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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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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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는 방구석 쿠션 위,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여우를 바라봐. 얼핏 보면 잠든 것 같지만, 여우는 '푸르르'하는 소리를 내며 가끔씩 몸을 꿈틀거릴 뿐, 멀쩡하게 깨어 있어. 행맨은 어제 저녁부터 쭉 이 상태였지.

- 행이, 너도 어쩔 수 없는 것 알잖아. 여우는 전투기에 탈 수 없어.

당연한 것을 말하면서도 루스터는 차분하게 설명을 해. 어제 에어쇼에서 비행을 할 파일럿들을 선발했거든. 매년 9월쯤에 약 3일 정도 개최되는 에어쇼에는 매 해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파일럿 팀의 묘기는 누가 봐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지. 루스터와 행맨 역시 해군 파일럿으로서 에어쇼에 선발될 때마다 자부심을 갖고 연습을 한 다음 멋진 비행을 선보였어.

그리고 올해. 훌륭한 비행 실력을 가진 파일럿인 만큼 루스터는 에어쇼의 묘기 비행 담당으로 선발되었지만, 여우가 된 행맨은 자연스레 후보에서 제외되었음. 어제 그 소식을 들려준 이후로 행맨은 꽤 충격을 받았는지 하루종일 울적한 것 같았지.

- 그렇게 많이 속상해?

행맨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 도넛 같은 여우는 움찔대더니 '끼잉'하는 소리를 한 번 냈어. 루스터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여우를 조심스레 안아 올렸음. 평소 같으면 발버둥을 치며 저항을 했겠지만, 행맨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기운이 없어. 여우의 눈가가 촉촉한 것을 보면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루스터는 행맨을 끌어안은 채 그 등을 도닥였어. 그러자 행맨은 루스터의 팔과 옆구리 사이에 제 주둥이를 쏙 넣고는 조용히 있음. 확실히 많이 상심한 모양이야.

- 네가 에어쇼를 많이 기대했다는 거 알아.

루스터는 행맨의 콧등에 입을 맞추며 그를 달래주었어. 행맨이 여우의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만큼 비행을 사랑하는 파일럿으로서의 자아도 건재했던 거지. 가끔 여우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것은 저 높이 날아오르는 전투기를 보고 있던 걸 지도 몰라.

- 그냥 타이밍이 안 좋았어, 제이크. 몇 달 이내로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까, 내년을 노리자, 응?

루스터의 말에 행맨은 고개를 들고 루스터를 올려다봐. 여우의 기다란 주둥이가 씰룩대고 귀가 뒤로 젖혀져. 엄청 실망했다는 뜻이겠지. 루스터는 자기도 모르게 'Awww'하는 소리를 낼 뻔했지만, 간신히 삼켜내고 행맨의 뺨을 양손으로 가볍게 문질러 주었지.

루스터는 행맨이 인간이었을 때도 이런 식으로 달래주었던 것을 떠올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행맨은 시무룩한 상태였고 루스터는 그런 행맨의 곁에서 그를 다독여주며 입을 맞추곤 했지. 그가 지금 여우라고 해서 위로하는 법은 크게 다를 것 없어.


- 행이, 잠시만 기다려 볼래?

루스터는 행맨을 침대 위에 올려둔 채, 잠시 거실로 갔어. 그리고 버리려고 모아둔 상자를 가져와 커터칼로 자르고 접는 것을 몇 번 반복했지.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침대 위에서 여우가 귀를 쫑긋거리는 것이 보여. 루스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일까? 


그리고 잠시 후, 루스터는 완성된 물건을 가지고 행맨에게로 돌아왔음. 

- 짜잔!

루스터가 만든 것은 종이 상자로 만든 전투기였어. 솔직히 썩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없는 조악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나름 노력한 결과물이야. 루스터는 아기곰 시절에 행맨이 사주었던 작은 선글라스를 가져와 여우에게 씌워주었어. 그리고 조심스레 행맨을 상자 안에 넣어주었지. 여우의 꼬리가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리기 시작해.

- 대거 1. 준비 완료.

루스터는 상자를 번쩍 들어 올려 팔을 뻗었어. 그리고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든 채 방안을 빠르게 돌아다녔지.

- 고도를 낮추고 빠르게 접근하라, 휘이잉...!

마치 어린아이와 비행기 놀이를 하는 것과 같아. 미사일을 발사하는 시늉을 한다거나 상자를 옆으로 기울여 장애물을 피하듯 부엌으로 지나오기도 하면서 한참을 그렇게 놀았어. 지친 루스터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상자를 내려놓으면 어느새 선글라스가 벗겨진 상자 속의 여우가 혀를 내밀고 헥헥대고 있어.

- 미안해, 행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어. 하지만 나 역시 하늘을 나는 네 모습을 정말 사랑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여우가 상자 밖으로 튀어나와. 행맨은 앞발로 루스터의 가슴팍을 꾹 누른 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어. 그리고 '캐캐캥'하는 웃음소리를 내더니 루스터의 입술을 날름 핥았지. 충분히 만족스러운 비행이었다는 뜻일까? 루스터는 땀에 젖은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미소 지었음.



루스터행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