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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5 22:22
<아기곰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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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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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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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수의사에게 연락을 받은 루스터는 행맨을 데리러 동물 병원에 갔음. 회복실에 있었던 덕분인지 행맨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고, 병원의 간호사들에게 예쁨받으며 간식을 얻어먹고 있었지. 루스터는 머뭇거리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가까이 다가갔어. 분명 행맨이 화를 내거나 토라져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여우는 루스터를 보자마자 '캐캐캥'하는 소리를 내더니 꼬리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며 달려와. 그리고는 제자리에서 몇 번 폴짝거리더니 루스터의 품에 뛰어들었어.

- 행이…

목이 메어 괜스레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루스터는 여우의 푸석해진 털을 상냥하게 쓰다듬었지. 행맨을 아프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여우는 자신의 연인을 다시 본 것에 마냥 기뻐하고 있어. 행맨에게 있어서 이번 일은 작은 해프닝일 뿐이야. 루스터를 사랑하는 마음과 비교하면 이 정도는 원망하고 미워할 일도 아니라는 거지. '헥헥' 숨소리를 내며 귀를 뒤로 젖히는 여우를 충분히 예뻐해 주고, 약을 처방받아 나오는 동안 루스터는 행맨에 대한 애정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어. 내가 이래서 널 사랑하나 봐. 앞으로 부족함 없이 더 사랑할게. 입안에 맴돌던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누군가 루스터에게 말을 걸었음.

- 어? 브래드쇼 소령님 아니십니까?

고개를 들면 새하얀 고양이를 안고 있는 골든 워리어즈의 부대원이 보여. 루스터가 아기곰이 되었을 때, SNS에 '좋아요' 버튼을 꼬박꼬박 누르고 댓글을 열심히 달아주었던 부대원이야. 행맨이 여우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지. 그녀가 추천해 준 빗과 샴푸는 지금까지도 행맨에게 잘 쓰고 있어. 오늘은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동물 병원에 찾아온 것일까?

- 오븐의 예방 접종 시기라 잠시 들렸습니다.

- 고양이 이름이 오븐이야? 귀여운 애네.

- 캬아악!

- 오븐, 그러면 안 돼!

고양이가 루스터의 품 안에 있는 여우를 보며 털을 쭈뼛 세운 채 하악질을 했어. 낯선 여우가 눈앞에 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겠지. 부대원이 쩔쩔매며 고양이를 달래는데, 행맨은 고양이의 하악질을 흉내 내듯 입을 벌리고 '캬아악'하는 소리를 내. 그러자 고양이는 화들짝 놀라 발톱을 세워 부대원의 품에 매달리듯이 파고들었어. 

- 행이... 너 지금 고양이 상대로 되게 유치하게 군 거 알지?

- 캐캐캥!

여우가 기분 좋다는 듯이 소리 내 웃었고, 부대원은 "세러신 소령님...원래 이런 성격이었나요?"하고 바둥대는 고양이를 껴안으며 식은땀을 흘렸지. 루스터가 아기곰이던 시절의 행맨밖에 모르니까 부대원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해. 그때의 행맨은 지금과 분위기가 꽤 다르니까 말이야. 여우는 의기양양해져서 귀를 쫑긋 세운 채 고개를 치켜들었음. 어제까지만 해도 앓아누웠으면서, 이렇게까지 기운 넘치다니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 루스터는 부대원과 잠시 더 대화를 나눈 뒤, 행맨과 함께 차에 올라탔지. 살짝 흐트러진 여우의 정수리와 꼬리털을 정리해 주듯이 몇 번 더 쓸어준 이후, 루스터는 행맨을 가만히 내려다봐. 여우도 당연하다는 듯이 조수석에 앉아 자세를 바로 잡다가 슬쩍 루스터를 올려다보았지.

- 있지, 제이크. 나는 네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루스터는 행맨의 촉촉한 코를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고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어. 여우는 고개를 좌우로 몇 번 갸웃거리더니 눈을 깜빡여. 그 얼굴은 영락없이 '뭘 말하고 싶은 거야?'라는 표정이야.

- 그러니까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초조해할 필요도 없어. 우리 둘 다 언젠가는 지금의 일들을 회상하며 웃을 수 있다는 걸 잘 알잖아.

- ……

- 욕실에 가둔 것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넌 그냥 여우가 아니라 내 소중한 애인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나 봐.

루스터는 조심스레 행맨의 콧등 위에 입을 맞추었어. 그러자 여우가 코를 씰룩이더니 루스터의 입술을 한 번 핥아. 그리고 그 순간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는 것을 눈치채고 루스터는 재빠르게 고개를 들었지. 거기에는 방금 전 만났던 부대원이 어색하게 한 쪽 손을 든 채 자동차의 창문을 두드리려는 자세로 굳어져 있었어. 루스터가 허둥대며 창문을 열자, 부대원은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루스터에게 건네. 그 안에는 새빨간 사과가 가득 들어 있었음.

- 아직 안 가신 것 같아서 세러신 소령님이랑 같이 나눠 드시라고 이거…어,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 고마워...그리고 나 지금 그냥 행이 콧등에 뽀뽀한 게 전부니까…

- 네, 저도 오븐한테 뽀뽀 많이 하니까요. 그래도 두 분은 연인이시니까 애정행각을 몰래 본 기분이 들어서 좀...

- ……

눈앞의 여우를 '세러신 소령'으로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루스터는 괜스레 머쓱해졌어. 막상 여우는 봉투 안에 머리를 들이밀며 사과에만 관심을 보였고, 부대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뒷걸음질을 치며 손을 흔들었지.  



루스터행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