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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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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추운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올해는 조금 선선해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겨울을 싫어하느냐?”
  금광요가 웃었다.
  “형님, 가난한 사람들은 겨울을 좋아할 수가 없어요.”
  “하긴 그렇겠구나.”
  금광요는 변함없이 창가에 놓여 있는 작은 금모란 화분을 바라보았다. 이미 꽃은 다 져버렸고 새파란 잎사귀가 풍성하게 돋았는데 단 한 장의 잎도 빛이 바래지 않고 싱싱했다.
  “형님.”
  “음?”
  “저도 사실은 운심부지처가 지루한 곳이라고 생각했답니다.”
  남희신이 말없이 웃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 신선처럼 살다가 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고소 남씨의 조사님처럼요.”
  이 말을 들은 남희신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금광요는 알지 못했다. 그가 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남희신의 얼굴에는 다시금 잔잔한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
  “이리 와 보거라, 아요.”
  금광요가 다가오자 남희신은 서안 아래에서 길다란 함을 꺼내었다. 함을 열고 속지를 벗기자 패검이 들어 있었다. 장식이 적어 수수하지만 연한 남빛이 무척 아름다운 검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사용하던 검이란다. 앞으로 어검할 때 쓰도록 해라.”
  영력을 주입해야 날이 서는 한생은 어검을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그래서 금광요는 어검시에 사용할 평범한 패검을 하나 더 가지고 다니곤 했다.
  남희신이 사용하던 검이라니, 기쁘긴 하지만 예의바르게 사양의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요하게 바라보는 남희신의 애정어린 시선과 마주치자 그만 입이 붙어버린 금광요는 얌전하게 받아들었다.
  금광요는 말없이 검을 쓰다듬으며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금방 그가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어제처럼, 오늘처럼 언제까지나 남희신과 함께하며 일생을 보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여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꿈이 아닌가 싶었고, 부드러운 남희신의 얼굴을 보고 그가 뿌려주는 애정을 느끼면 다시 안심하고 행복해졌다. 이제까지 겪어왔던 일들, 해 왔던 일들, 하려던 일들도 깡그리 잊었고, 이제는 잠시나마 난릉으로 돌아가는 일조차 귀찮고 싫을 정도였다.
  금광요는 검을 살짝 뽑아서 뒤적여 보았지만 이름을 새긴 각인을 찾을 수 없었다. 
  “형님, 이 검의 이름은요?”
  “글쎄다... 최고로 뛰어난 검은 아니지만 나는 그 검을 무척 좋아했단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원한다면 네가 이름을 짓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형님.”
  남희신은 숨김없이 좋아하는 금광요를 바라보며 묵묵히 미소를 지었다.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남희신이 눈을 떴다. 
  마지막으로 금린대에서 금광요를 데려왔을 때 남희신은 스스로의 마음을 깨달았다. 친동생에게조차도 지나친 간섭은 삼가했던 자신이 어째서 금광요의 일에는 그토록 열을 올렸는지, 그의 고통에 집착했는지.
  남희신은 누구든 쉽게 사랑해버리는 사람이었지만, 특별히 누군가를 더 사랑해 본 적은 없었다. 이제껏 그래왔기에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금광요에 대한 마음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하나의 계절이 물처럼 흘러가도록 그는 금광요에게 기탄없는 사랑을 쏟아부었다. 지극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예쁘게 웃는 얼굴을 곧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밤이고 낮이고 금광요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이따금씩은 그에게서 나는 은은한 향기까지 풍기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 사랑은 심한 괴로움을 가져다 주었다. 
  남희신은 고통스럽게 웃었다. 살아있는 신선이라고까지 칭송받던 그는 이제 처음으로 인간의 진짜 번뇌를 알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해가 저물기 전에 금광요와 남희신은 으레 산책을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한실을 나오기 전 낯선 장소를 바라보듯 뒤를 돌아보았다. 방에는 금광요의 체취가 희미하게 머무르고 있었다.
  

 
  금광요는 남희신보다 한발 앞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약속한 듯 자갈 깔린 길을 벗어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어디로 갈까요?”
  “오늘은 조용한 곳으로 갔으면 싶구나.”
  산문 근처의 샛길을 통해 올라가면 야생화가 수북하게 핀 조그만 들판이 나왔다. 
  어쩐지 남희신은 하얀 의복에 풀물이 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무더기 속으로 자꾸만 들어갔다. 
  “형님...?”
  금광요가 부르자 남희신이 흐드러지게 핀 들꽃 사이에 선 채 미소를 지었다. 
  금광요는 왠지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뛰었다.
  “아요. 너 아직도 마음에 둔 사람은 없느냐?”
  “마음에 둔 사람이라니요...?”
  “일전에 진낭자를 만나보았다. 역시 훌륭한 여인이었지. 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만.”
  금광요는 소매 속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형님.”
  “나는 혹시 네가 일부러 마음을 닫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있는 거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요. 네가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한다 해도 나는 이해한단다. 그렇지만 들어 봐라. 너도 어머님을 소중히 여겼으니, 피붙이란 게 어떤 건지 알고 있을 거다. 네가 부인을 맞아들이고 자식을 갖게 되면 그 때는 결코 마음이 허하지 않을 거야.”
  “...”
  금광요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깜박이며 남희신을 쳐다보았다. 그는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남희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의 지난 언행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 편을 향한 눈빛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금광요는 순식간에 차갑게 변한 말투로 말했다. 
  “...그만두십시오, 형님. 제가 신경쓰시지 말아달라고 이미 부탁 드렸는데...”
  그러나 남희신은 물러나지 않고 완강하게 말했다.
  “사람이 옆에서 고통스러워하는데 어떻게 못본체 하느냐? 아요, 나더러 너를 모른체 하라고? 내가 정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형님, 저를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소중하게 생각한다.”
  금광요는 미칠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형님. 역시 제가 귀찮으셨던 거군요?”
  이 말에 남희신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커다란 두 손이 금광요의 어깨를 단단히 잡더니, 그가 아무리 눈을 피하려 해도 자신을 쳐다보도록 만들었다.
  “아요.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나와 한실에 처박혀서 네 인생을 다 흘려보내게 둘 순 없단 말이다. 나는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인데, 알고 보니 나 자신이 장애물이었어.”
  금광요는 기가 차서 남희신을 노려보았다. 답답한 마음이 북받쳐서 자칫하면 날카로운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남희신은 드물게 보이는 금광요의 반항적인 태도까지 감싸듯 더욱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나는 얼마나 너를 아끼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정말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거란다. 너는 꼭 내 말대로 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네가 하는 거다.”
  남희신은 금광요에게서 손을 떼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아무래도 이 말만은 쉽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미 결심은 섰다. 이만큼 오래 바라보았으면 충분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바라보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남희신은 반항적인 눈빛으로 쳐다보는 고운 이에 대한 집착을 물리치려는 듯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이 곳을 떠나거라.”  
  금광요가 망연하게 그의 말을 반복했다.
  “떠나라고요?... 형님을요?”
  “아요. 너와 나는 형제다.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아.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다. 그러니까 약속해 다오. 이제부터는 네 또래의 사람들을 만나 네가 신뢰하고 평생 함께 할만한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금광요는 천천히 머리를 젓다가 이내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남희신은 당당하게 서서 유약한 부분이라고는 한 군데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여전히 부드럽게 바라보는 눈빛은 확연히 금광요를 밀어내고 있기도 했다. 
  금광요는 꼼짝도 할 수 없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주먹을 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가 피가 날 것 같았다.
  이럴 수는 없다. 이 남자는 분명 나를 사랑한다. 나에게 욕정하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지?
  그렇게나 사랑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제안을 하지?
  -되풀이되는구나.
  금광요는 문득 떠오른 어떤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사랑했던 이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믿는 최고의 것을 주려고 했다.
  “아요. 나는 결코 너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증표로 내 검을 주었다. 그걸로 부족하다면 네가 원하는 어떤 일이라도 해서 약조하마.”
  금광요는 귀를 막으며 주저앉았다.
  그 동안 남희신을 덫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전혀 아니었던 거다.
  남희신이 염려하며 다가왔지만 그는 이제 자신이 얼마나 망가지든, 발악을 하든 전혀 받아주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대로 끝까지 행동하며 자신을 바꾸어버리고야 말 것 같았다.
  금광요는 애초에 오산을 한 것을 깨달았다.
  그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만 하면 만사가 잘 될 줄 알았는데. 이 남자는 자신의 욕심만 가지고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금광요가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너무 소리가 작아 남희신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일어나라. 이러지 말고 차근차근 이야기해보자꾸나.”
  금광요는 제 팔을 잡고 일으키려는 남희신의 손을 더듬어 잡더니, 핏기가 없어진 얼굴을 들었다. 
  그는 막 남희신을 사랑한다고, 오로지 그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라고 외칠 뻔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깨닫고 혀가 굳어버리고 말았다. 
  금광요는 거짓에는 얼마든지 배신당해도 상처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희신에게 진실을 말한 뒤에 거부당한다면. 
  아마 남희신을 조종하여 그의 편에서 구애하도록 만들려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지 모른다. 그 때는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마음 약하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자신의 이해를 터무니없게도 멀리 벗어나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진심을 털어놓는다 해도 받아들여질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요, 도대체 뭐가 그리 겁이 나서 그러느냐?”
  금광요는 안타까운 듯이 말하는 남희신을 쳐다보았다. 어지러운 눈동자가 빠르게 남희신의 전신을 훑었다. 말을 해 보려 해도 대체 뭐라고 해야 할 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바래어버리기만 할 뿐이었다.
  남희신은 금광요가 계속해서 가련하고 혼란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그만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그토록 마음이 흔들리는 아픔을 느끼고 무섭도록 갈등하는 그 때, 금광요의 향기가 훅 끼치며 하얗게 질린 얼굴이 다가왔다.
  잠시 와서 닿았던 입술이 떨어지자 남희신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윤기가 돌 것 같은 커다란 눈망울, 떨리는 붉은 입술을 보는 것도 잠시.
  금방 저질러버린 행위로 힘이 다 빠져버린 금광요는 조그맣게 웅크렸고, 다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금광요를 부축하던 남희신은 그가 몇 번 무릎이 꺾이며 제대로 걷지 못하자 그대로 안아올렸다. 놀란 금광요는 허둥대며 어디다 손을 둬야 할 지를 몰랐다.
  남희신이 말했다.
  “팔에 힘이 남았으면 나를 안아라.”
  “혀... 형님, 사람들이 볼 겁니다...”
  “눈이 있으니 보겠지.”
  금광요는 목을 움츠리며 영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자 남희신은 작달막한 몸을 감싸며 더욱 단단하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막무가내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금광요는 꼼짝도 할 수 없이 안겨 가며 간간이 남희신을 훔쳐보았다. 부드럽고도 단호한 얼굴이었다.
  경내로 들어서자 해가 저물 무렵이라 어수선하게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형님!”
  금광요가 조급하게 속삭였다. 남희신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로 걸어들어갔다. 금광요는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그만 도망치듯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남희신이 금광요를 안고 지나가자 사람들은 당연히 그가 다치거나 기절이라도 한 줄 알았다. 그러나 내막을 물어보려던 사람들은 어수선하게 물러나며 차마 말을 붙이지 못했다. 남희신의 태도에 깃든 원인모를 강경함이 섣불리 다가가기 어렵게 했다. 
  금광요를 안은 채로 한실로 들어선 남희신은 그를 침상 위에 내려놓았다. 
  금광요는 자유롭게 놓여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멀찌감치 거리를 띄웠다. 
  남희신이 시선을 맞추고 싶은 듯 살뜰하게 바라보았지만 금광요는 싹둑 외면하고는 말이 없었다. 
  그가 영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아 보이자 남희신이 물었다.
  “아요.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느냐?”
  금광요는 하얗게 질린 채 보일락말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희신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나만 네 곁에 있으면 된다고 했던 게 그런 뜻이었구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분명 기쁘고 안심이 되어야 할 텐데, 금광요는 오히려 남희신이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바늘에라도 찔린 듯 몸이 떨렸다. 
  “그런데 왜 그렇게 겁을 내느냐? 아요, 말 좀 해 봐라. 불안하구나.”
  남희신은 금광요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의 긴장이 더욱 심해지는 것이 눈에 띄자 발을 멈추었다.
  “네가 그렇게 나오니 내가 혼란스럽다.”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형님의 입장까지 생각해드릴 수가 없어요.”
  금광요는 저도 모르게 어른스럽지 못한 말투로 웅얼거리며 넋이 나간 듯했다.
  남희신은 한 번도 자신의 속내를 알아맞힌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 하는 거짓말마다 속아넘어갔다. 그런데 어째서 제 쪽이 남희신의 손아귀에 꽉 잡혀 버린 건지, 금광요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상대로라면 자신의 손아귀에 남희신이 걸려들어 있어야 하는 건데. 
  어쨌든 더 이상은 간계 같은 걸 부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능히 할 수 있는 협박, 회유, 거짓말... 감히 그 중에 어느 하나도 남희신에게 들이댈 수가 없었다.
  그는 이윽고 체념한 듯 힘없는 말투로 물었다.
  “형님, 정직하게 대답해 주시겠어요?”
  “내가 너에게 정직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느냐?”
  그 말에 금광요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사실은 우스운 게 아니라 가슴이 꽉 눌린 것처럼 답답했다.
  “형님, 저는 형님께 어떤 사람인가요?”
  남희신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요...?”
  그러자 남희신이 다시 걸음을 떼어 왔다. 금광요가 주춤하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번에는 남희신이 도망치는 몸을 잡아 단호하게 팔 안에 가두고 가볍게 얼굴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다가온 남희신의 입술은 단지 금광요의 입술을 부드럽게 누를 뿐이었으나 그 따뜻한 온기로도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금광요는 전신에 전율이 일어나며 기절할 것만 같았다.
  “...대답이 되었느냐?”
  입맞춤을 받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품에서 흘러나가 버릴 듯하자 남희신은 금광요를 안은 팔에 힘을 주어 자신의 몸에다 단단히 붙였다. 
  “아요, 이제 네가 나를 안심시켜 다오. 대답이 되었느냐?”
  제대로 생각했다기보다는 재촉에 못이겨 기계적으로 답을 한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금광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못 견디겠다는 듯, 가늘게 떨리는 손이 남희신을 살짝 밀어내었다. 그런 다음 그는 남희신의 가슴을 바라보며 움찔 놀라는 것 같았다. 
  남희신이 내려다보자 금방 손이 닿았던 가슴 부분에 피가 묻어 있었다. 얼른 금광요의 손을 잡고 들여다보니 어찌나 주먹을 세게 쥐고 있었는지 손바닥과 손톱이 피투성이였다. 
  남희신은 한숨을 쉰 다음 약 상자를 찾았다. 금광요는 마치 말썽을 피운 어린애처럼 그에게 손을 잡힌 채 얌전히 끌려갔다.
  “아무래도 너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면 자해를 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구나.”
  남희신이 언짢은 얼굴로 약을 발라 주며 말했다. 금광요는 멍하니 그에게 손을 맡기며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손톱 자국 정도로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칼을 쥐고 어디든지 그어버리고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님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요. 너 정말 괜찮은 거냐?”
  남희신이 염려스럽게 물으며 금광요의 이마를 짚었다.
  금광요는 어떻게든 사고를 해 보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만, 남희신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성적으로는 이만 돌아가야겠다고 말하고 도망이라도 쳐야 할 듯했지만, 속마음으로 말하자면 그로부터 한 치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바로 그의 곁에 있는 지금도 불안하여 죽을 것만 같았다.
  남희신은 금광요의 복잡한 마음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근간의 피로가 넋이 나간 얼굴 표면에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근심스러웠다.
  “얼굴빛이 너무 나쁘다. 쉬도록 해라.”
  남희신이 단호하게 말하고 침상으로 가 이불을 펴기 시작하자 우두커니 서 있던 금광요가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형님께서는요?”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니 염려 말고.”
  금광요는 얼떨떨한 채 남희신이 시키는대로 침상에 몸을 눕혔다. 
  남희신이 이불을 덮은 다음 꼭꼭 여며 주며 말했다.
  “아요. 이제 다 괜찮아질 거다.”
  남희신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저 쪽으로 가버린 후 조금 있으려니 혼란스러운 귀에 부드럽게 고금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광요는 까닥하면 격정적인 감정에 휘말려 부서질 것만 같은 위화감에 싸여 있었다. 
  그러나 살뜰한 남희신의 행동이 전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마음을 감싸듯 다정하게 울리는 현음을 듣고 있으려니 주술에 홀리는 요마처럼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금광요는 거부하지 않고 정신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괜찮아질 거라는 남희신의 목소리에 매달렸다.





희신광요 망기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