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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과의 재회는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소설처럼 애틋하지 않았다.

뭍에 나온 인어가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그리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동화속의 인어가 아니었고, 그는 더이상 허니만의 바다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허니가 돌아오는 것 또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맑고 푸른 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허니는 속절없이 가라 앉아있었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푸른눈을 허니는 신뢰할 수 없어졌다.














7.
허니가 몰리와의 관계가 개선 되고 난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수잔과의 3자 대면이었다. 아무래도 그게 자신을 각별히 여겨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썩 떨떠름한 얼굴의 수잔은 허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몰리와 만났고, 이젠 편하게 한 달에 한 번은 모여서 차 한잔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아직은 동네에 돌아오기는 껄끄럽다고 말하는 몰리 때문에 허니는 어쩔 수 없이 앨리가 운영하는 카페로 향했다. 여기도 브래들리가 자주 올텐데…. 허니의 말에 몰리는 괜찮다며 웃었다. 내가 오면 앨리가 미리 얘기해서 마주친 적이 없거든. 허니는 그 말에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늘은 친구랑 같이 왔네요, 허니. 어서와요.”
“아, 네. 이따가 수잔도 올 거에요.”
“어머, 동창끼리 티 파티에요? 너무 좋다.”


몰리와 함께 들어오는 허니를 앨리는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허니는 밝게 웃는 앨리를 보며 어딘가 우울하고 삐뚤어진 자신과는 다른 서부의 따뜻하고 강렬한 햇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몰리 역시도 그런 앨리에 녹아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터 놓았고, 덕분에 몰리가 방문하는 날엔 브래들리가 이 곳에 올 일은 없었다.

허니는 몰리와 앨리가 이끄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몰리와 대화하는 앨리의 목소리가 잔잔한 재즈 선율에 얹혔다. 가사가 없는 곡이었지만, 가사를 붙힌다면 이런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을까. 허니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이내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시리고도 푸른 바다에 어울리는 따사로운 햇살이었다.


*


정식 계약인 6개월이 끝나자마자 허니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크리스는 손 하나가 줄어서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허니는 이 이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그럼 뭐 하려고요? 크리스의 물음에 허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뭐라도 하지 않을까요? 근데 학교에서 일하는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요. 허니의 말에 크리스가 낄낄 웃었다.


“아, 그래도 다음주에 우리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 하는거는 잊지 말고 와요.”
“알겠어요. 안 그래도 몰리가 카드까지 쥐어줬어요.”


가방 속에 있던 귀여운 카드를 꺼내 흔든 허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친구 데려 오는것도 잊지 말고요. 크리스의 말에 허니가 저 친구 없는거 알잖아요. 하며 울상을 지었다. 크리스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수잔은 우리한테 초대 받아서 허니 친구로 안 쳐줘요. 그러니까, 그 전까지 하나 구해서 와요. 미스터 쿠퍼면 더 즐거울거 같긴하지만. 크리스의 말에 허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으…. 하는 소릴 냈다.


“아니, 몰리가 싫어하는데 대체 왜 데려 오라는거에요?”
“피하기만 해서 극복이 되는건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싫은걸 굳이 마주할 필요가 있어요?”
“예전엔 굳이 마주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크리스의 말에 허니가 무슨 소린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허니가 몰리의 곁에 서 줄거잖아요. 난 허니의 힘을 믿거든요. 크리스의 말에 허니가 진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거든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하며 툴툴댔다.


“그 성난 푸른 괴물이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사람이잖아요.”


제가 무슨 어느 히어로 무비에 나오는 사람인 줄 아는거 아니에요? 민망한 듯 손사레를 치는 허니에 크리스는 글쎄요. 하며 씩 웃었다.


*


허니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 몰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연락처 목록을 살피며 한숨을 푹푹 내 쉬는 허니의 앞으로 흰색 머그컵이 쑥 들어왔다. 또 일자리 찾아요? 매튜의 목소리에 허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친구 찾아. 허니의 말에 매튜가 큭큭 웃었다. 그냥 친구요, 아니면 그런 친구요? 매튜의 말에 허니가 경악의 얼굴로 매튜를 바라보았다.


“얘는, 어린게 못하는 말이 없어. 이 좁은 동네에서 뭔 그런 친구를 찾아!”
“오, 도시에 살았을땐 그런 친구 좀 찾으셨나봐요?”
“아니거든. 미쳤니? 난 타인에게 되게 베타적인 사람이야.”


저랑은 말만 잘 했으면서. 매튜는 툴툴거리며 허니의 앞자리에 앉았다. 흠, 하며 고민을 하던 허니가 턱을 괴고는 제 앞에 앉은 매튜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반짝거리는 갈색의 눈이 허니를 보며 웃고 있었다. 너, 크리스마스에 뭐하냐? 허니의 말에 매튜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데이트 신청이에요?”
“데이트겠냐?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15년은 나지 않니?”
“에이, 데이트 신청 아니면 안가요.”
“너 돌았니?”


경악의 표정으로 손가락을 제 관자놀이 옆에서 빙빙 돌려보이는 허니에 매튜는 뭐가 그리 좋은지 온 몸을 뒤로 젖혀가며 깔깔 웃었다. 아, 이래서 내가 허니 좋아해요. 매튜는 제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크리스마스 때 허니랑 놀래요.


*


집으로 데리러 오겠다는 매튜의 말에 허니가 뚱한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상대가 누군지 기대하는 부모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프롬때가 떠올랐다. 물론 그 때엔 브래들리라는 사실을 알고도 저런 표정이셨지. 허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매튜 몰라요? 그 어린애. 제가 이 동네에 딱히 친구가 없어서 데리고 가는거에요.

최소 30번 이상은 설명 했음에도 허니의 말은 들리지 않는지 미세스 비의 얼굴은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매튜가 건실하긴 하지. 미세스 비의 말에 미스터 비의 표정은 펴지질 않았다. 그래도 너무 어리잖아. 허니, 남자는 말이지 자고로…. 미스터 비의 끝없는 설교가 시작되려 하자 허니는 아, 제발요. 하며 두 눈을 손으로 가렸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현관문이 두드리는 소리 덕분에 허니는 잔소리의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차에 올라탄 허니는 진저리를 쳤다. 아니, 왜 이리 늦었어? 제 시간에 맞춰서 온 매튜는 그저 억울한 얼굴을 했다. 죄송…해요…? 떨떠름하게 내뱉는 사과에 허니가 그래. 하고 받아주었다. 어거지만 부리는 허니에 매튜는 도무지 허니가 연상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


“메리크리스마스!”


몰리의 집 문이 열리자 마자 허니는 냅다 팔을 벌리고 인사를 했다. 당연히 집 주인이 열어 줄 것이라 예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허니가 마주한 것은 푸른 눈이었다. 가만히 팔을 다시 내리고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허니에 차를 대고 뒤에서 들어오는 매튜가 뭐해요? 하며 허니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 아. 어. 들어가려고. 당황과 부끄러움으로 빨개진 얼굴의 허니가 뚝딱대며 매튜의 팔을 끌었다. 매튜는 영문도 모른채 끌려 들어가며 미스터 쿠퍼, 안녕하세요! 하고 밝게 인사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앨리와 애덤, 그리고 몰리가 분주하게 주방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크리스와 수잔, 브래들리는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와인을 마시고 있었던지 탁자에는 와인잔과 간단한 주전부리가 담긴 플레이트가 놓여있었다. 

허니와 매튜가 온 것을 본 몰리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어머, 매튜랑 같이 온거야? 언제 둘이 이렇게 친해진거야? 몰리의 말에 매튜가 허니의 어깨를 끌어 당겼다. 저희가 좀 특별하긴 하죠. 어린 친구의 재롱에 깜짝 놀란 얼굴을 하던 허니가 이내 사르르 풀렸다. 또또, 오버한다. 

허니는 매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살짝 밀쳐냈다. 늦어서 미안. 마땅히 살 건 없어서 그냥 집에 있던 디저트 좀 챙겨왔어. 허니의 말에 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앉아있어. 지금 주방은 세명으로도 이미 꽉 찼거든. 몰리가 제 등 뒤를 턱짓으로 까딱하자, 앨리와 애덤이 손을 흔들었다. 충분히 분주해 보이네. 허니가 고개를 끄덕이고 매튜와 함께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옆에 놓인 크리스탈 선반에서 잔을 꺼낸 크리스가 소파에 앉기도 전에 붉은 와인을 가득 채워넣었다. 어, 저는 운전 해야해서요. 아무래도 허니를 잘 모셔다 드려야 하거든요. 매튜의 잔망스러운 대답에 크리스가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스 마실래? 크리스의 말에 매튜가 네. 하고 대답했다.


*


“둘은 언제 친해진거에요?”


미리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만찬을 다 먹고 모두가 모인 식사 자리에서 앨리가 궁금하다는 듯 매튜와 허니의 관계를 물었다. 제가 허니한테 막 들이 댔죠, 젊음의 힘이랄까. 매튜의 발언에 허니가 켁, 하며 기침을 했다. 제가 카페 자주 가니까, 그래서 친해졌어요. 입가를 닦으며 허니가 매튜의 발언을 정정했다. 허니의 말에 매튜는 이러니 제가 어떻게 안 들이 대요. 하며 킥킥 웃었다.


“이야, 허니. 대단한데? 아예 젊은 친구로 갈아타는건 어때?”
“놀리지마, 수잔.”


깔깔 웃는 수잔에 허니가 눈을 흘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덤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제 잔도 옆에 밀어두고 몸을 한껏 앞으로 기울이며 매튜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 어둡고 사고뭉치에 정신머리 나간 여자가 뭐가 좋아서? 너 예대생이라 그랬나? 그래서 그래? 원래 예술 하는 애들이 약간 또라이 좋아하잖아.

학교 다닐 때에 수잔과 허니에게 당한게 많은 애덤이 낄낄 대며 허니의 앞에서 본인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허니는 아~그래서 니가 수잔하고 결혼했구나? 너도 예대생이잖아. 하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맞받아쳤다. 

두 사람의 실랑이에 매튜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랬나봐요. 매튜의 말에 뭐? 하고 수잔이 대꾸했다. 제가 예대생이라 또라이 좋아하는거 맞는거 같아요. 허니 약간 또라이잖아요. 하며 깔깔 웃었다. 그제야 허니는 저를 놀리는것에 동참한 매튜의 팔을 아프지 않게 찰싹 내려쳤다. 이 자식이, 어른을 놀려?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두를 두고 브래들리가 조용히 일어났다. 잠시, 담배 좀. 제 옆자리에 앉은 앨리에게 말을 하고 뒷마당으로 향하는 브래들리에 허니는 시선을 두지 않으려 일부러 반대편의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초록색의 눈은 모든것을 알고 있다는 듯 살짝 휘어지며 웃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앨리 역시 브래들리를 따라 뒷마당으로 향했다. 허니는 괜히 속이 답답해졌다.


*


화기애애한 시간이 끝나고, 뒷정리를 도우며 허니는 몰리에게 살짝 물었다. 오늘 괜찮았어? 허니의 말에 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 덕분에 이제 좀 용기가 생겨. 브래들리도 한결 나아졌고. 몰리의 말에 허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 덕분이라니? 허니의 말에 몰리는 그냥 가만히 웃었다.


“너네 부부, 참 이상해.”
“나랑 크리스가 왜?”
“자꾸 나를 어느 괴수 영화에 나오는 히로인 취급을 하잖아. 나는 브래들리한테 아무런 영향을 줄 수도 없는데 말야.”
“…오, 허니.”


너는 몰랐나본데, 브래들리가 널 생각하는 마음이 꽤나 각별해서 그래. 그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걸? 몰리의 말에 허니가 인상을 찌푸렸다. 난 그러지 말라고 떠난거야. 그리고 그런 건 13년 전이면 모를까, 지금까지도 그렇다고 생각 안해. 또, 그러지 않아야 하고 말야. 허니의 말에 몰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세상의 모든게 변한대도 널 대하는 브래들리 쿠퍼가 변하는 일은 없을걸. 저 너머에 있는 바다가 변하지 않듯이 말야. 몰리의 말에 허니는 어떠한 말을 덧붙여야 할 지 몰랐다. 그런 허니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몰리가 다시 밝게 웃었다.


“어느정도 치웠으니까 이제 가봐. 시간 늦겠다.”
“…아, 어. 더 안치워도 괜찮아?”
“응. 나머지는 크리스랑 치우면서 술도 깨고 해야지. 저 주정뱅이들은 잘 재울테니까 걱정 말고.”


몰리는 소파에 늘어져있는 수잔과 애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큭큭 웃었다. 이미 크리스는 손님방을 정리하느라 매튜의 손을 빌려가며 정리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 혼자 다 옮기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매튜 잠깐 빌려줄게. 허니의 말에 몰리가 고마워. 하며 다시 웃었다. 가기 전에 브래들리랑 앨리한테도 인사하고 가. 몰리의 말에 허니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허니, 크리스마스잖아.”
“…내가 가서 인사하는게 맞을까?”
“인사도 안하고 가는건 너무 정 없지.”


몰리의 말에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하고 바로 매튜 챙겨서 간다, 그럼? 오늘 너무너무 고마웠어. 허니는 미리 인사하듯 몰리를 꼭 껴안았다. 몰리 역시 허니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고마워. 하고 대답했다. 짧은 비쥬를 나눈 후, 허니는 뒷마당에 있을 브래들리와 앨리에게 향했다. 문을 열기 전 까지도 허니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을 연 허니는 입술을 꾹 깨물고 다시 문을 닫았다.


허니가 마주한 것은 어두운 곳에서 겹쳐진 두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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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 언제 오해 풀고 언제 연애하냐...
점점 길어지고 늘어지는것 같다고 느낀다면 미안하조우...

아무튼 꾸준히 읽어주고 기다려주는 붕붕이들이 있으시다면 항상 고맙읍니다..


뿌꾸너붕붕
로켓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