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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0 00:09

재생다운로드The Place Beyond the Pines (28).gif

첫사랑과의 재회는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소설처럼 애틋하지 않았다.

뭍에 나온 인어가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그리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동화속의 인어가 아니었고, 그는 더이상 허니만의 바다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허니가 돌아오는 것 또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맑고 푸른 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허니는 속절없이 가라 앉아있었다.




6.
천문대에서 브래들리와 대화한 이후로 허니는 크리스의 얼굴을 보기 껄끄러워졌다. 아무래도 본인의 탓으로 인해 브래들리와 친해질 기회조차 없었다는게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을 제외 한다면 둘은 꽤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허니는 제 앞에 쌓인 서류를 뒤로하고는 크리스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렇게 본다고 저 안 뚫어집니다, 허니.”
“앗, 죄송. 잠깐 생각 좀 한다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해요?”


크리스는 읽던 서류들을 책상에 내려 놓고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냥, 크리스 생각? 허니의 말에 크리스가 뭐?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 되게 부적절하게 들리는 거 알죠? 저 결혼 했어요. 오른손을 들어올린 크리스가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툭툭 치며 손을 흔들었다. 허니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저 불륜에 취미 없거든요? 하며 버럭 소릴 질렀다. 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좀 허니 스타일이잖아요? 하며 크리스가 제 얼굴을 쓸었다.


“뭐라는거에요, 진짜. 미쳤어요? 뭐 잘못 먹고 왔어요?”
“왜요. 몰리 취향이랑 비슷한거 아니에요?”
“…결국 영원히 죽고 못사는 커플의 자랑질을 하고 싶으셨다?”


히히 웃은 크리스가 농담이에요. 하며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농담은 개뿔. 허니는 입술을 삐죽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나 때문에 친해질 수 있는 두 사람을 갈라 놓은 기분이라 미안해서요. 주어는 없었지만 브래들리를 뜻하는게 분명한 허니의 말에 이젠 크리스가 장난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완전, 나 때문에 싸우지 마 하는 삼각관계의 여주인공 대산데요?”
“워, 누가 들으면 오해할만한 부적절한 문장은 그만 만들기로 해요, 우리.”


허니의 말에 피식 웃은 크리스가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뭐. 어렸다고 해도 몰리가 했던 행동이 올바르진 않았으니까. 미안하려면 몰리가 허니한테 미안해해야죠. 크리스의 말에 허니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미스터 쿠퍼가 좀 독하게 구는것도 맞으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해 하지 말죠?”


크리스의 말에 허니는 결국 푸하하 웃었다.


**


허니가 사물함을 열자마자 온갖 저주가 담긴 편지들이 쏟아져 내렸다. 익숙하다는 듯 바닥에 떨어진 편지들을 발로 툭툭 건든 허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브래들리와 다니면서 이 정도는 이젠 너무도 익숙하고 귀여운 수준이었다. 뜯지만 않으면 다칠 일이 없는 그런 것들이니까. 한번은 편지를 꺼내다가 그 안에 들어있는 칼날에 손을 벤 이후로 허니는 함부로 편지를 열지 않았다. 대충 책을 챙긴 허니가 사물함을 닫고 바닥에 떨어진 편지들을 주으러 허리를 숙였다. 편지를 줍는 허니의 시선에 편지를 밟고 있는 신발이 걸렸다. 그대로 고개를 드니 익숙한 얼굴이 허니를 내려다 보았다.


“발 좀 치워줄래, 몰리?”
“개처럼 기고 있네. 너랑 잘 어울린다, 허니.”
“….”


브래들리의 열렬한 팬 중에 하나인 몰리는 허니가 제일 상대하기 싫은 사람 중 하나였다. 다른 애들은 어느정도 괴롭히다가 말았지만, 몰리는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편지에 칼날을 넣거나 하는 직접적인 위협은 절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지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열렬히 브래들리에게 빠져 있었다. 그냥 한대 치고 학교 때려칠까. 허니는 한 손에 쥔 편지들을 주먹으로 꽉 쥐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그럼 니가 버려줘. 허니의 말에 몰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제 주변에 있던 친구들에게 얘 뭐라니? 하며 비웃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만들어진 쓰레기니까 니가 치워야지.”
“그래? 니가 밟고 있길래 대신 치워주는 줄 알았지.”
“이게 진짜 미쳤나.”


위협하듯이 다가서는 몰리에 허니는 진짜 줘 팰까. 하며 이를 꽉 깨물었고, 타이밍 좋게 나타난 브래들리가 허니. 하며 다가왔다. 몰리는 허니를 볼 때 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브래들리. 하며 말을 걸었다. 몰리의 인사는 가볍게 무시한 브래들리가 허니의 손에 들린 편지들을 낚아챘다. 이런걸 왜 줍고 있어.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짜증이 섞인 얼굴로 니가 버려. 하며 톡 쏘아 붙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허니! 브래들리는 멀어지는 허니를 불렀지만, 허니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한숨을 내 쉰 브래들리는 사물함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편지들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졌다. 후, 하며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긴 브래들리가 허니가 사라진 쪽을 계속 바라보았다.


“저, 브래들리.”
“….”
“오늘, 학교 끝나고 뭐해? 존 네 집에서 파티 하려고 하는데….”


수줍게 말을 걸어오는 몰리에 브래들리는 싸늘하게 몰리를 내려다 보았다. 너, 적당히 하자. 브래들리는 몰리의 말을 끊고는 허니가 사라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 남은 몰리는 무시당했다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


정식으로 일하기로 한 6개월이 다 되었을 때, 크리스는 조심스럽게 허니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곧 정식적인 계약일이 끝나기도 하고, 몰리도 사과하고 싶다고 해서요. 물론, 허니가 싫다고 하면 거절해도 괜찮아요. 거절할거 각오하고 하는 말이거든요. 크리스의 말에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가끔 궁금했거든요. 어떻게 변했길래 크리스랑 만났는지. 허니의 말에 크리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주말에 놀러와요. 주소는 찍어줄게요. 크리스는 고맙다는 듯 씩 웃어보였다.


“뭐? 몰리 그 기집애가? 너를? 왜?”
“몰라. 사과 하고 싶대.”


퇴근 후, 펍에서 만난 수잔에게 몰리의 초대 사실을 털어놓자 수잔이 꽥! 소리를 질렀다. 너는 걔가 하는 사과가 사과 맞을 것 같아? 수잔의 말에 허니는 맥주를 홀짝였다. 그래도, 크리스는 되게 좋은 사람이거든. 그래서 그 사람이 선택한 사람이라면 뭔가 바뀌지 않았을까? 담담한 허니의 말에 수잔이 잔을 내려 놓고 허니의 손을 꼭 잡았다. 허니, 넌 너무 착하고 물러서 탈이야. 수잔의 말에 허니가 피식 웃었다. 내가 착하고 물렀으면 이혼하고 여기 와있겠니? 그냥 그대로 살지. 허니는 파인트잔에 조금 남은 맥주를 마저 털어 넣었다.


*


간단한 와인 한 병을 들고 크리스가 찍어준 주소의 집 앞에 선 허니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오, 어서와요 허니. 반갑게 맞이해주는 크리스를 따라 맛있는 냄새가 흘러 나왔다.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허니는 웃으며 와인병을 내밀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몰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안녕, 허니. 발랄하고 집요했던 금발의 몰리는 시간을 따라 매력적인 브루넷이 되어있었다. 우리가 허그 할 사이는 아니지? 웃으며 손을 내미는 허니에 몰리의 눈가엔 눈물이 고였다. 응, 고마워. 스스럼 없는 허니의 말에 몰리가 미소 지었다.

저녁 식사는 꽤나 좋았다. 평소에 요리가 취미라던 크리스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수준급의 요리였다. 이 시골 동네에서 이러고 있지 말고 나가서 요리로 돈 버는게 더 많이 벌거 같은데? 허니의 칭찬에 크리스가 수줍게 웃었다. 몰리가 여기서 살고 싶다고 해서, 전 선택권이 없어요. 크리스의 말에 몰리가 크리스의 다리를 살짝 쳤다. 무슨 주접이야, 진짜. 허니의 이혼소식을 들은것인지 몰리는 식사하는 내내 미안한 표정으로 허니를 살폈다.


“왜, 보기 좋은데.”
“…학교 다닐때 내가 미안했어.”
“갑자기?”


와인을 마시던 허니는 갑작스런 몰리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술을 닦아냈다. 티슈를 건넨 몰리가 미안한 듯 눈썹을 팔자로 내리며 말을 이었다. 쭉 말하고 싶었는데, 네가 동네로 돌아오질 않아서 기회가 없었어. 너 그렇게 가고나서 브래들리가 엄청…. 말을 하던 몰리가 긴장이 되는지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크리스는 조용히 웃으면서 몰리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청 괴롭혔겠지, 그 자식 성격에.”
“…아냐, 내가 한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


허니의 말에 몰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건 해도 내가 해야지, 걔가 왜 내 대신 해. 니가 나한테 잘못했듯이, 브래들리는 너한테 잘못한게 맞아. 허니의 말에 몰리는 위로를 받았는지 조용히 눈물만 뚝뚝 흘렸다. 사실 난 너 밉지 않아, 오히려 고마운 점도 있거든. 허니는 제 옆에 놓여있던 티슈를 몰리에게 건네며 웃었다.


“내가 이 동네를 완전히 떠났던건 너 때문이 아니라 브래들리 때문이었고, 그걸 깨닫게 한 건 네 덕이거든, 몰리.”
“…?”


물음표를 띄운 몰리에 허니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몰리에게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런 허니의 의도를 알아챈 것인지 몰리가 고개를 끄덕였고, 크리스는 치즈 더 가져올게. 하며 자리를 피해줬다. 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다행이야. 허니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학기 초 부터 시작됐던 저주편지의 행렬은 어느순간부터 잠잠해졌다. …요새는 편지가 안 오네.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가 씩 웃었다. 그래? 좋은거 아냐? 허니는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긴 한데…. 허니가 말 끝을 흐렸다.


“근데 그런 표정은 왜 지어?”
“뭔가 좀 찝찝해서.”
“뭐가?”
“아니, 내가 아는 네 열렬한 소녀팬들은 이렇게 쉽게 포기할리가 없으니까.”
“내 인기가 떨어진 건 아닐까?”


싱글벙글 웃는 브래들리에 허니가 눈을 가늘게 뜨고 브래들리의 턱을 한 손으로 쥐었다. 이리저리 얼굴을 뜯어보는 허니의 손길에 브래들리는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는 허니의 움직임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렸다. 어디 상한거 같진 않은데 말야.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가 제 턱을 쥐고 있는 허니의 손을 잡아 내렸다. 다행이다, 네 눈엔 상한게 안보여서. 


허니는 어쩐지 위화감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브래들리는 허니와 함께 수업을 듣곤 했다. 너 시간표 바꿨어?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랑 같이 있으려고.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둘 다 빠지면 티가 확 나잖아. 허니의 짜증에 브래들리는 턱을 괴고 빙글빙글 웃었다. 공부 열심히 하면 좋잖아, 여기도 벗어날 지 모르고.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아슬아슬하게 수업 일수만 채우던 허니였기에, 제대로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 조금은 낯설었다. 이렇게 팀플 과제가 많은지 몰랐네. 허니의 한숨에 브래들리가 허니의 머리카락을 슬슬 쓸었다. 어차피 내가 다 하는데 왜.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맨날 너랑 나랑만 해?”
“널 싫어하는 애들이 많았잖아.”
“…너 때문이잖아.”
“그래서 내가 책임지고 있잖아.”
“…웃지마, 진짜.”


턱을 괴고 있던 허니가 짜증이 났는지 제 머리를 쓰다듬는 브래들리의 팔을 쳐냈다. 어수선한 교실을 한번 둘러본 허니는 저 앞자리엔 언제나 친구들을 몰고 다녔던 황금빛의 몰리가 혼자서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딘가 이상했다. 허니는 몰리의 뒷통수를 한참을 바라보다 제 옆에 앉은 브래들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푸른눈을 허니는 신뢰할 수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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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 너무 어렵다...
기다려주는 붕붕이가 있을 지 모르지만 읽어줘서 코맙!


뿌꾸너붕붕
로켓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