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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7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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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 가를 찾아온 스즈키대공 가의 집사는 스즈키 대공가에서 마치다 가에 제공할 어마어마한 예물 목록을 내놓으며 검토를 요청했고 결혼식장을 장식할 보석과 꽃, 값비싼 천들에 대한 의견을 물었으며 결혼식 피로연에 내놓을 여러 메뉴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마치다의 부모님과 형은 너무 어마어마한 규모의 결혼식에 질려 버렸지만 마치다의 형수는 신나서 결혼식 준비를 도맡았다.
스즈키 대공가의 집사와 스즈키 대공가에서 결혼식을 위해 고용한 이들, 그리고 어째서인지 몹시 신난 마치다의 형수가 함께 준비한 결혼식은 화려하다는 말로 모자랄 정도로 호화롭고 화려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투명한 검은 실크가 식장으로 꾸며놓은 정원의 터널형 덩굴 울타리를 덮고 있었고 울타리에는 검은색의 수정과 흑요석 등 반짝거리는 보석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결혼 당사자 둘과 사제가 설 자리에는 검은 장미와 튤립, 방울꽃과 검은 백합(?) 등의 꽃들이 붉은 꽃들과 함게 아름답게 장식돼 있었다. 이 정도니 두 사람의 혼인 예복이 검은색인 것도 당연했다. 두 사람은 반짝반짝하는 검은색 실로 섬세하게 수를 놓은 검은 예복을 있었고 암흑의 대공이 이런 성향인 걸 다들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객들의 드레스 코드가 미리 정확하게 전달됐기 때문인지 결혼식 하객들은 대체로 검은색이나 갈색,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광휘의 황자'라는 이름값을 하듯 혼자 흰색과 금색으로 화려하게 꾸민 3황자 혼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안 좋은 의미로.
"흠..."
하객들이 자리에 앉는 동안 대기실에서 식장을 들여다보고 있던 마치다가 불만스러운 침음을 흘리자 하인들이 이미 단장해 준 마치다의 헹커치프 모양을 다시 잡아주고 있던 스즈키 대공이 눈썹을 슬쩍 들며 마치다를 바라봤다.
"왜 그러시오?"
"3황자에게만 드레스 코드가 전달이 안 됐나 해서요."
"그럴 리가. 3황자궁에는 집사를 직접 보내서 전달하게 했으니 전해지지 않았을 리 없소."
"그냥 예의가 없는 거군."
"..."
"예의도 없고, 정말로 소문처럼 다정하거나 잘 생긴 것도 전혀 모르겠는데요. 잘 생긴 거야 취향 차라고 해도 다정하다고 저 사람이?"
3황자는 드레스 코드가 명확하게 고지된 결혼식에 혼자 화사하고 반짝거리는 금색과 흰색의 옷을 입고 올 정도로 예의를 밥말아먹은 인간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없이 굴지는 않았다. 지금도 옆에 있는 마치다의 형에게 매우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서 대하고 있었고. 그런데 눈빛이 묘하게 쎄했다. 전에 몬스터 토벌전에 나갔을 때도 느꼈던 것처럼 거부감이 들고 불쾌하게 하는 기분나쁜 눈빛이었다.
"그대가 본 것이 맞소. 3황자는 소문처럼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아니오."
마치다가 3황자에게서 눈을 떼고 암흑의 대공을 바라보자 스즈키대공은 한 가닥 흘러내린 마치다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사려 깊다기보다 심계가 깊고 악독하며 집요하다는 쪽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오."
"3황자를 잘 아십니까?"
"어릴 때부터 지독한 악연이라."
"흐응."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 그대가 자신의 청혼을 거절하고 나와 결혼한 것을 영원히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오."
"내가 청혼을 거절했다고 날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요?"
물론 악감정을 조금 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게 원한까지 쌓을 일이야? 무섭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미간을 팍 찌푸리자 스즈키 대공은 골이 깊게 생긴 마치다의 미간을 문질러주며 조용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보다는 나를 용서하지 않겠지만 그대에게도 앙갚음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하시오."
"조심하기야 하겠지만... 저 자는 황자이고 전 이제 대공비라고 해도 평민 출신입니다. 라센느제국이 워낙 집안보다 능력을 중요시하고 대공 전하께서 라센느제국 최고의 보석술사이니 논란이 되지 않은 것이지, 자칫하면 귀천상혼으로 논란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분차가 큰데 조심한다고 해도..."
"그럴 리가. 그대의 지참금이 될 뻔한 광산이 몇 개인데. 라센느제국의 모든 보석술사들이 그대와 결혼하고 싶어했던 것은 잊었소?"
"... 보석 정도야..."
"그대가 보석술사가 아니라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오. 보석술사들은 정말로 보석을 대느라 허리가 휘고 집안 기둥이 뽑혀나가니까."
"대공 전하도 말입니까?"
"난 괜찮소."
"3황자도 재정적으로 쪼들립니까?"
스즈키 대공은 굉장히 심술궂게 웃었다. 입술 끝을 끌어올린 미소는 누가봐도 비웃음이라 마치다가 눈을 깜박거리자 스즈키 대공은 심술궂게 올라갔던 입술 끝을 끌어내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3황자의 메인 스톤은 다이아몬드요. 그래서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지."
"다이아몬드입니까? 루비가 아니라?"
3황자는 광휘의 술사긴 하지만 주력 스킬은 공격술이었고 공격술에는 대체로 붉은 보석들이 많이 쓰였다. 물이나 전기 계통의 마법술을 쓰는 보석술사들은 푸른 보석도 많이 사용하지만 물리공격 위주의 보석술사들은 대체로 붉은보석을 썼다. 광휘의 술사도 그럴 텐데 왜 다이아몬드?
"그렇소. 어릴 때 내가 다이아몬드를 주력으로 쓰는 걸 보자 자기도 꼭 다이아몬드를 써야겠다고 하더군."
*****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신전의 힘이 약한 나라기 때문에 라센느제국은 혼례식을 치를 때말고는 사제들이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혼례를 치를 때는 반드시 사제를 모셔놓고 혼례를 치렀고 사제가 혼인서약이 맺어졌다는 선언을 해 줘야 부부로 인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도 힘이 없는 신전은 황실에 꼬투리를 잡힐 일을 만들지 않길 원했기 때문에 평민들의 결혼식 때는 무료로 봉사를 해 주었다. 귀족들의 결혼식도 공식적으로 무료였지만 귀족들에게는 후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어마어마한 거금을 받았다. 스즈키 대공가에서도 신전에 막대한 후원금을 냈고 사제는 아주 정성스럽게 식을 진행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스즈키 대공가의 집사인 쿠로사와와 대대로 강력한 보설술사를 배출한 귀족 집안인에도 술법 수련은 싫어하고 사람이든 집이든 꾸미고 치장하는 것을 좋아해서 집안의 눈밖에 났는데도 오히려 그걸 직업으로 삼아서 파티 플래너 겸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야오토메 가의 장남, 그리고 케이의 형수가 합작해서 만든 결혼식장은 모두의 찬사를 받았다.
검은 보석 자체가 흔치 않기 때문에 평소에 잘 볼 일이 없는데 식장을 온통 검은 보석으로 꾸며놓고 꽃에도 암흑의 힘을 입혀서 검은색으로 꾸며놓으니 혼례식 직전까지 여기저기서 영상구로 만든 보석을 들고 영상을 기록하는 술사들이 가득했다. 쿠로사와와 야오토메가 고용한 혼례식 전문 요리사들이 내놓은 요리도 훌륭했고. 정작 스즈키와 케이는 바빠서 제대로 먹을 틈도 없었지만.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하객들이 돌아간 후에야 느지막하게 식사를 하고 지쳐서 잠이 든 케이를 내려다보던 스즈키는 식이 끝난 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식을 마치자마자 스즈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그간 다른 사람들과 워낙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이 틈을 타서 암흑의 대공과 친분을 쌓고자 하는 이들은 많았다. 평소라면 그런 인사치례를 받아줄 리 없지만 스즈키가 일부러 초대한 혼례식에 온 사람들이다 보니 이번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어서 인사를 받아주고 있을 때였다. 케이도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됐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암흑의 대공과 결혼하게 됐다니 친구들이 놀란 모양인지 케이는 결혼식 후에 내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빨리 사람들이 떠나기만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스즈키 대공."
"3황자 전하."
스즈키가 황실의 피를 이은 이들보다 강하다는 게 알려진 이후부터 언제나 스즈키를 증오했던 3황자는 늘 그랬듯 겉보기에는 존중과 예의가 가득한 표정을 하고 스즈키에게 찾아와서 빙긋 웃었다.
"이거 참, 스즈키 대공이 마치다 경과 친분이 있는 줄은 몰랐소."
"3황자 전하가 제 인간관계에 관심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알고 있었다. 3황자는 자신보다 강한 스즈키를 언제나 시기하고 증오했기 때문에 스즈키가 뭘 하든 다 알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라소르의 황태자가 마치다 케이타를 불렀다는 걸 알고 급하게 라소르에 갈 때도 행적을 지우면서 다니느라 신경쓰기도 했었고. 게다가 3황자가 케이의 능력을 벌써 파악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보석값을 대느라 휘청이는 건 사실이었다. 스즈키보다 약한 힘을 키우기 위해서 보석을 무리하게 사 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보석 광산을 가득 갖게 된 케이를 놓친 것 자체만 해도 뼈아프기도 하리라. 그래서 스즈키에게 계속 시비가 아닌 척 시비를 걸고 있었고 광휘의 황자와 암흑의 대공에게 잘 보이고자 옆에 와 있던 이들까지 불편한 표정으로 자리를 피하고 있을 때.
"대공. 여기에 계셨습니까?"
케이가 다가오더니 스즈키의 옆에 바짝 붙어서며 스즈키의 팔에 손을 얹었다.
"내내 식사도 못하지 않으셨습니까? 집사에게 먹을 걸 준비해달라 했습니다."
다정한 사람이긴 해도 이렇게 살갑게 구는 사람은 아닌데 3황자가 못살게 굴고 있는 걸 보고 구하러 온 모양이었다. 이제 케이가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되는 어린아이가 아닌데. 모두가 두려워하는 암흑의 대공이 된 지 오래인데도 후다닥 구하러 온 걸 보니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꾹 참고 그대야말로 배고프지 않냐고 걱정하자 불쾌해진 듯한 3황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마치다 경이 스즈키 대공과 미래를 약속한 사이인 걸 알았으면 청혼하지 않았을 텐데 비밀로 하다니 너무하시오."
케이는 못 들은 척 스즈키만 바라보고 있다가 한 박자 늦게야 3황자의 말을 인식한 것처럼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고 눈을 깜빡거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왕래도 없던 이들에게 제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았다고 소문을 내야 했던 겁니까?"
웬만하면 표정에 금이라도 갈 텐데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온 인간이라 3황자는 잠깐 움찔했을 뿐 곧 여유롭게 웃었다.
"아니... 마치다 경을 몰래 마음에 품고 있던 이들도 있었을 테니 말이오."
"별로 그런 사람은 없었을 텐데 혹시 전하께서 절 마음에 품고 계셨습니까?"
"... 아하하... 그렇소."
"절 보신 적도 없으신데요?"
"마치다 경이 얼마나 뛰어나고 아름다운 인재인지 많이 듣다보니 마음이 끌렸나 보오."
"그래서 제가 광산 거래를 위해 나라를 비웠을 때 제 의사도 묻지 않고 혼서를 보내신 겁니까?"
".... 내가 마음이 급했나 보군."
"그러게 말입니다. 제게 먼저 의사를 물어보셨으면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고 제게 소중한 이가 이미 생겼다고 말씀을 드렸을 텐데 말입니다."
니가 보석광산에 눈이 멀어서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혼서부터 보낸 주제에 왜 징징거리냐는 말을 그다지 돌려 말하지도 않고 냅다 지르는 케이를 보고 웃음을 꾹 참고 있자, 3황자는 겉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화사하게 웃고는 획 돌아서 떠나 버렸다. 스즈키는 그때까지는 웃음을 참을 수 있었으나.
"저거 봐. 결혼식에 하객으로 온 주제에 끝까지 축하한다는 말을 안 하고 가네. 성질 못된 거 봐. 아주."
케이가 투덜거리는 말에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스즈키는 스즈키와 같은 침대에 누워 푹 잠든 케이를 내려다보다가 볼이 통통하던 어릴 때와는 달리 볼살이 쏙 빠져서 턱선이 날카로워진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어릴 때의 얼굴이 남아 있기는 해도 이제는 성년이 된지도 오래라 그때 어린 케이와 함께 보냈던 몇 시간 동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모습은 많이 찾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여전히 호기심이 많고 여전히 다정하고 여전히 선량하고 여전히 어른스러운 척하고 싶어하는 모습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그대로라.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스즈키가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스즈키를 거둔 외삼촌은 당대 최고의 보석술사 중 한 명으로 손꼽히던 어머니와 달리 스즈키의 술사로서의 능력이 형편없다는 걸 알고는 스즈키를 말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노파 하나와 숲 속에 있는 작은 집에 가둬서 밥만 주게 하고는 술법만 연습하라며 그 집과 작은 정원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했었다. 스즈키가 물려받은 유산이 매년 연금식으로 나오는 방식이 아니었다면 스즈키를 돌봐주지도 않았으리라.
숲 속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숲 속의 작은 집을 발견하고 스즈키를 만났던 케이는 그 후로 매일, 당시 집 앞을 지키던 경비를 피해 울타리에 난 구멍을 통해서 기어들어왔기 때문에 스즈키를 만나러 올 때마다 얼굴과 온몸에 흙이며 나뭇잎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그러고도 개구지게 웃으면서 공방에서 팔 수 없는 하급 보석을 가져다가 연습용으로 쓰라며 스즈키에게 몇 개씩 나눠주곤 했었다.
그리고 몇 달에 한 번씩 와서 스즈키의 술법이 나아졌는지 확인하고 그대로라는 걸 확인할 때마다 회초리를 들던 외삼촌에게 맞은 상처를 보고는 자기가 더 울먹였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났을 때 여느 때처럼 얼굴과 온몸에 흙을 잔뜩 묻히고 울타리의 개구멍으로 기어들어온 케이는 신나서 스즈키에게 달려왔었다.
- 노부, 형아가 노부 진짜 강한 보석술사로 만들어줄게. 형아만 믿어.
그날, 마치다는 그 약속을 지키고 스즈키의 품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노부를 잊었다.
그리고 20년을 돌고 돌아...
스즈키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케이를 조심스럽게 품 안에 당겨안으며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술을 내리눌렀다.
"이제 내가 그대를 지켜주겠소."
#놉맟 #암흑의대공혼돈의가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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