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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01
02
03






고작 둘째 날이었고, 부엌에는 음식이 가득했지만 윈란은 활을 챙겨 들고 산장을 나섰다. 계속 안에 있다가는 호흡하는 것도 기억 못 할 만큼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곳에서 사슴이랑 곰도 산다던데, 곰은 다른 지역으로 넘어갔을 계절이었다. 그래도 무작정 안심할 순 없는 노릇인지라 권총도 챙겨왔다. 사냥을 위해 지은 곳이 아니라서 그런지 산장에는 사냥총이 없었다. 하긴 산장 주인이 몸소 뛰어다니며 사냥할 테니 무기가 있을 필요는 없을 터였다.

윈란은 벽에 걸린 활을 꺼내 들었다. 장식용으로 걸어두긴 해도 본래 용도로 사용할 만했다. 활은 익숙한 무기가 아니었지만, 그냥 사냥을 나간다는 기분 내는 용도로는 적격이었다.

윈란은 사슴을 잡기보단 길을 외우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사슴도 서너 번 발견했지만, 화살을 쏘진 않았다. 다만 운 안 좋게 걸려든 작은 사슴 한 마리와 토끼 두 마리를 잡아서 등에 멨다. 윈란은 나름 열심히 뛰어다니던 다리를 조금 쉬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땀에 젖은 등이 완전히 식어갔다. 그 느낌이 너무 익숙했던 탓일까. 윈란은 입술을 깨물며 기시감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언젠가 둘만의 공간으로 만들었던 숲을 닮은 바람이 윈란의 마음을 흔들었다. 다른 생각으로 방심한 틈을 비집고 과거의 기억이 흘러나왔다.

“션웨이, 살면서 해 본 가장 미친 짓이 뭐였어?”

사방이 나무로 뒤덮인 곳에서 황혼을 지켜본 어느 날, 이름도 모르는 숲속에서 윈란이 물었다. 윈란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션웨이의 탄탄한 가슴을 더듬거렸다. 반쯤 헐벗은 두 남자는 점차 열기를 잃고 있는 몸이 춥지 않도록 서로를 꼭 안고 있었다. 션웨이는 윈란을 흘깃 내려다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그 저의가 매우 의심스럽군, 자오윈란. 그런데 대답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왜?”

션웨이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이 밤이 끝나기 전에 이야기를 끝마치지 못할 것 같아서.”

가벼운 허풍이 아닐까 싶어도 션웨이는 만년 이상을 살아온 흑포사였다. 윈란은 션웨이가 정말 기상천외한 삶을 살아온 남자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도 살면서 저지른 미친 짓이 그렇게나 많을 것까지야 있나 싶었다. 윈란은 의아한 표정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

“난 한 가지뿐인데.”

윈란은 자신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는 션웨이를 마주 보았다. 션웨이는 옅은 의심이 묻어나오는 눈빛으로 어떻게 한 가지일 수 있냐고 묻고 있었다. 썩은 우유를 신선하게 보관하기, 하루종일 공복인 위장에 독한 술 퍼붓기, 위험한 상황에 맨몸으로 나서기, 며칠씩 쉬지 않고 철야 근무하기 등등. 션웨이는 지금 잔소리해서 과연 효과가 있을지 계산하는 듯했다. 윈란은 그 생각을 끊어내기 위해 션웨이에게 짧게 키스를 한 뒤 말했다.

“너.”
“나?”

션웨이의 눈썹이 위로 솟았다. 그는 밑도 끝도 없는 대화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션웨이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내가 미친 짓이었다고?”

윈란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션웨이의 턱뼈를 스쳐 지나간 다음 당황한 탓에 뜨거워진 션웨이의 뺨을 감쌌다.

“너라서 후회하지 않아. 언제까지라도 후회하고 싶지 않아.”

한 박자 늦게 션웨이는 말뜻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짙은 색의 눈동자는 혼란이 금방 가라앉더니 무한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윈란은 션웨이의 입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션웨이는 미소 지으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유혹당하는 기분이라서 윈란은 장난스레 투덜거렸다.

“어느 때보면 경험이 없다는 게 거짓말 같다니까.”
“그게 무슨 뜻이야?”

션웨이는 짧은 키스로 윈란의 입술을 살살 건드리며 또 질문을 던졌다. 근육이 잡힌 팔이 윈란의 허리를 옭아매고, 두툼한 손으로 점점 아래를 향해 더듬어가고 있었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윈란은 순진한 청년으로 돌아온 연인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샤오웨이, 너라면 어느 쪽이든 좋지.”

윈란이 대답했다. 션웨이는 혀로 윈란의 입술을 벌려 깊게 입맞춤했다. 션웨이는 휙 몸을 돌려 윈란을 바닥에 깔고 그 위로 조심스레 몸을 겹쳤다. 그는 욕망으로 흐려진 눈으로 속삭였다.

“아란....”

두 사람의 숨소리가 흐트러지며 멀어진 순간, 윈란은 발을 헛디뎠다. 그는 급히 나무를 붙잡으면서 넘어질 뻔했던 몸을 가까스로 멈춰 세웠다. 졸지에 나무를 반쯤 부둥켜안은 자세가 된 윈란은 일어서지 않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상처 자국으로 덮인 기억을 떠올린 것도 힘겹지만 아늑한 안정감과 세상에 존재하는 위험과 고통을 전부 지워낼 수 있는 행복으로 충만한 기억은 정말 죽을 만큼 아팠다.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윈란은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 대신 눈꺼풀로 내리눌러서 그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렇게 모아둔 눈물들이 종이 한 장씩으로 변한다면 벌써 여러 권이 되었을 것이다. 전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담긴 이야기로.

션웨이는 윈란이 무슨 말을 해도 그저 좋게 받아들이기만 했다. 화를 내며 질책하는 날에도, 피곤해서 귀찮아하는 날에도, 드물게 다투고 나서 냉랭하게 구는 날에도, 사과할 일이 있어 우물쭈물 눈치 보는 날에도 션웨이는 윈란에게 귀를 열어두었다. 아니, 마음을 열어두었다고 말하는 게 옳았다. 션웨이는 윈란이 어떤 기분이고 어떤 모습이든 받아들였다. 자오윈란이라는 사람이 언제나 변치 않은 기적인 것처럼.

션웨이는 윈란을 향해 다가선 적도 물러선 적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 자리였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지나치게 이른 타이밍에 그 끝이 찾아오고 말았다.

장례식을 치를 때 션웨이의 관은 비어있었다. 션웨이가 품 안에서 숨을 거둔 직후, 윈란은 콱 막힌 답답함에 목을 움켜쥐고 헐떡이다가 곧바로 기절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션웨이의 시신은 사라져 있었다. 윈란은 미친 듯 발광하면서 션웨이를 돌려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소리치고, 부정해도 션웨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윈란은 가벼운 관을 어깨에 얹고 옮길 때 가슴이 묵직해지는 걸 느꼈다. 관이 깊이 파인 땅 아래로 내려가는 걸 지켜보던 윈란은 가슴을 움켜쥐면서 소리죽여 울었다. 아, 그래. 너는 제대로 된 곳엘 찾아와 잠들었구나. 괜찮아. 이대로 내 마음과 기억 속에서 나와 함께 있으면 돼. 언제까지나 내 가슴 속에 머물러 줘. 어느 훗날 내가 널 찾아갈 때까지.

윈란에게 큰 후회로 남은 세 가지 순간 중 두 번째는 두 사람이 다투던 날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션웨이가 먼저 말했다. 

“내가 저지른 옳지 못한 일들, 내가 하지 못한 옳은 일들에 대해 알게 되더라도 너는 이해하게 될 거야. 너만은 날 믿어줘야 해.”

윈란은 믿지 않았다. 그는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차갑기만 한 침묵의 끝에서 션웨이도 그걸 알게 되었다. 눈을 보니 그 마음을 들을 수 있다면 온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션웨이는 울지 않았다. 그는 다가온 이별을 어깨에 얹고, 묵묵히 그 무게를 견디며 이렇게 말했다.

“모두 널 위한 거였어.”
“계속 그렇게 말해 봐. 언젠가는 그 의미마저 사라질 테니.”

그와 달리 윈란은 너무 늦게 알았다. 그는 자신 자신과 션웨이에게 가혹한 죄를 저질렀고, 서로 다른 끝없는 괴로움에 빠트리게 했음을. 

나는 왜 널 믿지 못했던 걸까? 윈란은 화살을 쏘면서 끊임없이 이 질문을 되뇌었다. 화살들은 허공을 맞출 뿐 의미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마치 서로에게 닿지 못했던 션웨이와 자오윈란의 감정을 닮아 있었다. 화살이 전부 떨어지자 윈란은 주저앉아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눈물 없이 윈란은 울고 또 울었다.

그날부터 시작된 상처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돌아올 게 분명했는데. 왜 나는 그토록 널 혹독하게 몰아붙였을까. 너를 해치는 게 곧 나를 해치는 것임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왜 나는 맨손으로 심장을 떼어내는 멍청한 짓을 저질렀을까. 심장을 잃은 육신은 영원히 썩지도 못하는 걸 알면서도.




줃 진혼 웨이란 롱거 주일룡백우
 
2019.03.30 18: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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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한줄이 시고 문학이다 아름다워ㅠㅠㅠ 아름다워서 더 슬퍼ㅠㅠㅠ
[Code: ae39]
2019.03.30 23: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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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관을 짊어진 운란이 심정이 어땠을까 말로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겠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문장이 아름다워서 더 슬퍼요ㅠㅠㅠㅠㅠㅠㅠ센세 어나더 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d717]
2019.03.31 00: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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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을 믿지 못해서 자신과 연인 둘다 잃다니ㅠ후회만 가득해서 사는 게 지옥이네ㅠ어떡해ㅠㅠ
[Code: 77b9]
2019.03.31 16: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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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해치는 게 곧 나를 해치는 일이라는 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후회가 많아서 더 고통스럽고 더 아프겠다 윈란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27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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