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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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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남희신은 아침부터 위무선을 찾았다. 가문의 일이 아니므로 금광요도 별 생각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제는 위무선의 전용이 되어버린 협실에서 두 사람은 따분한 수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형장.”
남망기가 부르는 소리에 간신히 앉혀 놓았던 위무선이 풀썩 주저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남희신이 금광요까지 대동하고 들어오는 것을 본 위무선이 찔끔하며 일어났다.
당연하게도 그가 소매에서 향로를 꺼내며 미소를 짓자 위무선은 ‘아이고’하며 머리를 긁었다.
‘택무군이 왜 저걸? 염방존이 고해 바쳤나?’
큰일이었다. 장서각 침입에, 향로 도둑질, 남의 처소에 무단침입... 또 얼마나 많은 규훈을 베껴야 할 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남희신은 모른척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위공자. 망기가 위공자의 수련이 늦어진다고 걱정하더군요.”
그러자 위무선이 손을 내저으며 극구 부인했다.
“아닙니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
“가규를 자꾸 어겨 벌을 받느라 수련이 지체되고 있다고 하던데요.”
“남잠...”
위무선이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남망기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금단을 맺는 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무척 어렵게 구한 금단이니.”
그 말에 죄책감이 일어난 위무선이 다시 머리를 긁적였다. 매일 남망기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금단을 얻기 위해 그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잊고 있었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
남희신이 남망기를 힐끗 보며 말했다.
“망기, 이제 위공자가 어떤 규칙을 어기든 벌을 주지 말아라.”
뜻밖의 말에 위무선이 미심쩍어하며 반문했다.
“예...? 정말입니까?”
남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단의 수련이 최우선입니다. 위공자도 망기도 금단을 맺는데 최선을 다하십시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로 약속할게요, 이제는 장난도 치지 않고 놀지도 않을게요!”
“그러니.”
남희신이 호언장담을 늘어놓는 위무선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위공자가 규훈을 어길 때마다 그것을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금단을 맺고 난 뒤 한꺼번에 벌을 받도록 하죠.”
“네?!”
남희신은 위무선의 비명 소리를 무시하고 남망기에게 말했다.
“망기, 공정하게 기록해야 한다.”
남망기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예, 형장.”
위무선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 ‘공정하게’라는 말은 전혀 정의롭고 고마운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횡액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겠지만 위공자, 숙부님께서는 위공자가 가규를 어길 때마다 열 배로 벌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기억하고 있다. 기억은 하지만!
위무선이 입을 벌린 채 눈만 깜박거리다가 홱 돌아보니 남망기는 남계인이 정말 그런 말을 했던가 진지하게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다.
“남잠!!!”
“망기가 잘 관리할 겁니다. 그렇지?”
그러자 남망기가 손을 모으며 엄숙하게 말했다.
“형장의 말씀, 그대로 받들겠습니다.”
그러나 연한 눈동자 속에서 모종의 빛이 반짝인 것을 남희신은 잘도 알아보았다.
이미 혼백이 다 흩어진 것 같은 위무선을 돌아보며 남희신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그럼 약속한 겁니다, 위공자. 금단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 후에는 어긴 규칙에 대한 벌을 다 받을 때까지 운심부지처를 떠날 수 없습니다. 모쪼록 현명하게 처신하십시오.”
두 사람이 나간 후 세상이 끝날 때까지 얼어붙어 있을 것 같은 위무선에게 남망기가 말했다.
“앉아.”
“저...!”
위무선이 입을 뻐끔거리며 문 쪽을 향해 삿대질을 하자 남망기가 경고했다.
“사람에게 손가락질하지 마.”
겨우 말문이 트인 위무선이 외쳤다.
“택무군은 그래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소 남씨의 정상이었어!”
“남의 뒤에서 험담 금지.”
“이봐, 남가 둘째 공자! 고소 남씨답다는 게 어떻게 험담이야!”
“앉아. 한 마디만 더 하면 수업 거부로 간주할 거다.”
남망기가 진지하게 규훈을 세고 있는 것을 안 위무선이 경악을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으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두고 봐, 남잠! 2년도 길어! 내가 1년 안에 금단을 맺고 말 거야. 아직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모양인데...”
“교만 금지.”
“그만! 그만하라고!”
돌연 남망기의 입술에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굳이 참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너...!!!”
그런 남망기를 화등잔같은 눈으로 노려보는 위무선은 그의 완전한 미소에 감탄할 여유도 없었다.
억울하고 괴로운 신음 소리가 협실 안에 울려퍼졌다.
협실을 나오는 길에는 기운없던 금광요마저도 웃고 말았다.
금광요가 웃자 남희신도 조용하게 미소지었다.
“형님, 형님께서 그렇게 지독한 분이신 줄 몰랐습니다.”
“그러냐? 특별히 덧붙인 건 아무 것도 없다만.”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비친 얼굴은 파리한 금광요와는 대조적으로 평온했으며 은은한 기쁨마저 배어나오는 듯싶었다.
“아요.”
“예.”
“오후에 잠시 외출했다 돌아올 거다. 해가 지고 나면 내 방으로 오너라.”
“예, 형님.”
오라느니 가라느니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인데, 굳이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이상했지만 금광요는 얌전하게 대답했다.
“안색이 좋지 않다. 잘 먹고, 해를 많이 쬐어야 한다.”
남희신이 부드럽게 타이르고 금광요의 얼굴을 지그시 들여다보다가 떠났다.
남희신이 그렇게 말하고 가도 금광요는 많이 먹지도, 해를 쬐지도 않았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찻잔만 비우다가 습관적인 발걸음이 냉천으로 향했다.
금단을 수련할 때 금광요는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물론 냉천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근래에 냉천을 찾는 이유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잘 먹지도 못한 몸이 싸늘했지만 머릿속과 가슴속이 자꾸 불로 달구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냉천이 식혀줄 수 있는 열이 아니었지만, 어쩌면 이것도 자학적인 성질의 일환인지 몰랐다.
냉천에 다다른 금광요는 여느 때처럼 바위에 앉아 가부좌를 트는 것이 아니라 목욕통에 들어앉는 것처럼 몸을 푹 담그었다.
잠시 후 의미 없이 두 손을 들어 앞 뒤로 살펴보았다. 스스로의 눈에도 여자의 손처럼 희고 아름다운 손. 매끄러운 팔을 타고 올라가 고운 목덜미를 지나면 사람을 속이고 홀리는 얼굴이 그 곳에 있을 것이다. 새까맣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에는 거짓이 들었고, 달콤해 보이는 입술에는 독이 들었다.
눈 앞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둥둥 떠서 부드럽게 휘어지는 모습마저도 금광요의 눈에는 가증스럽게 비쳤다.
해가 떨어지도록 금광요는 바깥을 돌아다녔다. 어둠이 완전히 내린 다음에야 마지못한 듯 운심부지처 안으로 통하는 길을 거슬러올라가기 시작했다.
“형장.”
남망기였다. 일찌감치 야간 순찰을 나온 것 같았다.
그는 수심에 차 보이는 금광요를 보고 못내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그러한 남망기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게 된 금광요는, 아무래도 남희신을 닮아가는 모양이라고 힘없이 웃었다.
“형장...”
남망기는 평소의 무관심과 침묵을 깨고 뭐라도 말을 붙여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금광요가 고개를 살짝 흔들며 선수를 쳤다.
“야간에는 통행 금지란 말이지. 나도 알고 있다.”
“...”
“전에 내가 너를 한 번 도와 줬으니, 이번엔 네가 나를 모른체 해 주면 계산이 맞겠구나.”
말재주가 없는 남망기는 가볍게 농을 치고 가 버리는 금광요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안타까운 시선만이 떠나가는 이의 위태로운 모습을 따랐다.
금광요는 한실의 문을 가볍게 두드린 다음 들어갔다.
한실에는 밥먹듯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자신의 방처럼 환히 꿰고 있었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질감이 느껴졌다.
단정하게 앉아 있던 남희신은 금광요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옮겼다. 금광요가 느낀 이질감의 정체는 그 곳에 있었다. 항상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던 서안이 옆으로 치워졌고, 그 위에 붉은 초 두 개와 수가 놓아진 붉은 띠가 놓여 있었다.
금광요는 그 의미를 생각해 보기도 전에 무섭게 가슴이 뛰었다.
남희신이 손짓하자 금광요는 거부할 수 없는 인력으로 끌려가서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남희신 역시 두 개의 초에 불을 밝힌 뒤 금광요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 사람의 간격은 아주 가까워서 무릎이 닿을 정도였다.
“아요.”
금광요는 고개를 숙인 채 눈도 들지 않았다. 감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남희신이 다시 상냥하게 불렀다.
“아요. 우리는 둘 다 남자니까 혼례는 올릴 수 없다. 그러니 내 스스로 너에게 언약을 주마.”
그렇게 말한 남희신이 붉은 띠를 들어 금광요의 손을 잡고 묶어 주려 했다.
금광요는 아래로 향한 눈을 크게 뜬 채 파랗게 질려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조용히 움직이던 남희신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목에서 매듭을 묶으려는 순간, 금광요는 뿌리쳐 버리고 말았다.
남희신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금광요는 두 손으로 땅을 짚은채 그대로 기어서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웅크린 아래로 피를 토해내듯 말했다.
“형님, 저는 형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인간이 아닙니다...”
“아요...”
또다시 다정한 목소리가 자신을 압도해버릴 듯하자, 금광요가 미친듯이 머리를 흔들며 막았다.
“큰형님이 옳았어요! 적봉존이 옳았다구요!”
금광요는 남희신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 두려운 듯, 빠르게 말을 잇기 시작했다.
갑자기 금광요가 한참 지난 옛 일을 꺼내자 의아해하던 남희신은 안색이 바뀌었다.
사일지정 때 난릉 금씨의 사람을 죽이고 온가에 덮어씌우려다 섭명결에게 들켰던 일, 죽어가는 척하다 달아난 일은 즉흥적이 아니라 전부 계획된 일이었다. 분명 상대를 미워하긴 했지만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실수로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온약한의 눈을 속이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의 면전에서 사람을 궂힐 때에도, 그에게 끔찍한 고문 도구를 만들어 바칠 때에도 금광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초점이 점점 행위보다 본인의 무감정한 마음으로 옮겨가자 금광요는 말하기가 힘들었다. 듣고 있는 남희신의 마음 속은 알 길이 없지만, 소름끼치는 고백은 다름아닌 자신의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금광요는 굴하지 않고 유수처럼 말을 이어갔다.
불야천에 섭명결이 잡혀 왔을 때도 그의 생사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섭명결을 구하기 위해 그의 수사들을 죽였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섭명결이 살아남았던 건 단지 그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사일지정이 성공하기 전에 온약한이 섭명결을 죽이려 했다면 금광요는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막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섭명결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금광요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나와야 했다. 그 때 남희신을 방패삼아 도박을 했고, 결국 그의 신뢰와 섭명결의 가책을 이용하여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런 식으로 오로지 난릉 금씨에 들어갈 수 있는 공을 세우기 위해 인간의 목숨, 고통, 신뢰, 명예, 뭐가 되었든 닥치는대로 이용하고 파괴하면서도 아무 것도 느낀 적이 없었다.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될 진실을 털어놓으면서 금광요는 입 안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너무 뜨거워져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욕지기를 느낄 때 통제할 수 없이 토하게 되는 것처럼 마냥 쏟아내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그 남자는 저를 받아주지 않았지요.”
완전히 가면을 벗어버린 금광요는 더 이상 금광선을 부친이라 부르지도 않았다.
“아니, 그 남자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비로소 금광요가 고개를 들고 남희신을 쳐다보았다. 바닥에 엎어진 채 처참한 얼굴로 끔찍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 흡사 고문을 당한 끝에 진실을 고백하는 죄인과도 같았다.
“만약, 끝내 그 자가 저를 실망시켰다면... 저는 어쩌면...”
열에 들떠서인지, 촛불빛이 만드는 그림자 때문인지 남희신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손목에 어지럽게 엉킨 붉은 띠가 피부를 달구는 것 같았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압니다. 형님... 택무군, 당신은 몰라요. 당신은 몰라요! 절대로 알 수 없어... 그런데 왜 저를 사랑하시는 겁니까. 사랑할 리 없어요. 저는 당신에게 거짓밖에 보여 드린 적이 없어요. 당신이 아는 저는 전부 헛것이라구요.”
그렇게 닥치는 대로 털어놓고 있는 금광요는,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도 역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남희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금광요는 단지 이런 사실들을 모른 채 남희신이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손을 뻗는 걸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그의 유일한, 진실한 죄의식이었다.
“아요.”
남희신이 조용히 말했다.
“네가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냐.”
그가 가까이 오자 금광요는 다시 도망치려고 했으나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남희신은 갈고리처럼 오그라들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금광요의 손목을 들어 흐트러진 띠를 감기 시작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너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어. 너는 네가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악행을 저지른 거다.”
금광요는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자신을 내치지 않고 혐오스럽다는 듯 대하지 않는 남희신이야말로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금광요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지금 이러는 것도 다 거짓일지 당신은 모르잖습니까!”
남희신은 정말로 금광요가 하는 말을 듣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미친 듯이 흥분하는 금광요의 손목을 잡고 마지막까지 띠를 감고, 끝내 매듭을 지었다.
“나는 안다. 알고말고. 너는 이제 잘못하지 않을 거다.”
남희신은 아직도 금광요의 손목을 놓지 않고 있었다.
잠시 그의 몸이 빛을 가려준 덕에 눈이 밝아져, 비로소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부드럽고도 확신에 찬 눈빛이 그 곳에 있었다.
그래도 금광요는 머리는 극명하게 그에게 반대했다.
남희신이 틀렸다. 나는 여전히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내 안에는 여전히 인도 의도 없고, 잔인하다. 생명의 소중함도 모르고 욕심에 가득 차 있다. 단지 욕심을 가진 대상이 전과 달라진 것뿐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남희신을 해친다면, 금광요는 아주 처참하게 상대를 찢고 자르고 저며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남희신이, 자신에게,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요.”
남희신이 또다른 붉은 띠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너를 받아들였다. 그러니 네 일은 네 스스로 선택하거라.”
금광요가 띠를 받아들고 남희신이 내민 손을 내려다보았다. 팽팽하게 뜬 눈에 비로소 눈물이 한 방울 고여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리는 손이 천근이나 되는 쇳덩이를 든 것처럼 힘겹게 띠를 받치고 남희신의 손목으로 가져갔다.
붉은 띠가 자신의 손목에 감기기 시작하자 남희신은 고개 숙인 금광요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곱게 빗은 머리에도 입맞추고,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마침내 꼭 끌어안았다.
남희신이 품에 안은 머리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아요, 네 과거에 대해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너와 내가 연을 맺었으니, 앞으로는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이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이튿날 남희신은 아침부터 위무선을 찾았다. 가문의 일이 아니므로 금광요도 별 생각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제는 위무선의 전용이 되어버린 협실에서 두 사람은 따분한 수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형장.”
남망기가 부르는 소리에 간신히 앉혀 놓았던 위무선이 풀썩 주저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남희신이 금광요까지 대동하고 들어오는 것을 본 위무선이 찔끔하며 일어났다.
당연하게도 그가 소매에서 향로를 꺼내며 미소를 짓자 위무선은 ‘아이고’하며 머리를 긁었다.
‘택무군이 왜 저걸? 염방존이 고해 바쳤나?’
큰일이었다. 장서각 침입에, 향로 도둑질, 남의 처소에 무단침입... 또 얼마나 많은 규훈을 베껴야 할 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남희신은 모른척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위공자. 망기가 위공자의 수련이 늦어진다고 걱정하더군요.”
그러자 위무선이 손을 내저으며 극구 부인했다.
“아닙니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
“가규를 자꾸 어겨 벌을 받느라 수련이 지체되고 있다고 하던데요.”
“남잠...”
위무선이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남망기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금단을 맺는 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무척 어렵게 구한 금단이니.”
그 말에 죄책감이 일어난 위무선이 다시 머리를 긁적였다. 매일 남망기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금단을 얻기 위해 그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잊고 있었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
남희신이 남망기를 힐끗 보며 말했다.
“망기, 이제 위공자가 어떤 규칙을 어기든 벌을 주지 말아라.”
뜻밖의 말에 위무선이 미심쩍어하며 반문했다.
“예...? 정말입니까?”
남희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단의 수련이 최우선입니다. 위공자도 망기도 금단을 맺는데 최선을 다하십시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로 약속할게요, 이제는 장난도 치지 않고 놀지도 않을게요!”
“그러니.”
남희신이 호언장담을 늘어놓는 위무선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위공자가 규훈을 어길 때마다 그것을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금단을 맺고 난 뒤 한꺼번에 벌을 받도록 하죠.”
“네?!”
남희신은 위무선의 비명 소리를 무시하고 남망기에게 말했다.
“망기, 공정하게 기록해야 한다.”
남망기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예, 형장.”
위무선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 ‘공정하게’라는 말은 전혀 정의롭고 고마운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횡액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겠지만 위공자, 숙부님께서는 위공자가 가규를 어길 때마다 열 배로 벌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기억하고 있다. 기억은 하지만!
위무선이 입을 벌린 채 눈만 깜박거리다가 홱 돌아보니 남망기는 남계인이 정말 그런 말을 했던가 진지하게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다.
“남잠!!!”
“망기가 잘 관리할 겁니다. 그렇지?”
그러자 남망기가 손을 모으며 엄숙하게 말했다.
“형장의 말씀, 그대로 받들겠습니다.”
그러나 연한 눈동자 속에서 모종의 빛이 반짝인 것을 남희신은 잘도 알아보았다.
이미 혼백이 다 흩어진 것 같은 위무선을 돌아보며 남희신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그럼 약속한 겁니다, 위공자. 금단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 후에는 어긴 규칙에 대한 벌을 다 받을 때까지 운심부지처를 떠날 수 없습니다. 모쪼록 현명하게 처신하십시오.”
두 사람이 나간 후 세상이 끝날 때까지 얼어붙어 있을 것 같은 위무선에게 남망기가 말했다.
“앉아.”
“저...!”
위무선이 입을 뻐끔거리며 문 쪽을 향해 삿대질을 하자 남망기가 경고했다.
“사람에게 손가락질하지 마.”
겨우 말문이 트인 위무선이 외쳤다.
“택무군은 그래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소 남씨의 정상이었어!”
“남의 뒤에서 험담 금지.”
“이봐, 남가 둘째 공자! 고소 남씨답다는 게 어떻게 험담이야!”
“앉아. 한 마디만 더 하면 수업 거부로 간주할 거다.”
남망기가 진지하게 규훈을 세고 있는 것을 안 위무선이 경악을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으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두고 봐, 남잠! 2년도 길어! 내가 1년 안에 금단을 맺고 말 거야. 아직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모양인데...”
“교만 금지.”
“그만! 그만하라고!”
돌연 남망기의 입술에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굳이 참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너...!!!”
그런 남망기를 화등잔같은 눈으로 노려보는 위무선은 그의 완전한 미소에 감탄할 여유도 없었다.
억울하고 괴로운 신음 소리가 협실 안에 울려퍼졌다.
협실을 나오는 길에는 기운없던 금광요마저도 웃고 말았다.
금광요가 웃자 남희신도 조용하게 미소지었다.
“형님, 형님께서 그렇게 지독한 분이신 줄 몰랐습니다.”
“그러냐? 특별히 덧붙인 건 아무 것도 없다만.”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비친 얼굴은 파리한 금광요와는 대조적으로 평온했으며 은은한 기쁨마저 배어나오는 듯싶었다.
“아요.”
“예.”
“오후에 잠시 외출했다 돌아올 거다. 해가 지고 나면 내 방으로 오너라.”
“예, 형님.”
오라느니 가라느니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인데, 굳이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이상했지만 금광요는 얌전하게 대답했다.
“안색이 좋지 않다. 잘 먹고, 해를 많이 쬐어야 한다.”
남희신이 부드럽게 타이르고 금광요의 얼굴을 지그시 들여다보다가 떠났다.
남희신이 그렇게 말하고 가도 금광요는 많이 먹지도, 해를 쬐지도 않았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찻잔만 비우다가 습관적인 발걸음이 냉천으로 향했다.
금단을 수련할 때 금광요는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물론 냉천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근래에 냉천을 찾는 이유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잘 먹지도 못한 몸이 싸늘했지만 머릿속과 가슴속이 자꾸 불로 달구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냉천이 식혀줄 수 있는 열이 아니었지만, 어쩌면 이것도 자학적인 성질의 일환인지 몰랐다.
냉천에 다다른 금광요는 여느 때처럼 바위에 앉아 가부좌를 트는 것이 아니라 목욕통에 들어앉는 것처럼 몸을 푹 담그었다.
잠시 후 의미 없이 두 손을 들어 앞 뒤로 살펴보았다. 스스로의 눈에도 여자의 손처럼 희고 아름다운 손. 매끄러운 팔을 타고 올라가 고운 목덜미를 지나면 사람을 속이고 홀리는 얼굴이 그 곳에 있을 것이다. 새까맣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에는 거짓이 들었고, 달콤해 보이는 입술에는 독이 들었다.
눈 앞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둥둥 떠서 부드럽게 휘어지는 모습마저도 금광요의 눈에는 가증스럽게 비쳤다.
해가 떨어지도록 금광요는 바깥을 돌아다녔다. 어둠이 완전히 내린 다음에야 마지못한 듯 운심부지처 안으로 통하는 길을 거슬러올라가기 시작했다.
“형장.”
남망기였다. 일찌감치 야간 순찰을 나온 것 같았다.
그는 수심에 차 보이는 금광요를 보고 못내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그러한 남망기의 감정까지 읽을 수 있게 된 금광요는, 아무래도 남희신을 닮아가는 모양이라고 힘없이 웃었다.
“형장...”
남망기는 평소의 무관심과 침묵을 깨고 뭐라도 말을 붙여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금광요가 고개를 살짝 흔들며 선수를 쳤다.
“야간에는 통행 금지란 말이지. 나도 알고 있다.”
“...”
“전에 내가 너를 한 번 도와 줬으니, 이번엔 네가 나를 모른체 해 주면 계산이 맞겠구나.”
말재주가 없는 남망기는 가볍게 농을 치고 가 버리는 금광요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안타까운 시선만이 떠나가는 이의 위태로운 모습을 따랐다.
금광요는 한실의 문을 가볍게 두드린 다음 들어갔다.
한실에는 밥먹듯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자신의 방처럼 환히 꿰고 있었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질감이 느껴졌다.
단정하게 앉아 있던 남희신은 금광요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옮겼다. 금광요가 느낀 이질감의 정체는 그 곳에 있었다. 항상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던 서안이 옆으로 치워졌고, 그 위에 붉은 초 두 개와 수가 놓아진 붉은 띠가 놓여 있었다.
금광요는 그 의미를 생각해 보기도 전에 무섭게 가슴이 뛰었다.
남희신이 손짓하자 금광요는 거부할 수 없는 인력으로 끌려가서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남희신 역시 두 개의 초에 불을 밝힌 뒤 금광요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 사람의 간격은 아주 가까워서 무릎이 닿을 정도였다.
“아요.”
금광요는 고개를 숙인 채 눈도 들지 않았다. 감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남희신이 다시 상냥하게 불렀다.
“아요. 우리는 둘 다 남자니까 혼례는 올릴 수 없다. 그러니 내 스스로 너에게 언약을 주마.”
그렇게 말한 남희신이 붉은 띠를 들어 금광요의 손을 잡고 묶어 주려 했다.
금광요는 아래로 향한 눈을 크게 뜬 채 파랗게 질려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조용히 움직이던 남희신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목에서 매듭을 묶으려는 순간, 금광요는 뿌리쳐 버리고 말았다.
남희신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금광요는 두 손으로 땅을 짚은채 그대로 기어서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웅크린 아래로 피를 토해내듯 말했다.
“형님, 저는 형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인간이 아닙니다...”
“아요...”
또다시 다정한 목소리가 자신을 압도해버릴 듯하자, 금광요가 미친듯이 머리를 흔들며 막았다.
“큰형님이 옳았어요! 적봉존이 옳았다구요!”
금광요는 남희신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 두려운 듯, 빠르게 말을 잇기 시작했다.
갑자기 금광요가 한참 지난 옛 일을 꺼내자 의아해하던 남희신은 안색이 바뀌었다.
사일지정 때 난릉 금씨의 사람을 죽이고 온가에 덮어씌우려다 섭명결에게 들켰던 일, 죽어가는 척하다 달아난 일은 즉흥적이 아니라 전부 계획된 일이었다. 분명 상대를 미워하긴 했지만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실수로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온약한의 눈을 속이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의 면전에서 사람을 궂힐 때에도, 그에게 끔찍한 고문 도구를 만들어 바칠 때에도 금광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초점이 점점 행위보다 본인의 무감정한 마음으로 옮겨가자 금광요는 말하기가 힘들었다. 듣고 있는 남희신의 마음 속은 알 길이 없지만, 소름끼치는 고백은 다름아닌 자신의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금광요는 굴하지 않고 유수처럼 말을 이어갔다.
불야천에 섭명결이 잡혀 왔을 때도 그의 생사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섭명결을 구하기 위해 그의 수사들을 죽였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섭명결이 살아남았던 건 단지 그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사일지정이 성공하기 전에 온약한이 섭명결을 죽이려 했다면 금광요는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막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섭명결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금광요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나와야 했다. 그 때 남희신을 방패삼아 도박을 했고, 결국 그의 신뢰와 섭명결의 가책을 이용하여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런 식으로 오로지 난릉 금씨에 들어갈 수 있는 공을 세우기 위해 인간의 목숨, 고통, 신뢰, 명예, 뭐가 되었든 닥치는대로 이용하고 파괴하면서도 아무 것도 느낀 적이 없었다.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될 진실을 털어놓으면서 금광요는 입 안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너무 뜨거워져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욕지기를 느낄 때 통제할 수 없이 토하게 되는 것처럼 마냥 쏟아내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그 남자는 저를 받아주지 않았지요.”
완전히 가면을 벗어버린 금광요는 더 이상 금광선을 부친이라 부르지도 않았다.
“아니, 그 남자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비로소 금광요가 고개를 들고 남희신을 쳐다보았다. 바닥에 엎어진 채 처참한 얼굴로 끔찍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 흡사 고문을 당한 끝에 진실을 고백하는 죄인과도 같았다.
“만약, 끝내 그 자가 저를 실망시켰다면... 저는 어쩌면...”
열에 들떠서인지, 촛불빛이 만드는 그림자 때문인지 남희신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손목에 어지럽게 엉킨 붉은 띠가 피부를 달구는 것 같았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압니다. 형님... 택무군, 당신은 몰라요. 당신은 몰라요! 절대로 알 수 없어... 그런데 왜 저를 사랑하시는 겁니까. 사랑할 리 없어요. 저는 당신에게 거짓밖에 보여 드린 적이 없어요. 당신이 아는 저는 전부 헛것이라구요.”
그렇게 닥치는 대로 털어놓고 있는 금광요는,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도 역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남희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금광요는 단지 이런 사실들을 모른 채 남희신이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손을 뻗는 걸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그의 유일한, 진실한 죄의식이었다.
“아요.”
남희신이 조용히 말했다.
“네가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냐.”
그가 가까이 오자 금광요는 다시 도망치려고 했으나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남희신은 갈고리처럼 오그라들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금광요의 손목을 들어 흐트러진 띠를 감기 시작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너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어. 너는 네가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악행을 저지른 거다.”
금광요는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자신을 내치지 않고 혐오스럽다는 듯 대하지 않는 남희신이야말로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금광요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지금 이러는 것도 다 거짓일지 당신은 모르잖습니까!”
남희신은 정말로 금광요가 하는 말을 듣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미친 듯이 흥분하는 금광요의 손목을 잡고 마지막까지 띠를 감고, 끝내 매듭을 지었다.
“나는 안다. 알고말고. 너는 이제 잘못하지 않을 거다.”
남희신은 아직도 금광요의 손목을 놓지 않고 있었다.
잠시 그의 몸이 빛을 가려준 덕에 눈이 밝아져, 비로소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부드럽고도 확신에 찬 눈빛이 그 곳에 있었다.
그래도 금광요는 머리는 극명하게 그에게 반대했다.
남희신이 틀렸다. 나는 여전히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내 안에는 여전히 인도 의도 없고, 잔인하다. 생명의 소중함도 모르고 욕심에 가득 차 있다. 단지 욕심을 가진 대상이 전과 달라진 것뿐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남희신을 해친다면, 금광요는 아주 처참하게 상대를 찢고 자르고 저며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남희신이, 자신에게,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요.”
남희신이 또다른 붉은 띠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너를 받아들였다. 그러니 네 일은 네 스스로 선택하거라.”
금광요가 띠를 받아들고 남희신이 내민 손을 내려다보았다. 팽팽하게 뜬 눈에 비로소 눈물이 한 방울 고여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리는 손이 천근이나 되는 쇳덩이를 든 것처럼 힘겹게 띠를 받치고 남희신의 손목으로 가져갔다.
붉은 띠가 자신의 손목에 감기기 시작하자 남희신은 고개 숙인 금광요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곱게 빗은 머리에도 입맞추고,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마침내 꼭 끌어안았다.
남희신이 품에 안은 머리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아요, 네 과거에 대해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너와 내가 연을 맺었으니, 앞으로는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이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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