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91095357
view 16110
2024.04.15 23:16
오늘 김... 개김...
고증도 망함...

111 222 333 444 555 666 777 888 999 1010 1111 1212 1313 1414 1515










게일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솔직히 이야기 하면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던 허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유가 허니가 적군의 손에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됐다.

그리고 만약 정말 그랬다면 지금 제 앞의 독일 장교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들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사실 게일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독일 장교가 허니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입에서 정직하게 진실만을 흘러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모르는 척,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거짓으로라도 누군가에게서 확신을 가진 목소리로 네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곧 너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주 조금이라도 가슴 속에 품고 싶었다.

후, 게일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 게일의 맞은편에 앉은 독일 장교는 여전히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옳거니, 허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한 대대의 대장이기까지 한 소령이니, 그의 입을 열게만 할 수 있다면 나오는 정보는 지금까지 스파이를 통해 얻었던 그 어떤 정보들보다 값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니 그는 게일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어차피 그에게 가장 유혹적일 미끼는 던져졌다.


"게일 클레븐. 소령. 284638."


하지만 게일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이미 독일 장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소령님, 허니 대위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게일 클레븐. 소령. 284638."


허, 이번에는 독일 장교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협상은 결렬이군요. 아쉽습니다 소령님. 모두에게 좋은 거래라고 믿었는데."


게일은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게일을 본 독일 장교는 귀찮다는 듯, 제 부하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차피 이제 게일이 입을 열 것 같지 않으니 수용소로 데리고 가라는 의미였다.

독일군이 게일을 일으켜 나가려고 할 때도, 게일은 별로 큰 반항 없이 움직였다.

그래, 이게 맞다. 속으로 다시 한 번 게일이 제 자신에게 말했다. 허니의 소식은 정말 궁금하지만, 이게 맞는 선택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독일 장교의 사무실을 빠져나가려는데, 게일의 뒤에서 장교가 나지막히 말했다.


"정말 아쉬워요. 그 날, 허니 대위가 사망한 위치 정도는... 알려 줄 수 있었는데 말이죠."
"..."
"그 날이 아마... 9월 말 쯤이었죠?"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의 문이 닫혔다.




-




게일은 자신이 무슨 정신으로 수용소에 도착했는지 알 수 없었다.

독일군들의 총의 위협을 받으면서 기차에 올라타고, 그리고 몇 번이나 걷다가 도착한 수용소까지 오는 길에서 게일의 머릿속은 소란스러웠다.

독일 장교가 이야기를 한 9월 말, 게일도 잘 알고 있는 날짜였다. 바로 다름 아닌 허니가 커트와 함께 임무를 나갔다가 실종된 날이 바로 9월 말이었으니까.

재생다운로드Tumblr_l_123616840748570.gif

허니가, 죽었다고? 허니가?

그러다가 또 동시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설마, 허니가 설마 죽었을리가. 그래 그랬을리가 없다.

허니는 뛰어난 파일럿이다. 본인은 자신의 실력에 대해 꽤나 겸손한 편이었지만, 그를 직접 가르쳐 본 게일은 허니의 실력을 잘 알았다. 부대 내에서도 허니는 끝까지 살아남아 본국에 돌아갈 파일럿 중 하나라며 이야기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독일 장교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파일럿이라고 하더라도 폭격기 파일럿의 목숨은 또 모르는 일이었다.

전투기 파일럿이라면 파일럿의 역량으로 적군의 미사일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폭격기는 정해진 대형을 지켜야 했고 전투기처럼 빠른 속도로 대공포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말로 이야기를 하면 폭격기 파일럿의 운명은 그저 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게일이 그렇게 복잡한 머릿속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 하고 있을 때, 그는 수용소에 도착했다.

벅! 게일! 주변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여러 개 겹쳐 들려왔지만, 게일은 그들에게 대답을 해 줄 정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머릿속을 더욱 어지럽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벅, 괜찮아?"


존이 게일의 팔을 잡아채며 질문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자신의 추락과 함께 생사가 불분명했던 친구인 존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수용소에 도착해서 알아챘다는 것이다.

존의 눈 한 쪽에는 피멍이 들어있었고 자잘한 상처도 보였지만 그는 멀쩡히 살아 게일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전에, 게일은 자신도 모르게 존을 마주보며 말했다.


"존."
"어?"
"허니가... 허니가 죽었대."


게일은 자신의 입에서 그 말을 뱉으면서도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넌 아직 내 속에 이렇게도 멀쩡히 살아있는데. 그 망할 독일 장교의 말이 거짓임이 분명한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뱉는 제 목이 왜 이렇게도 메이는지, 게일은 모를 일이었다.




-




마치 살아있는 유령같았다. 그것이 존이 수용소에서 다시 만난 게일에 대해 내린 평가였다.

그래, 정말 유령같았다. 살아있었지만 살아있지 않았고,이 곳에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존은 그런 게일을 보며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게일 또한 이미 많은 동료들의 죽음을 겪었고 이미 무뎌질대로 무뎌진 사람이었다.

그러니 지금 허니의 죽음에 슬퍼하더라도 시간이 약이 되어 그를 치료할 것이라고, 존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런 존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수용소에 도착한 후 몇 개월이 지나도록 게일은 여전히 무채색이었다. 허니의 옆에 있었을 때는 그렇게 오색빛으로 찬란히 빛나던 사람이 한순간에 제 빛을 모두 잃어버렸다.

물론 게일은 부하들 앞에서는 이를 티내지 않았다.

아무리 장소가 수용소라고 하더라도, 부하들은 여전히 존과 게일을 믿고 따랐다. 또한 의지하기도 했다. 속에서부터 제 자신이 조금씩 죽어가면서도, 게일은 이를 부하들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다고 존이 섣부르게 허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 존 또한 아는 것이 없었으니까. 허니의 생사 또는 행방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그 사실을 게일에게 전해줄 수 있을텐데. 


"우편물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존의 기도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 한 방식으로 그에게 돌아왔다.


"어... 그리고 이건 소령님, 편지 왔습니다."


수용소에서 지내던 몇 개월동안 편지 한 통 받지 못 한 존에게 편지가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는지, 그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부하가 얼떨떨한 말투였다.


"나?"
"네."


물론 존 또한 반응이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얼떨결에 건네지는 편지를 받고, 부하가 다른 방으로 편지들을 전해주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존은 편지 봉투에 써진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From. Curtis Biddick]


비딕에게서 온 편지였다.

존은 그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편지봉투를 찢듯이 열었다. 

편지봉투는 손쉽게 열렸다. 여기까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많은 일을 겪었는지, 잔뜩 더러워지고 구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편지를 읽어낸 존의 입이 이내 열렸다.


"게일..."
"왜?"
"...살아있대."


주어 없이 던져진 존의 말에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고있던 게일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게일이 존의 말을 이해하는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존이 게일에게 주어 없이 생사를 알려줄 사람. 게일이 꿈에서도 몇 번을 그렸던 그 얼굴. 그 이름.

그리고 게일은 존이 제게 내밀어 준 편지를 낚아채듯이 받고는 빠르게 편지를 읽었다.


[…다치긴 했어도 사상자는 없어요. 허니 대위님께서도 갑자기 쓰러져서 놀라긴 했는데, 다친 곳은 없다고 하는 거 보니까 그냥 자는 것 같기도 해요. 허니 대위님이 일어나는대로 복귀하겠슴다...]


게일은 커트가 쓴 문장 중, 허니가 잠들어있다는 부분을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시선을 끌어내려 편지의 아랫부분에 적혀진 편지를 보낸 날짜를 확인했다. 9월의 끝자락. 그 날짜만 봐도 게일은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허니와 커트는 그 임무에서 죽지 않았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 믿기지 않았다. 허니가 살아있다. 그래, 그 독일 장교의 말은… 그 말은 거짓이었다.

비록 편지는 몇 달 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 정도면 충분히 게일에게 다시 허니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재생다운로드Tumblr_l_271079847007736.gif

게일은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편지 위에 제 얼굴을 묻었다.

몇 달이나 걸려 겨우 주인의 손에 들어온 편지는 게일에게 작은 희망을 심어주었다.




-




재생다운로드6bd098a819e4cfd1b1c06f3c99532fcd.gif

"너 술 마셨냐?"


하딩의 맞은편에 앉아 거의 의자에 흘러내리듯이 앉아있는 허니를 보며 하딩이 질문했다. 

그 질문에 허니의 눈썹이 올라갔다. 당연했다. 허니가 술을 마신 것은 벌써 몇 개월이나 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탓에 이제는 신병들조차 허니가 술은 입에도 가까이 대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와 대령님, 저 술 안 마시는 거 뻔히 아시면서."
"근데 자세가 왜 이래."


그렇게 말을 하는 하딩의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허니의 자세는 상당히 불량했다. 엉덩이는 거의 의자에 걸치듯이 앉아있었고 별로 높지도 않은 등받이 위쪽에 허니의 목이 아슬아슬하게 기대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한낱 소령 따위가 대령 앞에서 앉아있기에는 건방진 자세였다.

하딩의 말에 허니가 낮게 웃더니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그런 허니를 본 하딩은 피곤하다는 듯이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서 말했다.


"이게 이제는 내가 아주 편해 죽겠지..."
"에이, 뭘 그렇게 말씀하세요."
"1년 소령 했더니 눈에 뵈는 게 없어, 아주."


1년. 그래, 하딩의 말이 맞았다. 허니가 소령이 된 것은 벌써 1년 전의 일이었다.

시간은 참 더럽게도 빨리 간다. 그리고 그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 사실을 허니는 새삼 지난 1년 동안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난 1년 간 허니는 그 누구보다 바빴다. 대대장으로서 일도 해결했고 임무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조금이라도 게일과 관련 된 소식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그에게 쥐어지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한 번은 정말 고민도 해봤다. 허니의 생일 날, 그 날까지 게일에 대한 소식을 조금도 듣지 못 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그날 저녁, 허니는 막사 안에서 고민했다. 술을 마셔버릴까. 술을 마시면, 게일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허니는 다음 날 아침이면 게일의 옆에서 눈을 뜰 수 있을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게일이 살아있을 것을 알았지만, 그랬지만 두려웠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가 살아있지 않다면... 그래서 허니가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는 곳이 게일의 옆이 아닌 그저 익숙한 허니의 막사 안이라면, 허니는 정말이지 모든 것을 놓고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제정신으로 이 망할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허니는 그저 계속해서 믿는 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허니의 곁에서 말도 안 되는 믿음 좀 버리라고 욕을 하더라도, 허니가 제정신으로 남아있으려면 그런 믿음이라도 계속 손에 쥐고 있어야 했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으면서, 많은 것들이 허니의 곁을 지켰다.

대표적으로는 허니는 25번째 임무를 끝내고서도 영국에 남았다. 뿐만 아니라 허니와 함께 비행을 하던 커트와 다른 대원들까지도 영국에 남기로 했다.

허니가 계속 영국에 남겠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하딩은 허니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이내 커트와 다른 대원들도 남겠다고 하자, 허니를 조금 안심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제 와서 생각을 해보면 아마 하딩은 허니가 미쳐가지 않도록 도와 줄 버팀목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안심을 하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5번째 임무를 마친 로젠탈이 하딩을 찾아가 계속 남아서 비행을 하겠다고 말을 하자, 하딩은 허니를 요주의 인물로 꼽았다.

로젠탈마저도 본국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비행을 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는 하딩이 허니를 따로 호출해 따져 물어보기도 했으나, 허니는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하딩은 허니를 볼 때마다 머리가 아픈 듯,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허니는 그런 하딩을 볼 때마다 낄낄 웃으며 제 앞에 놓인 커피나 여유롭게 마실 뿐이었다.


"그나저나, 왜 부르셨습니까?"


오늘도 피곤한 듯, 머리를 붙잡고 있던 하딩에게 허니가 먼저 질문했다.

그런 허니를 보며 하딩은 다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튼, 처음에는 그나마 조금 깍듯한 것 같던 허니도 이제는 게일이나 존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너 또 마을 애들 데리고 식당 갔다며."


하딩의 말에 허니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으음... 하면서 잠시 고민을 하는 척, 모르는 척을 하는 모습이 하딩은 오히려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식당에 아이스크림 나올 때마다 애들 데리고 식당 가는 거 뻔히 아니까 그만 둬라."
"시정하겠습니다."


진심 한 점 담겨있지 않은 대답을 하는 허니를 보며 하딩은 허니가 또 그럴 것임을 예상했다.

어휴, 하딩이 한숨을 쉬었다. 사실 허니를 부른 이유는 그것 뿐이 아니었다. 아이스크림 이야기는 그냥 대령 앞에서 편한 듯이 앉아있는 허니가 괘씸해서 괜한 트집이나 한 번 잡아봤을 뿐이다.

그리고 허니 또한 그런 하딩의 마음을 아는지, 형식적으로 대답만 하고는 하딩의 다음 말이나 기다렸다.


"그리고 이거."


그 말과 함께 하딩이 허니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은색 낙엽 모양의 계급장 배지였다.

허니는 그것을 본 순간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데자뷰가 느껴졌다. 이 상황, 이 비슷한 말, 들은 적이 있다. 그것도 1년 전 같은 장소인 바로 하딩의 사무실에서 말이다.

다른 점을 굳이 꼽아보자면, 그때는 허니 앞에 놓였던 것은 금색 낙엽 모양의 계급장 배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지는 이제 허니의 옷깃에 얌전히 머물러 있었다.


"이게 뭡니까?"


그리고 허니는 그때와 같은 질문을 하딩에게 했다.


"중령 계급장."


하딩의 대답 또한 1년 전 그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그건 저도 보면 압니다. 이걸 왜 저한테 주시냐고요."
"이거 봐, 아주 그냥 대령 다 편해졌어. 야 그냥 중령 말고 대령해라 네가."
"싫습니다. 중령도 안 할 거고 소령으로 머무를 겁니다."


장난스럽게 말을 하는 하딩과 다르게 반박을 하는 허니의 목소리는 꽤나 진지했다.

그런 허니를 본 하딩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이런 전쟁 중의 상황이라고는 해도, 승진은 승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모양새라니.

허니도 허니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소령도 별로 기쁘지 않은 와중에, 중령이라니. 사양이었다.

하딩이 허니를 소령으로 진급 시킬 때에도 불만을 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반항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소령이 되면 일은 많았지만 여전히 비행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중령은 이야기가 달랐다. 물론 중령이어도 비행을 할 수는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부대가 돌아가는 것을 봤을 때, 허니는 자신이 중령이 되는 순간부터 더이상 비행 대신 사무직으로 바뀌게 될 것을 잘 알았다.

그야 지금 허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나열해보자면, 지금 당장 떠오르는 얼굴만 해도 둘이나 됐다. 커트와 로젠탈. 둘 다 조만간 소령으로 진급할 것 같다더니, 그 옆에서 마냥 축하해 줄 일이 아니었다.

단호한 허니의 태도에 하딩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누구는 감히 부하가 상사의 말에 토를 다는 하극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제 부하들에게 꽤나 유한 하딩은 그저 얘를 어떡하나, 고민을 할 뿐이었다.


"...내일 임무 끝나고 다시 얘기하자."


그래서 하딩이 내린 결정은 일단 한 발 물러나주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지금 당장 허니가 이 승진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당장 내일 예정되어 있는 임무에는 변동이 없었다. 

다른 말로는 내일의 임무가 끝날 때까지 유예기간을 주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사실 별로 의미가 없는 유예기간임을 허니도, 하딩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래봤자 이곳은 명을 내리면 따라야 하는 군대였으니까.

그 사실에 허니는 작게 입술을 씹었다.




-




다음 날 임무가 끝날 때까지 주어진 유예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안 그래도 게일에 대한 소식을 얻은 게 없던 허니의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임무 출격을 위해 커트와 함께 조종석에 앉은 허니가 괜히 손목에 채워진 고장난 손목시계를 한 번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그 어떤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허니는 하늘 위로 쏘아올려진 초록색의 신호탄을 바라봤다.




-




징크스라든지, 행운의 물건이라든지, 허니는 그런 것들을 별로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임무에 나갈 때마다 손목에는 게일의 시계를 차고 나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것이 게일을 찾을 수 있기를 비는 바램을 담은 물건일 뿐이었지, 딱히 그것 없이 임무에 나가면 안 좋은 일을 당할까봐 두려움에 나오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래, 오히려 따지자면 그 물건이 게일에게로 이어지는 지표같은 역할을 하기를 바랬을 뿐이다.

그러니, 하딩이 허니에게 임무 이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자는 말을 건넬 때도 그 말에 큰 의미를 담지 않았다는 뜻이다.

누구는 그런 말들이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안 좋은 미래를 암시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허니는 그냥 그 말에 웃어 넘겼을 것이다.


"손 들어."


낙하산을 타고 땅에 발이 닿았지만, 허니는 이내 땅을 몇 번 굴렀다. 망할, 입에서 욕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허니를 발견한 독일군들은 허니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독일어에 허니는 이제는 그런 징크스를 좀 믿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손이 쉽게 들리지는 않았다. 팔 깊은 곳에서부터 고통이 올라오는 것이, 아무리 봐도 다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허니는 제 소매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안 봐도 그것은 피일 것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로 다시 한 번 독일군이 경고했다. 그리고 이내 허니는 힘겹게 두 손을 들어올렸다.

허니의 운도, 여기까지인 듯 했다.




-




"원하시는 주류라도 있으신가요?"


허니의 맞은편에 선 독일 장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질문했다. 그가 가르킨 곳에는 많지는 않았지만 고가의 주류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허니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독일 장교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이내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추천해주겠다며 브랜디를 한 잔 따라 허니 쪽으로 내밀었다.

허니는 여전히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저 독일 장교를 가만히 쳐다볼 뿐.


"허니 비 카잔스키 소령님, 쉽게 이야기를 하죠. 소령님께서 저희에게 정보를 주신다면 소령님의 명예 정도는 저희가 지켜드릴 수 있습니다."
"..."
"소령님도 아시잖아요. 아무리 소령이라고 하더라도 여자 혼자 수용소에 들어가면 어떤 대우를 받을지 정도는..."


독일 장교가 말을 흐렸다. 그 모습이 마치 정말로 허니를 걱정이라도 해주는 것 같은 모습이라 허니는 자신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허니의 웃음에 독일 장교는 미간에 힘을 줬다. 팔까지 넝마가 된 상태에서 과연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여유였다. 하지만 이내 그 인상은 풀렸다. 그래봤자 객기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희에게 소령님의 명예를 지킬 기회 정도는 달라는 말입니다."


다시 한 번 회유를 하는 듯한 말에 허니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대신 앞에 놓인 브랜디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오랜만에 보는 술이었다. 지금까지는 게일 탓에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막상 이런 상황까지 되니 무엇이 중요한가 싶었다.

결국 거기까지 생각이 든 허니는 손을 뻗어 브랜디를 단숨에 들이켰다.

독일 장교는 허니의 모습을 보며 허니가 입을 열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술잔만 비울 뿐, 그 이후에도 허니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일을 어렵게 만드시네요 소령님."


그 말과 함께 독일 장교는 제 부하들에게 손짓 해 허니를 끌고 나가게 시켰다.




-




"벅, 어제 좀 잤어?"
"응."


게일이 낮게 대답했지만 존은 그 말이 거짓임을 알았다. 게일이 며칠 전부터 새벽 내내 잠을 뒤척이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일은 존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불면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쯤, 허니와의 데이트 이후 그의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이다.

허니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죄책감을 게일은 완전히 떨칠 수 없었다.

만약 허니를 그 날 저녁 그렇게 두고 가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허니를 잃지도 않았을텐데. 

게일은 침대에 눕고 소등을 한 후에 자꾸만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지 벌써 며칠이나 지난 것이다.




-




허니가 예상했던 것보다 수용소까지는 금방이었다.

수용소 입구의 철문이 열리자, 허니의 옆에 있던 커트는 아까보다 조금 더 바짝붙었다. 그리고 붕대가 감긴 허니의 다친 팔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질문했다.


"허니, 진짜 괜찮아요?"
"좀 아프긴 한데, 뭐 어떡하겠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질문을 하는 커트에게 허니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대답했다. 죽기야 하겠어? 마치 남일인 것마냥 말을 하는 허니를 보며 커트는 허니의 등짝을 때리려다 이내 그가 환자라는 것을 기억했는지 그만뒀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입구의 양 옆에는 이미 수용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서로 아는 얼굴들이 있는지 살폈다.


"커트! 커트! 비딕!"


어디선가 커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출처를 찾아 허니와 커트 모두 눈을 바쁘게 굴렸다.

시야 끝에는 어쩐지 조금 마른 듯한 드마르코가 보였다. 항상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다니던 그 드마르코는 어디로 갔는지, 수염을 잔뜩 기른 모습을 보자하니 허니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내 머리에 벼락을 맞은 듯 했다. 드마르코가 여기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드마르코가. 게일과 함께 비행기를 탔던 그 드마르코가.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허니는 혹시라도 게일이 이곳에 있을까 싶은 마음에 시야를 바쁘게 돌렸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게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은 몇 보였다. 브레이디, 햄본.


재생다운로드IMG_0111.gif

"꿀벌!"


심지어 한 구석에서 허니의 이름을 부르는 존까지.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지만 정작 허니가 찾는 그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왜인지 조금 서러운 마음이 들려고 할 때 쯤, 허니는 누군가가 제 팔을 끌어당기는 걸 느꼈다.

그리고 저항할 새도 없이 따뜻한 온기가 제 등 뒤로 감싸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허니."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허니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도 그리고 그리던, 꿈 속에서도 그리던 목소리였으니까.


"게일?"

재생다운로드mota_p1_008.GIF

"...응."


돌고 돌아 1년 만의 재회였다.











보고싶은 거 꾸역꾸역 넣느라 내용 점프 심하고 길다...

마옵에너붕붕 벅너붕붕 게일너붕붕 오틴버너붕붕

 1717
2024.04.15 23:20
ㅇㅇ
모바일
너무 좋다... 진짜 너무 좋다는 말밖에 안 나와... 센세 사랑해...
[Code: 4ed1]
2024.04.15 23:26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둘이 다시 만나서 다행이야 나 울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bea8]
2024.04.15 23:27
ㅇㅇ
모바일
으아아아아아아ㅏㅏ 드디어!!!!!!
[Code: 0c2b]
2024.04.15 23:29
ㅇㅇ
모바일
어우ㅠㅜㅠㅠㅠㅠㅠ센세에에엑!!!!!!ㅠㅠㅠㅠㅠ
[Code: a194]
2024.04.15 23:31
ㅇㅇ
모바일
드뎌 만났다!!!!
[Code: e1c5]
2024.04.15 23:32
ㅇㅇ
드디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1년이나 걸렸네 ㅠㅠㅠㅠㅠ
[Code: b59d]
2024.04.15 23:33
ㅇㅇ
모바일
끄아 ㅠㅠㅠㅠㅠ 다시 만남 ㅠㅠㅠㅠ 드디어!!!!!
[Code: d7d1]
2024.04.15 23:33
ㅇㅇ
모바일
하 진짜 개좋아
[Code: 7359]
2024.04.15 23:34
ㅇㅇ
모바일
으어아어어어아아아아ㅏ이아 1년 걸렸다니 ㅠㅠㅠㅠ ㅅㅂ 드디어만났다 ㅠㅠㅠㅠ 오늘 하루도 센세랑 마무리할 수 있어 헹복해센세 진짜 존내설레
[Code: 6bdb]
2024.04.15 23:41
ㅇㅇ
으악 미친 드디어!!!!!!!!!!!!!!!!!!!! 와 드디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진짜 너무 사랑해 보고 싶은 거 더 꾸역꾸역 넣어줘도 돼 진짜 텍스트 한자 한자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고.... 내 센세 최고다 ㅠㅠㅠㅠㅠㅠㅠ
[Code: a5f7]
2024.04.15 23:52
ㅇㅇ
모바일
드디어 만났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길수록 좋아요..ㅠㅠㅠㅠ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하게 읽고 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add]
2024.04.15 23:55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둘이 이제 헤어지지 말자!!!!!
[Code: d9b5]
2024.04.16 00:27
ㅇㅇ
모바일
하 만났다만났다만났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ㅠㅜ
[Code: cdc3]
2024.04.16 00:35
ㅇㅇ
모바일
♡♡♡♡♡♡♡♡♡
이런 걸 사랑이라 하는 건가봐 센세
사랑해
[Code: 4e4c]
2024.04.16 00:44
ㅇㅇ
모바일
미쳤어ㅠㅜㅠㅠㅠㅠㅜㅠㅠㅠㅠㅜㅠㅠㅠㅜ드디어 만났다..ㅠㅠㅜㅠㅠㅜ
[Code: 57b4]
2024.04.16 00:54
ㅇㅇ
모바일
끄아아아ㅏ아ㅏㅏ ㅠㅠㅠㅠㅠㅠ 이제 무사히 돌아가면 되 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a12]
2024.04.16 01:37
ㅇㅇ
모바일
으아ㅠㅠㅠㅠㅠㅠ드디어 만났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제 평생 떨어지지 말란말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af1e]
2024.04.16 06:44
ㅇㅇ
모바일
으아아아아아아아 ㅜㅜㅜㅜㅜㅜ 드디어
[Code: 2fc6]
2024.04.16 07:22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드디어ㅠㅠㅠㅠㅠ
[Code: 7921]
2024.04.16 10:25
ㅇㅇ
모바일
끄아아ㅏ아ㅏㅇ아ㅏ ㅠㅠㅠㅠㅠ드디어ㅠㅠㅠ만낫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0d5]
2024.04.16 17:54
ㅇㅇ
모바일
센세 하나도 안 길어 한 글자 한 글자 아껴 읽었다고!!!!
[Code: cd34]
2024.04.16 18:09
ㅇㅇ
모바일
센세 올때까지 nn번 정주행할거야
[Code: 0262]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