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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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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01
02
03
04

















쫓아오는 기억들을 떨쳐내며 부지런히 돌아왔는데 집 안이 환했다. 윈란은 어깨에 있던 사슴과 토끼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설마하니 과거의 원한을 잊지 못한 누군가가 여기까지 쫓아 왔으려고. 윈란은 문 옆에 기대어 세워놓은 도끼를 쥐고, 문을 슬며시 열었다.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 무방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윈란은 도끼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김이 빠진 얼굴로 소파를 살피니 다칭이 세상 편안한 자태를 뽐내며 뻗어 있었다.

“자냐?”

윈란이 큰 목소리를 내자 다칭이 화들짝 놀라 허우적거리며 일어났다. 다칭은 윈란을 보고 짜증스럽게 하품을 했다.

“방금 맛있는 고래를 낚아 올려서 먹으려던 참이었다고!”
“고래가 널 잡아먹는 거겠지.”

윈란은 문가에 누워있는 사슴과 토끼들을 손질하고 저장고에 넣었다. 윈란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다칭은 가만히 소파에 누워서 그 모습을 지켜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윈란이 물었다.

“사슴? 토끼? 어느 쪽이 좋아?”
“너 먹고 싶은 걸로 해.”

다칭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윈란은 사슴인지 토끼인지 까먹은 고깃덩이를 꺼내서 대충 감대로 향신료를 뿌리고 후라이팬에 던져넣었다. 한껏 달아오른 금속과 싱싱한 고기가 만나 요란하고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윈란은 냉장고를 뒤적여 같이 먹을 만한 음식을 꺼내 식탁에 옮겼다. 물과 수저 등을 가져다 놓는 동안 고기를 한 번 뒤집었다.

“밥이나 먹고 빨리 가.”
“와, 너무하네. 누군 일부러 시간 내서 여기까지 온 건데.”

다칭이 투덜거리며 왔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이따금 투닥거리는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특조처 동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얘길 하던 중 다칭이 무심코 말을 흘렸다.

“가끔이지만, 야존이 우리 쪽으로 와서 도와주고 있어. 다시 가면 쓰기 시작했더라.”

다칭은 거기서 말을 딱 멈췄고, 눈만 굴려 윈란의 눈치를 살폈다. 윈란은 무감정하게 텅 빈 시선으로 밥그릇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곧 시간의 흐름 속으로 돌아온 윈란은 얼어있는 다칭을 흘깃 보곤 피식 웃었다.

“뭘 그리 긴장해. 그래서 야존은 어떻게 지내?”

그 이름을 내뱉는 순간,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지만 윈란은 꿋꿋이 넘겼다. 방금 삼킨 게 뭔지는 몰라도 한참 가슴이 쿡쿡 쑤시듯 아플 듯했다. 다칭은 주눅 든 태도로 대답했다.

“별다른 말도 안 하고, 눈도 안 마주치더라. 일이 생기면 나타났다가 일이 끝나면 사라져. 몇 번이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럴 틈을 안 줘서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몰라.”
“그래?”

윈란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야존은 뭐라 안 해?”
“뭘?”

다칭이 얼결에 고갤 들었다가 윈란과 눈이 마주쳤다. 윈란의 표정을 본 다칭은 더는 모른 체 할 수가 없음을 깨닫고 이실직고를 했다.

“무언가를 조사하러 다니는 모양인데. 뭘 조사하는지, 얼마나 알아냈는지는 우리도 몰라. 우리 손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 너도 알잖아. 그렇다고 지성 쪽 명령을 들을 성격도 아니고. 다들 그저 야존이 사고나 안 치면 감지덕지한 거지. 야존이 미쳐 날뛰는 날엔 지성이나 해성이나 어느 쪽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다칭의 마지막 말에서 기시감을 느낀 윈란은 밀려오려는 기억을 밀어내려 애를 썼다.

그때도 지금처럼 그랬다. 션웨이의 선택이 지성과 해성의 안위에 위협을 끼칠 거라는 말이 한두 명의 입에서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세상을 뒤덮어버렸다. 그렇게 넓은 세상에 발붙일 곳 하나 없어진 션웨이는 그들이 말했던 대로 선택이란 갈림길 앞에 서게 되었다. 세상을 없애버리거나, 세상을 떠나거나. 모두가 첫 번째 답을 외치며 션웨이를 배신자로 몰아세울 때 묵묵부답으로 부정도 하지 않던 션웨이는 두 번째 답을 선택했고, 연인의 손을 놓고 영영 떠나고 말았다.

윈란은 머릿속을 삼키려는 과거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애써 질문을 끄집어냈다.

“야존이....뭔가를 찾는 게 아니고?”
“조사하는 거나 찾는 거나 뭐가 달라. 어차피 야존이나 너나 원하는 건 같을 텐데.”

션웨이. 누구도 내뱉지 않았으나 두 귀에 똑똑히 들리는 이름이 실내를 조용히 훑고 지나갔다. 윈란은 입안에 있던 음식들이 잿가루로 부서지는 맛을 느꼈다. 윈란의 안색이 달라진 걸 알아챈 다칭이 사과했다.

“미안. 내가 괜한 얘길 꺼내서...”
“특조처 얘기인데 뭐가 괜한 거야. 괜찮아. 밥 먹어.”

돌아갈 때까지 다칭은 이런저런 얘길 꺼내면서 몇몇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으려고 각별히 조심하는 듯했다. 윈란은 그가 농담을 하면 농담하는 대로 웃어줬고, 불평을 하면 불평하는 대로 조언과 위로를 건넸고, 그냥 흘러가는 얘길 하면 흘러가는 대로 들으면서 대답해주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식사처럼 보였으나, 그 안에 깔린 살얼음에 금이 가는 소리가 이어지는 듯했다.

나름 무사히 살얼음을 건너온 다칭은 윈란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남겼다. 다칭은 가기 전에 주저하는 듯하다가 윈란을 돌아보았고, 침실을 살펴보고 싶다고 얘길 했다. 윈란은 승낙이나 거절, 어느 대답하지 않았다. 다칭이 그대로 침실로 가려 하자 윈란은 빠르게 길을 막았다.

“자오윈란.”

다칭이 드물게 엄한 어조로 말했다. 윈란은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고 대꾸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다칭은 의심스레 윈란을 흘겨보곤 침실로 들어가 몇 분 후에 나왔다. 식탁에 기대어 서 있던 윈란의 표정도 썩 좋진 않았지만, 빈손으로 나온 다칭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마치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칭. 난 잘 지내고 있어.”
“알아.”

다칭이 대답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할 걸 본다는 게 이런 건가? 윈란은 다칭을 응시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션웨이. 너도 내게서 이런 지뢰 같은 감정을 발견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래도 다칭에게는 윈란에 대한 염려와 애정이 깔려 있었다. 션웨이가 윈란에게서 발견한 불신은 아마 이것보다 훨씬 예리해서 더 깊이 베였을 테고, 금방 피투성이가 됐을 게 분명했다. 

“지금처럼 계속 잘 지내야 해, 자오윈란. 그리고 꼭 돌아와.”

다칭이 윈란의 팔을 두드리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전보다 살이 내린 걸 알아챈 다칭이 슬며시 눈썹을 찌푸렸다가 하는 수 없이 소리 없는 한숨을 흘리는 게 보였다. 윈란은 그러마, 하고 그를 배웅했다. 다칭도 역시 몇 번씩 윈란을 돌아보며 산길을 내려갔다. 윈란은 어쩐지 혼자 남겨진 어린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무력하고 가끔은 주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몸을 씻고 침실로 들어간 윈란은 다칭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기 전처럼 달라진 게 없는 방을 둘러보았다. 다칭은 아무것도 찾질 못했으나, 이 방에는 확실히 무언가가 있었다.

윈란은 침대 매트리스를 뒤집어 발을 뻗는 자리쯤에 뚫어놓은 작은 구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꺼냈다. 작은 약통을 흔들어보니 텅 비어있었다. 역시 여기는 찾기가 쉬운 자리군. 윈란은 침대를 도로 정리하고, 한쪽 구석 벽에 걸린 장식품으로 다가섰다.

호랑이 머리가 박제된 장식품은 진짜가 아닌 가짜였지만, 진짜만큼 정교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고양이는 호랑이를 무서워할까, 하는 궁금증이 진짜는 아닌지 의심스러워지는 지점이었다. 윈란은 꽉 다물어진 호랑이 입을 슬쩍 열었다. 도로 빠져나온 그의 손에는 새하얀 약통이 쥐어져 있었다. 윈란이 움직일 때마다 도르륵 알약들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났다.

침대 위에 누운 윈란은 두 손으로 약통을 쥐고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듯해 몸의 긴장을 풀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해야 너와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션웨이.”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없었다. 통에 가득 차 있는 것은 죽음이었다. 약통을 끌어안고 있으면 그곳에 머물고 있는 션웨이가 바로 곁에 있는 듯이 느껴졌다. 만약에 약들을 한 번에 삼키면 알맹이들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부서져 몸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고, 진정으로 션웨이를 찾기 위한 길이 시작될 터였다. 윈란은 그런 결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좋다고 여겼다. 그 결말에는 션웨이가 있을 테니.

션웨이는 윈란의 모든 삶을 비춰주었다. 심지어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마저도 손바닥 안에 쥔 듯이 환하게 볼 수 있는 착각마저 들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윈란은 하룻밤, 또 하룻밤, 뒤엉킨 육체 속에서 나눈 화톳불 같은 온기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션웨이에게 받은 만큼, 그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윈란은 잠에서 깨어나서도 또렷하게 꿈꿀 수 있는 미래를 션웨이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가장 찬란하게 사랑에 빠졌을 때, 온 세상은 해가 지지 않은 천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윈란은 션웨이의 마음에 자리 잡은 어둠을 발견하지 못했다. 부실하고 얇디얇은 가면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던 걸까? 아니면 나만의 행복에 취해있던 걸까? 아니면 어쩌면 내가 감당하지 못할 무게를 두려워했던 걸까? 윈란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지만, 홀로 남겨진 지금은 알 수 없게 된 물음들이었다.

“션웨이.”

문득 윈란이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내부는 조용했고,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윈란은 귀를 기울이고 시간을 들여 기다렸다. 하지만 바깥에서도 아무런 반응이나 느껴지는 게 없었다. 윈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션웨이.”

윈란은 다시 입술을 벌려 그를 불렀다. 숨소리만 흐트러져도 나타나는 사람이 오늘은 이상하게 두 번을 불렀는데 오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었다. 윈란은 지금만 그런 거라고 믿고 싶었다. 기다림은 일시적일 뿐이라고.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손바닥이 조금씩 원망 어린 서글픔으로 물들어갔다.

그때 희미하게 발소리가 들린 것 같아 윈란은 숨을 멈추었다. 한 번, 두 번. 발소리가 간헐적으로 이어지더니 멈춰버렸다. 윈란은 손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귀를 의심한답시고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귀의 착각을 깨달을까 봐 너무도 두려웠다. 어쩌면 바깥에서 새가 날아가는 소리일 수도, 바람에 무언가가 움직인 소리일 수도, 산동물이 낸 소리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윈란은 이 작은 소리가 션웨이가 낸 것이라고 맹렬히 믿고 싶었다.

“션웨이.”

눈가를 몇 번 문지른 것뿐인데 양손이 모두 젖어버렸다. 윈란이 말했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너는 누구야?”

내가 부르는 건 살아있던 너일까, 죽어버린 너일까?

너는 어디에 있는 거야?

나는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걸까?








줃 진혼 웨이란 롱거 주일룡백우
2019.04.02 22: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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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 shibal
[Code: 2953]
2019.04.02 23: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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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억나더 주세요 ㅠㅠㅠㅠ
[Code: 190d]
2019.04.02 23: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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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소리라니ㄷㄷ윈란의 착각일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센세ㅠ
[Code: af12]
2019.04.02 23: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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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란이 아슬아슬하다ㅠㅠㅠㅠ 발소리 뭐야!!뭔데!!!
[Code: 6a8e]
2019.04.03 01: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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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너무 먹먹하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b602]
2019.04.08 07:4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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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 아 ... 나도 션웨이가 살아있기를 바라게 되 ㅜㅜ
[Code: 6c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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