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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23:39
첫사랑과의 재회는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소설처럼 애틋하지 않았다.
뭍에 나온 인어가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그리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동화속의 인어가 아니었고, 그는 더이상 허니만의 바다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허니가 돌아오는 것 또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맑고 푸른 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허니는 속절없이 가라 앉아있었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푸른눈을 허니는 신뢰할 수 없어졌다.
허니가 마주한 것은 어두운 곳에서 겹쳐진 두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허니는 제 자신도 답을 낼 수 없는 물음에 잠식되었다.
탐욕스러운 바다는 인어를 삼켜내고서야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억눌렸던 감정은 집채만한 파도가 되어 허니를 덮쳤다.
브래들리는 제가 내민 손을 잡은 이 인어가 너무도 가지고 싶어졌다.
브래들리는 역겨움에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와 배신감에 차오른 브래들리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인간이 됐던 인어가 다시 제 품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직 먼 이야기 같았다.
15.
이 작은 동네에서도 허니는 브래들리를 잘 피해 다녔다. 어디에 있을지는 뻔했지만, 브래들리는 굳이 허니를 찾진 않았다. 기회는 많았고, 서두를수록 일은 엉킬뿐이었다. 그렇지만 생각과 기분이 같을 순 없는법인지라 매일매일이 저기압인 브래들리를 보며 앨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럴거면 나가서 새로 산 집이나 고쳐. 앨리의 말에 브래들리가 인상을 썼다. 거기는 고치면 안돼. 앨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추억의 장소잖아. 살만하게 바뀌면 더 좋은거 아냐?”
형수는 형이랑 살던 곳이 갑자기 바뀌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브래들리의 말에 앨리가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허니 취향대로 바꿀거야. 영 못쓰는거 빼고는 그대로 둬야지. 브래들리는 찬찬히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허니의 말을 떠올렸다. 몰리와의 추억이 담긴 모든 것들은 없애야지. 그건 영 못쓰니까. 브래들리는 머릿속으로 버릴 목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이 작은 동네에는 가업을 잇는거 아니고서야 마땅히 머물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아서 브래들리는 강제로 친구들과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허니가 아니면 누구든 상관없는 그에겐 별 타격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애덤은 브래들리와 꾸준히 친하게 지내는 몇 안되는 친구였다.
“어, 왔어?”
“미안. 수업 준비 한다고 좀 늦었어.”
오래 되어 익숙한 펍에 다 아는 얼굴들이 모여 있었고, 브래들리는 조금은 숨이 차 보이는 모습으로 빈 자리에 앉았다. 어째 약혼 준비는 내가 하는데 바쁜건 니가 더 바빠? 미리 주문해 둔 샷을 브래들리 앞으로 내민 애덤이 씩 웃었다. 벌주. 이미 몇 잔은 들이켰는지 빨갛게 달아오른 뺨이 얄미웠다. 에이씨. 짜증이 가득하지만 웃음기를 섞은 채 머릴 긁적이던 브래들리는 제 앞에 놓인 샷을 한 번에 털어 넣고는 바로 제 옆에 놓인 누군가의 파인트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즐거운 박수와 환호성이 펍을 가득 채웠다.
아직은 쌀쌀한 밤바람에 브래들리는 술이 조금 깨는 듯 했다. 담배를 물고는 라이터를 찾느라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언제 나왔는지 애덤이 브래들리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 땡큐. 까만 밤에 붉게 물든 담배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 허니 왔다던데. 서로 다른 곳을 바라 보며 넌지시 던진 애덤의 말에 브래들리가 피식 웃었다. 응. 오래 걸렸지.
“이유는 말 안해주고?”
“우리 사이에 이유가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도 너 오래 기다렸잖아. 애덤의 말에 브래들리는 긴 한숨과 함께 흰 연기를 뱉어냈다. 그랬지. 근데 기다리라고 하지도 않았어, 허니는. 브래들리의 말에 애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수잔이 허니 초대 할거야. 알지? 브래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수랑 갈게. 브래들리의 말에 애덤이 켁, 하며 빨개진 얼굴로 한참을 기침을 토해냈다. 아이, 너는 담배를 몇년 째 피우는데 아직까지도 이러냐? 브래들리는 애덤의 등을 살살 토닥이며 장난스레 말했다.
“아니, 니네 형수는 왜. 둘이 만나서 잘 되라니까?”
“…아직은 아냐.”
“아직도? 아니 대체…. 진짜, 내가 널 오래 봤지만, 진짜 널 모르겠다.”
빨개진 얼굴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애덤이 브래들리의 팔을 가볍게 치웠다. 어깨를 으쓱한 브래들리가 애덤의 말에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러게, 나도 날 잘 모르겠어.
**
애덤과 수잔의 약혼식 당일, 브래들리는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타이밍이 중요했다. 일찍 간다면 절 보고 피할 허니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늦게 된다면 아예 얼굴도 마주하지 못할 것 같았다. 준비를 다 한 브래들리가 뚱하게 소파에 앉아있자 앨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만 좀 재고 가지? 앨리의 말에 브래들리는 대꾸도 않고 길게 숨을 내 쉬었다.
“형수, 그거 알아?”
“…또 뭘?”
“인생은 타이밍이라는거. 이것도 형한테 배운거야.”
제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한 번 힐끔 내려다 본 브래들리가 자리에 일어나서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가자, 이 쯤이면 될 것 같아. 브래들리의 행동에 앨리는 에휴, 하고 고개를 저었다. 저런 행동을 보자면 이상하게도 꼭 로버트를 보는 듯 했다. 둘은 형제가 아니면서도 형제같았다. 긴 다리로 배려없이 걷던 브래들리가 느리게 걷는 앨리를 돌아보았다. 천천히 나와, 차 빼놓을게. 저렇게 참을성 없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 그 여자애를 기다렸을까. 앨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예비부부에게 브래들리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가벼운 포옹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눈은 자꾸만 부부의 뒷쪽을 향했기에 애덤은 장난 섞인 목소리로 누굴 그렇게 찾는데? 하며 물었다. 허니 아직 안 왔는데? 역시나 장난 가득한 목소리와 표정의 수잔에 브래들리가 참나, 저기 범블 봤거든? 하며 두 사람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한 차례의 소란을 끝낸 브래들리는 일부러 가벼운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쭉 둘러 보았다. 진짜, 못말리겠다. 앨리는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브래들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계속 내 옆에서 아닌척 찾지 말고 가서 직접 찾아. 앨리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브래들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 집인양 뒷마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휴, 진짜 성격하고는. 앨리는 성큼성큼 사라지는 브래들리의 뒷모습을 보며 핑거푸드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
그리 넓지도 않은 마당이었지만 브래들리는 자연스레 뒷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니가 떠난 이후로 브래들리는 수잔의 집에 더이상 방문하지 않았다. 수잔과 애덤 역시 브래들리를 굳이 제 집으로 부르진 않았기 떄문이다. 여긴 하나도 안 변했네. 오랜만에 온 뒷마당은 여전히 그 푸르름을 자랑했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귀여운 벤치엔 여전히 그 날들의 여름처럼 제가 보고싶은 얼굴이 앉아있었다. 브래들리는 분홍빛의 깔끔한 원피스를 입고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마치 날씨를 착각해서 지금 피어난 봄날의 들꽃같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제 얼굴을 보고 도망가진 않을까 브래들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허니에게 향했다. 어느정도 가까워져야 도망을 안갈까. 사람손을 타지 않은 길고양이에게 다가가는 것 같단 생각이 잠깐 스쳤다. 다행스럽게도 허니는 길고양이보단 덜 예민했다. 가까이 가보니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이 마저도 너무나도 허니같단 생각에 브래들리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손으로 막아냈다. 감고있는 허니의 눈 앞에 손을 휘휘 흔든 브래들리는 조금은 짧게 올라온 치마 위로 제 겉옷을 벗어 덮었다.
그 앞에 쪼그려 앉은 브래들리는 찬찬히 허니를 살폈다. 이미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지내온 세월을 알고 있었고,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지만 너무 어두웠거나 짧게 보고 헤어진터라 이렇게 자세히 살필시간이 없었던 브래들리는 이 시간이 감사했다. 놀랍게도 저를 버리고 떠나갔던 그 날 보다는 조금 성숙한 느낌이 드는 것 말고는 그대로인 얼굴에 브래들리는 저도 모르게 와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인간이 아닌거 아냐? 인어들은 원래 늙지도 않는다잖아.
브래들리는 소금기를 머금은 초여름의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허니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넘겨주었다. 그 손길에 아슬아슬 흔들리던 허니의 머리가 브래들리 손 위로 뚝 떨어졌다. 부드러운 살결이 브래들리의 손바닥 위에 따뜻하게 얹혔다. 이대로 꾹꾹 눌러서 깨워버릴까 하는 못된 마음이 들었지만, 꽤나 예쁘게 화장하고 온 얼굴을 굳이 망쳐서 미움받을 이유를 추가하고싶진 않았다. 조심스레 허니의 얼굴을 감싼 브래들리가 허니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제 어께에 고개를 기대게 했다. 그 긴 시간을 거슬러 브래들리는 다시 고등학생의 기분이 되었다.
영원하길 바랐던 찰나의 순간은 허니가 멍한 얼굴로 눈을 뜨며 끝이 났다. 여전히 잠에 약하구나. 브래들리는 설핏 나오는 웃음을 꾹 눌렀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질 않는지 까만 눈이 두어번 느리게 깜빡거렸다. 눈이 아파? 브래들리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자 그제야 흐리멍텅하던 눈이 생기가 돌았다.
“…니가 왜 여깄어?”
“애덤이 초대해서.”
“당연히 그랬겠지. 그거 말고, 왜 이 뒷마당에 있냐고.”
“….”
정신을 차리자마자 난폭해지는 허니에 브래들리는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인어가 아닌 신화속에서 나온 사이렌이었나 하는 생각따위가 들었다. 정말 어려운 여자야. 아무말도 않고 빤히 보고 있으니 멋쩍은 얼굴로 제 무릎위에 얹혀진 겉옷을 살짝 쥐었다. 그래도 고마워, 덕분에 잘 잤어.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는척을 하라는거야 말라는거야. 그래도 좋은 징조였다. 제가 어떤짓을 했는지 알아도 허니는 금새 제게 잘해줄것이다. 다가오지 말라고 날을 세웠어도 결국엔 제 행동을 고마워하는 지금처럼. 오늘 예쁘다, 허니. 브래들리는 20년간 내내 매일같이 머릿속에서 멤돌던 문장을 겨우 꺼냈다. 조금 붉어진 것 같은 허니의 얼굴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로켓! 어머, 허니씨도 있었네요! 이제 선언 하고 축사 시작한다는데, 같이 가요!”
갑자기 멀리서 손을 흔들며 오는 앨리에 허니는 화들짝 놀라며 제 무릎에 올려진 옷을 던지듯 돌려주었다. 아, 진짜. 타이밍. 브래들리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 쉬었다. 제 속도 모르고 허니는 앨리의 옆에 끼워져 저와 함께 집 앞으로 나섰다. 저기 앞에 가서 앉자. 앨리는 은근히 허니도 같이 가서 앉자고 팔을 이끌었지만 허니는 아, 저는 동생이랑 앉을 게요. 하며 뒤에 자리한 범블을 가리켰다. 쟨 또 왜 저렇게 뒤에 앉은거야. 브래들리는 마시지도 않은 술이 온 몸에 도는 기분이었다. 앨리는 아쉬운듯 아, 그럴래요? 그럼 식 끝나고 다시 봐요. 하며 허니의 팔을 놓아주었다.
자리에 앉은 앨리가 조심스럽게 브래들리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실수한거 맞지? 미안해 보이는 앨리의 얼굴을 보니 브래들리는 치솟던 화가 가라 앉았다. 그래, 형수한테 내가 뭘 바라. 잔잔하게 고개를 끄덕였더니 앨리가 미안. 하며 사과를 해왔다. 그치만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 했다. 그제야 일부러 그 상황에 끼어들어서 방해한 것을 눈치챈 브래들리는 제 형과 똑같은 앨리에 어쩔 수 없이 웃었다.
**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은것을 겨우 참아낸 브래들리는 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알아서 갈게. 안나가 같이 놀자고 해서. 웃으며 말하는 앨리에 브래들리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분홍색 원피스를 눈으로 찾기 바빴다. 조그만게 되게 빠르네. 브래들리는 언제나처럼 신기루같이 사라진 허니에 허탈하게 웃었다. 대신에 저 멀리서 보이는 허니와 비슷한 범블에 대충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쌤.”
이 남매는 참 웃겼다. 허니도 그랬지만 범블 역시 기분이 나쁘면 오히려 깍듯하게 대했다. 뭐가 또 화가 났는지 언제는 형이라고 했다가 언제는 선생님이라고 하며 오락가락하는 범블에 브래들리는 또 뭐가 기분이 나빴어. 하며 큭큭 웃었다. 내가 뭘.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범블에 브래들리가 익숙하다는 듯 대꾸는 않고 허니는? 하고 물었다. 몰라, 그냥 간다고 하고 갔어. 붉은색 와인을 홀짝이며 얄밉게 말하는 범블에 브래들리가 범블을 아프지 않게 한 대 콩 하고 쥐어 박았다. 니가 붙잡았어야지. 브래들리의 말에 범블이 우씨, 하며 브래들리가 쥐어박은 제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내가 왜. 형이 우리 누나 괴롭히는데.”
“누가 누굴 괴롭혀? 말은 바로해. 날 괴롭히는건 언제나 허니였어.”
지랄. 범블은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허니의 말과 똑같은 언어로 욕을 해댔다. 뜻은 몰라도 욕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기에 브래들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 남매 한테는 욕을 먹어도 기분이 안 나빠. 내가 욕먹을 짓을 해서 그런가. 브래들리는 별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범블의 등을 툭툭 쳤다. 적당히 마시고 조심히 들어가. 너 다치면 허니가 슬퍼한다. 하고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뒤에서 들리는 참나, 쌤이나 잘해요! 소리에 브래들리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는 손을 대충 흔들었다.
차가 쭉 늘어서있는 길가로 나오니 저 멀리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허니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높아보이던 구두는 어느새 손에 들고는 남의 집 잔디만을 밟아가며 조심스레 걷는 모습에 브래들리는 안쓰러움과 웃음이 동시에 피어났다. 허니는 전혀 함께 할 수 없는 감정을 단번에 묶어냈다. 브래들리는 당장에 뛰어가서 한 품에 안아 들고 싶은것을 겨우 참아냈다. 갑작스레 몰아치면 예민한 인어는 부서지고 망가질 것이 뻔했다. 교활한 바다는 온전히 인어를 얻기 전 까진 난폭하게 굴지 않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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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ㅈㅅㅈㅅ.. 노잼이라 ㅈㅅㅈㅅ
오타나 비문이 있다면 그 또한 ㅈㅅㅈㅅ...
뿌꾸너붕붕
브래들리너붕붕
뭍에 나온 인어가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그리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동화속의 인어가 아니었고, 그는 더이상 허니만의 바다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허니가 돌아오는 것 또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맑고 푸른 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허니는 속절없이 가라 앉아있었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푸른눈을 허니는 신뢰할 수 없어졌다.
허니가 마주한 것은 어두운 곳에서 겹쳐진 두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허니는 제 자신도 답을 낼 수 없는 물음에 잠식되었다.
탐욕스러운 바다는 인어를 삼켜내고서야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억눌렸던 감정은 집채만한 파도가 되어 허니를 덮쳤다.
브래들리는 제가 내민 손을 잡은 이 인어가 너무도 가지고 싶어졌다.
브래들리는 역겨움에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와 배신감에 차오른 브래들리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인간이 됐던 인어가 다시 제 품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직 먼 이야기 같았다.
15.
이 작은 동네에서도 허니는 브래들리를 잘 피해 다녔다. 어디에 있을지는 뻔했지만, 브래들리는 굳이 허니를 찾진 않았다. 기회는 많았고, 서두를수록 일은 엉킬뿐이었다. 그렇지만 생각과 기분이 같을 순 없는법인지라 매일매일이 저기압인 브래들리를 보며 앨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럴거면 나가서 새로 산 집이나 고쳐. 앨리의 말에 브래들리가 인상을 썼다. 거기는 고치면 안돼. 앨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추억의 장소잖아. 살만하게 바뀌면 더 좋은거 아냐?”
형수는 형이랑 살던 곳이 갑자기 바뀌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브래들리의 말에 앨리가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허니 취향대로 바꿀거야. 영 못쓰는거 빼고는 그대로 둬야지. 브래들리는 찬찬히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허니의 말을 떠올렸다. 몰리와의 추억이 담긴 모든 것들은 없애야지. 그건 영 못쓰니까. 브래들리는 머릿속으로 버릴 목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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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동네에는 가업을 잇는거 아니고서야 마땅히 머물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아서 브래들리는 강제로 친구들과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허니가 아니면 누구든 상관없는 그에겐 별 타격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애덤은 브래들리와 꾸준히 친하게 지내는 몇 안되는 친구였다.
“어, 왔어?”
“미안. 수업 준비 한다고 좀 늦었어.”
오래 되어 익숙한 펍에 다 아는 얼굴들이 모여 있었고, 브래들리는 조금은 숨이 차 보이는 모습으로 빈 자리에 앉았다. 어째 약혼 준비는 내가 하는데 바쁜건 니가 더 바빠? 미리 주문해 둔 샷을 브래들리 앞으로 내민 애덤이 씩 웃었다. 벌주. 이미 몇 잔은 들이켰는지 빨갛게 달아오른 뺨이 얄미웠다. 에이씨. 짜증이 가득하지만 웃음기를 섞은 채 머릴 긁적이던 브래들리는 제 앞에 놓인 샷을 한 번에 털어 넣고는 바로 제 옆에 놓인 누군가의 파인트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즐거운 박수와 환호성이 펍을 가득 채웠다.
아직은 쌀쌀한 밤바람에 브래들리는 술이 조금 깨는 듯 했다. 담배를 물고는 라이터를 찾느라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언제 나왔는지 애덤이 브래들리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 땡큐. 까만 밤에 붉게 물든 담배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 허니 왔다던데. 서로 다른 곳을 바라 보며 넌지시 던진 애덤의 말에 브래들리가 피식 웃었다. 응. 오래 걸렸지.
“이유는 말 안해주고?”
“우리 사이에 이유가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도 너 오래 기다렸잖아. 애덤의 말에 브래들리는 긴 한숨과 함께 흰 연기를 뱉어냈다. 그랬지. 근데 기다리라고 하지도 않았어, 허니는. 브래들리의 말에 애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수잔이 허니 초대 할거야. 알지? 브래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수랑 갈게. 브래들리의 말에 애덤이 켁, 하며 빨개진 얼굴로 한참을 기침을 토해냈다. 아이, 너는 담배를 몇년 째 피우는데 아직까지도 이러냐? 브래들리는 애덤의 등을 살살 토닥이며 장난스레 말했다.
“아니, 니네 형수는 왜. 둘이 만나서 잘 되라니까?”
“…아직은 아냐.”
“아직도? 아니 대체…. 진짜, 내가 널 오래 봤지만, 진짜 널 모르겠다.”
빨개진 얼굴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애덤이 브래들리의 팔을 가볍게 치웠다. 어깨를 으쓱한 브래들리가 애덤의 말에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러게, 나도 날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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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과 수잔의 약혼식 당일, 브래들리는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타이밍이 중요했다. 일찍 간다면 절 보고 피할 허니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늦게 된다면 아예 얼굴도 마주하지 못할 것 같았다. 준비를 다 한 브래들리가 뚱하게 소파에 앉아있자 앨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만 좀 재고 가지? 앨리의 말에 브래들리는 대꾸도 않고 길게 숨을 내 쉬었다.
“형수, 그거 알아?”
“…또 뭘?”
“인생은 타이밍이라는거. 이것도 형한테 배운거야.”
제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한 번 힐끔 내려다 본 브래들리가 자리에 일어나서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가자, 이 쯤이면 될 것 같아. 브래들리의 행동에 앨리는 에휴, 하고 고개를 저었다. 저런 행동을 보자면 이상하게도 꼭 로버트를 보는 듯 했다. 둘은 형제가 아니면서도 형제같았다. 긴 다리로 배려없이 걷던 브래들리가 느리게 걷는 앨리를 돌아보았다. 천천히 나와, 차 빼놓을게. 저렇게 참을성 없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 그 여자애를 기다렸을까. 앨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예비부부에게 브래들리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가벼운 포옹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눈은 자꾸만 부부의 뒷쪽을 향했기에 애덤은 장난 섞인 목소리로 누굴 그렇게 찾는데? 하며 물었다. 허니 아직 안 왔는데? 역시나 장난 가득한 목소리와 표정의 수잔에 브래들리가 참나, 저기 범블 봤거든? 하며 두 사람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한 차례의 소란을 끝낸 브래들리는 일부러 가벼운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쭉 둘러 보았다. 진짜, 못말리겠다. 앨리는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브래들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계속 내 옆에서 아닌척 찾지 말고 가서 직접 찾아. 앨리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브래들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 집인양 뒷마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휴, 진짜 성격하고는. 앨리는 성큼성큼 사라지는 브래들리의 뒷모습을 보며 핑거푸드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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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넓지도 않은 마당이었지만 브래들리는 자연스레 뒷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니가 떠난 이후로 브래들리는 수잔의 집에 더이상 방문하지 않았다. 수잔과 애덤 역시 브래들리를 굳이 제 집으로 부르진 않았기 떄문이다. 여긴 하나도 안 변했네. 오랜만에 온 뒷마당은 여전히 그 푸르름을 자랑했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귀여운 벤치엔 여전히 그 날들의 여름처럼 제가 보고싶은 얼굴이 앉아있었다. 브래들리는 분홍빛의 깔끔한 원피스를 입고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마치 날씨를 착각해서 지금 피어난 봄날의 들꽃같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제 얼굴을 보고 도망가진 않을까 브래들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허니에게 향했다. 어느정도 가까워져야 도망을 안갈까. 사람손을 타지 않은 길고양이에게 다가가는 것 같단 생각이 잠깐 스쳤다. 다행스럽게도 허니는 길고양이보단 덜 예민했다. 가까이 가보니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이 마저도 너무나도 허니같단 생각에 브래들리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손으로 막아냈다. 감고있는 허니의 눈 앞에 손을 휘휘 흔든 브래들리는 조금은 짧게 올라온 치마 위로 제 겉옷을 벗어 덮었다.
그 앞에 쪼그려 앉은 브래들리는 찬찬히 허니를 살폈다. 이미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지내온 세월을 알고 있었고,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지만 너무 어두웠거나 짧게 보고 헤어진터라 이렇게 자세히 살필시간이 없었던 브래들리는 이 시간이 감사했다. 놀랍게도 저를 버리고 떠나갔던 그 날 보다는 조금 성숙한 느낌이 드는 것 말고는 그대로인 얼굴에 브래들리는 저도 모르게 와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인간이 아닌거 아냐? 인어들은 원래 늙지도 않는다잖아.
브래들리는 소금기를 머금은 초여름의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허니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넘겨주었다. 그 손길에 아슬아슬 흔들리던 허니의 머리가 브래들리 손 위로 뚝 떨어졌다. 부드러운 살결이 브래들리의 손바닥 위에 따뜻하게 얹혔다. 이대로 꾹꾹 눌러서 깨워버릴까 하는 못된 마음이 들었지만, 꽤나 예쁘게 화장하고 온 얼굴을 굳이 망쳐서 미움받을 이유를 추가하고싶진 않았다. 조심스레 허니의 얼굴을 감싼 브래들리가 허니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제 어께에 고개를 기대게 했다. 그 긴 시간을 거슬러 브래들리는 다시 고등학생의 기분이 되었다.
영원하길 바랐던 찰나의 순간은 허니가 멍한 얼굴로 눈을 뜨며 끝이 났다. 여전히 잠에 약하구나. 브래들리는 설핏 나오는 웃음을 꾹 눌렀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질 않는지 까만 눈이 두어번 느리게 깜빡거렸다. 눈이 아파? 브래들리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자 그제야 흐리멍텅하던 눈이 생기가 돌았다.
“…니가 왜 여깄어?”
“애덤이 초대해서.”
“당연히 그랬겠지. 그거 말고, 왜 이 뒷마당에 있냐고.”
“….”
정신을 차리자마자 난폭해지는 허니에 브래들리는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인어가 아닌 신화속에서 나온 사이렌이었나 하는 생각따위가 들었다. 정말 어려운 여자야. 아무말도 않고 빤히 보고 있으니 멋쩍은 얼굴로 제 무릎위에 얹혀진 겉옷을 살짝 쥐었다. 그래도 고마워, 덕분에 잘 잤어.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는척을 하라는거야 말라는거야. 그래도 좋은 징조였다. 제가 어떤짓을 했는지 알아도 허니는 금새 제게 잘해줄것이다. 다가오지 말라고 날을 세웠어도 결국엔 제 행동을 고마워하는 지금처럼. 오늘 예쁘다, 허니. 브래들리는 20년간 내내 매일같이 머릿속에서 멤돌던 문장을 겨우 꺼냈다. 조금 붉어진 것 같은 허니의 얼굴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로켓! 어머, 허니씨도 있었네요! 이제 선언 하고 축사 시작한다는데, 같이 가요!”
갑자기 멀리서 손을 흔들며 오는 앨리에 허니는 화들짝 놀라며 제 무릎에 올려진 옷을 던지듯 돌려주었다. 아, 진짜. 타이밍. 브래들리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 쉬었다. 제 속도 모르고 허니는 앨리의 옆에 끼워져 저와 함께 집 앞으로 나섰다. 저기 앞에 가서 앉자. 앨리는 은근히 허니도 같이 가서 앉자고 팔을 이끌었지만 허니는 아, 저는 동생이랑 앉을 게요. 하며 뒤에 자리한 범블을 가리켰다. 쟨 또 왜 저렇게 뒤에 앉은거야. 브래들리는 마시지도 않은 술이 온 몸에 도는 기분이었다. 앨리는 아쉬운듯 아, 그럴래요? 그럼 식 끝나고 다시 봐요. 하며 허니의 팔을 놓아주었다.
자리에 앉은 앨리가 조심스럽게 브래들리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실수한거 맞지? 미안해 보이는 앨리의 얼굴을 보니 브래들리는 치솟던 화가 가라 앉았다. 그래, 형수한테 내가 뭘 바라. 잔잔하게 고개를 끄덕였더니 앨리가 미안. 하며 사과를 해왔다. 그치만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 했다. 그제야 일부러 그 상황에 끼어들어서 방해한 것을 눈치챈 브래들리는 제 형과 똑같은 앨리에 어쩔 수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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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은것을 겨우 참아낸 브래들리는 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알아서 갈게. 안나가 같이 놀자고 해서. 웃으며 말하는 앨리에 브래들리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분홍색 원피스를 눈으로 찾기 바빴다. 조그만게 되게 빠르네. 브래들리는 언제나처럼 신기루같이 사라진 허니에 허탈하게 웃었다. 대신에 저 멀리서 보이는 허니와 비슷한 범블에 대충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쌤.”
이 남매는 참 웃겼다. 허니도 그랬지만 범블 역시 기분이 나쁘면 오히려 깍듯하게 대했다. 뭐가 또 화가 났는지 언제는 형이라고 했다가 언제는 선생님이라고 하며 오락가락하는 범블에 브래들리는 또 뭐가 기분이 나빴어. 하며 큭큭 웃었다. 내가 뭘.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범블에 브래들리가 익숙하다는 듯 대꾸는 않고 허니는? 하고 물었다. 몰라, 그냥 간다고 하고 갔어. 붉은색 와인을 홀짝이며 얄밉게 말하는 범블에 브래들리가 범블을 아프지 않게 한 대 콩 하고 쥐어 박았다. 니가 붙잡았어야지. 브래들리의 말에 범블이 우씨, 하며 브래들리가 쥐어박은 제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내가 왜. 형이 우리 누나 괴롭히는데.”
“누가 누굴 괴롭혀? 말은 바로해. 날 괴롭히는건 언제나 허니였어.”
지랄. 범블은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허니의 말과 똑같은 언어로 욕을 해댔다. 뜻은 몰라도 욕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기에 브래들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 남매 한테는 욕을 먹어도 기분이 안 나빠. 내가 욕먹을 짓을 해서 그런가. 브래들리는 별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범블의 등을 툭툭 쳤다. 적당히 마시고 조심히 들어가. 너 다치면 허니가 슬퍼한다. 하고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뒤에서 들리는 참나, 쌤이나 잘해요! 소리에 브래들리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는 손을 대충 흔들었다.
차가 쭉 늘어서있는 길가로 나오니 저 멀리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허니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높아보이던 구두는 어느새 손에 들고는 남의 집 잔디만을 밟아가며 조심스레 걷는 모습에 브래들리는 안쓰러움과 웃음이 동시에 피어났다. 허니는 전혀 함께 할 수 없는 감정을 단번에 묶어냈다. 브래들리는 당장에 뛰어가서 한 품에 안아 들고 싶은것을 겨우 참아냈다. 갑작스레 몰아치면 예민한 인어는 부서지고 망가질 것이 뻔했다. 교활한 바다는 온전히 인어를 얻기 전 까진 난폭하게 굴지 않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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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ㅈㅅㅈㅅ.. 노잼이라 ㅈㅅㅈㅅ
오타나 비문이 있다면 그 또한 ㅈㅅㅈㅅ...
뿌꾸너붕붕
브래들리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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