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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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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위로 노부가 늘 하고 다니는 새카만 망토가 드리워지며 마치다를 꽉 끌어안는 든든한 품이 느껴졌다. 

"노부."

마치다가 고개를 휙 돌리자 어린 시절에 갇혀 살면서도 늘 마치다만 보면 헤헤 웃던 귀여운 얼굴 대신 완전히 성숙해진 남자가, 그러나 여전히 마치다를 볼 때는 커다란 눈속에 애정과 기쁨이 가득해지는 남자가 품 안에 마치다를 꽉 끌어안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노부는 눈물로 푹 젖어 있는 마치다의 뺨을 한 손으로 정성스럽게 닦아주면서도 다른 손을 들어 여전히 불길이 사라지지 않는 마치다가의 저택 쪽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커다란 검은 장막이 생기더니 불길이 치솟고 있는 저택 전체를 덮었다. 그리고 절대로 꺼질 것 같지 않던 불길이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노부, 엄마가! 아빠가!"

마치다가 울먹거리자 노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눈물이 퐁퐁 솟는 마치다의 눈가를 닦아줬다. 

"그대의 가족과 마치다가의 사람들 모두 안전하게 있을 것이오. 서둘러 가느라 그대에게 미처 말을 못하고 갔지만 그대가 쓰던 공방에 결계를 걸어두고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모두 그곳에 들어가 있으라 하였소. 그 결계는 불길도 충분히 막아내는 것이니 모두 무사할 것이오."
"정말? 진짜로?"

노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막을 다시 거둬들였다. 그러자 불에 새카맣게 타 버린 잔해 끝, 마치다가 햇빛이 잘 드는 침실을 포기하고 대신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지정해서 만들었던 공방의 벽이 그을린 흔적도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게 보였다. 공방 주위의 모든 것이 다 타 버려서 벽만 남은 공방은 낯설었지만 마치다가 결혼 전 매일 드나들던 공방의 문은 그대로였다. 

마치다가 눈을 깜박거리며 그 공방을 보고 있자 노부가 다시 눈물로 푹 젖은 마치다의 뺨을 닦아줬다. 

"그러니 이제 그만 우시오. 그대가 울면 내가..."

그때 공방의 문이 빼꼼 열리더니 형의 얼굴이 보이고 곧 가족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하나씩 나왔다. 가족들 뒤로 마치다가의 사용인들도 겁에 질린 얼굴로 속속 나올 때 마치다의 어머니에게 안겨 있던 마치다의 어린 조카가 마치다에게 달려왔다. 

"삼촌!"

마치다가 무릎을 굽혀서 달려오는 조카를 안아주자 조카가 마치다에게 안긴 채 와다다다 말을 쏟아냈다. 갑자기 불이 나서 너무 무서웠는데 할아버지가 공방에 가 있으면 괜찮다고 대공 전하가 결계를 쳐 줬다고 해서 다 공방에 가 있었다. 진짜 전혀 뜨겁지도 않고 연기도 안 들어와서 너무 신기했다. 삼촌은 괜찮은지 너무너무 걱정했다.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삼촌 걱정했다. 마치다가 그렇게 떠들어대던 조카의 말랑한 뺨에 입을 맞춰주고 있을 때 조카의 머리를 어색하게 쓰다듬어주고 있던 노부가 조카가 꼭 쥐고 있는 작은 주먹을 가리켰다. 

"뭘 들고 있는 거지?"

그제야 마치다도 조카가 꼭 쥐고 있는 주먹 사이로 까맣게 반짝거리는 게 보여서 조카의 눈을 들여다봤다. 

"다이키치, 이거 뭐야?"
"이거 우리집에 불낸 나쁜 놈이 던진 거야!"
"뭐?"

노부가 커다란 손바닥을 펼치자 조카가 노부의 손바닥에 깨진 블랙 다이아몬드 조각을 올려놨다. 노부는 블랙 다이아몬드 조각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마치다는 깨진 조각만 흘긋 보고도 이 블랙 다이아몬드가 라소르산이 아니라 정글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보석가공사에게 원석이나 가공된 보석을 보고 원산지를 알아내는 건 기본 소양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라소르제국에서 블랙 다이아몬드를 받아서 노부를 위해 가공하면서 라소르제국산 블랙 다이아몬드에 대해서는 낱낱이 파악했기 때문에 이게 라소르제국산이 아니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라 전체가 신성력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인지 어째서인지 라소르제국에서 보낸 보석들은 전부 안에 불순물이 없고 깨끗한 상태였다. 하등품이어도 투명도나 색감의 차이 때문에 등급이 나눠질 뿐 불순물이 있는 경우는 없었는데 이 블랙 다이몬드는 조각임에도 안에 불순물이 꽤 보였다. 

마치다는 여전히 목을 쥐고 켁켁거리고 있는 3황자를 돌아봤다. 

"라소르제국의 블랙 다이아몬드는 구할 수 없었나 봐?"

3황자는 여전히 켁켁거리고 있었지만 휙 고개를 들어서 마치다를 바라보는 3황자의 눈이 커다래지는 게 보였다. 

"들킬 줄 몰랐어? 보석가공사를 너무 무시한 거 아냐?"
"이 불을 낸 게 나라는 말인가, 마치다 케이타."
"너니까 블랙 다이아몬드를 썼겠지. 노부, 아니 스즈키 대공은 블랙 다이아몬드로 화염술을 못 써."
"지금 증거가 뻔히 있는데!"

그러면서 3황자는 마치다 케이타의 힘에 목이 졸리면서도 쥐고 있던 블랙 다이아몬드를 내밀었다. 웃기고 있네. 조카가 들고 온 조각이 꺼지지않는불길을 시전할 때 쓴 진짜 매개채가 맞을 것이었다. 누군가 그 보석을 던져서 깨뜨리는 걸 조카가 직접 봤다고 했으니. 그리고 3황자가 쥐고 있는 건 노부가 다른 데서 다른 술법을 시전할 때 사용하고 깨진 블랙 다이아몬드 조각을 주워서 가지고 있다가 마치 화재 현장에서 주운 것처럼 가지고 왔겠지. 게다가 노부는 정말로 블랙 다이아몬드로는 화염술을 쓸 수 없었다. 노부가 화염술을 쓸 때 사용하는 매개는 블랙 루비였다.

마치다는 노부의 손에서 깨진 블랙 다이아몬드 조각을 들고 3황자에게 보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여기 네가 쓴 꺼지지않는불길 술법이 담겨 있겠지. 네가 손에 들고 있는 건 노, 스즈키대공이 다른 술법을 쓰고 깨진 걸 주워다 놨을 테고."
"황자에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마치다 케이타. 말투는 또 왜 그 모양인가. 그 불손한 발언들은 책임질 수 있는가."

억지로 강한 척해보고 있지만 마치다가 든 블랙 다이아몬드를 바라보는 3황자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너는 힘이 콩알만해서 다이아몬드로도 화염술을 쓸 수 있겠지만, 놉, 아니 스즈키 대공은 힘이 너무 강해서 다이아몬드로는 화염술을 쓸 수 없어. 왠지 알아?"
"..."
"다이아몬드는 불에 타기 때문에 다이아몬드는 스즈키 대공의 화염을 감당하지 못하거든. 넌 보석술사라는 게 보석의 특징도 몰라? 하긴 네 힘이야 뭐... 약하니까 상관없겠지. 그러니까 진짜 불지르는 데 사용한 이 블랙 다이아몬드는 스즈키 대공의 힘일 수가 없어. 약해 빠진 네 힘이-"

그 순간, 3황자의 화염술이 마치다에게로 날아왔다. 진실을 떠들어대는 마치다의 입을 막고 싶었던 건지 마치다가 들고 있는 진짜 증거를 없애 버리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3황자의 화염술은 마치다에게 닿지 못했다. 3황자의 손에서 뻗어나온 불길이 채 손을 떠나기도 저에 노부의 방어막이 노부와 마치다, 다이키치를 감싸며 화염술을 튕겨냈다. 방어막에는 공격을 반사하는 힘도 들어가 있었는지 그 불길은 그대로 3황자에게 돌아갔다. 마치다가 3황자에게 약해빠진 놈이라고 계속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3황자는 라센느제국 2인자였고 화염술은 노부에게는 미치지 못해도 당연히 아주 강했는데 그 강한 화염술을 그대로 되돌려받은 3황자의 몸에서 불길이 확 타올랐다. 

그리고 그 불길은 바로 꺼졌다. 불이 붙어서 발광하고 있던 3황자가 스스로 끈 건 아니었다.





검은 망토 위로 복잡한 무늬를 그리며 반짝이고 있는 금사들이 아니었으면 사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온몸을 새카만 색으로 휘감은 신관들이 마찬가지로 검은 창과 방패를 들고 열을 맞춰서 다가오더니 불에 타 버린 마치다가의 저택 주위를 빙 둘러쌌다. 그리고 후드를 완전히 뒤집어써서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제일 앞에 서서 대치하고 있는 세 사람과 다이키치를 바라봤다. 

"아가는 부모님에게 가 있거라."
"저 아가 아닌데요."

다이키치는 소리를 빽 지르더니 마치다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우리 삼촌 잡아가지 마세요."
"나는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아니면 잡아가지 않는다. 네 삼촌이 나쁜 짓을 했나?"
"아니에요! 다른 나쁜 사람이 이거 던져서 불냈어요. 우리집 다 불탔어요."

다이키치가 마치다가 쥐고 있던 블랙 다이아몬드를 쥐고 소리를 지르자 남자는 옆에 서 있던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후드를 깊게 눌러써서 눈을 가린 여자 신관이 다가오더니 다이키치의 손에서 블랙 다이아몬드를 빼 가려 했다. 노부가 흠칫 놀라며 막으려 했지만 마치다는 노부의 손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노부. 저 사람이 대신관이야."

라센느제국에서 사제들이 하는 일이라곤 결혼 선언밖에 없는 것 같지만, 설마하니 정말 그런 이유로만 신전이 유지될 리는 당연히 없었다. 물론 일반 신관들은 정말로 평생 교리를 읽고 소소하게 교리나 전파하고 결혼식이나 주재하면서 일생을 보내지만 신전의 진짜 존재 이유는 보석술사의 통제를 위해서였다. 통제하는 세력이 없으면 강한 힘을 가진 보석술사들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 모르니. 그래서 대대로 대신관은 혼돈의 보석술사처럼 보석술사의 능력을 앗아가거나 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보석술사의 각성을 유도하는 건 혼돈의 보석술사만이 가진 힘이었지만. 그리고 대신관 직속의 부대에 속한 신관들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저 방패, 보석술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있는 방패를 항상 들고 다녔다. 

현재의 대신관은 아몬 코타로로 마치다가 어릴 때부터 혼돈의 힘이 너무 강하니 자기 밑에서 수련하며 다음 대신관이 되라고 계속 권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다이키치, 보석을 드리고 엄마한테 가 있어."

마치다의 말에 다이키치가 보석을 건네주고 제 엄마아빠한테 도도도 뛰어가자, 노부가 다시 돌아가려는 신관을 불렀다.

"XX인근에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말을 듣고 토벌하러 갔는데 출몰 현장에 이게 있었습니다."

노부가 깨진 루비 조각을 건네자 신관은 그 루비도 함께 받아들었다. 

"따뜻한 지역인데 냉기를 뿜어내는 몬스터들이 출몰했었고 숲이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일단 몬스터를 토벌하고 지역 관리들에게 숲을 오가는 이가 없도록 지키고 있으라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공."

신관이 아몬에게 가서 블랙 다이아몬드 조각과 루비 조각을 건네자 아몬은 다른 신관에게 다시 고개짓을 했고 그 신관은 3황의 손에 들고 있던 블랙 다이아몬드 조각을 받아와서 아몬에게 건넸다. 아몬은 손에 든 보석 조각 3개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직접 3황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뭐라고 길게 말했는데 그게 3황자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나름 황실의 핏줄이라서인지 이름이 말도 안 되게 길었다. 마치다는 3황자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는데 아몬 대신관은 그 긴 이름을 다 부르더니 3황자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3황자의 몸에 반짝거리는 검은 줄이 휘리릭 감겼다. 

"이게 무슨 짓이오, 대신관!"
"내가 대신관 자리를 날로 먹은 것이 아니라 보석술사의 힘이 남긴 흔적을 읽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소. 다행히 라센느제국에서 빛의 힘을 쓰는 자는 많지 않지. 보아하니 XX에 몬스터를 풀어놓은 것도 마치다가의 저택에 불을 지른 것도 당신인 것 같군. 걱정하지 마시오. 신전에 돌아가서 제대로 다시 검사는 할 테니."

3황자가 소리를 지르며 발광하고 있었으나 아몬이 휘감아놓은 줄이 능력을 억제하고 있는지 움직이지는 못했다. 마치다는 그 못 볼 꼴에서 눈을 돌리고 노부를 바라봤다. 노부는 여전히 마치다의 뺨에 조금 남아 있던 눈물을 정성스럽게 닦아주고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줬다.

"노부, 토벌하다가 다치지는 않았어? 손가락 하나도 안 다친 거 맞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
"그대... 기억이...?"
"응. 나 케이 형아야. 노부."

그러자 노부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마치다를 꽉 끌어안았다. 그거 봐, 외로웠잖아. 내가 널 기억하지 못해서 넌 계속 외로웠잖아.

"이제 다시 잊어 버리지 않을게. 외롭게 해서 미안해."

노부는 마치다를 끌어안고 고개를 저었다. 그때, 3황자를 어떻게 조용히 시킨 건지 3황자의 입을 막은 아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내가 그때 나와 함께 신전으로 가자고 하지 않았느냐."

마치다는 노부를 꽉 끌어안고 고개를 마구 저었다. 

"전 이미 유부남이에요. 신관은 순결서약도 하고 그러잖아. 난 이미 순결하지 않아서."

후드 아래로 드러나 있는 아몬의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갔다.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순결한 몸이라면 상관 없다."

아니, 우리가 안 잔 걸 어떻게 알았지???

"난 이미 몸도 마음도 순결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마치다는 고개를 휙 돌려서 얼른 노부의 입술에 입을 쪽 맞췄다. 쪽쪽쪽. 노부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뺨과 귀만 발그레하게 물들인 채로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아이, 얘가 눈치가 없네. 마치다는 여전히 입을 쪽쪽 맞추면서 빠르고 작게 속삭였다. 

"저 사람이 나 어릴 때부터 계속 신전에 끌고 가서 신관 시킬 거라고 했단 말이야. 10살 때 폭주한 후로는 한 번만 더 폭주하면 진짜 신전으로 끌고 간다고 했어. 빨리빨리."

그러면서 입술을 쪽쪽 맞추고 있자 노부의 얼굴이 확 굳더니 마치다를 꽉 끌어안고 입을 맞춰왔다. 마치다가 했던 것 같은 귀여운 뽀뽀가 아니었다. 마치다의 입술을 잡아먹을 것처럼 빨던 노부는 곧 얼결에 벌어진 마치다의 입술 사이를 혀로 가르고 들어왔다. 난 뽀뽀만 할 생각이었는데. 아니, 그런데... 좋네. 

멀리서 아몬의 한숨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너무 좋았다. 




#놉맟    #암흑의대공혼돈의가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