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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4 22:34
1편 2편 3편
강징은 새벽 일찍 일어나자마자 집무실로 가서 서류 처리를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도 홀로 썰렁한 방에 앉아 하루만에 쌓인 일처리를 하느라 꼬박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침상을 들일까요. 종주, 아침상을...! 부사가 들락거리며 걱정스레 권하는 것도 세 번이나 물리고 난 뒤. 마침내 밖으로 나왔더니 둥실 뜬 해가 아낌없는 빛을 쏟아내렸다. 오늘도 날이 좋았다. 좋은 징조였다. 강징은 전쟁 후 첫 수확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잠시 볕을 쬐며 날을 살펴본 그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자신의 수련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렇게 바쁠 때에도 거르지 않았던 수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상당한 시간을 벌어 주었다.
“강종주.”
온정은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따금씩 강징이 지나가는 게 보이면 조심스레 피해 왔는데, 오늘은 모퉁이를 돌다가 딱 마주치고 말았다.
강징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는 온정을 볼 때마다 바로 이 사람의 의술이 너무 뛰어난 탓에 위무선의 금단을 뽑아내어 제게 심어버린 사실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매일 홀로 지새우는 밤이 길었던 강징은 이 오누이의 생각도 가끔씩 했다.
지리한 세월이 흐르며 진중해진 강징은 같은 온가라 하여 싸잡아 미워했던 증오도 다 가셨기에 편견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 오누이도 사실은 온약한에게 잡힌 포로와 같은 신세로, 자기들의 신변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강징과 위무선을 받아주고 치료까지 해 주었다. 그런 사람이 금단을 뽑아버리는 잔인한 결정을 쉽게 내렸을 리가 없다.
위무선이 얼마나 우기고, 애원을 했을까.
온정은 강징을 피하는 대신 애써 꿋꿋하게 행동하려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무릎을 살짝 굽혀 공손하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강종주,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폐를 끼쳐 죄송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주시면 곧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겠습니다. 그러니 정말 조금만 시간을 더...”
온정은 위무선이 강징을 설득한 덕에 연화오에 머무르며 턱도 없는 도움을 받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가시방석이라 얼른 떠나고 싶었지만 아직 먼 길을 가기에는 온녕의 몸이 성치 않았다.
전전긍긍, 마음을 졸이는 온정에게 강징이 차분하게 말했다.
“걱정말고 머무르십시오. 온공자가 나으면 당신들이 살 곳을 마련해 드릴 테니까요.”
온정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그렇게까지 해 준다고?
“온낭자. 그저 예의삼아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아 두십시오. 지금도 괜찮은 장소를 물색하는 중입니다.”
“물색을 하다니... 운몽에서요?”
“그럼 기산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그랬다간 또 금가 사람들에게 잡혀들어갈지도 모르는데.”
“......”
사실은 온정도 이 곳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했다. 전쟁 직후라 다들 살기 힘들었으니 어딜 가도 그 원흉인 온가에 대한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그렇다고 기산으로 가면 금가가 아니라도 곳곳에 점령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수사들에게 곤욕을 치르기 일쑤였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강징은 온정이 자신을 경계하는 것을 알고 일껏 부드럽게 말하려고 말소리를 낮추었다.
“위무선이 부탁했으니 당신들을 내몰라라 하진 않을 겁니다.”
그는 온정을 안심시키려고 무선의 이름까지 주워넘겼지만, 그래도 그녀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한 것 같았다. 강징은 초조했다. 이러다가 만약 그들이 아무도 모르게 야반도주라도 해 버리면 곤란했다. 그래서 강징은 기어코 마음이 불편하여 하지 않으려던 말까지 꺼내었다.
“온공자가... 양친의 시신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준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온정은 그 말에 움찔했다. 그녀는 그런 말을 들어도 되레 온가의 일원으로 그들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죄책감만 느낄 뿐이었다.
강징은 속이 답답했다. 애를 써서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어색해지기만 했다. 그가 아무리 많은 세월을 보내고 산전수전 겪었어도 이런 거북한 상황을 타개하고 사람의 마음을 달래줄 재주는 닦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마침 위무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두 사람의 사이에 뛰어들자, 강징은 목숨이라도 건진 것처럼 숨을 돌렸다.
“야아, 강징! --온녕은 일어났어? 오늘은 어때?”
강징은 한참 손위로 알고 있는 온정에게 함부로 말을 거는 위무선을 바로잡아 주려다가 그만 손사래를 쳤다.
“넌 어딜 가려고?”
“아... 응. 온녕이 지금쯤 입맛이 돌 거 같아서 맛난 걸 사다주려고.”
그런 김에 또 술잔치를 벌이려는 거겠지. 온씨들에게 신경쓰느라고 한동안 마실을 못 나갔으니.
강징은 손을 뻗어 금방이라도 쪽배를 타고 성내로 날라버릴 듯한 위무선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병인에게 아무거나 먹이는 거 아니다. 넌 이리 와.”
“아잇! 이거 놔! 어딜 가는데?”
나 오늘은 볼일이 있단 말이야! ...무선이 징징거려도 강징은 들은 체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래서 무선이 할 수 없이 끌려가 보니.
연무장에 모여 있던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한꺼번에 시선을 돌렸다.
강징이 정한 일정은 엄격하여 막 검술 수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던 수사가 인사를 하고 물러가자 곧바로 강징이 말했다.
“넌 이제부터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야, 위무선.”
“뭐... 뭣?! 나더러 이 꼬마들을 가르치라고?”
무선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아이들을 훑어보자 똘망똘망한 눈빛들도 지지 않고 노려보는 것이 기가 막혔다.
강징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당연하지. 언제까지 놀기만 할 셈이야? 어린애도 아니고.”
-어린애도 아니고. 겁도 없이 강징이 한 말을 따라하며 킥킥거리는 아이를 째릿, 노려본 위무선은 곧장 얼굴을 구슬프게 바꾸며 징징거렸다.
“강징, 안돼, 못해. 나 바쁘다고.”
그 말에 강징이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자 위무선은 쳇 하고 머리를 긁었다.
“그래, 나 안 바빠. 그렇지만 나더러 선생 노릇을 하라니 무슨 소리야! 하다못해 좀 더 머리 굵은 녀석들을 맡기던지.”
“하는 걸 봐서 이 아이들을 잘 가르쳐 내면 그렇게 하지.”
“뭣?! 이보다 더 늘리겠다고?! 야, 차라리 사냥을 다녀오라고 해! 내가 기쁜 마음으로 요괴든 신선이든 다 쓸어버리고 올게! 응? 강종주님!”
강징이 농담이 아닌 것을 안 위무선은 질색을 하며 매달렸다. 그렇지만 강징은 정색을 하며 덤터기까지 씌웠다.
“앞으로 너는 야렵도 내 허락 없이는 함부로 나가지 마. 일에도 순서가 있는 법인데, 네 맘대로 골라서 해치우고 다니면 자기 일만 급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어?”
“그...!”
위무선은 강징이 하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는 할 것 같으면서도 따라갈 수 없어 말문이 막힌 채 머리만 긁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안 될 일이 있어, 기를 쓰고 고집을 부렸다.
“근데 나, 검은 가르칠 수 없어. 그게...”
강징은 더럭 말을 쏟아내는 위무선을 보면서 가슴이 선득해졌다.
무선이 뭐라 하건 제 고집을 밀어붙일 기세였던 그는 갑자기 꿀꺽 입을 다물어버리고, 그리고 불안스레... 조금은 기대에 차서. 기다렸다.
그렇지만 위무선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눈알만 굴리다간, 결국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겠는지 꿍꿍 앓기만 할 뿐이었다.
강징은 답답하게 뭉치는 속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너처럼 절도 없는 인간에게 검술 수업을 맡길 생각은 한 적도 없거든? 넌 네가 잘 아는 부적술이나 요괴들에 대한 기초 수업이나 해. 그렇다고 이상한데로 새어나가서 쓸데없는 물을 들이진 말고. 내가 지켜볼 거다.”
위무선은 기어코 못을 박으며 저와 한 떼거리의 어린애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강징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나를 부려먹으려면 선금으로 술이라도 한 동이 안겨줄 것이지. 이윽고 구시렁거리며 무선이 내키지 않는 듯 돌아보자 아직도 호기심에 찬 반짝거리는 눈동자들이 한가득 쳐다보고 있었다.
위무선은 눈싸움이라도 하듯 장난기 가득한 시선들을 맞받아보다가 그만 마음이 촉촉해졌다.
현재 연화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어린 미래의 수사들은 죄다 전쟁통에 부모 친척을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었다. 강징은 없는 살림에도 그들에게 수련용 검을 갖춰 주었고, 하나같이 자색으로 된 번듯한 의복을 입혀 두었다.
꽤나 점잖게 머리를 꽂고 보랏빛 옷으로 휘감긴 아이들을 바라보며 위무선은 괜시리 감상에 빠졌다.
그래. 운몽 강씨는 깨끗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징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벌써 가문의 기틀을 갖추어나가고 있었다.
그럼 나도 힘을 보태야 하겠지. 금단이 없다고 징징거리고만 있을 순 없지.
강숙부와 우부인이 뒷일을 부탁했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이 몸을 바쳐야 할 것이었다.
무선은 진정을 꺼내어 한 바퀴 휘릭 돌리고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먼저, 스승으로서 정중한 인사를 받아 볼까? 요 건방진 꼬맹이들아.”
강징은 새벽 일찍 일어나자마자 집무실로 가서 서류 처리를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도 홀로 썰렁한 방에 앉아 하루만에 쌓인 일처리를 하느라 꼬박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침상을 들일까요. 종주, 아침상을...! 부사가 들락거리며 걱정스레 권하는 것도 세 번이나 물리고 난 뒤. 마침내 밖으로 나왔더니 둥실 뜬 해가 아낌없는 빛을 쏟아내렸다. 오늘도 날이 좋았다. 좋은 징조였다. 강징은 전쟁 후 첫 수확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잠시 볕을 쬐며 날을 살펴본 그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자신의 수련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이렇게 바쁠 때에도 거르지 않았던 수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상당한 시간을 벌어 주었다.
“강종주.”
온정은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따금씩 강징이 지나가는 게 보이면 조심스레 피해 왔는데, 오늘은 모퉁이를 돌다가 딱 마주치고 말았다.
강징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는 온정을 볼 때마다 바로 이 사람의 의술이 너무 뛰어난 탓에 위무선의 금단을 뽑아내어 제게 심어버린 사실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매일 홀로 지새우는 밤이 길었던 강징은 이 오누이의 생각도 가끔씩 했다.
지리한 세월이 흐르며 진중해진 강징은 같은 온가라 하여 싸잡아 미워했던 증오도 다 가셨기에 편견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 오누이도 사실은 온약한에게 잡힌 포로와 같은 신세로, 자기들의 신변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강징과 위무선을 받아주고 치료까지 해 주었다. 그런 사람이 금단을 뽑아버리는 잔인한 결정을 쉽게 내렸을 리가 없다.
위무선이 얼마나 우기고, 애원을 했을까.
온정은 강징을 피하는 대신 애써 꿋꿋하게 행동하려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무릎을 살짝 굽혀 공손하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강종주,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폐를 끼쳐 죄송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주시면 곧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겠습니다. 그러니 정말 조금만 시간을 더...”
온정은 위무선이 강징을 설득한 덕에 연화오에 머무르며 턱도 없는 도움을 받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가시방석이라 얼른 떠나고 싶었지만 아직 먼 길을 가기에는 온녕의 몸이 성치 않았다.
전전긍긍, 마음을 졸이는 온정에게 강징이 차분하게 말했다.
“걱정말고 머무르십시오. 온공자가 나으면 당신들이 살 곳을 마련해 드릴 테니까요.”
온정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그렇게까지 해 준다고?
“온낭자. 그저 예의삼아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아 두십시오. 지금도 괜찮은 장소를 물색하는 중입니다.”
“물색을 하다니... 운몽에서요?”
“그럼 기산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그랬다간 또 금가 사람들에게 잡혀들어갈지도 모르는데.”
“......”
사실은 온정도 이 곳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했다. 전쟁 직후라 다들 살기 힘들었으니 어딜 가도 그 원흉인 온가에 대한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그렇다고 기산으로 가면 금가가 아니라도 곳곳에 점령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수사들에게 곤욕을 치르기 일쑤였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강징은 온정이 자신을 경계하는 것을 알고 일껏 부드럽게 말하려고 말소리를 낮추었다.
“위무선이 부탁했으니 당신들을 내몰라라 하진 않을 겁니다.”
그는 온정을 안심시키려고 무선의 이름까지 주워넘겼지만, 그래도 그녀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한 것 같았다. 강징은 초조했다. 이러다가 만약 그들이 아무도 모르게 야반도주라도 해 버리면 곤란했다. 그래서 강징은 기어코 마음이 불편하여 하지 않으려던 말까지 꺼내었다.
“온공자가... 양친의 시신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준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온정은 그 말에 움찔했다. 그녀는 그런 말을 들어도 되레 온가의 일원으로 그들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죄책감만 느낄 뿐이었다.
강징은 속이 답답했다. 애를 써서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어색해지기만 했다. 그가 아무리 많은 세월을 보내고 산전수전 겪었어도 이런 거북한 상황을 타개하고 사람의 마음을 달래줄 재주는 닦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마침 위무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두 사람의 사이에 뛰어들자, 강징은 목숨이라도 건진 것처럼 숨을 돌렸다.
“야아, 강징! --온녕은 일어났어? 오늘은 어때?”
강징은 한참 손위로 알고 있는 온정에게 함부로 말을 거는 위무선을 바로잡아 주려다가 그만 손사래를 쳤다.
“넌 어딜 가려고?”
“아... 응. 온녕이 지금쯤 입맛이 돌 거 같아서 맛난 걸 사다주려고.”
그런 김에 또 술잔치를 벌이려는 거겠지. 온씨들에게 신경쓰느라고 한동안 마실을 못 나갔으니.
강징은 손을 뻗어 금방이라도 쪽배를 타고 성내로 날라버릴 듯한 위무선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병인에게 아무거나 먹이는 거 아니다. 넌 이리 와.”
“아잇! 이거 놔! 어딜 가는데?”
나 오늘은 볼일이 있단 말이야! ...무선이 징징거려도 강징은 들은 체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래서 무선이 할 수 없이 끌려가 보니.
연무장에 모여 있던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한꺼번에 시선을 돌렸다.
강징이 정한 일정은 엄격하여 막 검술 수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던 수사가 인사를 하고 물러가자 곧바로 강징이 말했다.
“넌 이제부터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야, 위무선.”
“뭐... 뭣?! 나더러 이 꼬마들을 가르치라고?”
무선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아이들을 훑어보자 똘망똘망한 눈빛들도 지지 않고 노려보는 것이 기가 막혔다.
강징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당연하지. 언제까지 놀기만 할 셈이야? 어린애도 아니고.”
-어린애도 아니고. 겁도 없이 강징이 한 말을 따라하며 킥킥거리는 아이를 째릿, 노려본 위무선은 곧장 얼굴을 구슬프게 바꾸며 징징거렸다.
“강징, 안돼, 못해. 나 바쁘다고.”
그 말에 강징이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자 위무선은 쳇 하고 머리를 긁었다.
“그래, 나 안 바빠. 그렇지만 나더러 선생 노릇을 하라니 무슨 소리야! 하다못해 좀 더 머리 굵은 녀석들을 맡기던지.”
“하는 걸 봐서 이 아이들을 잘 가르쳐 내면 그렇게 하지.”
“뭣?! 이보다 더 늘리겠다고?! 야, 차라리 사냥을 다녀오라고 해! 내가 기쁜 마음으로 요괴든 신선이든 다 쓸어버리고 올게! 응? 강종주님!”
강징이 농담이 아닌 것을 안 위무선은 질색을 하며 매달렸다. 그렇지만 강징은 정색을 하며 덤터기까지 씌웠다.
“앞으로 너는 야렵도 내 허락 없이는 함부로 나가지 마. 일에도 순서가 있는 법인데, 네 맘대로 골라서 해치우고 다니면 자기 일만 급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어?”
“그...!”
위무선은 강징이 하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는 할 것 같으면서도 따라갈 수 없어 말문이 막힌 채 머리만 긁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안 될 일이 있어, 기를 쓰고 고집을 부렸다.
“근데 나, 검은 가르칠 수 없어. 그게...”
강징은 더럭 말을 쏟아내는 위무선을 보면서 가슴이 선득해졌다.
무선이 뭐라 하건 제 고집을 밀어붙일 기세였던 그는 갑자기 꿀꺽 입을 다물어버리고, 그리고 불안스레... 조금은 기대에 차서. 기다렸다.
그렇지만 위무선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눈알만 굴리다간, 결국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겠는지 꿍꿍 앓기만 할 뿐이었다.
강징은 답답하게 뭉치는 속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너처럼 절도 없는 인간에게 검술 수업을 맡길 생각은 한 적도 없거든? 넌 네가 잘 아는 부적술이나 요괴들에 대한 기초 수업이나 해. 그렇다고 이상한데로 새어나가서 쓸데없는 물을 들이진 말고. 내가 지켜볼 거다.”
위무선은 기어코 못을 박으며 저와 한 떼거리의 어린애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강징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나를 부려먹으려면 선금으로 술이라도 한 동이 안겨줄 것이지. 이윽고 구시렁거리며 무선이 내키지 않는 듯 돌아보자 아직도 호기심에 찬 반짝거리는 눈동자들이 한가득 쳐다보고 있었다.
위무선은 눈싸움이라도 하듯 장난기 가득한 시선들을 맞받아보다가 그만 마음이 촉촉해졌다.
현재 연화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어린 미래의 수사들은 죄다 전쟁통에 부모 친척을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었다. 강징은 없는 살림에도 그들에게 수련용 검을 갖춰 주었고, 하나같이 자색으로 된 번듯한 의복을 입혀 두었다.
꽤나 점잖게 머리를 꽂고 보랏빛 옷으로 휘감긴 아이들을 바라보며 위무선은 괜시리 감상에 빠졌다.
그래. 운몽 강씨는 깨끗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징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벌써 가문의 기틀을 갖추어나가고 있었다.
그럼 나도 힘을 보태야 하겠지. 금단이 없다고 징징거리고만 있을 순 없지.
강숙부와 우부인이 뒷일을 부탁했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이 몸을 바쳐야 할 것이었다.
무선은 진정을 꺼내어 한 바퀴 휘릭 돌리고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먼저, 스승으로서 정중한 인사를 받아 볼까? 요 건방진 꼬맹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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