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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02:25
첫사랑과의 재회는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소설처럼 애틋하지 않았다.
뭍에 나온 인어가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그리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동화속의 인어가 아니었고, 그는 더이상 허니만의 바다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허니가 돌아오는 것 또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맑고 푸른 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허니는 속절없이 가라 앉아있었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푸른눈을 허니는 신뢰할 수 없어졌다.
허니가 마주한 것은 어두운 곳에서 겹쳐진 두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허니는 제 자신도 답을 낼 수 없는 물음에 잠식되었다.
탐욕스러운 바다는 인어를 삼켜내고서야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억눌렸던 감정은 집채만한 파도가 되어 허니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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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는 제가 내민 손을 잡은 이 인어가 너무도 가지고 싶어졌다.










12.
브래들리는 처음 느껴보는 소유욕에 속이 끓었다. 살면서 제 것이길 바란것은 인어가 처음이었다. 한 번 마주친 검은색의 반짝이는 눈이 오롯이 저만 향하게 하고 싶었다. 문제는, 그 소유욕이 끓는다고 해도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가방도 메고, 저와 비슷한 나잇대니 어련히 학교에서 한 번 쯤은 마주치지 않을까, 싶었던 브래들리는 몇 날 며칠이 지나도 허니의 머리카락 끝자락 하나도 마주칠 수 없었다. 정말 그 날 만났던 게 인어가 아니었을까. 브래들리는 교실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


“…어?”
“안녕.”


그 이후로 만날 수 없었던 허니를 만난건 그러니까 순전히 우연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들릴 로버트와 함께 먹을 저녁 재료를 사러 나왔던 브래들리는 기분이 좋았다. 햇빛은 따뜻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가지 않을 동네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오랫동안 찾았던 인어를 마주했다. 물에 젖지 않은 인어는 대비감이 심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옆에 앉아도 돼?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레 옆자리에 앉은 브래들리는 제 심장소리가 너무도 커서 허니에게도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너 그거 알아?”
“…뭘?”
“심해의 85%는 아직도 알 수 없다는거.”
“….”


뜬금없이 시작된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피식 웃었다. 재밌잖아, 정작 우리가 사는 이 행성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게.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오히려 다 알면, 이 곳에 살기 싫을 수 있잖아.”
“왜?”
“글쎄, 심해에 뭐가 있을 줄 알고. 혹시 알아?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숨어 있을지.”
“그런거라면 오히려 알아야 하는거 아냐?”
“해결할 수 없는게 있는거면?”
“그렇다고 무작정 덮어두고 외면하는게 해결책은 아니지.”
“가끔은 모르는게 좋을 수도 있어, 허니.”


쓸데없는 이야기로 이어진 대화는 해가 저물도록 끊일 줄 몰랐다. 찬 바람에 팔뚝을 쓸어내리는 허니를 보고 나서야 브래들리가 이제 가자.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게 내밀어진 손을 본 허니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하다가 다시 한 번 브래들리의 손을 잡았다. 한 손으로도 당겨서 가볍게 일으켜 세울만큼 가느다란 사람이 자꾸만 바다에 둥실둥실 떠있을 생각을 하니 브래들리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너, 수영 잘해?”
“응.”
“…그렇구나. 바다엔 자주 가?”
“여름엔 자주 가지.”
“그럼 갈 때 나 불러주면 안돼?”
“니가 어디 사는 줄 알고.”


언덕을 내려와 갈림길에 선 브래들리가 허니에게 말했다. 나는 저쪽에 보이는 파란지붕에 살아. 23번지.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되면. 간결하게 대답한 허니가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데려다 줘도 돼?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혼자갈래. 단호한 거절에 브래들리는 더 이상 허니에게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자신이 무작정 돌진하면 영영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제 옆에 있어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브래들리는 목이 말라왔다. 입술을 대충 혀로 적신 브래들리가 아쉬운 듯 손을 흔들었다. 잘가, 다음에 또 봐. 뭍에서도 자유로운 인어는 손을 흔들고 저 멀리로 달려갔다.


**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지키려는 듯, 브래들리는 허니를 찾아다녔다. 여전히 학교에선 볼 수 없었지만, 날씨가 좋은 오후에 학교를 빼고 바다로 향하면 만날 수 있었다. 어디에 사는지 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던 허니의 성향에 브래들리는 그 흔한 학교에 대한 스몰톡 조차 할 수 없었다. 허니와 대화할 수록 주변에만 머무는 것에 안달이 났다. 가까워 질수록 저와 그 사이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안 추워? 날이 좀 쌀쌀한데.”
“추워.”
“…우리집 갈래?”
“….”


머리를 털던 허니가 그대로 멈춰서 브래들리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브래들리는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말로 횡설수설하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별 다른 의도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고. 우리집이 그래도 너네집보단 가까울거고, 우리집에 지금 아무도 없기도 하고, 너 추우니까 옷 말리기도 좋고, 씻고 하교 시간에 맞춰서 가는게 안 혼나지 않을까 해서…. 로버트에게 지적 받고 나서는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말 끝을 흐리기까지 한 브래들리의 노력을 알아준건지 허니는 금새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추워, 앞장 서. 


브래들리는 이 집에 쿠퍼가 아닌 사람이 왔다는 사실 자체로도 긴장이 됐다. 가족 이외의 사람을 집으로 들여본 적이 없었고, 제대로 된 일반적인 가정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잘 알지 못해서 혹시나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브래들리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대충 정리한다고 했는데, 이따가 다시 하던가. 하며 욕실에서 나왔다. 저와 같은 바디워시를 썼음에도 허니의 몸에 입혀지니 느낌이 달랐다.


“집 되게 크다. 밖에서 보니까 다락방도 있는거 같던데.”
“아, 응. 형이랑 아부지 물건이 많긴 한데, 구경 할래?”
“뭔데?”


2층 복도 중간에서 계단을 내린 브래들리가 허니를 이끌었다. 꽤나 잘 정리되어있는 다락방은 오히려 포근한 느낌까지 들었다. 진작에 청소해놓길 잘했다. 브래들리는 우와. 하며 감탄사를 내뱉은 허니를 보고는 뿌듯하기까지 했다. 한켠에 가득 쌓인 LP를 보던 허니는 신중한 얼굴로 LP를 고르고 있었다.


“뭐, 여기가 펍도 아니고. 돈 드는것도 아닌데 아무거나 들어.”
“그래도, 뭔가 한번 고른건 끝까지 듣고 싶단 말야.”


인상을 쓰며 한참을 고르던 허니가 이거 틀어줘 하며 내밀었다. 워낙 많은 LP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어서 이건 또 처음 보는 앨범이었다. 뭐해? 허니의 물음에 브래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 재즈였네. 마음에 드는지 수건을 둘둘말고는 빈백에 털썩 누워버린 허니에 오히려 브래들리가 당황했다. 너 씻고 나왔는데 먼지 구덩이 위에 앉으면 어떡해.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눈을 감고 발 끝을 까딱거리며 대꾸했다. 그럴거면 여기 올라오지도 않았어.


여름날의 태양이 지붕을 넘으며 붉은 빛으로 다락방을 물들였다. 제대로 판을 닦지 않아서 그런지 먼지가 붙어 타닥거리는 소리가 멜로디 사이에 스며들었다. 브래들리는 허니의 맞은편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집 주인은 저인데, 허니의 눈치를 살살 보는 꼴이 우스웠다. 까딱거리는 발목에 제 입을 맞추고 싶었다.


“…브래들리.”
“…어?!”


저 인어가 정말로 인어라서 자신의 불순한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 아닐까, 깜짝 놀란 브래들리가 더듬거리며 대답하자 허니가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놀라. 눈 한번 뜨지 않고 제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사람은 로버트 말고는 없을 줄 알았는데. 저보다도 훨씬 작고 여린 사람에게 브래들리는 속절없이 묶여버렸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그 주인은 그 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다음에도 또 와도 돼?”


그렇지 않고서야, 브래들리가 속이 탈만한 말만 골라서 하진 않았을 거니까. 허니의 물음에 브래들리가 큼큼, 목을 다듬으며 짐짓 어른스러운 척 목소리톤을 낮췄다. 원하신다면, 언제든지요. 장난스런 브래들리의 목소리에 허니가 꺄르르 웃었다.


**


브래들리의 노력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몇 주가 지나도록 학교에서 한 번 마주칠 수 없었던 허니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어? 브래들리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같이 놀란 허니가 손가락질을 했다. 복도를 지나던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민망했는지 …아. 하며 뒷걸음질을 치는 허니를 브래들리가 잡아챘다. 이따가 끝나고 여기서 봐. 너 올때까지 기다릴거야. 브래들리에게 잡힌 손목을 살짝 비틀며 뿌리친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이후로 브래들리는 허니와 더욱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학교에서 만나니 끊이지 않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물론, 자신과 가까이 지낸다는 이유로 교내 여자들의 저주와 비슷한 것을 받는 중이었지만 인어는 그런것엔 아랑곳 않았다. 저주를 감수하면서까지 뭍에 나와서 그런가. 브래들리는 제 앞에 앉아서 저주의 편지를 읽으며 깔깔 웃는 허니를 보며 생각했다.


허니의 주변엔 다행스럽게도 많은 사람이 존재하진 않았다. 제 인기 덕분에 거의 모든 여자애들과 척을 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다녀서 그런지 남자애들도 허니의 존재는 거의 알지 못했다. 허니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브래들리와 함께 다니면서부터였으니, 쉽게 접근하려는 멍청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브래들리는 다들 인어의 진짜 모습을 몰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개중에는 안목이 뛰어난 것인지 브루넷의 여자애 -수잔이랬던가.- 하나만 허니의 곁을 지켰다. 학교를 싫어하는 허니도 수잔과 함꼐 있다면 웃음을 보였기에 브래들리는 허니를 위해 그녀를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것을 다 잘라내면 인어가 숨이 막혀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름이 있었다. 오롯이 저에게만 반짝였으면 좋겠는 눈이, 제 이름을 부를때만 설레었으면 하는 입술이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몰리라는 이름을 연신 올렸다. 똑같은 친구로 서 있는다 해도, 여자인 몰리와 남자인 브래들리의 거리는 다른 것이었다. 브래들리는 허니가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 설레어 하는게 싫었다. 기회가 된다면, 허니의 곁에서 떨어뜨리고 싶었다. 평생 그 이름을 올리는 것에 치를 떨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설령 인어를 아프게 한다고 해도.


**


허니에게 소개 받은 몰리는 허니가 묘사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떠름하게 인사를 하니 제 얼굴을 보며 얼굴이 붉어진 것이 보였다. 너무도 자주 보던 표정이라 브래들리는 오히려 시시하게 느껴졌다. 겨우 이런애와 허니의 애정을 나눠 가질 순 없었다. 방학내내 허니와 있을 생각을 하던것도 잠시, 눈만 뜨면 몰리를 찾아대는 허니때문에 브래들리는 심기가 불편했다. 그래도 방학이 끝나면 언제든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다렸지만, 몰리의 이사선언에 브래들리는 기분이 바닥을 쳤다. 이래선 안됐다.


브래들리는 허니가 상처 받을 것을 알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허니가 받은 상처는 자신이 보듬어주면 그만이었다. 비겁한 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것을 얻어 내는 것은 제 뼛속에 새겨진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작은 아주 간단했다. 주변의 입이 가벼운 남자애들에게 몰리와 허니의 사이에 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꼬아서 흘리기만 하면 됐다. 소문은 알아서 부풀려지고 커질것이다. 몰리의 시선을 온전히 자신에게 돌려야했다. 다시는 허니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눈을 가려야했다. 이것으로 가려진다면 그녀는 허니의 애정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기준은 오롯이 브래들리가 정했지만.


사랑에 눈이 먼 인간의 행동이란 너무도 뻔해서, 브래들리는 몰리가 허니의 손을 놓았다는 사실에 웃음이 터질 뻔 했다. 물론, 어깨가 축 쳐서 그 자리에 서있는 허니가 너무도 안쓰럽고 사랑스러워서 브래들리는 이 모든 연극을 때려치고 허니를 제 품에 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 바라고 이 모든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때를 기다려야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브래들리는 자연스럽게 바다로 향했다. 인간세상에서 버림 받은 인어가 찾을 곳이라곤 제 마음의 고향일테니. 저 멀리서 보이는 작고도 사랑스러운 실루엣에 브래들리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새어나왔다. 겨우 표정을 정리한 브래들리가 허니의 뒤로 다가섰다.


“뭐해? 바다에 빠져 죽었을까봐 왔는데, 깔끔하네.”
“…브랫.”


뒤를 돌아 제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안기는 허니에 브래들리는 만족감에 소름이 끼쳐왔다. 조심스레 제 품에 안아 등을 토닥이니 더욱 서럽게 울며 제 품으로 파고드는 허니가 브래들리는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쉬이, 괜찮아. 내가 있잖아.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제가 만든 덫에 걸려 상처가 난 인어를 브래들리는 조심스럽게 다독였다. 인어가 제 품에 얼굴을 묻고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웃는 제 얼굴을 보고 기민한 인어는 자신의 짓임을 알아채고 뺨이라도 때렸을지 몰랐다.


붉게 물든 하늘이 검은 바다 위로 떨어졌다. 허니를 제 품에 안은 브래들리는 문득 자신을 구하러 왔던 마틴이 떠올랐다. 이미 차갑게 변해버린 사람의 옆에서 자신의 욕망과 욕구만 채우려는 탐욕스러웠던 그의 행동이 자신과 겹쳐졌다. 사실은 진짜 내가 마틴의 자식은 아니었을까. 브래들리는 역겨움에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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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허니가 자기한테 빠진지도 모른채 삐뚤어진 집착광공 뿌꾸 너무 좋아요….
붕붕이들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중간에 허니가 튼 LP 앨범은 Madeleine Peyroux의 Careless love 입니다.
첫 곡인 Dance me to the end of love 들으면서 읽어주면 더 재밌을지도?
노잼이면 ㅈㅅㅈㅅ





뭔가 글을 미씽링크 채우듯이 어거지로 채우는 것 같다고 생각하신다면 ㅈㅅㅈㅅ….
한국사람 빨리빨리라서 빨리빨리 다음 진도 나가야하는데
구구절절 설명충이라 속도가 안나네 ㅈㅅㅈㅅ




아무튼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기다려주시는 붕붕이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뿌꾸너붕붕
로켓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