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이명헌 딸내미 만나는게 보고싶다.


 

1편 

2편

3편

4편
5편

 


*한국배경 au임

*이것저것 다 주의















🏀알콜스왑도WAP이다🏀 @thatsaswap__

아니 일반인이 이렇게 잘생길 수 있는거임?

엄마도?

(기사펌.jpg)

1,856 리트윗 983 인용한 트윗 1,346 좋아요

 

ㄴ 섭섭이너란감자 @potato_boy

@thatsaswap__ 님에게 보내는 답글

?

 

ㄴ 열린우성닫힘/메인트확인부탁드려요 @openedUuuuuclosed

@thatsaswap__ 님에게 보내는 답글

미쳤네 @dongdongurii 님 취향일 듯

 

ㄴ 한편성정우가디비졌다💀 @Hohhohoooh

@thatsaswap__ 님에게 보내는 답글

///히히히ㅣ발/// 미쳤네...
 

(모욕적인 콘텐츠를 포함할 수 있는 답글을 추가로 표기하기)

 

 

 

 

 

나를 위한 트렌드

======================================

정대만 주정

2,894 트윗

--------------------------------------

교육 * 실시간 트렌드

산왕공고

5,347 트윗

--------------------------------------

오지콤

1,613 트윗

--------------------------------------

명현 아니고

24,182 트윗

--------------------------------------

스포츠 * 실시간 트렌드

인터하이

1,605 트윗

--------------------------------------

저거 누구

4,352 트윗

--------------------------------------

이명헌

36,975 트윗

======================================
더 보기

======================================

 

 

 

 

 

 

 

상황은 빠르게 반전되었다.

 

“...”

 

명헌은 블라인드를 손가락으로 벌렸다. 틈 사이로 창 밖이 내려다 보인다. 그는 손목 시계를 매만지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퇴근 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명현이라고 알려졌던 정우성의 내연녀(혹은 내연남)가 사실은 농구 강호인 산왕공고의 구 주장, ‘이명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후. 채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명헌이 다니는 회사는 언론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회사 건물 앞에 검은 구름처럼 몰려 있는 기자들을 보고 명헌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를 보느라 덩달아 퇴근을 못하고 있는 명헌의 팀원들도 표정도 어두웠다.

 

띠리리-

 

명헌은 휴대폰을 뒤집어 이름을 확인했다.

부하직원이 친 사고(정확히는 부하직원의 구 동료가 친 사고였지만)를 수습하던 부장이 상황 파악겸 먼저 퇴근시킨 막내였다.

 

- 이대리님, 이거 미쳤는데요. 기자들이 도로까지 점거하고 있어요. 빠져나가는데만 한... 20분 걸렸나봐요. 보도윤리는 어디다 팔아먹은건지.

 

조심해서 들어가. 미안하다.”

 

명헌은 까칠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사무실에서 한참 다른 부서와 연락을 주고 받던 부장이 나와 소리쳤다. 다들 이만 퇴근해! 막내가 어떻게든 탈출한 걸 보니, 집에 갈 수는 있을 것 같다. 걸어서 나갈 생각하지 말고 차 없는 사람은 서로서로 빌려타. . 그래 그거. 카풀인지 뭔지. 아무튼 빨리 가! 내일도 출근해야할 거 아냐! 급히 가방을 들고 일어나는 사원들이 명헌에게 주먹을 쥐어보였다. 대리님, 파이팅. 저희 먼저 갈게요.

 

이대리는 나 좀 보자.”

 

명헌을 향해 부장이 손짓했다. 지옥에 기어들어가는 심정으로, 명헌은 부장실의 문을 닫았다.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 사이로, 길거리의 소음이 울려퍼졌다. 의자에 앉아 펜을 까딱거리던 부장은 피곤한 목소리로 명헌을 불렀다.

 

이대리. 스포츠 용품을 홍보해야지, 우리 마케팅 팀을 홍보하면 어떡하나.”

“...”

창설 이래로... 이렇게까지 우리 팀이 관심을 받아본 건 처음이다.”

 

아우, 골 아파. 한참 미간을 문지르던 부장은 잔뜩 긴장한 채로 등 뒤로 손을 모으고 서있는 명헌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죄 지은거 있냐. 이명헌이.”

“...아닙니다.”

아니면 어깨 펴. 밖에 저 놈들은... 우리 선에서 처리할 테니까.”

 

부장은 힐끔 창 밖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일부턴 정상 영업할 수 있게 해야지. 법무팀이랑 조율하고 있어. 그 쪽 부장도 야근 확정이고만. 하하.

 

예전에 같은 팀이었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속히 해결해.”

 

? 또 이러면 곤란하다고. 정우성한테 광고라도 따올거 아니면, 사적인 일 회사로 끌고 오지 마. 기본 아닌가. 명헌은 고개만 주억거렸다. 기자들 돌아가고 나면 이대리도 퇴근해. 아니면 오늘은 수면실에서 자던가. 부장실 밖으로 나온 명헌은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몰랐다. 그는 비척이며 자리로 갔다. 정신적 피로에 찌든 몸을 의자에 뉘이니 벌써 노을이 드리우고 있었다. 이제 잠시 후면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리라. 그 때 퍼뜩, 명헌은 수현이를 떠올렸다.

 

이수현.

 

지금 명헌이 앉아있는 사람없는 사무실처럼, 사람없는 빈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딸내미가. , 젠장. 명헌은 달달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번호를 눌렀다. 010 - ...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다. 그러나 명헌의 기억 속에는 남아있는 11자리 숫자가 액정 위에서 빛나고 있다. 초록색 전화버튼을 누를까 말까 망설이던 명헌은 책상의 회색 스크린에 머리를 기대고 중얼거렸다.

 

미친놈...”

 

뒤로가기, 뒤로가기. 명헌은 고개를 흔들며 주소록에서 현철을 찾았다.

 

뚜르르-

 

. 퇴근했냐. .. 수현이 좀. 애가 집에 혼자라서. .”

 

부탁 좀 한다.

 

현철은 두서없는 명헌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선뜻 도와주겠다 나섰다. 그게 뭐라고 안심이 되는지. 명헌은 전화를 끊고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부장실에도 불이 꺼지고, 정말 홀로 남은 명헌은 마우스를 휘적였다. 화면보호기가 꺼지고 푸른 화면이 나왔다. 잠도 오지 않았고, 지금 회사 밖으로 나가면 기자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것과 진배없었고. 할 수 있는 게 업무밖에 없네.

 

명헌은 컴퓨터를 들여다보았다. 짜고 친 듯 잠잠한 사내 메신저의 몇 안되는 알람을 확인한 명헌은 홀린 듯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메인에 기사들이 떠 있다. 속보. 긴급 속보. 온통 씨뻘건 헤드라인이다.

 

딸칵.

 

[내연아닌 내연’...네티즌들 충격’]

[‘내연향한 도 넘은 신상털이, ‘회사 앞 인산인해’]

[정우성, ‘일반인 향한 공격 멈춰달라입장 발표]

 

딸칵. 딸칵. 딸칵.

 

“...”

 

명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복도로 나가 벽에 붙 듯이 걸었다. 사람도 없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등 뒤가 따끔거리고, 오물이 붙은 듯 걸음은 질척했다. 그는 화장실 문을 온몸으로 밀고 들어가, 변기 위에 무너졌다. 우욱, ... 먹은 게 없어 시큼한 위액만 질질 흘러나왔다. 하얀 도자기에 고인 물 안으로 덩어리진 타액이 떨어져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곧 수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소 탁해진 변기물 위에 찝찔한 눈물 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구토를 하면 눈물이 나온다. 생리적인 눈물이. 그러니 이건 생리 현상일 뿐이다. 수면이 어룽질때마다 명헌의 얼굴도 덩달아 일그러졌다가, 멀쩡해지기를 반복했다. 명헌은 한참 차가운 타일 바닥에 앉아 생각했다. 정말 그럴까?

 

난 아직도 나를 모르네.

 

 

 

 

 

현철은 셔츠를 정돈하며 단풍나무 아파트 702동 쪽으로 걸어갔다. 명헌이 녀석. 정신 없어 보이던데. 하긴 아무리 명헌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건 어려울 법했다. 다행히 집 주소까진 안털렸나. 현철은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조용하다. 사람도 없고. 해가 지고 있다. 다행히 여름이라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각임에도 따듯했다. 혹시 수현이 혼자 추워하고 있을까 자켓을 챙겨온 현철은 어깨를 으쓱했다.

 

명헌은 집에 가서 애를 보라고 했지만 현철은 알았다, 수현이는 집이 아니라 놀이터에 있을 거라고. 이유는 대강 짐작이 되었지만 현철이 왈가왈부할 종류는 아니었다. 그래서 현철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수현을 찾으러 놀이터에 간 현철은 의외의 인물을 발견했다.

 

? 우성이 너 뭐냐?”

, 안녕하세요. 말하자면 좀 긴데요. 하하.”

 

우성과 수현은 나란히 한자리씩 그네를 차지했다. 한껏 다리를 접은 우성은 초록색에 앉아 앞뒤로 그네를 흔들고 있었고, 수현은 그 옆 주황색 그네에 앉아 책을 낭독하고 있다. 그의 다리가 공중에서 달랑달랑 흔들린다.

 


 

우성의 대답대로, 둘이 여기 이러고 앉아 있게 된 경위을 설명하려면 긴 말이 필요했다.

 

할 짓 더럽게 없는 네티즌들이 기어코 정대만의 혀 꼬인 말을 해독해버린 후, 우성은 에이전시의 연락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일어나 티비를 보다가 상황을 파악한 우성은 침울하게 매니저의 연락을 받았다. 근데 그의 첫마디가 아주 뜻 밖이었다.

 

- 우성아! 다행이다!

 

?”

 

듣고 보니 우성을 찾는 기자들이 죄 펜트하우스로 가버린 모양이었다. 어쩐지. 그 난리가 났는데 아파트가 조용하더라. ...그래요? 뭐 두고 봐야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도움이 되는 충동구매도 있네. 다들 라방에 나온 아파트가 설마 우성의 집일 거라곤 상상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정우성이라면 아마 커다란 펜트하우스에 살겠지- 라는 대중과 언론의 편견이 우성의 급발진에 패배하는 순간이었다.

 

곤란한 말투로 한참 사후 처리에 대해 이야기하던 매니저는 잠시 주차장에서 만나자는 말을 했다. 밑에 잠깐 내려와. 너 그래도 당분간 농구 교실이고 뭐고, 마트도 제대로 못 갈텐데. 먹을거나 주고 갈게. 혹시 몰라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주차장에 내려온 우성은 매니저와 극비리에 접선했다. 매니저는 간만에 보는 우성의 얼굴이 많이 상한 걸 보고 혀를 차다가, 비닐봉지 한 가득 음식 재료와 밀키트들... 뭐 그런 걸 건넸다.

 

너 이정돈 스스로 해먹을 수 있지?”

아 내가 애에요? 잠깐만. 물병 하나 굴러들어갔다.”

 

구시렁거리던 우성은 트렁크 안으로 몸을 숙였다. 아슬아슬하게 끼워져 있던 500ml짜리 패트병 하나가 비닐에서 탈출해 좌석 아래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우성이 낑낑거리며 패트병을 꺼내는 동안, 매니저의 발치로 농구공 하나가 굴러왔다.

 

데구르르.

 

. 혹시 동네 주민인가, 싶어 우성은 트렁크에 몸을 처박은 채로 숨을 죽였다. 모래에 머리를 숨긴 타조 꼴이 된 우성을 보고 고개를 젓던 매니저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불청객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가. 엄마 아빠는 어딨니?”

 

아가? 애기인가. 우성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들려오는 시니컬한 목소리.

 

저희 아빠는 회사고, 엄마는 없어요.”

 

...수현이잖아!! 우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몸부림을 치며 트렁크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190의 몸뚱이는 비좁은 좌석 틈에 껴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성이 차체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매니저가 수현의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 아빠 성함이나 전화번호 알아?”

아아아악! 수현아아! 이 시간에 왠일이야?”

 

우성은 식은땀을 흘리며 수현과 매니저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는 애야?”

.... 아는 애에요. 농구 교실에서 친해진.”

신기하네. 같은 아파트에 살고.”

 

뜨끔.

 

아니요, 수현이는 저 반대편 아파트. 먼저 들어가요. 저는 수현이랑 좀 놀다 들어갈게요.”

. 기자들 조심해라?”

아무렴요.”

 

매니저는 멀어지는 둘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도란도란 오가는 말들이 귀에 들어온다. 감독님, 여기. 애기가 우성에게 농구공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걸 다시 돌려주는 우성. 오늘은 농구 안해. 이만 회사로 복귀하려던 우성의 매니저가 멈칫했다. 오늘은? 뭐야. 둘이 자주 이러고 놀았어? 그러다 매니저는 별 일 아니겠거니, 하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 농구할 수도 있지. 우성이가.

 

끼익.

 

수현과 우성은 나란히 그네에 걸터앉았다. 어린이들이 노는 놀이터라 우성은 다리를 한껏 접고 불편하게 몸을 끼워넣었다. 반면 수현은 쇼파에 앉은 것 마냥 편해보았다.

 

왜 오늘은 농구 안해요?”

쿠폰 놓고 왔어.”

“...그렇구나.”

왜 집에 안 들어가고 앉아 있어?”

오늘 아빠 늦을 것 같아서요.”

그렇군...”

 

우성은 허벅지를 문질렀다. 당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우성이 일부러 대화거리를 끄집어 냈겠으나 오늘 그는 도저히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명헌이 아직도 회사라고? 지금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겼는데?

 

우성은 동그란 수현의 정수리를 내려다 보았다. 웃기는 그림이다. 짙어지는 노을을 따라 점차 길어지는 두 그림자. 190의 농구선수, 그 절반보다 조금 더 큰 초등학생. 그들 앞에 농구선수가 가져온 비닐봉지와 초등학생이 가져온 책가방이 놓여 있다.

 

그 때 수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가방을 뒤졌다. 그 안에서 한뼘이나 될까한 책을 꺼내온 수현은 다시 그네에 올라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언뜻 봐도 낡아보이는 외형에, 우성은 괜히 말을 붙였다.

 

그거 되게 오래돼 보인다.”

아빠 거라서요.”

“...”

 

우성은 본인의 입을 찰싹 때렸다. 삭아서 덜렁거리는 표지. 그 밑으로 삼중당 문고라는 출판사명이 적혀져 있다. 삼중당 문고라함은, 70년대를 대표했던 출판사이자 고등학교 때 명헌이 안그래도 비좁은 산왕공고의 기숙사 방에 놔두었던 전집의 이름이었다. 물론 정우성은 후자로만 알았지 전자에 대해서는 몰랐다. 제목이 뭐야?

 

메밀꽃 필 무렵.”

 

읽어드릴까요. 수현이 물었다. 메밀꽃? 우성은 고개를 기울였다. 매일 책을 바꿔 들고 다니던 명헌의 옆에 붙어 있었으나 본 적 없는 제목이다. 그래, . 할 것도 없는데 잘 됐지. 우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현이 입을 열었다.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나지막한 낭독을 듣던 우성이 혼잣말을 했다. 다시 생각해도 너 진짜 아빠 닮았다. 그래요? 진짜요? 종이를 넘기던 수현의 손이 멈췄다. 고개를 책 속의 깨알같은 글씨에 고정하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우성은 그가 지금 무슨 표정인지 알 것만 같았다.

 

너 또 웃고 있지.”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미친거 아냐? 우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필 수현이 우성의 시비를 받아친답시고 마저 읽는 구절이라는 게 저 모양이다. 우성은 이거 계속 읽혀도 되나...? 싶었지만 지금 독서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포기했다. 독서를 마저하던 수현이 흘러가듯 말했다.

 

아빠도 농구 잘하고, 수현이도 농구를 잘하고. 아빠도 책을 읽고, 수현이도 책을 읽고.”

 

우성은 잠깐 눈을 깜박이다가, 검붉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가슴이 답답한데 왜인지 알 수 없었다. 얘는 자기랑 아빠가 닮았다는 게 그렇게 좋을까? 이번 한번만은 우성은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현아. 누군가와 닮았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네가 즐거워 하는 거야. 너는 농구가 즐겁니? 책 읽는 건 즐거워?

 

애초에 대답이 돌아오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수현은 우성의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 침묵했다. 그리고 한참만에 수현은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감독님은요? 농구가 즐거웠어요?”

 

우성도 말문이 막혔다. 그러게. 그런 질문을 하는 정작 어땠을까? 그는 노을이 물러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놀이터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리저리 생각하던 그가 대답했다.

 

즐거웠을 수도 있었지.”

 

It could have been fun. 완벽한 번역투 문장이다. 애가 듣기에 어려울까봐 일부러 한 번 번역까지 해줬는데도 수현은 우성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됐다. 책이나 마저 읽자. 함께 우두커니 놀이터를 바라보던 둘은 동시에 자세를 바로 잡았다. 크흠.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데, 현철이 도착한 것이다.

 

저 멀리서 커다란 그림자가 성큼성큼 걸어오는데, 우성은 드디어 그의 등기부등본을 입수한 미친 기자가 그를 찾아온 줄 알았다. 그네에 앉은 채로 얼어버린 우성은 절대 헷갈릴 수 없는 현철의 두상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수현이 읽고 있던 책을 본 현철의 던진 말이라는 게 아주 황당했다.

 

꼬맹이. 너 이미지 관리하냐?”

 

이미지 관리? 영문을 모르는 우성이 수현이를 돌아봤다. 그런데 수현이 그의 시선을 피한다. 척 봐도 뭔가 찔리는 모양. 그러자 현철이 부연 설명을 했다.

 

얘 평소에는 이런 거 절대 안읽어.”

그럼 수현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뭔데요?”

 

그러자 현철이가 수현의 가방을 달랑 들어서 그 안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아 삼촌! 수현이 얼굴을 찌뿌렸지만, 현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궁금하면 가서 읽어보시던가. 우성은 엉겁결에 현철이 던진 책을 받아들었다. 입을 뾰로통하게 내미는 수현에게 현철이 손을 뻗었다.

 

가자. 너무 늦었다.”

어디 가는데요, ?”

어디긴 어디야. ... 아니 수현이네 집이지.”

.”

걔가 부탁한거야. 그러니까 아쉬워하지 마라.”

 

현철이 자연스럽게 수현의 손을 잡았다. 그의 등 뒤로 수현의 알록달록한 책가방이 덜렁 메였다. 멀어지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성은 괜히 손에 들린 책을 만지작거렸다. 밤이 되자 풀벌레가 울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702404호에 불이 들어와있다. 혹시 발코니 너머로 수현이 손이라도 흔들어줄까 했지만 한참 기다려도 베란다 문이 열릴 생각을 않자, 우성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매니저가 챙겨준 식재료를 냉장고에 채운 우성은 서재로 갔다. 우성의 서재에는 책이 그리 많지 않았다. 명헌의 서재는 어떨까. 아까 수현이 읽고 있던 것 같은 고전 문학 전집이 꽂혀 있을까. 고등학교 때도 명헌은 문학이 좋아서 책을 읽었고, 그래서 성적을 잘 받았다. 우성은 영어회화책들로 가득한 자신의 서재를 착잡하게 바라보다가, 의자에 풀썩 앉았다.

 

광염소나타.

 

뭐 이런 제목이 다 있담. 궁시렁거리던 우성은 광염소나타라는 책을 반쯤 읽다가... 독서를 포기했다. 우성은 눈가를 문지르며 주인공이 시체를 난도질하는 장면을 머리에서 지워내려 노력했다. 미쳤냐고, 이명헌! 애한테 뭐 이런 걸 읽혀! 손에 들린 광염소나타, 책장에 꽂힌 ‘Hello부터 시작하는 영어회화 500을 번갈아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다르다니까. 이왕 새로운 책을 받은 김에 책장이나 정리하자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책을 가지런히 정리하던 그는, 책장 안쪽에 떨어져 있는 작은 공책을 발견했다.

 

...이거.”

 

우성은 공책 위에 그 새 내려앉은 먼지를 털었다. 그는 꼬질꼬질한 공책을 애틋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잊고 있었는데. 이명헌의 영어 공부를 위해 만들었던 단어장이 그의 손에 다시 돌아왔다. 책등을 보니 거뭇한 손때가 묻어 있다. 우성은 검지로 그 위를 덧그렸다. 공책 위에 a부터 z까지 인덱스 스티커가 달려 있다. 그런데 그 중 한 B로 시작하는 단어를 모아놓은 챕터에만 유독 손때가 진했다. 왜지. 여기만 자주 펴봤나.

 

우성은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그는 종이를 넘겼다. 가장 위에, bias라는 단어가 보인다.

 

bias. 편견, 성향, 편향. 그는 그 단어를 소리내어 읽었다. 그 밑에 예문도 한 줄 적혀 있다. 우성의 눈동자가 예문을 읽는다.

 

Your bias can always change.






*




이제 이명헌 입장도 들어봐야지..
오늘도 봐줘서 땡큐




우성명헌
태섭대만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