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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7 00:55
1. 샹크스의 독백이: https://hygall.com/565174713
2. 크로커다일의 사정이:https://hygall.com/565319296
3. 쥬라클 미호크의 시야가: https://hygall.com/565517430
4. 버기의 속사정이: https://hygall.com/565670486
5. 기분이 나쁜 샹크스가: https://hygall.com/565801012
6. 크로커다일의 격노가 : https://hygall.com/565924523
7. 다스 보네스의 의문이: https://hygall.com/566063671
8. 버기의 두려움이: https://hygall.com/566209514
9. 샹크스의 욕망이: https://hygall.com/566394690
10. 크로커다일의 도취가: https://hygall.com/566492743
11. 벤 베크만의 경멸이: https://hygall.com/566586263
12. 버기의 우울이: https://hygall.com/566879057
13. 샹크스의 고통이: https://hygall.com/56707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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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날들은 제 인생에 별로 없었다. 신경을 거스르는 것들이 없어 편두통도 없고,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하며 도망쳐 다닐 필요도 없었다. 모래 안에서, 재 안에서, 자기 혐오 안에서 숨어 지내던 그 모든 나날들을 뒤로 한 채로 크로커다일은 천천한 발걸음을옮겼다. 머리를 괴롭히는 게 없으니 훨씬 몸이 가볍고 사근사근했다. 늘 욱신거리던 왼쪽 손목도 오늘만큼은 아프지 않았고. 가족이라 부르고 싶었던 것들은 사라졌으나 동료라고 부르고 싶었던 것들은 그대로 남았다. 모두가 제가 일궈낸 것들이었다, 모두가. 더욱이 운명의 여신이 제게 처음으로 휘파람을 불었으니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악마의 열매 복용자 중에서도 물에 가장 취약한 모래인간 주제에 흐르는 비조차도 달가울 만큼이나.

- 기분은 좀 어떤가?
- 기분?
- 그래. 요새 일하느라고 방 밖으로도 안 나오는 것 같더니. 사람답게 돌아다니는 건 근래가 처음이 아닌가.
 
옆에서 걷던 동업인이 제 쪽을 쳐다보며 되물었다. 기분이라니. 그가 칠무해에 임명된 시절부터 그를 꽤 오래 알았으나 그는 단 한 번도 제 기분에 관해 물어본 일이 없었다. 애초에 제 세계가 워낙 확고해 딱히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놈이니까.  

- 뭐, 바람도 상쾌하고 나쁘지 않군.
- ... 그래? 날씨가 꼭 비가 올 거 같은데. 자네는 비에 가장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아닌가.
- 뭐, 금세 돌아갈 거니까 상관없지.
 
입에 물은 시가의 잘은 불꽃이 갑자기 일어난 바람에 훅, 하는 소리를 내며 사그라들었다. 비가 많이 오려나. 그는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면 제 품 안의 작은 머리통을 생각했다. 작디 작은 머리통, 흐르는 땀, 가슴팍에 맞닿는 뜨거운 볼, 거칠다가도 제 품 안에서 안정적으로 변하는 숨소리. 그 모든 것들이 그를 아프지 않게 만들었다. 비가 오는 날 잠이 들면 날이면 아버지가 꿈에 나왔고 그의 가짜 형제들이 제게 일갈하던 것들이 귀를 괴롭혔다. 때로는 그것은 다른 것이 되어 자신에게 되묻고는 했었다 - 네가 그 '흰수염'의 아들이냐고. 어둠 속에서 다가와 목을 조르던 감촉이 생생하고 손을 잘라내던 감각이 선명해 그런 날이면 늘상 환상통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 작은 머리통과 함께라면 그런 일이 없었다고, 꿈을 꾸지 않고 겁을 내지 않는 달콤한 잠에 빠져들며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의 대부는 생각했다. 내일도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우습게도 작은 샤워나 소나기조차도 가장 겁내야 하는 능력을 가졌으면서 오히려 비오는 날을 기대하다니. 제 인생이란 늘 아이러니의 연속이었던 셈이었다. 

- ... 너무 마셨군.
- 그래, 그런 것 같아.
- 부축이 필요한가?
- 아니, 그 정돈 아니고. 

말이 사업상 만남이지 사실상 수금에 가까운 행동이었기에, 권유하는 고급 위스키를 몇 잔 들이켰더니 기분이 꽤 괜찮은 걸 넘어선 상태였다. 오늘의 자신은 깊게 따지지 않아도 위험한 상태였다고, 모래로 만든 권좌에 앉은 이 군벌은 자신을 되돌아보며 제 한계를 가늠했다. 홀로 가도 되는데도 굳이 쥬라클 미호크를 데리고 간 것도 같은 사유였으니까. 어린애도 아니고 - 이렇게 들떠서 혼자서 남의 소굴에 기어들어가는 건 아무리 자신이라도 위험하다는 걸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아니지, 그가 동행했기에 권하는 위스키를 몇 잔이나 들이킨 거니까 반대인가? 빨간머리를 이겼다는 도취감이 모래로 만들어진 의자를 자꾸만 흔들었다. 왕의 자리 모양으로 단단하게 쌓인 모래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그는 알았으나 내심 마음 한켠으로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다가오는 이 바람은 그저 간단한 바람이 아니니까. 진정해, 기억하라고 - 경계해, 크로커다일. 네 인생이 어땠는지 알잖아. 상대방이 강탈이나 다름없는 사업 계약서에 싸인하는 걸 지켜보며 크로커다일은 시가를 훅, 불어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심장이 빠르게 박동했다. 위스키가 어지간히도 독했던 모양이었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일어나며 그는 시가를 상대방의 계약서 위로 지져 불을 완전히 꺼버렸다. '아무렇지 않게' 보여야 했으니까.  

- 나는 일이 좀 있어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거 같은데. 자네는 바로 배로 가나?
- 아마 그렇겠지. 그럼 먼저 돌아가지. 
  
밤이 늦었는데도 걸어가는 길에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반짝이는 불빛들이 빠져나와 어두운 하늘을 비추고, 사막의 왕은 열린 가게를  향해 두어번 흘깃 시선을 주었다. 돌아가는 길에 선물이라도 하나 살 요량이었다. 어차피 연회를 열 생각이라면 생일자를 위한다는 핑계로 뭔가 구해다 줘도 되지 않을까, 덤처럼. 저답지 않다는 건 알아, 그러나 크로커다일은 매일 생각했다. '저다운 게 무엇인가'에 관하여. 사막에서 근거지를 잡고 버티며 그는 늘 저답지 않게 굴었다. 앞으로는 해적 주제에 같은 해적을 공격하고 견제함으로써 모두에게 존경받는 칠무해로서 움직이고, 뒤에서는 군벌의 왕으로 군림했다. 개와 왕이 한 곳에 있다면 그것은 '저다운' 것일까? 너는 고작 개새끼에 불과하지, 에드워드 뉴게이트가 너를 그저 버려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니? 저는 원래 개였으니 왕이 제 모습이 아닐 텐데 - 그렇다면 한 번쯤은 누군가를 위해서 다시 개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는 그 망할 광대에게 왕이었으며 위협이었고 군림하는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작은 머리통이 자신을 선택했으니 이제는 자신인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몇 번은 저답지 않게 굴었으니 몇 번은 저답게 굴어도 되는 거잖아. 우습지도 않지, 자꾸만 그 망할 빚쟁이한테 져주고도 사유까지 찾아다 붙이려고 들다니.

그러나 이 모래 황제는 자조하면서도 결국에 열린 가게 안으로 들어가 팔찌를 사고 만 터였다. 알알이 푸른 사파이어가 반짝여 영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그 망할 것을. 손에 든 작은 선물상자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작디 작은데 손 안에 들어차지 않는 것처럼. 손아귀에 누군가의 마음을 잡고 흔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이미 손아귀에 들어차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그런 거였다. 한 번은 약해져도 괜찮지 않나 -  이번에는 누군가가 옆에 있잖아. 혼자가 아니잖아, 크로커다일. 작은 박스에 달린 반짝이는 리본이 가로등을 받아 얕게 빛을 냈다. 마치 제 신세마냥 약하고 은은하게. 자신은 왕이자 개였으니까.

- 크로커다일... 경.

그러나 방심한 것은 금세 다가오는 법임을, 운명은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지적하기로 한 것 같았다. 언제 다가왔지? 누가 뒤에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들리는 것은 탄환 소리뿐이었다. 급격한 고통과 함께 손아귀에 들은 박스가 사정없이 구겨졌다. 제기랄, 해루석인가? 모래로 이루어진 왕인 만큼 총알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달라, 옆구리에서 피가 자꾸만 흘러나왔다. 제가 아무리 우습게 굴었다지만 이렇게 우습게 죽을 일인가? 그는 더 큰 부상에서도 살아남은 남자였다. 손목을 잘리고 목을 졸리고 사막에 파묻히고 칼에 찔리고 두드려 맞았어도 살아남았다. 온 몸에 가득한 망할 흉터들이 그의 강함과 생명력을 증명했던 것처럼. 그러나 그는 생명의 위기를 느꼈다 - 고작 이런 걸로 죽는다니. 그는 스스로가 한참이나 취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셈이었다. 우습게도 그는 얄랑한 모래 위에 앉아 있었으니까. 누가 그것을 쌓았는지는 명백했다. 

- 네 놈이 '에드워드 뉴게이트'의 아들이라는 소리가 있던데. 

제기랄, 망할, 또 그 놈의 아버지. 쓰러진 몸통을 발로 밟는 손길이 잔인하리만큼 거칠었다. 우욱, 목을 치고 올라오는 위산이 쓰고도 독한 만큼이나. 위스키를 너무 마셨던가, 시가를 과하게 피웠던가? 위스키에 약이라도 탔나? 뭐지, 저를 약하게 만든 게 뭘까. 어떻게 이 강한 남자를 이만큼이나 위험에 빠트렸을까. 그는 죽을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팔을 뻗어 상대의 생명력을 끌어안았다. 내가 이렇게 죽어줄 것 같아? 그는 또다시 살아남을 것이었다, 애초부터 타인의 생명력을 모래에 파묻어 버텨낸 남자였으므로. 아버지의 목숨을 팔아서라도. 미호크가 경고한 대로 어느새 내리기 시작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몸을 더 약하게 만들었다. 부상에 비, 몸이 늘어져도 한참이나 늘어졌다. 혼자 움직이는게 아니었나? 질질 끌리는 다리가 겨우 몸을 부두까지 끌어당겼다.

- 난 너만 있으면 돼, 나는 원피스고 사황이고 그 뭣도 필요 없어. 너만 나랑 같이 가 주면 된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해?

그리고 보고야 만 것이다 - 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과 입을 맞추는 그 장면을. 망할, 이것이었구나. 운명이 결국에는 제 편을 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였다. 저를 우습게 만들고 농락하고 죽이기 위해서였던 걸까. 어두운 시야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붉은 머리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저 녀석은 그런 놈이었다.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고 모두가 어떻게든 보호하고 싶어 안달을 내는 녀석. 간신히 버티고 있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시야가 깜빡이고 세상이 반쯤 돌아, 마치 손목을 잘리고 말았던 그날처럼 - , 제 세상이었다고 생각했던 것과 결국 절연하고 말았던 그날처럼. 

- 맙소사, 크로커?

그는 결국에 정신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 누가 다가오는지도 전혀 모르는 채로.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은 손아귀에 어떻게든 움켜쥐고 있었던 것, 피에 잔뜩 절은 작은 선물 상자. 그것이 피 때문인지 어느새 짙은 붉은 빛을 띄었다. 분명히 푸른 색이었는데, 제 마음과 같은 색처럼. 붉은 빛으로 반짝이는 상자가 그를 끝까지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본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면서까지. 오늘은 반드시 악몽을 꾸겠지. 자신이? 아니면 광대가? 딱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 그가 너무 어지럽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크로커다일 경은 무너진 제 모래 권좌 아래로 파묻혔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아 만든 왕의 자격 아래로, 그는 이제 자신의 생명력을 바쳐 스스로 빨려들었다. 참으로 저답지 않게도.   

-
하루에 하나씩 쓰는 걸 목표로 했는데 쉽지않네... 원작에서 풀린 건 거의 없지만 도플라밍고의 제안도 그렇고 사람 안 믿고 냉정하지만 정 주면 또 덜렁 믿어버리는 태도도 그렇고... 사람들이 대부분 예측하는 것처럼 크로커의 인생은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토리 산으로 가고 캐붕 나고 난리났네... 재밌게 봐주셔서 늘 ㅋㅁㅋㅁ 댓도 재밌게 보고 있어요!

샹버기 크로커다일버기 
 
2023.10.07 01: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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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센세를 보려고 안잔거였구나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14da]
2023.10.07 01: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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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봐버렷서.....
[Code: f7fe]
2023.10.07 01: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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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센세 나 센세 사랑하는거같아
[Code: 57fe]
2023.10.07 01: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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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떡해ㅠㅠㅠㅠ하필 보고야 만거야..........어떻게 다들 하나같이 안쓰럽나요 센세가 붕키 찌찌 다뜯는다ㅠㅠㅠㅠㅠ
[Code: cb95]
2023.10.07 08: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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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같살을 응원합니다...
[Code: 0ce5]
2023.10.07 10: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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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앗 크사장 정신차려요ㅠㅠ 샹크스도 아프고 버기는 울고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ㅠㅠㅠㅠㅠ
[Code: 5b97]
2023.10.07 19: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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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크사장ㅠㅠㅠㅠㅠㅠ 나 센세없으면 이제 못살아...
[Code: 1648]
2023.10.07 19: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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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센세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0c8]
2023.10.07 20: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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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진짜 사랑해 문장이 지나가는게 아쉽고 스크롤이 내려가는게 아쉬워서 보는게 힘든 내 맘을 알아줘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fe4]
2023.10.07 20: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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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은혜로운글 감사합니다
[Code: 75ef]
2023.10.08 01:1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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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사장 안돼...!!!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셋 다 힘든 밤이구만ㅜㅜㅠ
[Code: dd9f]
2023.10.10 18: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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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크사장….. ㅠㅠㅠㅠㅜㅜㅠㅠㅠㅠㅠㅜ아니 세가완삼이라지만 어떻게 모두가 행복할 길은 없는 건가요…
[Code: 3418]
2023.11.16 01: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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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편 보면 또 크루커다일편 된다고ㅠㅠ샌세 글 너무 잘 쓴다
[Code: fa79]
2023.11.19 03: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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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벽에 기립 박수침 센세는 내 인생의 빛과 소금이야ㅠㅠㅠㅠㅠ센세 이런 문학작품을 읽을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Code: c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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