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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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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01







산장은 작지만 아늑한 맛이 있었다. 지은 지 오래되지는 않았는지 바닥부터 벽, 천장을 뒤덮은 목재에서는 여전히 신선한 냄새가 났다. 아늑한 공간 덕분에 작은 위안을 얻으면서 자오윈란은 푹신한 소파에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그는 이렇게 있으면 항상 마주 앉아있거나 옆에 나란히 앉아있곤 하던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산장은 특조처에서는 멀다면 멀고, 멀지 않다면 멀지 않은 거리에 떨어진 곳이었다. 국립공원인지 뭔지는 몰라도 꽤나 넓은 숲과 높은 산맥들이 주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산장의 주인은 엉뚱하게도 다칭의 것이었다.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취미로 사냥하러 다니려고 미리 지어둔 아지트라나 뭐라나 했던 것 같지만, 그 당시 자오윈란은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았다. 추슈지에게서도 안식처와 관련된 비슷한 장소와 관련해서 제안을 받긴 했지만 거절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라도 지성인이라면 아직 얼굴을 맞대는 것도 힘들었다. 지성인의 공간이라면 차라리 지옥이 나았다.

누구를 시켜서 준비한 건지는 몰라도 내부는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켜준 것처럼 매우 깔끔했다. 벽난로 옆에는 장작이 천장까지 닿을 만큼 한가득 쌓여있었다. 부엌 찬장을 슬쩍 열어보니 통조림이 가득했고, 냉장고도 제법 꽉 차 있었다. 자오윈란은 소파 앞 커피테이블의 유리그릇에 담긴 싱싱한 사과를 만지작거리다가 제자리에 올려두었다. 해가 조금씩 넘어가고 있는 오후였지만 곧 이곳으로 오게 될 손님을 위해 저녁 준비를 해야 했다. 첫 손님이 누가 될지는 몰랐고, 그 다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산장으로 올 손님이 누군지, 찾아온 손님에게 무슨 음식을 내놓을지 서로 비밀로 하자는 약속이 있었다.

특조처의 수장이 얻어낸 이번 휴가는 이상하다면 이상하고 까다롭다면 까다로웠다. 휴가를 떠난 날마다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해서 식사를 대접해야 하며, 손님이 만족해야 일주일의 휴가를 더 얻어낼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예전 같았다면 성립될 리 없는 조건의 휴가였다.

자오윈란은 스스로 휴가를 원한 경우가 없었으며, 그의 요리 실력은 재앙이라고 불릴 만큼 형편없었다. 게다가 자오윈란이 있는 곳으로 굳이 휴가를 와서 함께 식사하길 원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행인지 지금의 자오윈란은 예전과 달랐다. 냄비나 후라이팬에 뭔가를 때려 넣어서 적어도 입에 넣을 수 있는 맛을 낼 수 있었다. 이 실력을 얻기까지 누군가의 무한한 관대함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 자오윈란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지금은 떠나고 없는, 자오윈란을 찾아올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

자오윈란은 멍하니 서 있다가 겉이 살짝 타들어 가기 시작한 요리를 얼른 볶았다. 종종 생각에 빠져 멍한 상태로 굳어버리는 습관이 새로 생겨서 임무 도중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보다 못한 궈창청이 윈란의 발을 걸어 넘어뜨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게 한 적도 있었다. 재수 없게도 뒤통수를 부딪친 자오윈란은 꼬박 한나절 동안 의식을 잃고 누워있었다. 궈창청은 자기가 죽을 것처럼 울상을 지었지만, 다칭을 비롯한 다수로부터 상관의 목숨을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칭찬받았다.

겉을 바삭하게 튀긴 해산물 요리,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볶음밥, 식초 절임 양파, 주방 한쪽에 있던 에그타르트, 샐러드와 과일이 간소하게 차려진 식탁이었다. 윈란이 접시를 내려놓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투명한 창문이 달린 문 너머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추홍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윈란이 문을 열어주자 추홍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평소보다 쾌활한 모습인지라 추홍의 배려를 알아챈 윈란은 조금 민망하게 화답했다.

“서 있지 말고, 앉아서 먹어.”
“우와. 제법인데.”

추홍이 식탁을 보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는 반쯤 죽어가는 채소와 형체를 알 수 없는 숯덩이가 된 고기를 먹게 될 저녁 식사를 각오하고 왔을 터였다. 윈란은 차린 건 없지만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 추홍은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가벼운 칭찬을 곁들였고, 윈란은 특조처에 남은 사람들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이곳에 오기 전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터라 특조처 사람들 얼굴을 본 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특조처는 빈자리가 하나 더 늘었지만, 여전히 바빴다.

“누가 쉰다고 나쁜 녀석들이 잠잠해지는 건 아니지. 상황이 안정되지 않아서 조금 어수선해.”

추홍이 대답했다.

“나 대신 처장 일을 맡은 사람은 누구야?”
“다칭이 나한테 양보했어. 머리 복잡한 건 맡기 싫다면서.”
“뭐? 나한테는 쉬워 보인다면서 비꼬고 그랬는데.”

윈란이 덤덤하게 투덜거렸다. 추홍이 웃었다.

“새로운 수장이 마음에 든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냐. 돌아오려면 크게 마음먹어야 할걸.”
“그래야지.”
“다칭이 이런 집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꿈에도 몰랐는데.”

추홍이 샐러드를 씹으며 아늑한 실내를 둘러보았다.

“구한 지 얼마 안 된 집이라던데. 은퇴한 다음에 쓸 용도였대. 거짓말인 게 분명해. 큰 사고 치고 나서 도망칠 용도로 구해놓은 걸 거야. 아니면 우리 일도 예전보다는 널널해질 테니까 가끔 쉬러 오려고 했겠지.”
“지성과 해성이 분리되었어도 우리 일은 줄어들지 않을걸.”

추홍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션웨이가 죽은 날, 지성과 해성을 연결해주는 통로들이 전부 막히고 말았다. 지금 야존이 지키고 있는 관문을 제외하고 양쪽으로 오고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윈란은 미묘한 기색을 흘렸다. 션웨이의 죽음을 떠올릴 만한 주제를 꺼냈다는 걸 인지한 추홍이 말을 돌렸다.

“그런데 다칭이 이렇게 작은 곳에서 살 거라고?”
“아니, 가끔 와서 한두 달씩 쉴 목적이었을 걸.”

추홍의 질문에 기꺼이 응한 윈란이 대답하곤 말을 덧붙였다.

“이런 곳을 소개해줘서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해 줘.”
“나중에 돌아가면 직접 해도 될걸 굳이....”
“그것도 좋겠네.”

윈란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한숨마저 감출 수 없었다. 숟가락이 헛돌았다. 윈란은 밥알에 집중하면서 숟가락을 움직였다. 추홍은 돌을 씹는 듯한 윈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내심 가슴 아팠다.

“아직도 꿈을 꿔?”

추홍이 조용해진 식탁 너머에서 물었다. 윈란의 손이 완전히 멈췄다. 그는 접시 위에 누워있는 새우 머리를 노려보았다. 윈란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잠을 자면 꿈꾸는 건 당연하잖아.”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건 당연하잖아.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잊지 못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게 션웨이라면 이상할 것도 없잖아.

추홍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윈란은 살짝 놓치듯 숟가락을 접시 위에 놓았다. 두 사람은 정적에 휩싸인 식탁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추홍이 망설이고 있음을 윈란은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러나 왜 할 수 없는지를. 윈란은 모두 알고 있었다.

매 순간이 후회였다. 왜 그를 임무에 투입 시켰을까. 왜 그를 돌려보내지 않았을까. 왜 괜찮다는 거짓말을 믿었을까. 왜 그를 지키지 않았을까. 왜 그를 구하지 못했을까. 왜 사랑한다는 한마디도 못 했을까. 왜 나는....

“윈란. 다가오지 마.”

션웨이가 윈란에게 던진 마지막 말이었다. 몇 걸음 너머에 서 있던 션웨이는 옆으로 서서 고갤 돌려 윈란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움직이지 말라는 듯 손을 뻗으며 윈란의 접근을 막았다. 션웨이는 이야기의 결말 부분을 미리 엿보고 온 사람처럼 더없이 침착한 모습이었고 그와 반대로 윈란은 가슴이 터질 듯이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힌 순간, 누군가가 화살을 쏜 것처럼 하늘에서 한 줄기 섬광이 션웨이의 가슴을 꿰뚫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한 번 눈을 깜박인 션웨이는 그대로 무너졌다.

“만약....”

먼저 입을 연 것은 윈란이었다. 추홍의 눈이 스르르 올라가 윈란과 마주 보았다. 그의 표정을 본 추홍의 눈가가 조금 젖어 들었다.

“내가 영원히 돌아갈 수 없게 되어도 괜찮을까?”
“네 마음이 어디에 있든 괜찮아.”

추홍이 손을 뻗어 윈란의 손등을 감쌌다.

“돌아오기만 하면 돼.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든 우린 기다릴 거야, 윈란. 그리고 널 도울 거야.”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야.”
“뭐라고?”
“날 영원히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어.”

덧없이 흐른 윈란의 눈물을 본 추홍의 표정이 무너졌다.

윈란은 영원이라는 단어를 말해도 신뢰할 수 있는 남자를 알고 있었다. 정말로 영원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영원에 가까울 만큼 자신을 기다려줬으니까. 만에 하나 윈란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면 반드시 찾으러 갈 거라는 허황된 맹세를 해도 윈란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말로 그랬던 사람이라서, 그럴 사람이라서 윈란은 그 남자를 사랑했다.

그때 나는 무엇을 맹세했던가? 

“이젠 아무도 그럴 수 없어.”

윈란이 말했다. 눈물을 닦은 게 분명한데, 그곳엔 여전히 눈물이 있었다.








줃 진혼 웨이란 롱거 주일룡백우
2019.03.28 20:22
ㅇㅇ
모바일
떠난 션웨이도 남겨진 윈란도 찌통ㅜㅜㅠㅠㅠㅠㅠㅠ
[Code: 816a]
2019.03.28 20:28
ㅇㅇ
헐 어나더가 왔어ㅠㅠ 센세 저는 해피엔딩을 믿어요ㅠㅠ
[Code: 162d]
2019.03.28 21:11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022]
2019.03.28 23:02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다시 만날 수있어 ㅠㅠㅠㅠㅠㅠ
[Code: 9c3c]
2019.03.29 02:22
ㅇㅇ
모바일
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억장 무너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8af]
2019.03.29 03:55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어떡해 그럴 수 있는 사람 이제 없다는 말 진짜 맘아프다 운란아ㅠㅠㅠㅠㅠㅠ 아이고 ㅠㅠㅠㅠㅠㅠㅠㅠ 션웨이 모를 땐 외로운지도 모르고 살다가 그 대단한 사랑 알고 나니까 이젠 없이 안되는거겠지ㅠㅠㅠㅠㅠ 끝없는 관대함과 애정 언제까지나 기다려줄 수 있고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의 부재가 얼마나 힘들까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5d7]
2020.04.28 01:21
ㅇㅇ
모바일
아니 센세 ㅜㅜㅜ아니 ㅜㅜㅜㅜ아니 ㅜㅜㅜㅜㅜ
[Code: 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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