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이명헌 딸내미 만나는게 보고싶다.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9편
10편
11편

12편

 

*한국배경 au임

*이것저것 다 주의









다음 날. 아침 댓바람부터 정우성의 이름이 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스포츠면? 아니. 이번에는 사회면이다. 사진 몇장의 파장이 얼마나 큰지 원래 인터넷에 관심이 없었고, 우성의 귀국과 동시에 그나마 있던 관심마저 끊고 살던 이명헌마저 짧은 출근길에 모든 행간을 파악했을 정도였다.

 

아빠. 나 앞자리.”

안돼.”

감독님은 태워주던데.”

 

? 누구...? ? 삐뇽?

 

수현을 뒷자리로 밀어넣던 명헌은 말을 더듬었다. 감독님이라고? 언제 우리 애가 정우성 차를 탔어? 그 날인가? 우리 집에 왔던 날? 순식간에 표정이 복잡해진 명헌을 보고 수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늘상 평온해보이는 아버지를 당황시키는 일은 유쾌하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 명헌의 뒤통수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싸. 한 건 했으. 책가방을 내려놓고 안전벨트를 잡아당기며, 수현은 쐐기를 박았다.

 

하하. 아빠 말 꼬였다.”

“...숙제는 다 했니.”

. 맞다.”

 

수현은 입을 합, 다물고 가방을 열었다. 꼬질꼬질한 스케치북과 필통을 꺼낸 수현은 연필을 들었다. 가족 그리기를 완성해가야 하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수현은 색연필을 들고 스케치북 위를 사각거리기 시작했다. 아빠랑, ...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한참 이명헌의 눈을 묘사하던 수현은 고개를 들고 묵묵히 운전중인 명헌을 불렀다. 근데 아빠.

 

보통 내가 숙제를 빠트리면.”

.”

아빠가 챙겨주잖아?”

“....”

어제 바빴어?”

이수현. 니 숙제는 니가 챙겨야지.”

, 내가 언제 나 대신 숙제해달래? 더블체크를 놓치셨다-라는거지요.”

“...거의 다 와간다. 선생님한테 혼나지 말고.”

네에.”

 

수현은 다시 중얼거리며 이명헌을 색칠하기 시작했다. 명헌은 입안을 깨물었다. 어제 바빴냐고? 아무렴, 바빴다. 아직도 엉덩이 사이가 불편하다. 혹시라도 바디워시를 훔쳐다 쓴 걸 수현에게 들킬까봐 멘톨 냄새가 진동하는 샴푸로 온몸을 닦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옷에는 페브리즈를 뿌렸다. 명헌은 뒷목을 벅벅 긁다가, 라디오를 틀었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1라디오. 저는 아나운서...

 

잡생각을 떨쳐내는 데엔 라디오만한 것이 없다. 명헌은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오늘의 날씨, 주변 도로 사정 등을 늘어놓던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해주기 시작했다.

 

- 지난 새벽, 최근 잦은 스캔들로 이목을 모았던 스포츠 스타 J모씨의 사진이 공개되어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본 방송사에서 단독으로 확보한 사진에는 J씨가 동급생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시도하는 장면이 담겨 있으며, 일각에서는 위계에 의한 강제적...

 

끼익.

 

명헌의 차가 갑작스럽게 멈춰섰다. 검은색 색연필이 허공을 날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 덕분에 앞좌석에 이마를 부딪힌 수현이 머리를 문질렀다.

 

아야.”

“.... 안 다쳤니?”

멀쩡한데?”

 

헛도는 손으로 라디오를 끈 명헌이 뒤를 돌아 수현의 이마를 살폈다. 그는 수현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다행히 약간 빨갛게 쓸렸을 뿐이다. 명헌은 한숨을 쉬며 수현의 머리를 도닥였다. 미안. 놀랐지. 수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매트 위를 굴러다니는 색연필을 주워다 필통에 넣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 수현이 문을 열고 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다녀오겠습니다!”

벌써 다 왔...”

 

다 온지도 모르고 있었다. 가방을 멘 수현이 실내화 가방을 앞뒤로 흔들며 친구들 사이에 섞여 정문을 통과한다. 그러나 수현이 완전히 학교 안으로 모습을 감추고 난 이후로도 명헌의 차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호시절은 갔다.

 

사진이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의 논란은 애들 장난 수준이었나 싶을 정도로 정우성을 비난하는 수위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내가 정우성 쎄한거 알아봤다니까? 고등학생 때부터 저랬을 정도면 미국에서도 뭐, 알 만하지. 그런데 미국에서 귀국한 전 NBA 선수의 이름이 언론을 도배하는 동안 이명헌이라는 세 글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개인 SNS에서는 산왕공고 시절 이명헌의 영상이 복원되어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고등학교 운동부 답지 않은 훈훈한 외모로 컬트적인 인기를 끈 게 다였다. 그러니 인터넷 세상에서 명헌은 그냥 이명헌이 아니라 산왕공고의 이명헌으로 존재했다. 따라서 그 산왕공고에서 찍힌 정우성의 사진이 인터넷에 풀리는 동안 아무도 이명헌을 언급하지 않은 건 이상한 일이었다.

 

일련의 흐름을 지켜보며 명헌은 직감적으로 정우성과 그 후배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오갔음을 눈치챘다. 정우성은 대체 그 후배에게 이명헌을 철저하게 보호해달라는 딜을 걸기 위해 어떤 댓가를 치러야 했을까. 대체 정우성이 무슨 짓을 한 걸까.

 

마음은 한없이 복잡해져갔으나 딸린 입이 있으니 돈벌이를 내팽겨칠 순 없었다. 아득바득 회사에 출근한 명헌은 아침부터 밀려드는 업무를 간신히 처리했다. 업무 속도는 평소와 같았지만 어딘가 얼빠져 보이는 명헌에게 부장은 담배나 펴고 오라며 그를 사무실 밖으로 내쫒았다.

 

부장으로선 명헌이 바보가 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추측했을 것이다. 텔레비전, 인터넷 기사, 라디오할 것없이 모든 매체에 전 NBA 선수 J씨가 등장하고 있으니.

 

잠시 휴식을 가지게 된 명헌은 회사 건물 벽에 기대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잊어본 적 없으나 그렇다고 걸어 본 적도 없는 번호가 띄워진 화면 위를 배회한다. 결심한 듯 통화 버튼을 누른 명헌은 초조하게 연기를 머금으며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수화음이 울린다. 그러나 정우성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

 

. 진짜.”

 

명헌은 짜증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그는 눈가를 문질렀다. 일부러 무시하는 건가. 몇 번이고 다시 전화를 걸어봐도 우성은 기어코 명헌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명헌은 전원이 꺼져있어... 라는 멘트를 듣고 나서야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명헌은 그 후로도 우성과의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우성과의 소통 창구라곤 십년전에 외워놓았던 개인 전화번호와 수현의 농구교실 뿐. 퇴근 후 명헌은 농구교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당분간 우성이 감독일을 쉴 것이고, 이건 기사가 터지기 전부터 미리 논의된 사항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별 수 없이 명헌은 일상을 살았다. 그가 업무를 처리하고, 수현을 우성이 없는 농구교실에 데려다주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나날을.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언론은 잠잠해지기는커녕 더 뜨겁게 타올랐다. 마치 모두들 정우성의 추락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대리님 오늘 회식있었죠?”

 

. 고깃집이요. 명헌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책상을 정리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벌써 한 주를 마무리 짓는 금요일이었다. 아직도 우성에게는 연락이 없었고, 명헌이 마음 한켠에 간직한 불안함은 하루하루 커져만 갔다. 하지만 사적인 감정을 일자리에 끌고 올 순 없다. 부장의 말마따나 기본 아닌가. 그러나 뻔히 존재하는 방 안의 코끼리를 무시하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자연히 명헌의 몸도 니코틴이라는 중독성 짙은 화학물질을 요구하게 되었고.

 

담배.

 

담배.

 

담배! 회식자리에 끌려가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굽다가, 부장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 과음한 후배를 화장실까지 데려가 주며 갖가지 사회 생활을 하던 명헌은 담타를 가지자는 과장의 말에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헌은 급한 마음에 고깃집을 나서기도 전에 자켓을 뒤적여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종이곽이 너무 가볍다. 아니나 다를까, 불행한 예감대로 갑은 텅 비어있었다. 명헌은 한숨을 푹 쉬며 숙취해소제를 사러 간다는 부사수를 따라 편의점으로 향했다. 빈 갑을 털레털레 흔드는 명헌에게 부사수가 말을 붙였다.

 

벌써 그걸 다요?”

요즘 부쩍 필 일이 많이 생기네.”

. 하하하!”

 

명헌은 머쓱함을 타파해보려 웃음을 터트리는 부사수와 마주 웃었다. 그러게! 술기운이 살짝 돌아 둔해진 머리는 형광등 불빛으로 가득한 편의점에 들어오자 다시 맑아졌다. 명헌은 지갑을 꺼냈다. 먼저 민증부터 내미는게 피차 깔끔하니까. 뻑뻑해진 눈을 깜박이며 지갑을 펼치던 명헌은 주민등록증 뒤에 꽂힌 작은 종이 조각을 발견하고 눈가를 찌뿌렸다.

 

명헌은 느리게 종이 조각을 빼냈다. 그는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 벽에 등을 기댔다. 얇은 쪽지가 바스락거린다. 민증을 꺼내다 말고 벽에 반쯤 기대선 명헌에게 후배가 말했다.

 

뭐야. 취하셨어요? 숙취해소제 대리님 것도 하나 살까요?”

아니...”

 

그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한 번 봐주기 쿠폰 by 정우성]

 

명헌은 꼬깃하게 접힌 쿠폰의 모퉁이를 손톱으로 긁적였다. 우성의 흔적이다. 정우성은 이렇게 불시에 명헌의 일상에 등장하곤 했다. 명헌의 잇가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이게 우성의 복수인가. 자신의 일상을 온통 물들여놓고 사라진 명헌에 대한. 아무 것도 모르는 후배는 그저 명헌이 뒤늦게 오른 취기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운가 짐작할 뿐이었다. 그가 선심을 쓰듯 외쳤다.

 

민증 놓고 오셨으면 제가 대신 사드릴게요. 저번에 커피 쏘셨잖아요. 그거 갚는다고 치고...”

괜찮아.”

 

명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주먹 속에 쿠폰을 꽉 쥔 채로. 오늘의 담배는 독한거. 무조건 독한거. 그의 눈이 담배 매대를 훑었다. 그런데, 계산대 뒤에서 명헌을 기다리던 알바가 틀어놓은 휴대폰 실시간 뉴스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 실시간 속보입니다. 잠시 후 9, 정우성 선수의 긴급 기자 회견이 송출됩니다. 본 기자 회견은 여의도-

 

?”

 

명헌은 카운터 안 쪽으로 상체를 숙이고 아르바이트 생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순식간에 벌어진 돌발적인 행동에 자신의 전화를 빼앗긴 알바생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 명헌은 작게 입을 벌리고 흘러가는 광고 화면 밑에 굵은 글씨로 강조 표기된 글씨를 읽었다.

 

정우성, 은퇴 기자 회견

 

 

씨발 뭐?!

 

명헌은 욕설을 내뱉었다. 뭔 개소리야. 그러나 묻는다고 한들 그 질문에 편의점 알바생의 휴대폰이 대답해줄리는 없었다. 화들짝 놀라 입을 쩍 벌린 부사수가 명헌을 뜯어말렸다.

 

대리님 왜 이래요! 어우 죄송해요, 오늘 회식이 있어서...”

이거 놔. 잠깐만. 뭐라는 건지만 보고. 잠깐.”

 

이게 네가 내린 답이야? 정말 이거야? 이게 네가 걸었던 댓가냐? 이럴거면 미국엘 왜 갔어. 부사수는 꿈쩍하지 않는 명헌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억지로 뺏어다 알바생에게 돌려줬다. 넋을 놓고 비틀거리는 명헌을 끌고 도망치듯 편의점을 나온 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선배. 왜 그래요? 취했어요?”

“...”

 

명헌은 말없이 손 안의 쿠폰을 그러쥐었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눈을 질끈 감아봤지만 빨간 글씨가 둥둥 떠다녔다. 정우성, NBA, 농구, 기자 회견, 은퇴, 정우성, 농구, 은퇴, 기자 회견...정우성.

 

불현듯 명헌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겁쟁이 이명헌이 지금껏 외면한 것. 그러나 정우성은 수없이 행한 것. 이명헌은 움켜쥔 손을 펴보았다. 구겨진 정우성의 마음이 들어있다. 나 좀 봐주세요, 하는.

 

먼저 들어가라.”

? 선배 어디가요? 우리 2차는?”

 

당황한 부사수를 놔두고, 명헌은 도로로 걸어가 택시를 잡았다. 이건 또 무슨 신종 주사인가 싶었던 부사수가 명헌의 팔을 붙잡았지만 명헌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택시 하나가 둘 앞에 멈춰섰다. 여의도로 가주세요. 명헌의 말에 부사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시간에 여의도요?”

 

그러나 명헌을 태운 택시는 그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

아 늦어서 미안합니다;;;
기다려줘서 고마우이~~~~
거의 끝나간다뿅



우성명헌
태섭대만
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