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이명헌 딸내미 만나는게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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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경 au임

*이것저것 다 주의









이제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뀔 것이다.

 

의지와 관계없이 팔이 떨린다. 명헌은 팔뚝을 움켜쥐며 몸을 감쌌다.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며 도로를 질주하는 택시의 진동을 느꼈다. 여의도에 가까워질수록 명헌의 마음은 기묘하리만치 차분하게 가라 앉았다. 나는 같은 실수를 너무 오래 반복했다. 그러나 네 포기로 우리의 관계를 마무리 지을 순 없어. 그것만큼은 내가 용인하지 못해.

 

그러나 마지막 관문이 하나 남았다. 홀로 사는 인생이 아닌지라 명헌은 일을 저지르기 전 허락을 받아야했다. 누구에게? 그의 작은 동거인 이수현에게. 택시가 정지 신호에 걸려 멈춰섰다. 명헌의 얼굴 위로 붉은 신호등 불빛이 일렁인다. 명헌은 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 딸 이수현 전화 받았습니다.”

아빠가,”

 

, 명헌은 휴대 전화를 귀에서 떼고 입을 틀어 막았다.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명헌은 뒤집히려는 속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아빠가 고생시켜서 미안해. 우리 수현이 마음 편하게 농구시키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됐네.

 

왜 갑자기?”

... 그게. 아빠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거든. 근데 그 사람한테 아빠가 너무 미안한 짓을 했어.”

“...”

그래서 사과하려고.”

 

이미 늦긴 했지.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해봤자 하나도 설득력 없는데. 아빠 웃기지. 명헌은 자조적인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가만히 명헌의 말을 듣고 있던 수현이 대답했다.

 

그럼 더 열심히 사과해야지.”

?”

늦은 만큼.”

 

...

 

그래야지. 맞아. 그래야지... 생각에 잠긴 명헌은 입을 다물었다. 영원할 것 같던 정지 신호가 시리도록 푸른 빛으로 바뀌고, 택시가 출발했다. 퍼뜩 정신이 든 명헌은 아직도 끊어지지 않은 적막한 전화에 대고 본론을 이야기했다.

 

좀 늦을 것 같아. 오늘 현철 삼촌은 야근이니까, 동오 삼촌이나 정대만 오빠한테 연락해.”

.”

 

수현의 짧은 대답에, 명헌은 깨달았다. 수현이 돌아가는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평소 같으면 정대만 오빠라고? 느끼해요. 라며 능청스러운 한마디를 덧붙일 만도 한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수현은 그 뒤로 조용했다. 명헌이 슬슬 전화를 끊어야 하고 고민하던 찰나 수현이 말을 잇는다.

 

“...아빠.”

 

명헌을 부르는 수현의 목소리에서 망설임이 느껴진다. 할 말 있니, ? 본디 이수현은 망설이지 않는다. 좋으면 좋은대로, 싫으면 싫은대로. 호불호가 확실한 아이다. 그런데 왜일까. 뭘 얘기하고 싶길래 말끝을 흐릴까. 그래서 명헌은 참을성 있게 수현을 기다렸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그런 명헌의 태도에 화답하듯 수현이 진솔한 속내를 내뱉었다.

 

난 감독님도 우리 아빠라면 좋겠다.”

 

수현은 이 순간만큼은 소설 속 구절에 비유하길 멈추기로 했다. 이건 오직 이명헌의 선택이니까. 다른 이의 역사에 빗댈 수 없는 오직 이명헌만의 것. ...? 뭐라고? 예상치 못한 발언에 명헌에게서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따 봐.”

 

-

 

명헌은 끊어진 전화를 들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락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우성과의 농구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니면, 글쎄. 우성의 경기 영상을 보는 명헌을 지켜보며 수현이 뭔가를 느꼈을지도. 자식은 부모의 감정과 이어져 있다고 하지 않나. 수현이 판을 깔아줬다. 그러니 명헌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기사님.”

?”

라디오 볼륨 좀 높여주세요.”

 

전화 통화를 하는 명헌을 배려해 라디오 소리를 끈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디오에서 20분 남짓 남은 기자 회견에 대한 속보가 흘러나왔다.

 

- 각 구단에서도 정우성 선수의 은퇴 발표는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 기자 회견 이후 구단 관계자들의 입장 발표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너 진짜 제정신이야?”

 

제발 그러지 마라, 우성아.

 

대기실 의자에 앉은 우성은 손등을 덮은 반창고를 문질렀다. 괘씸한 후배를 쥐어팬 손등 관절이 욱신거렸다. 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성의 매니저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다시 생각해주면 안되겠냐? 오퍼 들어온거 다 걷어차고, 이 상황에 휴식을 하겠다니.”

.”

그럼 그 사진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그림밖에 더 돼?”

 

정우성 너 그런 개새끼 아니잖아! 매니저의 외침에 우성은 고개를 들었다. 권태로 가득찬 표정에 매니저는 숨을 들이켰다. 개새끼라고요? , 매니저 형이 날 잘못 알았나 보지. 내가 진짜 개새끼가 맞았다면 어쩔래요. 우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당함에 머리를 싸맨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그는 매니저의 어깨를 두드렸다.

 

형 곤란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근데 나 진짜 지쳤어. 번아웃 알죠? 그거 왔다고. 1년만 쉰다고요. 은퇴한다는 게 아니라, 휴식 좀 할게요. 휴식. , 혹시 언론에서 이상한 타이틀 걸었어요?”

 

우성은 매니저가 들고 있는 휴대전화 액정을 힐끔 들여다보았다.

 

정우성 은퇴 기자 회견? 새끼들 진짜 조회수에 환장했나. 영영 은퇴하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명헌이 형 놀랐겠다. 미안해서 어쩌지. 우성은 생각했다. , 명헌이 형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겨우 협박 정도로 농구 포기하는 게 아니라고.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고, 후배는 그간 누적된 지독한 피로감의 방아쇠를 당긴 것 뿐이라고. 그러나 그의 마음을 명헌에게 말할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성은 정말로 은퇴를 할 작정이었으니까.

 

우성아.”

 

시간 다 됐어요. 우성은 그의 팔을 붙잡는 매니저의 손을 가볍게 뿌리쳤다. 부러 모질게 말하긴 했으나, 매니저에게 지껄인 말들 중 진심도 있었다. 정우성에겐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휴식을 위해서 치러야 할 소정의 비용이 남았다. 우성이 문고리를 열고 대기실을 나서자, 폴리스 라인 밖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이 물밀 듯 그를 향해 달려왔다. 가드들이 우성을 기자 회견실로 이끌었다. 수많은 마이크와 녹음기가 난무한다. 인파에 치여가며 간신히 기자회견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십대의 검은 카메라들이 그를 잡아먹을 듯 플래시를 터트렸다. 우성은 부신 눈을 깜박이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기자 회견장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우성이 자리에 앉아 마이크를 조정하는 사이 진행자가 발언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이유는 정우성 선수에 대한 각종 억측이 난무하고 있어, 여러분 앞에 선수 측의 입장을 전달하고 거취를 표명하기 위함입니다. 정우성 선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우성은 진행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이크를 붙잡았다. 잠시 플래시가 멎나 싶더니, 그의 말이 끝나마자 하얀 빛무리가 연신 번쩍였다.

 

- 정우성 선수! 국내 리그 복귀를 포기하신다는 게 사실인가요? 매니지먼트와의 계약 위반 아닌가요?

- 선수님, 성폭력 논란에 대한 입장은 어떻게 되십니까? 혹시 사진 속 학생이 그 익명의 제보자인가요?

- 미국 활동기의 스캔들은 마무리 되었나요? 대규모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러나 몰려드는 질문에도 우성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시간이 흐르고 기자들의 질문이 잦아들고 나서야, 그는 다시 목소리를 냈다.

 

잠정 은퇴 맞습니다.”

 

회견장 구석에서 우성을 지켜보고 있던 매니저가 입을 쩍 벌렸다. 뭐야! 정우성! 기자들의 타자소리가 귓전을 아프게 울렸다. 카메라 뒤에 팔짱을 껴고 서있던 구단 관계자들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더니 저마다 어디론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좆같은 밥벌이. 우성의 폭탄 선언에 매니저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당장이라도 연단 위로 뛰어들어 철없는 담당 선수를 끌어내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한 번 입밖으로 내뱉은 말을 무를 순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우성의 발언은 빨간 헤드라인 속에 담겨 정우성 은퇴 확정, 뭐 이딴 제목으로 전파를 통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매니저는 눈을 질끈 감고 매니지먼트의 연락을 받기 위해 기자 회견장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저 쪽 복도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지고, 한쪽 팔에는 자켓을 들었다. 처음에는 지각한 기자인가 싶었다. 하지만 카메라도, 노트북도, 하다못해 수첩도 없다. 겉모습만 봐서는 평범한 회사원같은데. 벽에 손을 짚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그가 매니저에게 말했다.

 

저기요. 우성이, 아니. 정우성 선수 기자 회견실이 어디, 허억, 어딘가요?”

여긴데요. 혹시 기자십니까

아니요. 근데, 근데 저 좀 들여보내주세요.”

“...누구신데요?”

 

그러게 나는 누구일까? 당황한 명헌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홍보팀의 이대리, 수현이의 아빠, 대학 농구팀의 주전, 산왕공고 농구부의 주장, 정우성의 선배.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아니. 사랑했던 이명헌. 그는 절박하게 매니저에게 사정했다.

 

저는...”

 

 

 

 

 

-

 

회견장의 문이 열렸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이목이 쏠렸다. 단촐한 차림새의 불청객을 향해 달려간 가드들이 그를 다시 문 밖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우성은 그를 알아보고 반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비명을 지르듯 외친 한마디에 가드들은 불청객을 놔주었다.

 

...?

 

회견장에 난입한 남자는 연단으로 다가가 우성의 마이크를 뺏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돌아 입을 열었다.

 

이명헌입니다. 산왕공고 농구부의 주장이었고, 대학 리그에서 잠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명헌은 잠시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얼 빠진 우성이 그를 올려다 본다. 그의 입이 살짝 벌어져 있다. 한껏 어른스러운 척을 하지만, 아직은 어리숙함을 간직한 얼굴. 내가 알던 우성의 모습. 결심한 명헌은 주먹을 꽉 쥐고 다시 기자들이 터트리는 플래시를 마주보았다.

 

저는 정우성 선수와 고등학교 때부터 약 2년간 교제했습니다. 그 사진에 나온 사람이 바로 저예요.”

 

우성은 명헌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불길처럼 사방에서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를 막아주는 너른 등을. 이명헌이 기자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폭력이라든지 그런 거 아니었습니다.”

 

저희 우성이, 이제 마음고생 그만하게 해주십시오.

 

고백을 마친 명헌은 망설임 없이 허리를 깊게 굽혔다. 그의 셔츠 포켓에 꽂혀있던 사원증이 빠져나와 공중에 흔들린다. 그가 몸을 숙이자명헌에게 가려져 있던 우성이 드러난다. 무의식적으로 반 정도 일어난 정우성의 얼굴이 하얀 불길에 휩싸인다. 그의 눈은 꿈꾸는 듯 멍하고, 양 뺨은 상기되어 발그레하고, 벌어진 입술은 이명헌의 이름을 읊조리고 있다.

 

명헌은 한참 그렇게 몸을 수그리고 있었다. 만인에게 우성을 부탁하듯. 뒤늦게 정신이 돌아온 우성이 이제 일어나라며 더듬더듬 명헌을 일으켰다. 그의 손길에 천천히 몸을 일으킨 명헌이 우성의 손에 뭔가를 쥐여주었다. 버석거리는 익숙한 촉감에 우성은 숨이 멎을 것만 같다.

 

그는 손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한 번 봐주기 쿠폰 by 정우성]

 

못난 형이 건넨 사과를 받아든 우성에게 명헌이 말했다.

우성아.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


명헌이가 암튼 용기냄.
오늘도 봐줘서 고맙뿅~~~





우성명헌
태섭대만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