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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집으로 돌아온 매버릭은 지친 발걸음으로 창가로 향했다. 습관대로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려던 그는 반가운 손님을 발견했다.

“네가 이 시간에는 웬일이야?”

잭이었다. 매버릭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잭은 부리로 창틀을 두 번 콕콕 찍더니 무어라고 지저귀었다. 매버릭은 신기하게도 잭이 무어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뭐라고?” 

매버릭이 눈을 가늘게 뜨자 잭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먹고 싶다고?”

매버릭이 되묻자 잭이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다시 한번 지저귀었다. 그 지저귐은 명확한 언어로 매버릭에게 전달되었다. 잭은 아몬드와 캐슈넛을 먹고 싶으며, 자신이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잘게 쪼개어 주면 더 좋겠다고 덧붙였다.

“너, 말을 할 줄 알잖아!”

놀라움에 매버릭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가 멀뚱멀뚱 자신을 쳐다보고만 있자, 잭이 어서 달라고 재촉하며 매버릭의 손가락을 쪼아댔다. 잭은 귀여운 외모와 달리 신경질적인 새였다. “아프잖아, 이 자식아.”하고 매버릭이 새된 목소리로 외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극성을 부렸다.

성화에 못 이겨 매버릭은 황급히 부엌 찬장과 냉장고를 뒤졌다. 안타깝게도 아몬드와 캐슈넛은 집에 없었다. 대신에 눅눅해진 호두 두 알을 냉장고 한구석에 있었다. 매버릭은 급한 대로 호두를 잘게 부순 다음 잭에게 가져다주었다.

“미안. 네가 먹고 싶다는 건 없어. 이거라도 괜찮다면 먹어. 내일도 놀러 올 거면 마트에서 아몬드랑 캐슈넛을 사다 놓을게.”

매버릭이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 잭은 잠깐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윽고 호두 한 조각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 시원스레 꿀꺽 삼킨 다음, 능숙하게 남은 호두를 쪼아먹었다. 매버릭은 잭이 호두를 다 먹을 때까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손바닥만 한 작은 새가 허기를 달래는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살기 위해서 먹고, 잠을 자고, 날갯짓하고, 오로지 생존만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 어느새 매버릭은 자신의 걱정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사고도 둔해져 단지 살아있기 위해 숨을 쉬기만 했다.

약 십여 분쯤 시간이 지나고, 부스러기 한 알까지 깨끗하게 먹어 치운 잭이 매버릭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매버릭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잭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기계음 같기도 하고, 잡음 같기도 한 가냘픈 울음이 흘러들어왔다.

“……고맙다고?”

분명 잭이 자신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것 같았다. 매버릭은 잭이 인간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한 번 더 들으면 알 수 있을 듯해서 다시 얘기해달라고 말하려는 찰나, 잭은 훌쩍 날아가 버렸다. 매버릭은 한참 동안 창가에 서서 잭의 인사를 곱씹었다.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 * *


지긋지긋한 아침이 밝아왔다. 매버릭은 울적한 심정으로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찬물을 한참 맞으니 잠이 깼다. 하지만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죽을 것처럼 숨이 막혀도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매버릭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기분이었다. 아니다. 처음부터 세상은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사는 세상, 자신은 유리되어 평생 보이지 않는 벽을 두드리며 살아왔다. 누군가 자신의 외침을 들었다고 생각지만 착각이었다.

매버릭은 가까스로 옷을 갈아입고 출근할 준비를 마친 다음, 창가에 기대어 잭을 기다렸다. 잭을 만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손목시계의 시곗바늘이 야속하게도 움직였다. 이제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잭은 끝끝내 오지 않았다. 이만 관사를 나서야만 했다.

바이크에 시동을 거는 순간은 상쾌했다. 매버릭은 자신이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감각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격렬한 진동과 엔진의 우렁찬 굉음, 코끝을 스치는 매캐한 연기, 그리고 얼마 전에 교체한 탄탄한 바퀴가 반듯하게 포장된 도로 위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지평선 너머 높은 담벼락과 구불구불한 철조망이 보였다. 눈이 부신 햇빛 아래 삭막한 잿빛 건물이 기이하게 빛났다. 잿빛 벽면에 황금빛이 혼잡하게 뒤섞여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네모반듯한 정문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오래된 동굴의 입구처럼 보였다.

‘싫다.’

매버릭은 무심코 생각했다. 정문에 들어서기 싫었다. 일과를 시작하기 싫었다. 사람들과 부대끼기 싫었다. 속도를 낮추며 그는 이 불쾌한 기분을 떨쳐내고자 딴생각을 했다.

관사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잭에게 줄 캐슈넛과 아몬드를 사고, 우유 한 통을 사고, 신디에게 전화를 걸고……. 그리고 또 뭘 할 수 있을까. 

해가 저물고 잠들기 전까지 견뎌야 할 시간이 너무나도 길다. 막상 잠이 들면 깨어나는 것이 버겁다. 그리고 숨 막히는 ‘그곳’으로 가기 전까지 누리는 불안하고 평온한 시간은 너무나도 짧다. 이상한 일이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매버릭이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건물 안으로 들어온 후였다. 복도 저편에서 버니맨이 껄렁거리는 특유의 자세로 서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자세히 보니 훈련생이었다. 요즘 훈련생들은 버니맨과는 그럭저럭 교류하기 시작했다. 잘된 일이었다.

매버릭을 발견한 버니맨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언제나처럼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매버릭,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야.”

매버릭도 버니맨을 향해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는 자신이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버릭의 얼굴을 본 버니맨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유령처럼 공허한 얼굴. 자신이 아는 매버릭이 아니었다. 광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생기가 넘치던 얼굴은 흐리멍덩해졌고, 늘 반짝이던 눈동자도 탁하게 흐려졌다. 언제나 힘을 주어 다부지고 고집 있어 보이던 입꼬리도 힘이 빠져 축 처졌다.

“너…….”
“응?”
“…….”
“왜 그래? 할 말 있어?”

한참을 기다려도 버니맨은 말을 잇지 못하자 매버릭이 고개를 기우뚱거리며 물었다. 버니맨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몹시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삼키려고 입을 틀어막았다.

“이만 들어가자고.”

매버릭이 턱 끝으로 강의실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강의실로 들어가기에 앞서 조금 전 버니맨과 대화를 나누던 훈련생이 앞질러 들어갔다. 그는 매버릭을 힐끔 보더니 못 볼 것을 봤다는 것처럼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훈련생이 남긴 한숨이 매버릭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 * *


오늘도 훈련생들은 매버릭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매버릭의 목소리를 일상의 소음처럼 무시하며 자기들끼리 시선을 주고받기 바빴다.

스트라이커는 오늘따라 기분이 무척 좋았다. 책상에 느슨하게 팔을 괸 자세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그의 유쾌한 미소에 훈련생들도 덩달아 웃었고, 그들을 감싼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매버릭을 끊임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매버릭은 강의실이 정적으로 가득한 외딴 공간으로 느껴졌다. 자연의 구조물이 아닌 인공 구조물. 사방이 단단한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빛이 새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훈련생들의 얼굴만이 음산한 빛을 발산하며 둥둥 떠다녔다. 매버릭이 보기에 그들의 미소는 일그러진 가면처럼 보였다.

“…기존의 고도 제한을 해지하고…… 헉.”

매버릭은 내일 있을 모의전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숨이 턱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명치가 무거운 돌에 짓눌린 것처럼 아팠고, 폐가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매버릭은 어떻게든 숨을 들이켜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진 것을 본 버니맨이 대신 나서서 설명을 마쳤다.

교육이 끝나고 훈련생들은 스트라이커를 앞세워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스트라이커, 오늘 한잔 어때?”하고 누군가 물었고, 스트라이커는 “좋지.”하고 시원스레 대답했다.

그들은 지난번에 펍에서 꼬신 여자 얘기며, 요즘 만나고 있는 여자와 조만간 끝을 낼 거라는 다짐이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 정신이 팔려 모의전을 앞두고도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술을 마실 생각뿐이었다. 훈련생들의 포탄처럼 요란스러운 발소리가 이내 잠잠해지자 버니맨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분통을 터뜨렸다.

“저 개자식들 더는 못 봐주겠어. 니들한테 정식으로 말할 거야.”
“왜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 거지.”
“뭐라고?”

매버릭이 딴소리를 중얼거리자 버니맨은 갈라진 목소리로 날카롭게 되물었다. 매버릭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둥그스름한 어깨가 축 처졌다. 체념한 투로 매버릭은 말을 이었다.

“훈련생들이 왜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그야 저 자식들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런가?”

분개하는 버니맨을 아랑곳하지 않고 매버릭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혼잣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버니맨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곱씹는 매버릭을 보고, 버니맨은 기시감이 들었다. 아침에 매버릭을 보고 느꼈던 두려움과 불길함이었다.

“나도 저 친구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어.”

매버릭은 힘없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눈치껏 반응하고 있기는 한데, 난 원래 좀 둔하거든. 아마도 내가 저 친구들 듣기에 기분 나쁜 소릴 했나 봐.”
“매버릭,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버니맨은 매버릭의 어깨를 낚아채고 성난 음성으로 그를 다그쳤다.

“정신 차려, 인마. 네가 이렇게 기운 빠져있으니까 저 자식들이 더 기세등등해서 시건방지게 구는 거 아니야!”

매버릭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는 깜짝 놀란 모양인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체 요즘 왜 그래? 너답지 않게, 어! 왜 저딴 자식들한테 설설 기는 거야? 겁이라도 먹었어?”

버니맨은 매버릭을 거칠게 흔들어대며 소리를 질렀다. 분노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 매버릭은 지레 겁이 났다.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쩌렁쩌렁 울리니 등줄기가 절로 서늘해졌다. 버니맨의 사나운 눈초리에 팔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숨이 막혔다.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분명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인데. 

“……매버릭?”

매버릭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챈 버니맨이 얼른 그를 놓아주었다.

“흥분해서 미안하다.”

버니맨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사과했다. 뒤로 물러난 매버릭은 나달거리는 정복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요즘 좀 피곤해서 그런가 봐.”

그의 미소는 제발 자신을 나무라지 말라는 애원처럼 보였다. 상대가 화를 내지 않길 바라며 몸을 낮추고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른 인간인지 필사적으로 피력하는 모습. 비굴하고 서글펐다. 버니맨은 매버릭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았고, 복잡한 심경으로 말을 돌렸다.

“병원에는 가 봤어?”
“어어.”

매버릭은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의사가 뭐래?”
“그냥 스트레스. 푹 쉬라고 하더라.”
“정말 그렇게만 말하던?”

버니맨이 눈을 가늘게 흘기며 못 믿겠다는 듯이 되묻자 매버릭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밀쳤다.

“뭐야, 버니맨. 어째 아쉬운 눈치다? 내가 중병이라도 걸리길 바란 거야?”

장난기 가득한 말투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매버릭은 과거의 자신을 흉내 내고 있었다. 남들이 바라보는 자신이 대충 이런 모습이려니 생각하며 연기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공허한 울림에 버니맨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매버릭과 더는 대화가 힘들다고 판단한 버니맨은 “우리도 이만 가자.”하고 등을 돌렸다.



11.


지금 매버릭은 어둠이 내려앉은 기지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드문드문 불이 켜진 건물이 어두운 바다의 등불처럼 빛났고, 그 빛이 닿는 곳에 하루를 끝내지 못한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매버릭을 스쳤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정처 없이 어둠을 헤치며 나아가던 매버릭은 몇 년 전에 폐쇄한 건물 앞에 다다랐다. 그 순간 바람이 멎었다. 뺨을 할퀴던 날카로운 소리도 그치고 대신에 온화한 먼지가 그의 몸을 감쌌다.

고즈넉하고 쓸쓸한 폐허는 별빛으로 반짝였다. 줄곧 땅만 보며 걸었던 매버릭은 고개를 들었다. 아마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을 지켜왔을 폐허에는 아련한 과거의 향수가 맴돌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바람은 처음부터 자신이 이곳에 오기를 바랐던 것 같다.

“기지에 이런 곳이 있었나?”

매버릭은 폐허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건물의 정문 앞에는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고, 그 주변에 키가 작은 덤불이 우거져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라 풀들은 제멋대로 뻗어 있었다.

어떤 이유로 폐쇄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매버릭은 이 아름다운 폐허가 사람들로 붐비는 활기찬 곳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얼마 만에 느끼는 평온함인지 모르겠다. 족쇄가 채인 것처럼 무거웠던 두 다리가 한결 가벼워졌고, 숨을 쉬기도 수월했다.

“이봐.”

매버릭이 건물 뒤로 이동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말소리가 그를 돌려세웠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매버릭은 말소리의 주인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위를 봐.”

다시 말소리가 매버릭을 불렀다. 매버릭은 지시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새 한 마리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온몸이 밤하늘처럼 새카만 까마귀였다. 동그란 두 눈은 유리알처럼 빛났다. 

‘설마 저 까마귀가 나를 부른 건가?’

매버릭은 믿을 수 없어 두 눈을 비볐다. 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미쳐버린 걸지도 모른다. 자주 보던 잭도 아니고 오늘 처음 본 까마귀가 말을 걸다니.

“왜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거지?”

그런 매버릭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까마귀는 깨끗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매버릭은 지금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날갯짓하는 법을 잊었나?”

힘없이 말하는 매버릭에게 까마귀가 물었다.

“날갯짓이라니?”
“하늘을 날아야지.”

까마귀는 힐난하는 투로 말했다.

“이제 전투기를 못 타겠어. 못 탈 거야. 아니, 타고 싶지 않아. 지긋지긋해. 정말 그만둬야 하나 봐. 트럭 운전이라도 알아봐야겠어.”

매버릭은 자신을 향한 비난이 지긋지긋해서 울분에 찬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빈말이다. 전투기를 타지 못한다면 자신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전투기를 조종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전투기에 오르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텅 비었고, 조종간을 잡으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 도무지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의 절망이 두려워 매버릭은 달아나고 있었다.

“우리에겐 날개가 있잖아.”

까마귀가 말한 ‘우리’라는 단어에 매버릭은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뭐?”

매버릭은 울컥해서 목이 멘 소리로 되물었다.

“부러졌어도 포기하지 마, 친구.”

까마귀는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로 매버릭을 친구라고 불렀다. 그래서 매버릭은 그만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고 말았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우리는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해.”

까마귀는 계시처럼 말했다.

“살고 싶다면 다시 날아.”

그리고 밤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아, 그랬구나.”

매버릭은 전율했다.

“그래서였어.”

매버릭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하게 웃었다. 치밀어 오르는 고양감에 몸이 뜨거워졌고 가슴이 벅찼다. 머릿속에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맑아지며 정말 오랜만에 활기에 넘쳤다. 미그기를 격추했던 순간 느꼈던 짜릿함과 통쾌함, 그리고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이 감각. 뜨거운 눈물이 매버릭의 얼굴을 적셨다.

이제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 새였다.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서 위화감을 느꼈고, 그래서 자신을 배척한 것이다.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이므로 애당초 어울릴 수 없었던 것뿐이다.
종을 초월한 사랑이 있다지만, 꿈같은 이야기다.
모두가 다름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순 없다.
모든 존재는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상대를 바란다.

매버릭은 자신과 같은 꿈을 꾸었던 어느 인간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떠올랐다.
목이 부러진 채 바닷속에 잠기어 피 흘리던 그 얼굴.
파도에 휩쓸려 영영 사라질까 봐 죽을힘을 다해 그 몸뚱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사랑했고 사랑하는 인간.

“그래, 날개가 부러져서 구스를 구하지 못했던 거야.”

매버릭은 이제 괜찮았다. 자신이 외롭게 방황하던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었으니 다 좋아졌고, 더는 괴롭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날갯죽지가 따끔거렸다. 망가진 날개가 퍼덕거리고 있었다. 살고 싶다는 욕망과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충동이 매버릭을 부추겼다. 그는 건물의 정문을 향해 뛰었다. 굳게 닫힌 문을 가까스로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본능적으로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숨이 가쁜 줄도 모르고 매버릭은 계단을 올랐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었다. 1층을 지나 2층, 3층…… 마침내 매버릭은 옥상으로 향하는 입구에 다다랐다. 그는 거추장스러운 다리를 움직여 밖으로 나갔다.

상쾌한 공기가 가장 먼저 매버릭을 반겨주었다. 헐벗은 옥상 여기저기에 이름 모를 잡초가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야속하게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살갑게 속삭이는 바람이었다. 잡초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아름다웠다.

매버릭은 난간 위에 올랐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은 그는 그제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흘러내린 땀을 훔쳐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지상은 환상적이었다. 높다란 하늘은 그보다 더 아름답고 찬란했다.

죽으면 더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다시 날아야 한다.

매버릭은 망설임 없이 허공에 몸을 던졌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환희가 매버릭의 심장을 뛰게 했다. 
하지만 허공에서 만끽하는 자유는 찰나였고, 매버릭은 그대로 추락했다. 

힘없이 떨어지던 그의 몸이 곧게 뻗은 굵직한 나뭇가지에 걸렸다. 충돌하는 순간 충격에 매버릭은 더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매버릭이 바동거리자 와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가 부러졌고, 그의 몸이 거꾸로 뒤집혔다.

더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점점 멀어졌다. 새카만 지상이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매버릭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아이스매브 아이스맨 매버릭
2024.03.20 00: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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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내센세오셧다
[Code: 3ec8]
2024.03.20 00: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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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매브야......ㅜㅜㅜ༼;´༎ຶ ۝ ༎ຶ༽༼;´༎ຶ ۝ ༎ຶ༽༼;´༎ຶ ۝ ༎ຶ༽༼;´༎ຶ ۝ ༎ຶ༽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들과 달랐던 한 마리 새라는 생각까지 해야만 겨우 그 짙은 아픔이 잊혀지는 거였냐고ㅠㅠㅠㅠㅠㅠ 자신이 몸담아야 할 곳이 남들처럼 땅 위가 아니라 저 텅빈 허공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계단을 박차고 올라가 기쁘게 뛰어내렸을 매브 생각하면 ㅈㄴ 슬퍼서 눈에서 용천수가 흐른다 시바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이스 어딨냐 어름아 지금 매브 속이 완전 말이 아니라거ㅠㅠㅠㅠㅠ애가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렸는데 어름이 외출동않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ec8]
2024.03.20 00: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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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ㅏ 내 센세 오셨다 첫댓이라니 이런 영광이 절받으새오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52b6]
2024.03.20 00: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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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기다렷어요 .............
[Code: 296c]
2024.03.20 00: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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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날개가 부러져서 구스를 구하지 못했던 거야.”

지금 눈물이 앞을 가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구스의 죽음은 매버릭에게 정말 큰 상처고 트라우마 였나봐 삶이 단번에 무너져버릴정도로.... 매브가 환청을 듣는건지 안쓰러워죽겠네 차라리 정말 인간으로 잘못태어난 새였으면 좋겠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크게 다친것같은데 다음편에선 아이스가 찾아오려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다시와줘서 정말 코맙조 또 기다릴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96c]
2024.03.20 00: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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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가 다시 올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으아아아아앙ㅇ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 센세가 왔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7379]
2024.03.20 00: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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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이즈 댓 유??? ㅠㅠㅠㅠㅠㅠㅠ기다렸어 ㅠㅠ 기다렸다고 ㅠㅠㅠㅠㅠ
[Code: 6db0]
2024.03.20 00: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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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 센세 내센세 맞는거지? 나 지금 울어 ㅠㅠㅠㅠㅠㅠㅠ내 센세를 만나려고 이 시간에 햎에 접속했구나 내가 ㅠㅠㅠㅠ센세 지하실까지 레드카펫 깔아놨어 거기서 푹 쉬고 있어 절대 어디 가면 안된다? 이제 감상하러 가야지
[Code: 6b36]
2024.03.20 00: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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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 매버릭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지? 왜 죄없는 사람만 고통받고 상처입고 그마저도 자기탓을 하면서 자꾸 절벽끝으로 몰리고 또 몰려야 하는거야 너무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어서 숨도 못쉬겠어 센세 매브 살려줘 이대로는 너무 가엾잖아 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b36]
2024.03.20 00: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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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구스의 죽음 이후 마음이 다친 매버릭인데 이제 혼자서 스트라이커 무리같은 개새끼들에 의해 몸도 다치고 영혼까지 죽어가고 있는게 보여서 그걸 지켜보는 것도 괴롭고 힘들어 환청을 듣고 내가 사람이 아니라 새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말을 못알아듣고 친절하지 않았던거라고 자위할만큼 마음이 망가져버렸어 차라리 진짜 매브가 새였으면 좋겠다 매브 행복하게 해줘 진짜 눈물나서 미치겠다 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b36]
2024.03.20 00: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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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죽음 이후로 제대로 애도할 시간도, 그의 죽음을 인정할 시간도 없이 사지로 끌려갔던 매브는 결국 파일럿으로서의 자아까지도 흔들리고 말았네 ㅠㅠ 낭떠러지에서 결국 떠밀리고만 날개다친 새라니 ㅠㅠㅠ스스로의 상태를 제대로 인지도 못 하자나 ㅠㅠㅠㅠㅠㅠ 어름아 뭐하냐 ㅠㅠㅠㅠ
[Code: 6db0]
2024.03.20 00: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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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내가 얼마나 센세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지 센세는 모르실거야ㅠㅠ센세 오실 때까지 숨참기하다가 삼도천 건너는 줄...ㅠㅠㅠㅠ하...센세ㅠㅠㅠㅠ센세가 기어이 나붕을 슬픔에 빠져죽이려고 하시는구나ㅠㅠㅠㅠ매브 어쩌나...아니 저 허섭쓰레기 훈련생들 다 합쳐봤자 매브 능력의 백분의 일도 안될텐데 저런것들이 탑건 훈련생들이라니ㅠㅠㅠㅠ이 사태를 적국이 기뻐합니다ㅠㅠ하필이면 저것들이 구스 죽음을 건드려서...매브 상태 어떡하나ㅠㅠㅠㅠ몰리고 몰리고 몰리다가 자신이 새라고 생각하다니ㅠㅠ새가 말하는게 들린다고 여기는 것도 사실 심각한 증상 중 하나 아닌가?ㅠㅠ매브의 정신이 붕괴하는 과정이 너무 생생해서 읽는 나붕도 미치는줄...ㅠㅠㅠㅠ근데 그 과정이 또 미치듯이 슬프다ㅠㅠ
[Code: 39be]
2024.03.20 00: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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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브가 허공에 몸을 던진게 죽으려고가 아니라 살려고 한 행동이었다는 데서 나붕 벌통 뿌심ㅠㅠㅠㅠ하늘을 나는게 매브에게는 너무 간절한 일이어서 찰나였지만 허공을 날았던 순간이 혹시 지속되지 않을까 잠깐 기대마저 했음ㅠㅠㅠㅠ우리 매브 날고싶다잖아요ㅠㅠ그냥 쭉 날게 해주세요 간절히 바랐는데 이 눈치없는 중력이ㅠㅠ매브가 추락하는 순간 숨멈추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굵직한 나뭇가지가 받아줬구나ㅠㅠ아직 이 모든 사태를 모를 아이스 대신인듯 느껴져서 그래도 살짝 안도했음ㅠㅠㅠㅠ아이스야...아직도 항모에 있니?ㅠㅠ항모에 있는 전투기 하나 탈취해서 저것들 조준사격하자ㅠㅠㅠㅠ
[Code: 39be]
2024.03.20 06: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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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브 탑건 교관있을때 진짜로 이랬을거 같아서ㅠㅠㅠㅠㅠ 몰입도 쩔어서 한문장 한문장 소중히 읽었어 센세ㅠㅠㅠ
[Code: a973]
2024.03.20 07: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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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새가 됐으면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7db8]
2024.03.20 09: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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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브 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3a5]
2024.03.21 01:11
ㅇㅇ
와 대박이다 이거 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ㅌ

나 왜 이거 이제야 봤냐 . 몰입하면서 봤어
[Code: 0fbc]
2024.03.21 12:1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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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이가 얼른 해감시켜주면 좋겟다 ㅠㅠㅠㅠㅠㅠㅠ 어딧냐 이놈아 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나 너무 속상해 우리 매브 슬픈거 보기 힘듦
[Code: cc81]
2024.03.24 12: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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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ㄷㄷㄷㄷㄷㄷㄷㄷ
[Code: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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