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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3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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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심부지처의 하인들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매우 여유없게 하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손님들도 한 번에 십여명씩 무리를 지어 들이닥치는 것이 긴박한 분위기였다.
  위무선은 아침부터 널찍한 남청실에 대기하며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문을 모른 채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보고 있으려니 시시각각 심기가 불편해졌다. 
  남희신과 금광요가 음호부 파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후 십여일이 흘러갔다.
  지금 남청실에 모인 사람들은 금광요의 예상과 별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이 세가의 가주였고 그 외에 가끔씩 직계 자제나 부사가 섞여 있기도 했다. 
  금광요는 금자헌에게, 남희신은 섭명결에게, 그리고 위무선은 강만음에게 자초지종을 밝히고 사람을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서로의 일정을 맞추는 동안 위험한 사실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그들 외의 사람들에게는 이유를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은 단지 4대 종주들의 요청으로 운심부지처로 와서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위형. 웬 사람들을 이렇게 모은 거래요?”
  익숙한 목소리에 위무선이 돌아보자 살그머니 다가온 섭회상이 부채를 펴들고 속닥거렸다. 여인의 옷자락을 다루듯 우아하게 접선을 펼쳐드는 손이며, 부드러운 비단으로 된 겉옷을 걸친 모습에 애써 꾸민 티가 역력했지만 등 뒤에 메고 있는 거친 패도가 전체적인 조화를 망치는 것 같았다. 
  그는 의식에 참가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을 텐데, 또 적봉존에게 억지로 끌려 왔구나 싶어 위무선은 긴장한 중에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이거 금방 끝날 일이 아니죠? 무서운 사람들만 골라서 모은 것 같은 느낌인데.”
  섭회상이 불만스레 접선을 부치며 한숨을 쉬었다. 관심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것이 신기하여 위무선은 그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잠시 후 남희신이 남청실 안으로 들어왔다. 백의를 걸치고 이마에 단사를 찍은 금광요가 그의 뒤를 따르는 모습이 다소 이질적으로 보였으나 본인은 무척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남희신은 자리에 앉는 대신 중앙에 선 채로 사람들이 앉는 것을 기다렸다가 좌중에 두 번 고개를 숙였다. 이에 사람들도 한 편씩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남희신은 사람들이 모여 준 것에 대해 짤막하게 사의를 표한 다음, 뜻밖에 경고의 말을 했다.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시게 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곧 설명드리겠지만, 이 일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운심부지처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습니다.”
  마치 협박처럼 들리는 말에 사람들이 놀라기 전에 남희신이 말을 이었다.
  “몇 년 전 기산 온씨가 전역을 핍박할 당시, 위공자가 음호부를 가지고 크나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걸로 압니다. 다만 음호부는 계속 놔두기 불길하고 위험한 물건이라 파괴하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원기가 이만저만 강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부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밀리에 여러분들을 모시게 됐습니다. 이 일에는 수련의 경지가 높은 수십명 이상의 힘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 일에 손을 대고 싶지 않다는 분이 계시면, 의견을 존중해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워낙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할 사안이라 제가 한 말을 들으신 이상 음호부가 파괴될 때까지 한 분도 운심부지처를 벗어나실 수 없습니다.”
  남희신이 말을 멈추자 남청실 안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음호부!
  위무선이 불야천에서 음호부를 사용한 이래로 그 불길한 물건은 수진계 제1의 보물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 사실은 위무선이 이후로 음호부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변함이 없었다. 
  어쩌면 사일지정 후 세도가들의 힘이 불분명하게 흩어진 채로 유지되었던 것도 음호부의 존재가 암암리에 한 몫을 한 것일지 몰랐다. 세가들은 은근히 위무선이 속한 운몽 강씨의 움직임을 주시했지만 강만음은 연화오와 운몽 지역을 다스리는데만 힘을 쏟을 뿐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무척 과묵한 편이며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삼독성수의 속도, 위무선의 속도 알 수가 없는 채로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수진계의 세력권은 사일지정 직후에 멈춰버린 듯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지금도 음호부가 언급되자 사람들의 눈이 절반은 위무선에게로, 절반은 강징을 필두로 한 운몽 강씨 사람들에게로 쏠렸지만 강징은 입술도 달싹하지 않았다.
  어수선하게 웅성거리는 가운데 누군가가 손을 들어 외쳤다.
  “음호부가 왜 운심부지처에 있는 거요?”
  그러자 남희신의 곁에 있던 금광요가 한 발 나서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얌전한 듯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목소리가 특이하여 소란을 뚫고 똑똑히 들렸다.
  “음호부가 아니라 위공자가 운심부지처에 있는 겁니다.”
  쓸데없는 질문에 금광요가 응대하자 남희신은 두 손을 맞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자잘한 의구심은 빨리 풀어주는 편이 낫다는 걸 아는 금광요가 빠르게 설명했다.
  “위공자는 함광군과 친분이 깊기 때문에 운심부지처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가 음호부를 파괴하기로 결정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서 택무군께 상의를 드렸던 겁니다.”
  금광요가 말을 맺자 고소 남씨에 대한 의심이 풀린 사람들은 이내 다른 궁금증과 의견으로 옮아가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보... 아니 막강한 유물을 없애버리는 건 아깝지 않소?”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눈을 부릅뜨며 따졌다.
  “음호부는 주인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합디다. 사일지정 때에는 다행히 위공자가 선의로 사용했지만, 한순간이라도 악한의 손에 넘어간다면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파괴하는 게 옳고말고요.”
  “그렇지만...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물건인데, 다른 도움이 될 수도 있잖소.”
  “음호부가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요?”
  “원기로 가득차서 살육밖에 못하는 물건인데?”
  “그 살육이 사일지정 때 도움이 되지 않았소?”
  “가종주, 그건 너무 위험한 생각이오!”
  금세 핏대를 올리며 서로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외치는 중에 간간이 음호부를 남겨두자는 소리가 섞이자 위무선은 못마땅하게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금광요는 이것도 다 예상했던 터라 실컷 떠들게 놔두자는 듯 여유있게 기다렸다.
  그대로 크고 작은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다행스럽게도 대세는 음호부를 파괴하자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았다. 이 때 섭명결이 음호부를 파괴해야 한다고 묵직하게 말하자 시끄러운 말소리가 확 줄어들었다. 그 덕분에 섭회상이 눈치를 보며 조그맣게 말하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음호부를 남겨두자는 건 아무래도 위험한 생각이에요. 사일지정 같은 어마어마한 일이 다시 생길 리도 없고...”
  그러자 음호부를 남겨두자고 했던 사람들도 거센 반항에 마음이 꺾인 듯, 누군가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제비를 뽑아서 정하는 게?...”
  그 때 무거운 목소리가 남청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음호부는 반드시 파괴해야 합니다.”
  차분하게 중앙에 선 채로 입을 다물고 있던 남희신이었다. 물건을 내리친 것도 아니고 큰 소리로 외친 것도 아니었지만, 영력이 깊은 목소리는 마치 떠들어대던 사람들의 사이사이를 차갑게 베어버리는 것 같았다.
  남희신은 사람 좋은 웃음기도 싹 가신 채 좌중을 훑어보았다. 진지하게 누르는 듯한 눈빛이 닿을 때마다 경망스럽게 입을 놀렸던 사람들은 찔끔하며 눈을 피했다.
  섭명결이 다시 나서며 말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만 모였는데 어찌 이리 혼란스럽소? 이유야 어쨌든 운심부지처에 모였으니 남종주의 의견을 존중하고 질서를 지키시오. 그리고 다시 말해 두지만, 청하 섭씨는 음호부를 파괴하는 데 찬성하오.”
  가문의 힘은 둘째치고 단신의 몸으로 최강자의 힘을 뽐내는 섭명결이 남희신의 의견에 무게를 싣자 더 이상은 음호부를 보존하자고 우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로부터 반 시진이 지났을 때에는 음호부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확고하게 의견이 모아졌다. 
  남희신은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자,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설명할 수 있는 만큼만 간략하게 음호부를 파괴할 방법을 설명했다. 
  혹시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를 막론하고 가장 힘 있는 가문의 주인들이 다 모인 자리였다. 달리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무슨 모의를 할 지도 모르는데 발을 빼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간신히 이야기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더니 도중에 또 한 번 시끄러운 소란이 일었다. 갑작스레 터진 일에 대한 불만을 언급하다가 해묵은 문제가 튀어나와버린 것이었다.
  ‘선독’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모든 사람이 떠들던 것을 멈추고 발언자에게 시선을 모았다.
  금광선이 평소 선독이 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던 것은 모두가 아는 바였다. 만약 난릉 금씨의 주인인 금자헌이 그 말을 했다면 적이 의심스러웠겠지만, 발언자는 의외로 청하 지역의 사람이었다. 그것도 서생같이 마르고 꾸밈이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의 행색을 보고 일단 경계심이 풀린 사람들은 이내 더욱 열을 내어 떠들기 시작했다. 음호부 얘기를 할 때보다 더 열렬한 기세였다.
  다년간 금광선은 물밑 작업을 하며 선독의 존재에 대해 은근히 사람들의 알력싸움을 부추기고 무척 신경을 쓰이게 만들어 놓았다. 
  금광선이 멀쩡할 때만 해도 선독 문제가 청담회에서 대두될 때마다 유리한 난릉 지역 사람들은 눈을 빛냈고, 그 외의 지역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 애써 외면하려던 게 지금까지의 형국이었다. 
  금광선은 단순히 권세를 잡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기산 온씨가 몰락한 후 여러 가지 지역 문제가 불거지고 서로 충돌하는 일이 잦아지며 힘이 없는 가문들은 궁지에 몰려서, 힘이 센 가문은 세력을 공고히 하고 싶어서 관심을 주었다. 
  그러던 중 알만 쏙쏙 털어낸 듯 강한 가문의 주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음호부 같은 큰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마치 당장 선독을 뽑기라도 할 기세였다.
  순식간에 사람들은 이 문제에 달려들며, 미심쩍어하는 소수를 상대로 여러 가지 문제를 들추고 선독의 당위성을 피력하며 시끄럽게 싸워대었다. 
  음호부를 부수자고 모였는데 난데없이 선독 얘기는 왜 하느냐는 볼멘 소리도 금세 다수의 목소리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총지휘자가 없으니 음호부고 선독이고, 좀처럼 의견이 모아지지 않잖소!”
  “그렇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선독을 뽑자는 겁니까? 여기 없는 가문 사람들의 의견은 어쩌고?”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오.”
  “왜 안 되오? 뽑아도 상관 없지 않소. 나는 선독으로 택무군을 추천합니다.”
  누가 이렇게 말하자 달음박질이라도 하듯 적봉존, 금종주, 강종주 하고 수십개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남희신은 엄숙하던 운심부지처의 일부가 이토록 아수라장이 되는 것을 보고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떠올랐다. 수진계에서도 가장 강한 사람들이 모여서 영력을 겨루듯 떠들어대니 일반인은 이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기절할 지경이었다. 위무선은 아예 귀를 막고 돌아선 채 남망기에게 뭐라고 하는데 잘 들리지 않으니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소란에 익숙한 금광요는 폭풍처럼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도 택무군 남희신의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잠시 후 들을만큼 들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는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자, 자! 그만들 하시지요! 일단은 음호부를 파괴하기로 결정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이까지 오시느라 피로하실 텐데, 오늘은 이만 쉬는 게 어떨는지요?”
   

  


  저녁이 가까워지자 불그스름한 태양빛이 안개에 감싸이며 희미하게 흐려져갔다.
  남청실을 나간 손님들은 운심부지처의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고 시치미를 뗀 듯이 조용해졌지만, 기분 탓인지 사방이 고요해진 후에도 어수선한 느낌이 남아 떠도는 것 같았다.
  “어째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구나.”
  겨우 한실로 돌아와서 쉴 수 있게 된 남희신이 조금 진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금광요는 그가 피로해 보이는 만큼 돌려 말하지 않고 간결하게 물었다.
  “형님... 혹시 선독이 되는 건 싫으세요?”
  남희신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저 운심에 파묻혀 금광요와 더불어 평화롭게 보내고 싶다는 뜻이리라. 물론 그것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기는 했다. 
  금광요는 일찌기 남희신이 선독이 되고 그를 보좌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필요에 의해 여러 주인을 섬겨왔다. 섭명결, 온약한, 금광선. 
  하지만 택무군 남희신의 손 아래에서 큰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되고 즐거울 것인가.
  그러나 가장 현명하고 선한 판단을 할 만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초야에 묻히기를 원했다.
  “형님께서 선독이 되시면 감시탑 계획을 실현시킬 수도 있겠네요.”
  “아요, 너 정말 그 일을 하고 싶은 거냐?”
  “꼭 감시탑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형님, 아시다시피 근래에 요귀들이 심하게 날뛰고 있습니다. 땅을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금광요가 처음 감시탑 계획을 세웠을 때에는 백성을 구제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금광선을 지존으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자연히 세상의 약점을 이용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고, 덕분에 그는 중심에서 떨어진 외곽 지역들이 빠르게 좀먹어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알게 되었다. 
  귀괴가 날뛰어도 도움을 청할 데가 없는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살던 곳을 버리고 떠났다. 그러면서 인구가 점점 밀집되거나, 일부 사람들이 도적떼로 변모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일들이 자꾸 되풀이되면서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평민들도 뭔지모를 위협이 서서히 커져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금일 사람들이 갑자기 선독이라는 단어에 반응해서 심각하게 떠들어댔던 것도 이런 위화감 때문일지 몰랐다.
  “그런 문제가 쌓이다 보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마지막엔 대흉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역사는 항상 그런 식으로 되풀이되어 왔지요.”
  “나더러 선독이 되라는 뜻이냐?”
  남희신의 반문에 금광요는 가볍게 웃었다. 
  자신의 희망은 그저 한 번 꾸어 보는 꿈일 뿐이었다. 현란한 말솜씨로 죄책감이나 의무감을 느끼게 해서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그런 일을, 어떻게 감히 남희신에게 하겠는가. 금광요는 단지 말이 나온 김에 설명을 한 것뿐이었다. 도리어 남희신의 오해를 사는 게 싫었던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가렸다.
  “아닙니다. 그냥 아는 대로 말씀드린 거에요. 오히려 사람들이 등을 떠밀어서 하기 싫은 일을 맡게 되실까봐 걱정되는걸요.”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느냐.”
  ‘당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누가 좋은 사람이란 말입니까?’
  조용히 웃는 남희신을 보며 금광요가 속으로 실소를 했다. 
  남희신은 대화를 끝으로 정말로 흥미가 없는 듯 글을 쓰기 시작한 금광요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선독 따위에는 추호도 욕심이 없었지만, 금광요의 말을 듣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금광요가 말한 현상은 북서쪽 내륙으로 갈수록 심해졌으므로 고소의 남희신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쉽게 넘길 일은 아니었다. 한편으로 그는 금광요가 감시탑 계획에 생각보다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다.
  당일 남청실이 난장판이 되었을 때, 소란의 중심에 있던 금광요에게는 오히려 생기가 돌던 것을 남희신은 예리하게 보고 있었다.
  고소 남씨는 수선의 성격이 다른 어떤 가문보다 강해 숱한 선배들이 홀로 고행을 하거나 멀리 떠나가 버리곤 했다. 속세를 떠나 선경에 드는 것은 최고로 고귀한 일이지만, 단순히 세상에 염증이 나서 도망을 치는 것과는 구분지을 필요가 있었다.
  남희신에게 있어 금광요는 마치 세상에 갓 걸음을 떼기 시작한 어린아이같은 존재였다. 이 아이는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제대로 맛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선독이 된다면, 금광요는 자연히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이 남희신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는지.
  남희신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출신과 능력을 갖췄으면서도 언제나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어린 시절에는 남희신도 다른 문하생들과 마찬가지로 수련을 거듭해 선경에 오르는 것을 이상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자신이 세상을 알고, 인간의 번뇌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금광요라는 한 인간을 마음 속에 품으면서 겪게 된 미칠듯한 괴로움이나 사랑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금광요와 마찬가지로, 아직 속세를 떠나려면 멀었다는 뜻이 아닐까. 
  “피곤하지 않으냐? 그만 쉬자꾸나.”
  그의 말에 돌아보며 미소를 짓는 금광요의 얼굴은 아름답고도 평화로웠지만.
  남희신은 아직도 충분히 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희신광요 망기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