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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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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무선도, 강징도 각자 빛깔은 다르지만 힘겨운 시간을 겪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마구 행복이 들이치자 날들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혼란스럽게 지나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계절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연무장에서 뛰어다니느라 후끈하게 몸을 덥히고 돌아온 위무선은 낯익은 그림자를 발견하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택무군!”
반가운 인사 후에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피는 위무선에게 남희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혼자 온 겁니다. 근처에 온 김에 강종주께 의논할 일이 있어...”
“아아... 그런데 벌써 가시는 거에요?”
“3일 후에 운심부지처에서 청담회가 열릴 거다.”
아쉬워하는 위무선을 향해 강징이 말했다.
“아하... 그럼 그때 봬요!”
남희신은 명랑하게 손을 흔드는 위무선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걸어나갔다.
그를 바라보는 위무선은 천천히 웃음이 흩어지다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난 후 위무선은 잽싸게 강징의 처소로 향했다.
꾸물꾸물 파고들어 봉곳하게 솟아오른 이불 밖으로 아무렇게나 던지는 옷들이 흩어졌다.
한참 후 돌아온 강징은 익숙해진 듯 불평도 없이 옷가지를 주워모았다.  
요즈음 위무선은 강징이 숨겨왔던 일면들을 낱낱이 맛보는 중이었다. 성질 급하고 분통을 잘 터뜨리는 겉보기로는 짐작도 할 수 없이 예민하며 세심한 부분들을.
그것도 연륜일지. 도를 닦는 선승처럼 수십년이나 독수공방을 했던 주제에, 강징은 놀라운 속도로 방중술을 터득해나갔다.
강징이 능숙한 예술가라면, 위무선은 길이 잘 든 고금과도 같았다. 감도가 좋고 솔직하여 골골이 저를 다루는 손짓마다 감겨들며 쉽게 절정에 올랐다. 금세 쾌감에 빠져버린 위무선은 밤마다 강징의 품에 안겨들며 졸라대었다. 
하지만 강징은 위무선이 아무리 앙큼하게 조르고 유혹을 해도, 몸이 상하겠다 싶으면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오늘도 위무선은 전날 지나치게 황홀한 밤을 보낸 대가를 치루게 될 예정이었다.
추위를 꾹 참고 일부러 홑곁의 설의만 입고 기다렸건만, 마침내 이불 속으로 들어온 강징은 두 팔 벌려 따뜻하게 품어주기만 할 뿐 그대로 눈을 감았다.
“강징.”
“...”
“강종주님~”
일부러 괴롭히듯 여러번 불렀지만, 처음부터 다 알고 빈틈없이 죄어진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머리 위에서 불어지는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가라앉은 것을 깨달은 위무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별안간 강풍이 불어닥쳐 거센 소리가 건물을 통째로 뒤흔들어놓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칼바람이 위무선에게까지 닿으려면 우선 튼튼한 문을 뚫어야 했고, 그 다음으로는 강징이 꼭꼭 감아준 이불, 그리고 단단하게 감싼 그의 육신을 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 번의 손짓으로도 거대 세가를 멸문시킬 수 있는 음호부의 소유자.
위무선이 전력을 내면 오십년 가까이 금단을 갈고 닦은 강징이라 해도 이길 수 있을런지.
그래도 강징은 마냥 어린애를 상대하듯 보호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건 운심부지처에 수학을 갔던 때보다 더 지독한 꼴이라고 위무선은 생각했다. 도로 엄격해진 강징은 위무선이 마음대로 저자에 나가 술을 퍼마시지 못하도록 단속했고, 허락 없이는 야렵도 함부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잦은 가내 회의만은 면했지만, 외부 세가들의 모임에는 반드시 끌고 갔다.
위무선은 답답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강숙부는 자신을 방임하다시피 했고, 우부인은 욱하는대로 꾸짖거나 역정을 내다 포기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강압적인 손에 지배당하긴 난생 처음인 위무선이었다.
하다못해 엄중한 운심부지처에서도 몰래몰래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다녔건만, 강징의 감시는 벗어날 도리가 없었고, 그는 도통 지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조그맣게 밖으로 내밀어진 코끝이 차가워서 이불에 묻고, 언젠가 강징에게 공정하며 보았던 과거사를 떠올렸다. 그의 기억속 자신도 무척이나 자유로워 보였더랬다. 온세상과 척을 지고, 온세상을 불질러버릴 정도로, 해야겠다 마음먹은 일은 무엇이든 저질러버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불행해질 뿐이었다.
나는 어쩌면, 모든 평범한 아이가 그렇듯 강압하고 꾸짖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위무선은 작게 웃었다.
강징이 언제나 펄펄 뛰며 잔소리를 하긴 했었지.
어쩌면 강징은, 나를 혼내기 위해 그만큼 긴 시간을 돌아서 강해지고 무서워져서 돌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잘자... 만음 형님.”






* * *





위무선의 발명품을 판매하는 사업은 운몽 강씨처럼 커다란 가문 내에서도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상태였다. 그래서 연화오는 농한기의 한겨울에도 갖가지 계층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니 비상한 눈썰미가 아니었더라면, 그 가운데 괴상한 옷차림을 하고 섞여 나가버리려던 강징을 위무선은 못 보고 지나칠 뻔하였다.
“강징??”
사실 외면을 하면서도 연못 건너편의 위무선을 의식하고 있던 강징이 떨떠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너 그게 무슨? ...어딜 가는 거야?”
묘하게도 강징은 흔한 부잣집 공자처럼 꾸민 차림새였다. 뜬금없이 연한 살구빛의 비단 장포, 거기에 이렇다 할 무늬도 없는 은으로 된 동곳. 종주의 평소 취향으로만 봐도 어울리지 않는 풍채에 몇몇 집안 수사들과 가복들까지 이편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볼일이 있어서.”
매사에 명확한 강징이 망설이다가 애매한 답을 내놓는 것을 보고, 위무선이 그냥 넘겨버릴 리 없었다.
“그럼 나도 갈래!”
강징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못을 박는 위무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기에서 여태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작은 불신과 불안을 읽고는. 
“그래, 같이 가자.”
예상과 다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강징을 보고, 위무선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위무선은 강징의 허리를 잔뜩 껴안고 날아가며 쳐다보았다. 손에 와 닿는 매끌매끌한 비단의 감촉이 아무래도 낯설었다.
“대체 어딜 가는 건데?”
“나중에 말해 줄게.”
강징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머뭇거리는 기색은 없었다. 위무선은 잠시 바라보다가 살포시 그의 가슴에 기대고는 더 묻지 않았다.
조용해진 위무선과, 그에게 씌운 두터운 피풍의를 한 팔에 끼어안은 강징도 내처 앞을 바라보며 침묵에 잠겼다.





귓전에 혹한의 바람을 느끼면서도 두터운 털가죽에 꽁꽁 싸인 위무선은 얼핏 잠이 들고 말았다.
흠칫, 깨어났을 때에는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온 강징이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날아온 걸까. 자다 깬 바람에 가늠이 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낡은 성문이 보였다.
강징은 성문을 지나 높다란 건물이 즐비한 번화가가 나올 때까지 걸어갔다. 
시끌벅적한 구경을 좋아하는 위무선은 부지런히 강징을 따라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끄럽게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니 난릉의 지방 사투리인 것 같았다. ...어느새 난릉까지 날아왔던 걸까? 대체 무슨 일로? 위무선은 무척 궁금했지만 심각하게 생각에 잠긴 듯한 강징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꾹 참았다.
“이리와.”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 잃어버린 강징이 저만치 서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위무선이 거추장스러워 벗어버린 피풍의를 안고 종종 다가오자 강징이 혀를 차며 다시 둘러주었다. 
“안 추워.”
“안 춥긴. 새파래가지곤.”
성급하게 미간에 골이 패이는 얼굴은 강징답지만, 내뱉는 말은 한결같이 다정하다. 위무선이 배시시 웃으며 쳐다보자, 그 눈빛에서 무언가 불온한 빛을 읽은 강징이 헛기침을 하며 외면했다.
다시 걷기 시작하고 얼마 후 강징의 얼굴에는 심각한 느낌이 돌아와 있었다.
새로운 세상에 깊이 뿌리를 박을수록 강징은 두고 온 과거의 무게를 천천히 잃어가는 중이었다. 
그래도 단 하나, 놓아버릴 수 없는 기억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구원을 받을 기회를 준 광인과의 만남이었다.
위무선과 함께하며, 사랑이 깊어지고 평화가 깊어질수록 그의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연인을 바라보고 끌어안으면서도 불안을 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비단 위무선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강징은 골똘하게 답을 구했다.
답을 알아내지 못하면, 또다시 원인모를 불행이 덮쳐와 소중한 사람과의 사이에 심연이 놓일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강징은 기억 속 광인의 모습 중에서 특정할 만한 사실 하나를 캐내기에 이르렀다.
광인은 살갗이 걸레짝처럼 망가져서 넝마주이 옷조각들과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더러운 목을 헐렁하게 감싼 옷깃에서, 언뜻 번듯한 서체로 새겨진 문양을 보았던 것이다.
그 문양이, 어딘지 낯이 익었다.
잡동사니 속에 섞인 그런 기억은 악착같이 파헤치면 더욱 깊은 곳으로 도망쳐버린다는 원리를 아는 강징은 몇날 동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기억해 내었다.
그 문양은 금릉이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장난감 상자에 수놓아진 무늬의 일부였다.
이윽고 같은 문양이 화려하게 새겨진 간판이 걸린 가게 앞에 멈춰선 강징은 굽신거리며 손님을 맞이하러 나온 사내를 발견하고도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이까지 오면서 무슨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 시점에서 그가 어디에 얼마나 나이를 먹은 상태로 존재할 것인지도 강징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껏 미소를 지으며 탐색하듯 쳐다보는 눈과 마주친 순간, 강징은 송곳으로 뼈를 쑤시는 것처럼 그를 알아보았다.
누가 보든 차분하고 단정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 광인의 모습과 달리 매우 젊고 생기 있고,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강징의 눈에는 먼 훗날 폭주하는 광기의 초석이 될 씨앗이 선연하게 보였다.
길에서 누군가에게 느닷없이 얻어맞더라도 쉽게 화를 내지는 않을 단단한 심지. 악귀처럼 야심만만한 욕망이 유순한 모양의 눈꼬리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손님?”
강징이 굳은 얼굴로 바라보기만 하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래도 미소를 잃지는 않고 바라보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강징은 고민했으나, 그것도 길지는 못했다.
어차피 그는 복잡한 술수를 부릴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
“너에게 꼭 경고해야 할 말이 있어서 왔다.”
강징이 서슬퍼런 눈빛을 거두지 않고 다짜고짜 내뱉자, 사내의 얼굴에 어린 가식적인 미소가 사라졌다.
“누구신지...?”
“그런 건 알 필요 없다.”
강징은 단호한 말투로 말허리를 끊어버렸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삼독이 아니라 객경들이나 쓰는 수련용 패검이었고, 한량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지만 등 뒤로 무거운 위압감이 번져나오는 것 같았다.
“언젠가 네가 네 세상을 파괴하고 망쳐버릴 때.”
낮고도 분명한 목소리가 그렇게 말하자, 사내는 왠지 흠칫하며 발을 뒤로 물렸다. 
단지 지나가던 사람에게 헛소리를 들은 것치곤 분명 과한 반응이었다.
그러든 말든, 강징은 흔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돌이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어째서인지.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이 저주같은 소리를 퍼붓고 있는데도, 사내는 긴장한 기색으로 날카롭게 상대를 살필 뿐 말이 없었다.
사내는 강징을 알지 못했으며, 강징도 그가 정말로 누구인지,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겪을 것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언가를 공유하며, 똑같은 어둠과 빛이 서로의 가슴 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일어난 상황, 사건을 바꾸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을 거다.”
주춤주춤, 저도 모르게 사내가 물러나는만큼 강징이 거침없이 다가가자, 그의 눈에 깃든 공포가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같은 함정에 빠지고, 더 많은 실수를 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되겠지.”
순식간에 눈빛이 바뀐 사내는 이제 강징을 노려보고 있었다.
강철로 벼려진 듯한 벽을 말 몇 마디로 허물어버리고, 경계심과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난 그를, 강징은 먼 미래의 그와 같이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상대를 조롱하는 듯, 애증하는 듯 미묘한 가락을 띤 목소리가 두 개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너 자신이 바뀌지 않는다면... 결코 세상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누님께 들렀다 갈까.
그렇게 말하고 나서 강징은 또 입을 다물어버렸다.
두 사람은 다시 어검을 하여 한참을 날아갔다. 
난릉에서 가장 큰 성은 해가 저물 시간임에도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렸다.
위무선은 온종일 앞서가기만 하는 강징을 뒤따르다가 가만히 불렀다.
“강징.”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내내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근심스레 부르는 소리에 강징이 돌아보았다. 
그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한참 동안 위무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싱긋이 웃었다.
“어...”
매우 붐비는 시장 한복판이었다. 새빨갛게 물들어가는 저녁 노을 아래에서 시간이 다 바래어버릴새라 바쁘게 움직이는 상인들과, 하인들. 저마다의 속도로 오가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강징은 위무선의 손을 잡아채었다. 
“어라아...??”
위무선은 잡히고 끄는대로 딸려가며 당황한 기색이 어리었다. 하지만 강징은 위무선을 꼭 붙잡고, 다른 손은 뒷짐을 진 채로 걸어갔다. 여유 있고 시원스러운 걸음걸이였다. 
그 때 위무선의 머릿속에서 반짝하고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올랐다.
개에게 쫓기며 걸식을 하던 그를 구해준 강숙부는 위무선의 작은 손을 잡고 계속 돌아보며 달래주었다.
하지만 이 쪽을 보지도 않고 말없이 걷는 강징의 등이 더욱 따뜻하고 듬직하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강징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듯 그렇게 걷다가 어느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티격태격하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흔한 광경을 스치는 강징의 눈에 아련한 빛이 떠돌았다.
지금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어린 시절에. 위무선은 강징이 아무리 심통을 부려도 웃어넘기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딱 한 번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너는 내가 하는 일은 다 싫지?
아마 별 생각도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에 강징의 어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물론, 그 다음 순간에는 더욱 화를 내며 팔짝 뛰는 강징에게 위무선은 그래그래 너구리처럼 웃으며 장난만 쳤다.
그 때 자신의 가슴 속에 싸늘한 파도를 일으켰던 불안감, 그 감정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강징이 언제나 위무선을 노려보고, 못마땅해했던 이유. 
노려보고, 또 노려보고 비난하고 욕을 퍼붓고.
강징은 그렇게도 열심히 밀어내고 벽을 쳐야 했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허락해버리고 말 자신을 느꼈기 때문에.
그만 그를 끌어안아버리고, 뭐든 다 주어버리고 말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는 그런 것을, 저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 분명했기에...
밀어내고 밀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그의 뒤를 쫓았던 나날들이었다.
그리고는............

잠시 기억이 어둠 속으로 말려들어가며 강징의 미간에도 먹구름 같은 어둠이 모여드는 찰나, 위무선의 명랑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강징. 너 변한 것 같아.”
“...내가?”
“나이탓이려나? 아니아니, 늙었다고 놀리는 게 아니고.”
위무선이 장난스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가.”
“강징?”
강징은 갑자기 멈춰서는가 싶더니, 달려가듯 걸음이 빨라졌다. 그에 납치라도 당하는 듯 끌려가는 위무선은 영문을 몰랐다.
난릉성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주루의 사람들은 매끈하게 생긴 귀공자가 이상한 차림의 청년의 손을 잡은 채 뛰어들어도 별스러워하지 않고 명을 받들기에 급급했다.
주머니째로 은자를 던져주고 급하게 방을 빌린 강징은 등 뒤로 문이 닫히자마자 위무선의 허리를 당겨오고 따스한 뒷목을 휘감았다.
“앗... 강징...!”
목을 움츠리며 밀어내는 시늉을 하려던 위무선은, 깊게 들여다보는 강징의 눈과 마주치고는 그만 장난기도 쏙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소중하게 뺨을 감싸쥐는 손길에 위무선의 호흡도 거칠어지며, 뺨에 홍조가 떠올랐다.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중에서 부딪힌 입술들이 부벼지고 서로에게 몸을 얽어들며 나지막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강징은 급하게 입을 맞추고 어루만지며 한 손으로는 위무선의 팔을 더듬어내려 꼬옥 손깍지를 끼었다. 
짙게 감긴 눈썹 아래로 진한 감동이 퍼져나갔다.
이제서야, 강징은 위무선의 손을 먼저 잡을 수 있을만치 변한 것이다.
그 길고 긴 세월을 지나, 비로소.
그 긴 어리석음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고, 강징은 약속하듯 위무선의 붉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내리고 또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