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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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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리?”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건 할이었다. 목소리가 작았던 것도 있지만, 아이는 주변 상황에 압도되어 뭔가를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몸을 웅크리고 주변을 둘러보느라 고개가 미친 듯이 움직였다. 원래도 하얀 것 같은 피부가 거의 백짓장처럼 질려있었다.

 

브루스가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뭔가를 확인하듯 존에게 시선을 던졌다. 존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쪽 무릎을 굽혀 몸을 낮추며 바닥에 앉았다.

 

얘야, 이쪽을 보렴.”

 

작은 몸이 움찔거리며 튀었다. 아이는 브루스를 보더니, 표정이 더욱 얼어붙었다. 이제는 창백하다 못해 거의 파랗게 보일 지경이었다. 앉은 채로 천천히 다리를 밀어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수트에 걸려서 잘 되지 않았다. 누가 봐도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조금 전까지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이 이제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클락이 안쓰러운 눈길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카울을 좀 벗는 게 어때?”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긴 어렵겠는데.”

브루스, 내가 할게.”

 

부드러운 손길이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테미스키라의 공주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았다. 브루스는 까만 망토를 추스르며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누가 봐도 일반적이지 않은 장소에서 온갖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당황한 어린 아이에게 최대한 위협적이지 않으려면, 지금으로써는 다이애나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작은 친구야, 이쪽을 보거라.”

 

다행히도 박쥐 옷을 입은 남자가 접근했을 때보다는 더 나은 반응이었다. 인간 세상의 호칭에 익숙하지 않은 여신의 말투가 제법 다정하게 들렸다. 아이가 눈물이 약간 고인 눈을 깜빡이며 다이애나 쪽으로 눈을 돌렸다.

 

네 이름이 뭐니?”

“...여긴 어디에요?”

 

현명한 아이로군. 공주가 작게 웃었다.

 

여기는 워치타워라고 한단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하는 일을 막는 사람들이고, 여기는 우리의 비밀기지 같은 곳이야. 그리고 네가 갑자기 나타났구나.”

“...히어로처럼요?”

그래. 히어로에 대한 걸 알고 있니?”

 

아이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려웠다. 몸의 떨림은 조금씩 멎어가고 있었다.

 

“...만화책에서 봤어요.”

그렇구나.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서적이 있다는 얘기를 나도 들었단다. 내 이름은 다이애나 프린스고, 테미스키라의 공주란다. 테미스키라는 먼 곳에 있는 내 고향이지. 네 이름이 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아이의 눈이 다이애나로부터 떨어졌다. 그린 랜턴, 마샨, 배트맨, 그리고 사이보그까지 천천히 돌아가며 하나씩 주시하더니, 뭔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고개를 조금 숙였다. 긴장한 듯 티셔츠의 끝자락을 초조하게 당겼지만, 입이 다시 열리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배리. 배리 앨런이요.”

 

몇 멤버들로부터 놀란 듯한 몸짓이 일었다. 브루스나 존은 별로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플래시가 있던 자리에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아이가 생긴 시점에서 예상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아이의 태도는 그들이 알던 배리 앨런과는 너무나 달랐다. 기억이 없는 채로 몸이 어려진 것인가? 스피드스터인 것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었다. 시간 여행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과거에서 온 것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작은 아이야, 네 나이가 몇인지 말해줄 수 있니?”

열한 살이요.”

 

할이 숨을 들이켰다. 브루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클락이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할이 천천히 다가가 다이애나의 옆에 앉았다. 반지를 얼굴 쪽으로 향하자 얼굴을 덮고 있던 초록색의 도미노가 사라지며 그의 갈색 눈을 드러냈다. 배리의 눈에 처음으로 호기심 비슷한 것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배리, 오늘이 며칠이지?”

“...325일이요.”

 

할이 난감한 듯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원더우먼이 대답을 요구하듯이 바라보자 작게 말했다.

 

“...배리의 어머니가 살해당한 날로부터 일주일 뒤야.”

세상에...”

 

고개가 휙 들리고, 파란 눈이 뭔가를 뚫을 것처럼 두 사람에게 고정됐다. 속삭이듯 말했지만 바로 앞에 앉아있던 아이에게 들리기에는 충분한 음량이었다. 배리의 얼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입을 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훌쩍임 비슷한 것이 섞여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진정되었던 몸이 다시 들썩거렸다. 할이 당황해서 손을 뻗었지만 이미 배리의 상태는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배리, 잠깐-”

당신들은 누구에요? 절 집으로 돌려보내줘요.”

진정하고-”

 

아이의 몸이 조금씩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스피드포스에 의한 것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클락이 빠르게 날아와 아이의 어깨를 잡았다. 안정시키려는 목적이었겠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접촉한 부위에서부터 노란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이거 놔!”

뭐야? 왜 스피드포스가-”

클락, 잠깐만...”

 

번개가 치듯이 커다란 쩌적 소리가 나며 빛이 튀었다. 클락이 잡았던 손을 빠르게 떼어냈다.

 

배리가 잡힌 어깨를 뿌리치고 앞으로 튀어나간 것과 할이 동그란 구조물을 만든 것은 거의 동시였다. 오른손을 뻗어 본능에 가까운 반사작용으로 힘을 뿜었다.

 

처음에는 구체처럼 생겼던 녹색 구조물은, 안에서 달리는 배리로 추정되는 잔상을 따라 길게 트랙 모양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마치 끊임없이 도는 레이싱 트랙처럼, 검사실 전체를 사방이 막힌 트랙이 도넛을 연상시키듯이 둘러쌌다.

 

브루스가 다급하게 말했다.

 

랜턴, 그건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네 구조물로는 플래시를 잡아둘 수 없어.”

플래시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라면 가능해. 배리도 처음에 분자구조 통과하는 걸 터득하기 까지는 오래 걸렸다고 했어.”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아이의 잔상은 트랙의 안에서만 머물 뿐이었다. 배트맨은 지체하지 않고 다음 결정을 바로 내렸다.

 

일단 믹시즈피틀릭부터 찾는다. 사이보그, 슈퍼맨, 원더우먼 셋이 같이 찾아. 올가미가 그 녀석에게 어느 정도까지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샨은 나와 같이 저 아이를 좀 더 조사해야 해.”

조사라고 하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건 아닌지, 어디까지 기억이 있는지, 시간을 거슬러서 온 건지 하는 것들. 할, 얼마나 더 잡아둘 수 있겠나?”

단순히 이 정도 형태만 유지하는 거면 얼마든지 가능해. 어리니까 체력이 떨어지는 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아. 번개 형태를 보면 힘을 제대로 쓰는 법도 모르는 것 같고. 몇 분 버티지도 못 할 거야.”

여기서 잠시 기다렸다가 진정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하지.”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리그원 셋이 서둘러 떠났다. 믹시즈피틀릭이 작정하고 숨지 않는 이상에야, 찾기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었다. 결국엔 그토록 관심을 갈구하는 대상인 슈퍼맨의 앞에 어떻게든 나타나려고 할 테니까. 재밌는 일만 찾는 임프의 특성 상 뒤에 숨어서 공작을 꾸미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상자 안에 자신인 걸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남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샨과 브루스가 검사에 필요한 장비들을 준비하는 동안 할은 반지의 힘을 끌어내는 것에 최대한 집중했다.

 

아무리 아이라고 해도 스피드스터를 잡아두는 것은 단순히 형태만 유지하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배리에게서 수년간 들어온 '플래시 팩트'까지 갈 것도 없었다. 이 정도 속도로 달린다면 아이의 신발부터 불이 붙기 시작할 것이 뻔했다. 사실 이미 타버리고도 남았을 시점이지만, 일부러 마찰열을 최대한 없애는 구조로 변형하고 있었다. 전투 현장에서 수차례 플래시를 구하며 터득한 노하우였다.

 

그러는 동안 배리의 모습이 간헐적으로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속도를 보아하니 앞으로 1분도 채 안남은 것 같았다. 할이 배리를 받아낼 마음의 준비를 했다.

 

 

... ... 하나.

 

퉁, 하고 마치 끈이 끊어진 인형처럼 배리의 몸이 앞으로 튕겨나갔다. 할이 빠르게 트랙 구조를 지우고 커다란 쿠션을 만들어 아이를 샌드위치처럼 감쌌다.

 

반동으로 흔들리던 쿠션이 시간이 지나자 곧 잠잠해졌다. 움직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존이 손을 내밀어 축 늘어진 아이의 몸을 공중으로 천천히 띄웠다. 의식이 없는 듯 두 눈이 감겨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잠이 든 것처럼 느린 숨소리가 이어졌다.

 

기절한 것 같군요.”

무리도 아니지. 태어나서 가장 오래 달린 경험일걸.”

깨어나기 전에 시작하지.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면 의무실로 옮기도록 하고.”

 

앞서 걸어 나가는 브루스의 뒤에서 할이 손을 뻗어 배리의 목 아래와 무릎 아래를 받쳐 안았다. 마샨이 희미하게 웃고는 아이를 잡아두던 힘을 거둬들였다. 그냥 띄운 채로 이동시키면 된다는 걸 알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몸을 움직여 좀 더 편안한 자세가 되도록 했다. 배리의 머리가 할의 가슴께로 쏟아졌다. 열 한 살 치고는 마른 몸이었다. 원래 이렇게 가벼운 나이였던가? 나중에 깨어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복잡한 머릿속을 뒤로 하고 나머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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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할배리

보고싶은거 나올 때까지는 그냥 써야지...


한글에서 쓰고 복붙하는건데 왜 콤마가 자동으로 온점으로 고쳐지는거냐고 귀찮아 죽겠네;

2021.07.10 19:40
ㅇㅇ
모바일
선생님...어나더 제발...애기 배리 보여주십시오....
[Code: 083c]
2021.07.10 23:37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 정말 어쩌면 좋지? 너무 좋아서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ㅠㅠㅠㅠ 겁 먹은 어린 배리 넘 안쓰럽고ㅠㅠ 그런 어린 배리 어떻게 대해야할지 난감해하면서도 친절하게 반응하는 리거들 넘 좋다
[Code: e50b]
2021.09.24 04:49
ㅇㅇ
모바일
다이애나 다정하고 든든하다ㅠㅠ 그리고 할의 생각과 언행에서 그간 배리와 합 맞춘 짬바가 보여서 좋아ㅠㅠㅠㅠ
[Code: 1d5e]
2022.09.06 01:42
ㅇㅇ
모바일
어린아이에게도 한결같은 배트맨 너모나 무섭고요.... 아직 조절을 못하는 배리를 배려해서 마찰이 최대한 적은 형태로 트랙 만드는 할 너무 다정한거 아닌지ㅠㅠㅠㅠㅠ 애기 배리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워ㅠㅠㅠㅜ
[Code: 58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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