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나더   2나더   3나더   4나더   5나더
 
6나더   7나더   8나더   9나더   끝나더


태섭대만 알오버스 현대au



-



"야. 그거 들었어?"

정우성이 의뭉스럽게 말했음. 듣긴 뭘 들어? 그, 너네 북산 선배 말야.


그 날의 원온원은 그대로 끝이 났음. 송태섭은 소식을 듣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헤이버 검색창에 [정대만]을 입력했겠지. 최근 일주일 내에 올라온 기사만 수십개임. [애 보러 가야죠. 오늘은 비눗방울 총 사간다고 했거든요.] 짧은 인터뷰 동영상을 몇번이고 되돌려보다가, 목소리는 그대로네.. 하고서 화면을 끄는 송태섭.

(야 원온원 안해? 지가 불러놓고 지금... 야! 안들려?)


'아이가 있다고. 근데 미혼부라고... 어쨌든 결혼까진 안 했어도 누구랑 사귀었다는 거겠지. 내가 미국 간 다음에? 아니면 설마 헤어진 이유가...? 아니야. 오버하지마.'


(지금 나 무시해? 나 간다. .... 나 진짜 간다. ...... 나 진짜 간다고! 야!) 




정우성이 짜증을 내며 자리를 뜨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송태섭은 상념에 빠졌음. 낯선 팀의 유니폼을 입고서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하는 정대만... 할 말이 끝났다는 듯 말갛게 웃는 표정이, 기억속의 정대만과 다르지 않았음. 아름다운 슛 폼, 곧게 뻗은 다리와 부드러운 어깨, 섬세한 손가락까지.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경기 중에 가장 빛나는 정대만. 그 모습이 다시 보고싶었겠지.


송태섭은 티셔츠 안으로 손을 헤집어 얇은 체인에 걸린 반지 한 쌍을 꺼내듬. '주인에게 되돌려주기엔 상황이 썩 좋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면.'

송태섭은 항공권 사이트에 접속했음.




-




"어떻게 해야 한다고?"
"인사 잘하고, 선생님 말 잘 듣기!"


소만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정대만은 아침부터 바빴음. 평소에 운동 갈 때와는 다르게 포멀한 옷도 챙겨입고, 헤어도 좀 다듬고... 밥 먹으면서 대답도 잘하는 아들 소만이를 보고 있으려니 옷도 잘 입고 머리 손질도 잘 하는 남자가 떠올랐지만, 정대만은 애써 머리에서 지워버렸음.

도착한 학교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천방지축일 아이들도 어느새 나란히 줄을 맞춰 서 있겠지.. 정대만은 아빠! 하고 뒤돌아 손을 흔드는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약간 울 것 같다. 한참 인사를 받아주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저, 혹시 정대만 선수 아니세요?" 하겠지. 그럼 대만이는 언제나처럼 웃으면서 부드럽게 얘기함.

"맞는데 오늘은 소만이 아빠로 왔습니다. 조용히 있다가 가고 싶어서요, 사진은 입학식 끝나고 찍어드려도 될까요?"





많은 연예인/운동선수들이 출산과 동시에 아이의 존재를 언론에 알리는 것에 비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서야 발표한 정대만은 그 시기가 꽤 늦은 편이었음. 그래서 그 이례적인 지연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던 것도 잠시, 사람들의 시선은 점차 변하겠지.

아이의 친모라는 사람이 계속해서 나타나자 처음엔 바람둥이구나 했던 대중들도... 6명이 줄줄이 사실무근으로 고소당하자 슬슬 정대만이 안쓰러울테니까. 이 꼴 보기 싫어서 말 안했구나... 그리고 정대만 본인이 워낙 경기 잘하고 예의발라서 이미지 좋은데다, 수많은 지인들 증언까지 더해져서 그냥 농구하게 냅두자는 공감대가 형성됨.


-작년 내림픽 폐막식날요? 아 그거 제가 회식 끝나고 인사불성되서 선배가 가까운 호텔에 데려다준거예요. 저 백키로도 넘는데 짊어지고 오셨거든요. 다른 사람 만났을리가요.
-강백호랑 사귀는ㅋㅋㅋ거 냐고요?ㅋㅋㅋㅋㅋㅋㅋ아 ㅋㅋㅋ 기자님. 제가 오늘 들은 농담중에 제일 웃겼습니다.
-오전에 한강데이트,, 그건 진짜 거짓말입니다. 대만이 시즌 아닐 때도 아침마다 로드워크해요. 저랑 트랙킹 앱으로 대결하는데 6시 반부터 뛰더라고요.



소만이 초등학교 입학한 후에는 친모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게 되겠지. 


그제서야 대만이는 비로소 조금씩 여유를 가지고 소만이랑 밖에서 놀기도 하고 그럴듯.




-




4월, 시즌오프. 


드디어 정규리그가 끝났음. 그동안 잘 못 놀아준거 보상하려고 오늘은 소만이 하고싶은거 다 하자! 하고 지갑의 출혈을 각오한 정대만...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소만이는 집 코앞에 있는 농구 코트에서 농구공 가지고 놀자고 함. 

"소만아. 너 삼촌들이랑 맨날 농구공 가지고 노는데 안 질려?"
"아빠는 농구하는거 질려?"
"아니."
"나도."

역시 내 아들이야. 농구 코트 있는 곳으로 이사오길 잘 했지? 하고 물으니 응!! 하는 우렁찬 대답이 들려옴.


사실 소만이는 아직 어려서 진짜 농구를 한다기 보단 농구공을 튀기고 던지고 못살게 구는 정도임. 그래서 공을 잡고 뛰어다니다가 아빠한테 보내주면 슛이나 드리블같은 기술 보여주고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대만이가 허리 숙이고 공 뺏는 척 하고, 소만이는 꺄르륵 웃으면서 도망갔다가 아빠한테 공 던져줌. (슛 보고 싶을 땐 꼭 "패스!" 소리치면서 보내는게 진짜 귀엽다고 대만이는 생각함)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굴러떨어진 공을 힘줘서 타탕! 드리블해 올린 정대만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삼점슛을 꽂아넣겠지.



-



송태섭은 귀국하자마자 권준호에게 전화를 걸었음. 강탈하듯 주소를 챙긴 태섭은 그대로 택시를 붙잡고 무작정 대만이네 집앞까지 감.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들리는 농구공 소리. 홀린 듯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긴 태섭은... 보고 말았음.


중학교 시절의 첫사랑이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걸.


"형."


송태섭이 고민할 새도 없이, 자기도 모르게 정대만을 부르면 좋겠다.. 들릴 리 없는 목소리를 들은 정대만은 급하게 뒤로 돌다가 발을 헛디딤. 괜찮아요? 하면서 달려온 태섭이 반갑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무섭기도 함. 와중에 무릎에 부담이 가지 않게 자기 힘으로 일으켜주는 부분이 너무 태섭이다워서 정대만은 복잡한 심경이겠지.

소만이는 송태섭이 아빠를 일으켜주는 걸 보고는 바로 경계심을 풀고 해맑게 말을 검. 태섭에게 아이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대만이의 마음도 모르고.


"안녕하세요! 아저씬 누구에요? 아빠 친구?"
"응. 아빠 친구."
"그럼 삼촌!"
"음... 아직은 아저씨라고 불러주라."


소만이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서, 송태섭은 멍하니 공을 붙들고 서있는 정대만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 함. "나랑도 해줘요" 뭘? 이라고 생각하자마자 태섭이가 공 스틸함. 정신이 없어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게 농구 선수라, 둘은 짧지만 치열한 접전을 펼치는데 태섭이가 먼저 점수 낼 것 같다.

그리고 소만이는 그 순간 태섭이한테 반해버림.


-


대만이는 약간 당황함. 왜냐면 송태섭이 너무 자연스럽게 소만이랑 놀아주고 있어서... 발단은 어제 농구 코트에서부터일듯. 생전 떼 쓴적 없던 소만이가 방금 처음 만난 모르는 아저씨 1이어야 할 태섭이랑 더 놀거라고 징징거릴 줄은 몰랐음. 그래서 태섭이한테 잘 지냈냐는 말도 못하고 얼레벌레 셋이서 농구하다가 온 정대만.

게다가 송태섭은 한술 더 떠서 자연스럽게 집에 와서 저녁먹고(아저씨는 스파게티 좋아요? 맨날 먹어서 질려. 나는 저번에 처음 머거봤는데!) 소만이 씻기고(아저씨 내 샴푸는 이거!) 재우고(내 방 여기에요! 책이 있네. 아빠가 읽어줘? 네!) 알아서 손님방에서 자고 (형. 나 여기서 자면 되죠?)

어??? 정대만은 침대에 누워서도 옆방에 송태섭이 있다는게 약간 믿기지 않았는데 다음날 일어나니까 송태섭이 소만이 스파게티 해주고 있어서 기함하겠지.



송태섭은 나름대로 정대만이 어디까지 허락해주나 재보는 중인데 너무... 다 오케이라서 내심 놀라는중임. 소만이가 자길 좋아해줘서 다행이라고 해야되나? 설마 아무한테나 이러지는 않겠지... 손님방에 다른 사람 흔적 없나 살펴보는데 딱히 의심스러운 건 없음. 아까 소만이 슬쩍 떠봤는데 아빠 친구는 고릴라, 빨간 고릴라, 안경 선배 뿐이라고 하던데... 애인이 없는 건지, 아직 애한테 소개를 안해준 건지.





-

+ 태섭이가 아직 아저씨라고 불러달라고 한 건... (삼촌 -> 아빠)보다 (아저씨 -> 아빠)가 더 쉬울 것 같아서.


3나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