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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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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입니까? 형님.”
오랜만에 돌아온 금광요가 남희신을 보자마자 놀라서 물었다.
그의 미간에 어두운 기색이 가득하여 타인의 감정변화에 예민한 금광요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알아볼 정도였다.
근래 남희신은 남계인의 심기를 살피랴, 남망기의 간호를 하랴, 마음 고생이 심한 나머지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째 바람 잘 날이 없구나.”
남희신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양순한 의제의 얼굴을 보았더니 다소 숨통이 트이는 듯하여, 잠시 쉬어 갈까 하고 선선한 정자에 찻상을 차리게 했다.
남망기가 사술을 사용하여 처벌을 받은 사건이 가문 전체에 퍼졌지만 자세한 경위는 아무도 몰랐다. 그것을 남희신은 금광요에게만은 숨기지 않고 다 털어놓았다.
“망기가 그렇게까지 위공자를 위하는 줄은 몰랐는걸요.”
궁기도 사건 때도 그랬지만, 이건 너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남망기의 융통성 없는 성격만으론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를 말이냐. 요 한 달 동안 숙부님께서 10년은 더 늙으신 것 같다.”
“형님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래도 망기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이 아닙니까.”
행방불명됐던 걸 생각하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남망기가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쳤고, 위무선이 운심부지처에 있으니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또다른 골칫거리가 하나 더 있었다.
위무선을 지도하기 전에 남희신은 진정과 함께 음호부를 맡아 두었다. 이는 누구도, 남계인조차도 모르는 일이었다. 앞으로 위무선을 설득하여 음호부를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위험하고 불길한 물건이 운심부지처에 있다는 사실이 편하지 않았다. 이 문제만큼은 너무도 조심스러워서 금광요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금광요는 곰곰이 따져 보다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위공자는 대체 무슨 일로 금단을 잃은 걸까요?”
“그것만큼은 아무리 해도 알 수 없을 것 같다. 강종주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흉시의 금단을 옮긴 사실도 강징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으니, 뭔가 사연이 있긴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사일지정 때는 난천하였으니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지요.”
남희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나마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돌아왔다. 역시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점점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와 비교하는 건 불공평할지 모르지만, 친동생인 남망기는 귀여운 구석이라곤 전혀 없다. 얼마간 과장을 덧붙여, 남희신은 금광요가 마음을 살피며 보조개가 패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 온갖 시름이 다 잊혀지는 것 같았다.
더불어 그가 더 이상 가문에서 홀대를 받지도 않는다 하니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좋은 소문을 들었단다.”
“네?”
소식도 아니고 소문이라니, 금광요가 의아해했다.
남희신이 은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낭자 말이다. 설마 나에게도 숨기려는 건 아니겠지? 아요.”
금광요는 뜻밖의 얘기에 멍해지더니 곧장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남희신은 언뜻 금광선의 주요 수하인 진창업의 딸 진소가 금광요와 인연을 맺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다.
금광요와 진소는 요 몇 년간 여러 차례의 모임에서 친숙한 모습을 보였는데, 근래에 이르러 달아오른 물이 갑자기 끓기 시작하는 것처럼 급속도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오해이십니다, 형님. 헛소문이에요. 그리고 그 분은 제가 따님과 소문이 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실 텐데요.”
이 말에 남희신이 정색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너만한 배필이 어디 있다고?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아라.”
“전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 아요, 네가 진낭자와 혼인하고 싶다면 내가 도와 주마.”
“아닙니다! 형님께서 오해하시는 거에요. 저는 진낭자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확실히 전란 때 금광요가 진소를 구해준 사건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퍽 가까웠다. 그렇지만 금광요는 편견없이 자신을 대해 주는 진소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호의를 표했을 뿐, 예의를 잃을 만한 일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세 치 혀로 인연 만들기를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이 멋대로 판단하고 소문을 부풀렸다. 덕분에 진창업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주시하는 바람에 금광요는 무척 곤란한 중이었다.
남희신은 그가 보기 드물게 굳은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얼른 말을 바꾸어 달래었다.
“알았다. 화내지 말거라. 하지만 너도 결국 혼인을 해야 할 것이고, 진낭자는 훌륭하지 않으냐.”
“저는 혼인하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어째서?”
금광요는 괜히 열을 냈던 것을 수습하고자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형님도 혼인을 하지 않으시잖습니까.”
남희신은 뭐라고 반박을 해 보려다 그만 멋쩍게 웃고 말았다.
“그래, 내가 졌다.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자꾸나.”
그렇게 말했지만 남희신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금광요가 자신의 출신을 마음에 걸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희신은 그에 대해 더 묻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위무선이 온 후로 운심부지처의 어린 자제들은 그에게 붙어서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일신이 편해진 금광요는 고마웠다.
금광선이 음호부에 신경을 쓰니 금광요도 자연히 음호부의 행방이 궁금했는데, 위무선의 수중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연화오가 아니라면, 어쩌면 운심부지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호기심에 불과할 뿐, 현재의 그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얘기였다.
“염방존.”
백의를 걸치고 있어도 제멋대로 튀는 걸음은 전혀 아정하지 않은 위무선이 말을 걸었다.
“위공자. 수련은 잘 되어갑니까?”
“하하. 아이 적에 배웠던 것을, 잘 되어가지 않는다고 하면 체면이 뭐가 되나요.”
머리를 긁던 위무선이 문득 난처한 듯 말했다.
“염방존, 혹시 남잠을 만나보셨어요?”
“네. 형님을 따라 몇 번 갔었지요.”
“혹시... 제 얘기는 안 해요?”
금광요는 올 것이 왔다 싶어 빙긋이 웃었다.
계편을 맞고 몸져 누운 남망기는 위무선을 절대로 보지 않으려 했다. 병문안을 오다가 남계인과 마주칠지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로운 생각이기도 하지만.
위무선으로서는 겨우 재회한 남망기를 단 며칠만에 빼앗기기라도 한 듯 코빼기도 볼 수 없게 됐으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할 말이 태산 같은데.
남희신 역시 남망기가 그렇게 나오는 이유가 궁금했고, 여러 번 물어보기도 했지만 남망기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금광요는 남희신과 위무선이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자신이 남망기라고 해도, 그런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구구절절한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구구절절이 따질 필요도 없는 얘기였다.
“외상은 거의 다 나은 것 같으니 곧 운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 때 만나면 되지요. ...아, 형님.”
“택무군...”
남희신이 나타나자 위무선은 금광요에게 던졌던 질문을 그에게 되풀이했다.
남희신은 이미 여러 번 남망기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는데 또 물어보니 난감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이제 위로할 말도 바닥이 나버린 두 사람은 멀거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 때 위무선이 또 다른 속 터질 소리를 했다.
“혹시 두 분은 남잠이 사모하는 여인에 대해서 아시나요?”
“네?!”
남희신은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린지 몰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위무선은 남망기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동안 수만가지 생각을 했다. 그 중 결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남망기가 짝사랑한다던 여인이었다.
금광요 역시도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위무선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염방존께서 그러셨잖아요?”
남희신이 대체 무슨 소리냐고 금광요를 쳐다보자 그가 곤란한 듯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데요.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다고만 했지.”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넋을 놓고 다닌다면 그쪽 문제 외에 무엇이 있나?
위무선이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집요하게 캐물었다.
“염방존, 택무군. 제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죠? 그러니까 남잠이 혹시... 운심부지처를 나와 사고를 친 것도, 그 여자와 잘 되지 않으니까 자포자기해서...”
시작부터 어긋난 망상을 도대체 어디까지 끌고 가겠다는 건지, 금광요는 어이가 없었다.
“위공자, 연애해 본 적 없지요?”
위무선은 그 말에 더럭 흥분하더니 말을 더듬었다.
“무, 뭘 보고 그런 소릴! 무, 무슨 근거로 저를 모독하시는 겁니까!”
금광요는 소리없이 미소만 지었으나 속으로는 너무 웃겨서 참기가 괴로웠다.
남망기는 저런 짓까지 저질러 놓고도 고백할 마음은 조금도 없어 보이고. 위무선은 내버려두면 존재하지도 않는 망령과 남망기를 음법으로 맺어주기라도 할 기세였다.
이대로 말없이 지켜보는 게 재미있을지, 아니면 한 번 더 슬쩍 밀어 보는 게 좋을지.
일단은 입을 다물기로 한 금광요는 당황한 남희신을 보며 또 웃었다.
한편 두 사람과 헤어진 위무선은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설마? 정말로 면면을 좋아했던 거 아냐?’
너무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남망기의 성격이라면 한 번 마음에 든 사람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금광요는 길 가운데 서서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위무선을 돌아보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위무선은 총명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찌 저 모양일까?’
총명한 것도 그 나름. 어쩌면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남희신조차도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11) (12) (13)
“무슨 일입니까? 형님.”
오랜만에 돌아온 금광요가 남희신을 보자마자 놀라서 물었다.
그의 미간에 어두운 기색이 가득하여 타인의 감정변화에 예민한 금광요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알아볼 정도였다.
근래 남희신은 남계인의 심기를 살피랴, 남망기의 간호를 하랴, 마음 고생이 심한 나머지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째 바람 잘 날이 없구나.”
남희신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양순한 의제의 얼굴을 보았더니 다소 숨통이 트이는 듯하여, 잠시 쉬어 갈까 하고 선선한 정자에 찻상을 차리게 했다.
남망기가 사술을 사용하여 처벌을 받은 사건이 가문 전체에 퍼졌지만 자세한 경위는 아무도 몰랐다. 그것을 남희신은 금광요에게만은 숨기지 않고 다 털어놓았다.
“망기가 그렇게까지 위공자를 위하는 줄은 몰랐는걸요.”
궁기도 사건 때도 그랬지만, 이건 너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남망기의 융통성 없는 성격만으론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를 말이냐. 요 한 달 동안 숙부님께서 10년은 더 늙으신 것 같다.”
“형님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래도 망기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이 아닙니까.”
행방불명됐던 걸 생각하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남망기가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쳤고, 위무선이 운심부지처에 있으니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또다른 골칫거리가 하나 더 있었다.
위무선을 지도하기 전에 남희신은 진정과 함께 음호부를 맡아 두었다. 이는 누구도, 남계인조차도 모르는 일이었다. 앞으로 위무선을 설득하여 음호부를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위험하고 불길한 물건이 운심부지처에 있다는 사실이 편하지 않았다. 이 문제만큼은 너무도 조심스러워서 금광요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금광요는 곰곰이 따져 보다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위공자는 대체 무슨 일로 금단을 잃은 걸까요?”
“그것만큼은 아무리 해도 알 수 없을 것 같다. 강종주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흉시의 금단을 옮긴 사실도 강징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으니, 뭔가 사연이 있긴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사일지정 때는 난천하였으니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지요.”
남희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나마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돌아왔다. 역시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점점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와 비교하는 건 불공평할지 모르지만, 친동생인 남망기는 귀여운 구석이라곤 전혀 없다. 얼마간 과장을 덧붙여, 남희신은 금광요가 마음을 살피며 보조개가 패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 온갖 시름이 다 잊혀지는 것 같았다.
더불어 그가 더 이상 가문에서 홀대를 받지도 않는다 하니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좋은 소문을 들었단다.”
“네?”
소식도 아니고 소문이라니, 금광요가 의아해했다.
남희신이 은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낭자 말이다. 설마 나에게도 숨기려는 건 아니겠지? 아요.”
금광요는 뜻밖의 얘기에 멍해지더니 곧장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남희신은 언뜻 금광선의 주요 수하인 진창업의 딸 진소가 금광요와 인연을 맺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다.
금광요와 진소는 요 몇 년간 여러 차례의 모임에서 친숙한 모습을 보였는데, 근래에 이르러 달아오른 물이 갑자기 끓기 시작하는 것처럼 급속도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오해이십니다, 형님. 헛소문이에요. 그리고 그 분은 제가 따님과 소문이 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실 텐데요.”
이 말에 남희신이 정색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너만한 배필이 어디 있다고?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아라.”
“전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 아요, 네가 진낭자와 혼인하고 싶다면 내가 도와 주마.”
“아닙니다! 형님께서 오해하시는 거에요. 저는 진낭자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확실히 전란 때 금광요가 진소를 구해준 사건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퍽 가까웠다. 그렇지만 금광요는 편견없이 자신을 대해 주는 진소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호의를 표했을 뿐, 예의를 잃을 만한 일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세 치 혀로 인연 만들기를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이 멋대로 판단하고 소문을 부풀렸다. 덕분에 진창업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주시하는 바람에 금광요는 무척 곤란한 중이었다.
남희신은 그가 보기 드물게 굳은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얼른 말을 바꾸어 달래었다.
“알았다. 화내지 말거라. 하지만 너도 결국 혼인을 해야 할 것이고, 진낭자는 훌륭하지 않으냐.”
“저는 혼인하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어째서?”
금광요는 괜히 열을 냈던 것을 수습하고자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형님도 혼인을 하지 않으시잖습니까.”
남희신은 뭐라고 반박을 해 보려다 그만 멋쩍게 웃고 말았다.
“그래, 내가 졌다.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자꾸나.”
그렇게 말했지만 남희신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금광요가 자신의 출신을 마음에 걸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희신은 그에 대해 더 묻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위무선이 온 후로 운심부지처의 어린 자제들은 그에게 붙어서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일신이 편해진 금광요는 고마웠다.
금광선이 음호부에 신경을 쓰니 금광요도 자연히 음호부의 행방이 궁금했는데, 위무선의 수중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연화오가 아니라면, 어쩌면 운심부지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호기심에 불과할 뿐, 현재의 그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얘기였다.
“염방존.”
백의를 걸치고 있어도 제멋대로 튀는 걸음은 전혀 아정하지 않은 위무선이 말을 걸었다.
“위공자. 수련은 잘 되어갑니까?”
“하하. 아이 적에 배웠던 것을, 잘 되어가지 않는다고 하면 체면이 뭐가 되나요.”
머리를 긁던 위무선이 문득 난처한 듯 말했다.
“염방존, 혹시 남잠을 만나보셨어요?”
“네. 형님을 따라 몇 번 갔었지요.”
“혹시... 제 얘기는 안 해요?”
금광요는 올 것이 왔다 싶어 빙긋이 웃었다.
계편을 맞고 몸져 누운 남망기는 위무선을 절대로 보지 않으려 했다. 병문안을 오다가 남계인과 마주칠지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로운 생각이기도 하지만.
위무선으로서는 겨우 재회한 남망기를 단 며칠만에 빼앗기기라도 한 듯 코빼기도 볼 수 없게 됐으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할 말이 태산 같은데.
남희신 역시 남망기가 그렇게 나오는 이유가 궁금했고, 여러 번 물어보기도 했지만 남망기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금광요는 남희신과 위무선이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자신이 남망기라고 해도, 그런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구구절절한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구구절절이 따질 필요도 없는 얘기였다.
“외상은 거의 다 나은 것 같으니 곧 운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 때 만나면 되지요. ...아, 형님.”
“택무군...”
남희신이 나타나자 위무선은 금광요에게 던졌던 질문을 그에게 되풀이했다.
남희신은 이미 여러 번 남망기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는데 또 물어보니 난감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이제 위로할 말도 바닥이 나버린 두 사람은 멀거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 때 위무선이 또 다른 속 터질 소리를 했다.
“혹시 두 분은 남잠이 사모하는 여인에 대해서 아시나요?”
“네?!”
남희신은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린지 몰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위무선은 남망기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동안 수만가지 생각을 했다. 그 중 결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남망기가 짝사랑한다던 여인이었다.
금광요 역시도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위무선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염방존께서 그러셨잖아요?”
남희신이 대체 무슨 소리냐고 금광요를 쳐다보자 그가 곤란한 듯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데요.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다고만 했지.”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넋을 놓고 다닌다면 그쪽 문제 외에 무엇이 있나?
위무선이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집요하게 캐물었다.
“염방존, 택무군. 제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죠? 그러니까 남잠이 혹시... 운심부지처를 나와 사고를 친 것도, 그 여자와 잘 되지 않으니까 자포자기해서...”
시작부터 어긋난 망상을 도대체 어디까지 끌고 가겠다는 건지, 금광요는 어이가 없었다.
“위공자, 연애해 본 적 없지요?”
위무선은 그 말에 더럭 흥분하더니 말을 더듬었다.
“무, 뭘 보고 그런 소릴! 무, 무슨 근거로 저를 모독하시는 겁니까!”
금광요는 소리없이 미소만 지었으나 속으로는 너무 웃겨서 참기가 괴로웠다.
남망기는 저런 짓까지 저질러 놓고도 고백할 마음은 조금도 없어 보이고. 위무선은 내버려두면 존재하지도 않는 망령과 남망기를 음법으로 맺어주기라도 할 기세였다.
이대로 말없이 지켜보는 게 재미있을지, 아니면 한 번 더 슬쩍 밀어 보는 게 좋을지.
일단은 입을 다물기로 한 금광요는 당황한 남희신을 보며 또 웃었다.
한편 두 사람과 헤어진 위무선은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설마? 정말로 면면을 좋아했던 거 아냐?’
너무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남망기의 성격이라면 한 번 마음에 든 사람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금광요는 길 가운데 서서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위무선을 돌아보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위무선은 총명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찌 저 모양일까?’
총명한 것도 그 나름. 어쩌면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남희신조차도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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