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이명헌 딸내미 만나는게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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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경 au임

*이것저것 다 주의












작은 방이 내 방, 큰 방이 아빠 방, 그리고 여기는 서재.”

 

수현은 우성에게 집안 투어를 시켜주었다. 이상하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우성의 손을 잡고. 수현은 서재의 문을 열고 손짓으로 안을 가리켰다. 구경하고 계세요. ? 저는 준비물 싸야해서. 준비물이라고? 내일도 학교 가야죠.

 

수현은 우성을 세워두고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구경할 거리를 툭 던지고 쿨하게 일을 보러가는 모습이 뭐랄까... 아이를 키즈 카페에 풀어놓고 쇼핑을 하러가는 부모님같은 포스였다. 이거 뭐,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모르겠네. 우성은 왜인지 모를 쪽팔림에 작게 미소를 머금고 서재로 들어섰다.

 

거실과는 다소 다른 공기가 그를 감싼다. 오래된 책들이 발산하는 야릇한 종이 냄새, 그리고 한참 곱씹어야 알아차릴 수 있는 희미한 담배 향기- 아이와 어른의 분위기가 한데 뒤섞인 채 존재하는 곳. 그게 바로 이명헌의 서재라는 기묘하게 색정적인 공간이었다. 달칵. 우성은 서재의 불을 켜고, 본격적으로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인테리어가 깔끔하다. 한쪽 벽면 가득 책이 꽂혀져 있고, 반대쪽에는 책상이 놓여 있다. 그런데 문 옆에 세워진 코트 걸이에 검은색 자켓 하나가 걸려 있었다. 우성은 뒤를 돌아 혹시나 수현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했다. 다행히 수현의 방문 사이로 서랍을 여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물을 챙기는 모양이지.

 

안심한 우성은 자켓의 한 쪽 팔을 조심스레 쓸어보았다. 그리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짙어진 담배 냄새. 그는 잘 다려진 소매를 잡아올려 코를 박았다. 자켓에 배여있는 매캐한 향이 우성의 코에 스며든다. 그 때, 방에서 한창 책가방을 싸던 수현이 소리쳤다.

 

감독님, 제 책은 만지지 마세요.”

, ?”

책장 밑에서 두 번째 칸이요.”

 

 

화들짝 놀란 우성은 자켓에서 고개를 떼었다. 혹시 구김이라도 남았을까 다급하게 자켓을 손으로 쓸어내린 그는 책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진열된 책들의 제목을 읽어보았다.

 

[국제무역론 개정판]

[스포츠 시장, 나는 이렇게 본다]

[서툴지만 행복한 한부모 육아]

 

국제무역론? 스포츠 시장? 으엑. 재미없어. 툴툴거리던 우성의 눈에 초록색 육아서적이 들어왔다. 우성은 뒷목을 긁적였다. 그는 책등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오톨도톨한 꽃천을 문질렀다. 그런데 묻어나는 게 하나도 없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먼지는 없는데 손때는 묻어있다.

 

아직도 책을 좋아하나 보네.

 

그렇게 생각하며 우성은 제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수현이 말한 책장 칸을 확인했다. 책등에 적힌 제목을 발견한 순간, 우성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휘청. 그는 바닥을 짚고 간신히 다시 허리를 일으켰다.

 

반칙쟁이 이명헌.

 

이건 파울이지. 우성의 손이 빛바랜 책등에 닿았다. . 그의 손가락이 책등 위로 빼꼼히 튀어나온 책갈피를 차례로 스친다. 얇은 종이가 좌우로 살랑거렸다. 형형색색의 아동 소설 사이에 자리한 그것은, 바로 산왕 시절 명헌의 방 책장에 꽂혀있던 전집이었다. 그런데 책의 배열뿐만 아니라 거기에 꽂혀 있는 책갈피, 그러니까 우성의 쿠폰까지 그대로다.

 

개 중 몇권의 책갈피가 뽑혀 있는걸 보니 저기서 수현이 쿠폰을 가져다 썼구나 알 수 있었다. 한참 생각에 잠긴 눈으로 책갈피를 쓸어보는 우성의 곁으로 수현이 걸어왔다.

 

만지지 말라니까요.”

책 말고, 책갈피만 만졌는데?”

.”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수현은 할 말이 없었다. 그는 팔짱을 껴고 우성의 옆에 섰다. 그리고 방금까지 우성이 만지던 책을 바라보며 골똘히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고심했다.

 

우성은 수현이 편하게 책을 고를 수 있게 자리를 비켜줬다. 그는 책상을 구경하기로 했다. 책이야 읽어봤자 머리만 아프다. 그리고 이 집주인의 영향으로 우성은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물건이 그리 많지 않았다. 테스크탑과 키보드, 그리고 한쪽에 자리한 서류들.

 

우성은 업무에 관련된 서류들이 가지런히 꽂힌 서류철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알아볼 수 있는 말은 몇없었다. 분명 한글인데 못 알아듣겠네. 우성은 쩝, 입맛을 다시며 서류들을 정리했다. 그 때, 우성의 눈에 서류철 옆에 줄지어 서있는 씨디들이 들어왔다.

 

수현아, 이게 뭐야?”

읽어보세요.”

 

좀 알려주면 뭐가 덧나나. 우성은 볼멘소리를 하며 네모난 씨디케이스를 집어들었다. 무지개빛 씨디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케이스 위에 글씨가 써져 있었다.

 

# 1992 Interhigh

 

이게 뭐야.

 

우성은 이명헌의 서체로 적힌 글씨 위를 손으로 문질렀다. 그새 책을 고른 수현이 슬쩍 우성이가 든 씨디를 보며 말했다.

 

감독님 경기 영상이요.”

“...”

 

그는 말없이 다른 씨디들도 모두 집어들었다. 그리고 하나씩 넘기며 글씨를 읽었다.

 

# 1993 Houston univ.

# 1994 NCCA tournament

# 1995 NBA summer league

# 1995 J’s interview

.

.

.

 

J.

 

정우성의 J. 우성은 기억을 더듬었다. 1995년의 내가 무슨 인터뷰를 했더라. , 맞다. NBA 신인들이 그들의 기량을 선보이는 NBA 여름 리그 이후, 한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따갔다. 유튜브에도 올라오지 않은 영상인데, 이걸 어떻게 구했을까.

 

달칵. 우성은 씨디를 돌려놓으려다, 손을 멈추었다. 씨디가 들어있던 통의 구석에 작은 테이프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테이프 위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그냥 공테이프인가. 앞뒤로 테이프를 돌려보던 그는 혹시나 싶어 수현을 불렀다.

 

궁금하세요?”

내가 봐도 되는거야?”

 

그 말에 서재 밖으로 사라졌던 수현은 캠코더를 들고 돌아왔다.

 

이리 줘 봐요.”

 

수현이 테이프를 가져가더니, 캠코더의 덮개를 열고 테이프를 꽂았다. 그가 전원을 꾹 누른다. 잠시 후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저 책 읽는 동안, 그거 보세요. 아빠한텐 비밀.”

진짜?”

 

우성은 냉큼 수현의 허락을 받아들였다. 그는 책을 들고 거실로 나가는 수현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캠코더를 만지작거리던 우성은 수현이 든 책에 쿠폰이 꽂혀있는 걸 보고, 괜히 한번 말을 걸어보았다.

 

무슨 책이야?”

사랑방 손님과...아버지요.”

근데 수현아. 거기 꽂혀있는 책갈피. 그거 감독님건데.”

알아요.”

 

어디 볼까. 쇼파에 털썩 앉은 수현이 책을 열고 쿠폰을 꺼내들었다.

 

우성이랑 같이 밥먹기 쿠폰. 바이 정우성. 참고사항. 소세지 반찬 우성이 하나 먹여주기.”

“.... 하하하.”

 

우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 쪽팔려. 내가 저런 것도 썼구나. 우성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감독님이 소세지를 좀 좋아해. 하지만 수현은 짜게 식은 표정으로 우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심. 황당. 두 단어가 수현의 양 볼에 떠올랐다.

 

수현은 명헌과 책을 읽을 때처럼 쇼파의 한쪽을 비워두었지만, 둘의 습관을 잘 모르는 우성은 부엌으로 가서 식탁 의자를 꺼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현이 다시 엉덩이를 움직여 쇼파의 중간을 차지했다. 그가 책장을 넘기며 입술을 달싹인다.

 

나는 금년 일곱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이수현이구요...우리 집 식구라고는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우리 아버지와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수현의 낭독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우성은 테이프에 저장된 영상 목록에 들어갔다. 영상은 단 한 개뿐이었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손바닥 반만한 구형 캠코더의 화면을 가득 채운 건 바로 정대만의 얼굴이었다. ? 우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데 대만의 얼굴이 어려보인다.

 

- , 삑삑이 너도 찍어!

- 싫다삡.

 

흠칫. 우성은 몸을 굳혔다. 카메라가 세 사람의 얼굴을 비춘다. 대만, 동오, 그리고 명헌을. 셋이 앉아있는 곳은 어떤 강의실이었다. 대학 시절 영상이구나. 동오는 티셔츠를, 대만은 과잠을 입었다. 그리고 명헌은... 회색 후드티. 우성은 20대의 명헌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꾸만 대만이 캠코더를 들이밀자, 명헌은 짜증을 내며 후드티를 뒤집어썼다. 모자 아래로 빠져나온 앞머리가 흔들린다.

 

- 명헌아. 대만이가 저렇게 얘기하는데 한 번만 해줘. 너 우성이랑 전화도 거의 못하잖아. 이거 보내주면 우성이가 얼마나 좋아하겠어.

- ...

 

동오의 설득에, 결국 착잡하게 한숨을 쉬던 명헌이 캠코더를 쳐다보았다. 옆에서 대만이 배경설명을 했다. 안녕! , 지금 우리는요. 미국에 간 내 남자친구를 위한 비디오를 제작중입니다! 태섭아, 하이! 옆에서 대만이 부산스럽게 손을 흔들거나 말거나, 가만히 렌즈를 바라보던 명헌이 한참만에 입을 뗀다.

 

- 우성아.

 

명헌은 피곤한 듯 눈을 문질렀다. 옆에서 동오와 대만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 지금 며칠 밤을 샌거냐? 삼일이었나? . 그렇다더라. 과제가 많아서. 눈을 깜박이던 명헌이 말을 이었다.

 

- 별 건 아니고... 대만이가 태섭이한테 일상 비디오를 찍어 보낼거라고 해서, 혹시 너한테도 할 말 있으면 하래삡.

 

그러더니 명헌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고른다.

 

- 잘 지내니.

 

, 쟤 방금 삡 안붙인거 맞지? 대만이 동오에게 귓속말을 한다. 진득하게 망설이던 명헌이 한마디를 툭 던진다.

 

- 미안했고, 많이 보고 싶...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눈치없이 끼어든 대만이 명헌이의 팔을 툭 쳤다.

 

- , 이명헌 뭐야? 뭔데 설레냐?

- 대만아. 명헌이 말 아직 안끝났잖아. 그리고 너 이명헌한테 설렌다느니, 그런 말하면 또 송태섭한테 전화 온다고오...

- 괜찮아, 괜찮아! 우린 그냥 룸메이트인데?

- 그게 문제라는거야...

 

-...나 이거 안보내야겠다삡. , . 끄라고.

 

캠코더의 전원을 누르려는 명헌과, 그에게서 캠코더를 지키려는 대만이 사투를 벌였다.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결국 바닥에 떨어진 캠코더가 강의실 책상다리를 비추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명헌과 대만의 실랑이. 내가 안한다고 했잖아 삡!!! 아 어쩌라고 이명헌-!

 

“....”

 

영상이 끝난 줄도 모르고 검은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던 우성이 캠코더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언제 이런걸 찍은거야. 얼이 빠진 그가 허공을 응시한다. 그는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마른세수를 했다.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로, 우성은 웃음을 터트렸다.

 

... 이 형 오늘 파울이 잦네.

 

그 때, 복도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났다. 7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혹시 이명헌인가 싶어 놀라 수현이를 보는데, 왠일로 당황한 표정의 수현이 캠코더를 손가락질했다.

 

, 저거!”

 

맞다. 이거 본 거 비밀인데. 우성은 머리가 새하얘졌다. 설상가상으로 뚜껑이 잘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수현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외쳤다. 패스! 그 말에 우성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캠코더를 농구공 던지듯 수현에게 보냈다. 그걸 받아든 수현이 빠르게 커버를 열어 테이프를 분리한다. 식탁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도로 캠코더를 우성에게 던진 수현이 테이프를 들고 서재로 뛰어들어갔다. 복도를 울리는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우성은 캠코더를 코트 걸이에 걸린 자신의 져지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테이프를 책상 위에 원위치한 수현이 다시 쇼파에 앉아 책을 들자마자,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띠디디디, 띠리리-

 

명헌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문간으로 들어섰다. 요즘 잦은 야근으로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오늘도 너무 늦었네.

 

수현아, 아빠왔다.”

 

수현에게 인사를 건네며 신발을 벗던 명헌은, 수현의 운동화 옆에 놓인 한쌍의 농구화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놀라서 고개를 드니, 그의 앞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명헌의 떨리는 눈동자를 응시하던 우성이 말했다.

 

“...오셨어요.”

 

 

 

어색한 인사 후, 수현이를 먼저 재운 명헌은 배란다로 나갔다. 아까부터 명헌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함부로 집에 정우성을 들인 수현에게도, 수현이 들어오란답시고 발을 들인 정우성에게도 별로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정우성은 항상 이랬다. 그는 예고없이 선을 넘었다. 그게 예전엔 치가 떨리게 싫었는데, 이젠 잘 모르겠다. 그런 명헌을 따라 우성이 베란다로 나오며 문을 닫았다.

 

서늘한 밤바람에 물결치는 빨래들이 비누 냄새를 흩날리고, 커튼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노란 조명이 둘 사이를 날카롭게 갈랐다. 빛 줄기를 사이에 둔 우성과 명헌은 각자 그림자 속에 자리를 잡았다. 명헌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다가, 그만 두었다. 그 동안 우성은 희미한 빛에 의존해 명헌이 얼굴을 쳐다보았다. 명헌은 우성의 시선을 느꼈지만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바람이 잦아들고 찾아온 정적. 그것을 깨듯 명헌이 질문을 던졌다.

 

너 농구 안할거라며?”

 

그게 무슨, . 우성은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발랑까진 후배새끼 하나를 떠올렸다. 제가 농구를 하던 말던, 무슨 상관이에요? 라고 미운 대답을 하려던, 우성의 머릿 속에 불현 듯 명헌의 책상 한구석을 차지한 씨디와 테이프가 떠올랐다. 결국 우성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명헌의 표정은 점점 더 굳었다.

 

그 쪽에서 협박했다고 하던데. 사진 풀어서 너 학폭 터트릴거라고, 성희롱으로.”

그리고 형 아웃팅도 시킨다고 했죠.”

아웃팅? ...설마 그것때문에 이래?”

협박받은 거 맞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새끼한테 돈 한 푼 줄 생각이 없어서요.”

 

명헌은 단호한 우성의 말에 한숨을 푹 쉬더니 낮게 쏘아붙였다.

 

너한테는 농구가 그렇게 가벼워? 협박 따위에 포기할만큼?”

아뇨. 농구가 가벼운 게 아니라, 사랑이 무거운거죠.”

 

우성의 나지막한 대답에 명헌은 말문이 턱 막혔다.

 

사랑?

 

그런 말을 하기엔 늦었다고, 명헌은 생각했다.

 

우성아 십년이야, 설득력 없어.”

 

하지만 우성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십 년 전이라면 기어코 입 밖으로 꺼냈을 말들을 속으로 삼켰다. 형은 아직도 내가 솔직한 게 싫어요? 내 솔직함이 형을 아프게 하나요? 그러다 문득 우성이가 궁금해졌다.

 

근데 형은 어떻게 알았어요? 그 새끼가 저 협박한거.”

 

그러나 명헌은 대답이 없었다.

 

“...형한테도 찾아갔구나? 그 새끼가 형한테는 뭐라고 했는데요?”

그냥 뭐, 돈이나 달라던데. 너한테 못받은 돈, 나한테 뜯어가겠다고.”

 

그런 말을 하며 명헌은 뒷걸음질을 했다. 한 발자국, 더 짙은 어둠 속으로. 그 때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우성이 움직였다. 그러자 커튼 사이로 일렁거리던 빛이 그의 옆모습을 선명히 비춘다. 우성의 눈동자에 불티가 튄다. 그는 거기서 한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 명헌과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우성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한뼘이나 될까한 둘 사이에 숨소리만 오갔다. 조명을 등진 우성이 속삭였다. 이제야 형을 알겠어요. 그의 목소리에 명헌은 온몸의 털이 쭈뼛서는 것만 같았다.

 

그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성은 생각했다. 십년? 나는 꼬박 십년이나 걸려서야 이명헌을 알았네. 잊지 못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어. 내가 형을 생각할 때, 형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어. 그의 속을 모르는 명헌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우성은 명헌의 얼굴 위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제 정우성은 마냥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애가 아니다.

 

“...”

 

입술이 닿기 직전, 그는 고개를 뒤로 물렸다. 그러자 노란 불빛이 우성의 얼굴에 또 잠깐 와닿았다. 그런데 우성이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있다. 그 미소를 맞닥트린 명헌은, 자기가 잘못 보았나 싶었다. 조심스럽게 다가올 땐 언제고, 우성은 성큼 걸어가 베란다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며 말했다.

 

 

협박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 말이 묘하게 자신에게 선을 긋는 것 같아서, 명헌은 속이 쓰렸다.

 

 

 

 


**

이명헌 어쩌냐
정우성한테 우성이 영상 모으던거 다 들켰다

오늘도 봐줘서 고맙뿅
 


우성명헌
태섭대만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