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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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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가고싶은 녹등이들...



12.


월리는 약속한 대로, 성실하게 배리를 챙겼다. 며칠 동안 꾸준히 워치타워에 데려가 검사를 받고 훈련을 하고, 그 외에는 함께 센트럴 시티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대부분은 월리가 어렸을 때 배리가 데리고 다녔던 장소들이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친해졌다. 월리의 타고난 친화력과 더불어 그들이 원래 공유했던 편안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인지, 배리는 처음부터 월리 앞에서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월리가 함께 있을 땐 할은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하듯 걸었다.


당분간 타이탄즈에서 급하게 호출이 올 일이 없다던 월리가 제이의 빈자리를 채우며 키스톤 시티의 집에서 머물던 어느 날, 배리와 둘만 외출해도 되는지 물었다. 배리를 잘 알면서 센트럴 시티에도 익숙하고 만일의 경우 지킬 능력이 충분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에 할은 주저 없이 수락했다.



오전 11시까지 데리러 오기로 했지만, 스스로 준비하겠다고 말한 배리는 꾸물대다가 늦고 말았다. 따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옷을 겨우 껴입었을 땐 이미 11시 1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할이 배리에게 가벼운 재킷을 입혀주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난 네가 스피드스터라서 느린 줄 알았는데, 어릴 때부터 그랬나 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배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 되고 나서부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과도한 노력을 하는 바람에 지각하는 일이 잦았던 건 이해할 수 있으나, 스피드포스를 쓰고 있지도 않은 지금은 왜 느린 건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월리는 딱히 늦는 경향이 있지도 않았는데 오늘따라 왜 오질 않고 있는 걸까, 생각하는 도중 현관문이 열렸다.


“늦었네.”
“자존심 상하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월리가 징징댔다. “이 앞에서 옆집 사람이랑 마주쳤는데 붙잡혀서 말을 들어줘야 했거든요.”

매리언 부인인가? 할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배리의 이웃이 월리와 할 말이 뭐가 있단 말인지 궁금해하는 사이 월리는 대화 내용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지 않고 곧장 배리에게 다가왔다.

“배리, 오늘은 밖에서 시간을 좀 보낼 예정이니까 가져가고 싶은 책이 있으면 챙겨와도 돼. 한 권만 가져와.”

배리가 반짝 고개를 들더니 침실로 달려갔다. 요 며칠간 붙잡고 읽던 책 중 골라서 가져가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월리가 굳이 배리를 다른 곳으로 보낸 이유를 짐작한 할은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별거 아니었어요. 할하고 배리가 무슨 관계인지 묻던데요. 저 배리 말고, 어른 배리요.”


뭐지? 할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배리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처음 보는 어린 애를 데리고 들락거리는 게 수상해 보여서 경계라도 한 걸까? 하지만 그런 친절을 보일 사람 같진 않았는데. 배리가 했던 말만 생각해봐도, 호의 없는 참견만 하는 타입 같았다. 그래도 혹시 착각해서 경찰이라도 부르면 곤란했다. 월리가 고민하는 듯한 할의 표정을 읽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약간...” 난감한 표정을 했다. “둘이 같이 지내는 건지 묻더라고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냥 남의 일에 관심 많은 이웃 같아요.”


할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대체 다 뭐가 문제야? 단체로 엮질 못해서 안달이라도 났나?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친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월리는 배리와 가족처럼 지냈으니 할이 모르는 부분을 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이럴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나중에 배리가 돌아오면 말해줄 일이 점점 늘고 있었다. 할이야 오아로 나가면 그만이었지만, 계속 센트럴 시티에 살아야 하는 것은 배리 본인이었으니까. 사실도 아닌 불편한 소문에 휩싸여서 좋을 게 없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있는 대로 얘기했죠. 친구 사인데 잠깐 집 비워서 조카 봐주고 있다고.”
“...잘했어.”


백 퍼센트 진실은 아니었으나 최선의 대답이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시선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야 할 상대방이 지금 저렇게 되어 있으니, 일단 뒤로 다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침실에서 얇은 책 하나를 든 아이가 뛰어왔다. 월리가 옷매무새를 만지며 다시 외출할 준비를 하자, 배리가 자연스럽게 할에게 와서 안겼다. 매일 악몽에서 지켜주는 사람인 탓인지 혹은 현시점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라서 그런지 부쩍 달라붙는 경향이 있었다. 분리 불안의 일종은 아닌지 생각하며, 할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여 아이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강하게 안아주었다. 함께 지낸 이후 처음으로 떨어지는 날이었다.


“잘 다녀와.”
“네.”


짧은 포옹 뒤 몸을 떼고 일어섰다. 월리가 아주, 아주 이상한 눈으로 잠시 쳐다보다가 입을 뻐끔거렸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는 것은 없었다. 할이 왜 그러냐는 듯이 양팔을 벌리자 고개를 젓더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리고는 배리와 함께 현관으로 나갔다. 늦은 저녁때나 되어야 돌아온다고 했으니, 이제부터는 미뤘던 일을 처리할 시간이었다.


***


할은 침대에 몸을 쭉 펴고 누워있었다. 성인 남성이 누워도 양옆이 남을 만큼 큰 침대가 어쩐지 허전하게 느껴졌다. 지금 보니 이만한 침대에 배리를 혼자 재웠던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입 근처에 댄 반지에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휴가 중이어도 주기적으로 같은 섹터를 지키는 랜턴들끼리 근황은 알아둬야 나중에 골치가 덜 아팠다. 어차피 오아에 직접 보고하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친구끼리 편하게 하는 통화나 마찬가지여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서로의 일에 대해 짧은 보고를 마친 뒤 카일이 불쑥 물었다.


“언제 돌아올 거에요?”
할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진짜, 너까지 그러기야? 벌써 복귀 날짜 정해야 할 때는 아니잖아.”
“우리가 언제부터 휴가를 온전히 다 즐겼다고 그래요. 그린랜턴 휴가는 언제까지다? 우주에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다.”


언제 봐도 맞는 말만 쏙 골라서 하는 것이 얄미웠지만, 어쨌든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그건 호출이 있을 때지... 넌 어딘데? 지구에 들르긴 했어?”
“당연히 다녀왔죠.” 반지 너머로 카일이 뭔가 그리고 있는지 연필이 종이를 스치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2주 정도 있었어요. 지금은 다시 오아에요.”


종이 넘기는 소리에 이은 부스럭거리는 잡음과 함께 잠시 말이 끊겼다. 카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할도 참 꼬박꼬박 그 먼 거리를 잘도 가네요.”


할이 헛웃음을 쳤다. 오아에서 일하는 지구 랜턴들에게 있어서 지구는 ‘멀어서 가지 않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어떤 때엔 선택지가 없는 느낌이었다. 공기가 있어서 숨을 쉬듯이, 반드시 한 번은 와야 하는 곳이었다. 물론 오아에 길게 머무르는 것에 익숙하니, 몇 달을 나가 있는 일이 빈번해도 향수병에 걸리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건 지구가 잘 존재한다는 걸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할은 아주 먼 곳일지라도 고향이 건재하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랜턴들이 그랬다. 각자 주어진 섹터에 근무하면서도 떠나온 행성은 절대로 잊지 않았다.


“야, 지구에 임무 있을 때마다 가려고 난리 치는 건 누군데?”


섹터 2814의 임무는 그들 넷 모두가 어떻게든 차지하려고 애쓰는 포상이나 마찬가지였다. 할만 그러는 것처럼 말하면 좀 억울했다.


“그건 몇 달 만에 한 번이니까 당연한 거죠. 당신은 틈을 만들어서라도 가는 거고요. 거기에 대체 누가 있어요? 캐롤?”

할이 쓴 입맛을 다셨다. “캐롤하고는 끝난 지 한참 됐어, 알잖아. 우린 안 될 사이야. 그리고, 코스트 시티에 내 가족이 있는데 지구에 오는 게 뭐가 이상해.”

“갈 때마다 가족들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카일이 다 안다는 듯 웃었다. “솔직하게 말해봐요, 센트럴 시티에 있는 사람 만나러 간 거죠?”
“뭐?”


할이 깜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카일한테서 나올 거라고 예상한 말은 아니었다. 할만 모르는 뭔가가 있기라도 한가? 카일이 할의 목소리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듯 이어서 말했다.


“가이가 그러던데요. 센트럴 시티에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냐고. 거긴 빼놓지 않고 간다면서. 지금도 거기잖아요.”

정말, 뭔가가 있긴 있었다. “너희들 내 반지 추적했어?!”


이놈의 군단은 사생활이라는 게 없나? 할이 속으로 투덜대는 동안 카일이 전혀 당황하지 않은 톤으로 부인했다.

“워, 하나로 묶지 말아요. 가이 혼자 그랬어요. 그리고 술 먹자고 불러낼 때마다 없다고 짜증 내면서 한 얘기니까 말해봐야 좋은 소리 못 들을걸요.”

뭐, 반사적으로 소리치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그들 사이에 딱히 프라이버시랄 것도 없었다. 행선지 추적 정도야 24시간 반지를 끼고 사는 입장에서 늘 당하는 일 아닌가. 새삼스레 화낼 일도 아니었다. 할이 다시 편하게 자리를 잡고 누웠다.


“애인은 무슨. 친구 보러 오는 거지.”
“아, 플래시요? 그러고 보니 어려졌다면서요. 저도 들었어요.”

일부러 빼놓고 보고했는데. 할이 당황해서 물었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다 방법이 있죠.” 카일이 키득거렸다. 마치 비밀인 듯 얼버무렸지만 아마 월리나 타이탄즈 중 누군가한테서 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어때요?”


할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모르겠어.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데, 좀 찜찜해.”
“뭐가 걱정돼요? 들은 거로 봐서는 잘 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래도.”


뭐가 걱정되냐고 물으면... 사실 뚜렷하게 잡히는 건 없었다. 월리도 차고 넘칠 만큼 도와주고 있었고, 아직 새벽에 가끔 악몽을 꿀 때는 있지만 눈을 떠서 할이 눈앞에 있다는 걸 알면 금방 진정되었다. 날이 갈수록 성격이 밝아지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니까요. 다들 왜 그렇게까지 매달리나 모르겠어요.” 심드렁한 말이 날아와 꽂혔다.
“무슨 뜻이야?”

날 선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카일이 빠르게 부정하며 말을 이었다.

“오해하지 말아요. 내가 배리를 그렇게 잘 알진 않지만 좋은 사람인 건 알아요. 하지만 잠깐 어려진 거 아니에요? 결국 다시 돌아올 거고, 진짜 어린 애를 키우는 게 아니잖아요. 돌아와서까지 계속 영향을 미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큰일이에요?”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지에서 구르는 게 일상인 그린랜턴의 감각으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오롯이 가디언들의 명령에만 기대어 이름 모를 행성에 가서 발음도 어려운 외계인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 뒤에 숨겨진 음모를 들춰내는 등의, 지독하게 꼬인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다만 카일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상대방이 누군지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영향이 남을지 안 남을지 아직 몰라. 그리고,”
이게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일이 아니었다면 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여서 설명했다.

“네가 어린 소라닉을 맡았다고 생각해봐. 근데 시네스트로가 아버지란 사실을 알자마자 어려져서 우울한 상태에 너에 대한 기억도 없고 혼자 우주 섹터에 떨어져 있었던 거지. 곧 돌아올 예정이라 뭘 섣부르게 할 수도 없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두면 점점 땅만 팔 것 같아. 돌아온 후에 기억이 유지될지는 미지수야. 어떡할래?”


반지 너머 잠깐의 정적 끝에 다시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했던 말 취소할게요.”
“소라닉한테 안부나 전해줘.”


카일이 황금 같은 휴가에 굳이 지구를 마다하고 오아에 나가 있다면 이유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우주에 반짝이는 초록빛 모두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성을 찾아 돌아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직업이었다.


카일의 짧은 인사와 함께 곧 통신이 종료되었다. 할이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평소 임무가 끝나고 지구에 오면 뭘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코스트 시티의 가족들을 만날 때나 친구들을 만날 때를 제외하면, 술집을 가거나, 찰나의 연애를 하거나... 싸구려 숙소에 처박혀서 잠만 자거나. 그렇게 버티다 보면 또다시 반지의 알람이 할을 깨워 임무에 나갈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쳇바퀴 같은 삶이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그린랜턴임이 자랑스러웠고, 천직이기 때문에 직업 자체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고작 몇 시간 혼자 있었을 뿐인데,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렀다.


***


월리와 배리가 다시 돌아왔을 땐 저녁 아홉 시가 넘어가는 때였다.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하던 할이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혼자 술집을 갈 기분도 아니었고, 딱히 할 일도 없어 워치타워 훈련장에서 몇 시간 힘을 빼고 나니 몸이 욱신거렸다. 미처 제대로 일어나기도 전에 배리가 뛰어와 할의 품에 안겼다. 바깥의 찬 기운 탓인지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할이 중심을 잃고 잠시 비틀거리다가 노란 머리를 끌어안았다. 방 안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재밌었어?”
“네.”


배리 너머로 월리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빠르게 사라졌다. 아이가 옷을 갈아입으러 침실로 사라지는 동안 할이 월리의 품 안에 들려 있던 커다란 봉투를 받아들었다. 안에는 치즈버거와 감자튀김이 여러 세트 들어있었다. 이 시간에? 시계를 한 번 보고 다시 월리를 보자, 변명하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할이랑 같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 왔어요. 저녁 안 먹인 거 아녜요. 어차피 저희는 수시로 먹으니까 상관없어요.”


거기까지 추궁하지도 않았는데 지레 찔렸는지 몇 마디를 더 붙였다. 뭐, 스피드스터 둘이면 블랙홀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안 그래도 뭘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아서 끼니를 걸렀는데, 음식을 봐서 그런지 갑자기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내용물을 꺼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배리까지 합세해 세 명이 둘러앉아 늦은 식사를 했다. 둘 다 속도를 나름대로 맞추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혈연이 아닌 걸 알고 있지만 어쩐지 먹는 모습이 닮은 배리와 월리를 보며 할이 조용히 웃음을 감췄다.


“그,” 월리가 두 번째 버거를 씹어 넘기며 말했다. “오늘 배트맨이랑 얘기해봤는데요.”
“워치타워에 갔었어?” 할이 눈을 깜빡였다. “못 봤는데.”
“아니, 커뮤니케이터로요. 지금 2주가 다 되어 가는데 별로 변화가 없잖아요?”

손으로 배리를 가리켰다. “그게 스피드포스의 연결이 약해서 그런 거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방법이 있어?”


그러고 보니, 스피드스터들끼리 같은 스피드포스 속에서 달리거나 하면서 영향을 주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구체적으로는 몰라요. 리그랑 S.T.A.R 연구소 사이에서 약속한 거 아시잖아요. ‘스피드포스는 절대 손대지 않고 어떤 실험도 하지 않는다’. 우린 아직도 스피드포스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아요.” 손을 냅킨에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배리랑 지내면서 배운 건데, 가까이 있으면 제 스피드포스에 맞춰서 끌어올릴 수 있어요.”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배리가 감자튀김을 욱여넣다 말고 빤히 바라보았다. 월리가 튀어나온 볼을 손으로 건드리며 웃었다.


“지금 말고. 옛날얘기야.”


그러자 아이는 다시 감자튀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월리가 다시 할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얼마나 정확하게 할 수 있어? 바로 돌아오게 할 수도 있나?”
“그게 문젠데요... 정확하게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경험에 의존하는 거라서, 브루스는 영 못 미덥나 봐요. 저도 좀 불안하긴 하고요.” 현존하는 최고의 스피드스터 중 하나였지만, 가족에게 직접 확신 없는 일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꺼려졌다. “그래서 짧게, 조금씩 자주 해보기로 했어요.”


합리적인 얘기였다. 그냥 가까이 있으면서 스피드포스를 동화시키는 정도라면 큰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도 작았고, 한 번에 해결하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크게 틀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할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
월리가 짝 소리 나게 손바닥을 쳤다. “좋아요. 오늘은 충분히 오래 같이 있었으니까 내일부터 할게요.”



그들이 스케줄을 논의하는 동안, 배리는 다 먹고 나온 쓰레기들을 부지런하게 치웠다. 할과 월리가 머리를 맞대고 브루스에게 확인을 받기 위한 대략적인 개요를 완성했을 때, 아이는 이미 잘 준비를 마친 뒤였다.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끊긴 사이 배리가 다가와 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월리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머릿속에서 앞으로 있을 일들을 계속 계산하느라 잠시 집중하지 못하던 할이 그제야 옆에 서 있는 아이를 눈치채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먼저 자. 월리랑 얘기 끝나면 갈게.”


배리가 곧장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한참 입을 다물지 못하던 월리가 조용히 말했다.


“...같이 잔다고요?”
“월리, 그만해.” 할이 월리에게 드물게 약간의 짜증을 냈다. “어린 애잖아.”
“아니, 이상한 뜻은 아니에요. 나중에 배리가 돌아왔을 때 기억이 있으면 좀 어떨까 생각한 거죠.”
“처음부터 같이 잔 건 아냐. 악몽을 심하게 꿔서 그런 거지. 지금은 같이 자는 데도 가끔 새벽에 깨.”


그 말에 월리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바뀌었다. 배리가 어느 시점까지의 기억을 가졌는지는 모든 멤버들이 다 알고 있었다. 그가 잠을 설친다면 이유는 뻔했다. 할이 걱정할 것 없다는 투로 말했다.


“얘기는 충분히 했고, 열한 살 치고 잘 받아들였어. 그렇다고 그런 게 바로 사라지지는 않잖아.”
“...그건 그렇죠.”


같은 종류는 아니었지만 월리 또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밤만 되면 찾아오는 나쁜 기억들은 그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침울한 얼굴로 한동안 바닥을 내려다보던 월리가 곧 기운을 차린 얼굴로 일어섰다.


“그래도 이미 지나간 일들이라 다행이죠. 안 그래요? 다시 돌아올 거잖아요. 저대로 있게 되는 것보다는 낫죠.”


할이 말을 잃고 월리를 바라봤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나? 시간을 바꿀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그 어떤 히어로보다 무거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게 스피드스터들의 특징이었다. 뒷일 생각 않고 일단 해보는 게 할의 성정이었지만, 상대가 소중한 친구라는 것에 더불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힘들었다. 월리가 할의 어깨를 꾹 눌러 잡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배리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데요.”


그 말이 모든 걸 덜어주지는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위안이 되는 문장이었다. 할이 말없이 어깨에 놓인 손을 마주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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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점점 길어지지... 퇴고는 포기.... ( ・ั﹏・ั)

녹등 구4인방 너무 보고싶고요... 타이틀 하나만 내줬으면 좋겠다



할배리
2021.07.20 01:14
ㅇㅇ
모바일
기다렸어ㅜㅜㅜ
[Code: 7a96]
2021.07.20 03:14
ㅇㅇ
길면 길수록 좋아ㅠㅠㅠㅠ 할과 배리 둘이 일상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지고 친밀해지고 있구나 귀엽고 따수운데 할이 배리한테 얼마나 꿀 떨어지면 다들 아는 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마저도 할다워서 좋다ㅠㅠ "다만 카일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상대방이 누군지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우주에 반짝이는 초록빛 모두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성을 찾아 돌아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직업이었다." 여기서 할에게 배리가 어떤 의미고, 녹등들이 어떤 마음과 의지로 녹등으로 살아가는지 보여서 최고예요 센세.. 지금 공중에서 삼단제비 돌았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e228]
2021.07.20 13:37
ㅇㅇ
모바일
센세… 나 센세 덕분에 디씨 치여서 보러가… 새끼 배리 너무 귀여운데 짠하고 옆에서 전전긍긍하며 보살펴주는 할 완전 좋아ㅠㅠㅠㅠㅠ 센세 사랑해… 뒤늦게 알아서 정주행하고 개좋아서 카카페 저스티스 리그도 달렸어 센세 덕분이야… 흑흐흑흑 사랑해 천년만년 기다릴래
[Code: 32e0]
2022.09.06 03:21
ㅇㅇ
모바일
흑흑흑 너무 좋다 겨우 하루 배리가 없었다거 쓸쓸해하는 할... 아니 할배리 사귀는거 할이랑 배리 빼고 다 아는거 아니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b5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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