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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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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조던과 녹등군단 중 한장면... 나는 할이 지구를 사랑하는 장면이 좋음


9.

다음날은 화창했다. 일찍부터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음에도 둘은 사이좋게 늦잠을 잤다. 당연히 먼저 일어난 것은 할이었다. 오른쪽 어깨가 뻐근했다. 낯선 감각에 눈을 뜨니 오전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5년 치 잠을 몰아서 잔 기분이었다.

배리의 몸 아래 껴있는 오른팔이 약간 저려왔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덜 부어있는 얼굴을 한번 확인하고 할이 조심스럽게 몸을 빼냈다. 더 자게 두고 싶지만 곧 깨워서 아침을 먹여야 했다.


예전에 배리가 말하기를, 어린 스피드스터를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게 식사였다고 했다. 배리가 힘을 얻었을 때는 성인이었지만, 월리는 고작 열다섯이었다. 이 간극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배리는 어린 월리가 힘을 쓰다 말고 방전되어 쓰러졌었다는 얘기를 몇 번이고 했다. 그때는 똑같은 말을 여러 번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딱지가 앉도록 말하지 않았더라면 할은 분명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것이다.


어제의 식사를 교훈 삼아 오늘은 직접 해서 먹이기로 했다. 물론 절반은 로이스가 한 음식이었다. 클락이 대신 쥐여 준 파스타 소스를 꺼내 데웠다. 레몬과 후추, 버터가 적당히 들어간 방울양배추를 오븐에 넣고 굽는 사이 다른 재료를 손질했다. 할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그럴싸한 요리 중 하나가 바로 치킨 수프였다. 그의 어머니가 잘 해주던 것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그 맛을 낼 수가 없었는데 몇 년 전 동생인 짐이 드디어 비결을 알아낸 것 같다며 기쁜 듯이 레시피를 알려주었다. 물론 어릴 때 먹던 것과 맛이 같지는 않았지만 그건 어차피 무슨 수를 써도 앞으로 영원히 따라 할 수 없는 것임을 알기에 개의치 않았다.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갈 즈음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리가 비척비척 다가오고 있었다. 할이 허리께까지 오는 배리의 머리를 당겨 살짝 안았다.


“잘 잤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악몽을 꾸지 않은 것 같았다. 어깨를 조심조심 밀어 욕실로 밀어 넣었다. 아침은 나올 때쯤 딱 맞춰 완성될 것이다.


배리는 식욕 탓인지 편식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아침엔 유독 말이 없어지는 편이라 작게 썬 방울양배추를 입 안 가득 넣고 한참을 우물거렸다.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은 뉴스 소리가 의미 없이 거실 안을 떠돌아다녔다. 화면 안의 아나운서는 최근 메트로폴리스와 고담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자료 화면으로 저스티스 리그의 모습이 재생되며 할이 반지로 무너진 건물들을 일으켜 세우는 장면이 같이 흘러나왔다.


허구한 날 대중 앞에 등장하는 게 히어로의 일상이라, 할은 심드렁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지만 배리는 사정이 다른 모양이었다. 고개를 휙 돌려 뚫어져라 리거들의 활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이 제트기를 만들어 미사일을 쏘아대는 모습 뒤로 슈퍼맨이 히트비전을 뿜어냈다.


“저게 할이에요?”
“응. 멋있지?”
“네.”


할이 속으로 웃었다. 서른 살의 배리한테는 절대 못 들을 소리였다.


“파일럿이라서 제트기에요?”
“아니, 그냥 익숙한 걸로 만드는 것뿐이야. 아무거나 다 만들 수 있어. 싸울 땐 무기가 제일 편하니까 저런 게 많이 나오지.”
배리가 뭔가 생각하듯이 눈을 굴렸다. “지금도 파일럿이에요? 이제 날 수 있잖아요.”
“그린랜턴으로 나는 거랑 파일럿으로 나는 건 달라.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냐. 그리고 아니, 지금은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진 않아.”


그 말에 배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할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린랜턴은 일 년에 절반 이상을 우주에 있어야 하는데 그걸 참아줄 고용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


사실은 캐롤이 참아주고 있었지만, 2년 전 그들의 관계가 끝나는 동시에 그것도 없던 일이 됐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차피 또 얼마 안 가서 사귀기 시작할 텐데, 라고 말했으나 이번에는 이전과 다르다는 걸 둘 다 알았다.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는 볼 수 없었다.


“그럼 지금은 무슨 일을 하세요?”


이런. 악의 없는 질문이었지만 뜨끔했다. 직업은커녕 집도 핸드폰도 없다는 사실을 말하기엔 너무 형편없는 어른 같지 않은가. 하지만, 뭐. 그게 할이었다.


“그냥 여러 가지를 하지. 보험 조사원도 해봤고, 장난감 판매업도 해봤고...”


지구에서 쓸 수 있는 돈은 아니지만 군단 소속으로써 월급도 있고, 제공되는 숙소도 있다. 우주에서만 산다고 하면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할은 언제나 지구가 그의 고향이었다. 코스트 시티를 포함해서,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지구에 있었다. 딱히 절실하게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님에도 계속 잘리기만 하는 직장을 애써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뭐가 됐든 이곳에서 잠시나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만 했다.


배리의 표정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뀌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설명하기도 어려운 일이라 할은 그냥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 먹은 그릇을 대충 겹쳐 쌓자 배리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 먹었으면 옷 입고 준비해. 워치타워에 갈 거야.”

아이의 표정이 반짝 밝아졌다. 남은 음식을 입에 쓸어 넣고는 침실로 후다닥 달려가는 뒷모습에서 보이지 않는 흥분이 감출 길 없이 보였다.


***


배리가 양 팔을 위로 벌리고 섰다. 올려다보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지만, 할이 웃으며 손을 잡아 내렸다.


“좀 다른 걸 해본다고 했잖아.”


그가 반지를 낀 손을 들어 보였다. 제타튜브가 있는 곳은 어차피 남들에게 보일 위험도 없었다. 입고 있던 옷이 그린랜턴 유니폼으로 바뀌었다. 초록색 도미노가 눈가를 지나며 갈색 눈을 렌즈로 가렸다.


“오늘은, 제타튜브 없이 가보자.”
“어떻게요?”
“날 거야.”


배리가 눈을 더 크게 뜰 수 없을 만큼 동그랗게 떴다. 나중에 브루스가 알면 잔소리 좀 하겠지만 뭐 어떤가.


“내가 같이 갈 거니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비행이 되겠지만, 확인은 해야겠다. 혹시 고소공포증 있니?”


배리가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할이 키득키득 웃고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와 배리를 감쌌다. 곧 아이는 초록색의 작은 제트기 안에 웅크리고 앉은 모양새가 됐다.


“승객 여러분, 좌석 벨트를 확인하시고, 곧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창문 너머 배리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내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할의 안내 멘트와 함께 녹색 섬광이 센트럴 시티 상공으로 솟아올랐다.



출발한 지 5분 정도 지났을 때, 그들은 이미 성층권을 지나고 있었다. 태양의 빛을 받아 눈이 멀 것처럼 푸른 지구가 발아래에 펼쳐져, 터져 나오는 생명력을 담고 있었다. 내려다보는 배리의 눈에 탄성이 차올랐다.


“예쁘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넋을 잃은 모습에 할이 웃었다. 사실 우주 전체 섹터를 돌아야 하는 직업 특성상 훨씬 더 빠른 비행도 가능했지만, 막상 높은 고도에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조절하는 중이었다. 할은 항상 이 정도 높이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힘든 전투 직후나, 드넓은 까만 오아 안에서 갑자기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혹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를 때면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행성을 향해 날았다. 거기에는 항상, 몸을 바쳐 지킬 만한 가치가 있었다.


잠시 감상할 시간을 주도록 멈춰있다가, 곧 다시 워치타워를 향해 속도를 올렸다.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 더 지체할 수 없었다.



워치타워에 도착한 배리는 첫 우주 비행 끝에 다시 지면을 딛고 걷는 것에 적응하느라 바닥에 발을 몇 번 굴렀다. 할이 배리를 데리고 훈련장 쪽으로 이끌었다. 배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익숙한 경로를 알아챘는지 할의 손을 잡았다.


“오늘도 제이랑 훈련하나요?”

어느새 제이라고 부르게 됐나, 생각하며 대답했다. “아니. 오늘은 나랑 훈련할 거야.”

배리가 놀랄 새도 없이 할이 훈련장 안으로 배리를 들여보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주 넓은 공간 가운데에 스파링 할 수 있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바닥에 빛이 나오는 원형의 넓은 테두리가 있었고, 주변으로 희미한 투명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안에서 무슨 능력을 써도 그 여파가 바깥으로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다만 기자재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능력은 가급적 쓰지 않고 훈련한다는 방침이 있었다. 방의 모서리를 따라서는 훈련을 지켜볼 수 있도록 유리 보호막이 쳐진 부스가 있었다.


할이 배리를 가운데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그 링 위만 해도 작은 운동장 정도는 되는 넓이였다. 배리가 뭘 해야 할지 몰라 멀뚱 서 있었다. 구석에 있던 마찰 방지용 신발을 가져다주었다. 받아드는 손길이 익숙했다.


“배리, 제이한테 뭐 배웠는지 말해봐.”
“...스피드 포스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요. 시간의 흐름을 조절하는 거랑, 어느 정도로 부딪쳐도 다치지 않는지, 그리고 팔을 흔들어서 마나 토네이도 만드는 거랑...”


신발에 발을 밀어 넣으며 하나씩 대답했다. 생각보다 꽤 많은 걸 배우고 있었다. 할이 놀란 표정을 감추고 물었다.


“벽 타는 것도 배웠어?”
“벽이요?”


배리가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배우지 않은 모양이었다.


“넌 벽도 탈 수 있어. 일단, 내가 벽을 세워 줄 테니 한번 빠르게 달려봐. 부딪칠 걱정은 안 해도 돼.”


할이 반지를 들어 배리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형을 만들었다. 배리가 머리 위를 올려다봤다.


“...위로 올라간 다음에는 어떻게 해요?”
“그대로 그냥 달려. 한 바퀴를 쭉 돌아서 내려오면 돼.”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중력에 의존해서 살아온 아이에게 천장을 거꾸로 달리라는 건 너무 허들이 높은 얘기였던 모양이다. 하긴, 할은 스피드스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게 어느 정도의 레벨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구체라면 원심력이 있으니 많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할이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대각선으로 달려 올라가서 천장으로는 가지 말고 그냥 바닥이랑 평행으로 달려봐. 내려올 때는 다시 대각선으로 달려서 내려오면 돼. 그건 할 수 있겠어?”

말이 쉽지, 옆으로 달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머리부터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는지 배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할이 반지로 배리 주변의 구체를 정육면체 모양으로 바꾼 뒤, 호루라기를 만들어서 입에 물었다.


“준비, 출발!”


배리의 몸에서 노란색의 번개가 번쩍거렸다. 일단 스피드포스로 들어간 후에는 잔상만이 남았다. 섬광 줄기가 벽을 따라 이어지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이내 흐트러졌다. 몸에 붙은 가속도 때문에 비틀거리며 허공을 나는 몸을 따라 할이 익숙하게 야구 글러브를 만들어 아이의 몸을 푹신하게 감쌌다. 첫 시도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괜찮지?”

꾸물거리던 노란 머리통이 불쑥 올라왔다. 예상대로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재밌었어요!”


그럼 그렇지. 할이 씨익 웃었다. “그러면 수직으로도 달려볼래? 망설이지만 않으면 천장도 달릴 수 있을 거야.”
“해볼게요.”


자신감이 붙었는지 기지개를 켜듯 몸을 풀었다. 할이 배리를 감싸는 방을 조금 더 큰 원형으로 만들었다. 가속도가 충분히 붙으려면 거리가 더 있어야 했다. 무릎과 골반을 적당히 돌린 후에, 단거리 달리기 선수 같은 자세를 취한 배리가 곧 다시 달려나갔다. 첫 한 바퀴는 조금 주저하는 기색이 남았는지 잔상이 조금씩 끊겨 보였지만 그다음부터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단 두 번의 시도 만에, 아무 문제 없이 천장을 거꾸로 달릴 수 있었다.


“좋아, 배리, 이제 그만-”
“지금 뭐 하는 거지?”


바로 뒤에서 기척도 없이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배리가 깜짝 놀라 발을 헛디뎠다. 이미 빠른 속도로 천장에 발을 딛고 있었던 탓에 그대로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할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침대 모양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받아냈다. 몇 번인가 반동 때문에 출렁이던 매트가 곧 멈췄다. 배리의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괜찮지?”
“...네.”


배리가 살짝 밭은 숨을 내쉬었다. 식은땀을 약간 흘리고 있었지만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짧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간단하게 훑어본 후에, 할이 뒤를 돌아 브루스에게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훈련중인 거 안보여? 갑자기 들어오면 어떡해?”
“네가 초보 스피드스터를 가르칠 자격이 되나?”


할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팔을 벌렸다. “아, 제발. 내가 플래시랑 지낸 게 몇 년인데? 전투 현장에서 받아준 건 셀 수도 없고. 이 정도 논다고 안 다쳐.”
“방금 전엔 훈련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 좀 놀아주는 게 어때서? 봐, 쟤도 좋아하잖아!”


자랑스럽게 배리를 가리켰다. 침대 위에 엎드린 채로, 아이가 확실히 밝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브루스의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


“그래도 이제 막 능력을 얻은 열한 살짜리가 하기엔 위험해.”
“그래서 로빈은 어른이냐? 데미안하고 몇 살 차이난다고.”

브루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두 살때부터 훈련받은 아이와 비교할 수는 없지.”

“팀하고 딕은?” 할이 추궁하자 배트맨이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딕은 서커스단 출신이잖나. 팀은 열 세 살이었어. 랜턴, 내 말은...”

배리는 이제 바닥으로 내려와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더 적절한 사람 아래에서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야.”
“그냥 노는데 훈련이 왜 필요해.”
“그러다 무의식중에 몸을 진동시켜서 벽이라도 빠져나가면 어떻게 할 건가? 더 최악의 경우, 빠져나가는 중간에 멈춘다면?”


...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물론 할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문제긴 했지만, 생각해 볼 가치는 있었다. 워치타워 바깥으로 나가봐야 우주 공간이니 반지로 감싸면 그만이지만, 벽 중간에 껴버리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훈련이 이뤄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부탁 할 사람이 없잖아.”
“제이는요?”

배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할과 브루스가 동시에 잠깐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잠깐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 길지는 않을 거야.”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할이 속삭였다.


“...아직이야?” 브루스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키스톤 시티에서 얼마 전 빌런 두 팀이 합심해서 일을 벌였다는 정보가 있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한동안은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 하에 잠시 다른 리그 멤버들과 패트롤을 나누어 도는 중이었다. 제이에게서 따로 연락은 없었지만 성실이 모토인 그의 성격상 몸이 완전히 나았다면 아직까지 복귀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사실 제이가 사용하는 스피드포스의 일부 운용법도 배리가 가르쳐 줬다는 점을 포함해서, 원래 스피드스터를 가장 잘 가르치는 건 배리 앨런 본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 됐으니...


할이 머리를 긁적였다. 배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이가 플래시는 한 명 더 있다고 했어요.”


할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맞다. 왜 그 생각을 못 하고 있었지? 적합한 사람이 있기는 있었다. 어쩌면 이 상황에서는 제이보다 훨씬 더 나을 사람. 브루스가 그 모습을 보며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아직 얘기를 안 했나?”
“타이탄 일로 바쁘다고 하길래 나중에 하려다가... 까먹은 것 같기도 하고... 혹시 타이탄에 연락할 일 없어? 오랜만에 아들 안부 좀 물을 겸?”


징징대는 목소리에 돌아온 것은 차가운 거절이었다. “네 일은 네가 직접 해.”


할이 크게 몇 번 호흡을 하고 커뮤니케이터를 꺼내 들었다가,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좀 나중에 맞아도 되지 않을까?



그 뒤 배트맨의 엄격한 감시 아래 ‘비교적 안전한’ 룰을 따라 배리는 한참을 훈련장 안에서 뛰어다녔다. 로빈 넷을 훈련 시킨 게 괜한 건 아니었는지, 그는 아무런 초능력이 없음에도 꽤 체계적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근육의 위치와 힘을 쓰는 방향 등을 이용해서 스피드포스에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부상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처음 배리를 훈련장에 데려왔을 때 계획한 건 이런 게 아니었지만, 배리가 나름대로 꽤 즐거워 보였기 때문에 할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기분 전환만 된다면 뭐든 좋았다.


***


“배리, 새 플래시 만나보고 싶어?”


침대에 기어 올라가 베개를 옆으로 꾹꾹 눌러 할이 누울 자리를 만들던 배리가 고개를 휙 돌렸다. 아직 젖어 있는 머리를 수건으로 털던 할의 목덜미에서 물이 떨어져 그의 가슴께가 조금씩 젖어 들어갔다. 아이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때때로 말을 잃고 다시 상념에 빠져드는 배리의 주의를 환기 시키기 위해서 하는 일들이라지만 무리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잘 따라와 주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에요?”


배리가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들어가며 물었다. 옆으로 누워 올려다보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이래도 되나? 남자애가 열한 살부터 서른 살까지 계속 귀여울 수가 있다니. 할이 속으로 아무 생각이나 하면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이름은 월리 웨스트야. 처음 만났을 때 넌 어른이고 그 앤 어려서, 너한테 조카나 마찬가지였어. 아주 좋은 사람이야. 너랑 아주 가까운 사이고.”


아이리스의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적당히 얼버무렸다. 다행히 조카라는 말에 따로 토를 달지는 않았다. 어차피 초면일 테니,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만 알면 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졸린 얼굴로 팔을 뻗어왔다. 이제 익숙해진 패턴으로 할이 수건을 대충 베개 위에 펼치고 그 위에 누웠다. 하루 종일 달리느라 지친 아이는 붙잡을 새도 없이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할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잘 자.” 되돌아오는 작은 꿍얼거림이 말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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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리

할이 처음으로 보험 일을 한 건 67년도. 장난감 판매는 69년도 이슈에 등장. 생각보다 시초가 대과거임...ㅋ큐ㅠ

아직도 보고싶은 걸 다 못 썼다니 이럴 수가 있나 이제 7만자가 넘어가기 시작했는데... ༼;´༎ຶ ۝༎ຶ`༽

본편에서 내새끼들이 안나오니까 망상만 폭발한다
2021.07.16 22: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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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ㅠㅠㅠㅠㅠㅠ 담편에 월리도 나오는 건가요 센세 저 벌써부터 행복하고 기뻐요ㅠㅠ 할이랑 뱃 투닥거리는 거 넘 귀엽고 배리가 조금씩 처음보다 활기차고 풀어지는 거 훈훈해요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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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8 01: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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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포카한거 졸귀.....
[Code: 5c1f]
2022.09.06 03:0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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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배리가 할 물끄러미 쳐다본건 침대에 물 떨어진다고 잔소리하려다 참은걸까...?ㅋㅋㅋㅋㅋㅋ 이번화도 넘 커엽고 포카포카해요...행복하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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