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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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양조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스네이프는 제조 중이던 포션의 마지막 재료를 솥에 넣은 다음 뚜껑을 닫았다. 2시간 동안 이대로만 둔다면 꽤 괜찮은 회복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시간이 벌써 점심때였기에 그는 양조장을 나와서 다이닝 룸으로 향하며 제게 환기 주문을 사용했다. 다이닝 룸엔 여전히 호밀빵 냄새와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 스네이프는 지팡이를 휘둘러 스튜가 남아있는 냄비를 다시 데우며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소시지와 베이컨을 굽고 완두콩과 감자를 삶아서 그것들을-감자는 으깼다-그릇에 옮겨 담은 다음 식탁 위에 올려뒀다. 따뜻하게 데워진 스튜 또한 적당한 양을 담아서 옆에 뒀다. 그릇은 총 네 개였다.
이곳엔 집요정이 없어서 직접 요리를 해야 했는데 스네이프는 꽤 괜찮은 요리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항상 앉던 곳으로 간 그는 지팡이로 제 맞은편 자리의 의자를 빼낸 뒤 식사를 시작했다. 그는 요리하던 중간부터 문지방에 서서 들어오지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을 알고 있었다.
그가 식사하는 걸 보고 나서야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식탁에 다가온 해리는 매우 조심스럽게 제 자리에 앉아서 스네이프와 음식을 번갈아 보다가 숟가락을 들었다. 이미 해리의 위장은 다이닝 룸에 가득 찬 맛있는 냄새에 배고프다며 요동치면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빈속을 생각하여 스튜부터 한입 먹으니 입안에서 담백함과 당근의 달곰함이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스튜 한 그릇을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이어서 포크를 들었을 땐, 식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해리는 따뜻한 스튜를 한 그릇 더 먹고 싶었지만 더는 속이 받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안타까운 눈빛으로 먹은 그릇들을 치웠다. 오. 스네이프 또한 식사가 끝이 났다.
“……잘 먹었습니다.”
그것은 긴 고심 끝내 내뱉은 말이었다. 어쩐지 하루에 세 번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 의식되니까 좀처럼 말이 튀어나오질 않았다. 상대가 상대이기도 하고. 스네이프는 짐짓 코웃음을 치며 그게 최선이냐는 듯이 해리를 바라봤다. 그는 제 앞에 있는 해리 포터가 과연 그리핀도르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상처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괜찮아요.”
“통증은?”
괜찮다는 말을 영 믿을 수 없었던 스네이프는 한 번 더 되물으며 대답을 요구했다. 꽤 심한 부상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쌓인 피로가 터져버려 나흘을 앓아누웠는데 겨우 치료 주문과 물약으로 완벽하게 나을 리가 없었다. 결국 해리는 그의 눈살을 못 이겨 바른대로 제 상태에 대해서 답했다. 이를 들은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저녁쯤 양조장으로 오라며 말을 하고서 나가라는 듯이 손짓했다.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에 해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이닝 룸을 빠져나와 다시 제 방으로 올라갔다. 책상 앞에 앉은 뒤에야 이상함을 눈치챈 해리는 습관적으로 지팡이를 쓰다듬었다. 스네이프와의 식사는 생각 외로 편안했다. 배가 고파서 먹는 데에 집중하느라 그렇기도 했지만, 그가 식사하는 내내 시선도 말도 주지 않았던 것이 꽤 컸다. 이제 겨우 한 번이네. 해리는 아직 두 번이나 더 그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살짝 좌절했다. 그는 도저히 무어라 말을 걸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스네이프는 일부러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젠장.”, 머리를 헤집으며 시선을 돌린 해리는 책상 위에 있는 일기장 하나를 보며 인상을 썼다. 그는 최근에 있었던 죽음을 먹는 자와의 싸움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고, 곧바로 깃펜을 들었다. 일기장은 막바지에 다다를 정도로 많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망설임이 없이 시간과 장소별로 기록을 하는 해리의 모습은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기에 그가 이러한 싸움을 여럿 겪은 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일기장의 마지막 3장을 남기고서 기록을 끝낸 해리는 자신이 적은 내용을 한 번 더 살펴보면서 기억을 되새겼고, 책상 오른편에 있는 가장 아래 서랍을 열어 일기장을 보관했다. 서랍 속엔 똑같은 일기장이 다섯 권이 더 있었다.
포션이 필요한데. 이번엔 책상의 왼편에 있는 서랍을 열었는데 그곳엔 중지 정도 되는 크기의 빈 포션 병들이 가득했다. 해리는 뒤늦게야 마지막 포션을 사용한 게 불과 며칠 전이라는 걸 생각해냈다. 오, 그리고 그는 어디에서 포션을 찾아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별장에 있던 통증 완화 포션을 다 쓰고 난 뒤로 해리는 직접 포션을 만들어 보관해뒀었고, 한 달 전에 만들었던 포션이 양조장에 조금 남아있을 것이었다. 스네이프와 말을 나누는 순간이 이렇게나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던 터라 쉽사리 발걸음이 때지지 않았다. 맙소사, 1시간도 안 지났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1층에 있는 양조장 문 앞에 다다른 해리는 분명 제집임에도 불과하고 노크를 하며 안쪽에 있을 상대에게 허락을 구했다. 교수님? 대답이 없자 한 번 더 노크를 해야 하나 싶었던 순간, 양조장에서 살짝 떨어진 창고에서 스네이프가 작은 바구니를 든 채 걸어 나왔다. 그는 양조장 앞에서 한 손을 들고 어정쩡히 서 있는 해리를 살펴보다가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곤 살짝 웃었다-제 딴엔 그냥 웃은 거지만 해리의 눈엔 비웃는 거로 보였다.
그는 먼저 말을 안 걸 수가 없었다.
“포터, 알다시피-, 이곳은 네 집이다.”
“음, 양조 중이실까 봐요.”
“난 포션 마스터다. 겨우 노크로 집중력이 깨지지 않아.”
더 할 말이 없었던 해리는 입을 다물며 뒤를 돌아서 문을 열었다. 스네이프는 열어준 문을 따라 해리와 같이 안으로 들어가 제 손에 쥐고 있던 바구니를 양조장 한구석에 있는 냄비에 가져갔다. 그는 바구니에 있던 작은 병을 꺼내서 그대로 냄비에 투여하며 반시계방향으로 네 번 저었다. 해리는 이곳에 찾아온 목적도 잊어버린 채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방금 전 냄비에 넣은 것은 월장석 가루처럼 보였다. 제조법이 꽤 익숙했다.
“그거 머트랩 용액인가요?”, 분명 질문이었지만 해리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커다란 숟가락에 머트랩 용액을 담던 스네이프는 잠깐 고민하다가 해리에게 잘 알아봤다며 칭찬을 했다.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은-스네이프가 날 칭찬했다고?-해리는 말을 더듬었다.
“통증, 어, 완화 포션을 만들고 계신 건가요?”
“한 병밖에 안 남았더군. 직접 만든 건가?”
“그닥 어렵진 않아서요…….”
“다음엔 월장석 가루를 두 배로 넣어라.”
포션 마스터의 말을 새겨들으며 진열장으로 다가간 해리는 본래의 목적이던 포션을 챙기다가 옆에 있던 책상 위에 무언가가 빼곡히 적혀있는 양피지를 발견하곤 슬쩍 흘겨봤다. 양피지에는 스네이프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모든 재료와 그것들의 가격이 적혀 있었다. 그냥 쓰라고 했을 텐데. 해리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스네이프는 정말로 이 모든 것들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보다 더 나은 영웅이었다.
해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그가 제 말을 듣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제안을 하죠.”
“제안?”
“제가 교수님께 포션을 의뢰하면, 교수님은 그 대가로 갈레온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스네이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해리와 그 옆에 있는 양피지를 번갈아 봤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군. 스네이프는 해리와 비슷하게 생각했다. 해리는 그가 자신을 도와주는 걸 이해할 수 없었고, 스네이프는 소년이 자신을 도와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둘은 그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취했을 뿐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서로가 알아듣질 못했다.
“정가로 받지.”, 스네이프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려 포션 마스터잖아요. 40% 더 드릴게요.”, 하지만 해리는 더 단호하고 막무가내이며, 결론적으로 그리핀도르였다. 이 작은 말다툼의 끝은 결국 저가 질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스네이프는 결국 15%로 합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피곤함이 몰려오는 듯했다.
“이 물약은 3시간 뒤에나 완성될 거다.”
“지금은 이걸로 충분해요. 그럼.”
빠른 걸음으로 문을 향해서 걷던 해리는 반쯤 연 문틈에 몸을 끼워 넣다가 가만히 멈춰 섰다. 냄비의 뚜껑을 닫고 있던 스네이프는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해리를 쳐다봤다. 고개만 반쯤 돌린 해리는 입을 오물거리며 말하기를 망설여했다.
“뭐지?”, 그 답답한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기가 힘들었던 스네이프는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다.
“……이거 두 번째인가요? 제 말은-, 제가 먼저 말을 건 게 아니니까요.”
스네이프는 해리가 묻고자 하는 바를 뒤늦게야 알아차렸고,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눌렀다. 멀린이시어. 그는 정말로 저 눈치 없는 그리핀도르와 앞으로 나눌 대화가 걱정-본인을-됐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해리는 그의 행동으로 충분한 답을 받았기에 재빨리 알겠다고 답을 하며 양조장을 나섰다.
예상치 못했던 순간은 퍽 좋게 넘어가게 되었고, 이제 단 한 번의 대화만이 남게 되었다. 스네이프는 7시에 저녁을 먹는다고 얘기했으니 해리에겐 대략 4시간 하고 조금 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말은 생각보다 빠듯하게 움직여야 한단 소리였다. 손에 쥐고 있던 포션을 단번에 삼킨 해리는 곧장 별장을 나왔다-별장에는 강력한 혈통 마법이 걸려있어서 순간이동 마법은 사용 불가능했다.
차가운 눈보라를 맞으며 두어 번 심호흡을 한 해리는 차분히 녹턴 앨리를 생각하며 이동했다.
.o.O.o.
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 한 줌 들어서지 않는 녹턴 앨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음산한 기운이 물씬 몰려오게 했다. 종종 보이는 좁디좁은 골목에는 옷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인 채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그들은 마치 얼어서 동사한 사람처럼 일절 움직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그들 가까이 지나갈 때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기도 했다.
한참을 녹턴 앨리에서 돌아다니던 해리는 간판이 제대로 달리지도 않는 술집 앞에 서며 망토를 단단히 여미었다. 이곳은 지난번에 들렸던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암시장으로 가는 입구였다. 그가 이곳에 왔었던 이유는 순전히 자신이 쫓던 자의 행방이 이곳으로 향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함정이었지만.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안은 넓어서 사람들이 두루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 손에 술잔을 쥐어 들며 해리를 빤히 쳐다봤다. 제게로 모이는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바텐더에 다가간 해리는 주머니에서 반으로 쪼개진 갈레온-용의 반쪽만 있고 뒷면은 새까만-을 꺼내 보여줬다.
“사러 왔나, 팔러왔나?”
“사러 왔다가 대기실에서 싸움이 났었지.”
“어이쿠, 이제 보니 귀한 손님이로군.”
바텐더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손가락을 하나 폈고, 해리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그가 원하는 것의 두 배인 20갈레온을 건넸다. 반짝거리는 금화를 보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을 숨긴 바텐더는 해리에게 눈짓하며 작은 계단으로 향했다. 낡은 나무 계단은 밟을 때마다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고, 자세히 살펴보면 핏자국들이 더러 묻어 있어서 그다지 좋은 곳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2층은 1층과는 달리 비교적 깨끗하고 사람들도 몇 없었는데, 대신 지나치게 고요해서 압박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보통은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살짝 움츠러들거나 주변을 경계하기 마련이건만, 아무런 변화도 없는 해리를 보며 바텐더는 꽤 실력이 있는 마법사라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저런 여유로움은 힘이 없다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순수 혈통 가문의 사람이라기엔 몸짓이 영, 옷도 그렇고.
“여기로 들어가면 되네.”
바텐더가 안내한 곳은 2층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방-7번이라 적힌-이었다. 해리는 이곳과 비슷한 곳을 여러 번 가봤던 적이 있었기에 바텐더에게 50갈레온을 더 건네줬다. 이제 바텐더는 50갈레온 이상을 받지 않는 이상 제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을 것이다. 비루하게 허리를 굽힌 그는 해리를 위해 직접 다섯 번의 노크를 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방 안에는 가면을 쓴 딜러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편하신 대로 있으시면 됩니다.”
방에는 단순히 앉아 있기 위해서 의자들-흔들의자는 왜 있는 거지?-과 고급스러운 소파, 1인용 침대, 심지어 해먹도 있었다. 해리는 망토를 벗어 의자에 얹은 뒤 소파에 앉았다. 그의 이마에 있는 표식을 확인한 딜러는 숨을 들이키며 무서운 것이라도 본 듯이 쉭쉭거렸다. “해리 포터!”, 그는 책상 아래에 숨겨둔 자신의 지팡이로 손을 뻗었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한 소년이 침착하게 날카로이 다듬어진 자신의 서양호랑가시나무를 그에게 겨눴다. 원래라면 소란이 나지 않도록 폴리주스* 약을 마시고 찾아오거나 망토를 벗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그토록 싫어하던 그 명성이 필요했기에 정체를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습니다.”
딜러는 제게 겨눠진 지팡이를 보며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오랫동안 여러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는 그는 금방 차분히 숨을 쉬며 신중히 판단했다. 빠르게 지팡이를 잡는다고 해도 그 어둠의 군주를 죽인 해리 포터보다 빠를 순 없을 것이다. 책상 위에 있는 탁상용 시계를 멈춘다면 비상 호출을 할 순 있겠지만, 과연 해리 포터와 싸우는 게 좋은 선택일까?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있지 않을까? 딜러는 항복의 의미로 손을 깍지 껴 잡고 팔을 내밀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연줄이 될 수도 있겠지.
“책상 왼쪽에 제 지팡이 홀더가 있어요.”, 순수히 제 지팡이의 위치까지 알려준 그는 부디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기대했고, 해리는 마법을 이용해 그의 지팡이를 책상 위에 올려뒀다. 멀린의 턱수염같으니. 자신을 노리던 지팡이가 물러나는 것을 보며 딜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사과를 건넸다.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포터 경.”
“부디, 포터면 충분합니다.”
“그럼, 비밀 서약서를 작성해도 괜찮을까요, 포터씨? 서로를 위해?”
해리가 긍정을 표하자 그는 양피지와 깃펜을 들어 재빠르게 비밀 서약서 한 장을 만들어 건넸다. 서약서에 적힌 내용은 깔끔했다. 딜러는 그 누구에게도-심지어 속한 조직에도-해리와 나눈 얘기를 의논하거나 얘기할 수가 없지만 해리는 그러한 제약에 묶여있지 않았고, 깨트릴 수 없는 맹세*만큼의 위력은 아니지만 피를 매개로 하는 저주를 이용하여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위험했다. 책상 서랍 속에서 작은 단도를 꺼낸 그는 익숙하게 손바닥을 살짝 긋고 제 피로 먼저 서명을 했다.
“여기-”, 딜러가 피를 닦은 단도를 건네기도 전에 해리는 마법으로 손바닥에 상처를 내어 옆에 있던 깃펜으로 서명을 했다. 어색하게 손을 뒤로 물린 그는 비밀 서약서를 돌려받고 주문을 외워 저주를 행했다. 저주들 특유의 싸늘하고 알싸한 기운이 왼쪽 어깨에 몰리며 화상을 입은 듯이 뜨거워지자 해리는 저주가 제대로 먹혔음을 알아챘다. 아마도 어깨에 마크가 생겼을 것이다.
“포터씨, 저주를 없애는 방법은-”
“닷새 전에 죽음을 먹는 자를 뒤따라 이곳에 왔다가 대기실에서 공격을 받았죠.”
딜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해리 포터와 죽음을 먹는 자라니, 이런 빌어먹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딜러는 이젠 더 이상 웃고 있을 수 없었다. 해리 포터는 이 사건을 이용하여 죽음을 먹는 자들을 옹호한 것에 대해 제 조직을 아즈카반에 집어넣거나 사냥-붙잡기 위해 쫓아다니는 것-을 할 수도 있다. 아무리 불법적인 것으로 돈을 버는 악질적인 조직이라고 해도, 이 시기에 죽음을 먹는 자와 연관이 되는 건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른 곳처럼 그리 큰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더욱 그랬다.
“포터 경. 우선, 저희가 당신께 줄 수 있는 도움은 최대한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또한 정보이용료는 안 받는 거로 하죠.”
“상대는 둘이었고, 제가 원하는 건 둘 중 보다 더 덩치가 크고 회색 머리를 가진 사람입니다.”
“1주일 안으로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망토를 입었다. 이곳에서의 일은 끝이 났지만 아직 들려야 할 곳이 더 있었다. 방에서 나온 해리는 천천히 왔던 길로 되돌아가며 계단을 내려갔다. 1층에선 싸움이 난 것인 한쪽 구석이 시끌벅적했고 그 소리가 듣기 싫었던 해리는 빠른 걸음으로 입구에 다가갔다.
“스투페파이!”, 입구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을 때,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려는 것인지 저절로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싸움하던 뒤쪽에서 날린 마법이 애먼 입구로 향했고, 술집 안으로 들어오려던 상대는 붉은 섬광이 자신에게 뻗어지는 것을 보며 지팡이를 들려고 했지만 해리는 그가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재빨리 지팡이를 휘두른 해리는 푸르스름한 반투명 막이 그자와 자신을 감싸며 기절 마법을 막아내는 걸 지켜봤다. 싸움 구경에 신이 난 사람들은 애먼 마법을 상대한 그들에게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다급히 움직인 탓에 망토가 살짝 벗겨진 해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망토를 여미었다.
“해리 포터?”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부르자 해리는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상대에게 겨눴다. 한 명은 나가기 위해, 한 명은 들어오기 위해 입구에 서 있었던 터라 그 둘의 거리는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해리는 망토 속에 보이는 찬란한 금발을 보며 한걸음 물러났다. 루시우스 말포이. 루시우스는 이곳에서 해리 포터를 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퍽 놀란 표정이었다. 적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해리는 애써 그를 무시하며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루시우스의 지팡이가 그의 앞을 막아 세웠다.
“얘기 좀 하지.”, 그는 답지 않게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해리에게 말했다.
*폴리주스 :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게 해주는 약
*깨트릴 수 없는 맹세 : 총 3인이 필요한 마법. 맹세 당사자들이 서로 팔뚝을 맞잡고 증인이 되어줄 사람이 지팡이를 사용한다. 맹세를 할 때마다 불의 사슬이 팔을 휘감는다. 이 마법에서 한 맹세를 어기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