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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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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가 말포이 저택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루시우스가 아닌 드레이코였다. 웅장한 정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집 밖으로 나가려던 드레이코와 마주친 것이었다. 설마하니 해리 포터가 자신의 저택 앞에 있을 줄 몰랐던 드레이코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며 해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말포이.”

 “포터? 왜 네가, 아니, 무슨 일로…….”

 “루시우스와 약속이 있어서.”

 “아버지와?”

 

 볼일이 있어 나가려던 드레이코는 잠시 고민하다가 본인이 직접 저택 안으로 안내했다. 드레이코를 따라가면서 저택 내부를 천천히 살펴보던 해리는 몇 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는 몇몇 장소들을 지나쳐가면서 지팡이를 세게 쥐었다. 금방이라도 귀를 찢는 웃음소리가 들려올 것 같아서 손이 떨렸다. 떨림이 멈춘 것은 응접실에 도착해서 차를 마시겠냐는 드레이코의 물음 덕이었다.

 집요정을 통해 루시우스에게 손님이 왔다는 걸 알린 드레이코는 해리를 소파에 앉히고 차를 건네주었다. 어색함이 사라지지 않는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드레이코였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언제였지? 1년 전?”

 “1년 반쯤 됐을 거야.”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음, 어머니와 내가 도와줬던 별장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고?”

 “……별장?”

 “그래. 블랙 가문의 별장. 블랙 가문의 피를 이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서 그때 네가 어머니에게 도와달라고 했었잖아.”

 

 드레이코의 말을 들은 해리는 제 앞에 놓인 찻잔의 수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진정하려 노력했다. 잃어버린 기억을 한조각 찾아낸 탓이었다. 생각해 보면 지난번에 스네이프와 얘기를 나눴을 때도 그러했고, 루시우스를 만나서 나르시사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도 무언가 꽉 막힌 기분이 들었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별장에 들어갔지만 그것이 누구였는지, 나르시사 말포이에게 빚이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진 빚이었는지,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드레이코 덕분에 기억의 답은 찾았지만 여전히 해리는 기억을 되찾지 못했다.

 

 “포터. ……포터?”

 “아, 잠깐 생각을 좀 하느라. 별장에는 문제없어.”

 “흠. 아무래도 블랙 가문의 별장이다 보니 저주 같은 게 더없을까 했는데.”

 

  드레이코 말포이는 눈치가 빨랐다.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일들이 드레이코를 그의 아버지처럼 뛰어난 화술과 눈썰미를 지닐 수 있도록 만든 덕이었다. 흠. 차를 마시며 속내를 감춘 드레이코는 별장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개인적으로 별장에 대해 알아보기로 계획했다.

 “아까 어딘가 가려고 한 것 같은데.”, 어색한 침묵이 계속될 것 같아지자 해리는 옅은 죄책감을 느끼며 말을 이어갔다. 뻔히 보이는 회피였지만 침묵보다는 나았기에 드레이코는 찻잔을 내려놨다.

 

 “약속이 있었던 건 맞지만, 급한 건 아니야. 어차피 30분 일찍 나가려던 참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네.”

 “아버지와 약속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약속인지 알려줄 수 있나?”

 “그건-”

 “나 대신 손님을 맞이해 줘서 고맙구나, 드레이코. 이제 가도 된다.”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루시우스가 들어왔고, 드레이코는 해리의 답을 듣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올빼미를 보내, 포터.”, 루시우스가 온 이상 손님의 시간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기도 했지만, 제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단호함이 느껴져 드레이코는 해리에게 간단히 인사만 건네고 응접실을 떠났다.

 루시우스와 둘만 남게 되자 해리는 그를 쳐다보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말포-, 드레이코에게 말을 안 한 건가요? 우리가 오늘 나르시사에게 저주를 건 사람을 찾아간다는 걸?”

 “그래. 모든 게 해결되기 전까진 비밀로 할 생각이다.”

 “어째서죠?”

 “헛된 희망을 품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만약 일이 틀어져서 결국 저주를 풀지 못하게 되면, 그때 느낄 절망감은 나 혼자면 충분해.”

 

 서로 다른 상황이고 다른 대답이었지만, 해리는 루시우스에게서 나르시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스스로가 그 어떤 것도 감내할 생각인 모습을 보자니, 그들이 부부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초조했던 것인지 루시우스는 한쪽 손을 내밀었다. 그의 마음을 이해했던 해리는 손을 붙잡았고 익숙한 느낌과 함께 시야의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그들이 순간이동한 곳은 어느 마을의 변두리였다.

 루시우스는 해리에게 망토의 후드를 뒤집어쓰라는 말과 함께 마을 변두리를 따라서 걸었다. 분명 목적지의 근처로 순간이동을 했을 텐데 한참을 걷고 있자 해리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묵묵히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안 가서 마을 안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제야 해리는 어째서 한참 동안 변두리를 걸었는지 깨달았다. 사람이 없는 길을 찾고 있구나. 생각해 보면 녹턴 앨리에서 그를 만났을 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굳이 숨어가며 돌아다니는 이유가 있나요?”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 죽음을 먹는 자들이 남아있는 건 알고 있겠지. 그들을 잡아다니고 있으니까.”

 “그들이 당신을 찾아왔나요? 언제? 왜-”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나르시사가 저주에 걸린 게 알려지면 그들은 우리가 약해져 있다는 걸 알고 그때야 찾아오겠지.”

 “나르시사가 1년 동안 저주에 걸려 있다고 했잖아요. 그동안 어떻게 그 사실을 숨겼죠?”

 “이른 감이 있지만 드레이코가 나 대신 가문의 사업을 처리하고, 난 가끔 폴리주스 물약을 이용해서 나르시사의 모습으로 바깥을 돌아다녔지.”

 

 그들의 얘기는 다소 큰 저택이 보임과 동시에 끝났다. 밝은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저택만은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우중충했다. “저곳이다.”, 루시우스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저택의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곳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했다. 엘리노어 샤피크, 그녀는 죽는 한이 있어도 제 아내에게 건 저주를 회수할 생각이 없음을 명백하게 밝혔었다. 협박도 해보고 심지어 자신이 무릎까지 꿇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 화를 내면서 자신을 쫓아냈었다. 그 뒤로 많은 마법사들을 찾아다니며 저주를 풀려고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엘리노어 샤피크는 더 이상 자신의 방문을 받아주지도 않았다.

 

 “포터. 만약……, 네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면. 난 놔두고 내가 준 포트키를 이용해서 돌아가라.”

 “……전 당신이 나르시사에게 급한 상황에 생기면 그때를 대비해서 이 팔찌를 줬다고 생각했는데요. 살인을 눈감아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저주는 시전자를 죽이면 풀리지. 그리고 난 내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아즈카반에서 몇 년을 더 보내는 것 정도야.”

 

 아즈카반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루시우스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디멘터의 손길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던 해리는 그를 이해했다. 루시우스는 입구에 도착하자 한걸음 물러섰다.

 관리를 안 한 지 꽤 되어 보이는 낡은 철제 울타리와 이를 타고 올라온 억센 덩굴들은 입구의 초인종까지 감싸고 있었다.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잔디밭은 얼추 발목까지 자라 있었고, 입구에서 현관까지 향하는 자갈길은 이곳저곳이 파헤쳐진 상태였다. 사람이 살고 있는 건 맞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주변의 다른 곳과는 다르게 너무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해리가 벨을 눌렀을 때 초인종은 덩굴에 엉켜있음에도 선명한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한참 동안 기다려도 답이 없는 탓에 한 번 더 눌러야 하나 싶었던 순간, 그들의 앞에 한쪽 귀가 반쯤 잘린 늙은 집요정이 나타났다.

 

 “주인마님께서……, 손님을 데리고 오라고…….”

 

 그들은 집요정의 안내를 받으며 현관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저택의 안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게 보였다. 짙은 마호가니로 이루어진 가구들과 밤바다처럼 진한 벽지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1층으로 안내해 줄 것 같았던 집요정은 2층 복도 끝자락까지 길을 안내했다.

 “주인마님, 손님을, 데리고 왔습니다…….”, 샤피크 가문의 인장이 크게 박혀 있는 문이 열리면서 그들은 드디어 엘리노어 샤피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벽난로 앞 가죽 의자에 앉아서 장작이 타들어 가는 것을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푸석푸석한 백발과 주름진 손, 지친 것이 분명해 보이는 흐릿한 눈동자 때문인지 해리는 쉽사리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이곳엔 무슨 일로 왔나요, 구원자 양반. 보다시피 말할 힘도 없으니 간략하게 말해주구려.”

 “……나르시사 말포이의 저주를 풀어주길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그래, 그래요……. 그래서 저 귀신이 같이 왔구나……. 귀신이 나를 보러 왔어!”

 

 가만히 중얼거리던 그녀는 갑작스레 고개를 돌리더니 그들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쳐 보임이 확실했던 안색은 사라지고, 그녀는 분노에 찬 눈으로 해리와 루시우스를 계속해서 번갈아 쳐다봤다. 또 그러다가 갑자기 해리에게 시선을 고정하곤 인자한 얼굴로 변하며 미소를 지었다.

 

 “차를 마시는 건 어떠한지. 미안해요, 구원자 양반.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응접실까지는 내려가질 못하네. 대신, 여기 우리 남편의 서재에도 썩 괜찮은 찻잎이 있어.”

 “저는 괜찮습니다, 샤피크 부인.”

 “그래요? 오, 이런. 내 정신 좀 봐. 서 있지 말고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요.”

 “의자가 하나라서요. 말포이 씨가 앉을 곳이-”

 “저자가 앉을 곳은 이곳에 없네.”

 

 해리는 일전에 루시우스가 언급했었던 말이 기억났다. 그녀가 남편을 잃은 뒤 정신을 놓았다는 말이. 루시우스를 언급만 했을 뿐인데도 그녀는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처럼 미소를 지우고 해리마저 노려보았다. 루시우스는 그에게 괜찮다는 눈짓을 했고 어쩔 수 없이 해리는 혼자 의자에 앉아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분명히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노어는 옆에 있던 벽난로로 시선을 돌렸다. 명백한 거절의 의사였다. 이에 이유를 물으니, 그녀는 낮게 웃으면서 손뼉을 쳐댔다. 그리고 박수가 멈췄을 땐 사나운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아직 충분하지 않아. 그녀가 죽어야, 저자가 나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겠지. 내 불쌍한 남편, 우리 남편, 내 사랑…….”

 “나르시사는요? 그녀는 불쌍하지 않나요?”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듯 손을 모으려던 그녀는 석화 주문에 맞은 것처럼 행동을 멈췄다. 해리는 충분히 엘리노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그는 자신 또한 복수를 하기 위해 주문을 외쳤던 때를 떠올렸다. 내가 시리우스 블랙을 죽였다!

 하지만 해리는 그녀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판단했다.

 

 “남편분을 죽인 자는 아즈카반에 있어요. 20년을 선고받았죠.”

 “저놈이 그자에게 명령을 내렸어. 저놈이! 저놈도 같단 말이다!”

 “루시우스 말포이에게 죄가 없다는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당신이 엉뚱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거예요. 저주를 걸 거였다면 루시우스에게 걸었어야죠.”

 “난 저놈에게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을 주고 싶은 거지 죽어가는 고통을 주고 싶은 게 아니야!”

 “그 저주를 루시우스에게 걸었다면 저 남자는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의 얼굴을 보면서 끊임없이 고통받았을 겁니다.”

 

 옆에서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루시우스는 지금 이게 저주를 풀어 달라고 설득하는 것인지 아니면 저주를 옮겨달라고 얘기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을 언급만 해도 발작하듯 눈을 부라리는 노인의 탓에 루시우스는 섣불리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엘리노어는 언성을 높여 말한 탓에 기력이 달리는지 색색거리며 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화는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녀의 두 손은 주먹을 쥔 채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해리는 말하지 않았다.

 

 “……샤피크 부인, 나르시사는 전쟁을 끝낼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에요. 그녀가 없었더라면 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고, 전쟁은 졌을 겁니다.”

 “…….”

 “그리고 지금 그녀는 죽고 있어요. 그녀에겐 당신과 마찬가지로 아들이 하나 있고, 그 아들도 절 도와줬어요. 샤피크 부인, 죄송하지만 저에겐 그들을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어요.”

 

 엘리노어는 한참 동안을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눈을 감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벽난로는 어느새 장작이 거의 다 타버려서 빛을 잃고 있었다. 흐릿한 빛이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녀에게 건 저주를 풀어주마.”, 이윽고 벽난로의 불이 꺼졌다. 오, 멀린. 루시우스는 금방이라도 저주를 푸는 방법에 관해 물으려는 듯이 입을 열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이를 대체할 다른 것을 원한단다.”

 “다른 것이요?”

 “아즈카반에 있는, 내 남편을 죽인 녀석……. 20년이라고 그랬지. 나는 그 녀석이 그곳에서 죽었으면 좋겠구나.”

 “전 마법부에 관해선 잘 모르니, 그 부분은 루시우스가 해결할 거예요.”

 

 해리는 굳이 루시우스에게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분명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고, 말포이 가문은 전쟁 이후에도 정치에 있어서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었다. 루시우스는 확답을 바라는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의 강렬한 눈빛에 저택에 들어서고 나서 처음으로 말을 꺼내게 되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답을 들은 노인은 금방이라도 잠에 빠지려는 듯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그녀는 1주일이 지나면 나르시사가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란 말을 덧붙이고 나가라는 듯이 손짓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일어서던 해리는 갑작스레 자기 손을 잡아 오는 엘리노어를 향해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포터.”,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루시우스가 해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진정시키려는 듯이 힘을 주었다. 손을 붙잡기만 했을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노인을 보며 해리는 참고 있던 숨을 나즈막이 내쉬면서 천천히 지팡이를 허리춤에 있던 지팡이 홀더에 집어넣었다.

 

 “샤피크 부인. 혹시 할 말이 따로-”

 “미안하구려.”

 

 대뜸 사과하던 그녀는 양손으로 해리의 한손을 감쌌다. 지친 기색이 가득한 쉰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도대체 무엇에 대해서 사과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던 해리는 이에 관해 물어보려 했으나, 그녀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해리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 이리도 어린데……. 우리가 너무 큰 짐을 주었구나. 미안하고 고맙단다, 아이야.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소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처음 듣는 위로였다. 아니, 어쩌면 전쟁하는 와중에도 이러한 위로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가슴 한편에서 올라오는 두근거림에는 슬픔도 있었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존재했다. 해리는 애써 그녀의 손을 자신에게서 떼어내며 감정을 추슬렀다. 또다시 무언가를 잃을 위기를 겪을 순 없었다.

 “나르시사에 대한 것만으로도 보답이 되었어요.”, 혹여 다시 제 손을 붙잡을까 봐 한걸음 뒤로 물러난 소년은 한 번 더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저택 밖으로 나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둘 다 순간이동을 제정신으로 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포트키를 사용하여 말포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루시우스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언급하지 않았고, 해리는 더 이상의 볼일이 없음을 깨닫고 스네이프의 안부 인사를 전달한 뒤 그곳을 떠났다.

 해리는 목적지 없이 방황했다. 진정해. 심란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후드도 벗고 눈바람을 맞으면서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머릿속을 헤집는 짧은 한마디가 도통 사라지지 않았다. 안돼. 천천히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빨라지기 시작했고 도저히 걸을 수 없다고 생각이 될 때쯤엔 낯익은 녹턴 앨리에 도착해 있었다. 이런, 젠장. 그리고 낯이 익은 사람도 만나게 되었다.

 

 “오늘은 내 행운의 날인가 봐. 안 그래? 상태도 안 좋아 보이는데, 쉽게 끝내겠어.”

 “정말로? 지난번엔 친구를 데려와 놓고도 날 못 죽였으면서.”

 “아, 그거. 안 그래도 말이야-”

 

 조금 떨어진 골목에서 세 명의 사람이 더 나오는 것을 보며 해리는 속으로 자신을 욕했다. 지금 자신의 상황으로는 아무리 많아도 세 명을 상대하는 것이 한계였다. 뒤쪽 길을 통해서 다이애건 앨리로 갈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많은 사람이 다칠 게 뻔했다. 그리고 이곳은 녹턴 앨리였기 때문에 도움을 바라는 것은 가장 멍청한 짓이었다.

 오랫동안 해리 포터와 싸워왔던 남자는 기쁜 듯이 웃으면서 자신의 왼쪽 귀를 가리켰다. 그곳은 무언가에 의해 반듯이 잘려 나간 듯 깔끔하게 비어있었다. “이거 기억하지?”, 그 말과 동시에 싸움은 시작됐다.

 

 “리덕토*!”

 “프로테고, 스투페파이!”

 “봄바르-”

 “디펄소*!”

 

 뒤쪽에서 날아온 마법을 가볍게 막아낸 해리는 자신과 가장 멀리 있던 적에게 기절 주문을 날리고 근처에는 추방 마법을 사용하여 상대의 주문을 방해했다. 다수를 상대로 하는 싸움은 오래간만이었지만 몸에 밴 습관은 어디로 떠나지 않았고, 금방 한명에게 석화 주문을 걸어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적은 세 명이 더 남아있었다.

 단 하나의 주문이라도 맞으면 이 싸움에서 질 거란 사실을 알았던 해리는 이들을 잡아내는 것보다 도망치는 게 옳은 판단이라 생각하여 최대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며 빠져나갈 길을 살폈다. “던져!”, 그 순간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자신을 향해 날라오던 것을 막아낸 해리는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자주색 연기가 퍼지자 다급히 숨을 멈추고 최대한 연기에서 물러섰다.

 

 “임페리오*!”

 

 그리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되었다. 해리는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순간의 주춤거림은 어쩔 수 없었다. “크루시오*!”,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던 남자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온몸이 불에 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고통이 느껴지자 해리는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저주는 가혹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저절로 눈물이 흐르고 결국 손에서 지팡이를 떨어트리게 되어서야 저주가 멈추었고, 남자는 해리의 지팡이를 줍고서 소름 끼치는 웃음과 함께 기절 주문을 날렸다.

 시야가 까맣게 변하면서 해리가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안도감이었다. 고통이 사라질 거기 때문이었다.

 

 

*리덕토 : 단단한 물체를 부숴 잘게 조각내는 저주

*디펄소 : 마법에 적중한 대상을 밀어내는 주문

*임페리오 : 대상을 술자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해주는 세뇌 저주

*크루시오 : 대상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는 고문 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