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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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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s.jpg
이슈에서 잘 나오진 않지만 둘이 키차이 확실하게 난다는 게 좋음
오피셜 배리 182.88cm 할 187.96


14.



할이 코코아를 두 잔 타다가 뻐근한 어깨를 돌려 풀었다. 우유를 마저 붓고, 숟가락으로 저어 뭉친 가루를 풀어냈다. 적당히 섞인 컵을 전자레인지에 넣은 뒤 버튼을 눌렀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에 멍하니 흐려진 초점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배리가 어려진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센트럴 시티는 인구수 46만에 육박하는, 꽤 넓은 도시였다. 월리가 도와주기 시작한 후로는 CCPD 주변이나 너무 번잡한 곳을 빼고는 어느 정도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동화 훈련의 횟수가 쌓이면서 최근에는 아무 데서나 갑자기 원래대로 돌아올 것을 경계해 바깥 외출을 자제하고 있었다.

사나흘에 한 번 가는 워치타워가 그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고, 키스톤 시티에 있는 월리나 제이네 집을 한두 번 놀러 간 경험이 있었다. 다행히 거의 완벽에 가깝게 회복한 제이는 기꺼이 다시 패트롤을 돌겠다고 했지만, 월리가 뜯어말렸다.



오늘은 배리가 답답해할 것을 걱정한 클락이 넓은 곳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그의 고향으로 초대해서 잠시 다녀왔었다. 센트럴 시티에서 나고 자란 배리에게 농촌은 생소한 곳이었다. 할이라고 다를 건 없었지만, 전 우주 구석에 처박힌 이름 모를 행성에 밥 먹듯 찾아가는 그에게 낯선 장소라는 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호불호가 갈릴 뿐이지. 평소 같았으면 지루한 촌구석에 제 발로 가는 일은 절대 없었겠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외출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보면서 할은 활주로를 달리는 제트기라도 상상해보려고 애를 썼다.

배리에게 또래의 친구를 만들어 줄 수는 없어도, 몇 마리의 동물 친구 정도는 해가 되지 않을 터였다. 할과 클락, 그리고 켄트 부부의 너그러운 시선 아래에서 배리는 농장 소유의 말과 소 따위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돌아다녔다. 센트럴 시티와 스몰빌이 있는 캔자스 시티는 같은 미주리 주에 속해 있어서 따지고 보면 그렇게 장거리 운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피곤했다. 11월의 싸늘한 날씨에는 한가하리라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알고 보니 수확 철이었다. 농가의 활기참이란. 할은 농사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웃는 얼굴로 자연스럽게 일을 시키던 클락때문에 진이 다 빠졌으나 오리를 쓰다듬으며 밝게 웃던 배리를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을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전자레인지에서 울린 타이머의 알람 소리가 할을 상념에서 깨웠다. 컵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거실로 돌아가니 소파 팔걸이에 기대어 졸고 있는 배리가 눈에 들어왔다. 찬 바람을 쐬고 들어와 따듯한 물로 씻으니 슬슬 노곤해진 모양이었다. 탁자에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에도 깨지 않았다.


배리는 왜 아직 안 돌아오고 있는 걸까? 스피드포스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월리와의 동화 훈련은 며칠에 한 번씩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게 시간과 공간을 끌어올리는 거라면, 하다못해 몸이라도 돌아와야 하는 게 아니었나? 할이 아이를 깨우지 않고 김이 올라오는 컵 너머로 잠시 평온한 모습을 바라봤다.



***


바라는 걸 조심하라고 했던가. 그가 기다리던 일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일어났다.


평소와 같이 잠을 자던 할이 뭔가 뜨끈하게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커다란 핫팩이라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캘리포니아 출신답게 더위에 강한 만큼 추위에는 약했다. 11월이 지나가는 시점에, 다른 곳도 아닌 센트럴 시티에서 ‘더워서’ 깰 일은 없다는 뜻이다.


뻑뻑한 눈을 잠시 깜빡이다가 시선을 아래로 살짝 내렸다. 동이 트기 시작했는지 창문으로 푸른 빛이 들어와 매일 껴안고 자는 익숙한 인영을 드러냈다. 그런데, 뭔가 크기가 달랐다. 평소엔 가슴팍에 머리가 살짝 올라와도 이 정도로 무겁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깔린 쪽이 저렸다. 불편하게 고정된 몸을 아주 살짝 움직였다. 그에게 얽혀있는 다리의 느낌은 분명 성인 남성이었다.

아직 머릿속이 몽롱하니 현실 감각이 없는 할이 왼손을 뻗어 상대방의 가슴과 옆구리 사이 어딘가를 손으로 더듬었다. 셔츠 너머로 잘 갈라진 상체 근육이 탄탄하게 잡혔다. 누가 봐도 어린아이의 근육은 아니었다. 서서히 초점이 잡히기 시작한 시야에, 낮게 깔린 금색 속눈썹과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배리?”

할이 작게 속삭였다. 깰 기미가 없어 보여, 아직 얹혀있는 손을 살짝 흔들었다. 얕은 자극에 상대방이 꼼지락대다가 이내 멈췄다.

조금씩 뜨이는 눈 너머로 할의 모습이 비치는 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그들은 잠시 마주 본 채로 조용히 누워있었다. 곧 배리의 입이 열렸다.


“할-”


그리고, 갑자기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파직, 하고 노란 번개가 튀더니 안겨있던 몸이 다급하게 물러났다. 할이 깜짝 놀라 상체를 일으키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던 배리가 그대로 큰 소리와 함께 굴러떨어졌다.

침대 너머 바닥에서 이불이 엉겼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할이 그 틈을 타서 빠르게 빠져나와 바닥에 발을 딛고 방어태세를 취했다.


잠시 후, 겨우 비틀대며 일어난 배리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정전기가 불안정하게 계속 튀었다. 공격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할의 구조물로는 플래시를 오래 가둬둘 수 없었다. 당황한 할이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손바닥을 펴 옆으로 들었다.


“배리, 일단 진정하고-”


말을 더 이으려는데, 배리가 양손을 자기 목에다가 가져다 댔다. 그가 미처 둘러싸기도 전에, 할이 반사적으로 수갑 모양 구조물을 만들었다. 단단히 구속된 배리의 양팔이 앞으로나란히 뻗었다. 지금 자기 목을 조르려고 한 건가?


“목...” 배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목소리? 목소리가 왜? 할이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봤다. 잘 자다가 갑자기 이게 뭔...


그 순간, 배리의 눈에 눈물이 조금씩 차올랐다. 흐느끼거나 본격적으로 울지는 않았지만, 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와 더불어 어색한 몸동작과, 목소리까지.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은 느낌에 할이 등을 타고 오르는 싸한 기분을 무시하며 물었다.


“...배리, 너 지금 몇 살이야...?”


배리가 머뭇거리다가 가늘게 끊어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열한 살이요...”


이런 제기랄... 할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언제 돌아오는지 궁금해했다지만, 진짜로 몸만 돌아오는 건 너무했다. 생각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나?


배리는 초반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을 때를 제외하면 최근에는 운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약한 아이가 아니었다. 때로 조잘거릴 때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학교에서 약한 애들을 괴롭히는 무리와 대신 나서서 싸울 줄도 알았고, 어지간한 일에는 잘 동요하는 성격 같지도 않았다.

변성기가 천천히 와도 어렵게 반응하는 아이들이 있는 걸 고려하면 하루 만에 목소리가 변했으니 놀랄 만도 했다. 배리의 목소리는 아주 굵고 낮지는 않지만, 가느다란 미성도 아니었다. 차분하게 듣기 좋은 적당한 저음이어도, 본인 귀엔 어떻게 들릴지 몰랐다. 달라진 시야에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가만히 팔과 다리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울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니, 자신의 외모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거울? 아, 거울. 할이 배리보다 먼저 정신을 차렸다.


“배리, 진정하고 내 말 들어봐. 지금 네 몸이 먼저 돌아온 것 같거든?”
배리가 고개를 반짝 들었다. 다행히 호기심이 깃들었다. “이상해진 게 아니고요?”

“그냥 돌아온 것뿐이야. 일단, 내가 보기엔 그래.” 아직 정식으로 검사받질 않았으니 아무것도 확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팔다리 두 개씩 있고 생김새가 정상인 걸 보면 어쨌든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지금은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네 모습 보고 싶어?”


배리가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욕실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할 쪽으로 한 발자국 성큼 내딛는 것과 동시에, 배리의 다리가 앞으로 쭉 미끄러지며 몸이 뒤로 넘어질 듯 기울어졌다. 깜짝 놀란 할이 손 모양의 녹색 구조물을 빠르게 만들어 배리를 공중으로 잡아 올렸다. 배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손을 심장 근처에 잠시 얹고 누르다가, 곧 진정하고는 내려달라고 작게 말했다.

할이 배리를 천천히 바닥으로 내린 뒤 의심스럽게 바라보며 옆에서 같이 걸었다.



곧 욕실의 거울 앞에 선 배리가 자신의 얼굴을 쳐다봤다. 사실 할이 보기에는 어릴 때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리는 그대로, 잘 컸고, 누가 봐도 인상 좋고 깔끔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막상 당사자는 그저 신기한 표정일 뿐, 별다른 감상은 없었다. 잠시 팔다리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옆에 있는 할과 눈높이를 비교하더니, 특별한 말 없이 조심스럽게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직 이른데, 더 잘래?”


배리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실로 발길을 돌렸다. 잠이 완전히 깬 할은 피곤한 얼굴을 문지르며 소파로 향했다. 멀어져가던 배리의 뒷모습이 멈췄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자, 배리가 문가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보니까 또 생소하네, 할이 생각했다. 원래 알던 배리는 좀처럼 우물거리는 법이 없었다. 다 큰 모습으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배리가 곧 입을 열었다.


“저...” 아직 어색한지 헛기침을 했다. 자다 깬 목이 잠겨 평소보다 더 낮은 목소리가 나왔다. “불안해서요. 능력이...”


말을 많이 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능력이 아직 불안정해서 혼자 자기가 불안하단 말임을 짐작해낸 할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커진 것과 관계가 있나? 다음 검사 일정은 이틀 뒤였다. 바로 가도 될 테지만, 오랜만에 보는 배리의 모습이 반가워 내심 이대로 조금만 더 있었으면 했다. 할이 배리의 뒤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이제 보니 침대가 커서 정말 다행이었다.


***


뭔가의 영향 탓인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배리는 그날 온종일 여기저기 부딪치고 다녔다. 그가 책상다리에 다섯 번째로 발을 찧었을 때, 할은 진지하게 집 전체를 반지 구조물로 씌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사지를 씌우든지. 배리가 민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몸이 많이 나가요. 눈높이도 다르고...”


할이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긴 각목을 팔다리에 끼운 채로 다니는 느낌이려나? 배리가 할보다 약간 작기는 해도 꽤 크고 건장한 체격이었다. 직전의 마르고 작은 몸에 비하면 어색한 건 당연했으니, 적응하는 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고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어쩐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저 정도 충격은 스피드포스의 쿠션이 흡수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어설픈 배리 앨런의 모습이 신기할 뿐이었다. 할이 기억하는 한 그는 언제나 산뜻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였었다.


“반지,” 몰래 입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이거 다 기록되고 있어?”
<기록중. 확인.> 로봇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좋았어.” 할이 씩 웃었다. 나중에 써먹을 데가 있을 것이다.


***


불안정했던 스피드포스도 서서히 안정되어갔다. 정전기가 튀는 빈도수가 줄었고, 움직임도 익숙해졌다. 처음 욕실로 씻으러 들어가서는 평소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더니, 이내 매우 어색하고 당황한 얼굴로 새 옷을 껴입고 나왔다. 할이 보이지 않게 키득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수위 높은 농담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눌러 참았다. 속에 들어있는 게 열한 살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었다.


하루면 돌아올 줄 알았던 기억은 다음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는 욕실에서 나온 배리가 가만히 매트 위에 서 있었다. 문제가 있나? 가까이 다가간 할이 배리의 머리를 싸고 있던 수건을 풀어 털어주었다. 어릴 때보다 짧아진 머리는 마르는 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배리가 턱에 손을 올리는 걸 보고서야, 이상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아.” 할이 배리의 어깨를 돌려 욕실로 다시 밀어 넣었다. “내가 해줄게.”


머리와 똑같은 색의 수염이 옅게 돋아나 있었다. 배리는 원래 수염이 빠르게 자라는 편이 아니었다. 이틀이 지나서야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정도였으니. 사실 이 정도면 밀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본인이 어색해하니 도와주기로 했다. 아직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벽에 부딪치는 시점에서, 면도기를 직접 쥐여 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빨리 낫는다고 해도.


쉐이빙폼을 바르고, 한 손으로 턱을 살짝 잡아 들었다. 전기면도기의 모터 소리가 들리자 배리가 눈을 꾹 감았다. 아프지는 않겠지만, 무서운 모양이었다. 할이 잠시 내려앉은 속눈썹을 보다가 느릿한 손길로 면도를 시작했다. 약간 움찔거리긴 했지만 멀리 피하거나 하는 일 없이 잘 참고 있었다. 익숙하게 끝내고, 물로 한 번 깨끗하게 씻긴 뒤에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물기가 마르며 맨피부가 드러났다. 할에 비해 흰 편이었다. 스피드포스가 피부에도 영향을 주나? 할이 손으로 배리의 예쁘게 각진 턱선을 살짝 쓸며 속으로 생각했다. 세포 재생이 어쩌고 했으니, 아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이렇게 가까이서 가만히 쳐다본 적은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엄지로 입술 끝을 스쳤다. 배리가 천천히 눈을 뜨고, 티 없는 눈망울이 할의 것과 시선을 맞췄다. 아무 의도 없는 그 열린 표정을 본 순간, 할이 불에 덴 듯 손을 빠르게 뗐다.


“...어, 다 끝났어.”
“고마워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배리가 순진한 얼굴로 먼저 욕실을 나섰다. 할이 가만히 자리에 서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쳐다봤다. 정신 차리자. 스스로 다짐했다. 다 큰 배리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영 기분이 이상했다. 젠장, 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야?



이제 원래의 모습인 이상, 정말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문 앞 조차 힘들었다. 매리언 부인에게 잡혀서 그녀가 말이라도 한마디 건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금방 눈치챌 것이다. 바로 다음 날이 워치타워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배리는 아무런 불만 없이 소파에 파묻혔다. 다행히 할이 배리의 방구석 서류 더미 아래 묻혀 있던 노트북을 발굴해냈고, 그걸로 함께 넷플릭스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민감한 서류를 잘못 건드리게 될까 봐 치우지 않고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뒤져볼 것을. 할은 속으로 후회했다.


성격이 괴팍한 천재 의사가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반쯤 죽이고 치료하는 내용의 드라마를 몇 편이고 보던 배리가 하품을 하며 팝콘이 담긴 볼을 내려놓았다. 의학적인 내용이 구미에 맞는지 반짝거리는 눈으로 집중하며 보고 있었지만, 장장 열 시간이 넘게 보는 것은 무리인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성적인 농담이나 지나치게 냉소적인 대사 탓에 조금 불편함을 느끼던 할이 냉큼 화면을 덮었다.


“피곤해?”

배리가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욕실로 대충 밀어서 들여보내고, 남겨진 할은 노트북 위에 몸을 굽히듯 던졌다. 급하게 다시 열어 넷플릭스 창에서 드라마의 소개 페이지로 넘어갔다. 권장 시청 연령. 시청 연령... ...14세. PG인 에피소드도 있었다. 어쩐지. 고개를 숙였다. 소재만 보고 고를 게 아니었는데. 나중에 배리가 기억을 찾았을 때 이 부분만 없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날밤, 전보다 조금 좁게 느껴지는 침대에 배리와 함께 누웠다. 아이였을 때에는 늘 옆으로 누워 할에게 달라붙었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큰 몸이 불편한지 사이에 조금 공간을 두었다. 그래봤자 어차피 아침이 되면 할의 몸 위에 머리를 대고 상체를 반쯤 올려놓을 게 뻔했다. 언제나 할이 먼저 일어나기 때문에 배리는 모를 것이다. 옆에 뭔가 있으면 웅크려서 껴안는 게 버릇인 것 같았다. 할은 이게 다 큰 배리에게도 있는 버릇일지 궁금했다.

혹시 밤중에 기억이 돌아온다면 아침쯤에는 알 수 있게 될까? 벌써 느려진 숨소리와 함께 슬슬 움츠러들기 시작한 배리를 보며 할이 슬며시 미소짓고는 이불을 다시 목까지 잘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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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들: (억울)

앰뒤 권장 시청 연령은 (미국 기준) 14세...


이제 고지가 보인다 아으 힘들어



할배리
2021.07.22 00: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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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요옷 내 센세 오셨어!!!!
[Code: c512]
2021.07.22 00: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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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배리 물심양면으로 보살피는 할벤츠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 중간중간 할이 어른 배리 그리워할때마다 은은한 찌통에 가슴 부여잡았는데 어른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고것이… 고것이… 몸만 커버릴 줄이야… 센세는 천재인가요… 어른배리(in 11살) 욕실에 집어 넣고 면도해주는 부분에서 섹텐이 느껴져서 벽에 셀프로 머리 박고 왔어요 ༼;´༎ຶ ۝ ༎ຶ༽ 진짜 너무 좋아ㅠㅠㅠㅠ 끝이 보인다니 시러ㅠㅠ 센세가 천년만년 연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랑해 나의 센세…
[Code: c512]
2021.07.22 00: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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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센세가 성실수인이라니 감동의 눈물이 앞을 가린다ㅠㅠㅠㅠㅠ 배리 정신까지 돌아오고 나서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싶어서 뜬눈으로 뱃색창 새로고침하는게 내 일과가 됐어.... 궁금해서 잠도 안온다 책임지고 영원히 연재해주세요 센세ㅠㅠㅠㅠㅠㅠ
[Code: 2a0f]
2021.07.22 03: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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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너무 좋다
[Code: c56b]
2021.08.23 04: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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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아이러브유
[Code: afba]
2022.09.06 03:3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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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던가? 정말 끝내준다
알맹이는 아직 11살 애기베리인데 왜 나는 자꾸 엄한 생각이 드는지...응...그만할게
[Code: b5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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