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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과의 재회는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소설처럼 애틋하지 않았다.

뭍에 나온 인어가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그리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동화속의 인어가 아니었고, 그는 더이상 허니만의 바다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허니가 돌아오는 것 또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5.
허니에게는 꽤나 치명적인 환영식을 해준 것 치고는 브래들리의 접근은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는게 맞았다. 첫출근 부터 학부모와 학생들의 모든 이목을 주목시킨 전력이 있던 허니는 범블과의 원만한 합의로 출퇴근길을 함께했다. 


“야이 개…. 너 알고 있었지? 브래들리가 거기 교사인거 알았지?”
“그거 모르는거 이 동네에 너 하나거든?”
“…개씨발. 지금 꼼짝없이 최소 6개월은 여기에 묶였거든?”
“오, 엄마 아빠가 들으면 아주 좋아할 소식이군.”


주먹을 꾹 쥐고 부들부들 떨던 허니가 한숨을 푹 내 쉬었다. 장난하는거 아냐, 범블. 이런식이면 나 다시 나갈거야. 허니의 말에 범블의 표정이 굳어졌다. 넌 그게 지금…! 범블의 기분은 당장에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 출퇴근 니가 픽업해. 허니의 말에 범블이 기분은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6개월만이야. 그 땐 너도 관둬. 범블의 말에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아침 저녁으로 허니를 데려다 주는 범블 덕에 허니는 학교에서만 브래들리를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누군가가 갑자기 행정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허니는 재빨리 전화기를 들며 눈치를 보았다. 처음엔 뭐에요? 하던 크리스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듯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몰리가 그러던데, 수학이랑 허니씨랑 친했다고.”
“…몰리가 기억력이 여전히 안 좋네.”
“하하, 진짜 허니씨 웃긴건 알아 줘야한다니까. 학교 다닐 때 인기 많았죠?”
“전혀요. 몰리가 얘기 안해요?”
“별 다른 말은 없던데. 아무튼, 지금 그런 웃긴 짓 하는거- 수학 때문이죠?”


크리스의 말에 허니가 입을 꾹 다물었다. 티 나요? 허니의 말에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청요. 대체 왜 피하는거에요? 아니, 그리고 이 동네 출신이라면서 수학이 수학인것도 모르고 이곳에 온 게 말이 돼요? 크리스의 말에 허니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게요, 그것도 몰랐네요. 진짜 학교랑은 절대 안어울려서 생각도 못했거든요. 허니의 말에 크리스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선생님이라고 하기엔 너무 얼굴이….”
“…지나치게 치명적이긴 하죠.”


크리스가 차마 뒷 말을 잇지 못하자 뒤이어 제 생각을 덧붙인 허니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내가 그래? 하는 장난스런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으악! 깜짝 놀란 허니가 의자에서 펄쩍 뛰어 올랐다가 이내 책상위로 엎어져서 흐어어어엉…. 하는 소리를 냈다.


“미스터 쿠퍼, 어서오세요. 은밀하게 들어오는 취미가 있으시네요?”
“충분히 문을 두드렸다고 생각했는데, 남 이야기에 열 올리시느라 못 들으신건 아니시고요?”


두 사람의 날이 선 대화에 정신을 차린 허니가 이를 꽉 깨물고는 미스터 쿠퍼, 무슨 일이시죠? 하며 물어왔다. 다시 웃음을 띈 얼굴로 허니를 돌아본 브래들리가 제 손에 든 문서 하나를 허니 앞으로 내밀었다. 뭐에요? 하는 허니에 브래들리는 읽어보라는 듯 눈짓을 했다.


“천문대…현장 답사…?”
“응.”
“근데 이걸 왜 나한ㅌ…, 아니 저한테 주세요?”
“자금 집행 적정성 평가, 안 해?”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은 허니가 크리스를 바라보자, 크리스는 한숨을 내 쉬었다. 이리 주세요, 제가 볼테니까. 허니는 제 손에 들린 계획서를 넘기려 손을 뻗자 브래들리가 다급하게 계획서를 가로챘다. 워워. 이미 계획서 승인은 났어. 뻔뻔한 모양새에 허니의 표정이 썩어갔다.


“계획서에 맞는 현장인지 답사 가자고.”
“…너 미쳤니?!”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허니가 톡 쏘아 붙였고, 크리스는 할 말을 잃고는 제 눈 앞에 놓인 서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선 말 조심해야죠, 허니? 브래들리는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양 웃으며 책상에 걸터 앉았다. 이러니, 내가 이새끼가 학교에서 선생질 할거라고 어떻게 생각하겠어. 허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중엔 나도 바쁘고, 허니 너도 범블이랑 다니느라 힘들건데 주말에 가자. 데리러 갈게.”
“내가 미쳤어요? 너랑 가게? 크리스, 제가 꼭 가야하는건 아니죠?”
“뭐, 어차피 계획서 승인이 났으니까 굳이….”


크리스의 말에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질 심사는 크리스가 해야하는데 내가 왜 가야하는지도 모르겠고 말야.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가 흠….하며 다음 변명거리를 떠올렸다. 그럼 셋이 같이 가자. 브래들리의 폭탄과도 같은 말에 크리스와 허니의 표정이 썩어갔다. 뭐? 어이없다는 듯 터져나온 허니의 물음에 브래들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간만에 동창회나 하자고, 허니. 학교돈으로 하는 동창회라 그런지 벌써 기대가 되네. 몰리한테 꼭 나오라고 전해요, 미스터 프랫. 

브래들리는 허니의 책상을 톡톡 두드리더니 씩 웃으며 행정실을 떠났다. 진짜 올거에요? 허니의 말에 크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학교 돈 쓰는거 꽤 재밌을거 같긴 해요. 크리스의 말에 허니만 환장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


[허니, 미안해요. 몰리가 아침에 갑자기 아파서 오늘은 못 갈 것 같아요:( 미스터 쿠퍼한텐 잘 말해줘요.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봐요:) - C.P]


준비를 다 끝낸 허니는 제 핸드폰에 띄워진 문자를 보며 참나, 이런다 이거지?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절대 내일 빠지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건만, 결국 이렇게 되는구만.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허니는 답장할 생각도 않고 그대로 핸드폰을 뒤집었다. 나도 그냥 못간다고 할까. 준비를 마친 허니가 그대로 침대위에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 밖에서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허니, 브래들리가 왔는데? 미세스 비의 목소리에 허니가 빽 소릴 질렀다. 꺼지라고 해주실래요? 허니의 말에 문이 벌컥 열렸다.


“미안하지만, 그건 어렵겠는걸.”


난 오늘만 생각하고 일 했거든. 얄미운 브래들리의 얼굴이 보였다.


불만 가득한 얼굴로 브래들리의 옆자리에 앉은 허니는 창 밖만 바라 보았다. 3시간 거리에 있는 천문대는 브래들리와 허니의 추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 근방에 추억이 없는 곳이 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풍경에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브래들리는 연신 콧노래를 불렀다. 너지? 니가 그랬지?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는 물음표를 띄웠다. 뭘?


“크리스 못 오게 한거, 너잖아.”
“무슨말이야. 몰리가 아파서 그런거라며.”


됐다, 그만하자. 짜증난다는 듯 한 얼굴의 허니가 냅다 의자를 뒤로 젖혔다. 나 잔다, 도착하면 깨워라. 허니의 막무가내에도 브래들리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고개만 끄덕였다. 네, 분부대로 합죠. 


**


허니는 창문가를 톡톡 치는 소리에 잘 뜨이지도 않는 눈을 겨우 떴다. …뭐야. 눈을 비비며 창문 밖으로 상체를 내미니 아래에서 브래들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너 뭐해? 늦은밤에 시끄럽게 굴 수 없어서 입모양만 뻐끔대는 허니에 브래들리는 내려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답답했던 허니가 책상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자판을 빠르게 누르기 시작했다.


[뭐야? - H.B]
[나와. - B.C]
[뭘 나와? 미쳤니? 어딜가. 지금 나가면 우리집 사람들 다 깬다고. - H.B]
[뛰어 내려. 내가 받아줄게. -B.C]



브래들리의 문자에 허니는 관자놀이 옆에 손을 올리고 빙빙 돌렸다. 너 돌았냐? 허니의 행동에 브래들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팔을 벌렸다. 어서 내려와! 한숨을 푹 내쉰 허니가 마지못해 옷을 갈아입었다. 2층에서 뛰어내리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던터라 허니는 조심스럽게 난간에 매달렸다. 그나마 바닥과 가까워졌지만, 아무래도 무서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허니가 끙끙댔다. 씨발, 내가 이새끼 말을 듣는게 아닌데. 후회로 물든 허니의 아래에서 브래들리는 손 놔. 하며 낮게 말했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눈을 꼭 감고 손을 놓은 허니가 바로 브래들리 품으로 떨어졌다. 악! 하는 비명소리가 바로 브래들리의 손에 의해 차단됐다.


“쉬잇- 동네 사람들 다 뛰어나오게 할래?”
“…미친놈아, 니가 먼저…!”


자, 일어나봐. 가자. 허니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일으킨 브래들리가 집 앞에 놓인 차로 허니를 이끌었다. 뭐야? 이 차는? 허니의 물음에 브래들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형 꺼야. 훔쳤어. 당당하게 말하는 탓에 허니는 저도 모르게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레 조수석에 앉은 허니에게 안전벨트를 매준 브래들리가 씩 웃었다. 별 보러 가자.


여름밤의 드라이브는 허니를 한껏 들뜨게 했다. 철지난 노래들이 흘러나올땐 뭐야? 하며 브래들리를 흘겨보았고, 브래들리는 이거 형 차라니까? 하며 자신의 취향은 그렇지 않다며 열변을 토했다. 그래도 다락방에 있는 바이닐들 보단 최신곡이네.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가 끄응, 하며 고개를 돌렸다.

한참을 달려 온 곳은 며칠 전 기사에서 읽었던 그 천문대였다. 들어갈 수 있어?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문 닫혔어.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여기 뚫고 들어갈 배짱은 없나보네?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침입죄로 잡혀가서 너랑 못 노는 것 보다야, 배짱 없고 말지.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는 참나. 하며 고개를 돌렸다. 진짜 이상해, 너.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허니는 브래들리와 함께 아무도 없는 천문대 잔디 위에 몸을 맡겼다. 조금 쌀쌀했던지 허니가 으, 하며 팔을 쓱쓱 쓸었다. 가만히 있던 브래들리가 허니의 목 아래로 제 팔을 넣더니 품 안에 허니를 안았다. 브래들리와 만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몇 백번을 함께 있었어도 이런식의 스킨십은 한번도 없었다. 당황스러움에 허니가 어…? 하며 순간 숨을 멈추었다.


“춥다며.”
“…차, 차에 옷 있는데….”
“멀어. 그냥 있어.”


…응. 허니가 조용히 브래들리의 품에 안겼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브래들리도 조용히 허니의 머리를 쓸었다. 언제나 둘 사이를 채우던 파도소리가 사라지자, 두근대는 허니의 심장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너무 크고 빠르게 뛰는 제 심장 소리에 허니는 이대로 사라지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허니는 고개를 살짝 들어 브래들리의 얼굴을 보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했다. 푸른 하늘을 이 눈에 담아서 지금 온 세상이 까만걸까.


“하늘 보자고 누웠으면서 왜 자꾸 나만 봐.”
“너도 나만 보잖아.”
“…나는 너 팔 아플까봐….”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하는 너붕붕에 브래들리가 피식 웃었다. 나도 밤하늘 보고 있는데, 왜.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뭐? 하고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네 눈, 밤하늘같아. 까맣고 반짝여.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입을 꾹 다물었다.


“…예쁘다.”


브래들리의 입술이 조심스레 허니의 이마에 와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리고는 허니를 다시 꼭 껴안았다. 심장소리가 허니의 귓가에 쿵쿵댔다. 허니는 이것이 제 심장소린지, 브래들리의 심장소린지 구분이 어려웠다. 초여름의 새벽은 청춘의 열기로 어지러웠다.


*


얼마나 잤을까, 꽤나 편히 잠들었던 허니가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익숙한 노래가 차 안에 가득했다. …깼어? 허니를 보고 있었는지 브래들리가 씩 웃으며 말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뭐야, 왜 안깨웠어. 눈을 비비는 허니에 브래들리는 핸들에 기대어 허니를 보았다. 보기 좋아서, 너 자는거.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순간 얼굴에 열이 올랐다. 큼, 목을 다듬은 허니는 다시 의자를 제자리로 돌렸다. 가자, 돌아 봐야할거 아냐. 벨트를 푸는 허니의 손을 브래들리가 잡았다.


“어차피 안가도 알잖아, 어떤지.”
“…그럼 왜 데려 온건데.”
“….”
“하, 너 진짜. 막무가낸건 알았지만 나이 먹고도 이러니?”
“….”
“크리스한테 오지 말라고 한 거, 맞지?”


아니라니까. 시선을 살짝 피한 브래들리가 대답했다. 봐, 내 눈 똑바로 못보잖아. 허니의 싸늘한 말에 브래들리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크리스한텐 정말 안 그랬어. 몰리한테 그랬지.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는 뭐? 하고 목소리를 더 높혔다.


“미스터 프랫한텐 말 안했다고.”
“몰리한테 그랬다며! 그게 그거지!”
“….”
“왜 그랬는데.”


…걔 때문에 너가 떠났던거니까. 뜬금없이 이어지는 문장에 허니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 나 지금 이해가 안가는데, 너 지금 뭐라고 그런거야? 내가 몰리때문에 여길 떠났다고? 허니의 물음에 브래들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니고서야 니가 나를 떠날 이유가 뭐가 있겠어? 진심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허니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여태 몰리 괴롭혔니? 그래서 크리스도 너 싫어하는거고?”
“….”
“…내가 이래서 떠난거야.”


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허니의 말에 이젠 브래들리가 뭐? 하며 대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허니는 재빠르게 벨트를 풀었다. 너, 가. 나 범블 불러서 집 갈거니까. 아니면 크리스라도 부를거야. 아니면 애덤이라도. 너랑은 안 가. 허니의 단호한 말에 브래들리의 표정이 굳어갔다.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처럼 푸른눈엔 분노가 서렸다. 허니는 순간 동작을 멈추고 숨을 참았다. 몰려오는 파도 안에서 발버둥을 쳐봤자 점점 더 가라 앉을 뿐이었다.


“…그냥 내가 데려다 줄게.”
“….”


그대로 굳어버린 허니에게 안전벨트를 채운 브래들리가 천천히 차를 몰았다. 허니는 그의 파도가 잦아들자 천천히 자신이 떠오르길 기다렸다. 그렇지만 수면까지는 너무도 멀고 아득해보였다. 맑고 푸른 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허니는 속절없이 가라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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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오고 싶은데 너무 어렵다 얘네..
차에서 듣던 노래는 Tamia의 Officially missing you 로 생각했음. 

읽어줘서 코맙!



뿌꾸너붕붕
로켓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