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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1 00:18
첫사랑과의 재회는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소설처럼 애틋하지 않았다.
뭍에 나온 인어가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그리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동화속의 인어가 아니었고, 그는 더이상 허니만의 바다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허니가 돌아오는 것 또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맑고 푸른 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허니는 속절없이 가라 앉아있었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푸른눈을 허니는 신뢰할 수 없어졌다.
허니가 마주한 것은 어두운 곳에서 겹쳐진 두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8.
허니의 코 끝은 빨개지고, 목은 무언가가 콱 막힌듯이 잠겨왔다. 심호흡을 한 번 한 허니가 방 문을 똑똑 두드렸다. 술주정뱅이들을 옮기느라 기가 빨린 두 남자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허니를 보았다. 매튜, 가자. 갈게요, 크리스. 매튜를 끌고 나가는 허니에 크리스가 괜찮아요? 하고 물어왔다. 다정한 물음에 허니는 겨우 울음을 참아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크리스마스에요. 허니의 말에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니도, 매튜도 메리크리스마스. 매튜보다 앞질러 조수석 문 앞에 선 허니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들어가 앉아서 안전벨트를 맸다.
“아니, 왜이리 서둘러요? 앨리랑 미스터 쿠퍼한테도 인사 못했는데.”
“…빨리 가.”
“허니, 울어요?”
“어. 그니까 빨리 가.”
당당하게 눈물만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 허니에 매튜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착실히 시동을 걸었다. 고요한 겨울밤에 울리는 엔진소리에 뒷마당에 있던 브래들리가 어느새 차 옆에 서있었다. 진짜 인사 안하고 가요? 매튜의 말에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흔들리는 고개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제 차를 빤히 보고 있는 브래들리와 눈물을 흘리는 허니를 번갈아보던 매튜가 잠시 망설이자 브래들리가 성큼성큼 다가와 조수석의 문을 벌컥 열었다. 당황한건 오히려 매튜쪽이었다. 아, 그게 미스터 쿠퍼. 인사하고 가려고 했는데요…. 눈물이 아직도 그렁그렁 맺혀있는 허니는 올곧게 앞만 보고 있었다. 후, 하고 한숨을 내 쉰 브래들리가 허니, 내려. 하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뭐해, 출발 안 해?”
그에 상관없다는 듯 말하는 허니에 매튜가 난감함 표정을 지었다. 문을 닫아야 가죠. 매튜의 말에 허니는 여전히 빨간 코를 하고는 앞만 쳐다보았다. 들었지? 문 닫아. 갈거야. 허니의 말에도 브래들리는 들리지도 않는 다는 듯 꿈쩍하지 않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치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두 어른 싸움에 낀 매튜는 이젠 제가 울고싶어졌다.
매튜의 울상에 허니는 결국 차에서 내렸다. 마침 짐을 챙겨 나온 앨리에 브래들리가 매튜를 향해 반 강제적으로 앨리를 부탁하며 실랑이가 마무리 되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허니를 제 차로 데려간 브래들리는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차가 멈춘 곳은 늘 찾던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집이었다. 내려.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가 조금은 놀란 얼굴을 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허니도 브래들리도 잘 아는 곳이었다. 여기 니가 샀어?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가 응. 하며 대답했다. 차에서 내린 허니가 추억에 잠긴 얼굴로 집 주변을 돌아보았다. 낡았지만 잘 수선되어 있는 낮은 울타리를 허니가 손으로 살짝 쓸었다. 어느새 문을 연 브래들리가 들어와. 하며 허니를 재촉했다.
**
겨울에도 허니는 학교를 뒤로 한 채 바다를 찾았다. 가끔은 혼자였고 가끔은 함께였다. 그렇지만 브래들리와 함께 수업을 듣게 된 이후에는 학교를 빠지는 일이 줄었다. 대신에 방과후에 바다를 찾곤 했는데, 겨울이라 길어진 밤 덕분에 허니는 까맣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만 봐야 했다.
“메리 할머니는 좋겠다.”
브래들리의 겉옷으로 꽁꽁 두르고도 모자라 브래들리를 바람막이 삼아 앉아있던 허니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꽤나 추운지 브래들리는 허니를 제 다리 사이에 앉히듯 뒤에서 바짝 붙어 앉으며 해안가 쪽 가장 외딴 집 하나를 가리켰다. 저 집에 사시는 분 말이지? 졸지에 브레들리에게 백허그를 당한 허니가 불편하다는 듯 어깨를 들썩거렸다. 아, 좀 나와봐. 그러거나 말거나 허니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브래들리가 추워서 그래. 하며 웅얼댔다.
“저 집에 살면 지금 우리처럼 구질구질하지 않게 구경할텐데 말야.”
“구질구질 하니까 빨리 갈까? 너 감기걸릴 것 같아. 허니, 네 볼이 얼음장이다.”
“저번에 메리 할머니네 놀러 갔을 때 보니까 뒷마당쪽에 데크가 있더라고. 거기에다가 흔들의자 딱 놓고 겨울에는 따뜻한 담요 덮고 옆에는 전기난로 놓고 바다소리 들으면서 해 뜨는거 보고 싶어.”
제 목에 얼굴을 묻고 있는 브래들리에 허니는 포기라도 한 듯 브래들리에게 자연스레 몸을 기댔다. 옷을 몇 겹을 껴입어서 동그래진 허니의 몸이 브래들리의 품 안에 쏙 들어왔다.
“….”
“여름엔 뒷마당이 다 바다니까 맨날 나가서 바다에서 살고 싶다.”
엄청 행복하겠다, 그치?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의 대답은 차가운 겨울 바다 바람에 흩날렸다. 허니의 뺨에 와 닿는 금발의 머리카락에선 여름의 향기가 가득했다.
*
불을 켠 집 안엔 생활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집 안에 들여놓은 가구들 위로는 흰 천 덮혀 있었고, 가끔씩 와서 식사는 하는지 주방에는 식기가 늘어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레 들어선 허니에 브래들리는 허니의 손을 살짝 잡았다. 보여줄게 있어. 성큼성큼 앞서는 브래들리에 허니가 어, 어? 하며 끌려갔다. 어리둥절하며 끌려가다시피 한 뒷마당 데크에는 원목의 흔들의자 2개와 도톰한 담요, 그리고 한 켠엔 전기 난로까지 얌전히 놓여있었다.
“…뭐야, 이거?”
“행복.”
“….”
허니는 아무말도 않고 브래들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대체 나한테 왜 그래?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하, 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뭐가 왜 그래야. 브래들리의 말에 허니는 이제야 술이 깨는것인지, 두통이 와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인상을 한껏 찌푸린 허니가 브래들리를 짜증스럽게 올려다보았다.
“너, 진짜 질려.”
“….”
“더 이상 그 표정에 속을 일 없어.”
“….”
“그러니까, 그냥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면 안돼?”
허니의 말에 브래들리가 천천히 허니에게 다가섰다. 잔뜩 찌푸린 허니의 미간을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꾹 누른 브래들리가 이내 두 손으로 허니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러더니 입술이 거의 닿을 듯한 허니의 코 앞까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13년이면 충분했잖아, 너대로 사는거. 그러더니 자신의 말로 허니에게 족쇄를 채우듯 허니의 입술에 제 입술을 살짝 눌렀다가 뗐다. 허니는 본능적으로 브래들리의 어깨를 밀쳐냈다. 허니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두 손을 들어보이며 한 발 물러선 브래들리가 피식 웃었다. 여전하네. 허니는 주먹을 꽉 쥐었다.
“너, 내가 말했지. 나 불륜에는 취미 없다고.”
“잘 됐네.”
“내가 이혼 했다고 쉬워보여?”
“전혀. 더 어려워졌어.”
“씨발, 그게 지금 어려운 사람의 태도야?!”
꽥 소리를 지른 허니가 화가 나는지 하늘을 한번 보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너무 열이 받아서 그런지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허니는 비틀거리며 난간에 기댔다. 한숨은 내가 쉬어야지, 네가 아니라.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문 브래들리가 탁자 위에 놓인 성냥갑을 한 손에 쥐고는 툭툭, 탁자를 쳤다.
“열심히 공들여서 겨우 네 주변 정리 해놨더니 날 버리고 가질 않나….”
“….”
“내 눈 밖을 벗어나자마자 다른 사람을 만나질 않나….”
“….”
“어쩐일로 제 발로 돌아왔길래 가만히 뒀더니,”
“….”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를 애새끼까지 꼬이질 않나….”
담뱃불을 붙인 브래들리가 깊게 한모금 빨아냈다. 후- 하고 내뱉는 한숨에 연기가 섞여 나왔다. 그래서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온전히 널 가질 수 있을지, 너무 어려워졌어. 허니는 지금 제가 듣는 이 말들이 저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뭐? 인지부조화가 온 것 같은 허니의 표정에 브래들리가 어느때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칠흑같은 심해의 푸른눈 속엔 오롯이 허니만 담겨있었다.
**
교실에 엎드려서 잠을 자던 허니가 부스스 눈을 떴다. 남는 교실도 많고, 잔디밭도 있는데 왜 여기서 이렇게 불편하게 자. 흘러내린 허니의 머리를 넘기며 낮은 목소리로 걱정하는 브래들리의 얼굴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으응. 잠투정을 하는 허니에 브래들리가 피식 웃었다. 팔 빌려줘? 브래들리의 다정한 물음에 허니는 잠이 슬슬 깨는지 또렷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과제나 좀 보여줘. 찾으러 가려다가 너무 졸려서 교실에서 보는게 빠를 것 같아서 여기서 기다리다가 잠들었어. 기지개를 켜며 말하는 허니에 브래들리는 순순히 과제를 책상위에 올려놓고는 다시 제 가방을 챙겼다.
“가려고?”
“응. 다 보고 나면 사물함에 넣어놔.”
“…음, 알겠어.”
잠시 뜸을 들여 대답하는 허니에 일어나던 브래들리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왜, 가지 말까? 브래들리의 물음에 허니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 할 일 있으면 먼저 가. 담담한 대답에 브래들리가 허니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무언갈 읽으려는 듯 차가운 얼굴로 한참을 바라보던 브래들리는 햇살같이 웃으며 일어났다. 내일 봐, 허니. 브래들리가 나간 교실의 앞 문을 한참을 쳐다보던 허니는 대충 과제를 휘갈기고는 후다닥 집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근 허니는 평소 브래들리와 이야기하던 대학이 아닌, 지금 성적에서 자신이 지원할 수 있는 가장 먼 대학교를 찾았다. 학과는 어떻든 상관이 없었다. 학비는 싸면 좋았다. 그 주변에서 지낼 장소도 미리 알아봐야했다. 위치는 낯설수록 좋았다. 허니는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허니는 자신이 느낀 위화감이 그저 느낌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몰리의 옆에서 언제나 저를 함께 괴롭히던 소냐와 미쉘은 몰리를 떠나 둘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브래들리가 없을 때, 허니는 조심스레 그들에게 다가가 몰리는 어딨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그냥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심지어는 미안하다는 심심한 사과까지 전했다. 미안하면 왜 몰리랑 같이 안 다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이 교실에서 혼자 다니는건 나 하나면 족할 것 같아서 말야. 허니의 말에 미쉘은 그냥, 우린 안 맞아서. 하고 단답으로 대답하더니 자리를 피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저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곁들이며 아이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있던 마이크는 수업시간이 아니면 교실에서 만나기 힘들었다. 또, 실수로 책을 바꿔 가져간 안나와는 재밌는 인연으로 발전할 줄 알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다른 수업을 듣는다고 해도, 학교가 그리 넓지 않아서 한 번 쯤은 마주칠 수 있었을건데.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에 허니의 머릿속은 무언가를 지우려는 듯 까맣게 변해갔다.
허니와 가장 친한 브래들리와, 수잔, 그리고 수잔의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 주변에 둘 사람들이 자꾸만 사라지고 있었다. 허니는 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좋아서, 자신이 미움받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라고 굳게 믿어서 이런 사실을 이제야 알아챘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차가운 겨울 바람이 파도에 실려 거세게 허니의 볼을 할퀴었다. 그리고 백사장 끝, 저 멀리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얼굴에 까맣던 머릿속이 맑게 개었다.
끝까지 아닐 것이라 외면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이대로 자신의 위화감을 모른척 하게 된다면 허니는 영영 그 검푸른 바다속으로 가라 앉아야 했다. 그것이 나쁜 선택은 아니었지만, 최선의 선택도 아니었다. 허니는 푸른바다와 똑 닮은 하늘이 늘 궁금했다. 물 밖에서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발을 딛고 서고 싶었다. 설령 그것이 제 숨을 조여오는 고통을 동반한다고 해도.
*
범블을 불러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허니에 브래들리는 그래? 하며 한번 해보라는 듯 웃었다. 어차피 하지 않을 것 이라는 걸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허니는 체념한 얼굴로 잘 곳은 있지? 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주인을 기다렸다는 듯 잘 정돈된 방에 허니가 브래들리를 보았다. 그냥, 생각날 때마다 와서 정리한 것 뿐이야. 으쓱 하며 고개짓을 하는 브래들리에 허니는 대꾸도 않고 문을 닫았다. 라디에이터는 꾸준히 돌아갔는지 훈훈한 공기가 허니를 감쌌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 허니는 가만히 방안에 스며드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몰리의 말을 떠올렸다.
너는 몰랐나본데, 브래들리가 널 생각하는 마음이 꽤나 각별해서 그래. 그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걸? 세상의 모든게 변한대도 널 대하는 브래들리 쿠퍼가 변하는 일은 없을걸. 저 너머에 있는 바다가 변하지 않듯이 말야.
허니는 푹신한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귀를 막았다. 과연 나는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면 모르고 싶었던걸까. 그것도 아니면…. 겨울의 아침은 아득히 멀었고, 허니는 제 자신도 답을 낼 수 없는 물음에 잠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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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절반에서 그보다 조금 더 온 것 같다 ㅎㅎ...
근데 막 생각만큼 허니가 떠난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건 아니조우….
별거 아닌 일이조…. 그냥… 그런거조…. 기대하셨으면 죄송할 따름이조….
뿌꾸랑 허니는 빨리 연애나 했으면….
아, 그리고 * 로 시작되는건 현재, **로 시작되는건 과거의 이야기라고 봐주면 코맙..
언제나 읽어주고 기다려주는 붕붕이들은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뿌꾸너붕붕
로켓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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