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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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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달



한밤중에야 저녁 식사가 끝이 났다. 이고르는 만취하여 아들 니콜라이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니콜라이도 취한 건 마찬가지였다. 빈 그릇과 술병으로 어질러진 자리를 치우는 건 콘스탄틴의 아들들 몫이었다. 그들은 재빠르고 힘이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상이 펼쳐졌던 자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해졌다. 일찍이 독립하고 아내와 자식들까지 건사하는 남자들이 콘스탄틴 앞에서는 여전히 아버지의 가르침이 필요한 어린 자식이었다. 콘스탄틴은 미하일과 표트르가 치운 자리를 꼼꼼히 확인한 이후, 알렉세이에게 편히 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알렉세이는 톰에게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며 따로 불러냈다. 톰은 피트의 잠자리를 살펴주고 다시 알렉세이의 천막을 찾았다. 천막 안은 주인을 닮아 조용하고 쓸쓸했다. 톰은 눈을 비볐다. 조금 전까지 흥겨운 술판이 벌어졌던 곳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작은 상 위에 술병 하나와 술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톰은 알렉세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알렉세이는 아들의 술잔을 가득 채웠다. 톰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저녁 자리에 올라온 술보다 훨씬 독했다. 식도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얼얼했다. 톰의 목에 핏대가 섰다. 알렉세이는 다시 술을 따랐다. 이번에도 톰은 단번에 술을 마셨다. 그러기를 두 차례 더 반복했다. 연달아 독한 술을 퍼부으니 톰의 얼굴이 불그스레 달아올랐다. 그제야 알렉세이는 자신의 술잔을 채웠다.

“톰. 피트가 왜 자꾸 몸을 긁는 게냐.”

알렉세이는 술잔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말했다. 톰은 웃었다. 예상했던 질문이다.

“모르겠습니다. 독약의 후유증 때문인지, 납치당한 일로 크게 충격을 받아서 그러는 것인지 일리야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톰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한 사실만을 말했다. 알렉세이는 술잔을 비웠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 언뜻 측은함이 스쳤다. 알렉세이는 자신의 술잔과 톰의 술잔을 다시 채웠다. 톰은 천천히 술을 마셨다.

“앞으로 다시 예전처럼 걸을 수 있느냐?”

알렉세이가 다시 물었다.

“그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톰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이는?”
“가질 수 있습니다. 이듬해 아버지께 손자를 안겨드리겠습니다.”

톰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며 미소 지었다. 확신에 찬 미소였다.

“톰.”

알렉세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비를 속이려 들지 마라.”
“피트는 제 아내입니다. 아내의 일을 남편인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톰은 단호하게 말했다. 알렉세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는 술잔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콘스탄틴 형님의 막내가 아직 어리지. 그 애가 형님의 땅을 물려받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표트르의 심정은 어떨지 모르겠군. 빅토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표트르가 형님의 땅을 물려받았을 테니 말이다.”

빅토르는 콘스탄틴이 재혼한 아내 아흐토야에게서 본 아들이었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다.

“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느닷없는 알렉세이의 말에 톰의 목소리가 당혹감으로 떨렸다.

“너는 내 아들이란 뜻이다.”

알렉세이가 차갑게 일갈했다. 톰은 그가 이처럼 말하는 까닭을 알아차렸다.

“내가 빅토르를 양자로 삼으면 표트르는 기뻐할 것이다. 코스탸 형님의 우려도 덜 수 있겠지. 과거, 나와 이고르 형님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혈전을 벌이며 많은 사람이 죽었다. 나는 이 자리를 얻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잃었다. 코스탸 형님께서는 그런 참상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신다.”

알렉세이는 자신의 검을 술상 위에 내려놓았다. 묵직한 검이 불길한 소리를 냈다. 톰의 시선이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톰, 너는 내 아들이다. 타마라와 나 사이의 아들이지.” 

알렉세이는 다시 핏줄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후계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니다. 나의 이름을 물려 줄 자식은 내가 결정한다.” 
“…….”
“네가 내 뜻을 거역하고 필부가 되어 살겠다면 말리지 않으마. 아비 된 도리로 네가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은 모두 마련해주겠다. 울스는 가축을 기르기 좋은 땅이다. 울스 뿐만 아니라 하마르 집안의 땅도 비옥하다.”
“아버지.”

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하지만 알렉세이의 말에 위축되거나,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자 미소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턱을 보아 긴장하고 있는 듯했으나,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아버지 뜻을 잘 알겠습니다. 예,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또한 수장이신 아버지를 따르는 부족의 일원입니다. 제가 후계자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어 저를 내치기로 하셨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를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제게 죽으라고 명령하신다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톰은 알렉세이의 엄포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알렉세이는 자세를 바로 했다. 그는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제 아들을 뚫어져라 보았다. 톰은 변했다. 예전처럼 단순히 인정에 목말라서, 또는 젊은 혈기를 어쩌지 못하고 우두머리의 위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톰의 선명한 눈빛. 그 눈빛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은 개척자의 눈빛이었다. 알렉세이의 단단한 가슴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향한 제 존경과 충성심을 이런 방식으로 시험하지 마십시오.”
“…….”
“저는 이제 한 집안의 가장이자 남편입니다. 집안일에 아버지께서 조언해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가슴 깊이 새기겠으나, 결정을 내리는 건 접니다. 다시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아내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건 남편인 접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제 아내를 고생시키지 않을 겁니다.”

톰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했다. 알렉세이가 콘스탄틴의 삼남 빅토르를 양자로 들이고 그에게 재산과 땅을 물려주겠다면, 기꺼이 따를 것이다. 피트가 없는 풍요로운 땅은 그에게 무의미했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일지라도 피트가 곁에 있다면 낙원이었다. 그는 검이 아닌 쟁기를 들고 땅을 일구며 살 각오까지 했다.

“그것이 네가 내린 결정이더냐?”
“예.”

알렉세이가 묻자, 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의 의지는 결연했다.

“알겠다.”

알렉세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톰은 눈을 내리깔았다. 자신의 확고한 마음을 밝히고 나니 홀가분했다. 이제 알렉세이의 처분을 기다릴 때이다. 톰은 아버지가 두렵지 않았다.

“바샤도 독약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마음의 병도 다스리지 못한다. 그러니 이고르 형님께 부탁드려 좋은 의원을 알아보마.”
“아버지.”

톰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알렉세이를 응시했다. 믿기지 않았다. 알렉세이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자기 집안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놈이 부족을 이끌 수는 없지. 날 실망하게 하지 마라, 아들아. 네 결심에 책임지길 바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이만 가 봐라.”

알렉세이는 손을 들었다.

“예. 안녕히 주무십시오.”

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다음 서둘러 천막을 나섰다. 발걸음이 급했다. 어지간히 피트가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들이 떠난 빈자리를 내려다보며 알렉세이는 웃었다.

“타마라.”

알렉세이는 술잔을 가득 채웠다. 타마라가 어떻게 웃었던가. 취기가 오른 탓에 타마라의 미소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알렉세이의 가슴에 별이 되었다. 막연한 빛. 아무리 애를 써도 잡을 수 없는, 그저 새하얗게 시야를 물들이는 빛.

“우리 아이가 어느새 사내가 됐다.”

눈도 뜨지 못한 핏덩이를 안은 게 엊그제 일 같은데, 그 젖먹이가 자라 한 집안의 가장이 됐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던 혼탁한 날의 기억. 아내를 가슴에 묻음과 동시에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아이를 살리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녀야만 했다. 

사실 알렉세이는 톰이 무사히 장성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젖을 물려 줄 사람이 있었지만, 갓난아기 시절 톰은 너무 약했다. 그러나 톰은 살았다. 외롭게 살았다. 이제는 외롭지 않다. 알렉세이는 오늘따라 유독 타마라가 그리웠다.



49. 새에게 잡아먹힌 벌레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피트는 눈을 반짝 떴다. 간밤에 매사냥하는 꿈을 꿨다. 악몽을 꾸지 않은 건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일까. 모처럼 의식이 맑고 몸이 가벼웠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피트는 언제나 아침을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숨 막혀…….”

자신의 몸을 꽉 끌어안은 톰의 팔이 무거웠다. “팔 좀 치워.” 피트는 팔꿈치로 톰을 밀어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톰이 자신보다 먼저 일어나는데, 지난밤에 알렉세이와 독대하며 피곤했던 모양인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피트는 낑낑거리면서 간신히 톰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쭉 기지개를 켰다. 확실히 몸이 가볍다. ‘어쩌면…….’ 피트는 작은 희망을 품에 안고 다리를 조심스레 움직였다.

“아.”

피트는 환하게 웃었다. 다리가 제 뜻대로 움직였다. 예전처럼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제대로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감각이 생생했다.

“내 꿈 꾸고 있어, 바보야. 다녀올게.”

피트는 톰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내친김에 피트는 신발을 신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밖은 아직 깜깜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잠을 깨운 새는 부지런한 모양이다. 피트는 팔을 넓게 벌리고 신선한 공기를 잔뜩 들이마셨다. 가슴이 뻐근해졌다. 모처럼 느끼는 상쾌함에 피트는 들떴다. 그는 톰이 깨어나면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자 좀 더 걷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뛰는 것은 무리였지만 걷는 건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꼭 늪에 발이 빠진 것처럼 하염없이 땅 밑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위태로움마저도 지금은 고마운 일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리에 아무런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으니까. 감각이 느껴진다 싶으면 지독한 통증 때문에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로울 정도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비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그리 멀리 나오지는 못했다.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짙푸른 하늘과 시커먼 땅의 경계, 몽환적인 순간. 피트는 울타리 너머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두 명의 남자를 발견했다.

“……어쩔 생각이지. 남의 자식을 키우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그래도 장자잖아. 딸이 태어날 수도 있고. 톰의 뒤를 이어받을 아들이 태어나기만 하면 된다.”

피트는 반가운 마음에 그들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하려다가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멈칫했다. 다행히 그들은 피트가 가까이 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피트는 발걸음을 돌려 황급히 근처에 있는 천막 뒤로 몸을 숨겼다. 그들이 천막 근처로 걸어왔다. 피트는 숨을 죽였다.

남자들은 제자리에서 대화를 나눴다.

“거, 자네 말대로 딸이면 그래도 낫지. 다른 집안에 시집 보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애를 낳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자네도 봐서 알잖아. 몸이 저래서야 무사히 애를 낳을 수는 있을지 의문이다.”

처음 자식 얘길 꺼낸 남자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걸걸했다. 폐병을 앓는 사람처럼. 정말 폐에 문제라도 있는지 그는 말하는 중간중간 기침을 했다.

“뭐, 그러면 톰이 새로 장가들면 되지 않나.”

다른 남자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피트를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마누라 되찾겠다고 전쟁까지 불사했다. 새로 장가를 들겠어? 어르신도 그래. 자식이 톰 하나뿐인데 재혼하지 않으셨잖아. 그래도 톰은 어르신 친자식이기라도 하지…….”
“관두자. 우리가 이런 얘기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어찌 되었든 톰의 집안일이다.”
“그야 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내면 아무 문제도 없지. 하지만 톰은 언젠가 어르신의 뒤를 이어 수장이 될 거고, 톰의 자식도 우리 아이들을 이끌 수장이 될 거다.”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숨이 넘어갈 기세로 기침했다. “괜찮나?” 다른 남자가 걱정스럽게 물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어어, 괜찮다.” 하고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한층 더 탁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수통에 든 물을 절반이나 비우고 다시 말을 이었다.

“톰의 아내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야. 힘든 일을 겪었잖아. 불쌍하지, 불쌍하고말고. 하지만 나도 자식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 이렇게 까탈스럽게 굴 수밖에 없는 거다.”
“…….”
“톰의 성정상 첩을 들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생각은 해볼 수 있잖아. 번듯한 집안에 흠 없는 좋은 여자를 본처로 앉혀서 집안일을 맡기고, 지금 마누라는 첩으로 삼아서 예뻐해 주면 되지. 톰이 좋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생각해 봐. 톰의 아내가 지금까지 사내를 몇 명이나 거쳤지? 아일라우, 톰, 투멘이라는 놈까지. 아일라우야 결혼식 당일에 우리가 빼앗아왔으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투멘이라는 놈과는 꽤 오랫동안 지냈어. 듣기로는 투멘이 결혼식까지 올렸다던데.”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 같아서 피트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렸다. 남자가 투멘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끔찍한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오손이 자신의 몸을 마구 주무르고 욕보이는 것 같았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다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잖아. 친부모는 진작 죽었고, 양부모도 정주민들 가축이나 돌봐주며 근근이 사는 처지라고 알고 있다. 우리한텐 힘이 필요해. 강력한 동맹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어르신도 처음에 칼라쉬 집안의 딸이랑 톰을 혼인시키려고 하셨잖아.”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는 더욱더 흥분했다.

“그만. 너무 앞서지 마라. 톰의 아내는 반년 동안 애가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인지도 모르지. 그러면 자네 걱정도 괜한 일이 될 거야.”

잠자코 듣던 남자가 그의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말을 돌렸다.

“그래, 자네 말 대로 불임이면 더 잘됐어. 첩으로 앉힌다고 해서 싫은 소리 못 할 거 아닌가. 거두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 내 생각은 그래. 아까도 말했지만, 톰의 아내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일을 당한 건 참 안타깝고, 가엾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그거고, 후계 문제는 별개의 일이지.”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는 진정하기는커녕 더 목소리를 높였다.

“이보게.”
“첩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첩이면 다른 사내의 씨를 품었든, 아예 애를 못 가지는 몸이든, 남편만 기쁘게 해준다면야 아무래도 좋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이면 들킬까 봐,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피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울음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것뿐이었다. 이 순간처럼 말을 듣지 않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다. 예전이었다면 들키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을 텐데. 아니, 예전이었다면 저 두 사람이 더는 지껄이지 못하도록 얼굴을 갈겨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하는 말이 옳았다. 자신은 이제 톰에게 짐이다. 평생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 지저분한 추문이 어디를 가나 톰을 따라다닐 것이다. 자신과 함께 사는 한. 아름다운 도자기의 결점, 잘못 놓은 자수, 닳은 편자, 끊어진 고삐, 이가 나간 칼, 그런 것들이 마구 떠올랐다.

잠시 후, 남자들이 자리를 떴다.

“새처럼 자유롭게, 바람처럼 빠르게…….”

피트는 닉과 주고받던 그들의 구호를 되뇌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그새 다리에 힘이 빠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새처럼…….” 피트는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라도 해야 남자들이 주고받던 대화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피트는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흙이 묻어 지저분해진 얼굴을 소매로 문질렀다. 턱이 까지고 손바닥에 상처가 생긴 것보다 남자들의 말이 더 아팠다. 새 한 마리가 피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새는 흙더미를 부리로 마구 쪼아댔다.

“구스, 나는 새가 아니야. 나는…… 나는 새를 동경하는 벌레야.”

평생 흘린 눈물보다 머리카락이 잘린 이후로 흘린 눈물이 더 많았다. 피트는 몸을 긁다 못해 아예 쥐어뜯었다. 손톱만 멀쩡히 붙어 있어도 생살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아픈 줄 몰랐다.

“구스, 말해줘.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해? 이제 너한테 돌아가지도 못하는데.”

피트는 허공에 대고 물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서럽게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피트는 제 뺨을 때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꾸짖었다.

“울지마, 매버릭. 운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만 일어나자, 돌아가야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웃어. 톰한테 내색하지 마. 톰을 힘들게 하지 마. 기쁘게 해줘야지. 웃어야 해. 꼭.”

 
***



“피트!”

멀리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피트를 발견하자마자, 톰은 서둘러 그에게 뛰어갔다. 아침에 눈을 뜨자 옆자리가 싸늘하게 식어 있어 그의 마음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피트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다시 얼어붙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네가 보이지 않아서 걱정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일어나니까 다리에 힘이 들어가서…… 혼자서도 걸을 수 있겠다 싶어서, 잠깐 근처에 다녀왔어.”

피트는 자신을 꾸짖었던 대로 톰에게 태연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웃고 싶지 않았다. 톰에게 안겨 엉엉 울고 싶었다. 속이 상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에게 응석을 부리고, 위로를 받고 싶었다.

“봐. 넘어지긴 했지만, 이제 다리가 어느 정도 움직여. 여기까지 혼자서 걸어왔어. 누구한테도 도움받지 않고.”

하지만 톰의 어깨를 무겁게 할 순 없었다. 피트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져서 다친 상처를 가리키며 일부러 활기차게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 톰은 크게 기뻐했다.

“잘됐다. 정말 잘됐다.”
“다시 예전처럼 걸을 수 있을 거야.”
“그래, 반드시.”

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이 따스했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피트는 겨우 마음을 놓고 톰에게 기댔다. 속마음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톰은 피트를 부축해서 천막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톰은 늘 그랬던 것처럼 물을 끓였다. 피트를 씻기고, 그의 단장을 도와주는 건 이제 톰에게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 

피트는 쭈뼛거리며 젖은 뺨을 수건으로 닦았다.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의 물기도 털어냈다. 톰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론이 손질해준 머리카락이 시간이 지나자 길이 들어 더 보기 좋아졌다. 톰은 피트의 머리카락이 잘린 것이 아쉽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짧은 덕분에 목이 훤히 드러나서 예쁘다고 생각했다. 피트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톰은 피트에게 걷느라 고생했으니 발까지 씻겨주겠다며 나섰다. 피트는 부끄러워하며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톰은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 피트는 더는 무어라 톰을 말리지 못했다. 맨발을 보여준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였다. 사실상 알몸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두 사람이 가까워진 것을 의미했다.

“있잖아, 톰.”
“응.”

톰은 피트의 발등에 따뜻한 물을 끼얹으며 대답했다. 피트는 발의 아치가 높았다. 발등이 곡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휘어졌다. 톰은 괜스레 가슴이 설렜다. 피트의 발등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우리, 결혼식…… 꼭 해야 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갑작스러운 피트의 말에 톰의 설렘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는 매일 같이 피트가 쓴 베일을 자신의 손으로 벗기는 순간을 고대했다. 새로 지은 신부복을 벗기고, 마침내 피트를 완전히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시기가 그렇잖아. 전쟁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었고, 물자도 많이 썼는데 잔치를 여는 건 좀 그렇지 않나 해서.”

피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전쟁은 곧 끝이 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엔 승리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 결혼식이 아니어도, 아버지께서는 자리를 마련하실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그리고?”
“난 꼭 결혼 안 해도 돼.”
“뭐?”
“그러니까, 본처가 아니라 첩으로 살아도…… 그래도 괜찮아. 말했잖아, 데리고만 살아달라고.”

피트는 톰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더듬더듬 말했다.

“피트.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얘길 듣고 온 거야?”

톰이 싸늘하게 물었다.

“아니야,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한 건 아니야. 오해하지 마.”

피트는 혹여나 소란이 벌어질까 봐 허둥지둥 덧붙였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하지? 난 이미 그런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냥 어젯밤 다 같이 저녁을 먹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네 사촌, 형제가 사이좋게 얘기하는 게 좋아 보이더라. 아버님이랑 백부님도. 가족이 화목하게 있는 게 보기 좋았어. 그런데 나는 너한테 그런 가족을 만들어 주지 못하잖아. 이제 자식을 낳을 수 없으니까.”

피트는 쓸쓸하게 웃었다.

“매버릭, 그만. 날 화나게 하지 마.”

톰은 가까스로 불안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경고했다. 하지만 피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톰, 부족 사람들은 다 널 믿고 의지해. 넌 괜찮다지만, 다들 네 친자식이 태어나길 바랄 거야. 또, 나 때문에 네가 괜한 소릴 듣는 게 싫어. 너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나만 아니면 너는…….”
“입 다물어라.”

기어이 톰이 노여운 음성으로 피트의 말을 잘랐다. 피트는 발을 담근 물이 마치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발을 붙잡은 톰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느꼈다. 덜컥 겁이 났다.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남편을 화나게 하면 안 돼. 남편을 화나게 하면…….’ 피트는 오손에게 손찌검당한 일이 떠올랐다. 아팠다. 슬프고 수치스러웠다.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줘. 용서해줘……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용서해줘. 때리지 마. 네 말 잘 들을게. 때리지 마. 잘못했어.”
“내 얼굴 봐, 매브.”

피트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는 벌벌 떨자, 톰은 서둘러 그의 발을 잡은 손을 놓았다. 아차 싶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지난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무어라 윽박질러도 지지 않고 맞서던 피트였다. 언제야 피트가 괴로운 기억을 떨쳐내고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겁을 줘서 미안하다. 너무 화가 났다. 미안해. 내 얼굴 봐, 응?”

톰이 한결 누그러진 음성으로 피트를 어르고 달랬다. 피트는 그제야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톰은 손에 묻은 물기를 웃옷에 아무렇게나 문질러 닦고 피트를 끌어안았다.

“피트, 네게 자상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널 때리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란 약속도 지킬 것이다. 그러니 겁내지 마라. 내 손을 잘랐으면 잘랐지, 너한테 손찌검은 안 한다. 절대.”

톰은 잠긴 목소리로 절절하게 말했다.

“넌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
“그런데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을 품으라고?”
“…….”
“내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해? 난 너 아닌 다른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너를 사랑한다. 사랑해.”

눈물이 차올랐다. 톰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허사였다. 자신의 힘으로는 북받친 슬픔과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피트,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내게서 마음이 떠났어? 그래서 내 곁을 떠날 생각인 건가?”

톰은 피트를 응시했다.

“아니야.”

톰이 우는 것을 보고 피트는 깜짝 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톰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이 톰에게 버림받을 줄만 알았지, 그도 자신과 같은 일을 두려워하고 있을 줄이야.

“아니야, 나도 널 사랑…… 좋아해. 네가 좋아. 그러니까 첩이라도 괜찮으니 너랑 살고 싶다고 말한 거야.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너랑 함께 살고 싶어. 네 옷을 짓고, 네 모자를 만들고, 네 술상을 차리고, 그렇게 살고 싶어. 그냥 나 때문에 네가 괜한 오명을 뒤집어쓰는 게 싫어서 그런 말 했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피트는 톰의 눈물을 닦아줬다. 그런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톰의 눈동자를 보니 덩달아 울고 싶어졌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피트는 입술이 새하얗게 질리도록 힘껏 깨물었다. 하지만 그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피트는 울면서 그의 목을 팔로 감았다.

“울지마. 너 슬프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한 거 아니야. 미안해. 울지마. 내가 미안해, 톰. 정말 미안해.”
“설령 네가 나에게 마음이 없다고 해도 나는 널 놓아 줄 마음이 없다.”
“응…….”
“넌 내 품에서 죽어야 해.”
“응, 알았어. 꼭 네 곁에서 죽을게. 너한테서 절대 달아나지 않을게.”

두 사람 모두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이처럼 사랑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할지, 어떻게 사랑을 나눠야 할지, 어떻게 사랑을 지켜야 할지 몰랐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었다. 저마다 사랑하며 사는 방법이 다르므로. 눈물에 젖어 상처가 쓰라렸다. 미숙한 사랑이 만든 상처. 앞으로 살면서 지금처럼, 지금보다 더 쓰라릴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꺼이 눈물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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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tom_ice(2).jpg

아이스는 추운 곳 살아서 털 달린 모자와 조끼를 입는다는 설정
옷감도 두껍고 주로 검은색 바탕에 빨간색 자수 남자라서 자수는 화려하지 않은 편
머리는 안 기름
보통 아이스 나이면 수염 기르는데 안 기름


pete_mav(2).jpg

매브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에 살아서 옷차림이 가벼움
자수는 화려함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 많이 하고 있으나 아이스 만나기 전에는 그리 좋은 장신구는 못 참
아직 덜 자라서 얼굴 윤곽도 덜 잡힘
처음에는 미혼이라 여러 갈래로 땋은 머리 -> 옥사나가 한 갈래로 땋아줘서 그때부터는 한 갈래(기혼) -> 머리카락 잘림


아이스매브 아이스맨 매버릭
2023.04.20 01: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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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보란듯이 아들부터 순풍 낳아버려 뭐라고 저렇게 남의 말을 쉽게 하는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구만 ㅠㅠㅠ 아들담엔 아들딸 쌍둥이까지 반년동안 그럴일을 안했다니까는 참 사람들
[Code: 3f81]
2023.04.20 02:25
ㅇㅇ
모바일
아니 내센세가 이렇게까지 금손이라니 ㅠㅠㅠㅠ 센세 스크롤 내리다가 마지막에 찐으로 튀어오르며 소리질렀괴 ㅠㅠㅠㅠㅠㅠ 너무너무 행복함 센세 글이 내 현생의 한줄기 광명 ㅠㅠㅠ 읽을때마다 아맵이 있는 초원에 빨려들어가 울고 웃고 해버려 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ㅠㅠㅠ 모두 행복해야해 ㅠㅠㅠㅠㅠ
[Code: ea53]
2023.04.20 09: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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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얘들아, 첫날밤부터 치르고 아이 이야기 좀 하자. 하늘을 봐야 별을 따든지 하지. 그러게 미리 미리 같이 밤 좀 보내고 했어야지! ㅠㅠ
[Code: 4762]
2023.04.21 04: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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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내센세가 그림까지...!?내센세가 글그림둘다금손이셨다니???? 입틀막했어요 센세
[Code: 55a3]
2023.04.21 14: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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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가 화보까지ㅠㅠㅠㅠㅠ
[Code: 8a50]
2023.04.22 14:5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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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롬곡줄줄ㅜㅜㅜㅜㅜㅜㅜㅜ진짜 아직 트라우마에서 못 헤어나오면서도 서로 덕분에 치유 받는거 너무 좋고 찌통이야ㅠㅠㅠ 센세 보고싶어ㅠㅠ
[Code: cd80]
2023.04.23 11: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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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센세가 멀티 금손..
[Code: bce1]
2023.04.28 09: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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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는 모든걸 다 잘하시는구나ㅠㅠㅠㅜㅠㅜㅜ
[Code: 4954]
2023.05.25 13: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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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센세 왜 그림까지 잘 그려..? 센세는 못하는 게 뭐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천재잖아?!
[Code: 995e]
2023.08.09 15: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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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서로 꼭 부둥켜안고 남들 소리 절대 듣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구ㅠㅠㅠㅠ
[Code: 7e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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