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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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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할 세계에서 빨간 머리를 휘날리는 해적을 묻는다면 - 그것은 곧 자신을 뜻하리라는 것을 샹크스는 모르지 않았다. 바닷바람 때문에 잔뜩 푸석한 머리가 목을 훑고 지나쳤다. 빨간 머리야 흔하지만 자신처럼 새빨간 색은 몇 없기도 하고, 애초에 중요한 건 머리 색깔도 아니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을 굳이 붉은 머리라고 불렀다. 외팔잡이 붉은 머리. 마치 말하지 못할 것이라도 되는 마냥. 솔직하게 제 목에 도대체 얼마나 큰 현상금이 걸려 있는지는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이제는 한 쪽밖에 남지 않은 손이 굵지 않은 목을 매만졌다. 40억 얼마였더라. 기억도 정확하게 나지 않는 가물가물한 제 수배 포스터를 생각하면서 그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31억 8900만 베리. 그 숫자는 명하게 기억하면서, 웃기지도 않게. 내가 그 놈보다 9억이나 높아? 해군 놈들은 역시 멍청하지, 그 녀석을 잡고 윽박지르면 자신은 꼴랑 1베리에도 잡혀줄 텐데.

그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를 보고서 샹크스는 웃음을 멈출 길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조용히 살고 싶다며. 그래서 이스트블루에서 단 한 번도 빠져나오도 않았고, 그 동네에서 돌아다니는 나를 봐주지도 않았으면서. 사황씩이나 되셨네. 기왕 사황이 된 거 차라리 엄청난 양의 현상금을 붙이라고 말해볼까. 그 녀석은 크로커다일이나 미호크 뿐만이 아니라 이 붉은 머리도 휘어잡고 있으니까. 그래서 한 번은 그 미친 검사한테 솔직하게 말할 뻔하기도 했다. 기왕 바지사장으로 쓸 거면 현상금 좀 올리라고 하라고. 그 녀석은 정부의 허가를 받고 움직이는 녀석이니까, 그 정도 건의는 할 수 있을 법했으니까. 조용히 살고 싶어했던 게 생각나서 입을 쓰게 다물고 말긴 했지만. 

명예와 현상금은 비례하는 법이지만 현상금 때문에 멍청하게 위험한 노략질을 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면 우리의 목적은 얼추 일치하는 셈이 아니었나? 제 제안이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 어린 시기에도, 떨어져 있던 그 시기에도, 한참 나이를 먹은 지금도 그는 알 수 없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고민이기는 했다. 해적이 뭐라고. 동료애가 뭐라고. 어차피 갈 길이 달랐을 뿐인데. 그럼에도 그는 답이 없는 문제를 수없이 고민해댔다. 뭐가 문제였을까, 왜? 결론을 내려줄 사람은 이미 제 앞에 없는데도 샹크스는 매번 그 순간을 돌려보고 또 고민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정답을 알아야 할텐데. 눈 앞으로 보이는 파도가 마치 제 운명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자신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수없이 많았다. 붉은 머리, 외팔잡이 괴물. 샹크스, 이 드넓은 바다에서 가장 위험한 네 명의 해적 중 하나. 매력적인 방랑벽을 가진 남자, 자유를 연상하게 하는 남자. 그러나 그렇기에 제가 원하는 것에는 단 한 번의 확신도 줄 수 없었던 남자. 푸른 바다 위로 제 얼굴이 비쳤다.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 평생을 해적선을 타고 돌아다녔다. 배에서 태어난 녀석만큼은 아니겠지만 제가 인생을 바친 건 바다였던 셈인데. 우리가 배를 만들고 해적단을 꾸린다면 이름은 뭘로 해야 할까? 그 질문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답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붉은 머리와 푸른 머리." 있잖아, 내가 가진 건 열정이고 네가 가진 건 바다였는데. 그러나 우습게도 몇 번이고 마주쳤을 때는 생각하던 답이 나온 적이 없었다. 자신은 그저,  

-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제일 예뻐. 
- 거짓말. 이 코를 달고서도?
- 네 머리는 바다를 닮았고, 네 눈은 이 망망대해 위에서는 보기 힘든 녹색 땅을 생각나게 한단 말이야. 진짜야, 믿어줘. 
- ... 취했으면 지랄하지 말고 자, 샹크스.

그 날, 비오는 그 날 갑판 아래서 어른들 몰래 노략질한 맥주나 들이키며 시시덕대던 그 날을 기억하는지. 아니, 그 날 제가 몰래 입맞추던 걸 기억하는지, 얇은 옷자락 안으로 기어들어가던 제 손을 기억하는지 - 묻고 싶은건 수없이 많았음에도 내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 버기, 오래간만이네. 

안타깝게도 어차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바다는 들이킬수록 갈증을 내게 만드니까. 그래서 너를 바다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는데. 눈 앞의 긴 푸른 머리가 시선을 빼앗았다. 조금은 억울했다, 솔직하게 제 손을 놓았던 날을 기억하는지 묻고 싶었을 뿐인데. 저 멍청한 갈고리 손이 너를 왜 이용해먹는지 너도 알고 있지 않아? 바지사장으로 너를 세우고 너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는 걸 알기는 하는 걸까? 보물을 밝히는 것 같지만 저 애는 예전부터 순진해 빠졌었는데. 약간의 따듯함에 몸을 기대던 그의 버릇은 여전한데, 이제 옆에 있는 건 자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열정을 담은 빨간 머리는 다시금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전법을 바꿀 때가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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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내가 쓰고도 뭐라는지 모르겠음
걍 버기를 좋아하는 샹크스와 그에게 어느 정도 마음은 있지만 증오와 실망도 같이 있는 버기. 이 둘은 서로 첫사랑인데 버기에게 샹크스는 이뤄지지 않을 첫사랑의 상징이자 지나간 사람이라면, 샹크스에게 버기는 운명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첫사랑 같겠지. 이제 크로스길드가 생겼고 버기 옆에는 크로커다일이 있는데 - 그는 버기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고 위험에 빠트리면서 제 옆에 묶어두려고 하는 거고, 샹크스는 그걸 꼴사납게 두고 볼 생각은 없는 그런 거.. 방랑벽 있고 유쾌한 남자지만 샹크스도 사황이긴 하잖아. 

샹버기 약크로커다일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