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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12.


캘리포니아의 여름이 절정에 다다랐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랬고, 찌를 듯한 여러 갈래의 햇살이 투명한 유리를 뚫고 병실로 들어왔다. 은은한 미색 페인트를 칠한 벽면이 점점 달아올랐다. 

실내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자 공조기가 바빠졌고, 덩달아 기계의 소음이 커졌다. 아주 희미한 소리였지만, 잔뜩 신경이 곤두선 매버릭의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충분했다. 그는 눈이 부신 탓에 오른쪽 눈을 찡그린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벌써 두 시간째였다.

매버릭은 높디높은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은 욕구와 엄중한 감시에 놓인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다. 비행을 시도했다가 추락한 이후 눈을 뜨니 이곳이었고, 어디를 가나 ‘눈’이 그를 따라다녔다. 간호사, 의사, 경비, 가증스럽게도 환자복을 입고 어슬렁거리는 감시자들의 눈이.

‘눈’은 매버릭이 창밖으로 몸을 내던지지 못하도록 삼엄한 감시망을 곳곳에 깔아두었다. 그가 일주일째 머무는 이 병실은 창문이 고작해야 15㎝ 남짓 열렸고, 외출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간호사의 동행하에 병원 안뜰을 산책하는 것만이 허락되었다. 

심지어 날카로운 물건도 허락되지 않아서 면도를 할 때도 간호사가 보는 앞에서 단숨에 끝내야만 했다. 샤워는 더 까다로웠다. 기다란 샤워 타올도 목을 맬 위험이 있다며 손바닥 크기만큼 잘라서 줬다. 다행스럽게도 샤워를 할 때는 감시가 느슨해지지만, 대신에 경비가 문밖에서 매버릭이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눈’은 매버릭이 또다시 자살을 시도할까 우려하고 있었다.
매버릭은 어처구니없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도 ‘눈’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매버릭은 ‘눈’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비행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몸이 무거워서야.”

매버릭은 지난번 실패를 곱씹으며 원인을 분석하는 중이었다. 사육당하는 것과 다름없는 병원 생활에서 그가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날지 않아서 근육이 퇴화했을 거고, 그래서 지금 내 몸무게를 감당하기 벅찼던 거지.”

그의 앞에는 식어버린 점심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매버릭은 묽은 수프를 힐끔 곁눈질했다. 투명한 액체 위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에 무지개가 걸렸다. 매버릭은 무지개를 손에 쥐고 싶어서 조심스레 그 위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대위님, 식사 다하셨어요?”

밝은 금발 머리에 키가 크고 늘씬한 간호사가 똑 부러진 말씨로 매버릭에게 말을 걸며 안으로 들어왔다. 클레어는 가장 친절함과 동시에 가장 까다로운 ‘눈’이었다. 그녀는 말씨만큼이나 시원스러운 발걸음으로 매버릭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미첼 대위님, 식사 거르시면 이따 오후에 산책하실 수 없어요.”

클레어는 매버릭이 점심을 손도 대지 않은 것을 보고 대번에 쏘아붙였다.

“입맛이 별로 없습니다.”

매버릭이 작은 목소리로 대꾸하자, 클레어는 팔짱을 끼고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매버릭은 잠깐 망설이다가 빵을 덥석 쥐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입을 우물거리며 순식간에 퍽퍽한 빵 하나를 다 먹어 치웠다.

“이제 됐죠?”

매버릭은 손을 탈탈 털며 지친 얼굴로 말했다.

“저녁은 다 드셔야 해요.”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며 식판을 챙겼다. 이어서 그녀는 가지고 온 약을 꺼냈다.

“참, 이따 17시에 병문안 오시기로 한 분이 계세요.”
“예? 누구죠?”

매버릭은 클레어가 준 약을 받으며 물었다.

“그레이엄 도슨 씨요.”
“모르는 사람인데요.”

낯선 이름이었다. 매버릭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버니맨 대위님이요.”

클레어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매버릭은 민망해서 클레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늘 콜사인으로 서로를 부르다 보니 버니맨의 본명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그 친구요.”
“파일럿들 콜사인은 왜 다 이 모양이죠?”
“그러게요.”

매버릭은 시큰둥하게 대꾸하고는 약을 꿀꺽 삼켰다. 클레어는 고갯짓하며 매버릭에게 입을 벌리라고 지시했다. 매버릭은 한숨을 쉬며 어깨에 힘을 뺀 다음, 아이들이 거품 장난을 하는 것처럼 턱을 떨며 입을 벌렸다.

“아―”
“확인했어요. 그럼 이만 쉬세요.” 
“예.”

클레어가 자신의 장난을 무시하자 맥이 탁 풀린 매버릭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자 클레어는 생긋 웃으며 물었다.

“불 꺼드릴까요?”
“예, 고맙습니다.”
“잘 자요.”

클레어는 창가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내린 다음, 병실을 나서며 형광등을 껐다. 매버릭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 * *


노크 소리에 매버릭은 잠에서 깼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문밖에 사람에게 들어오라고 기척을 냈다. 문이 아주 천천히 열리고, 눈에 띄게 수척해진 버니맨이 평소 그와는 달리 힘없는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버니맨,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매버릭.”

매버릭이 반갑게 인사하자 버니맨은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매버릭은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버니맨은 잠깐 주저하다가 이내 넓은 보폭으로 침상으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나야 잘 지냈지. 그보다 기분은 좀 어때?”
“나쁘지 않아. 근데 등 뒤에 숨긴 건 뭐야?”
“음, 이거 말이지…….”

버니맨은 얼굴을 붉히며 장미 꽃다발을 쑥 내밀었다. 새하얀 크림에 녹색 잉크를 딱 한 방울만 떨어트린 듯한 은은한 연녹색 포장지가 어림잡아 스무 송이는 되는 붉은 장미꽃을 감싸고 있었다.

“그 꽃다발은 뭐야? 낯뜨겁게.”

매버릭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버니맨은 낯뜨거운지 씩씩거리면서 입을 쓸었다.

“빈손으로 오기 뭣해서.”
“고맙다.”

매버릭은 어색하게 웃으며 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꽃다발에 코를 묻었다. 싱그러운 꽃향기에 찌뿌듯했던 기분이 한결 산뜻해졌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리고, 녹색 눈동자는 총기로 반짝였다. 

이 세상에 복잡한 이해타산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한 잔잔한 표정.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꽃다발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과감했다. 버니맨은 멍하니 매버릭을 응시했다.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모의전은 어떻게 됐어?”

매버릭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버니맨은 여전히 꿈속을 거닐고 있었다. 눈앞에 아직 앳된 구석이 남은 오밀조밀한 얼굴이 몽환적으로 보였다. 아마도 평생 꿈꿔왔던 이상향. 처음 발 디디는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기묘한 향수.

버니맨은 어느 봄날의 충동에 휩싸여 갈팡질팡했다. 손을 뻗으면 사로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동시에 그래서는 안 된다는 죄의식이 그를 붙잡았다.

“……버니맨?”

매버릭이 몇 차례나 자신을 부르고 나서야 버니맨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는 숨을 고르며 애써 무덤덤하게 말했다.

“뭐, 네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어.”
“그럼 스트라이커가…….”
“아무래도 그렇지.”
“그래, 그렇게 됐구나.”

매버릭은 담담하게 말하며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러나저러나 스트라이커는 뛰어난 파일럿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말을 잃었다. 반가움은 잠깐이었고, 이 자리가 불편해졌다. 그들은 서먹서먹한 눈길로 서로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리기를 반복했다. 버니맨은 동그란 의자를 끌어다가 침상 옆에 두고 거기에 앉았다. 그러고 또 한참 말이 없었다.

“나 때문에 네가 두 배로 일하게 됐네. 그간 고생 많았어. 정말 뭐라고 사과를 해야 할지…… 여러모로 고맙다. 이번 기수 끝나기 전에는 퇴원할 것 같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복귀할게.”

침묵을 깬 것은 매버릭이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쾌활한 얼굴로 말했다. 자신이 추락한 것도 그저 지나가는 일상의 한 조각이었던 것처럼.

“매버릭, 미안하다.”

버니맨은 가슴이 욱신거려 다짜고짜 사과했다.

“정말 미안하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거듭 사과하는 버니맨에게 매버릭은 조금 볼멘 목소리로 물었다.

“그날 너한테 심한 소릴 했다. 뭐라 변명할 말이 없어. 정말 미안하다.”

버니맨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버니맨.”

매버릭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버니맨을 불렀다.

“난 죽으려고 그랬던 게 아니야.”

이어서 매버릭은 힘주어 말했다.

“그날, 네 말에 상처받은 것도 아니고.”
“미안해, 매버릭.”

하지만 버니맨은 좀처럼 매버릭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볼썽사납게 훌쩍여댔다. 그의 죄책감이 자신의 심장까지 옥죄어오는 듯해서 매버릭은 어서 이 울적한 대화를 매듭짓고 싶었다.

“정말 아니라니까. 인제 그만 사과해, 슬슬 화가 나려고 한다.”
“미안하다.”
“대체 왜 내 말을 못 믿어?”

매버릭은 답답한 마음에 기어이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난 날려고 했던 것뿐이야! 다시 비행하려고 재활 훈련을 했던 거라고, 죽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왜 다들 내가 자살 시도를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절박한 메아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 그리고 턱 끝에 매달린 눈물.
후텁지근한 공기와 헐떡거리는 숨소리.
서러운 울음이 바닥에 고여 웅덩이를 만들었다.
버니맨은 끝끝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매버릭은 역시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새라서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잘못이 아니다. 그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자신의 욕심이 문제였다.

 
* * *


새벽녘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날이 밝아오며 그쳤지만, 아직 더 흘릴 눈물이 남았는지 하늘은 흐렸다. 슬픔을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고, 매버릭이 퇴원하는 날이기도 했다.

아침에 병원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친 매버릭은 지긋지긋한 환자복을 벗고 그리웠던 청바지와 새하얀 반소매 티셔츠와 다시 만났다. 병원 사람에게 부탁해서 새로 산 옷은 예전에 입던 바지보다 허리둘레는 2인치 줄었고, 상의는 한 치수 작아졌다.

몸에 딱 맞는 옷을 걸치니 우중충한 날씨는 아무래도 좋았고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상쾌했다. 매버릭은 어서 병원을 박차고 나가 다시 날갯짓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11시 정각, 정복 차림의 니들 중령이 매버릭의 그런 꿈을 짓밟으려고 찾아왔다. 니들은 고목처럼 딱딱한 얼굴로 매버릭에게 안부를 물었고, 매버릭은 별다른 말 없이 몸 상태는 더없이 완벽하다고만 말했다. 금이 간 갈비뼈와 쇄골의 통증은 여전했고, 그밖에 경미한 부상과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두통도 여전했지만 말이다.

니들은 불편한 용건을 꺼내기에 앞서 자신의 개인적인 얘기를 하며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시도했다. 아내와 이제 막 성인이 된 딸 사이의 갈등, 고등학교 미식 축구팀 주장이라는 자랑스러운 아들 이야기 등이었다.

하지만 잔뜩 긴장한 매버릭에게 그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매버릭은 난해하게 흩어지는 단어의 파편을 자신이 새이기에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매버릭은 니들에게 자신이 새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매일 오후 의사와의 상담 시간에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새라는 사실을 말했다가는 군대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고, 되려 자신이 미쳤다며 손가락질할 것이 뻔했다. 얼마 전에 찾아온 버니맨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는가.

“……이번 일은 근무 중 실족으로 처리했네.”

한참 무의미한 이야기를 하던 니들이 이윽고 본론을 말했다.

“예.”
“부상으로 교관직을 더는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므로, 자네의 공석을 대신할 인물로 로저스 소령을 임명했네.”

니들은 감정이 조금도 실리지 않은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통보했다.

“예.”

매버릭은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다시 배치받을 때까지 한동안 근신하면서 머리 좀 식혀. 대외적으로는 자넨 부상으로 병가 중인 거야.”
“예.”

매버릭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매버릭.”

니들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매버릭을 불렀다.

“예.”
“자네 부친을 생각해서라도 다시는 어리석은 짓을 벌이지 말게.”

니들은 괴롭게 말을 이으며 매버릭의 어깨를 거머쥐었다. 힘이 실린 니들의 손끝이 송곳처럼 자신을 찌르는 것 같아 매버릭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니들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다갈색 눈동자는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매버릭은 니들의 시선을 회피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두 달 남짓 교관 생활도 끝이 나고 말았지.”

매버릭은 추억의 가장자리를 더듬으며 서글프게 미소 지었다.

혼도는 안경을 고쳐 쓰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매버릭의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매버릭은 교관직에 해임당한 것에 대해서 여러 사람에게 밉보였고, 충돌이 있었다고만 일축했다. 그래서 혼도는 이처럼 심각한 일이 있었다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매버릭이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은 그가 숨을 쉬는 것처럼 흔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혼도는 이따금 매버릭에게 드리워지던 우울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처럼 사라지던 그 그림자를. 그 그림자가 떠나고 나면 매버릭은 지독히도 외로워 보였다.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매버릭이 매번 달아나버려서 그러지 못했다.

혼도는 매버릭의 쓸쓸함이 바람처럼 자신을 스치는 듯해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말을 아꼈다.

“매버릭,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유감이야.”
“지난 일이야.”

매버릭은 콧잔등을 가볍게 쓸었다.

“그 인간은 어떻게 됐어?”

혼도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누구?”
“스트라이커.”
“아, 스트라이커? 그 일이 있고 몇 년 뒤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어. 94년이었나, 95년이었나…… 가물가물하네, 하도 오래전 일이라. 날씨가 엄청 추웠던 것만 생생하게 기억이 나.”

매버릭은 목덜미를 주무르며 말했다.

“날 보더니 무슨 유령이라도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짓더라. 아주 볼만했어.”

그리고 퍽 재밌다는 듯이 유쾌하게 웃었다.

“난 인사만 하고 지나칠 생각이었는데, 스트라이커가 날 붙잡더니 잠깐 시간이 되냐고 물었어. 얘기를 좀 하고 싶다고 말이야. 그래서 근처 카페에 들렀어.”
“얘기는 대체 무슨 얘기.”

혼도는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 매버릭은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무슨 일로 시애틀의 길거리를 헤매고 있던 건지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를 만나려고 했는지도. 

다만 매서운 바람과 추위는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렇지 않아도 추위에 약한 매버릭은 그때 자신이 몹시 짜증이 난 상태였고, 어김없이 날갯죽지가 콕콕 쑤셔왔던 것을 떠올렸다. 괜스레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 같아서 매버릭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예전 일을 사과하고 싶었대.”
“…….”
“난 자살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다들 내가 자살 시도를 했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아무리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지.” 
“…….”
“아무튼 스트라이커는 그 일로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나 봐. 내가 죽도록 싫었어도, 정말 죽길 바랐던 건 아니었던 거지.”
“죄책감을 느꼈으면 그때 사과했어야지, 몇 년이나 지나서 무슨 염치로? 뻔뻔한 자식, 순전히 자기 마음 편해지려고 사과한 거잖아.”

잠자코 매버릭의 말을 듣고 있던 혼도가 버럭 화를 냈다. 매버릭은 진정하라는 뜻으로 혼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혼도, 어쨌든 스트라이커는 사과했어.”

그때 기장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기장 스티븐 휴윗입니다.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저희 항공기는 잠시 후 착륙을 위해 강하를 시작하여 목적지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버지니아의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우중충했다. 그 여름날, 캘리포니아의 하늘처럼.

“알고 보니 스트라이커의 아버지도 해군이었어. 그것도 소장까지 오른 사람이었지.”

매버릭은 말을 돌렸다.

“부친이 아들 허물 덮으려고 힘 좀 썼겠군.”

혼도는 질렸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아마도?”

매버릭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스트라이커에겐 형이 둘 있는데, 형들도 다 군인이야. 혼도, 에드워드 데니스 소장 알지?”
“뭐? 그 인간?”

혼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어, 스트라이커의 큰형이래.”
“맙소사. 어쩐지 재수 없더라.”

혼도는 혀를 내두르며 안경을 벗어 던지고 마른세수를 했다. 에드워드 데니스 소장은 혼도가 막 준사관이 되었을 당시 그의 상관이었고, 혼도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던 인물이었다. 허구한 날 혼도를 불러세워 호되게 질책했고, 심지어 혼도의 안경테까지 지적했다. 그래서 혼도는 어울리지도 않는 무테안경을 쓰고 다녀야만 했고, 종종 동료들의 놀림거리가 됐다.

그때 당시 혼도는 자주 데니스 소장의 목을 조르는 꿈을 꿨다. 데니스 소장과 스트라이커가 형제지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대강 스트라이커의 번드르르한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러니 더더욱 스트라이커를 향한 분노가 거세어졌다.

“그럼 스트라이커는 지금 어떻게 지내? 간부 중에 존 데니스라는 사람은 못 들어봤는데.”

혼도는 간신히 감정을 추스르며 매버릭에게 질문했다.

“아, 그 친구는 걸프전에 파병 다녀온 이후 전역했어. 전쟁터에서 깨달았대. 자기는 군인 체질이 아니라고.”

매버릭은 덤덤하게 말했다. 혼도는 다소 놀라 작게 헛기침했다.

“스트라이커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던 거야. 아버지가 해군 소장까지 한 사람이고, 형들도 다 뛰어난 군인이니 애당초 인생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군인이 됐지만…… 군복이 몸에 안 맞았던 거지.”
“…….”
“그런데 하필이면 해사 출신도 아니고, 군의 골칫거리라고 소문이 난 놈이 미그기를 격추했대.” 
“…….”
“스트라이커는 나랑 동갑인데, 그 친구 아버지가 보기에 해사를 수석으로 졸업한 당신 아들이 나보다 대체 뭐가 못나서 여태 전공이 없나 애가 탔나 봐.”

매버릭은 사춘기 코흘리개처럼 킥킥거렸다.

“거기다 그 망나니가 떡하니 교관이 돼서 당신 아들을 가르치게 됐으니 얼마나 부아가 치밀었겠어?”

그렇게 말하며 매버릭은 혼도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밀쳤다.

“스트라이커 말로는…… 아버지한테 내 이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대. 끊임없이 비교당하면서 말이야.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이 그렇게 끔찍할 수가 없었대. 형들보다 못났다고 힐책을 듣고 나면, 내 이름이 나오니까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다 실패했나 봐.”
“그래서 너한테 억하심정을 품었던 거야? 자기가 못나서 그런 건데?”

혼도는 어처구니없어서 그만 맥이 탁 풀렸다.

“스트라이커에게 난 악몽이었던 거야.”

매버릭은 혼도를 먹먹하게 하는 ‘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너한테는?”

혼도는 조심스레 물었다. 매버릭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도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너한테 스트라이커는 어떤 사람이었지?”
“글쎄…….”

매버릭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창밖을 응시했다. 그는 한참 생각을 곱씹으며 뜸을 들였다. 혼도는 초조하게 매버릭을 지켜보며 그가 말하기만을 기다렸다.

“지난 일?”

이윽고 매버릭은 의문형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 중 하나를 시청률이 저조해서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없는 형편없는 드라마처럼 여기는 듯했다. 혹은 그렇게 치부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혼도는 매버릭에게 톰 “아이스맨” 카잔스키는 어떤 존재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매버릭의 대답이 두려워서 차마 묻지 못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아이스매브 아이스맨 매버릭
2024.03.20 23: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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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오셨다............ (기절)
[Code: a2c8]
2024.03.20 23: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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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쉿 내 센세 오셨다아아아아ㅏㅏㅏㅏㅏ
[Code: 5a57]
2024.03.20 23: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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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ㅠㅠㅠ나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구나ㅠㅠㅠ매브 회상 진짜 가슴 찢어짐ㅠㅠㅠㅠ복습하고 경건하게 정주행해야지ㅠㅠㅠ센세 이젠 어디가지말고 나랑 영원히 함께하자
[Code: e904]
2024.03.20 23: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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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다!!!내 센세랑 동접ㅠㅠㅠㅠㅠㅠ잠시 심호흡 좀 하고 정독해야지 ㅠㅠㅠㅠㅠ
[Code: 68d8]
2024.03.20 23: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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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매버릭 정말 한시도 눈을 뗄수없이 애처롭고 위태롭고 또 아름다워..... 병실에서 순간 버니맨이 넋 놓을만 해.... 자신을 괴롭힌 스트라이커 개인사정을 이해하려는 매버릭 대신해서 욕 퍼부어주고싶다 이유가 어쨌던 맵의 정신을 궁지로 몰아넣었잖아 ㅠㅠㅠㅠㅠ 이렇게 모든것이 특별한 매버릭에게 아이스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혼도처럼 그 대답이 두려워지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네.... 센세 다시와줘서 고마워
[Code: 0469]
2024.03.21 00: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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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매버릭에게는 버니맨이 혼도가 있었네 순간순간 버니맨처럼 혼도처럼 매버릭에게 매료되어 그의 곁을 지키는 이들도 많았을거라는게 위로가 된다 매버릭은 혼자가 아니었고 그를 밀어내려는 인간들만 있는게 아니었다는걸 매버릭도 이제는 알고 있겠지 그러니 담담하게 스트라이커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된거겠지
[Code: 885e]
2024.03.21 00: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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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커가 열등감으로 맵을 증오하고 괴롭혔다고 해서 그가 한 짓이 용서되지 않고 죄값을 제대로 받지도 않은게 아직도 분하지만 그렇게 변변치 않은 인간이라서 변변치 않게 살다가 죽겠지 싶어서 이제 그냥 화내는 것도 안하려고 매버릭은 새가 맞는 것 같아 너무 아름답고 특별해서 그에게 홀리는 사람들과 그 특별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는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Code: 885e]
2024.03.21 00: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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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매버릭이 이제는 좀 행복하고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센세 그렇게 해줄거지? 매버릭은 그럴 자격이 있잖아 그동안 외로웠던 만큼 행복하게 해주세요 ㅠㅠㅠㅠㅠ
[Code: 885e]
2024.03.21 00: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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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매버릭의 앞에 서면 넋을 놓고 매료될 수 밖에 없는데 매브는 스스로를 섞일 수 없는 새라고 생각하네 오히려 그런 이질감? 언제라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매버릭이란 사람을 신비롭게 만들기도,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 같은데 매브는 그저 외로울 뿐이고 ㅠㅠㅠ 자길 이해해주던 유일한 사람이 그렇게 갔으니 ㅠㅠㅠ 그리고 함께 삶을 꾸려가고 싶었던 그 사람은... 아이스가 어떻게 매브의 날개를 부러뜨렸는지 너무 궁금하다 ㅠㅠㅠ
[Code: 303b]
2024.03.21 02:07
ㅇㅇ
버니맨이나 혼도가 순간 순간 마주하는 몽환적인 지점들이랑 맵 스스로 본인이 새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어울려서
이쯤되면 맵 정체성이 새라고 해도 믿겠어

존잼이다 존잼이야
[Code: 18f0]
2024.03.21 04: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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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빨리 담편 들고 올줄 몰랐어 센세ㅠㅠㅠ 넘 좋다는 얘기ㅋㅋㅋ 맵 자살(?)소동 아이스도 들었을까ㅠㅠㅠ 다음편도 손꼽아 기다릴게 존잼ㅠㅠㅠ
[Code: 6ef4]
2024.03.21 20: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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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버릭은 인간의 모습을 한 새가 맞는 것 같아 버니맨이나 혼도는 그의 본질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라 매버릭에게 홀리는 순간들이 생기는거고 그에게 끌리는 거겠지 아이스는 그런 매버릭의 날개를 꺾어서라도 그를 인간으로 살게 하고 싶었던걸까? 다음 이야기가 너무ㅈ기다려진다 센세 빨리와 ㅠㅠㅠㅠㅠ
[Code: bd92]
2024.03.22 23:1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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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커 끔살엔딩을 바란 일붕으로서 조금 안타깝긴하지만ㅠㅠㅠㅠ이새끼 매브랑 동갑이었구나...뭔가 명문 군인 집안의 어정쩡한 실력의 소유자가 어떻게 매브에게 열등감을 갖는지가 싫지만 이해가돼서...아악! 이새끼 절대 이해해주고 싶지않았는데 센세의 미친 필력은 그것마저도 가능하게 하신다ㅠㅠㅠㅠ그래도 저자식이 목슴줄붙이고 제대할 수 있었던게 매브의 실족으로 처리됐고 그 집안이 이 일이 새나가지 않도록 필사의 실드를 친 덕분이겠지 저 일이 아이스 귀에 들어갔다면 스트라이커 목숨붙어서 제대는 완전 불가능이었겠죠 센세?ㅠㅠ
[Code: 5d77]
2024.03.22 23: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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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근데 버니맨이나 혼도가 매브에게 홀린다고 해야하나 매료되는 그 순간의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읽는 것만으로도 순간 그 둘의 시선으로 매브를 바라보게 돼ㅠㅠㅠㅠ그게 비단 반한다는 감정이 아니라 진짜 >>>>>처음 발 디디는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기묘한 향수<<<<<그 자체라ㅠㅠㅠ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재 그 자체 정말 매브는 새면서 신기루인 바라만 봐야 하는 존재네여ㅠㅠㅠㅠ아니 그럼 아이스는 새인 매버릭의 날개를 대체 어떻게 부러뜨리는 거임?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매브 그 자체가 돼버린 날개를 꺾는다는게 되는 거임? 차라리 진짜 날개면 꺾기라도하지 존재하지않지만 존재하는 날개를 어떻게? 그 정도는 해야 태평양함대사령관이고 아이스맨일 수 있는 거임?ㅠㅠㅠㅠ
[Code: 5d77]
2024.03.24 1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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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ㄷㄷㄷㄷㄷㄷㄷ개존잼
[Code: 5d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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