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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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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신이 울부짖는 금광요를 억지로 데려가 버린 후 위무선과 남망기는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남망기가 위무선의 어깨를 잡고 앉혀서 가부좌를 틀도록 했다.
“산 사람이 들어서 좋은 곡이 아니야. 영맥을 다스려.”
남망기도 단정하게 앉아 운기를 하기 시작했다.
위무선은 시키는 대로 운기하는 시늉은 했지만 아직도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 데면데면했다.
이윽고 참지 못하게 된 그가 물었다.
“남잠, 문령에 대답한 혼이 정말로 염방존의 어머니였어?”
“응.”
위무선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이 자꾸 같은 대답만 하던데. 어떻게 금광요의 어머니인걸 확신하지? 그리고 뭐라고 했길래 남희신이 말하기를 꺼린 걸까. -그리고 남희신이 알려주지 않았던 걸 남망기가 알려주려고 할까?
그래도 호기심이 큰지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남잠. 혼백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려주면 안 돼?”
남망기는 남희신이 금광요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를 알듯 말듯했다. 어차피 대답 자체는 별 것이 아니었기에 가까이 다가온 위무선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여 주었다.
위무선은 남망기의 다리 위에 벌렁 드러누운 다음 찬찬히 생각했다. 남희신은 수차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답은 한결같았다. 결국 문령에 응해온 것은 실낱같은 사념체에 불과했다는 얘기였다.
사태를 파악하게 된 위무선은 가슴이 시큰했다.
아무리 거침없는 위무선이라도 이때만큼은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그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남잠, 너도 내가 죽으면 내 혼백을 부를 거야?
얼굴이 따가워진 남망기가 내려다보니 위무선이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남망기의 하얗고 차가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눈빛을 본 위무선은 부질없는 의문은 사라지고 살아있는 그에 대한 애정이 용솟음쳤다.
“남잠, 너무너무 사랑해...”
남망기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거꾸로 누워 엇갈리는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결국 남망기는 맨정신으로도 취한 정신으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럴수록 위무선은 그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겨울이 깊어지는 동안, 금광요는 이따금씩 잠을 자며 미소를 지을 때가 있었다.
그것이 기쁘고도 사랑스러운 남희신은 잠든 얼굴에 떠오르는 보조개에 입을 맞추어 보곤 했다. 그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지금 잠이 든 금광요의 얼굴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비참한 모습이었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도 넘어서 심연으로 추락한 느낌이었다.
초췌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돌이키고 싶지 않은 스스로의 과거까지 떠올랐다.
남희신도 어릴 적에 가장 가까운 혈육의 죽음을 겪었다. 그의 양친은 평범하게 사랑할 수 있는 관계에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숙부가 계셨고,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가문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 전부가 외면하는 상황에서 단 한 명의 소중한 사람이 사라져버린다는 게 어떤 건지 남희신은 감히 상상도 해 볼 수 없었다. 그저 얼마만한 아픔이겠거니, 하고 얕게 가늠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남희신은 속살을 내보이며 무방비하게 잠든 육체를 가만가만 씻어 주었다.
얇은 철갑을 수없이 덧대어 만든 검은 깨끗하게 관리하기가 어려워, 한생에 입은 상처는 독이 오르기 쉬웠기에 약물에 담그는 건 이롭지 않았다. 그래서 남희신은 상처 하나하나를 일일이 닦아낸 후 약을 발라 주었다.
어느새 밤이 되어 하인이 들여놓은 음식상이 덩그러니 놓인 채 식어가고 있었다.
옴쭉달싹도 못하게 남희신의 품에 가두어진 금광요는 목이 쉬도록 울며 발버둥쳤다. 그러나 남희신은 금광요가 지쳐서 정신줄을 놓을 때까지 구속을 풀지 않았고, 그를 기절시키지도 않았다. 그는 금광요가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두었고, 마음껏 자신을 비난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마침내 기력이 바닥난 금광요의 목소리가 해명을 요구하며 애달프게 변해갔다.
“형님, 왜 그러셨는데요. 너무하세요.”
그러자 처음으로 입을 연 남희신이 말했다.
“아요,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님의 혼백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어.”
“그렇지만 현이 울렸잖아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이 때 남희신의 가슴 속에 조그마한 이기심이 끼어들었다고 그를 원망할 수는 없으리라.
“‘아요, 행복해라.’. 그리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금광요는 남희신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원망하고 싶었지만, 워낙 단단하게 안겨 있어 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
금광요가 남희신의 얕은 거짓말을 못 알아챌 리 없었다.
그렇지만 남희신의 팔과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영영 떠나가 버렸다. 그것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금광요는 맹시가 아직도 관 안에 존재한다고 믿으며 집착과 회한을 그 안에 고스란히 묻어두었다. 그것은 그에게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그 자리에 묶어버렸다. 그런데 그리 길지 않았던 금광요의 전 생애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지탱해주었던 동아줄이 지금, 완전히 끊어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슬퍼도 죽은 사람은 놓아주는 것이 세상의 순리였다. 그러나 그 한 명의 사람은 그냥 놓아버리라고 하기엔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남희신은 치료를 끝낸 뒤 한결 깨끗해진 몸에다 곱게 옷을 입혀주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침상을 내려와 쟁반에 담긴 음식을 탁자에 올린 다음 먹기 시작했다.
이런 난리를 겪은 후 태연하게 식사를 하는 남희신의 모습은 언뜻 비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남희신은 올곧게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이제 금광요에게 남은 것은 정말로 자신 뿐이라는 걸 남희신은 잘 알았다. 그러니 그는 이제부터 결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릴 수 없었다. 자신이 흔들리면 금광요도 같이 흔들린다. 그것을 알기에 그의 결심은 절대적이었다.
바깥에는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강징은 일부러 넓은 청당에 앉아서 문간에 들이치는 눈바람을 맞으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방 안에서 마시자니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조금 전, 운심부지처로 떠나는 마차를 배웅하고 났더니 겨우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지만 강징의 마음이 사건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가 술로써 마음을 달래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 요 며칠간의 일은 정말 재난과도 같았다.
아직도 강징의 귓전에는 계집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혼백을 완전히 떠나 보낸 맹시의 관을 봉한 다음 날 아침, 계집아이의 곡소리에 온 집안 사람들이 다 깨어났다.
전여후가 목을 매달고 죽어버린 것이었다. 그로 인해 충격을 받던 사람들 하나하나의 얼굴 같은 건 이젠 떠올리기도 싫었다.
강징이 바로 연화오의 주인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일처리는 할 수 없이 그에게 맡겨졌다. 다만 전여후의 시신을 본가로 인도할 때에는 남희신이 직접 운평성에 다녀왔다. 거기서 뒤끝이 어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닐 것 같았다.
겨우 잠잠해졌다 싶자 남희신이 정중하게 요청했다.
“강종주. 금광요가 운몽에서 물의를 일으켰지만, 처우는 저에게 맡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을 상하게 한 것은 세간의 죄다.
그리고 주술로 사람의 혼백을 묶어둔 것 또한 죄였다.
강징은 규율에 엄했으나 도저히 금광요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을 거다. 낳아 주고 품어 준 어머니의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이가 대체 누가 있을까.
사람이 다치고, 결국은 죽기까지 했으나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알 수 없었다.
강징은 답답한 속을 숨기며 그럼 그렇게 하시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남희신과 금광요는 맹시의 관을 실은 마차를 타고 떠났고, 그들이 걱정된 위무선과 남망기도 말을 타고 뒤를 따랐다.
그렇게 썰물처럼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니, 강징은 이런 저런 사건을 바로 목전에서 두고 치일 때보다 더욱 허전하고 심란해졌다.
술기운이 돌면서 강징은 지금까지 생각하기를 피해 왔던 여러 가지 일들이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과거 강징은 위무선이 금자헌과 남망기를 감싸다 집 안에 화를 불러들인 것을 원망했다.
그러나 금자헌은 강염리의 소중한 부군이 되었고, 남망기는 위무선의 둘도 없는 지기가 되었다.
거기다 남의 어머니의 관을 훔친 사내의 놓아버리지 못하는 사랑이며, 어머니를 놓아주지 못하는 금광요의 집착이며.
뭐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쉽게 놓아버리지도 못하는 강징에게는 이 어지러운 세상사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
“어휴, 추워.”
남망기가 정실에 들어서는 짧은 틈으로 찬바람이 밀려들어오자 침상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위무선이 투덜거렸다.
남망기는 추위도 못 느끼는지 우선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는 것이 항상 잠들기 전에 하는 운기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위무선은 이때까지 남망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냉큼 훼방을 놓으려 했지만 너무 추워서 침상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남잠, 택무군은 아직도 그러고 계셔?”
“응.”
“그러다 얼어 죽겠어.”
“안 죽어.”
위무선은 개, 추위, 배고픔, 혹은 길거리에서 돌아다녔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것은 뭐든 싫어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냉천이나 지음의 운기 등 냉기를 동반한 고행에 익숙한 남씨 형제들에게는 한겨울에 받는 벌도 대수롭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고소 남씨의 종주인 남희신은 자청해서 사당 앞에 꿇어 앉아 벌을 받고 있었다. 그것이 벌써 이틀째 밤으로 접어들었다.
남희신은 연화오에서 돌아오자마자 운심부지처에 맹시의 관을 안치하고 사당에 그녀의 위패를 모셨다.
본디 고소 남씨는 서열은 물론이며 귀천을 중시하여 그가 서자인 금광요와 도려를 맺은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종주의 도려인 금광요의 모친이라곤 해도 기녀였던 사람을 운심부지처의 사당에 들였다.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계인은 그 말을 듣고 못마땅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근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남희신의 종주로서의 결정을 존중했음인지, 금광요가 그의 도려라는 사실을 감안했던 건지 입을 다물었지만 그 외의 아랫사람들, 특히 나이 든 수사들 사이에서는 불만에 찬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수군거림이 감히 남희신의 귀에까지 닿는 일은 없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남희신이 얼마나 금광요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거듭 알게된 위무선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남희신은 연화오에서 빈틈없이 금광요를 지키는 한편, 그에 관계된 모든 일들을 손수 처리했다. 운심부지처로 돌아오자마자 맹시의 관을 안치하고, 사당에 위패를 올렸다. 그동안 그의 태도는 시종 단호하고 물흐르듯 거침이 없었다. 내내 그의 부드러운 모습만 보아 와서 남씨답게 융통성 없는 가주인 줄로만 알았던 위무선에게는 의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더불어 남희신이 전날부터 사당 앞에 꿇어앉어 있는데, 그도 금광요와 관련된 일 같았다. 이유는 남망기와 위무선조차도 겨우 짐작할 정도라, 문하생들은 슬슬 영문모를 그의 위엄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택무군, 왠지 멋있는 걸. 반할 것 같아.”
반쯤은 저를 놀리는 듯한 말에 남망기가 언뜻 반응했다. 그 역시 형장이 그토록 한 사람만을 위하는 모습이 생경했다.
“그만 하고 이리 와, 남잠. 금방 더워질 텐데, 너 바보야?”
평소라면 직접 가서 남망기에게 매달리고, 그 품에 안겨서 돌아오겠지만 움직이기 싫은지 계속 입으로만 나불거렸다.
반면 더워질 때 더워지더라도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일과를 엄수하는 것이 남망기의 고집스러운 습관이었다. 위무선이 뭐라 하든 직접 와서 방해하지 않으니 충분히 영기를 돌린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망기가 침상 위로 올라와도 위무선은 독차지한 이불을 둘둘 감은 채 장난스레 웃기만 했다. 어떻게든 해 보라는 듯 짓궂은 눈빛이었다.
곧 남망기가 손을 뻗어서 이불을 붙잡자 위무선이 몸을 흔들며 뒤로 물러났다.
“싫어, 추워.”
남망기는 장난치지 말라고 나무라는 대신 이불채로 덥석 끌어안았다.
연화오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서 전연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위무선이 순찰하는 남망기를 잠도 안 자고 기다렸을 정도니, 남망기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남망기가 이불을 붙잡고 손을 들이밀자 위무선이 힘껏 반항했지만 실랑이를 하는 동안 점점 이불이 벗겨져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반신이 드러났다. 아까부터 춥다고 난리를 피우던 이유를 알만했다.
어깨가 드러나며 춥다고 불평하려던 입이 남망기가 턱을 잡아 돌리고 덮치는 바람에 막혀버렸다. 곧바로 혀가 들어와 끈덕지게 후벼파니 위무선은 추위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그의 목을 얼싸안았다.
남망기는 천천히 뒤로 누우며 매달려 오는 나신에 이불을 둘러 폭 감싸 안았다.
벌써 더운 열기가 차오르는 이불 속에서 두 사람의 몸은 서로를 먹어버릴 듯 엉키며 정신없이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한 쌍의 연인들이 뜨겁게 사랑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시각에, 또 다른 두 사람이 차디찬 겨울 바람 속에서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금광요는 벌을 받는 사람을 만나도, 말을 걸어도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어둠 속에 쌓인 눈 위에 한발 한발 발자국을 남겼다.
사당에 켜진 등롱의 빛이 불그스름하게 비추는 몸은 최초에 무릎을 꿇은 뒤 한 치도 움직인 적이 없었다.
“형님. 이러시는 게 저 때문입니까?”
남희신의 앞에 선 금광요가 물었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 짤막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방으로 돌아가거라.”
금광요는 말을 듣지 않고 남희신의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원망하듯 말했다.
“저 때문이라면 왜 저에게 벌을 주시지 않습니까? 제가 죄를 지었으니,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너는 몸이 성치 않으니까 내가 대신 받는 것뿐이다.”
“말도 안 됩니다. 저는... 저는 그런 건 싫습니다.”
“어째서?”
남희신이 그렇게 말하며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안광이 무거움에 금광요가 흠칫 몸을 떨었다.
“너는 나의 사람이니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아니면 내가 그 정도도 못 해 줄 남자라고 생각하는 거냐?”
남희신은 줄기차게 금광요를 바라보았고, 금광요 역시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도 눈길을 피하지 못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대화보다 그렇게 주고받는 눈빛 속에서 더 많은 말들이 오가는 것 같았다.
파리한 안색과 아물지 않은 얼굴의 상처를 응시하던 눈빛이 차츰 따스해졌다.
“네가 아직도 어머님을 생각하는 걸 알고 있다. 그럼 방으로 돌아가서 계속 생각하도록 해라. 나는 여기서 널 생각하마.”
이미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어버린 남희신은 내친 김에 손을 내밀어 고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도망치지 마라. 내가 함께 있을 테니.”
“형님...”
“자, 이제 돌아가거라. 여긴 다시 오지 말고.”
잠시 후 금광요는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 사당 밖으로 나갔다.
멀리서 그가 돌아보았을 때 남희신은 도로 눈을 감은 채로 머리카락과 옷자락만이 밤바람에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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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신이 울부짖는 금광요를 억지로 데려가 버린 후 위무선과 남망기는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남망기가 위무선의 어깨를 잡고 앉혀서 가부좌를 틀도록 했다.
“산 사람이 들어서 좋은 곡이 아니야. 영맥을 다스려.”
남망기도 단정하게 앉아 운기를 하기 시작했다.
위무선은 시키는 대로 운기하는 시늉은 했지만 아직도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 데면데면했다.
이윽고 참지 못하게 된 그가 물었다.
“남잠, 문령에 대답한 혼이 정말로 염방존의 어머니였어?”
“응.”
위무선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이 자꾸 같은 대답만 하던데. 어떻게 금광요의 어머니인걸 확신하지? 그리고 뭐라고 했길래 남희신이 말하기를 꺼린 걸까. -그리고 남희신이 알려주지 않았던 걸 남망기가 알려주려고 할까?
그래도 호기심이 큰지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남잠. 혼백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려주면 안 돼?”
남망기는 남희신이 금광요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를 알듯 말듯했다. 어차피 대답 자체는 별 것이 아니었기에 가까이 다가온 위무선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여 주었다.
위무선은 남망기의 다리 위에 벌렁 드러누운 다음 찬찬히 생각했다. 남희신은 수차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답은 한결같았다. 결국 문령에 응해온 것은 실낱같은 사념체에 불과했다는 얘기였다.
사태를 파악하게 된 위무선은 가슴이 시큰했다.
아무리 거침없는 위무선이라도 이때만큼은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그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남잠, 너도 내가 죽으면 내 혼백을 부를 거야?
얼굴이 따가워진 남망기가 내려다보니 위무선이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남망기의 하얗고 차가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눈빛을 본 위무선은 부질없는 의문은 사라지고 살아있는 그에 대한 애정이 용솟음쳤다.
“남잠, 너무너무 사랑해...”
남망기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거꾸로 누워 엇갈리는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결국 남망기는 맨정신으로도 취한 정신으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럴수록 위무선은 그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겨울이 깊어지는 동안, 금광요는 이따금씩 잠을 자며 미소를 지을 때가 있었다.
그것이 기쁘고도 사랑스러운 남희신은 잠든 얼굴에 떠오르는 보조개에 입을 맞추어 보곤 했다. 그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지금 잠이 든 금광요의 얼굴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비참한 모습이었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도 넘어서 심연으로 추락한 느낌이었다.
초췌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돌이키고 싶지 않은 스스로의 과거까지 떠올랐다.
남희신도 어릴 적에 가장 가까운 혈육의 죽음을 겪었다. 그의 양친은 평범하게 사랑할 수 있는 관계에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숙부가 계셨고,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가문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 전부가 외면하는 상황에서 단 한 명의 소중한 사람이 사라져버린다는 게 어떤 건지 남희신은 감히 상상도 해 볼 수 없었다. 그저 얼마만한 아픔이겠거니, 하고 얕게 가늠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남희신은 속살을 내보이며 무방비하게 잠든 육체를 가만가만 씻어 주었다.
얇은 철갑을 수없이 덧대어 만든 검은 깨끗하게 관리하기가 어려워, 한생에 입은 상처는 독이 오르기 쉬웠기에 약물에 담그는 건 이롭지 않았다. 그래서 남희신은 상처 하나하나를 일일이 닦아낸 후 약을 발라 주었다.
어느새 밤이 되어 하인이 들여놓은 음식상이 덩그러니 놓인 채 식어가고 있었다.
옴쭉달싹도 못하게 남희신의 품에 가두어진 금광요는 목이 쉬도록 울며 발버둥쳤다. 그러나 남희신은 금광요가 지쳐서 정신줄을 놓을 때까지 구속을 풀지 않았고, 그를 기절시키지도 않았다. 그는 금광요가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두었고, 마음껏 자신을 비난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마침내 기력이 바닥난 금광요의 목소리가 해명을 요구하며 애달프게 변해갔다.
“형님, 왜 그러셨는데요. 너무하세요.”
그러자 처음으로 입을 연 남희신이 말했다.
“아요,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님의 혼백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어.”
“그렇지만 현이 울렸잖아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이 때 남희신의 가슴 속에 조그마한 이기심이 끼어들었다고 그를 원망할 수는 없으리라.
“‘아요, 행복해라.’. 그리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금광요는 남희신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원망하고 싶었지만, 워낙 단단하게 안겨 있어 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
금광요가 남희신의 얕은 거짓말을 못 알아챌 리 없었다.
그렇지만 남희신의 팔과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영영 떠나가 버렸다. 그것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금광요는 맹시가 아직도 관 안에 존재한다고 믿으며 집착과 회한을 그 안에 고스란히 묻어두었다. 그것은 그에게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그 자리에 묶어버렸다. 그런데 그리 길지 않았던 금광요의 전 생애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지탱해주었던 동아줄이 지금, 완전히 끊어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슬퍼도 죽은 사람은 놓아주는 것이 세상의 순리였다. 그러나 그 한 명의 사람은 그냥 놓아버리라고 하기엔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남희신은 치료를 끝낸 뒤 한결 깨끗해진 몸에다 곱게 옷을 입혀주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침상을 내려와 쟁반에 담긴 음식을 탁자에 올린 다음 먹기 시작했다.
이런 난리를 겪은 후 태연하게 식사를 하는 남희신의 모습은 언뜻 비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남희신은 올곧게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이제 금광요에게 남은 것은 정말로 자신 뿐이라는 걸 남희신은 잘 알았다. 그러니 그는 이제부터 결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릴 수 없었다. 자신이 흔들리면 금광요도 같이 흔들린다. 그것을 알기에 그의 결심은 절대적이었다.
바깥에는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강징은 일부러 넓은 청당에 앉아서 문간에 들이치는 눈바람을 맞으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방 안에서 마시자니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조금 전, 운심부지처로 떠나는 마차를 배웅하고 났더니 겨우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지만 강징의 마음이 사건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가 술로써 마음을 달래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 요 며칠간의 일은 정말 재난과도 같았다.
아직도 강징의 귓전에는 계집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혼백을 완전히 떠나 보낸 맹시의 관을 봉한 다음 날 아침, 계집아이의 곡소리에 온 집안 사람들이 다 깨어났다.
전여후가 목을 매달고 죽어버린 것이었다. 그로 인해 충격을 받던 사람들 하나하나의 얼굴 같은 건 이젠 떠올리기도 싫었다.
강징이 바로 연화오의 주인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일처리는 할 수 없이 그에게 맡겨졌다. 다만 전여후의 시신을 본가로 인도할 때에는 남희신이 직접 운평성에 다녀왔다. 거기서 뒤끝이 어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닐 것 같았다.
겨우 잠잠해졌다 싶자 남희신이 정중하게 요청했다.
“강종주. 금광요가 운몽에서 물의를 일으켰지만, 처우는 저에게 맡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을 상하게 한 것은 세간의 죄다.
그리고 주술로 사람의 혼백을 묶어둔 것 또한 죄였다.
강징은 규율에 엄했으나 도저히 금광요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을 거다. 낳아 주고 품어 준 어머니의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이가 대체 누가 있을까.
사람이 다치고, 결국은 죽기까지 했으나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알 수 없었다.
강징은 답답한 속을 숨기며 그럼 그렇게 하시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남희신과 금광요는 맹시의 관을 실은 마차를 타고 떠났고, 그들이 걱정된 위무선과 남망기도 말을 타고 뒤를 따랐다.
그렇게 썰물처럼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니, 강징은 이런 저런 사건을 바로 목전에서 두고 치일 때보다 더욱 허전하고 심란해졌다.
술기운이 돌면서 강징은 지금까지 생각하기를 피해 왔던 여러 가지 일들이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과거 강징은 위무선이 금자헌과 남망기를 감싸다 집 안에 화를 불러들인 것을 원망했다.
그러나 금자헌은 강염리의 소중한 부군이 되었고, 남망기는 위무선의 둘도 없는 지기가 되었다.
거기다 남의 어머니의 관을 훔친 사내의 놓아버리지 못하는 사랑이며, 어머니를 놓아주지 못하는 금광요의 집착이며.
뭐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쉽게 놓아버리지도 못하는 강징에게는 이 어지러운 세상사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
“어휴, 추워.”
남망기가 정실에 들어서는 짧은 틈으로 찬바람이 밀려들어오자 침상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위무선이 투덜거렸다.
남망기는 추위도 못 느끼는지 우선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는 것이 항상 잠들기 전에 하는 운기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위무선은 이때까지 남망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냉큼 훼방을 놓으려 했지만 너무 추워서 침상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남잠, 택무군은 아직도 그러고 계셔?”
“응.”
“그러다 얼어 죽겠어.”
“안 죽어.”
위무선은 개, 추위, 배고픔, 혹은 길거리에서 돌아다녔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것은 뭐든 싫어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냉천이나 지음의 운기 등 냉기를 동반한 고행에 익숙한 남씨 형제들에게는 한겨울에 받는 벌도 대수롭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고소 남씨의 종주인 남희신은 자청해서 사당 앞에 꿇어 앉아 벌을 받고 있었다. 그것이 벌써 이틀째 밤으로 접어들었다.
남희신은 연화오에서 돌아오자마자 운심부지처에 맹시의 관을 안치하고 사당에 그녀의 위패를 모셨다.
본디 고소 남씨는 서열은 물론이며 귀천을 중시하여 그가 서자인 금광요와 도려를 맺은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종주의 도려인 금광요의 모친이라곤 해도 기녀였던 사람을 운심부지처의 사당에 들였다.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계인은 그 말을 듣고 못마땅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근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남희신의 종주로서의 결정을 존중했음인지, 금광요가 그의 도려라는 사실을 감안했던 건지 입을 다물었지만 그 외의 아랫사람들, 특히 나이 든 수사들 사이에서는 불만에 찬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수군거림이 감히 남희신의 귀에까지 닿는 일은 없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남희신이 얼마나 금광요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거듭 알게된 위무선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남희신은 연화오에서 빈틈없이 금광요를 지키는 한편, 그에 관계된 모든 일들을 손수 처리했다. 운심부지처로 돌아오자마자 맹시의 관을 안치하고, 사당에 위패를 올렸다. 그동안 그의 태도는 시종 단호하고 물흐르듯 거침이 없었다. 내내 그의 부드러운 모습만 보아 와서 남씨답게 융통성 없는 가주인 줄로만 알았던 위무선에게는 의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더불어 남희신이 전날부터 사당 앞에 꿇어앉어 있는데, 그도 금광요와 관련된 일 같았다. 이유는 남망기와 위무선조차도 겨우 짐작할 정도라, 문하생들은 슬슬 영문모를 그의 위엄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택무군, 왠지 멋있는 걸. 반할 것 같아.”
반쯤은 저를 놀리는 듯한 말에 남망기가 언뜻 반응했다. 그 역시 형장이 그토록 한 사람만을 위하는 모습이 생경했다.
“그만 하고 이리 와, 남잠. 금방 더워질 텐데, 너 바보야?”
평소라면 직접 가서 남망기에게 매달리고, 그 품에 안겨서 돌아오겠지만 움직이기 싫은지 계속 입으로만 나불거렸다.
반면 더워질 때 더워지더라도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일과를 엄수하는 것이 남망기의 고집스러운 습관이었다. 위무선이 뭐라 하든 직접 와서 방해하지 않으니 충분히 영기를 돌린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망기가 침상 위로 올라와도 위무선은 독차지한 이불을 둘둘 감은 채 장난스레 웃기만 했다. 어떻게든 해 보라는 듯 짓궂은 눈빛이었다.
곧 남망기가 손을 뻗어서 이불을 붙잡자 위무선이 몸을 흔들며 뒤로 물러났다.
“싫어, 추워.”
남망기는 장난치지 말라고 나무라는 대신 이불채로 덥석 끌어안았다.
연화오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서 전연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위무선이 순찰하는 남망기를 잠도 안 자고 기다렸을 정도니, 남망기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남망기가 이불을 붙잡고 손을 들이밀자 위무선이 힘껏 반항했지만 실랑이를 하는 동안 점점 이불이 벗겨져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반신이 드러났다. 아까부터 춥다고 난리를 피우던 이유를 알만했다.
어깨가 드러나며 춥다고 불평하려던 입이 남망기가 턱을 잡아 돌리고 덮치는 바람에 막혀버렸다. 곧바로 혀가 들어와 끈덕지게 후벼파니 위무선은 추위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그의 목을 얼싸안았다.
남망기는 천천히 뒤로 누우며 매달려 오는 나신에 이불을 둘러 폭 감싸 안았다.
벌써 더운 열기가 차오르는 이불 속에서 두 사람의 몸은 서로를 먹어버릴 듯 엉키며 정신없이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한 쌍의 연인들이 뜨겁게 사랑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시각에, 또 다른 두 사람이 차디찬 겨울 바람 속에서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금광요는 벌을 받는 사람을 만나도, 말을 걸어도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어둠 속에 쌓인 눈 위에 한발 한발 발자국을 남겼다.
사당에 켜진 등롱의 빛이 불그스름하게 비추는 몸은 최초에 무릎을 꿇은 뒤 한 치도 움직인 적이 없었다.
“형님. 이러시는 게 저 때문입니까?”
남희신의 앞에 선 금광요가 물었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 짤막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방으로 돌아가거라.”
금광요는 말을 듣지 않고 남희신의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원망하듯 말했다.
“저 때문이라면 왜 저에게 벌을 주시지 않습니까? 제가 죄를 지었으니,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너는 몸이 성치 않으니까 내가 대신 받는 것뿐이다.”
“말도 안 됩니다. 저는... 저는 그런 건 싫습니다.”
“어째서?”
남희신이 그렇게 말하며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안광이 무거움에 금광요가 흠칫 몸을 떨었다.
“너는 나의 사람이니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아니면 내가 그 정도도 못 해 줄 남자라고 생각하는 거냐?”
남희신은 줄기차게 금광요를 바라보았고, 금광요 역시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도 눈길을 피하지 못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대화보다 그렇게 주고받는 눈빛 속에서 더 많은 말들이 오가는 것 같았다.
파리한 안색과 아물지 않은 얼굴의 상처를 응시하던 눈빛이 차츰 따스해졌다.
“네가 아직도 어머님을 생각하는 걸 알고 있다. 그럼 방으로 돌아가서 계속 생각하도록 해라. 나는 여기서 널 생각하마.”
이미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어버린 남희신은 내친 김에 손을 내밀어 고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얼굴을 어루만졌다.
“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도망치지 마라. 내가 함께 있을 테니.”
“형님...”
“자, 이제 돌아가거라. 여긴 다시 오지 말고.”
잠시 후 금광요는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 사당 밖으로 나갔다.
멀리서 그가 돌아보았을 때 남희신은 도로 눈을 감은 채로 머리카락과 옷자락만이 밤바람에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희신광요 망기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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