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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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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양성진 파트*



  새벽닭이 울자 효성진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살며시 맞은편에 서 있는 병풍 뒤로 가서 휘장을 걷었다. 
  병풍 뒤에는 얼굴을 포함하여 이불 밖으로 드러난 팔 여기저기에 상처가 난 창백한 소년이 누워 있었다. 
  소년은 이른 시간에도 눈을 뜬 채 창 너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상처 때문에 잠들 수 없었던가?”
  “아뇨. 푹 잤습니다.”
  공허해 보이던 눈빛은 효성진이 들여다보자 색을 바꾸더니 유순하게 웃어보였다.  
  효성진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젠 어둡고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어. 먼저 요기를 하고 난 다음 다시 보아 주겠네, 설공자.”
  


  효성진은 점소이가 가져다주는 물로 얼굴을 닦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난 밤 그는 이 곳에서 멀리 떨어진 산길을 걷고 있었다.
  밤이라 해도 야렵을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달이 밝고 사방이 청명한 느낌이라 발길 닿는 대로 길을 걷던 중이었다. 종종 이런 식으로 밤길을 지나다가 요귀가 나타나면 사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은 산수가 좋고 길도 넓고 깔끔하여 그런 위험은 없을 것 같았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쇳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소리는 점점 어지럽고 급박해졌다. 검이 부딪히는 소리로 보아 요물을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 같았다.
  마침내 소리의 진원지에 도달한 효성진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면과 맞닥뜨렸다.
  환한 달빛 아래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이 몰려 있는데, 놀랍게도 여럿이서 단 한 명을 에워싼 채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공격당한 자는 악다구니를 쓰는 듯 기운이 흉흉했지만 이미 심하게 다친 듯했다. 그런데도 그를 둘러싼 수사들은 조금도 손을 봐주지 않고 금방이라도 찔러 죽일 기세였다.
  대뜸 안색이 변한 효성진은 가슴 속에 의분이 끓어올랐다. 그는 곧장 불진을 꺼내며 소란의 중심으로 날아들었다. 
  효성진이 땅에 발을 딛자마자 빙글빙글 돌며 몇 차례 불진을 휘두르자 한 곳을 향해 있던 검들은 소리도 없이 쓸려서 방향을 잃고 말았다.
  갑자기 한 명의 사람이 나타나 단숨에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켜버리자 수사들의 얼굴에 경악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들은 효성진이 다친 이를 감싸려는 것을 알자 검을 고쳐쥐고 덤벼들었다.
  잠시 멈춰 보라고 외치려던 효성진은 사람들의 기세가 말도 없이 흉악한 것에 놀랐다. 그는 불진을 허리춤에 꽂은 패검을 뽑아서 상대하기 시작했다.
  상화가 날카로운 빛을 뿌리자 수사들은 강적을 만났다는 사실을 재차 절감했지만 그 놀라움조차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영력이 충만한 아름다운 검이 쇳소리를 낼 때마다 수사들의 무기는 손에서 달아나 버리는 게 아니면 일격에 부서져나가 버렸다.
  날카로운 소리가 공중을 울린 후 수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뒤로 훌쩍 물러났다. 이 도사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도 없는 수준의 실력자였다. 
  효성진은 그들이 물러나자 굳이 쫓아가는 대신 다친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를 살펴볼 여유를 가져볼 수 있었다.
  설양을 도우려 하기에 서로 친분이 있는 악당이 아닌가 싶었던 의심은 달빛 아래 드러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많이 봐 줘야 20여세가 될까말까한 청년 도사는 티없이 하얀 옷을 입었는데 꼿꼿하게 선 자세를 통해 평생 타인에게 고개 한 번 숙일 일 없는 엄정한 기품이 드러나 보였다. 그러한 기품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얼굴에도 그대로 서려 있어, 지금처럼 눈빛이 엄한 것도 드문 일인 듯 눈매가 무척 따뜻했다.
  곧 수사 하나가 외쳤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왜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겁니까?”
  “이런 일에 남이고 뭐고가 어디 있소! 오밤중에 외진 곳을 택해 수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난도질하다니!”
  효성진이 엄하게 꾸짖자 다른 수사가 외쳤다.
  “한 사람이요? 저 놈은 악당 백 명에 맞먹을 만큼 극악무도한 놈이란 말이오! 그러니 참견 말고 가시오, 도장!”
  그의 말에 효성진이 비로소 고개를 돌려 자신이 지키는 이를 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아니 남자가 아니라 소년이라고 해야 옳았다. 전신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저보다 몇 살쯤 어려 보이는 둥그런 눈이 무력하게 쳐다보는 데다 언뜻 눈가에 눈물까지 반짝이자 효성진은 그만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나쁜 짓을 해 보았자 얼마나 했겠다고?
  효성진이 설양을 바라보는 눈빛에 상황이 나쁘게 돌아갈 것 같자 앞장선 수사가 다시 외쳤다.
  “우리들은 무뢰배가 아닙니다! 번듯한 가문 사람들이라구요! 이 근방의 세도가인 약양 상씨가 바로 저희 가문입니다!”
  “도장, 그 놈은 바로 악명이 자자한 설양입니다! 알지 못하십니까?”
  효성진은 아직 속세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의 명문은 고사하고 4대 가문도 잘 몰랐다. 이 곳의 지역명조차 모르는 그가 약양 상씨를 알 리 만무했다. 그래서 수사들이 말을 거듭할수록 그의 마음 속에는 불신만 피어올랐다.
  “어떤 세도가이길래 이리 어린 소년을 쥐잡듯 한단 말입니까! 도대체 이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소!”
  “그 놈은 저희 종주께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데려가야 합니다!”
  “데려가다니, 당신들은 금방 이 아이를 찔러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댁의 가주께선 그래 얼마나 다치셨소?”
  이 말에 수사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가주인 상평은 일검을 맞았으나 다행히 급소는 피한 듯 수사들에게 설양을 잡아 죽이라고 고래고함을 질러댔다. 
  수사들이 대답하지 못하자 효성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몸을 돌려 설양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급박해진 수사들이 한 발짝씩 나서며 동시에 떠들었다. 
  “안 됩니다!”
  “그 놈은 지금까지 저지른 죄만 해도 말도 못할 정도란 말입니다!”
  효성진은 사람들이 다가오자 패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경계했다.
  “도대체 이 아이가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그 말에 사람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설양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그들이 설양의 죄를 일일이 다 아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기주의 설양은 저지르지 않은 죄가 없어 아무 죄나 갖다붙여도 거짓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수사들이 이 질문에 갑자기 벙어리가 되자 짙어져가던 효성진의 의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가 설양을 부축하며 끝내 데려갈 듯하자 수사들은 검을 고쳐쥐었다. 이대로 설양을 살려 보냈다간 후환이 무궁무진할 것은 뻔한 이치였다. 
  효성진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얼른 설양의 허리를 감아 패검에 뛰어올랐다. 
  그가 날아오르자 패검이 망가지지 않은 수사들이 일제히 어검하여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별빛같은 점을 뿌리며 날아가는 상화의 속도는 아무도 따를 수가 없었다. 수사들은 점점 뒤쳐지더니 끝내는 멀어져갔다. 
  효성진이 안전할 정도로 거리를 벌렸다고 판단했을 때에는 이미 산을 몇 개나 넘어간 후였다.



  아침을 먹은 후 효성진이 잠시 밖으로 나가자 설양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상처를 살펴 보았다. 효성진이 상처를 돌보아 줄 때에는 힘없는 척 하고 있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자잘하게 찔린 상처야 대수로울 게 없었지만 영력을 과도하게 쓰는 바람에 패검을 잡기도 힘들었다. 멀쩡하게 나다니게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윽고 점소이가 들어오자 설양은 그를 불러다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점소이는 일이 바빴지만 설양이 패검을 짚은 채 험악한 눈으로 노려보자 그만 간이 떨려서 묻는 대로 일일이 대답해 주었다.  
  한참 후 놓여난 그는 얼른 방을 빠져나가며, 같이 온 우아한 백의의 공자와는 왜 저리 다른 거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점소이가 나간 후 설양은 약삭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들어 보니 이 곳은 인적이 드문 외딴 마을인 것 같았다. 
  설양은 효성진의 곁을 떠나려던 생각을 접고 잠시 동태를 살펴 보기로 마음먹었다. 당장은 외진 지역에 있어 자신의 정체를 들킬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효성진이 제 이름을 들어도 누구인지 모르는 걸 보니 어지간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잠시 이용해 먹어도 나쁠 게 없었다.
  금광선이 형편없이 몰락한 후 금자헌이 뒤를 잇자 설양은 금린대를 떠났다.
  금광선은 사일지정 후로 위무선의 음호부에 자극을 받아 몰래 사술에 능한 자들을 받아들여서 양성했고, 거기에는 설양도 끼어 있었다. 사술을 쓰는 자들 중에는 당연히 설양처럼 질이 나쁜 무리들이 많이 있었다.
  금자헌은 금광선이 가주일 당시 성가신 일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가주가 되고 나서 금광선이 하던 일들을 낱낱이 알게 된 금자헌은 불쾌하고도 실망스러웠다. 그는 설양을 포함해 더러운 연구를 하고 사도를 걷던 무리들을 모조리 쫓아버렸지만 마음의 충격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설양은 금가에서 내쫓긴 후에도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하며 천지사방에서 사고를 치고 다녔다. 그러나 난릉 금씨에 들어갔다 나온 뒤로 몰라보게 강해진 그를 함부로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세가의 사람들조차도 설양이 음험하고 끈질긴 것을 알아 가능하면 그와 척을 지지 않으려고 했다.






  효성진은 떠나지 않고 설양의 곁에 머무르며 손수 그를 돌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초라한 객점에 머물렀다.
  그 동안 설양은 효성진의 사람됨을 빠르게 파악해갔다.
  수백 년을 살았다는 포산산인의 위명은 장색산인이 덧없이 죽어간 후 십여년이 지나며 조금씩 빛이 바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효성진이라는 제자가 하산을 했다.
  효성진은 인품, 미모, 실력, 어느 하나 빠질 데가 없는 걸출한 인물이었다. 겨우 입신을 할 나이에 도달한 그는 하산하자마자 난릉 금씨가 연 거대한 규모의 위렵 대회에 참가하여 당당하게 1등을 차지했다. 
  그런 인물이 나타나자 현 수진계는 가문을 중심으로 세를 이루고 있음에도 그를 모셔가려고 앞을 다투었다. 
  하지만 그는 가장 훌륭한 조건을 제시한 난릉 금씨마저도 거절함과 동시에, 자신은 어떤 가문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입장을 밝혔다.
  스승의 충고마저 뒤로 하고 하산했던 효성진에게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내심으로 자신이 자리를 잡을 때에는 혈연에 연연하지 않고 두루두루 사람들을 포용하는 문파를 세우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려면 우선 새로이 맞닥뜨린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정처 없이 떠돌며 연이 닿을 때마다 사람들을 도우며 세상살이를 배우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설양을 만났고, 그의 목숨을 구했다.
  효성진에게는 한 사람을 구하든 만 사람을 구하든 다를 것이 없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설양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 효성진은 성심껏 그를 보살폈다. 그는 설양에게 출신도 사연도 묻지 않았다. 설양이 무언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섣부른 질문이 그의 마음을 다치게 할 지도 몰랐다. 
  사실 효성진에게는 호기심이 없었다. 한 사람이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만났기에 도운 것일 뿐, 설양이 낫고 나면 각자의 길을 가면 그만이었다.
  반면 설양은 효성진의 이름자를 듣자 대번에 그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또 아니꼬운 놈이 하나 늘었군. 그것도 은거하다가 속세로 내려온 도인이라니. 대체 얼마나 아니꼬울까.’
  효성진의 소문을 들었을 때 설양은 그렇게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직접 그를 만나고 보니 정말로 아니꼽기가 이를 데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구해주질 않나, 가족처럼 붙어 몇 날 며칠을 치료해 주질 않나. 그러면서 아무 것도 묻지도 않다니.
  설양은 금린대에 객경으로 있을 때 대인배인 척 행동하는 인간을 많이 만나보았다. 금광요야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초장부터 꿰뚫어보고 있었지만, 고소 남씨들은 확실히 아니꼬움의 대명사였다.  
  그렇지만 고소 남씨라 해도 설양의 팔에 붕대를 감아 주고 밥을 떠먹여주는 짓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 효성진이 가까이 앉아 보살같은 얼굴로 보살펴 주면, 설양은 대단히 고마워하며 속으로는 세상에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을까 하고 고까워했다.
  그러나 며칠이고 누워만 있다 보니 무료해졌다.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는 설양은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는 단 하나뿐인 상대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효성진은 설양의 곁에 붙어 있으며 당장은 움직일 수도 없으니 그가 끝없이 지껄여도 받아 주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설양은 재치가 있어 말재간이 좋았고 농담도 잘 했다. 게다가 효성진은 선산에 파묻혀 있다가 세상에 갓 나온 터라 설양이 해 주는 기묘한 이야기들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설양은 심심풀이로 말을 걸었을 뿐이지만 효성진이 제 말에 쉽게 감격하고 쉽게 웃는 걸 보니 반응이 꽤나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설양은 효성진에 대해 알 만큼 알게 되었다. 
  겉으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속에는 결코 움직일 수 없는 단단한 사상과 의로움이 깃들었으니 그처럼 단순한 사람은 파악하기 어려울 것도 없었다. 
  설양은 효성진을 알면 갈수록 더욱 더 그를 깔보게 되었다. 
  설양이 볼 때 선한 인간은 딱 두 부류였다. 하나는 선하면서 완고한 사람. 이 경우는 나쁘면 악당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한 짓을 하는 것도 더러 보았다. 그렇지만 효성진은 완고한 부류는 아니었다. 선하면서 부드러운 사람. 차라리 이 경우는 부드럽기 때문에 선하다고 말하는 게 옳을 지 몰랐다. 바로 설양이 가장 손쉽게 주무를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완전히 마음을 놓은 설양은 세 치 혀를 이용하여 효성진을 기쁘게 만들기도 하고, 슬프게 만들기도 하며 재미있어했다.
  어쩌면 설양이 그와 깨끗하게 헤어지지 못하게 된 것도, 그처럼 너무 즐기다가 일어난 일일지 몰랐다. 






***




  몇 주가 지나자 설양은 어느덧 몸이 충분히 회복되었다.
  시간이 그만큼 흘렀으니 마을에서도 객점에 수선인이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날 마을의 촌장이 묘지에서 일어난 시체를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조심스럽게 해 왔다.
  밤이 되어 효성진이 조용히 일어나자,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설양이 병풍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도장님, 야렵을 나가시는 거에요?”
  “그렇다네. 그대는 쉬고 있게나.” 
  “저도 같이 갈래요.”
  “그대는 좀 더 쉬는 게 좋을 텐데...”
  효성진은 말끝을 흐리면서 애매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둘다 말은 안했지만 설양이 이미 홀로 떠날 수 있을만큼 나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하는 어색한 분위기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효성진은 무척 아쉬운 기분이었다.
  스승의 밑에 있을 때에는 조용히 참선을 하거나 수련만 하는 생활이었고, 하산한 후론 자신의 실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 스쳐지나갔을 뿐이라 어느덧 꽤 외로워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나이어린 설양을 만나 그가 연일 명랑하게 지껄이는 얘기를 듣다 보니 헤어지는 것이 아쉬울 법도 했다. 하지만 가족도 친구도 아닌 그와의 인연이 계속 이어질 리 없었다.
  “마음대로 하게.”
  효성진이 허락하자, 설양이 씩 웃으며 오랜 시간 비비적대던 침상에서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