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이명헌 딸내미 만나는게 보고싶다.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한국배경 au임

*이것저것 다 주의

 






 

명헌과 동오는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선배라고? 너 저 사람 누군지 알아? 모르겠다삐. 의아해하는 둘을 지켜보던 대만이 저것은 신종 어그로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대만은 테이블을 쾅 짚고 일어나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너 뭐하는 새끼냐.”

잠깐. 대만아 진정해.”

 

동오의 만류에 대만이 대꾸했다. 뭔데. 너네도 모르는 거 보면 기자놈이나 유튜버아니야? 그런데 대만의 말을 들은 남자가 짐짓 서럽다는 듯 눈썹을 축 늘어트렸다.

 

... 선배 나 기억 못하는구나. 머리 길러서 그런가?”

머리? 너 산왕 후배야?”

. 동오 형. 두 살 어린 후배.”

 

명헌 선배가 3학년이었을 때 정우성씨가 2학년, 그리고 저는 신입생이었죠. 남자는 씩 웃었다. 그가 성큼 걸음을 내딛어 카페의 나무 데크 위로 올라온다. 동오가 대만의 옷을 끌어당겨 자리에 다시 앉혔다. 남자가 소속을 밝혔음에도, 셋은 눈에 서린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산왕의 후배라. 오케이. 그런데 굳이 정우성을 언급한다고? 동오와 명헌의 표정이 굳었다.

 

천연덕스럽게 남은 의자 하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남자가 말했다.

 

어떻게 저를 까먹어요, 명헌이형? 나 뉴스에 형 이름 나오는 거 보고 깜짝 놀랐는데.”

 

명헌은 눈썹을 찌뿌렸다. 말하는 본새로만 보면 분명 자신과 과거가 있는 듯 한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생각나는 얼굴이 없었다.

 

명헌이 멀뚱하니 앉아있자, 남자가 자답을 했다.

 

선배가 나 따먹었잖아.”

“...?”

 

대만이 입이 턱 벌어졌다. 혼란에 빠진 대만이 산왕 출신의 대학 동기 두 놈을 돌아본다. 그런데 이런. 뒤늦게 갈피가 잡힌 듯 동오는 입을 꾹 다물고 있고 명헌은 대만의 시선을 피한다. . 최동오. 이명헌. 저 사람이 지금 뭐라는거야. 말 좀 해봐.

 

미안, 미안. 약간의 과장법. 정확히는 내 자지가 아니라, 여기를 따먹었죠.”

 

남자가 자신의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첫키스요, 첫키스. 잊었던 기억과 함께 몰려오는 피로감에 명헌은 미간을 문질렀다.

 

그래. 너 기억난다. 많이 컸네?”

 

태연한 명헌의 말에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 많이 컸네, 라고요? 남자의 대꾸가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명헌은 그의 말을 잘랐다.

 

근데 뭐 어떡하라고. 이제와서 너랑 나랑 입 좀 맞댄 것 가지고 아웃팅이라도 시키게? 증거 없을텐데.”

에이. 선배랑 내가 키스한 건 우리 둘만의 추억으로 남겨야지. 대신 다른 증거를 가져왔어요.”

 

남자는 주눅 들지 않았다. 증거 없다고 누가 그래? 되려 당당하게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사진을 꺼내 테이블 위로 던졌다.

 

겨우 아웃팅이라면 좀 아쉽지. 명헌 선배 아웃팅에, 덤으로 정우성씨 스캔들까지.”

 

사진을 낚아챈 명헌의 눈이 커졌다. 그가 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이걸... 언제, 아니 어떻게. 손가락 끝으로 경쾌하게 테이블을 두드리던 남자가 말을 이었다.

 

진짜 명헌이 형... 다시 생각해도 난놈이야. 언론에서는 정우성보고 창놈이라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땐 아니거든. 저 받아주셨을 때 정우성이랑 계속 사귀고 계셨-”

 

자리 옮겨.”

 

입매를 굳힌 명헌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제서야 남자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옮긴 자리라고 해봤자 카페 안쪽의 테이블 석이었다. 이쯤이면 밖에 두 놈한테 안들리겠지. 힐끔, 창 밖을 쳐다보던 명헌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손에 쥔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늦은 밤, 기숙사 방 안의 두 사람. 줌을 한계까지 당겨 찍었는지 화질은 흐렸지만 그 중 한명의 얼굴만은 명확했다.

 

앳된 정우성의 옆모습. 그리고 다른 누군가. 각도상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명헌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게 자신이라는 걸.

 

그런데 사진 속 우성이 그의 멱살을 쥐고 있다. 명헌은 팔랑, 사진을 넘겼다. 인화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반질반질한 사진 속에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명헌의 셔츠를 틀어쥔 우성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고 자신에게 화를 낸다. 팔랑- 그러나 명헌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팔랑- 그게 마음에 안들었는지 벽을 내리치던 우성이...

 

...명헌에게 억지로 입을 맞춘다. 팔랑- 명헌은 우성의 가슴을 밀어내고, 밀어내고, 또 밀어내고. 팔랑- 그러나 우성은 물러나지 않는다. 팔랑- 오히려 명헌의 고개를 집요하게 따라가며 깊게 혀까지 넣어 명헌을 헤집는다. 우성의 거친 손길에 명헌의 셔츠가 뜯겨져 나간다. , 씨발. 하필 연사라서 이어붙이면 영상으로도 만들 수 있다. 용케도 이걸 찍었네.

 

카운터에서 커피를 받아들고 온 남자가 명헌의 앞자리에 앉았다. 명헌은 사진을 가지런히 탁탁, 쳐서 정리하곤 남자에게 돌려주었다.

 

나한테 왜 찾아온거야. 돈이라도 뜯어내려고? 그런거라면 번지수 잘못 찾은 것 같은데. 나 월급쟁이라 돈 없거든.”

... 선배한테 뜯어낼 게 돈뿐이라고 생각해요?”

 

남자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던 명헌은 눈을 깜박였다. 그럼 돈말고 뭐가 있어. 공인도 아닌 일개 회사원한테. 그러자 남자는 명헌을 비웃으며 손가락으로 명헌의 가슴을 툭 밀쳤다.

 

그 때는 입술만 받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도 받고 싶어서.”

“...?”

잘 생각해봐요. 이거 언론에 풀리면 정우성씨는 진짜 좆되는거야. 미국에서 유부녀랑 추문? 그건 미국에서의 일이니까 국내에서는 정우성씨 실력이 아쉬워서 넘어갈 수도 있지. 근데 이건 다르거든. 고등학교 때 일이잖아. 아직도 농구부가 버젓히 남아 있는 산왕공고에서 벌어졌던 일이잖아요.”

“...”

사진에는 정우성씨 얼굴만 나왔지만 글쎄, 내가 사진 팔아넘기면서 다른 사람이 이명헌이라고 얘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우성씨 아직 계약 안했죠. 이명헌씨한테는 딸내미가 있고. 또 산왕공고 후배들은 어떡할거야? 산왕 출신이 NBA 진출했다고 자부심에 가득 차 있는 애들인데.”

이 개새끼가...”

그리고 나는 알거든. 이명헌씨는요, 이거 뭐 이상한 거 아니다. 정우성이랑 이명헌이 서로 사랑하는, 푸흡. 그런 사이였다고 절대 인정 못할 거잖아?”

 

당신 지독하게 신중하잖아. 아니지, 달리 말하면 겁이 많은가? 그래서 그 때 당신이 게이인지 알아보려고, 정우성이 아니어도 가능한건지 궁금해서 나로 테스트 한거잖아. 사람 기분 더럽게. 그리고 있죠.

 

한참 쏘아붙이던 남자가 얼빠진 명헌의 뺨을 쓰다듬었다. 명헌은 소름이 돋는다.

 

나 번지수 제대로 찾았거든. 나 이거 당신한테만 들고 온거 아니다?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어딜 들렸게.”

 

맞춰봐-

 

명헌의 동공이 커졌다. 설마.

 

그래. 정우성! 우성씨한테 다녀왔어. 근데 정우성씨는 그냥 풀어버리래. 자기는 어차피 쉴 생각이었다고. 아 재미없어.”

“...걔가 그래?”

그래! 그래서 내가 홧김에 사진 팔아버리려다가 아량이란 걸 베풀어서 당신 찾아온거야. 따지고 보면 이거 다 당신 탓이거든.”

 

명헌이 형, 그 때 나한테 너무했어요. 알죠? 남자가 우는 척을 한다. 그 가증스러운 태도에 명헌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할 말이 없다. 진짜 잘못한 게 맞아서. 명헌의 손 안에서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컵이 우그러진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명헌의 어깨를 두드린 남자가 휴지에 전화번호를 휘갈긴다. 연락해요. 나 오래 안 기다려. 명헌의 어깨를 두드린 남자가 휘파람을 불며 카페를 나갔다. 밖에서 자리가 파하기를 기다리던 동오와 대만이 카페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미친. 저 새끼 뭐냐?”

명헌아. 괜찮니.”

...”

 

명헌은 눈을 질끈 감았다. 꽉 다문 그의 턱이 떨린다. 분노로 속이 탔다. 한참 욕설을 짓씹던 명헌이 궁금해죽겠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친구들에게 방금 전 상황을 한 줄 요약해주었다. 그러니까 말이지.

 

내가 가지고 놀았던 고등학교 후배가 정우성이 나한테 억지로 키스하는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자기랑 자달래.”

“...?”

 

동오와 대만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한박자 늦게, 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뭐라고??!”

 

 

 

 

 

 

뭐 저런 경우 없는 새끼가 다 있냐. 설마 응할 생각은 아니지? 우리가 도와줄게. ? 경찰 부르자고. 제발, 명헌아.

 

모르겠네.”

 

잘그락. 명헌의 손이 느리게 빨대를 저었다. 얼마나 오래 들고 있던 것인지 플라스틱 잔에 물방울이 맺혔다. 덕분에 종이로 된 컵홀더가 아주 흐물흐물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는데, 이젠 그저 황당하다. . 하하. 실소가 흘러나왔다. 전남친인지 후배인지 팀동료인지 아무튼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통 알 수 없는 정우성의 명예와, 근 몇 년간 애 키우랴 일 하랴 거미줄을 치고 살았던 자신의 몸뚱이를 두고 고민을 해야하는 이 상황이 존나게 어이없다. ! 씨발. 동오야, 대만아. 나 진짜 어떻게 해야하냐? ?

 

이 와중에 삐를 붙이냐. 하여튼 이명헌.”

 

대만이 고개를 저었다. 셋은 멍하니 찻길을 걸었다. 그 때, 도로가에 피어있는 민들레를 골똘히 쳐다보던 대만이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근데 정우성이 진짜 억지로 한거야?”

...?”

... 나는 닥칠게, 명헌아.”

아니, 상상이 안되서 그래. 걔 너라면 껌뻑 죽잖아. 근데 아무리 키스라지만 억지로? 물론 네가 그렇다면 그런거지만.”

. 다 내 업보다삐.”

 

정대만, 아니다. 너한테 있을 리가 없지. 있다면... 송태섭한테 혼날 일이고. 동오야. 너 담배있냐삐. 이게 담배없이는 할 수 없는 이야기거든삐. 명헌은 동오가 꺼내준 담배를 받아물었다. 불을 붙이고 몇 번 연기를 빨아삼키던 명헌이 동오의 등을 툭 쳤다. , 마일드한 최동오. 2미리가 뭐냐, 2미리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독한 담배가 필요했던 명헌이 동오의 연초를 불만스럽게 씹었다. 그러나 없는 것보다야 낫다. 한참 연기를 흘려보내던 명헌이 입을 열었다.

 

졸업식이 있고 이듬해. 3학년이 된 명헌은 주장이 되었다. 이명헌과 신현철, 정우성. 거기에 신현필이 가세한 산왕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들의 일상도 여전했다. 우성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줄기차게 쿠폰을 만들어왔고(이 대목에서 대만이 물었다. 쿠폰? 그게 뭔데? 그러자 동오가 대만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조용히 해. 아무튼 그런 게 있어. 효도쿠폰 같은거.) 명헌은 그것을 쓰지도 버리지도 않고 놔두었다. , 완전히 그대로는 아니다. 무슨 결심을 한건지 새학기 첫날부터 우성에겐 새로운 말버릇이 생겼다.

 

- . 좋아해요.

 

그리고 명헌은 그의 마음을 줄기차게 거절했다.

 

- 우성, 농구나 해라뿅.

- 좋아한다고요.

- 이번에도 낙제하면 벤치뿅.

- ...

 

우성은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명헌을 찾아갔다. 그는 명헌을 발견하기만 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백을 했다. 정우성을 잘 모르는 다른 농구부원들은 아, 그냥 우성이가 명헌 선배를 많이 좋아하나보다 했고 정우성을 잘 아는 그의 친구들은 ...이거 조졌네, 싶었다. 지난 학기 졸업한 농구부 선배와의 관계를 대강 눈치채고 있었기에, 그들은 지금 상황이 불안불안했다. 가볍다 못해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한 우성의 고백. 그건 명헌을 빡치게 할 뿐이다. 그걸 다 아는데, 딱 한 사람. 정우성만 몰랐다. . 오늘 명헌이놈 눈깔봤냐. 벚꽃이 다 지기 전에 정우성이 이명헌한테 한 대 맞는다에 만원 건다. 에이, 꼴랑 만원? 받고 체육관 한 달 청소까지.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때는 이미 벚꽃이 다 져버린 유월이었다. 그간 꿋꿋하게 고백을 무시하던 명헌에게도 참을성의 한계가 찾아왔다.

 

너 자꾸 왜 그러는데. 혹시 남자 좋아해?”

 

체육관으로 향하는 비탈길에서 명헌은 우성을 뒤돌아봤다. 명헌이형, 같이 가요- 외치며 명헌의 뒤를 쫒아오던 우성이 제자리에서 멈춰섰다. 선선한 바람이 분다.

 

그리고 우성은 최악의 대답을 했다.

 

아뇨. 그건 아닌데, 형이 좋아요.”

 

그게 말이 되니?

 

명헌은 허탈한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뭐가 문제인지 전혀 감을 못잡는 우성을 내버려두고 뒤돌아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그의 거친 걸음걸이에 어깨에 매달린 더플백이 흔들린다. 그대로 체육관으로 들어가려던 명헌은 다시 우성을 마주보았다.

 

정우성. 어떻게 남자가 좋은데 게이가 아니야.”

 

제법 싸늘한 말에 물러날 법도 한데, 우성은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30초나 지났을까.

 

그래요? 그럼 나 게이인가보지.”

 

. 이게 아닌데. 명헌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그의 속도 모르고 우성은 활짝 웃었다. . 저 이제 형 좋아한다고 해도 괜찮은거죠? 우성이 명헌을 향해 팔을 벌리고 애처럼 걸어온다. 명헌은 입술을 깨물면서 우성의 팔을 쳐냈다. 그리고 일말의 감정마저 지워낸 얼굴로 쏘아붙였다.

 

너 진짜 나한테 잔인하다.

 

명헌은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와르르. 살짝 열린 더플백의 입구에서 물통과 신발이 튀어나온다. 명헌은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손가락 사이로 실소가 흘러나온다.

 

우성은 구김이 없다. 섬세하고 예민한 명헌이 치열하게 되내이던 고민을 단숨에 결론내버리곤, 납득한다. , 그렇구나. 나는 남자도 되는구나! 그걸 보는 명헌은 속이 꼬였다. 쟤가 구김없는 애라고 해서 내가 정우성을 미워할 순 없는거고,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이 많다고 해서 대가리에 든 게 농구뿐인 정우성을 부러워하면 안되는 거고, 또 내가 선배를 향한 감정 앞에 떳떳하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솔직한 저 놈을 아니꼽게 바라보면 안되는데. 다 알면서도,

 

명헌은 그 순간 우성이 너무 미웠다.

 

“...나 진지한데. 장난하는거 아니예요.”

 

명헌의 웃음을 어떻게 받아들인건지, 우성은 갑자기 져지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가 단축번호 1번을 꾹 누른다. 이어진 우성의 말에 명헌은 피가 식었다.

 

, 아빠. ...간식 보내달라는거 아니고요. 저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요. 같은 농구부에, 명헌이 형이요. 아시죠? . 그냥 그렇다고요. 끊어요-”

 

-

 

-

 

-

 

“....”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우성이 명헌을 바라본다. 올곧은 눈동자. 그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명헌은 치가 떨리게 수치스러웠다. , 정우성의 순수한 사랑.

 

결국 명헌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홧김에 우성을 받아줬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봐.

 

그 뒤로 어땠더라. 솔직히 평소랑 똑같아서 기억에 거의 안 남았다. 달라진 거라곤 사람들이 없을 때 하는 가벼운 스킨십 정도. 그것마저도 입술을 꾹- 맞대는 버드 키스였다. 이럴거면 진작에 받아줄 걸 그랬네. 겨우 입술정도 훔쳐가 놓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하루종일 방방 뛰는 우성을 보며 명헌은 생각했다.

 

그런데 우성의 인기가 어디 갔겠는가. 명헌과 비밀연애를 시작한 후에도 우성은 지속적으로 여학생들에게 고백을 받았다. 매체도 다양하다. 쪽지, 편지, 초콜릿, 사탕, 그리고 학교 뒤편으로 불러내기.

 

어느 날 명헌은 교실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쓰레기장으로 갔다. 귀찮다뿅... 중얼거리며 쓰레기가 가득 담긴 통을 나르던 그는 익숙한 목소리에 발을 멈췄다. 우성 선배. 농구 경기에서 보고 반했어요. 혹시 저랑 사귀어 주실래요? . 고백뿅. 명헌은 모퉁이 뒤에 몸을 구기고 숨을 죽였다. 생각해보니 어이없네. 내가 왜 몸을 숨기는거지.

 

미안.”

“...이유라도 말해주세요. 혹시 여친 있으세요?”

아니...?”

그럼 왜요!”

 

저러다 여친 아니라 남친 있다는 소리까지 줄줄 늘어놓겠군, 싶어 명헌은 헛기침을 하며 쓰레기통을 높이 들고 척척 걸어나왔다. 그를 알아본 우성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지만 정작 명헌은 쓰레기통으로 눈을 가리고 있어 보이는게 없었다.

 

하던거 해라뿅.”

으악! 명헌이 형! ...아무튼 미안해요.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요.”

 

우성이 잔뜩 미안한 얼굴을 하고 명헌을 졸졸 따라왔다. 아아. 혀어엉. 미안해요. 근데 말하지 말람서요! 제가 잘 쳐낼게요. ? 형 화났어요? 사실 명헌은 뭐 그러려니 싶었다. 정우성이 하루이틀 잘생긴 것도 아니고. 거기다 비밀연애하자고 말한 것도 자신이었으니까. 그런데 우성은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던 건지, 가방을 뒤져 볼펜을 찾더니 노트에다가 뭘 사각사각 적어내려갔다.

 

. 여기요.

 

[한 번 봐주기 쿠폰 by 정우성]

 

급하게 만들어서 그런지 사족이 없다. 원래는 제 방으로 오세요, 농구공 필수 지참, 다음 주까지만 쓸 수 있음, 등등 말이 많이 붙어있는데 말이다. 명헌은 얘가 뭐 이런 걸 다 주나 싶었다. 봐주긴 뭘 봐줘. 나 진짜 괜찮다니까.

 

그리고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명헌의 앞에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후배가 나타났다. 정우성처럼 함부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정우성처럼 함부로 자신을 긍정하지 않는 후배가. 그 농구부 1학년은 말수가 많았지만 명헌 앞에만 서면 조용해졌다. 명헌은 그리 어렵지 않게 그 후배가 간직하고 있는 연심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기까지 얘기했을 때 명헌은 담배를 다 태웠다. 그는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방금까지만 해도 옆에 찰싹 붙어서 썰풀이를 경청하던 대만이 보이지 않는다. 의아해진 명헌은 뒤를 돌아보았다. 몇발자국 떨어진 곳에 양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제자리에 멈춰선 대만이 있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그가 간신히 명헌에게 물음을 건넸다.

설마 그 농구부 후배가, 저 새끼야?

 





**


그렇다 사실 명헌이의 유죄짓은 끝난게 아니었다
늦어서 미안하고
오늘도 봐줘서 땡큐뿅




우성명헌
태섭대만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