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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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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까지 죽일 듯 싸우고 있던 건 거짓인 것처럼, 사람들은 입을 열지도 발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그들의 사고를 멈춘 것이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린 걸 보고 뒤늦게 제 실수를 깨달았다. 파셀텅과 팔의 고통이 너무 충격적이라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해리가 전혀 두렵지 않았지만, 본능적인 반응은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의 파셀텅이 볼드모트의 호크룩스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서 더욱 그러했다.

 볼드모트의 각인은 가열받듯 조금씩 고통을 키우고 있었다. 그들의 각인에 있는 뱀이 살아 움직이며 주변을 향해 위협을 가했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누군가가 결국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자비를 구했다.

 

 “이-, 이것 좀, 멈춰줘.”

 

 그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른 이들 또한 팔의 고통을 멈추고 싶은 건 똑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겁을 먹은 남자와 달리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은, 함부로 주인의 해리 포터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함이었다. 겁쟁이의 말을 들은 해리는 시선을 그에게로 옮기고 답을 했다. 알아듣는 이는 없었다. 뒤늦게 자신이 파셀텅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해리가 루시우스를 쳐다봤다.

 

 “루시우스-으-.

 “네, 주인님.”

 “……밧줄을.”

 

 루시우스의 답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심지어 루시우스 본인 또한 놀라서 멈칫했다. 그는 저보다 어린 이를 ‘주인님’ 이라 부른 것에 수치심이나 짜증 비스름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유로 놀랐기 때문이었다. 해리 포터는 어둠의 군주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어둠의 군주는 늘 그의 뱀 나기니와 대화하거나, 화가 났을 때 끝 발음이 늘어지고 뱀의 소리처럼 쉭쉭 거리는 특징이 있었다. 조금 전 해리 포터가 자신을 불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그는 저도 모르게 해리 포터를 ‘주인님’ 이라 부르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렇지만 이제 와 말을 번복할 순 없는 법. 루시우스는 제 발언 덕에 더욱 가라앉고 긴장감이 오른 분위기를 피부로 느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되레 이용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조심스레 바닥에 있던 제 지팡이를 집었다. 해리 포터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루시우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저자세였고, 다른 이들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볼드모트의 각인은 처벌을 줄 때, 움직이는 자에게 항상 더 가혹했다. 각인을 새긴 이의 성정을 조금 닮은 탓이었다.

 지척까지 다가간 루시우스는 해리의 사지를 묶어놓은 줄과 마법을 끊어냈다. 그러고는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세바스찬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감히 그 둘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이 떠오른 탓이다. 뼛속에 각인된 공포로 인해, 모두가 허락 없이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읽은 루시우스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속으로 기뻐함과 동시에 자신의 두려움을 뒤로 숨겼다.

 해리는 퍽 당황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루시우스가 자신을 ‘주인님’ 이라 부른 순간부터 그에게 무언가 계획이 있는 것 같았기에, 이 또한 계획의 한부분이라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루시우스가 무릎을 꿇은 건 계획된 게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고통 때문에 힘이 빠진 것이었다. 방 안의 다른 이들도 루시우스만큼은 아니어도 점점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올라오고 있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해리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부디…….”, 그는 루시우스가 각인이 새겨진 팔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고통에 억눌린 목소리로 부탁을 한 뒤에야 깨달았다. 팔에서 사납게 꿈틀대며 입을 벌리고 있는 뱀의 문신을 보며 해리는 루시우스의 팔을 붙잡고 제 입술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이제 그만. 잠들어.~

 

 뱀의 문신은 곧바로 입을 다물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혹여 다른 각인들 또한 영향을 받을까 봐 속삭이듯 내뱉은 거였는데, 루시우스를 제외하곤 여전히 고통받는 걸 보면 제대로 먹힌 듯했다. 해리는 일어나서 스네이프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고문의 여파가 뒤늦게 오는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스네이프?”, 그래서 결국은 그를 제 쪽으로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눈치 빠른 스네이프는 루시우스의 부축을 받고 다가와서 그가 한 것과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 제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스네이프를 보고 있자니 해리는 속이 울렁거리며 구토감을 느꼈다. 

 소년의 손이 팔을 붙잡자, 스네이프는 움찔거리는 반응을 감출 수 없었다. 각인에 닿은 소년의 뜨뜻미지근한 숨결이 잔인하고 차갑던 옛 주인과 다름을 알려주어도, 똑같이 소름 돋는 뱀의 혓소리는 소년과 옛 주인이 닮았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

 

 “제발, 저도-”

 

 고통과 그로 인한 공포로 머리가 잠식이 된 겁쟁이는 바닥을 기어서 해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자신을 가장 오랫동안 고문했던 사람이 지금은 비굴하게 바닥을 기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해리는 기꺼운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낀 자신이 무척이나 수치스러웠다. 해리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을 본 루시우스는 재빨리 다른 이들에게 석화 주문을 걸었다. 완전히 제압됐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해리는 그들의 고통을 멈춰주었다.

 “포터, 이걸 마셔라.”, 뒤늦게 지팡이를 되찾은 스네이프는 혹시나 해 챙겼던 물약 몇 개를 해리에게 건네고 자신이 알고 있는 치료 마법을 걸었다. 끔찍하기 그지없는 상태이었던지라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옆에 있던 루시우스 또한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그와 같이 해리의 상태를 살폈다.

 

 “이 정도면 성 뭉고에 한 달은 족히 있어야 할 텐데. 어깨의 저주는 내가 모르는 종류로군. 세베루스?”

 “나도 처음 보는 저주지만 비슷한 증상에 대해 본 게 있지. 성 뭉고에서 치료가 안 된다면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수밖에.”

 “그러면 자네가 포터를 성 뭉고에 먼저 보내고, 이자들은 내가 데리고 가지.”

 “오러가 아니라?”

 

 스네이프는 루시우스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따로 조사해야겠지만 마법부에 넘기는 편이 더 본인에게 안전할 터였다. 게다가 해리 포터를 납치한 이들이라고 하면 마법부에서도 치밀하게 캐묻고 관리까지 할 텐데 굳이 데리고 있을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이다.

 루시우스는 답을 하지 않고 해리를 쳐다봤다. 그는 이들에 대한 처벌은 해리가 먼저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그는 이들에게서 조금 전 상황에 대한 기억을 지워야 했다. 단언컨대, 마법부는 아무리 해리 포터라고 해도 죽음을 먹는 자였던 자신과 세베루스가 무릎을 꿇고 주인을 모시듯 대한 걸 보면 제2의 어둠의 군주라 생각할 게 뻔했다. 비교적 최근엔 해리 포터에 대한 이상한 기사도 올라왔었으니 말이다.

 

 “오러에게 건네기 전에, 알아볼 게 있어요.”

 

 긴장감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모진 고문의 여파 때문인지, 해리는 살짝 쉰 목소리로 루시우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뒀다. 세바스찬에게서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물약에 대해 정보를 얻어달란 거였다.

 “이 녀석이 그놈이었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스네이프는 해리가 지독한 독에 당해서 돌아왔던 때를 기억했다. 그제야 그는 그때의 원흉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독을 누구에게서 구한 건지도 같이 알아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스네이프는 해리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서 루시우스에게 부탁했다.

 그는 본인을 정보상 취급하지 말라며 우아하게 투덜거리면서도 거절하진 않았다. 확답을 받고 난 다음에야 해리는 눈을 감았다.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음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 피로와 졸음이 태풍처럼 다가와 그대로 해리를 집어삼켰다.

 

.o.O.o.

 

 해리는 무려 1주일이란 시간 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채 성 뭉고에 입원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 사람은 론 위즐리였다.

 스네이프가 자신을 데리고 성 뭉고로 갔을 테니 당연히 일어나면 그를 먼저 볼 거라 생각했던 해리는 예상치 못한 상대에 말을 잃고 말았다. 거의 2년간 대화 한번 나눠본 적 없는 친구였으니, 어색함 생기는 건 당연했다.

 반면에 론은 걱정 반, 분노 반으로 제 친구를 보고 있었다.

 

 “1주일 동안 누워 있었어, 너. 상처는 전부 치료해서 흉터가 별로 안 남는다고 하는데 어깨의 저주는 풀지 못했다고……. 제기랄. 해리, 우리가 얼마나-”

 “스네이프 교수님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해리가 론의 말을 자르고 내뱉은 물음엔 다소 냉정함이 느껴졌다. 말문이 막혀버린 론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결국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어째서 연락이 없었는지, 도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이런 꼴이 되었는지,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건 알고 있는지, 그리고 왜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난 건지. 숨이 벅찰 정도로 질문을 해대던 그는 얼마안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 해리가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절친한 친구가 이제는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해리는 론의 말이 끝나자마자 되물었다. 그러면서 근처 탁자를 살피며 안경을 쓰고 자신의 지팡이를 찾아봤다. 여기에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교수님이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지팡이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불안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해리는 팔을 움직여보고 천천히 의료 침대에서 벗어났다.

 

 “야, 야! 아직 움직이면 안 돼! 힐러가 당분간은 누워있어야 한다고 그랬어.”

 “내 지팡이가 누구한테 있는지 알아?”

 “뭐? 스네이프한테 물어봐야-, 아니, 해리! 움직이면 안 된다니까.”

 

 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혼자서 일어난 해리는 현기증으로 인해 비틀댔다. 친구 옆에 바짝 붙은 론이 부축하기 위해 팔을 붙잡자, 화들짝 놀란 해리가 팔을 휘둘렀다. 다행히도 반사신경이 빨랐던 론은 제 얼굴로 다가오던 팔꿈치를 피했다. 도저히 말을 듣지 않는 해리에게 한 번 더 화를 내려던 그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입을 꾹 다물고 뒤돌았다. 문을 연 사람은 스네이프였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고집 센 멍청한 친구가 힐러 말도 안 듣고 일어나려고 하는 상황이요. 젠장.”

 “포터, 앉아라. 위즐리, 잠시 자리를 비켜주겠나?”

 

 해리는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더 이상 서 있기도 힘들었고, 스네이프의 목소리엔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를 본 론은 제 친구를 마음대로 다루는 스네이프에게 놀라고, 그런 그의 말을 반항 한번 없이 따르는 해리에게 놀라고, 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 자리를 비켜달란 스네이프의 부탁에 또 놀라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병실을 나갔다. 나가는 와중에도 론은 절대로 무리해서 일어나지 말라며 해리에게 한마디 더 했다.

 고작 한명이 나갔을 뿐인데 싸늘한 침묵이 병실을 차지했다. 스네이프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손가락을 곰지락거리는 해리를 보고 품 속에서 지팡이를 하나 꺼냈다. 해리의 지팡이였다. 그는 지팡이를 보자마자 뻣뻣했던 몸에 긴장감이 다소 줄어들고 어깨에 힘이 빠져서 늘어지는 해리의 상태를 지켜봤다.

 이전에 대화를 나누며 관찰했을 때와 같이, 해리 포터는 여전히 지팡이에 심히 의존했다. 마치, 지팡이를 새로 얻기 불가능한 사람처럼 말이다.

 

 “위즐리가 말했듯이, 힐러는 앞으로 1주일은 더 누워있어야 한다고 하더군.”

 “세바스찬은요?”

 “루시우스가 아주 잘……. 지내도록 도와주고 있지.”

 “어째서 론이, 여기에 있는 거예요?”

 

 해리가 기절하고 나서, 스네이프가 급히 그를 데리고 성 뭉고로 순간이동을 하려는 순간에 루시우스가 이를 말렸었다. 누가 봐도 고문을 당한 해리 포터를 스네이프가 데리고 갔다간 자칫 오러에게 의심을 살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오러에게 의심을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루시우스는 최근 들어 오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그래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보였다-사실 이는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었다. 나르시사의 저주를 풀기 위해 어둠의 마법사들을 찾아다녀서 오러들의 경계심이 올라간 것이다.

 결국 스네이프는 루시우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자신이 연락할 수 있고, 고문당한 해리 포터를 데리고 가도 가장 의심을 받지 않을만한 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헤르미온느도 그의 선택지에 있었다. 하지만 론과 비교를 했을 땐 탈락이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친구의 상태에 대해서 그녀의 남편보다 더 고집스럽게 질문을 해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해리는 딱히 무어라 말하진 않았다. 그들이 그런 판단을 내렸다면 그것이 옳았을 거란 생각이 든 탓이다.

 

 “저는 어떻게 찾아내신 거예요?”

 “루시우스가 너에게 줬던 팔찌의 다른 한 쌍을 이용했다. 팔찌의 위치를 찾아내는 쪽으로. 너의 위치를 알아내진 못했어도 녹턴 앨리에서 네 물건을 팔고 있던 놈들의 동료를 찾을 수 있었지.”

 

 납치범 한명을 붙잡은 것만으로도 스네이프에게 있어 해리의 위치를 알아내는 건 쉬웠다. 그는 숙련된 레질리먼스였고, 다행히 상대는 자신의 정신을 방어할 오클루먼시*를 배우지 않은 이였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한 시간을 들여 마음을 읽어낸 결과, 해리 포터가 있는 위치는 물론이고 근처에 있는 알림 마법까지 피해 갈 방법을 알아냈다.

 해리는 그의 말을 들으며 팔찌가 팔리기 전에 그들이 그자를 찾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만약 팔린 후에 팔찌를 찾아내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자신은 한쪽 귀가 없는 채로 발견될 확률이 높았을 터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누워있는 동안엔 어디에서…….”

 “루시우스가 호의를 베풀어서 최근엔 말포이 저택에 있었다. 나르시사가 안부를 전해 달라던데.”

 “나르시사가요?”

 

 스네이프의 언급에 살짝 놀란 해리는 뒤늦게야 나르시사의 저주가 풀린 지 며칠이 지났단 사실을 깨달았다. 샤피크 부인이 정말로 저주를 풀어줬구나. 미안하고 고맙단다, 아이야. 머릿속을 관통한 샤피크 부인의 목소리에, 해리는 엄지로 관자놀이 부분을 꾹꾹 눌렀다. 또다시 두통이 시작되려 했다. 이를 보고 있던 스네이프는 그대로 해리의 어깨를 붙잡고 뒤로 밀었다. 어정쩡하게 침대에 반쯤 눕게 된 해리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스네이프는 혀를 차며 눕고 있으란 말을 강조했다.

 누워있으면 잠이 올 것 같아서 눕기가 싫었지만, 잠들고 싶지 않아 버티겠다는 말을 스네이프에게 했다간 한심하다는 시선을 받을 게 뻔했기에 그의 말대로 침대에 누웠다. 등을 감싸는 낯선 침대의 푹신함 덕분인지 잊고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다.

 느릿하게 눈을 껌벅이니 어디선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비몽사몽한 시야로 선명하고도 짙은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주시하는 걸 보았다.

 

 “쉬어라. 이틀 정도 더 쉬고 나서 얘기를 해.”

 “세바스찬에 대한 건-”

 “그건 나와 루시우스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마라. 오러에게 넘기는 것도 네가 제대로 회복하고 나면 정할 테니까.”

 

 깊숙한 동굴 속에서 낮게 말하는 것처럼, 스네이프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지끈거리던 두통이 조금씩 멎어 들고 몸을 무겁게 만드는 피로가 나른히 퍼지자, 해리는 눈이 감기는 걸 버틸 수 없었다. 수면이 쏟아져 눈꺼풀에 내려앉음과 동시에 마지막으로 들은 건 잘 자라는 스네이프의 부드러운 말이었다. 해리는 자신이 잘못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잠들었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지켜봤다. 제대로 잠이 든 것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10분이 지나도 별다른 움직임 없이 고른 숨소리만 들리자 그는 조심스레 병실을 나왔다. 병실 밖에서 벽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던 론은 스네이프가 나온 것을 보고 곧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제 앞을 가로막는 팔에 멈춰 섰다.

 “녀석은 잠들었다.”, 론은 그의 말을 듣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화를 낸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다시 병실로 들어가면 사과를 하고 제대로 얘기를 나눠보려고 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뻔히 보이는 표정인지라 스네이프는 론에게 내일 다시 와서 얘기를 나누란 말을 꺼내려 했지만 입이 열리진 않았다. 숨이 막혔어요. 불현듯 스치는 한마디 때문이었다.

 

 “일어나면 알려주지. 분명 중요한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미온느가 말했어요? 그렇긴 하지만…….”

 “가라, 위즐리. 오늘은 내가 여기에 있을 거다.”

 

 잠시 고민을 하던 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해리를 스네이프에게 맡겼다. 본인이 이런 생각을 할 줄 몰랐지만, 지난 1주일 동안 봐온 스네이프는 자신보다 더 꼼꼼히 해리의 상태를 확인해 왔기에 믿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깰 때까지 해리의 곁에 있고 싶었지만, 아직 숙련되지 않은 오러였던 론은 최근 중요한 사건 조사에 합류해 선배들과 합을 맞춰가는 중이어서 시간을 빼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사실 지금도 해리가 깨어날 기미가 보인다길래 야근을 각오하고 업무 도중 급히 뛰쳐나와 스네이프에게 패트로누스*를 보내 부른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빠르게 인사를 건넨 론은 누가 붙잡을세라 황급히 뒤를 돌아 뛰었다. 그걸 지나가던 힐러가 보게 되어 누가 병원에서 달리는 거냐며 한소리를 하니, 론은 급히 속도를 늦추다가 자빠질 뻔하여 주변에 있던 이들에게 작은 웃음거리를 남기고 성 뭉고를 떠났다.

 뒤를 이어 스네이프도 말포이 저택으로 향했다. 해리가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자신의 물건을 가져올 겸 루시우스에게서 지하실의 상황을 듣기 위함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병실에서 새어 나온 앓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o.O.o.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끝없이 걸었다. 풀 냄새와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고, 나는 또 다시 이곳에 와 있다는 걸 자각했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고개를 들어서 황금빛의 금속 덩어리가 내려오는 걸 지켜봤다. 이제는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흐트러지고 작은 모래 알갱이가 되어버린 감정이 입술 끝에 모였다.

 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이 차가운 금속에 입술을 바짝 대었다.

 

 “나는 이제 죽으려 한다.”

 

 황금빛의 금속 덩어리는 눈이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손에서 형태를 잃었다. 그리고 얼려진 손바닥에 금이 간 검은 돌만이 놓였다. 여기서 멈춘다면 아마도 나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전처럼 멈추지 못했다. 혹시나 다를 수도 있으니까. 다른 상황이 될 수도 있는데, 두려움인지 모를 무언가 때문에 그것을 놓칠 순 없었다.

 손바닥 위에 있는 돌을 세 번 뒤집으니 어둠 속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결국 눈을 뜨게 될 걸 알면서도 나는 늘 눈을 감았다.

 

 “해리 포터.”

 

 즐거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몸이 떨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얼려진 손에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발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번만큼은. 헛된 희망을 가지고서 손이 부서지는 걸 기다렸다. 이것은 꿈이니 고통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살아남은 아이.”

 

 드디어 세뇌가 먹힌 것일까. 때가 되었음에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손은 이미 부서진 것인지 감각이 없었다. 처음으로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의문이 들었다. 지난 꿈들 속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게 어째서 지금은 통하는 거지? 눈을 뜨지 않으면 나아질 거란 생각은 틀려먹었다. 오히려 더 불안해질 뿐이었다.

 작게나마 들렸던 숨소리가 사라졌다. 숲속의 짙은 이끼와 풀 냄새가 오래된 지하의 습기와 부식된 쇠냄새로 변하고, 시원했던 바람은 피부를 찝찝하게 만드는 눅눅함으로 바뀌었다. 눈을 뜨고 싶은 충동이 크게 들었으나, 최대한으로 버텼다. 하지만 이런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너와 난 닮은 부분이 많아.”

 

 바로 옆에서-,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눈을 떴을 때 마주한 것은 였지만 동시에 내가 알고 있던 가 아니었다. 뱀의 붉은 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대머리도 아니었고, 기괴한 얼굴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비밀의 방에서의 잘생긴 키 큰 검은 머리 소년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숨이 턱 막히면서 눈에 핏발이 서는 듯했다. 는, 톰 리들은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숨을 쉬지 못해서 절로 무릎을 꿇으니, 톰 리들이 날 향해 손을 뻗었다. 시선을 돌리고 싶어도 돌리지 못했다. 거미처럼 다가오던 긴 손가락은 이마의 흉터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너무나도 소름이 끼쳐서 이마의 흉터를 도려내고 싶었다.

 

 “너도 그걸 알고 있잖아. 안 그래?”

 

 사람을 홀릴 듯 웃고 있는 톰 리들에게서 잔혹한 뱀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도 는 나를 비웃었다.

 

 

*오클루먼시 :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는 레질리먼시를 막아내는 기술

*패트로누스 : 엑스펙토 패트로눔*의 시전으로 나오는 소환수. 대게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엑스펙토 패트로눔 : 디멘터를 퇴치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 행복한 기억 혹은 생각을 담아 주문을 외워야하며, 음성을 담아 메세지를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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