜻하고 청량한 얼굴이 싫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니야, 말랐어. 앞으로 좀 더 많이 먹어.”

피트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뜯적거리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그렇게 할게.”
“지금 더 먹고 자.”
“지금? 배가 부른데. 난 배가 부르면 잘 못 자.”
“그래도 더 먹어.”

말이 나온 김에. 피트는 톰의 뺨이 불룩해지도록 빵을 밀어 넣었다.

 
***


“존 브래드쇼는 쉽지 않은 사람이다. 드물게 올곧은 사람이라 재산을 못 불렸어. 그래도 자기 식구들 굶기지는 않았으니, 능력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약삭빠른 아일라우가 밑지는 장사를 할 리 없지. 다 이유가 있다.”

이고르는 허리끈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건너 건너 존 브래드쇼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지인의 말에 따르자면 존 브래드쇼는 뜻을 굽힐 줄 몰라서 그와 척진 사람이 꽤 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보기 드물게 정직하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고르의 지인도 존 브래드쇼를 후하게 평가했다.

“예, 톰을 단번에 내쳤으니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알렉세이는 비뚤어진 모자를 고쳐 썼다. 이고르는 왼쪽 어깨를 휙 돌렸다. 3년 전에 화살을 맞은 이후로 종종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부렸다. 확실히 감각이 오른쪽 어깨보다 둔했다. 궂은 날씨에는 시큰거리기도 했다.

이고르는 손바닥을 빠르게 비볐다. 그의 광대뼈가 위로 치솟았다. 이고르는 마찰로 뜨거워진 손바닥을 뺨에 갖다 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 바람에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자신은 없다만. 뭐, 해봐야 아는 거지.”
“톰이 경솔했다고 꾸짖지는 않으십니까?”
“네가 이미 애를 피떡으로 만들어놨더구먼. 나까지 손대면 정말 죽는다. 네 자식은 톰 하나뿐인데 그럴 수야 없지.”

알렉세이가 넌지시 묻자 이고르는 호탕하게 웃었다. 톰은 이고르가 가장 아끼는 조카였다. 그러니 알렉세이의 부탁에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 것이다. 정작 자기 자식들은 알아서 살라며 적당한 집안을 골라 혼사를 대충 치른 남자가 조카의 혼사에는 진중했다. 칼라쉬 집안을 추천한 것도 그였다.

“게다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럴 시간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지. 만회할 기회는 충분하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말이다, 알료샤. 대체 뭐가 네 마음을 움직였지?”

시종 가볍던 이고르의 눈빛이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잿빛 눈동자가 푸른 불꽃처럼 일렁거렸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집안의 격을 논하는 게 아니다. 어차피 어느 집안이건 우리 카잔스키만 못해.”

이고르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땅굴처럼 아득하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여러모로 칼라쉬 집안이 낫지 않나. 그 집 딸들은 인물이 반반하다. 애도 잘 낳지. 대개 다섯씩은 낳더구나. 하지만 남자 오메가는 아무래도 산도가 좁아서 애 낳다가 잘 죽어. 대체로 오래 살지 못하고. 네가 가장 경계하는 일 아니냐? 뭐어, 질부는 튼튼해 보인다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지.”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알렉세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만개했는데, 그중에 자신의 별은 보이지 않는다. 산 사람 사는 세상에 자신의 별은 없다. 죽어서야 찾을 수 있다.

“저도 타마라를 사랑해서 행복했으니까요.”
“그게 다냐?”
“예.”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 아우야.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

이고르는 알렉세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뜬금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아, 나는 미인이 좋다.”
“형님.”
“진심이다. 봐라, 가슴이 뛰고 있지 않으냐. 오랜만에 황홀한 것을 봤더니 피가 다 끓는다.”

이고르는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을 찬양했다. 아내의 양젖처럼 희고 부드러운 살결, 부풀어 오른 빵처럼 풍만한 몸매, 흑단 같은 머릿결……. 상상만 해도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가슴 벅찬 것.

“톰은 재미없는 놈이라 별 기대 안 했는데, 걔가 지금껏 벌인 일 중에 가장 흥미진진하다! 나는 톰이 데리고 온 애가 미인이라 아주 마음에 든다!” 
“…….”
“히야, 질부 같은 애가 앙탈을 부리면 애간장이 살살 녹아. 아까 저녁 먹다가 눈 흘기는 거 봤지? 끝내주더구나! 웃을 땐 귀여운데 입 다물고 있으면 서늘한 인상이야. 솔직히 타마라보다 질부가 더 예쁘다. 타마라도 미인이었지만, 질부는 내 평생 본 미인 중에 손에 꼽을 정도야.”

이고르는 번들거리는 얼굴을 들이밀며 팔꿈치로 알렉세이를 쿡쿡 찔렀다. 알렉세이는 정색했다.

“형님은 솔직해지지 마십시오. 매사 언행 신중하게 하십시오.”
“무게는 네가 다 잡는데 나까지 그래서 뭐 하게? 세상엔 나 같은 놈팡이도 있어야 균형이 맞아.”

이고르는 심드렁하게 말하며 귀를 후볐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말투. 그는 입을 쩍 벌리며 크게 하품했다. 알렉세이는 혀를 찼다. 이러다가는 존 브래드쇼가 혼담을 승낙하기도 전에 피트가 이고르한테 질려서 달아날지도 모르겠다. 

이런 남자와 한때 목숨을 걸고 대적했다니. 알렉세이는 허탈하기까지 했다. 이고르의 뺨에 난 흉터는 알렉세이가 만든 것이다. 형제는 일곱 살 터울이다. 알렉세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타타흐 부족을 이끄는 수장은 이고르였을 것이다. 이고르는 야심이 대단한 남자였고, 뒤늦게 태어나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동생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의 이고르는 지금과 달랐다. 칼날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남자였다. 거침없고 과격한 것이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살벌하기까지 했다. 후계자 자리를 두고 형제는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두 손을 수도 없이 피로 물들였다. 결과는 알렉세이의 승리였다. 이고르는 깨끗하게 승복하고, 알렉세이를 수장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알렉세이와 더없이 각별한 형제가 되었다. 이고르는 알렉세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전사다. 알렉세이는 이고르라면 등 뒤를 맡길 수 있었다.



26. 대면


집마다 이웃의 사정을 제 일처럼 훤히 아는 작은 시골 마을. 야트막한 언덕 위에 회반죽을 칠해 저물녘이면 모래 빛깔로 빛나는 이 층 짜리 단출한 집이 브래드쇼 집안의 보금자리다. 동향으로 낸 창문이 아침이면 햇살을 한껏 빨아들였다. 햇살에 잠긴 집은 유리알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브래드쇼 가족이 하루 중 가장 가슴 벅찬 순간.

 점심을 먹을 무렵이라 부엌 안이 분주했다. 안나는 이미 완성된 요리를 그릇에 덜었고, 캐롤은 맑게 끓인 스튜를 국자에 떠서 간을 봤다. 회향의 향기가 어우러져 절묘했다. ‘역시 훌륭해.’ 캐롤은 항상 자신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국자를 내려놓고 캐롤은 반쯤 열린 문에다 대고 외쳤다.

“브래디, 점심 준비 다 됐어. 할아버지 모셔와.”

마당에서 닭을 쫓으며 놀고 있을 브래들리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브래들리 브래드쇼!” 캐롤이 아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그래도 잠잠했다. 얘가 대체 어디 갔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캐롤은 물이 묻은 손을 앞치마에 훔쳐내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 한복판에 쪼그려 앉은 브래들리의 동그란 뒤통수가 보였다. 그 옆에 훌륭한 벼슬을 뽐내는 수탉 한 마리가 고개를 치켜들고 당당하게 거닐고 있었다.

“브래디? 뭐하니?”
“아빠 왔어요.”

브래들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아빠라니…….”

캐롤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브래들리의 어깨 너머로 익숙한 두 다리가 보였다. 살짝 휘어지고 호리호리한 긴 종아리.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옮겼다. 이윽고 자신을 응시하는 닉과 눈이 마주치자 캐롤은 입을 틀어막았다.

“……닉?”
“캐롤.”

닉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캐롤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닉이 얼른 달려가 그녀를 일으켰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캐롤은 떨리는 손으로 닉의 얼굴을 더듬었다.

“진짜 너야? 닉, 너 맞아?”
“그래, 나야.”

두 사람은 얼싸안았다. 그리고 서로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이 순간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캐롤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덜룩해졌다. 눈두덩이에 칠한 연푸른색 화장이 지워졌다. 대신에 닉의 입꼬리가 파랗게 물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브래들리가 닉의 다리에 매달렸다. 닉은 코를 훌쩍이며 오랜만에 어린 아들을 품에 안았다. 제법 묵직했다. 브래들리는 못 보던 사이에 훌쩍 자랐다. 그간의 부재가 이처럼 사무칠 줄이야. 아이가 자라는 모든 순간을 두 눈에 담고 싶었는데.

피트는 먼발치에 서서 가족의 재회를 지켜보았다. 차마 세 사람과 함께 이 기쁨을 함께할 면목이 없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세 사람은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절절하게 그리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브래들리에게 너무 미안했다. 피트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캐롤이 그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피트, 뭐해. 어서 이리 와!”

캐롤이 손짓했다. 피트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가까이 다가갔다. 캐롤은 가늘고 긴 팔로 피트의 몸을 휘감았다. 그녀는 피트의 얼굴과 어깨를 매만지며 세심하게 살폈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감탄했다.

“세상에. 너 키 컸어?”
“응…….”
“살도 좀 붙었네. 보기 좋다.”

그 말에 피트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럴 자격도 없는데.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닉의 품에 안긴 브래들리가 손을 뻗어 피트의 두건 장식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조그만 손으로 피트의 눈물을 닦았다.

“이제 우리 식구 다 모였네. 어쩐지 오늘 매브 네가 좋아하는 만두 빚고 싶더라.”

캐롤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뒤늦게 안나가 마당으로 나왔다. 무릎이 불편한 그녀는 거동이 느렸다. 안나는 찌뿌듯한 허리를 펴며 입을 열었다.

“뭐가 이리 소란스러워? 누가 왔니?”
“어머니, 저희 왔어요.”

닉이 말했다. 안나의 눈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아아!” 안나는 오열하며 무릎이 아픈 줄도 모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얘들아. 나는, 나는 너희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안나는 쉰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는 닉의 어깨에 이마를 마구 문질렀다. 도무지 이 기적이 믿기지 않아 닉의 어깨를 때리기도 했다. 손바닥에 닿는 이 촉감은 틀림없는 제 아들이었다. 눈을 감아도 알 수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네 아버지 모셔오자.”

안나가 닉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닉이 쭈뼛거리며 안나를 말렸다.

“아버지는 당장 못 오세요.”
“왜?”
“그게…….”

닉의 눈썹이 난처함으로 축 늘어졌다. 그는 재차 입맛을 다셨다.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말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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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매브 아이스맨 매버릭
2023.03.08 18: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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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오애오애오애오애오애왜왜왜왜 닉 아버지어디가셨는데!!!!!!설마 피트혼담찾으러 떠나신거야!?!?!!?!?!?!!??!!??!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드디어가족신봉에 무사히 카잔스키가족도 왔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c3f]
2023.03.08 18: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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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는 사랑이야 ㅌㅌㅌㅌㅌㅌㅌㅌ 이고르에게 질려서 삼연속 불편해요를 외친 매브는 톰이 나이들면 이고르처럼 될까봐 벌써부터 불안해하네 ㅋㅋㅋㅋㅋ 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도 재밌고 ㅋㅋ 하지만 카잔스키가의 청혼을 올곧은 존브래드쇼가 받아들이고 톰과 피트의 결혼을 허락하게 만드는데에 이고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ㅋㅋㅋ
[Code: d353]
2023.03.08 18: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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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브래드쇼 가족이 재회했네 너무 좋다 ㅠㅠㅠㅠㅠㅠㅠ 그런데 존브래드쇼는 왜 못오시는거야 벌써 이고르에게 잡혀서 못오시는건가? ㅋㅋㅋㅋ ㅈㄴ 재밌다 센세는 천재다 ㅌㅌㅌㅌㅌㅌ
[Code: d353]
2023.03.08 19: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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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센세 너무 좋아 사랑해
[Code: 6a1f]
2023.03.09 01: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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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문학이야 ㅠㅠㅠㅠ 센세 글 읽을때마다 너무 행복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c9b0]
2023.03.09 23: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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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브래드쇼씨도 점잖으신 분 같은데 이고르랑 대면했을때 반응 궁금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8094]
2023.03.12 12: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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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르랑 알료샤 같은 배에서 나온거 맞냐곸ㅋㅋㅋㅋㅋㅋㅋ
글만 읽었을 뿐인데 붕키의 귀에서 피가 나와요 센세 ㅋㅋㅋㅋㅋㅋㅋ
[Code: 6314]
2023.04.02 07: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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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이고리카리고 안부를거랰ㅋㅋㅋㅋㅋㅋㅋㅋㅋ불편해요 4연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알렉세이가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니 ㄷㄷㄷ
[Code: e75e]
2023.04.18 13: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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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개존잼ㄷㄷㄷㄷㄷ캐릭터 설정도 미쳤다 이 센세 진심 다 잘하네
[Code: 4753]
2023.05.25 06:1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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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리카 맘에 들어!!!ㅋㅋㅋㅋㅋㅋ 센세 글 속 인물들은 다 살아 숨쉰다ㅠㅠ
[Code: 96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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