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나눌만한 얘기는 없을 것 같네요.”
단호하게 그의 지팡이를 밀치고 발을 내딛던 해리는 곧바로 제 손목을 붙잡아 오는 루시우스의 행동에 거뒀던 지팡이를 다시 그에게 겨누며 눈을 날카로이 빛냈다. “제발, 부탁하지.”, 그는 잠깐 주춤거렸으나 이내 간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루시우스 말포이의 간절한 부탁이라니. 그 모습이 퍽 낯설었지만,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예전에 한 번 겪은 적이 있었던 해리는 생각 외로 꽤 침착했다. 그와 반대로, 루시우스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붙잡은 손목을 놔주고 초조히 답을 기다렸다.
“머플리아토.*”, 해리는 결국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언제까지 입구에 서서 길을 막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다시 안쪽으로 들어와 다른 이가 자신들의 말 듣지 못하도록 마법을 펼치니, 루시우스는 크게 안도한 기색을 보였다.
“간단히 용건만 듣겠습니다.”
“……내 아내, 나르시사-, 그녀는 지금 1년 동안 저주에 걸려있다.”
드레이코는 살아있니? 해리는 자연스레 볼드모트에게 죽고 난 다음 제 생사를 살피던 부드러운 손을 떠올렸다. 전쟁 이후, 드레이코 말포이에게 지팡이를 건네주기 위해 찾아갔다가 잠깐 인사를 나눈 것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또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던 해리는 좀처럼 무언가가 생각이 나지 않자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지금은 그녀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루시우스의 말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루시우스는 제 아내를 위해서 정말로 모든 방법을 다 찾아봤다. 거금을 들여 여러 힐러들을 고용해 그녀를 진단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가 걸린 저주를 알 수 없었고, 저주에 능한 마법사들 또한 완전히 처음 보는 종류라며 그에게 암담한 소식만을 전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르시사의 몸은 말라갔고, 뼈가 쉽게 부러져서 쉽사리 움직이지도 못했으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아도 온몸에 피멍이 들어갔다. 그녀는 하루에 일곱 번의 물약을 마시면서 간신히 생을 연명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르시사의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건 알았으나, 해리는 어째서 루시우스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지 몰랐다. 이미 그는 자신이 생각할 법한 것들을 진즉 시도했기에 별다른 대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저 사람은 그걸 알고 있어. 해리는 그가 아직 말하지 않은 내용이 더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말해요.”, 직설적인 어투에 루시우스는 살짝 인상을 썼지만 암울한 눈빛을 숨기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누가 저주를 건지 알고 있다.”
“안다고요.”
“엘리노어 샤피크, 샤피크 가문의 안주인이지. 그녀는 전쟁 중에 남편을 잃었다. 그들의 자식이 가문을 이어받았으나 엘리노어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해서 정신을 놓았고, 1년 전에야 누가 그녀의 남편을 죽인 지 밝혀졌다.”
“설마-”
“아니, 내가 죽이지 않았다. 방해하는 것들은 치워버리라는 내 명령을 따른 다른 데스 이터가 죽였지.”
퍽 신경질적인 어투로 말을 한 그는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봤다. 망토를 쓰고 있긴 했으나 구석에서 정체를 숨긴 정체불명의 마법사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은 남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다른 구석에서 일어나던 싸움도 어느덧 진정된 건지 사람들은 저마다 제자리로 돌아가서 술을 마시며 둘을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자리를 옮겼으면 하는데.”, 간단한 용건만 듣길 원했던 해리는 결국엔 그러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루시우스는 이곳을 찾아온 원래의 목적도 뒤로 넘겨두고 해리와 함께 말포이 저택으로 이동했다.
.o.O.o.
스네이프는 식탁 위에 있는 한 사람 몫의 음식에 보온 마법을 걸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의 맞은편 자리는 비어있었다. 다이닝 룸의 불을 그대로 켜둔 채 거실로 간 그는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3층 서재 중 한 곳에서 꺼내온 책을 펼쳤다. 이제껏 많은 어둠의 마법에 관한 서적을 읽어봤다고 자부했건만, 스네이프는 첫 번째 서재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책이 겨우 서른두 권 밖에 없다는 사실에 퍽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건 쌓아갈 지식이 무수히 많다는 소리였기에 그의 학구열이 자극받기 충분했다.
거실은 한동안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조용하게 울렸다. 벽난로의 온기는 순식간에 거실을 감싸 안아 그곳을 따뜻하게 유지했는데 창문 밖은 그완 반대로 눈보라가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창문을 시끄럽게 두들길 때마다 스네이프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책에서 눈을 떼진 않았다.
그가 책을 전부 다 읽었을 땐 장작의 불씨가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작은 글씨에 집중하기도 했지만, 어느덧 잘 시간을 넘겨 버려서 그의 눈이 한껏 피로했다. 30분 남았군. 스네이프는 한쪽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본 뒤 소파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향했다. 밖은 온통 새하얗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곳에 가만히 서 있던 스네이프는 저 멀리서 검은 형체의 무언가가 보이자 다시 소파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이곳은 네 집이다, 포터.”
한 손에 지팡이를 든 채 거실을 경계하는 해리를 보며 스네이프를 혀를 찼다. 잠시 어정쩡하게 제자리에 서 있던 해리는 뒤늦게 지팡이를 거뒀다. 아직 해리는 이곳에서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안 주무셨나요?”, 스네이프는 손에 쥐고 있는 책을 슬쩍 보여줬다. 해리는 그에게 왜 서재가 아닌 거실에서 책을 읽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가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기에-답을 해도 제대로 된 답이 아닐 것이다-그러려니 하고 그가 읽던 책을 살폈다. 부패 저주의 모든 것? 아, 저건 꽤 독창적인 책이지.
“늦게 들어왔군.”
“아……. 누굴 좀 만나느라요.”
낮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 해리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고 있던 망토를 벗었다. 스네이프는 빠르게 그의 몸을 훑었다. 지난번의 그자와 만난 건 아니군. 전반적인 상태가 외출하던 때와 똑같음을 확인하던 그의 시선 속으로 낯선 팔찌가 들어왔다. 아름다운 물결의 체인 줄에는 일곱 개의 초록색 보석이 달려 있었는데 매우 정교한 마르퀴즈 컷과 진한 광택으로 보아 필시 값이 꽤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팔찌는?”, 무슨 소리를 하냔 듯이 쳐다보던 해리는 그의 시선을 따라 제 팔목을 보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어깨를 으쓱이며 소매로 팔찌를 가린 해리는 답하기를 거부하곤 손가락으로 슬쩍 다이닝 룸 쪽을 가리켰다.
“불이 켜져 있던데.”
그 말을 들은 즉시 스네이프는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눈살을 찌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무심히 해리를 지나쳐 계단으로 향했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볍게 무시한 그는 제 방으로 들어갔고, 당황스러워하던 해리는 불을 끄기 위하여 다이닝 룸으로 갔다가 식탁 위에 차려져 있는 음식을 보자 입술을 파르르 떨며 미간을 좁혔다. 퍽 해괴한 표정이었는데, 그것은 해리가 웃고 있다는 뜻이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뱃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웃고 있었다.
멀린, 정말로? 앓는 소리를 내는 자신의 위장이 내리는 명령에 따라 음식 앞에 자리를 잡고 나니, 뒤늦게야 음식에 보온 마법을 걸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로? 해리는 스네이프가 진심으로 자신을 도우려 하고 있단 사실을 확인하자 속이 살짝 울렁거렸다. 기분이 나쁘진 않아. 왜 스네이프가 서재가 아닌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날 걱정했어. 아마도. 확실치는 않지만 정황상 그럴 확률이 높았다.
해리는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는 로스트 비프와 키위 소스를 곁들인 양배추 샐러드를 향해 포크를 들었다. 스네이프는 내가 저녁 시간에 맞춰서 올 거라 생각해서 내 몫까지 만들었겠지. 키위의 새콤함이 느껴지는 샐러드는 입맛을 자극하며 절로 침이 고이게 했다. 당장에라도 로스트 비프를 입안 가득 집어넣고 싶었지만 천천히 샐러드를 음미했다. 11시가 넘었는데도-11시 이후엔 방에 있다고 그랬었으니-거실에 있었다는 건 날 기다렸다는 뜻이고. 샐러드의 반을 해치우고 나서야 해리는 나이프도 같이 들어서 로스트 비프를 한점 입에 넣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고기의 부드러운 감촉과 육즙이 미치도록 끝내줬다. 그 사람은 시간을 철저히 지키니까.
식사는 채 10분도 안 돼서 끝이 났다. 최대한 천천히 먹으려 노력했지만 해리는 속도를 주체할 수 없었다. 뒷정리를 하고 방으로 가기 위해 계단에 올랐을 때, 해리는 스네이프의 방문 앞에 서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교수님.”
인기척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제 방으로 향한 해리는 문고리에 걸려 있는 물약을 보며 스네이프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포션을 침대 위에 올려두고 욕실에 들어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에 샤워하며 정신을 차렸다. 머리를 다 말리지도 않고 수건으로 대충 물기만 없앤 채 책상 앞에 앉아 구석에 놓인 작은 보관함을 끌어온 해리는 미리 그 옆에 있던 작은 크리스탈 병 하나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이용해 머릿속의 기억을 뽑아냈다.
암시장에서 만난 루시우스 말포이와의 만남, 말포이 저택에서 느낀 온기 하나 없는 싸늘함, 엘리노어 샤피크의 저주, 그리고 나르시사, 그녀의 모습과 부탁, 팔찌까지. 기억을 뽑아내기 위해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는 것은 해리를 충분히 괴롭게 만들었다.
영롱히 빛나는 은빛의 실 가락은 자연스럽게 크리스탈 병에 담겼다. ~열려라~ . 파셀텅을 이용하여 닫혀 있던 보관함을 연 해리는 스무 개가 넘는 크리스탈 병들을 보며 잠시 굳었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기억을 집어넣고 보관함을 닫았다. ~잠겨라~ . 그는 자신이 뱉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뱀의 혓소리가 소름이 돋는다는 걸 무시할 수 없었다-하지만 해리는 항상 기분 좋게 늘어질 때면 자신도 모르게 파셀텅으로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아씨오 스네이프의 회복제.”
침대 위에 있던 물약이 제 손에 쥐어지자 해리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단번에 마셨다. 씁쓸한 맛이 입안을 맴돌면서 절로 눈살을 찌푸려지게 했다. 회복제는 금방 제 효과를 보였다. 꾸준히 욱신거리던 등의 통증이 살짝 가시면서 전체적으로 기력이 회복됐고, 한껏 나아진 몸 상태에 해리는 금방이라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15%가 아니라 20%는 줬어야 했는데. 스네이프가 만든 회복제의 효과를 느끼면서 책상에서 벗어난 해리는 침대 맡 탁자에 지팡이와 안경, 그리고 팔찌를 얹어두고 마법으로 머리를 말린 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던 해리는 스네이프에 대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항상 앙숙과도 같은 사이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공생 관계라는 것이 퍽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의 관계가 편안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을 돕고 있는 스네이프가 낯설면서도 그의 돌봄을 거부하지 않는 이유를 해리 본인도 몰랐다. 이젠 더는 스네이프에게 반감도 들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교류를 하지 않아서 그런가? 물론 그것이 스네이프와의 대화를 예전보다 덜 날카롭게 만들었지만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이기가 쉬운 걸 수도 있었다. 친하지 않았기에. 스네이프는 나에게 그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았으며, 나의 미래에 대한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들을 것이고, 원한다면 조언을 해줄 수도 있겠지. 문득, 스네이프가 했던 말이 해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숨을 내쉬었다.
‘네가 제임스 포터를 닮고 릴리의 눈을 가졌어도, 넌 그들이 아니야.’
맙소사. 해리는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던 스네이프의 시선이 떠올랐다. 상처를 치료하고 간호를 해주던, 따뜻한 식사를 만들어주던, 차분한 목소리로 온화하게 말을 거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 오랜만에 느낀 사람의 온기가 한없이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해리는 어째서 스네이프에게 반감이 들지 않는지 깨닫게 되었다.
“-난 그를 신뢰하고 있어.”, 방 안의 서늘한 온기가 뜨거운 뺨을 감싸 안았다. 그것도 온전히. 해리는 자신이 언제부터 그를 믿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첫 식사를 만들어줬을 때인가? 생각해보면 베리타세룸이 들어가 있진 않을까, 하고 잠깐 망설였지만 그가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스튜를 먹었었다. 맙소사. 그보다 더 전이라는 사실이 해리를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심장이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뛰는 기분을 느꼈다. 곧바로 익숙한 두통이 그를 찾아왔다.
두통은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갔는데 서랍 속에서 두통약을 찾을까 고민을 하던 순간에 사라져버려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해리는 급격한 나른함이 제 몸을 감싸는 걸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여전히 뺨은 뜨거웠지만, 심장 소리는 차분하게 울렸다.
쓰나미처럼 밀려온 피곤함에 의해 강제적으로 잠에 빠질 때, 해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스네이프였다.
.o.O.o.
짙은 갈색과 옅은 노란색으로 가득 찬 다이닝 룸은 따뜻함을 느끼게 했다. 식탁에는 그가 만든 칠면조 요리와 처음 보는 음식들이 여럿 놓여 있었다. 접시와 식기를 식탁 위에 놓으며 크리처에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준비하게 만들었다. 그가 잠깐 다이닝 룸을 나가서 다행이었다. 붉은색과 초록색, 은색의 장식품과 글리터를 한껏 뿌려 꾸민 트리는 퍽 멋졌지만 다이닝 룸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컸기 때문에 그가 보게 된다면 분명 인상을 찌푸리고 당장 치우란 말을 할 게 뻔했다.
“인센디오.*”
“오…….”
치우라는 말도 안 하고 태워버릴 줄은 몰랐다.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는 트리를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으니 크리처가 알아서 흉물이 되어버린 트리를 치웠다. 고개를 돌려 그에게 작게나마 투덜대려고 하니, 눈에 문제가 있는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바로 뒤에 서 있건만, 부옇게 흐린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보여서 눈을 찌푸렸다.
“뭐지?”
“아뇨, 눈이 좀……. 이상하게 얼굴만 안 보여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 그가 손을 뻗어서 엄지로 내 눈 밑을 쓸었다. 그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으니 혀를 차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따뜻한 손의 온기를 더 느끼고 싶었지만 눈을 뜨라는 듯이 엄지로 뺨을 툭툭 건드는 탓에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다행히도 부옇던 안개가 사라지고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살짝 걱정이 어린 눈빛을 한 채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제 제대로 보인다고 말을 했다. 좀처럼 말을 잘 믿지 않는 턱에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을 하니 그제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으로 향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의 잔에 즐겨 마시던 와인을 따라주며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리.”
마지못해 답변을 해주는 스네이프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가 보였다.
.o.O.o.
잠에서 깨어난 해리는 상체를 일으켜 세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멍을 때렸다. 그게 뭐였지? 무척이나 오랜만에 괴롭지 않은 꿈을 꾸었건만,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했다. 도대체? 그저 혼란만이 해리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는 스네이프에 관한-심지어 그가 다정한-꿈을 꿀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물며 꿈속의 스네이프는 제 이름을 거리낌 없이 부르며 웃기까지 했는데, 해리는 도대체 자신이 왜 그러한 꿈을 꾼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꿈의 내용을 잊기 시작했고, 그가 샤워하고 나왔을 때는 꿈을 꿨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만난 스네이프의 아침 인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꽤 잘 잔 듯 보이는군, 포터.”
해리는 제 안색을 살펴보는 스네이프의 얼굴 위로 꿈속에서 보았던 그의 미소가 겹쳐 보였다.
*머플리아토 : 주위 사람들의 귀에 알 수 없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게 하는 마법
*인센디오 : 화염을 발사하여 공격하는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