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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고통을 주거나, 그를 걱정하는 존재가 오지 않는 시간엔 션웨이는 생각이 멋대로 흘러가게 두었다. 생각들은 하릴없이 머릿속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의미 없는 말들을 지어내고 흩어졌다. 그러다가 돌부리에 턱 걸려서 멈추듯 어느 지점에서 돌연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션웨이는 찾아오는 짧은 꿈마다 살며시 기대어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했다. 행복한 기억들은 현실만큼 아프기 마찬가지였으나 적어도 그곳엔 환희가 있었다.

션웨이는 한 계절이 떠나기 직전 가장 찬란한 하루를 펼치듯 윈란과 마지막으로 좋았던 시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쿤룬의 천겁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줄곧 심란해하고 있었다. 답을 찾을 길은 막막했고, 주변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상대는커녕 사실을 숨겨야 할 사람들만 가득했다. 특히 윈란은 별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것 같아서 예사롭지 않게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션웨이가 거짓말에 능숙하지 않다는 게 사방팔방에 알려진 터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들키지 않으려면 더욱 조심해야 했다.

룡성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유지하는 게 의미 없으리라고 생각한 게 불과 며칠 전인데, 션웨이는 급하게 잡힌 학술회 일정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에서 학술회를 진행하는 덕분에 상고신의 화신을 찾으면서 밤낮으로 동분서주하는 동안 윈란에게 들키지 않았다.

션웨이는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면서 정보를 얻고자 했다. 어중간한 음지에 걸치고 있으면서 암거래하고 적당히 더러운 짓을 하는 부류뿐만 아니라 정말로 밑바닥에서 악랄하고 음산한 존재들까지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완벽하게 신분을 위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썰미가 있는 자들은 션웨이가 누군지 추측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흑포사가 암암리에 불순한 자들과 어울리고 다닌다, 그들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등등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흑포사라는 이름으로 날린 명성이 있어 대부분은 션웨이가 근방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문만 들어도 도망갔으나, 대담하고 호승심이 있는 몇몇이 겁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는 악행을 거듭한 탓에 외모마저 흉측하게 변한 요괴도 있었고, 끔찍한 죽음으로 악독하게 변한 귀신이나 존재 자체가 악취에 가까운 망령도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혐오감이 솟구치는 듯했지만, 물불 가릴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션웨이는 인내하면서 그들이 흘리는 말들에서 단서를 골라냈다.

그러다가 진짜 단서를 잡게 되었으나, 해결해야 할 작은 고민이 있었다. 해성과 지성의 경계에 있는 작은 이공간에 복희의 화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였다. 하지만 그곳은 차원의 경계가 흐릿한 탓에 드나드는 길이 매우 복잡하고 모호하여 자칫 길을 잘못 들었다간 꼼짝없이 갇힐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션웨이는 그런 위험보다도 갑작스레 연락이 끊어지면 윈란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었다. 지금까지 잘 숨겨왔는데 이제 와서 허무하게 들통날 순 없었다.

션웨이는 전화를 걸까 고민하다가 문자를 남긴 뒤, 이공간으로 들어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공간은 순식간에 길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혼란으로 가득했다. 하늘이 바다로 변하고, 땅이 강으로 변하고, 바다는 길로 변하고, 나무는 모래로 흩어지며 온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했다. 션웨이는 몇 시간씩 고민해서 한 발자국씩 옮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여러 날을 깨어있느라 눈 밑에 그늘마저 생겼고, 흐트러질 뻔했던 정신을 몇 번이고 가다듬었다. 마침내 미로에서 빠져나온 션웨이는 길게 한숨을 쉬었고, 긴장이 풀어지는 바람에 반쯤 주저앉았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기에 조바심을 느낀 션웨이는 금방 몸을 추스르고 복희의 화신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작은 성과와 기대감에도 상고신의 화신은 없었고, 도리어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당황한 것도 잠시 션웨이는 참혼도를 뽑아서 단번에 함정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본래 불경한 땅에서 태어나 삿된 존재들을 다스리던 귀왕이었기에 저주 정도쯤은 큰일이 아니었다. 다만 상고신의 화신을 찾는 동안 걸림돌이 될까 봐 거슬리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한 번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돌아오는 동안 마음이 무거워졌다.

션웨이는 이공간에서 빠져나온 다음 저주의 기운을 심장에 가두었고, 신성한 힘을 지닌 쿤룬의 피와 상쇄되게 했다. 그렇게 급히 몸상태를 갈무리한 다음 윈란에게 돌아갔다. 윈란은 예상했던 대로 노발대발하기 직전이었다. 션웨이는 계속 오는 길에 생각했던 핑계를 둘러댈 작정이었다. 몇 번이고 거짓말을 되뇌면서 외우기까지 했는데 윈란의 화난 얼굴을 보자마자 싹 날아가 버렸다. 얌전히 잘 뛰고 있던 심장이 쿡쿡 쑤셔대는 바람에 당황한 탓이었다.

"션웨이. 혹시 요즘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윈란이 서재 문간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꼈다. 션웨이도 몇 번이나 겪은 바가 있어서 지금 윈란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당장 있는 대로 불지 않으면 가만 안 놔두겠다는 선전포고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션웨이는 욱신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싶은 손으로 주먹만 꽉 쥐느라 반쯤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윈란에게 되물었다.

"무슨 뜻이야?“
"요즘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방에 박혀서 나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대체 왜 그런 거야? 아무것도 아니란 말 하지 마“

저주의 기운이 윈란에게 옮겨가려고 마구 날뛰고 있었다. 션웨이는 저주의 기운이 윈란에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션웨이에게는 작은 감기도 아닐 저주가 윈란에게는 치명적인 병이 될 수도 있었다. 저주의 기운은 점점 흉폭하게 날뛰기 시작했고, 션웨이는 이마에서 식은땀이 나는 걸 느끼고 곧바로 집 밖으로 나갔다.

션웨이는 문득 젖은 어깨를 보고 나서야 우산을 두고 나왔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는 비가 내리는 거리를 오랫동안 배회하다가 추슈지에게 행선지를 알리고 지성으로 내려갔다. 윈란에게서 최대한 멀어질 수 있는 곳이었다. 핑계 삼아 재판을 앞둔 야존을 만날 생각이었다. 

간신히 저주의 기운을 완전히 없애고 돌아왔을 때, 션웨이는 임무가 생겨 출동하는 특조처에서 윈란과 마주쳤다. 그리고 생각보다 윈란의 감정을 크게 상해있는 게 보였다. 션웨이는 평소보다 윈란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면서 최대한 살갑게 대했고, 윈란도 무언가를 느꼈는지는 몰라도 집으로 돌아갈 무렵엔 처음보다 표정이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좁혀지지 않은 서로의 틈을 외면하는 그날 밤에 그들은 몸을 섞었고,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예전으로 돌아갔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 듯했다. 션웨이는 곤히 잠든 윈란을 끌어안고서 그의 이마에 키스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 곁에 있을 거야.”

션웨이는 아주 작게 속삭였지만, 윈란에게 입을 맞추고서 쓰게 웃었다.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약속부터 성급하게 내뱉는 미숙한 마음 때문이었다.

언젠가 사람은 신에게 소원을 빌고 의지하며 살아간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이야말로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신이 쓰러지면 그를 의지하던 작은 존재들도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쿤룬 당신은 계속 살아가야 해. 션웨이는 눈물을 품은 채 막막한 심정으로 윈란에게 속삭였다. 처음부터 당신이 없었다면 시작되지도 않았을 이 삶 돌려주는 것뿐이니까.

“나도 네게 기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란.”

션웨이는 윈란의 몸을 더듬어가며 그가 머물렀던 흔적들을 어루만졌다. 그들이 함께했던 지난 시간을 되새기듯 열망과 환희로 타올랐던 지난 기억들이 떠올랐다. 널 만나기 위해 만년 간 숨을 참았지. 난 너를 통해서만 숨을 쉴 수 있는데. 이번에는 얼마만큼 숨을 참고 견딜 수 있을까? 잠을 청하는 션웨이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 정신이 들어?”

션웨이는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야존....”

속눈썹에 매달려있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션웨이는 반쯤 뭉개지는 발음으로 윈란의 안부를 물었다. 야존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특조처 지원하러 갔다가 자오윈란이 없길래 물어봤는데, 성독부에서 명령이 내려와서 강제로 휴가받았다더라. 가는 길에 잠깐 얼굴 봤어. 위치도 확인해뒀으니까 안심해.”

어두운 길에서 윈란과 마주쳤을 때 야존은 두려움 비슷한 걱정을 느꼈다. 그저 우연히 고개를 돌렸다가 탁자나 테이블 끝에 반쯤 걸쳐져 있는 유리병 같은 걸 발견한 것 같았다. 누가 슬쩍 건들면 떨어지겠다, 싶은 그런 생각이었다. 윈란도 그런 느낌이었다. 낭떠러지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서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뒷모습. 야존은 윈란을 마주하는 동안 잠자코 그늘 속에 서있었고, 얼굴이 충분히 가려지길 바랐다. 션웨이와 빼닮은 얼굴을 보여줘선 안 된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야존은 입 안쪽을 슬쩍슬쩍 씹다가 덧붙였다.

“밤에 잠깐 살피러 갔을 때, 형을....부르는 소릴 들었어.”

어둠 속에서 허무하게 부서지던 쓸쓸한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 밤이 다 가기전에 멎은 부름이었지만, 윈란은 한참동안 션웨이의 이름을 속삭이며 시간을 헤아렸다.

션웨이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는 상실감에 좀먹어가며 넋을 잃은 윈란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자기혐오를 억누르려는 듯 이마에 핏대까지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집행자와 있을 때보다 더 고통스러워 보였다. 야존은 참다 못해서 션웨이의 양어깨를 쥐었다.

“형. 잊지 마. 자신에게 모든 걸 준 존재를 잃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난 차라리 아란이 하루빨리 죽기를 바라.”

션웨이가 눈을 뜨고 야존을 마주 보았다. 그래야 지금 생을 잊고, 날 잊고, 나로 인한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테니까. 속으로 말을 덧붙인 션웨이의 눈동자는 여러 감정이 섞여서 무척 혼탁하게 보였다.

야존은 션웨이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서 다른 의미로 소름이 돋았다. 끝까지 철저하게 한 사람만 위하는 헌신이 지독하게만 느껴졌다. 야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그를 위한 일이 아니야. 정말로 그렇다면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 거야? 이건 옳은 일이 아니야. 실수였던 게 분명해.”
“실수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내가 아니라 쿤룬이 죽었을 거야.”

션웨이가 웃었다.

“하늘이 실수를 해서 내가 죽어야 한다면 행운이랄밖에.”

그러니 하늘이 계속 실수를 하길 바라자. 션웨이의 목소리가 쓸쓸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윈란에게 몇 마디쯤은 남겨도 괜찮지 않았을까. 아니면 적어도 편지나 쪽지 한 장이라도. 그것이 션웨이의 유일한 후회였다. 하늘이 갈라지고 그들이 서로가 아닌 각자로 돌아가는 다음이나 그 전이든 작별인사 정도는 남겨야 했었다고. 그도 아니면 두고두고 모르게 진실을 완벽하게 숨기거나 아예 윈란의 기억에서 션웨이라는 이름을 지워내야 했다고.

미리 말했다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 덜 아팠을까? 뒤늦게 알게 된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얼마만큼은 덜 아프게 될까? 션웨이는 윈란을 위한 길이 뭐였는지, 그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닥쳐온 낯선 불확신 때문에 그의 심장은 익숙하고 느리게 뛰면서 아픔을 호소했다.







줃 진혼 웨이란 롱거 주일룡백우
2019.04.18 22: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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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웨이 입장에서 보니까 미치겠다ㅠㅠㅠㅠ 왜 둘 다 고통스러워야되냐고 ㅡㅇ어어ㅓㅇㅠㅠㅠㅠㅠ 웨이 헌신적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9aa4]
2019.04.18 22: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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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윈란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히는 션웨이 너무 안타깝고 또 그런 션웨이만 그리면서 가라앉는 윈란이도 짠하고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
[Code: 23e9]
2019.04.18 22:2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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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ㅠㅠㅠㅠ 둘다 왜그리 짠해ㅠㅠㅠ
[Code: 3d22]
2019.04.18 22: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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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실수를 해서 내가 죽어야 한다면 행운이랄밖에.' 이 부분에서 션웨이 심정을 알고나니 너무 고통스러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누가 상처 위에 소금뿌리는 거 같아요ㅠㅠ어쩌다 흑포사 소문이 그렇게 났는지도 알겠고요ㅠㅠㅠㅠㅠㅠㅠ
[Code: 6683]
2019.04.18 23: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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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웨이 ㅠ 너무 찌통 ㅠ .오로지 윈란 . 쿤룬을 향한 한마음 ㅠ 너무 슬프다 ㅠ
[Code: 8255]
2019.04.18 23: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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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둘이 만나게 해주세오 센세ㅠㅠㅠㅠㅠㅠ 센세를 진혼등에 태우기 전에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610]
2019.04.19 11: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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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제대로 된 작별을 했다면 좀 덜 아팠을까 생각하는 거ㅠㅠㅠㅠㅠㅠ진짜 가슴 미어진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둘 다 너무ㅠㅠㅠ괴롭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f82]
2019.06.28 15: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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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당신이 없었다면 시작되지도 않았을 이 삶 돌려주는 것뿐이니까 ㅠㅠㅠㅠㅠㅠㅠ 션웨이야....
[Code: e856]
2019.08.01 20:3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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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노벨문학상 받아야한다 진짜...
[Code: eb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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