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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8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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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는 결혼한 이후에도 마치다 가의 공방으로 출근해서 일을 할 생각이었지만 스즈키 대공이 준비해 준 공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완전히 없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꿈에 그리던 공방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건물의 4개의 문 중 화장실과 욕실 그리고 마치다의 공방을 빼고 남은 문 하나는 스즈키 대공의 수련실이었기 때문에 마치다와 스즈키 대공은 아침에 일어나면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정원에서 잠깐 산책을 한 후 함께 숲으로 둘러싸인 별관으로 향했다. 별관의 응접실이나 별관 정원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각자 공방과 수련실로 들어갔다가 점심 식사 시간이 되면 나와서 함께 본관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잠깐 산책을 한 다음 다시 별관으로 돌아와 각자 일을 하고 수련을 했다.
스즈키 대공은 처음 마치다를 공방에 데려다줬을 때, 마치다에게 물었었다.
"지금은 이 공방에 그대의 반지와 내 반지가 모두 통과할 수 있는 결계가 걸려 있지만, 그대가 원치 않으면 그대의 반지로만 통과할 수 있는 결계로 바꿔 주겠소."
"왜요?"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가공사들도 많다고 하던데."
그러고보니까 가끔 까다롭게 구는 가공사들도 있었다. 가공 기술이 특별한 게 있는 게 아닌데도 남들이 가공하는 모습을 보면 발작하듯 싫어하는 예민한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마치다의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긴 했다. 하지만.
"괜찮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뭐. 언제든 마음대로 들어오세요. 난 일할 땐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서 누가 왔다갔다 해도 잘 모르니까 내가 집중해서 못 알아챈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마치다가 검지를 세워서 까딱까딱하면서 말하자 스즈키 대공은 빙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수련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이 옆에 있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그대는 수련실에 들어올 때 문을 꼭 두드려주십시오."
"나도 수련실에 가 봐도 돼요?"
"미리 노크만 하고 들어오면 상관없소. 보고 싶으면 위험하지 않은 술법들은 보여줄 수도 있고."
"보석술사들이야말로 수련하는 모습을 남들이 보면 싫어하지 않아요?"
보석가공술은 특별한 게 없지만 보석술법들은 정말로 고유한 것들이 많아서 남들이 보는 걸 싫어하는 보석술사가 있다 정도가 아니라 남들에게 수련 관람을 허가해주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알고 있는데.
"그대라면 상관없소."
"알았어요. 그러면 꼭 노크하고 들어갈게요."
"그대는 언제든 환영하겠소."
마치다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럼 혹시 어떤 보석들 쓰는지 보여줄 수도 있어요?"
"얼마든지."
왜 보고 싶어하느냐거나 어떤 걸 보고 싶은 건지 구체적으로 말하라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이 암흑의 대공은 정말로 자기가 쓰는 모든 보석 도구들을 좌라락 다 펼쳐놓고 보여줬다. 토벌전 같은 곳에 함께 나가면 눈에 빤히 보이는 스킬들과 달리 보석 도구들은 진짜 작정하고 들여다봐야 잘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보석을 어떻게 가공해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정말로 극비인데.
어쩐지 가슴이 술렁거려서 마치다가 가슴을 슬슬 문지르고 있자, 스즈키 대공은 아프냐고 물으면서 마치다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다른 한 손은 마치다가 볼 수 있게 내려놓은 검은 에메랄드에 가 있었다. 그리고 가슴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각이 파고 들었다가 온몸으로 퍼져가는 게 느껴졌다. 마치다의 몸에 치유술을 써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앗, 치유술 쓰지 마세요. 안 아픈데. 치유술은 술사의 힘도 보석의 힘도 제일 많이 쓰는 술법이라면서요."
마치다가 놀라서 팔을 파다닥 흔들면서 만류하자 스즈키 대공은 피식 웃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니라 몸상태를 살피는 것 정도면 크게 무리도 아니오. 그대를 치유하는 것이 무리일 리도 없고."
"다행이다."
그러면서 스즈키 대공이 왼손을 대고 있던 검은 에메랄드 팔찌를 들어서 살펴보니 정말로 내구도가 많이 깎이지 않은 상태였다. 보석을 죽 훑어 보자 다이아몬드 반지와 (다른 보석도구들은 전부 마치다가 잘 볼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뺴 놓은 상태였지만 반지는 빼지 않은 상태였다.) 다이아몬드 브로치, 부토니에를 빼고 다이아몬드는 없었다. 그래도 다른 보석술사들에 비해서 4대 보석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는 했다. 라센느제국에서는 보석이 단순히 장식용 귀금속이 아닌 탓에 보석 가격이 워낙 높아서 대부분의 보석술사들은 4대 보석 중 하나를 메인스톤으로 쓰고 다른 보석도구들은 오팔이나 크리스탈, 스피넬, 옥, 진주, 아쿠아마린 같은 보석들을 썼는데. 스즈키 대공은 지팡이에 박힌 블랙펄과 허리띠에 박힌 블랙 크리스탈 말고는 전부 4대 보석들이었다.
"그러면 이 중에서 다이아몬드는 원래 블랙 다이아몬드고 다른 보석들은 암흑의 힘으로 검은색이 된 거예요?"
"그렇소."
"확실히 이렇게 완전히 새까만 보석들은 자연상에서는 흔치 않죠?"
"아무래도."
"암흑의 힘을 입히는 건 힘들지 않아요?"
"힘들지 않소."
"블랙 다이아몬드보다는 그래도 가격이 저렴한 다이아몬드에 암흑의 힘을 입히지 않고 블랙 다이아몬드를 쓰는 건 암흑의 힘을 입히는 것보다 자연상에서 검은색으로 존재하는 보석을 쓰는 게 더 힘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그렇소."
"내가 블랙 다이아몬드 광산 받아와서 너무 잘됐다. 그쵸?"
그때는 대체 검은 다이아몬드 어디다 쓰라고 쓸데없는 걸 주나 했는데 정말로 좋은 선물이었다. 물론 스즈키 대공이야 지금도 라센느제국 최고 최강의 보석술사긴 하지만 그래도 암흑의 힘을 입혀 색을 바꾼 보석들보다는 블랙 다이아몬드로 대체해서 쓸 수 있으면 훨씬 좋겠지.
"이 블랙 에메랄드는 치유술에 쓰는 거죠?"
"그렇소."
"치유술을 쓰는 술사들은 다들 에메랄드를 쓰더라고요. 치유술이랑 상성이 제일 잘 맞나 봐요?"
"그렇소."
"그럼 블랙 에메랄드는 안 되고... 다른 보석들 중에 블랙 다이아몬드로 바꾸면 제일 효율이 좋은 게 어떤 거예요?"
스즈키 대공은 고개를 갸웃하며 마치다를 바라봤다.
"빨리 말해 봐요."
"나는 보석을 쉽게 구하고자 그대와 결혼을 한 것이 아니오."
눈빛이 좀 시무룩해 보여서 마치다는 얼른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꿈의 공방도 만들어주고 했으니까 나도 당신한테 선물해 주려고 그래요."
"... 선물?"
"응. 저렇게 멋진 공방을 받았는데 나도 진짜 두근두근하는 예쁜 선물 하나 줘야지."
두 사람은 지금 스즈키 대공의 수련실에 있었기 떄문에 마치다가 손가락으로 공방이 있는 곳을 가리키자 스즈키 대공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보답을 받고자 공방을 지은-"
마치다가 스즈키 대공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자 안 그래도 큰 스즈키 대공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리고 귀부터 급격히 붉은 빛이 얼굴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 그냥 입만 막은 건데 왜 이래. 아무 생각없이 입을 막았던 마치다까지 괜히 겸연쩍고 민망해져서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손을 뗐다.
"아니, 보답을 바라고 공방을 선물해 줬던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도 뭔가 해 주고 싶다는 거죠. 그러니까 빨리 말해 봐요. 빨리빨리."
괜히 부끄러워져서 막 재촉하자 스즈키 대공은 여전히 빨간 얼굴로 귀걸이로 만들어진 사파이어를 가리켰다.
"방어술에 쓰는 보석도구인데 마침 방어술을 강화하려고 하던 참이라..."
"방어술? 알았어요. 방어술이면 이런 식이죠?"
어떤 스킬에 쓰는지에 따라서 보석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마치다가 방어술에 쓰는 보석의 모양을 그리자 스즈키 대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치다는 다시 그림을 슥슥 그렸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게 있었거든요. 방어술은 다른 스킬들처럼 단시간에 강한 힘을 내는 게 아니라 보통 장시간 동안 스킬이 유지되면서 일정 강도 이상의 힘을 계속 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소."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하면 내구도가 더 느리게 닳으면서 강한 힘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지금 시험 중인 가공 방식이라서 일단은 잡보석으로 시험을 해 본 다음에 하긴 할 건데 제 계산으로는 이 모양이 가장 적합해요. 어때요, 예뻐요?"
스즈키 대공은 어쩐지 뭔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치다가 신나서 왜 이런 가공 방식을 생각했는지 어떤 점이 좋은 건지 설명하는 내내 그랬다. 그리고는 스즈키 대공이 요즘 공을 들이고 있다는 방어술 강화 훈련을 구경하고 본격적으로 가공 연습을 하러 갔다. 그렇게 둘 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편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에 익숙해지고 있던 나날들이 흐르고 흘러. 드디어 라소르제국의 황태자가 처음으로 보내 준 보석들이 도착했다. 4대 보석 광산에서 난 최고급 보석들과 연습용으로 쓸 하품들 가득, 그리고 검은 다이아몬드들도 최상급과 하급이 같이 도착했다. 스즈키 대공이 마련해 준 공방에는 원석 보관 창고도 딸려 있었기 때문에 보석들을 다 집어넣고 하품 검은 다이아몬드로 몇 번 연습을 한 다음에 최상급 블랙 다이아몬드를 꺼내서 가공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가공에 빠져 있다가 산뜻한 향이 나서 고개를 들자 스즈키 대공이 책상 맞은편에 놓인 소파에 앉아서 마치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왔어요?"
"조금 전에."
어쩐지 느리게 대답한 스즈키 대공은 작게 한숨을 쉬고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작업할 때 영상구를 써도 되는지 미리 물어볼 걸 그랬소."
"영상구?"
"결혼식을 하기 전에 사람들이 영상구를 쓰는 걸 못 봤소?"
"아, 보석을 꺼내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봤는데."
"보석을 영상구로 사용할 수 있소. 영상을 기록해서 저장할 수 있을 뿐 아직 통신용으로는 쓰지 못하지만. 공격술이나 방어술, 치유술처럼 전투에 특화되지 않은 술법은 얼마 없는데 그 중 하나지."
"아. 그래서 우리 결혼식장 찍은 거예요? 저장해서 보고 싶을 만큼 예뻐서?"
스즈키 대공이 쿠로사와와 야오토메도 결혼식장을 다 찍어뒀다고 들었으니 보고 싶으면 같이 보자고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마치다는 문득 스즈키 대공이 조금 전에 마치다가 작업할 때 영상구를 써도 되는지 미리 물어볼 걸 그랬다는 말을 떠올렸다. 내가 작업하는 걸 찍어두고 계속 보고 싶었던 건가.
"나 작업하는 게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어요?"
괜히 민망해서 일부러 으스대며 물었는데 스즈키 대공은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그대는 보석 가공 일을 이야기를 하거나 가공을 할 때 보면 보석가공을 정말 좋아한다는 게 보일 정도로 반짝반짝해서."
정말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솔직한 거야. 민망하긴 했지만 그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마치다도 스즈키가 집중해서 방어술을 훈련하는 걸 보면서...
"보석 가공을 좋아해도 보석술사가 부러웠던 적은 없었는데 영상구 이야기 들으니까 좀 부럽긴 하네요."
"왜?"
"대공이 훈련할 때 모습이 너무 근사해서 그림으로 남겨놓고 계속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난 영상구 못 쓰는 게 아쉽다."
다시 귓볼부터 은은하게 붉어지던 스즈키 대공은 작게 기침을 하고는 미니화로에 다시 불을 붙였다. 아까 느꼈던 산뜻한 향은 차의 향이었던 모양이었다. 스즈키 대공은 영상 저장 술법은 사람을 타지 않는 술법이니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술법을 모르는 사람도 쓰게 할 수 없는지 연구해 보겠다고 약속했고 마치다는 지금까지 블랙 다이아몬드를 가공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하품 블랙 다이아몬드로 연습도 많이 했으니 꼭 예쁘고 튼튼한 보석으로 가공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미래를 약속하며 단란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을 때.
*****
3황자는 라소르제국으로 보냈던 자가 보낸 비밀 서신을 받아들었다. 오래 전부터 라소르제국의 황궁에 심어놨던 첩자가 하필 마치다 케이타가 라소르제국으로 갔었던 그 시기에 연락두절이 돼 버린 탓에 새로 보낸 놈이었다. 그 놈은 먼저 보냈던 첩자는 황궁에서 큰 잘못을 저지른 뒤 내쫓긴 뒤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었다. 처형당한 게 아니겠냐는 말을 들었다는 말에 3황자는 냉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 3황자 본인도 실수를 한 이를 살려놓지 않으니까. 별 거 아닌 정보였다. 3황자의 눈에 이채가 번뜩인 건 다음 문장을 읽었을 때였다.
누구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라소르제국 황실의 누군가가 보석술사로서 각성의 징조가 나타났었는 말이 있습니다. 워낙 궁인들 사이의 입단속이 심한 터라 정확한 정보를 알 수는 없지만 뜬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은밀하게 도는 말들이라 더욱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치다 케이타가 황궁을 방문한 직후 궁인들이 대거 사라졌습니다. 3황자 전하가 보낸 이의 실종과는 관련없어 보입니다. 황제의 침궁과 황후궁, 황태자 부부의 궁과 5황자, 6황자궁의 궁인들이 대거 물갈이됐습니다. 궁을 그만둔 이들은 명목상 곧 퇴위 예정인 황제가 머물 별궁으로 가서 별궁을 미리 준비한다고 하지만 원래 별궁에 가 있던 이들이 전부 돌아오고 갑자기 인원이 바뀐 것을 보면 마치다 케이타의 방문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또 알게 되는 게 있으면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보석술사로서 각성의 징조가 나타난 이가 있었고 마치다 케이타가 방문했다... 그리고 당시 황궁에 있던 이들이 대거 물갈이됐다고..."
보석술사들에게 전설처럼 떠도는 말이 있다. 혼돈의 힘을 타고 난 보석술사들은 다른 보석술사들의 능력을 억누르거나 각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마치다 케이타가 그 혼돈의 보석술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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