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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과의 재회는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소설처럼 애틋하지 않았다.

1.
고향은 없었다. 오래 산 곳이 고향이라면, 허니는 이 곳을 고향이라고 불러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10년, 그리고 또 3년.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성인이 될 무렵부터 집을 떠난 허니는 어디에 정착하지 못한 채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금 집을 찾았다. 대학 입학 기념으로 뽑은 하얀색 포드 중고차와 작은 트렁크 3개만 챙겨서 돌아오지 않을 것 처럼 집을 나섰던 허니는 빨간색 비틀에 겨우 다 들어갈 짐들을 싣고는 돌아왔다. 외부인이 자주 찾지 않는 동네라 그런지 눈에 띄는 차가 들어서는것을 보자 이웃집의 문들과 창문이 살짝 열렸다. 겁쟁이들. 허니는 일부러 클락션을 길게 두번 꾹꾹 눌렀다. 동네에 있는 모든 강아지들이 사람들보다 먼저 허니의 귀가를 환영했다.


*


연락이 끊긴지 13년만에 돌아온 딸이 밉지도 않은건지, 허니의 어머니는 현관문을 열고 허니를 마주하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엉엉 울었다. 나 왔어. 울지말고 짐 나르는 것 좀 도와줘. 담담한 목소리로 분주하게 움직인 허니는 작은 차 안에서 한가득 짐을 내려 놓았다. 그제야 뛰어나온 허니의 어머니는 허니를 꼭 껴안았다. 어서와, 딸. 허니는 차마 대답은 않고 어깨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은 당연히 환영파티가 있었다. 허니의 무사 귀가를 환영하는 환영식을 하자며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모아 잔치를 할 기세의 부모님을 겨우 말린 것은 퇴근 후 피곤함에 찌들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사건건 허니에게 시비 걸길 좋아하는 동생 범블 덕이었다. 요샌 인생 실패자 환영식도 있어? 싸늘한 범블의 말에 두 남매의 부모님은 아이고, 하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허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캔 하나를 뜯었다. 그래, 나도 보고싶었어. 얄미운 표정을 지은 허니는 토스트를 하듯 캔을 높이 들더니 범블의 이마에 캔을 콩 갖다 박았다. 짜증난다는 듯 이마에 묻은 물기를 닦은 범블은 허니를 한번 노려보고는 제 방이었던 2층으로 향했다.


“저녁 먹으러 내려 올거지?”


허니의 어머니이자 범블의 어머니인 미세스 비의 물음에 범블이 몰라요! 하고 대답하더니 이내 쾅 하고 문 닫는 소리가 났다. 미세스 비와 눈이 마주친 허니는 어깨를 으쓱 했다. 쟤 아직도 여기 살아요? 허니의 물음에 미세스 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집 얻어서 나갔단다. 미세스 비의 대답에 허니는 그럼 그냥 냅두고 저녁 준비나 같이 해요. 다 되면 쟤도 내려 오겠죠, 뭐. 2층에서 뛰어내려서 집을 갈것도 아닌데. 허니의 말에 미스터 비가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정원엔 붉은색 노을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


소란스러웠던 준비시간과는 달리 저녁 식사 자리는 의외로 조용했다. 허니의 부모님은 허니가 여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지 않았고, 범블 역시 시비를 걸지 않았다. 마치 13년간의 부재는 없었다는 듯 한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날이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거실에 둘러앉은 가족들에게 맥주캔을 하나씩 배포한 허니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뭐 어떻게 생각했을진 몰라도 다행스럽게도 대학은 잘 졸업했어. 덕분에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꽤 괜찮은 곳에 내 명의의 집도 하나 샀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도 만났었고, 결혼도 했는데 이혼했어. 아, 다행인건 애는 없었어. 남자가 무정자증이었거든. 그래서 헤어진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헤어졌고 내 귀책은 아니라 이혼 합의금도 두둑하게 받았고. 기왕에 다 끝내버린거, 새로운 도시에서 시작하고 싶었는데, 막상 갈 곳을 못 찾겠어서 왔어. 여기까지가 내 13년의 요약본인데, 맘에 들어?

베시시 웃으며 맥주를 홀짝이는 허니에 범블은 기어이 화를 냈다. 너 진짜 개 또라이야? 맘에 들어? 뭐? 대가리에 총 맞았냐? 허니의 부모님은 범블! 하며 주의를 줬지만 이미 30대인 그들에겐 더이상 먹히지 않는 말이었다. 응~ 니 누나 또라이에 미친년이죠? 총 맞았으면 여기에 못 있죠? 가운데 손가락을 들며 다시 한 번 맥주를 홀짝이는 그들에 B 부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궁금한거 있으면 차차 말해드릴게요. 오늘 와서 그런지 피곤해. 먼저 올라가도 돼요?”
“어, 그러렴. 방은 어딨는지 알지?”
“네. 주무세요. 그리고, 너. 낼 출근 잘해라? 난 그 시간에 푸욱- 잘거라서 말야.”


메롱 하고 일어나는 허니의 눈 앞에 범블은 자신의 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


허니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좁은 동네에 이미 소문이 다 났는지 아침부터 허니네 집은 방문자들이 끊이질 않았다. 아직도 동네에 터를 잡고 산다는 수잔, 범블의 친구이자 범블의 감시자 역을 톡톡히 해주던 마이크, 옆집에 사는 노라 할머니 등등.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찾아 올 줄 알았으면 그냥 어제 저녁에 파티를 할 걸 그랬네요. 하는 허니의 말에 미세스 비가 허니의 옆구리를 툭 쳤다. 

한동안 지속될 것 같은 인사 행렬과 가십거리에 목말라 보이는 한가로운 교외인들의 시선에 허니는 질린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오자 허니는 현관에 둔 제 차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먼저 주무세요, 늦을 수 있어요. 허니의 말에 미세스 비가 불안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집에 오긴 할거지?! 멈칫한 허니가 고개를 돌렸다. 어색하게 웃는 미세스 비에 허니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제야 손을 흔들어보이는 미세스 비를 뒤로하고 허니는 빨간 비틀에 몸을 실었다.

어딜가도 꼭 있을 것 같았던 그 흔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몇 블럭을 운전해도 보이질 않았다. 30년이 지나도 이 동네는 바뀌는게 없냐. 목적도 없이 차를 몬 허니는 어느새 동네 외곽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이 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던한 외관의 카페에 차를 세웠다. 1시간 전의 본인이 한 말을 당장에 뒤집어야 했다. 그래도 조금씩, 바깥에서 안으로 변화는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


모던한 외관과는 다르게 포근한 내부 인테리어에 허니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식물원이 따로 없네. 허니는 자리를 스캔하며 카운터에 섰다. 어서오세요. 발랄한 인사에 허니가 고갤 까딱했다. 카모마일티 하나요. 오늘은 푹 잠들어야 했기에 허니는 카페인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여기 처음 오셨죠? 계산을 하며 차를 내리는 직원에 허니가 아, 네. 오랜만에 와서요. 하며 가볍게 말을 이었다.


“아, 원래 여기에 아는 분이 계세요?”
“네. 여기 제 고향, 뭐, 그런곳이라.”
“아하. 그래서 제가 못봤구나. 저는 앨리에요.”


독특하게 티팟 세트를 쟁반에 올려 허니 앞에 내준 앨리가 화사하게 웃었다. 티팟에서 우러나오는 카모마일 향이 진했다. 저는 허니에요, 허니 비. 자주 보겠네요. 잘 마실게요. 고개를 까딱 숙인 허니가 들어오면서 봐둔 소파로 발걸음을 옮겼다. 적당히 푹신한 소파에 온 몸을 파묻고는 잔잔히 흐르는 재즈 선율이 허니의 텅빈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창문 밖에서 찰랑거리는 나뭇잎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멍하게 바깥을 바라보는 허니의 앞에 앨리가 쿠키를 내왔다. 깜짝 놀란 얼굴로 정신을 차린 허니가 제 앞에 놓인 쿠키와 앨리를 번갈아보았다. 아, 놀랬어요? 차를 통 안마시는 것 같아서 달달한게 필요한가 싶어서요. 어차피 손님도 없을 시간이고요. 앨리의 말에 허니는 살풋이 웃었다. 앉아요, 혼자 먹기엔 너무 많네요. 저도 제 앞에 앉아줄 친구도 없고요. 허니의 너스레에 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했다.


“직접 구운거에요? 아까 쇼케이스에선 못본거같은데.”
“팔기엔 실력이 조금 아쉬운 것 같아서요. 한 번 먹어보고 평가 해줄래요? 내일부터 팔아도 되는지.”


앨리의 말에 허니는 쿠키를 한 입에 넣었다. 촉촉한 반죽에 초콜렛이 가득박힌 전형적인 쿠키였기에 맛이 없을 수 없었다. 너무 맛있는데요? 허니의 말에 앨리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내일부터 팔아요. 허니가 웅얼거리며 남은 쿠키를 한 입에 털어넣었다. 앨리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만들면 10달러는 받아야 이윤이 남아요. 앨리의 말에 깜짝 놀란 허니가 켁, 소리를 내며 입을 막았다. 얼른 잔을 들어 카모마일티를 마신 허니가 아니, 너무 황송한 쿠키라 저도 모르게 그만…. 사레가 들려 빨개진 얼굴로 변명을 하는 허니에 앨리가 깔깔 웃었다. 장난이에요, 그냥 취미고 일 더 만들기 싫어서 안 팔아요. 진짜에요, 이건. 앨리의 말에 허니가 고갤 끄덕였다. 그럼 부담 안가지고 먹을게요.


*


“이거 지금, 턴테이블에서 나오는거 맞죠?”
“아, 네. 주변에 수집가가 있어서, LP는 모아두기만 했길래 제가 몇개 가져와서 들어요.”
“꽤나 고풍스러운 취미네요.”


허니는 잔을 홀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런 사람 알고 있긴 했거든요, 너무 옛날 친구라 아직 여기 사는진 모르겠지만. 허니의 말에 앨리가 누구에요? 저도 그래도 여기서 10년은 살았는데, 제가 알면 우리가 더 친해지지 않을까요? 하며 베시시 웃었다. 앨리의 말에 허니는 같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시 닫았다.


“음…. 그게…. 기억이 안나요.”


어설프게 웃는 허니에 앨리가 네? 진짜 엄청 오래 됐나봐요. 하긴- 그럴 때가 있긴 하죠, 저도 이 동네에 오기 전에 만난 사람들은 잘 기억이 안나거든요. 앨리는 완전히 공감한다는 듯 말을 했다. 허니는 진심어린 앨리의 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사실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그의 얼굴과 이름이 왜인지 앨리의 앞에선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가 처음으로 들려준 LP도 이런 느낌의 곡이었던 것 같았다. 그 날의 노래는 생각이 나질 않았지만, 그 날의 그의 얼굴은 아직도 생생했다. 햇빛에서 나온 실로 만든 것 같은 반짝거리는 금발과 오똑한 코, 장난스럽게 미소짓던 입술, 적당히 높다가도 낮아지던 목소리, 그리고….


“앨리, 바깥에 빨간색 비틀 있던데 여기까지 오는 손님이-”


그리고, 여름날의 바다를 빼다 박아 넣은 듯 한 시리고 깊은 푸른 눈. 나를 오롯이 담은, 내가 가장 사랑했던 그의 눈.


“어, 왔어?”


문을 바라보고 앉은 앨리가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허니는 자연스레 앨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손님이 있네.”
“응. 인사해. 여기는 허니 비, 오랜만에 고향에 왔대. 허니, 여기는….”


어정쩡하게 일어나 당황한 표정의 허니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남자가 앨리의 말을 끊으며 허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앨리. 됐어. 나 알거야. 그렇지, 허니? 남자는 눈짓으로 내민 손을 가리켰고, 허니는 그제야 제대로 서서 남자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어, 응. 오랜만이야, 브래드, 아니 브래들리. 어색하게 맞잡은 손이 두어번 위아래로 흔들린 뒤에 떨어졌다.


“…아? 둘이 아는 사이야?”
“응. 내 소꿉친구.”
“어머, 그럼 친해지려고 하길 잘했다.”


꺄르르 웃는 앨리를 보며 허니는 입꼬리를 겨우 끌어올리며 눈을 간신히 휘어보였다. 앨리의 옆자리에 앉은 브래들리의 시린듯이 파란 눈엔 허니가 담겨있었지만, 그 안에 오롯이 자신만이 존재 하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시간은 오래 지났고 허니는 세상의 풍파에 많이 지쳐있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 시골 동네도 천천히 변화하고 있었다. 바뀌지 않는것은 없었다.


“둘은, 어떤….”
“아! 저희-”
“우리 같이 살고 있어. 그치, 앨리 쿠퍼?”
“아…. 결혼…했구나.”


자신도 이혼하고 돌아온 주제에 결혼도 안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다니, 제정신이야? 허니는 은근한 기대가 있었는지 당혹스러운 대답을 들은양 빨개진 얼굴로 멍청하게 입을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제 모습이 퍽이나 우스워 보일 것을 알지만, 감정에 따른 온도 변화는 도무지 허니로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늦었다,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네. 먼저 가볼게. 앨리, 만나서 반가웠어요. 자주 봐요. 도망치듯 일어나는 모양새에 앨리는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는 듯 입을 달싹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차 시동을 겨우 건 허니가 허둥지둥 도로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갓길에 차를 댄 허니는 핸들에 머리를 대고 한숨을 푹 쉬었다.


첫사랑과의 재회는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소설처럼 애틋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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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꾸너붕붕
로켓너붕붕

왜냐면 내가 로켓보고 감겼으니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