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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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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무선은 꼬박 3일 동안 돌아가지 않았다.
  남망기를 찾으러 나갔다가 돌아와선 홧술을 마시고,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찾으러 나가는 것이 계속 되풀이되던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술 마시는 것도 지친다 싶었다. 시들해진 위무선은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다가 충동적으로 주점을 나섰다. 
  오늘 마신 술은 많지 않았지만 그간 쌓인 숙취로 발이 무거웠다. 그러니 강징이 마주치자마자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 반가울 리 없었다.
  “너 뭐하다 왔어?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위무선은 실눈을 뜨며 손사래를 쳤다. 
  “소리지르지 마... 조용히 좀 말해.”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손님이 왔다고.”
  “손님?”
  위무선이 몽롱하게 대꾸하자 강징은 말로 하기도 싫다는 듯 그의 팔을 움켜쥐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위무선은 끌려가며 돌바닥에 걸음을 뗄 때마다 머리가 치받혀서 얼굴을 찡그리며 궁시렁거렸다.
  “아야, 머리가 울린다고. 좀 천천히 가!”
  강징은 청당으로 들어서며 짐승이라도 잡아온 것처럼 위무선을 던져넣었다. 
  비틀거리는 위무선의 시선에 제일 먼저 잡힌 사람은 의자에 앉아 있는 온정이었다.
  “온낭자? ......택무군??”
  손님이 왔다는 얘기가 거짓은 아니지만, 어째서 이런 이상한 조합이냐고 말하려던 위무선의 눈에 낯선 모습 하나가 더 들어왔다. 
  남자는 여태 본 적이 없는 빛깔의 짙고 수수한 옷을 입었고 키가 훤칠했다. 어느 가문의 선사인가, 하던 위무선의 눈에 하얀 손이 움켜잡고 있는 피진이 먼저 들어왔고, 다음으로는 꿈에서까지 나타나던 얼굴이 돌아보았다.
  “......남잠.”
  입 속으로 중얼거린 말은 제 귀에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대신 손에서 미끌어져내린 호리병이 산산이 부서졌다.
  “위영.”
  몇 년이나 실종되었다가 불쑥 나타나 놓고도 무덤덤한 얼굴, 과묵한 사내는 분명 남망기였다. 
  “너... 너...”
  위무선은 이를 악물며 눈에 눈물이 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욕을 퍼붓고 싶었다. 
  그러나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정도, 남희신도, 강징도 마찬가지였다.


  얼어붙은 것 같은 침묵을 깬 사람은 남망기였다. 
  그가 위무선에게 다가와 팔을 잡더니 말했다.
  “가자.”
  “가다니... 어디를?”
  “어딜 간다는 겁니까?”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강징에게 남희신이 대답했다.
  “잠시 다녀올 데가 있습니다. 곧 돌아올 테니 걱정 마십시오, 강종주.”
  “하지만 어딜 간다는 건데요?”
  “죄송하지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강징은 영문을 몰랐으나 남희신의 태도가 너무 단호하여 더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밖으로 위무선을 끌고 나온 남망기가 그대로 그의 허리를 휘감더니 피진을 타고 날아올랐다. 역시 말이 없는 남희신과 온정이 그 뒤를 따랐고, 혼자 남은 강징만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 사라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위무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단단히 안고 있는 남망기가 정말로 돌아온 것인지 믿을 수가 없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남망기는 조금 야위어 보였는데 어두운 빛깔의 의복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소박한 옷차림은 매무새가 단정했으나, 항상 옷자락과 함께 하늘하늘 휘날리던 말액이 없었다. 익숙한 단향목 향도 풍기지 않아 낯선 느낌이 들었다.  
  “남잠.”
  “응.” 
  뭐라 해야 할 지도 모르면서 괜시리 속삭이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위무선의 머릿속에 조리 있는 생각은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 남망기가 아래쪽을 굽어보더니 초목이 무성한 숲 한가운데로 내려갔다. 
  일행이 내려선 장소는 평범했다. 단지 길조차 나 있지 않은 것이 아무도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산중턱일 뿐이었다.
  온정은 말이 없었고, 남희신이 다가왔다. -그는 왜 이렇게 근심스러워 보이는 걸까? 
  이윽고 위무선에게서 십여 발짝 정도를 물러난 남망기가 말했다.
  “위영. 공격하면 안 돼.”
  “공격?”
  남망기가 천천히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손 위로 부적이 한 장 나타나더니 화르륵 타올랐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불길이 번쩍 하고 사라진 뒤, 놀랄 틈도 없이 위무선은 뒷목이 싸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고요하고 음산한 가운데 남망기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비치고 있었다. 음기가 충만한 위무선이 감각만으로도 그것을 알아보자 남망기가 담담한 목소리로 다시 경고했다.
  “가만히 있어, 위영.”
  흉시는 남망기의 뒤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온전히 불러낸 자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위무선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랐다.
  사술이라면 치를 떨던 남망기가 시체를 부리고 있다니?
  위무선은 누군가가 의문을 풀어주기를 바라며 다른 두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남희신과 온정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 것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윽고 온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위무선. 기대는 하지 말고 들어. ...놀라지도 말고.”
  놀라기는 이 이상 어떻게 더 놀랄 수 있단 말인가.
  온정이 입을 떼자 위무선도 말문이 트이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무슨 기대요?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남잠, 왜 네가 시체를 조종하고 있어?”
  온정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매섭게 말을 잘랐다.
  “그런 얘긴 나중에 해! ...아직 확신은 못하지만, 네 금단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뭐라고요?”
  남망기에 온정, 택무군까지 나타나더니 이런 산중으로 끌고 와서는, 남망기가 흉시를 불러내질 않나. 그리고 하는 말이 금단이라고?
  위무선은 금단을 살린다고 하면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뜸 온정을 노려보았다. 그녀가 혹여 강징 이야기를 꺼낼까 불안했다.
  하지만 온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바로 흉시의 금단을 옮기는 거야.”
  


  과거 온정이 연화오에 머무르고 있을 때, 남망기는 이미 그녀에게 금단을 되살리는 법이 없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물론 온정은 이미 검증까지 마친 한 가지의 방법을 알고 있었으나 남망기에게 말하지 않았다. 첫째는 위무선이 금단을 옮긴 얘기를 절대로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온정 본인이 그 일을 후회하기 때문이었다. 
  온정은 위무선이 온녕을 구해준 다음에야 심경의 변화를 겪었지, 금단을 옮길 당시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뜻밖에 여러 사람이 도와 주어 무탈하게 넘겼지만, 위무선이 자기들을 도와주려 했을 때에는 그 손에 피를 묻힐 각오까지 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온정은 위무선 본인의 부탁이었다 해도 그의 금단을 빼낸 일이 후회스러웠다. 당시 그가 받았던 고통을 돌이켜 보면 더욱 괴로웠다. 
  그러니 다시 그런 일을 겪는 건 사양이었다. 이 일은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이로울 것이 없었다. 결국 금단이 없어지면 없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인 거다.
  하지만 남망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장서각에는 분명 뭔가 있을 거라 믿고 금서실에 들어가서 닥치는대로 파헤쳤다. 
  문제는 남망기가 금단의 사용자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서책에 정말로 도움되는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금단이나 의술에 관련된 책을 모조리 끌어모아 온정에게 가져갔다.
  남망기가 가져온 고소 남씨의 금서에는 온정도 얼마간 희망을 품었다. 그녀는 여전히 사람에서 사람으로 금단을 옮기는 방법은 함구한 채로, 남망기와 함께 침식도 잊고 장서를 들이팠다. 
  그렇지만 산더미같은 고서 안에도 금단을 살리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온정이 알고 있는, 타인의 금단을 옮기는 방법조차도.  
  마지막 한 권까지 살펴본 후 두 사람은 너무 실망스러워서 제각가 자리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때 온정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가능하기만 하면 요수의 수공이라도 빼다가 심어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그 후 남망기가 말없이 떠났기에 온정은 그가 포기했다고 여겼다. 고소 남씨의 금서실까지 파헤쳤으니 더이상 방법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실종된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 한참만에 다시 나타난 남망기가 하는 말이, 금단이 있는 흉시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온정이 담담한 이유는 이미 놀랄만큼 놀란 뒤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녀의 관심사는 과연 흉시의 금단을 옮기는 것이 가능한지, 옮긴다면 인간에게 융합될 수 있는 건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흉시는 마치 남망기의 그림자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없이 서 있었다.
  금단이 있는 흉시는 극히 드물다.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안혼례를 받기 때문에 죽어서 시체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만약 가능한 경우라도 이렇게 기운이 정련된 악귀는 여러 가지로 복잡한 조건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다.  
  과연 남망기의 뒤에 서 있는 흉시가 무시무시한 것은 원념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저 흉시에게... 금단이 있다구요?”
  “있습니다.”  
  이번에는 남희신이 대답했다.
  “제가 이미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의...”
  그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금단이 미숙하기는 하지만 산 자의 것과 별다르지 않더군요.”
  위무선은 새삼 놀라운 마음에 남희신을 쳐다보았다. 그가 이런 일에 가담한 것 또한 개벽할 일이었다.
  사실 남희신은 돕겠다고 약속했어도 마음 편한 상태는 아니었다.
  운심부지처에 낯선 심부름꾼이 와서 불러내기에 따라가 보았더니 천만뜻밖에 남망기와 재회했다.
  남망기는 간략하게 그 동안 있었던 일과, 자신이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너무 간략한 나머지 남희신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걸린 시간이 훨씬 길었을 정도였다.
  남희신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남망기를 잡아다가 운심부지처에 감금시킬 수도 없었다. 
  그렇게 원리 원칙적이고 고집이 센 남망기가, 오로지 위무선의 금단을 찾기 위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흉시를 찾아서, 사술로 제 손까지 더럽혀가며 떠돌아다녔으니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심지어 남망기가 남희신을 찾은 이유도 자신의 형장이 금단을 감별하는 데 최고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남희신은 그가 제정신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어째서 이 괴팍한 동생은 사람을 사귀는 것조차 남들처럼 평범하게 할 수 없는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속이 터졌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함이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 두 형제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겠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음기의 세계에 익숙한 위무선에게는 흉시에게 금단이 있다는 사실도, 그것을 자신에게 옮길 수 있다는 얘기도 크게 놀랍지 않았다. 
  흉시의 금단이 미숙하다는 것도 그럴 법한 얘기였다. 본래 시체가 흉시로 변하면 살아있을 때보다 몇 배나 강해지게 마련이다. 만약 완전하게 금단을 맺은 이가 흉시로 변했다면, 남망기가 혼자서 그 힘을 억누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흉시의 금단이라니.
  “성공할런지는 해 보지 않으면 몰라. 옮기고 나서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고. 그래도 할래?”
  온정이 최종적인 질문을 던졌다.
  금단을 되찾는다! 
  그 이상의 유혹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위무선은 말없이 선 남망기만 줄기차게 바라보았다.
  -내가 갈 때까지 연화오에 있어.
  아무도 그를 찾지 못했던 2년 동안, 남망기는 금단을 지닌 흉시를 찾아서 떠돌아 다녔던 것이다. 위무선에게는 그만두라고 하며 다투었던 사도를 걸으며.
  예전처럼 확률이 반반이 아니라 10분의 1도 안 된다 하더라도, 독약을 먹으라 해도 거절할 수 없었다.
  “할게요.”
  
    

  예전에 금단을 옮길 때 위무선은 금단의 안정성을 위해 극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깨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흉시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이번에는 남희신의 도움을 받아 옮기는 과정만은 외려 수월했다. 
  금단이 위무선의 몸 속으로 옮겨간 뒤 남희신은 꼼꼼하게 그것을 살펴 보았다. 금단은 원기에 오염되지 않았고, 어떤 불온한 기운도 끼치지 않았다. 다만 흉시의 안에 있을 때보다 많이 약해졌을 뿐이었다.
  위무선 스스로도 제 몸 안에 자리잡은 금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처럼 몸 끝을 뚫고 나가 하늘이라도 찌를 듯 힘차게 뻗어오르는 영력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금단은 금단이었다. 그래도 그는 기쁘기보다는 다시 태어난 듯 얼떨떨하기만 했다. 
  남희신이 물러나자 남망기가 다가와서 위무선의 영맥을 짚어 보았다.
  위무선은 눈을 내리깐 채 맥을 확인하는 남망기를 멍하니 보다가 불쑥 말했다.
  “나 이제 금단이 있어, 남잠.”
  이 말에 돌연 남망기가 다른 쪽 팔을 뻗어 위무선을 끌어안았다. 그래도 위무선은 힘껏 안긴 채 눈만 깜박거렸다. 괴상하게 변한 남망기가 나타난 것도, 희안한 시술을 받은 것도, 금단이 생긴 것도, 그가 자신을 끌어안은 것도. 모든 일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런 위무선의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끝을 맺었다.
  “그럼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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