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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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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달


30. 신록 아래에서


일주일이 지났다. 봄이 떠난 자리에 여름이 찾아왔다. 브래드쇼 집안이 마을을 떠나 가축을 칠 야영지로 떠날 시기가 왔고, 카잔스키 집안은 그들의 영지로 돌아갈 때가 왔다. 알렉세이는 아들의 혼담이 성사되었음을 축하하는 뜻으로 존 브래드쇼에게 자신의 단검을 선물했다. 존은 알렉세이에게 말방울을 선물했다. 듀크 미첼의 말방울이었다. 알렉세이는 그 의미를 알았다. 그는 가슴걸이에 말방울을 달았다. 알렉세이는 마구를 치장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라며 꺼리던 사람이었다.

동녘이 대지를 물들이고 푸르른 신록이 잔물결처럼 나부끼는 아침, 두 집안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작별했다. 캐롤은 피트를 부둥켜안고 놓질 못했다. 피트의 어깨가 그녀의 눈물로 흠뻑 젖었다. 존은 흐느끼는 캐롤과 피트를 껴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피트, 언제나 우리가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떨어져 지내도 우린 가족이야.”
“네, 아저씨. 명심할게요.”

타타흐 부족은 순환하는 계절처럼 푸른 땅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 언제나 이별을 준비하고 산다. 거주지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오늘 헤어진다면 언제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움이 목이 말라 길을 나서도, 당장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항상 어른을 공경하고 잘 따라야 한다. 이제 너도 어른이니 몸가짐을 단정히 하렴.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 알았지? 남편 거스르지도 마. 네 기분이 나쁘다고 남편을 때리면 안 돼. 대화로 해결해, 꼭.”

안나가 피트의 뺨을 매만지며 신신당부했다. 피트는 멋쩍게 웃었다. 빈말로도 제멋대로 굴지 않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톰을 때리지는 않았지만, 이미 칼로 찌른 적이 있다. 앞으로도 톰을 찌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톰은 자상한 남편이지만, 가끔 얄미울 때가 있다. 그것도 엄청. 또, 만약에 톰이 바람을 피운다면 그 상대와 톰을 꽁꽁 묶은 다음 돌까지 매달아 강에다 던져버릴 것이다. 아니면 산 채로 불을 지르거나. 상상만 했는데 벌써 화가 났다.

“나랑 약속해, 얼른. 아무리 화가 나도 남편을 때리면 안 돼.”

안나는 피트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매섭게 다그쳤다.

“……약속할게요.”

피트는 마지못해 우물쭈물 대답했다. 톰은 괜스레 욱신거리는 어깨를 매만졌다.

“피트 또 어디 가요?”

브래들리가 고개를 빼꼼 들었다. 아이는 아직 이별이 무엇인지 몰랐다. 캐롤은 브래들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코를 훌쩍였다.

“시집가. 피트한테 작별 인사해, 브래들리. 이제 피트는 다른 곳에서 살게 될 거야. 매일 볼 수 없어. 보고 싶어도 꾹 참아야 해.”
“나한테 시집오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 피트는 내 신부다. 네게 시집갈 일 없다.”

톰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애를 상대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피트가 눈을 가늘게 흘기며 톰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린애라도 알 건 알아야 한다.”

톰이 눈썹을 치켜뜨며 진지하게 말했다. 피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부라리자, 안나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남편을 때리면 안 돼, 피트. 그러면 소박맞아.” 피트는 마지못해 꾹 참았다.

“조만간 또 볼 거니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라.”
“론.”

론이 불쑥 말을 던지자 톰이 그를 부르며 눈치를 줬다.

“아, 그렇지. 입조심 할게.”

론은 자신의 입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돌아가는 대로 결혼식을 열 준비를 한다는 건 피트에게 비밀이었다. 톰은 피트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떠들썩한 잔치를 열진 못하더라도, 양가 식구들과 친인척들을 초대해 피트를 위한 특별한 날을 만들어 줄 계획이었다.

“잘 지낼게요. 아저씨랑 아주머니 부끄럽지 않게 살게요.”

피트는 안나의 뺨에 입을 맞췄다. 안나는 울음이 북받쳐 입을 틀어막았다. 덩달아 캐롤도 크게 울었다. 닉은 입을 꾹 다물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의 얼굴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시뻘겠다. 더는 참지 못하고 피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이마를 맞댔다. 이제 정말 이별이다. 피트가 일으키는 떠들썩한 소음과 구름처럼 일어나는 먼지도 안녕이다. 소란이 떠나고 호수처럼 잔잔한 일상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벌써 피트의 웃음 소리가 그리웠다.

“새처럼 자유롭게, 바람처럼 빠르게. 알지?”

닉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피트는 그를 얼싸안고 오열했다. 들썩이는 그의 어깨를 매만지며 닉은 피트의 앞날을 축복했다. 부모와 피트가 소리 내어 엉엉 울자 그 슬픔에 휩쓸린 브래들리도 울음을 터뜨렸다. 존은 목놓아 우는 손자를 업었다. 

“우리 마누라도 나한테 시집올 때 저랬단 말이지……. 사샤! 보고 싶구먼. 돌아가거든 뜨겁게 안아줘야겠어.”

가만히 지켜보던 이고르도 드물게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알기로 형수님은 형님이 싫어서 결혼 안 하겠다고, 차라리 혼자 살 거라며 예단에 불을 지르지 않았습니까?”

알렉세이가 차갑게 물었다. 실제로 이고르의 아내 알렉산드리아는 그와 결혼하기 싫다며 예단을 불태웠고, 불태운 만큼 예단을 다시 만드느라 결혼이 일 년이나 미뤄졌다. 워낙 악명이 높았던 이고르였으므로 알렉산드리아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할 만도 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이좋은 부부였다.

“그야 뭘 모를 때니 그럴 수도 있지! 지금은 나밖에 모른다고! 알료샤, 너는 왜 그런 얘길 꺼내고 그러느냐? 사돈 앞에서…….”

이고르가 헛기침하며 말을 아꼈다. 그도 사람인지라 민망한 모양이었다. 얼음처럼 차가웠던 알렉산드리아의 마음을 녹이느라 숱하도록 꿇었던 무릎이 절로 시렸다. 그때는 젊어서 그 고생을 했지, 지금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존은 울음을 그친 브래들리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알렉세이의 앞에 섰다. 존은 알렉세이 못지않게 키가 컸지만, 상대적으로 호리호리한 체격이라 그와 대비되어 보였다. 그러나 존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사돈. 내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아입니다. 부디 아껴주시오.”
“피트는 이제 우리 식구이니, 병이 들면 의원을 부르고 겨울에는 춥지 않게 잘 보살피겠소.”

존과 알렉세이는 짧게 포옹했다. 두 팔을 풀며 존은 알렉세이의 옆에 선 톰을 매서운 눈길로 노려보았다.

“자네는.”

차가운 분노가 서린 음성이었다. 푸른 눈동자는 호수처럼 맑았다.

“자네는 과오를 평생 잊지 말고 살게.”
“명심하겠습니다.”

톰은 겸허하게 말했다. 존은 말없이 톰의 어깨를 힘껏 쥐었다. 그리고 무언의 당부를 남겼다. 경고이기도 했다. 톰이 일평생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었다.

알렉세이가 먼저 말 위에 오르고 뒤따라 이고르와 론이 말 위에 올랐다. 피트는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이만 닉의 손을 놓아야 하는데, 기나긴 헤어짐이 기다리고 있으니 차마 놓을 수 없었다. 결국, 닉이 피트의 손을 먼저 놓았다. 피트는 어린애처럼 닉에게 매달렸다.

“왜, 왜 내 손 놓는 거야? 그러지 마, 나 버리지 마.”
“버리는 거 아니야. 우린 다시 만날 거야. 왜 영원히 헤어질 것처럼 그래?”
“정말이지?”
“그럼. 이만 가. 늦겠다.”
“구스, 정말 나 버리는 거 아니지?”
“아니야.”

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트는 애처롭게 훌쩍이면서 말 위에 올랐다. 알렉세이가 고삐를 잡아당기고 말을 몰았다. 말발굽 소리가 힘찼다. 피트는 미련이 남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보내주어야 할 때이다. 닉과 안나가 먼저 자리를 떴다. 피트에게는 이제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캐롤이 브래들리의 손을 잡고 닉과 안나의 뒤를 따랐다. 닉은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피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두 팔에 남은 피트의 체온이 식을 때까지. 마지막으로 귓가에 맴도는 피트의 목소리가 아득해질 때까지.

 
***


해가 높이 떴다. 여름의 그림자는 칼날 같았다. 바자르의 열기로 땅이 지글지글 끓었다. 헨조로는 규모가 그리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상시 바자르가 열리는 곳으로 그 덕분에 연일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로 붐볐다. 일행은 오늘 하루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부족 사람들이 부탁한 물건을 사고, 모처럼 편안한 잠자리에서 쌓인 여독을 풀 작정이었다. 

일행은 입성하자마자 하룻밤 지낼 여관부터 찾아 짐을 풀었다. 알렉세이와 이고르가 헨조로에 들렀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관 골목까지 줄지어 섰다. 모래처럼 싯누런 건물 사이로 사람들이 쓴 알록달록한 모자가 둥둥 떠다녔다. 덕분에 알렉세이와 이고르는 모처럼 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톰은 피트를 데리고 저잣거리로 나왔다. 피트에게 새 장신구를 사 줄 생각이었다. 톰은 피트가 자신 때문에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장신구를 내다 판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와 존이 혼담을 진행할 동안, 사방으로 장신구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되찾을 수 없었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되사서 피트에게 돌려주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톰은 결심했다. 비록 부모님의 유품을 대신할 순 없으나, 사는 내내 피트의 목과 손목이 허전하지 않도록 채워줄 것이다.

신이 나서 앞장서던 피트가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푹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톰은 밀려드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 가까스로 피트를 찾아냈다. 그는 피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매버릭, 절대 내 손을 놓지 마라.”
“응…….”

피트는 얼굴을 붉히며 깍지를 꼈다. 자신을 바라보는 톰의 눈동자가 따뜻해서,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설탕처럼 달아서 목덜미가 간질간질했다. 이대로 톰을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가 맘껏 입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안나가 충동적으로 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이 떠올라 참아야만 했다. 언제야 해가 저물까. 피트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해가 지고 단둘이 남으면 그때는 제멋대로 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장신구를 파는 가게 앞에 다다랐다. 가게 앞에 놓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게으르게 부채질을 하고 있던 주인은 손님의 등장에 벌떡 일어나 손바닥을 비볐다. 주인은 톰이 허리에 찬 검의 값어치를 알아보고, 두 사람을 가게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뜨내기들에겐 내보이지 않는 값비싼 장신구를 하나씩 꺼내 보이며 마구 부추겼다.

피트는 화려한 장신구에 입이 떡 벌어졌다. 바자르에는 닉과도 종종 오고는 했지만, 생필품을 사기에도 빠듯해서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좌판에 아무렇게나 걸어둔 싸구려가 아니라 은밀히 숨겨놓은 비싼 물건이라니.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고, 만져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톰은 장신구를 하나씩 들어보며 피트의 몸에 갖다 댔다. 전부 잘 어울렸다. 그래서 전부 사려고 하는데 피트가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이렇게 많은 걸 어떻게 다 하고 다녀.”
“매일매일 바꿔서 차고 다녀라. 아침에는 이 귀걸이를 하고, 점심에는 이걸, 저녁에는…….”
“안 돼. 너무 많아. 하나만 사줘.”
“전부 너한테 어울려서 하나만 못 고르겠다.”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주인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야말로 대어를 낚았다. 당분간 밥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저기 헤프게 써도 좋을 것이다. “그럼요. 아주 손님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 같습니다. 보세요, 주인님! 하고 외치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고 주인이 은근히 톰을 부추겼다. 그는 일부러 비싼 장신구를 두 사람 앞에 슬쩍 밀어놓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피트가 고른 귀걸이는 가장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었다. 어떤 게 좋은 것인지 잘 모르니, 대충 봐서 가장 값이 쌀 것 같은 물건을 고른 것이다.

“그럼 내가 고를게. 이거 사줘.”
“정말 이걸로 되겠어?”

톰이 되물었다. 그는 피트가 일부러 가장 소박한 것을 골랐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응, 이거 하나만. 매일매일 끼고 다닐게. 잘 때도 끼고 잘게.”
“이것도 사 줄게. 너한테 어울린다.”

톰은 옆에 놓인 다른 귀걸이를 들었다. 가슴 졸이고 있던 주인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좋은 검을 지닌 것을 보니, 부잣집 도련님이구나 짐작했는데 과연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 비싼 물건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이거까지 사면…… 설탕이랑 향신료 살 돈 모자라지 않아?”

피트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머뭇거렸다. 톰은 어깨를 펴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를 뭐로 보고. 여기 있는 거 전부 사도 설탕이랑 향신료 살 돈은 남는다. 괜한 걱정하지 마라.”
“정말?”
“네가 몸에 걸치는 거, 네 입에 들어가는 건 아끼지 않을 거다. 너는 돈 걱정은 하지 마.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말해라.”
“그럼, 있잖아. 그럼…….”

피트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망설였다.

“응. 괜찮으니 어서 말해.”

이러다 피트가 다 필요 없다고 그냥 가자고 할까 봐, 톰은 얼른 피트의 손을 낚아채며 재촉했다. 그래도 피트는 좀처럼 말하지 못하고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괜찮대도.” 톰이 다정한 어조로 어르고 달래자 그제야 피트는 입을 열었다.

“빗이 갖고 싶어. 빗살이 촘촘한 걸로. 원래 쓰던 빗이 너무 낡아서……. 하나만 사 줘. 아껴 쓸게.”
“알았다. 대신에.”
“응.”
“이제 네 머리카락은 나 말고 다른 남자가 봐선 안 된다. 당연히 빗겨주는 것도 안 돼. 구스네 아들은 어려서 괜찮다는 말도 하지 마라. 어려도 남자는 남자다.”

톰은 그새 느슨해진 피트의 두건을 단단히 여몄다. 두건 아래 늘어트린 탐스러운 머리채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또, 일전에 닉이 톰의 머리를 빗겨주던 모습이 떠올라 부아가 치밀었다. 닉과 피트가 워낙 허물없는 사이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지라도, 껄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버님도 안 돼? 가족인데.”
“안 돼.”
“알았어.”

피트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너보다 아버님 손길이 더 부드러워. 넌 가끔 너무 아프게 만져.’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때때로 자신을 어루만지는 톰의 손길이 아팠다. 톰이 너무 세게 잡아서 멍이 든 적도 있었다. 톰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럼 론은? 걔도 가족 비슷한 거 아냐?”

다시 피트가 조심스레 물었다.

“당연히 안 된다.”

톰은 대번에 딱 잘라 말했다.

“으응…….”

피트는 순순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두 사람의 화창한 행복에 가려져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론은 기가 막혀서 끼어들었다.

“너흰 내가 보이지도 않아? 사람 옆에 두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해?”

톰과 피트는 깜짝 놀랐다. 론도 함께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에그머니나.” 가게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서 펄떡거리는 대어에 눈이 멀어 그도 론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하하.” 피트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카락을 비비 꼬았다.

“가족이면 가족이지, 가족 비슷한 거? 그건 또 뭐야? 그리고 괜한 걱정하지 마라. 매버릭, 네 머리카락 볼 바에는 내 눈을 찌를게. 아이스 손에 죽는 것보다야 그게 낫겠지.”

론이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말했다. 톰은 헛기침만 했다. “어휴.” 론은 분이 풀리지 않아서 씩씩거렸다. 톰과 피트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그저 웃기만 했다. 겨우 분을 가라앉힌 론은 목걸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오팔로 만든 목걸이였다. 순백의 바탕이 무지개가 뜬 것처럼 광채가 화려했다.

“이건 내가 사 줄게. 너는 이목구비가 화려해서 이 정도는 차고 다녀야 티가 나. 소박한 거 걸치면 네 얼굴에 묻혀서 잘 안 보일 거다.”

론은 피트의 어깨에 목걸이를 툭 놓았다. 피트가 워낙 활발하다 보니, 무르고 다루기 까다로운 오팔 목걸이를 얌전히 차고 다닐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을 내고 싶었다. 피트는 주르륵 흘러내리는 목걸이를 얼른 받았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결혼 선물이야. 사양하지 말고 받아. 주인장, 이것부터 계산해 주십시오.”

론은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주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론이 건넨 금화를 냉큼 받았다.

“고마워…….”

피트는 얼떨떨했다.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될까? 자꾸만 걱정이 들었다. 어쩌면 꿈을 꾸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눈을 뜨면 차갑게 식은 어머니의 텅 빈 눈동자가 자신을 마주하고, 어디선가 흉흉하게 늑대 우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어쩌면 자신도 그때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는데, 저승에 도착하기 전 행복한 꿈을 꾸는 건지도 몰랐다.

“어때, 아이스. 잘 어울리지?”

론이 피트에게 직접 목걸이를 걸어주며 톰에게 물었다. 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얘는 행실만 요란한 게 아니라 얼굴도 시끄럽다니까. 계속 떠드는 것 같잖아.” 론이 덧붙여 말했다.

“저기, 있잖아.”

피트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왜?” 하고 말하며 론이 고개를 숙였다.

“내, 내가, 저, 정말…… 예쁘게 생겼어?”
“어?”
“그런 소리, 너희 부족 사람들한테 처음 들어 봤어……. 다들 나만 보면 피하니까, 아니면 말썽꾸러기라고 뭐라 하고……. 그래서 나는 내가 못난 줄 알았는데…….”
“넌 예뻐.”

론은 망설임 없이 대답하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보다 재밌어. 같이 있으면 즐겁다. 때때로 너 하는 짓 보면 속이 뒤집힐 것 같긴 한데, 그것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지.”

론이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피트는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울상 짓지 말고 웃어. 톰은 네 웃는 얼굴에 반해서 널 데려온 거야.”
“있잖아, 사실 너 냄새 안 나.”

피트는 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땐 네가 싫어서 그런 말 했던 거야.”
“이고르 어르신 뵙고 나니까 내가 달리 보이지? 이만하면 나도 괜찮은 사내 같지?”

론이 으스댔다. 피트는 무어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론의 말대로, 이고르를 만나고 나니 그가 달리 보였다. 하지만 론이 으스대는 꼴은 보기 싫었다. 그가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그래도 잘난 체하는 건 기분 나빴다. 그래서 론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다. 론은 정강이를 부여잡고 소리를 꽥 질렀다.

“야! 피트, 인마!”
“아주머니가 남편을 때리지 말랬지, 남편 친구 때리지 말란 말씀은 안 하셨어.”

피트는 그렇게 말하며 슬그머니 톰의 뒤에 몸을 숨겼다. ‘저, 저 망아지 같은 놈.’ 론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론이 눈을 부릅뜨며 콧김을 뿜어대자 톰은 등을 돌려 피트를 가렸다. 론은 그런 톰이 괘씸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31. 납치


해가 저물고 바람이 쌀쌀해졌다. 알렉세이와 이고르를 찾는 사람들은 끊이질 않았다. 톰의 결혼 소식에 축하한다며 그를 찾는 사람도 있어서, 톰은 엉겁결에 끌려가고 말았다. 홀로 방에 남은 피트는 낮에 톰이 사 준 장신구와 빗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심심했다. 어두워지기만 하면, 톰의 배를 만지려고 했는데. 배를 문지르다 보면 톰이 딸꾹질할 때가 있었다. 손이 차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자꾸 만지고 싶었다. 그보다 모처럼 기분 좋은 걸 하게 될 줄 알았더니……. 눈치 없이 찾아온 손님들이 원망스러웠다.

과자도 계속 먹다 보니 입에 물렸다. 피트는 손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입가를 문질렀다. 그리고 장신구를 자물쇠가 달린 상자에 넣은 다음 짐을 쌓아둔 곳에 슬쩍 숨겼다. ‘좀이 쑤셔서 더는 못 있겠네.’ 피트는 두건을 푹 눌러쓰고 방을 나섰다.

피트는 사람들 눈을 피해 뒷문으로 여관을 빠져나갔다. 밤공기가 상쾌했다.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그윽하게 풍겼다. 코가 얼얼한 술 냄새도 났다. 벌써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취객이 있었다. 피트는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포목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낮에 저잣거리에서 눈여겨본 가죽이 있었다. 매를 조련할 때 쓰는 장갑을 만들면 괜찮을 것 같았다. 톰은 매사냥을 좋아하니 만들어 주면 분명 기뻐할 것이다.

“아이구! 조심 좀 하쇼!”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어떤 남자가 거칠게 윽박질렀다. 피트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너저분한 길 위에 체구가 작고 고목처럼 비쩍 마른 노파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옆에 짐이 잔뜩 든 보따리가 함께 나뒹굴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노파는 물기가 바싹 말라 쪼글쪼글한 손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연신 사과했다. 넘어지며 떨어트린 지팡이를 찾은 노파는 그것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거머쥐었다.

“쯧, 할망구가 몸도 성치 않은데 왜 이런 곳에 나와서는.”
“미안해요, 정말.”
“걸리적거리지 말고 썩 꺼지쇼! 나 원 참, 재수가 없으려니.”

남자가 우악스럽게 다그쳤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웅성거리기만 할 뿐, 누구 하나 나서서 노파를 돕지 않았다. 피트는 그런 사람들을 밀치고 얼른 노파에게 뛰어갔다. 노파는 혼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끙끙 신음했다. 피트는 노파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볼 일 마저 봐요.”

노파는 자신 때문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진 것이 민망한지 쩔쩔매며 말했다. 피트는 떨어진 보따리도 챙겼다.

“도와드릴게요.”
“정말 괜찮아.”
“그런 말씀 마세요. 혼자 나오신 거예요?”

피트는 노파를 찬찬히 살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하지만 노인들은 작은 상처도 덧나서 크게 앓고는 하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아니, 우리 아들이랑 같이 왔지요. 아들이랑 버드나무 아래에서 만나기로 했어. 그 애가 곧 데리러 올 거예요. 아들은 효자야. 버드나무를 좋아해.”
“버드나무요?”

피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횡설수설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노파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인 것 같았다. 노파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흐리멍덩한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응, 저기 주점 뒤편에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
“제가 거기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뭘요.”

피트는 노파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노파를 그녀의 아들과 만나기로 약속했다는 버드나무까지 데려다주고, 함께 기다릴 생각이었다. 만약에 아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밤이 늦었으니 노파를 데리고 여관으로 돌아가서 톰과 어떻게 할지 의논하면 될 것이다. 그 사이에 포목점이 문을 닫는다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좋은 가죽은 언제든 살 수 있고, 톰에게 장갑을 만들어 줄 기회는 앞으로도 많이 남았다.

노파가 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인적이 드문 곳에 다다랐다. 오래전에 문을 닫은 가게가 즐비한 곳이었는데, 과거의 영광은 퇴색하고 대들보도 무너져내려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노파가 말한 주점도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기울어진 간판이 곧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다행히 버드나무는 그대로였다. 거친 풍랑에도 고아함을 잃지 않고 우뚝 서 있었다.

꽤 오랫동안 걸었으므로 노파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피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낡은 의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피트는 버드나무 아래에 의자를 놓고 노파를 앉혔다. 노파는 자신의 무릎을 매만지며 인사했다.

“정말 고마워요.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천만에요. 아드님이 곧 오신댔죠?”
“응, 그래요.”
“그럼 아드님 오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혼자 기다리시면 적적하잖아요.”

피트는 의자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름이지만 밤은 쌀쌀했다. 노파는 추위를 타는지 오들오들 떨었다. ‘톰이 머리카락 내놓고 다니지 말랬는데…….’ 피트는 잠깐 망설이다가 두건을 벗어 노파의 무릎에 덮어주었다. 사정을 잘 설명하면, 톰도 이해해주려니 했다. 그만한 배포는 있는 남자니까.

“할머니, 이것 좀 드세요.”

피트는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 노파에게 나눠주었다. 노파는 뼈만 남은 앙상한 손으로 과자를 받았다. 그녀는 과자를 먹으며 피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피트는 노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멀리서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이 났다.

“저기 오는구먼. 우리 아들이야.”

노파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이 여러 명인가? 피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파가 가리킨 방향에 덩치가 크고 걸음걸이가 성마른 사내 여럿이 걸어오고 있었다. 곧 그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얼굴이 네모나고 머리카락이 새카만 남자가 수선을 떨며 다가왔다.

“어머님, 한참 찾았습니다. 왜 우물가에 계시지 않으셨어요?”
“으응? 버드나무 아래에서 만나기로 하지 않았니?”
“우물가요, 우물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우물가에서 꼼짝도 하지 마시라고요.”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모쪼록 잘해주셨어요.”

남자가 씩 웃었다.

“그래?”
“예, 약속한 대금을 마저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돈이 든 주머니를 노파에게 건넸다. “고마워.” 노파는 얼른 주머니를 열어 안에 든 돈을 확인했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피트는 영문을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흐리멍덩한 노파의 얼굴이 번뜩였다. 그때, 다갈색 머리카락의 또 다른 남자가 누군가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말했다.

“이놈이 분명하지?”
“예, 예. 맞아요.”
“똑바로 봐라. 확실해? 아니라면 손목 날아갈 각오는 해라.”
“남자 오메가가 어디 흔합니까?”

피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멱살을 채인 남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목소리도 익숙했다.

“……세다르? 네가 왜 여기 있어?”
“보셨죠? 절 알아보잖아요. 얘가 피트 미첼입니다.”

세다르는 같은 마을 사람이었다. 그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 마을 사람 중, 누구와 사이가 좋았겠냐만 세다르는 예전부터 유독 피트를 못살게 굴었다. 피트는 세다르가 자신을 볼 때마다 욕을 하고 발을 걸어도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가 세다르가 죽은 부모님을 모욕하자 더는 참지 못하고 흠씬 두들겨 팼다. 존은 세다르의 부모에게 허리를 숙여 가며 사과했다. 피트는 세다르가 먼저 자신을 괴롭혔다고 말했지만, 마을 사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존은 피트에게 네가 잘못한 건 없다고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자신 때문에 존이 그런 일을 당한 게 너무 미안해서 피트는 그날 이후로 마을 아이들이 자신을 아무리 괴롭혀도 반응하지 않고 참았다. 돌을 던지면 던지는 대로 맞고, 침을 뱉으면 그냥 자리를 피했다. 어느 정도 자란 이후에는 아이들도 머리가 굵어져서 대놓고 괴롭히는 일은 없게 됐다. 대신에 피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다시는 만날 일 없을 줄 알았는데……. 피트는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세다르까지 포함해서 남자는 모두 여섯. 게다가 단단히 무장했다.

“어떻게 된 거야, 세다르. 이 사람들은 누구야? 할머니, 아드님이 저분 맞으세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이 갔다. 그래도 믿고 싶었다. 비록 사이는 나빴으나, 세다르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그리고 사람인 이상, 아무리 자신이 싫어도 사람인 이상……. 피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계산을 마친 노파는 피트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를 챙겨 남자들 뒤로 휙 가버렸다.

“날 너무 원망하지는 마라. 너 어차피 몸도 다 더럽혀졌고, 다른 데 시집가기는 글렀잖아. 브래드쇼 아저씨가 유난을 떨어서 그렇지, 원래 남자 오메가들 팔자는 사나워. 아일라우만 해도 네 분수에 맞지 않는 결혼이었어. 그냥 이게 네 운명이려니 받아들여.”

세다르는 피트의 시선을 피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허탈했다. 피트는 쓸쓸하게 웃었다.

“세다르. 너는 화낼 가치도 없는 비겁한 놈이야.”

피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세다르를 응시했다. 신록처럼 푸른 눈동자가 차가웠다. 매끈한 얼굴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겁에 질린 세다르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피트는 더는 세다르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는 머지않아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제 손으로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반드시.

“너흰 누구지? 목적이 뭐야?”

피트는 남자들을 향해 싸늘하게 물었다. 검은 머리의 남자가 픽 웃었다.

“그렇게 노려보면 뭘 어쩔 건데? 맨몸으로 우리한테 덤비려고?”
“아서라, 너 혼자서 다섯 명을 어떻게 상대한다고. 무기가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야. 일 번거롭게 하지 말자. 얌전히 따라와라. 그럼 험하게 다루진 않으마.”

다갈색 머리의 남자가 껄렁한 자세로 서서 손을 까딱거렸다. 그가 자신을 얕잡아본 것에 피트는 자존심이 상했다. 안다. 무기를 든 사내 다섯을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것을. 달아난다고 하더라도 곧 붙잡힐 것이다. 무모한 짓이라는 건 알지만, 적어도 저 거들먹거리는 남자의 콧대는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었다. 피트는 쏜살같이 남자에게 달려들어 그를 쓰러트렸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을 주저없이 갈겼다.

“어윽!”

쓰러진 남자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피트는 인정사정 가리지 않고 남자의 얼굴을 연달아 후려쳤다. 남자의 비뚤비뚤한 이에 손등이 찢겨 피가 스멀스멀 배어 나왔다. 그래도 아픈 줄 몰랐다. 숨이 차서 곧 가슴이 뻐근해졌다.

“이 미친놈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잡아, 저러다 죽겠다.”

남자들이 피트를 억지로 떼어놓았다. “이거 놔!” 피트가 소리치며 발버둥 쳤다. 피트를 붙잡은 남자는 그의 팔을 부러뜨릴 기세로 힘껏 꺾었다. 그래도 피트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혀를 찼다. 피트에게 얻어맞은 남자가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부러진 앞니를 퉤 뱉었다. 그리고 피가 줄줄 흐르는 코를 마구 문질렀다.

“와, 너는 정말 안 되겠다. 곱게 모셔주려고 했는데 정말 안 되겠어.”

남자는 피트의 명치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피트의 몸이 저절로 휘청거렸다. 충격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다시 피트의 명치를 주먹으로 있는 힘껏 쳤다. 피트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았다. 내장이 짜르르 울리고 속이 메스꺼웠다. 피트는 그 자리에서 속에 든 것을 게워내고 말았다. 피트의 팔을 붙잡고 있던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두고 봐, 너는 다신 맨눈으로 하늘을 못 보게 될 거야. 네 두 눈을 내가 뽑아버릴 거니까.”

피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졌으나 눈빛은 총명했다. 꼭 날개가 부러진 매처럼 보였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로 사납게 씩씩거리는 피트를 두고 남자가 혀를 끌끌 찼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소란을 일으켰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순 없는 노릇이다. 남자는 부러진 코를 틀어막고 맞은편에 있는 동료에게 고갯짓했다. 그 뜻을 헤아린 검은 머리의 남자는 손날을 세워 피트의 목 뒤를 가격했다. 피트의 동공이 풀렸다. 남자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피트를 들어 올렸다. 피와 토사물이 흥건하게 고인 자리에 론이 피트에게 선물해준 목걸이가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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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매브 아이스맨 매버릭
2023.03.30 00:51
ㅇㅇ
모바일
미친...미친...미친...안돼.. 안돼...안돼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아아아악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센세 나붕 지금 그냥 멍해요 어어어어어엉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f2ac]
2023.03.30 04:55
ㅇㅇ
모바일
아니 시발 세상에 안돼ㅠㅠㅠ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ㅜ아이스가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함부로 때리고 데려가냐 미친 쓰레기놈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a87]
2023.03.30 09:0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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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이게 무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b12]
2023.03.30 09:33
ㅇㅇ
우리 피트 어떡해ㅠㅠㅠㅠ아 근데 나는 진짜 나쁜놈인가봐... 저 쓰레기들 아이스가 무섭게 혼내줘라 끝장내줘야돼 믿는다ㅠㅠㅠ하면서 울다가도 험하게 굴려지는 피트...피트가 위험해지는것 마저 꼴리면 어떡하지ㅠㅠㅜ 착하고 고운 피트 고생하는거 가엾고 안타까운데 존맛이에여 센세ㅠㅠㅠㅎ 역시 가장 큰 행복 맞기 전 시련과 역경은 고통스럽지만 맛있는법...! 진짜 너무 재밌어요 센세ㅠㅠㅠㅠㅎ
[Code: 9c44]
2023.03.30 20: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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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랑 톰이랑 아기만드는일도 아직 못했는데...나쁜 놈들ㅠㅠ
[Code: 3bb7]
2023.03.31 19: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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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납치 소제목 보고 심장 떨어져서 계속 망설이다가 겨우 읽었어요 센세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피트 제발 무사히 톰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Code: d704]
2023.04.18 14: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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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센세 잠시만요 지금 이게
[Code: cfbf]
2023.05.25 08: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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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납치라니!!!!!! 카잔스키는 자비가 없다는 걸 보여줄 때다 이놈들이 미쳤네?
[Code: 06e6]
2023.08.09 14:2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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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저 개자식 개쓰레기같은자식 ㅅㅂㅅㅂ
[Code: fc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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