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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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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공주의 사망 소식이 정식으로 귀족들에게 전달된지 2일이 지나고 에리카 공주가 사망한지 사흘이 지난 후에 시작된 장례식은 왕족의 장례식치고는 평범했다.
게다가 장례일수도 사흘로 통상적인 왕족의 장례일수가 일주일로 대단히 짧은 이유는 에리카 공주가 오메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대단히 불행한 삶을 살아갔던 에리카 공주의 마지막 모습과도 잘 어울리는 터라 그녀의 삶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본다면 평범한 장례식 광경이 오히려 그녀의 마지막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왕비와 무척이나 사이가 좋은 왕의 성격으로 미루어본다면 왕비의 생모에 왕실의 어른이라는 사실을 들어서 꽤나 성대하게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짐작했었던 귀족들은 의외의 광경에 의아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일부는 왕이 공작의 눈치를 보는게 아닌가라고 짐작을 했지만 막상 왕은 다른 곳에 신경이 전부 쏠려 있었다.


"에드워드, 난 요즘 왕비가 무섭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네."


에드워드가 판단하기에 왕은 시골에서 죽은 듯이 지내던 과거 탓인지 소심하고 소극적인 편이긴 하지만 그의 소심함은 신중함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더 옳았다.
세력이 매우 약하던 모친을 둔 터라 왕위를 이은 후에도 정치적 기반이 매우 불안정했지만 착실하게 자신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었고,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왕가의 편에 선 귀족들과 공작의 편에 선 귀족들 모두에게 특별한 흠을 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타입이었다.
가까이에서 이 젊은 왕을 겪어본 마틴은 그가 대단히 침착하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적당한 정치적 기반만 마련되면 꽤나 좋은 왕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마틴으로부터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던 에드워드는 빨빨거리며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는 마당발답게 마틴의 평가와 비슷한 평가들을 들어왔기 때문에 왕이 대단히 신중하고 생각이 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궁지에 몰리기라도 한 듯이 초조하게 입을 여는 왕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에드워드는 지금 왕으로부터 가족들간의 단란한 시간에 초대를 받아 왕성의 정원에서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왕은 양 손에 한 명씩 왕자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고 있었고, 에드워드는 두어걸음 떨어진 곳에서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시간만큼은 시종들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사담을 나누기에는 적격이었지만 왕이 꺼낸 말이 상당히 의외인데다가 놀라웠던 에드워드는 머뭇거리며 할 말을 찾아야만 했다.


왕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후에는 왕자와 왕비와 더불어 산책 시간을 가졌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가진 왕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던 왕은 가족끼리 죽고 죽이는 피의 역사를 반드시 뜯어고쳐야만 한다고 생각했기에 가족간의 애정을 결속시킬 수 있는 이 일과를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시했다.
어지간히 친근한 상대가 아니면 이 일과에는 절대로 참석할 수 없었지만 에드워드는 왕과 왕비의 친구인데다가 윗과 또래인 왕자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에드워드를 무척 편하게 생각하고 몹시 따랐다.
아마도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 낯이 설게 분명한 에드워드를 친근하게 대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세간의 평가는 바닥을 치는 가이 역시 벤자민을 방문했다가 종종 만나게 되면 까칠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왕자들이 잘 따랐으니까.


"혹시 베... 아니, 비 전하께서 정신적인 충격으로 문제를 겪으시는겁니까?"


"아니, 아니야. 그런거라면 내가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겠지. 차라리 그런거라면 좋겠다네."


왕이 살짝 몸을 숙여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을 하며 정원의 작은 덤불을 가리키자 윗보다 좀 더 어린 황태자가 한 살 터울의 어린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그리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광경을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귀여웠다.
작은 덤불에 오밀조밀 달려있는 빨간색 열매를 향해 가더니 앙증맞은 손으로 그걸 살짝 만지고 한 개 따서 동생에게 건네주고 자신도 한 개 따서 손에 들고 다른 덤불을 향해 가는 광경을 보던 에드워드는 갑자기 찌인-한 현타가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비슷한 또래의 사내아이들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윗이라면 우다다다 먼저 달려가서 손에 잡히는대로 열매를 따가지고 주머니 안에 하나가득 집어넣을 것이고, 존은 형이 자신을 먼저 두고 갔다고 주저 앉아서 빼앵- 귀청이 떨어져라 우렁차게 울음을 터뜨릴게 분명했다.
우리 애들이 유독 번잡스러운건지, 아니면 왕족의 피를 타고나서 저렇게 얌전한건지- 조금 고민에 빠진 에드워드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왕의 말에 집중하려고 노력을 했다.


"뭐가 문제인겁니까?"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왕비는 공작을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고 있지. 게다가 내가 왕으로서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고 아이들이 왕위를 무사히 물려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작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네. 그리고 그건 돌아가신 에리카 공주님께서도 늘 하셨던 말씀이셨지. 내가 할아버님께 듣기로도 공작이 에리카 공주님을 원했던 이유가 바로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혈통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으니까."


"동감합니다."


"난... 내 가정 안에서 다시는 혈육끼리 다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네. 하지만 왕자들은 커가면서 여러 사람들의 영향을 받게 될테지. 서로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듣게 될테고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될른지도 모를 일이야.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기꺼이 시도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지. 그 중 하나가 공작일테고."


"슬프지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왕비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무척이나 바란다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공작을 무너뜨리고자 하고 있지. ...그리고 에리카 공주님의 죽음을 통해서 절호의 기회를 잡은거라네, 에드워드."


"폐하, 죄송하지만 에리카 공주님께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고 발표가 나지 않았습니까?"


왕은 에드워드를 돌아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왕비가 에리카 공주님의 처소에서 유서를 찾아냈다네. 그걸 가지고 재판을 신청할 작정이야."


유서라니? 문득 에드워드는 에리카 공주의 사망이 알려지기 직전에 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치 전쟁터에서 중요한 작전을 지휘하던 모습과도 비슷했고, 그래서 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한게 좀 의아하긴 했었다.


벤자민에게 지시를 내리셨던거구나! 에리카 공주님이 숨긴 메시지가 있다면 그걸 찾아낼 사람은 벤자민 뿐이니까!


이제서야 리의 태도에 대해 납득을 한 에드워드는 가뜩이나 힘이 들어할 벤자민에게 그런 지시를 내린 리가 야속하긴 했지만 넋이 나가서 한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차라리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유서에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습니까?"


"거기에는 에리카 공주님께서 공작의 손아귀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에 대한 과정이 쓰여 있었다네. 솔직히 왕비나 나는 그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었지. 자네도 알겠지만 왕족에게 허가 없이 약물을 사용하는 일은 불법이라네. 그 사실만으로도 공작은 금 2000파운드를 지불해야만 하지. 물론 공작의 재력이라면 그닥 타격이 큰 액수는 아니네만 일단 평판에는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긴 할거야."


에드워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폐하, 비 전하께서 에리카 공주님과 공작의 아들 자격으로 폐하와 혼약을 하신게 아닙니까? 물론-"


"공작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네. 할아버님께서는 에리카 공주님께서 공작에게 시집을 가시고 공식적으로 돌아가셨다고 발표가 되었을 때의 상황에 대해서도 잘 기억하고 계셨지. 할아버님께서는 왕비가 공작의 친자라면 적어도 다섯 살은 더 위여야 한다고 하시더군. 할아버님과 나는 공작에 대해 신뢰하지 못했고, 처음에는 왕비가 공작의 스파이라고 생각했었네. 그 부분에 대해서 왕비를 추궁하자 자신은 공작의 친자가 아니지만 에리카 공주의 친자이며 공작이 자신의 원수라고 말을 하더군."


"그 말을 믿으셨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 어떻게 믿겠나? 할아버님께서는 왕비가 에리카 공주와 닮았다고는 말씀하셨지만 비슷한 생김새의 소년을 찾아서 훈련시켜 보냈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한동안은 경계를 심하게 했었다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로서는 너무나도 이상한 부분이 많았거든.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와 공작에 대한 입장을 툭 털어놓은 것도 그렇고. ...뭐...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왕비의 솔직한 성격이 친근하게 여겨지기도 했고... 그... 아무래도 난 난생 처음으로 접하는 오메가라서 가까이 할 수 밖에 없긴 했지만..."


잘 나가다가 갑자기 더듬거리면서 민망해하는 심정을 알 것 같은 에드워드는 형아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응? 베... 아니, 비 전하께서 되게 까칠하게 행동하면서 경계를 하셨던거 아닙니까?"


"전혀. 오히려 나와 할아버님이 경계를 했지. 우리의 태도에는 개의치도 않았다네. 놀라울 정도로 금새 적응을 하더군."


에드워드의 질문에 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고, 대답을 들은 에드워드는 살짝 인상을 쓰고 뭔가 중얼거리더니 이내 표정을 화사하게 풀었다.


"아무래도 비 전하께서는 폐하의 첫인상을 상당히 좋게 보신 것 같은데요? 저는 동갑내기 친구라고 생각해서 친해지고 싶었는데 너무 까칠해서 친해지기가 더럽게 어려웠단 말입니다... 아, 젠장."


벤, 설마 나만 싫어했던거였어!?
인생 첫번째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벤자민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에드워드는 당장 울상이 되었지만 왕자들이 아장아장 걸어오더니 빨간 나무 열매를 하나 나누어 주자 금새 기분이 풀려서 답례로 주머니에 늘 넣고 다니는 육포 조각을 꺼내서 한개씩 들려주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래서는 안되는 행동이긴 하지만 왕은 신경도 쓰지 않을 뿐더러 왕자들은 처음으로 먹어보는 육포를 신기한 듯 우물거리더니 신세계에 눈을 뜬 듯 행복해하며 에드워드를 꼭 끌어안아주고 다시 씡나게 열매 채집에 나섰다.


"게다가 든든한 지원군도 생겼다네."


"지원군이요?"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며칠 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에드워드에게 털어놓으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원래 말수가 많지 않은 왕이었지만 에드워드와는 열심히 수다를 떨어대는건 벤자민이 가이와 더불어 신나는 입털기 시간을 가지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였다.
또래의 시종들이나 기사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까.


왕이 열심히 전달해 준 바에 의하면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는 왕성에 기사단장의 부인인 프리먼 백작부인이 찾아와 왕에게 알현을 청했다고 했다.
왕은 백작부인이 에리카 공주와 무척이나 친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백작부인이 에리카 공주의 시신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었다.
하지만 백작부인은 예의바르게 인사를 한 뒤에 조금의 슬픔도 드러내지 않은 표정으로 아주 당당하게 왕족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해서 왕을 아주 놀라게 만들었다.
종종 에리카 공주를 만나기 위해 왕성에 찾아오는 일이 있어도 에리카 공주나 벤자민만 있을 때는 제외하면 입을 한 번도 여는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왕은 성질 더럽고 난폭하다고 소문이 짜한 기사단장이 백작부인을 학대하는게 아닐까 의심을 해서 몰래 조사까지 했었지만 원래 얌전한 성격이라는 주변의 평가에 의심을 접기도 했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마틴은 대단히 열받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왕이 왕실의 어른을 알아보고 대접하려고 한다고 생각해서 좋게 넘어갔었다.
왕성에서 일하는 시종이나 시녀들의 상당수가 벙어리인줄 알고 지냈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던 프리먼 백작부인이 왕가의 일원으로 부여받은 권리를 주장하며 요청한 내용은 이랬다.


"왕이시여, 위대한 선조들께서 세우신 왕가에 이어져 내려온 법도에 따라 그 일원으로 태어난 제게 주어진 권리를 주장하고자 합니다. 왕의 손녀이며 왕의 딸이며 왕의 누이였던 에리카 공주의 볼행했던 삶과 죽음의 원인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여 주실 것과 위대한 왕들의 후손인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원인을 제공한 자의 불경한 행위를 벌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곧 이어 장례식에 대해 보고를 하러 온 귀족에 의해 왕이 벤자민을 무섭다고 생각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간만에 편하게 수다를 떨어댄 덕분인지 왕의 표정이 한결 밝아져 있는 것에 안심을 하고 돌아온 에드워드는 몸이 많이 나아져서 뒤뚱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가이가 행여 아플쌔라 다칠쌔라 냉큼 공주님 안기로 안아다가 침대에 곱게 눕혀주었다.


이놈의 댕댕이 자식, 계속 누워만 있으니까 허리가 아파서 좀 돌아다니는건데 내 속도 모르고! ...는 무슨- 공주님 취급 받는건 닥치고 기분 좋음!


여기도 아픈데, 저기도, 거기도~ 시키는대로 조물조물 주물러주며 왕을 알현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던 에드워드는 문득 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근데 가이 오빠, 폐하께서 벤자민이 무섭다고 하셨는데 왜 그랬을까? 오빠는 평상시에도 자주 찾아갔었잖아. 뭐 아는거 없어?"


"글쎄? 폐하는 꼭 오후에는 가족끼리 산책을 했고 문제는 없었어. 내 뛰어난 눈치에 의하면 왕비 전하께서 에리카 공주님께만 너무 신경을 쓰니까 그걸 좀 아쉬워하시긴 해도 나름 이해를 하시는 것 같던데. 그런데 무섭다니? 왜? 무슨 일 있었어?"


"나도 모르겠어. 음... 생각해봤는데 혹시 벤자민이 떠날까봐 그게 두려운거 아닐까? 나도 가이 오빠가 나를 두고 가버리면 진짜 무서울 것 같거든."


그럴 일은 1도 없네요. 존잘 내 꼬맹이를 두고 어딜 가라고?
에드워드가 빨빨거리고 돌아다녀서 못보는게 불만 1순위인 가이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어쩐지 왕의 기분을 알 것도 같았다.
듣자니 벤자민의 인생 목표는 에리카 공주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목표가 사라졌으니 지금 벤자민의 상태는 공작을 물어 뜯어서 죽이려고 드는 폭주 상태일건 안봐도 뻔한 일이었다.


"네드, 넌 둘 모두의 친구잖아? 만약 폐하와 왕비 전하의 사이가 안좋아지면 그걸 중재해 줄 수 있는건 너 뿐이라고. 그러니 너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고 왕실의 은인이 될거야. 알았어?"


"응, 알았어."


푸석해진 볼에 뽀뽀를 해주러 다가온 존잘면상을 바라보던 가이는 냅다 에드워드의 머리통을 낚아채서 자신의 무릎 위에 눕혀놓았다.
하여튼 이놈의 털은 무슨 초여름 뒷뜰의 잡초들인건지!


털 트리밍이 취미로 굳어진 가이에 의해 에드워드가 눈두덩에 눈치도 없이 삐죽 삐죽 자라난 눈썹들을 뽑혀가며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을 때 자칭 불행한 소년 존 포터는 가이가 읽으라고 준 간단한 내용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있었다.
다른게 아니라 리처드가 맨 처음으로 발견해서 가이에게 들려주었던 월렛 성이 세워진 장소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존 포터는 그 내용을 이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아미티지 영지는 신앙심이 두터웠던 아미티지 가문의 명령으로 마을마다 사제들이 머물고 있던 터라 필립 치하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 포터 역시 그에 영향을 받고 자라났었다.
본인은 1도 깨닫지 못하는 뛰어난 기억력 덕분에 마을의 사제가 읊어주던 기도문까지 다 외우고 있었고, 그 때문에 사제에게 귀여움을 받고 가족들이 죽은 뒤에도 자주 놀러가면 아껴둔 빵과 수프를 주기도 했던 터라 존 포터는 사제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았다.
더구나 리처드의 치하에서 주민들에게 신앙 생활을 가르쳤던 나이가 많이 든 사제는 종종 세금 문제로 관리와 싸우기도 하고 주민들의 편을 들어서 잔혹한 벌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광경을 보아왔던 터라 사제를 대단히 존경하게 된 존 포터의 신앙심은 꽤나 깊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이 든 사제가 만들어 준 작은 나무 십자가를 몸에 지니고 다니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존 포터가 지금 읽고 있는 월렛 가문의 전설은 바로 그 나이 든 사제가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들려주었던, 소위 말하는 신앙 위인 전기들 중 하나였는데 아직 어린 존 포터는 땅에서 금빛 물이 솟아올랐다는 내용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아직까지도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슴도치 백 마리 분량 정도 까칠한데다가 입배틀을 벌이면 걸쭉한 욕설과 입담으로 지는 법이 없는 가이가 알고보니 이렇게 훌륭한 신앙을 가진 선조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이제는 가이가 무섭기는 커녕 외모만큼이나 자애로운 천사님으로 보이고 존경심이 10 정도 상승되는 것 같았다.
다 읽은 문서를 가져다주고 정말로 감동적인 글이라고 감상을 말해주려고 가이의 방을 노크한 존 포터는 들어와- 가이의 기분 좋게 명쾌한 말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 위에서 긴 다리를 뻗치고 허우적대는 에드워드의 모습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만히 있어! 거의 다 되었으니까. 벌써 다 읽은거야, 포터군?"


"살려줘!"


에드워드가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부르짖는 소리에 이 고지식한 소년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신경 쓰지마, 포터군. 너도 에드워드가 이 잘생긴 얼굴을 좀 가꾸어서 더 훌륭한 미모로 돌아다니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 맞는 말씀이세요."


역시! 역시 말투는 좀 까칠해도 훌륭한 신앙의 선조를 둔 귀족다우시구나! 에드워드가 좀 더 멋지게 하고 다니는건 나도 좋으니까!


아주 단순하게 결론을 내린 존 포터에게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겨우 눈썹 트리밍을 마친 에드워드는 따끔거리는 눈썹께를 문질문질 낑낑대며 침대 위에 엎어진 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가이를 바라봤지만 자애로운 미소 한 방에 함락 당해서 예쁜 주인님 짱조아! 헥헥거리는 댕댕이 표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굉장히 감동적인 이야기였어요. 어렸을 때 사제님께 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 저어, 궁금한게 있는데요. 정말로 월렛 성 안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샘이 있나요? 전 어릴 때부터 그게 너무 궁금했어요."


황금은 무슨, 곰팡내 풀풀 나는 우물이 하나 있긴 하지- 속으로 투덜대던 가이는 트리밍용 도구가 든 주머니를 잘 접어서 서랍에 넣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존 포터를 바라보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고? 사제에게?"


리처드는 엄청 기분이 좋았다.
에리카 공주의 장례식 직후인데다가 재판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왕비의 심정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 것에 죄책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루퍼트와 상의할 문제가 있어서 상단에 다녀오는 길에 리처드를 알아본 과자 상점의 주인이 맛있는 과자를 한아름 안겨주며 전쟁의 승리를 기원한다고 하는 말을 듣자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샘솟는 것 같았다.
게다가 선물로 받은 과자는 예전에 가이가 자유무역항의 상단에 있을 때 조공해주었던 열대 과일과 코코넛 등을 졸여 만든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인지라 더 기분이 좋았다.
화목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맛있고 달콤한 과자를 나누어 먹을 생각을 하니 피곤도 싹 물러가는 것 같았다.
한 개만 꺼내서 먹고 싶었지만 꾹 참고 집으로 걸음을 옮기는 자기 자신이 무척이나 장하게 느껴진 리처드는 행복한 심정으로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오셨어요?"


"진, 이거. 오면서 하나 먹을까 하다가 다 같이 먹으려고 꾹 참았어."


진이 다가와 외투를 벗는 것을 도와주자 리처드는 뿌듯한 얼굴로 바구니를 내밀며 자랑을 했다.
얼굴에 대놓고 나 잘했지? 착하지? 써붙이고 있는 리처드가 이제 곧 오십줄의 나이인데다가 무려 대귀족인 후작님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장하다고 칭찬해주기도 애매한 터였지만 겉보기만으로는 냉혹하고 난폭한 영주님에 딱 어울려 보일지라도 속내용은 소녀심이 가득한 삐짐대장인 리처드의 귀여움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진은 웃으며 역시 리처드! 라는 뜻으로 엄지 손가락을 척 올려세워주었다.
엄청 좋아하는 과자를 먹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는 뿌듯함과 진의 격려에 의해 자존감이 하늘까지 상승한 상태인 리처드는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다락방에서 머리를 쏙 내밀더니 함무니다 함무니! 자신을 발견하고 도도도 달려오는 윗을 꼭 안아주었다.
물론 다락방에 홀로 남겨진 존은 형아가 나를 두고 갔어! 여지없이 빼앵- 울음을 터뜨려서 리처드가 직접 내려주었지만.


"리처드! 잠시만 와보세요. 여쭤볼게 있어요!"


윗과 존을 양 팔에 안고 가이의 방에 들어가자 가이는 뭔가를 종이에 옮겨적고 있었고, 존 포터는 더듬거리며 뭔가를 가이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리리둥절하던 리처드는 가이가 반색을 하며 질문을 던지자 새부리를 뺙 벌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작님, 혹시 포터군이 살던 마을에 계시던 나이 든 사제에 대해 아십니까? 포터군 말로는 제이콥스라는 분이셨다던데요."


"응...? 제이콥스 사제님? 당연히 알지. 내가 어렸을 때 아미티지 성에 머무시면서 나에게 수사학을 가르쳐주셨지. 정말 좋은 분이셨어. 성에 좀 오래 머무셨으면 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신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며 아미티지 성의 여러 마을을 전전하셨다네. 포터군이 살던 마을에도 계셨었나? 연세가 꽤 많으셨을텐데..."


"그 사제님이 포터군에게 월렛 가문의 전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었다고 합니다. 혹시 그에 대해 아시는 것 없으십니까?"


다급하게 질문을 던지는 가이의 심정을 잘 아는 리처드는 아빠다 아빠 놀아줘! 버둥거리는 윗과 존을 에드워드에게 떠넘기고 의자에 앉았다.


"나는 월렛 가문의 전설에 대해 사제님께 들은 적은 없다네. 도서관에서 읽은게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월렛 가문의 전설은 꽤나 아름다운 이야기니까 아이들에게 들려주실 수도 있겠지. ...그런데 왜 그렇게 심각한건가?"


"포터군이 들은 이야기를 대서하고 있는 중인데 내용에 차이점이 있어서 그걸 조사하려던 참입니다. 포터군은 기억력이 상당히 좋아서 내용을 잘못 기억했다고 생각하긴 어려워서 왜 내용에 차이가 생긴건지, 차이가 있는 사본에 뭔가 단서가 있는지를 알아봤으면 합니다."


리처드는 가이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가이 기스본, 몸이 회복되는대로 수도원 한 곳에 찾아가보면 좋을 것 같군. 수도에서 동남쪽에 마차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수도원인데... 음... 자유무역항으로 가다보면 우편의 야트막한 언덕에 세워진 수도원이라면 기억하려나? 제이콥스 사제님께서는 원래 그 곳에 적을 두고 계시던 수도사 출신이시라네. 대단히 학구적인 분이셨으니 그 곳에 가면 그 분께서 들려주셨다는 전설에 대해 알 수 있지 않겠나? ...음... 문제라면 자네가 오메가라는 것 때문에 출입을 허가받을 수 없을텐데..."


가이는 당장이라도 출발할 듯 반색을 하며 존 포터로부터 받아적은 종이를 내려다 보았지만 반대로 에드워드의 표정은 심각하게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안돼."


"뭐가?"


"뭘 생각하는지 알 것 같은데 그건 안돼. 젠장,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라고! 난 그 대사제인지 뭔지는 딱 질색이니까!"


"네드!"


다른 문제에는 다 너그러운데 유독 대사제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살기마저 도는건 가이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서운했다.
마치 자신을 믿지 못하고 바람을 피울까 감시하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알파인 조지가 더 위험한 존재인데!
급 흉흉해지는 분위기에 존 포터가 포절부절 못하며 불안해하자 리처드는 존 포터의 어깨를 살짝 두들겨서 먼저 나가도록 한 뒤 에드워드를 엄하게 나무랬다.


"에드워드 존 로이, 나는 네가 그레인 가문의 대사제를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에 대해서 납득하지 못하겠다. 나는 그레인 가문의 대사제와 이야기를 해봤지만 그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금 1000파운드를 내어 놓는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는 스캔들을 일으킬만큼 어리숙하지 않아. 오히려 대단히 계산적인 사람이지."


"그 사제가 말한 자기 만족이 어떤 만족인지 아시는거예요?"


"물론 알고 있어. 에드워드 존 로이, 너는 네 눈에도 매력적인 사람이 타인의 눈에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거니? 그렇게 따지면 나는 에리카 공주님과 리의 사이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따지고 들었어야 옳다고 생각하지 않니?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어. 왜냐하면 나는 내 알파를 믿으니까."


"집어던져질게 무서워서도 바람은 못 피우지. 뭐야?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레인 대사제 이야기가 튀어나오는거야? 여우 새끼야, 그 대사제가 보낸 연애 편지라도 받은거냐?"


"...절대 아니지만 적어도 네드가 보낸 암호에 가까운 편지에 비하면 대단히 문학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이는 한숨을 푹 쉬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른 채 리처드가 사정 이야기를 하는 동안 눈을 꾹 감고 있었다.
대사제 이야기만 나오면 살벌해지는 에드워드의 표정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못 믿어주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뭐 그런 문제라면 이놈이 펄쩍 뛰는 심정도 이해는 하지만... 저기 말이다, 여우 새끼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리처드에게 쳐맞을대로 맞아본 나도 아직까지 리처드가 바람이 나면 어쩌나 걱정하는 판국이다. 그러니 이 미숙하다 못해 모자란 아들놈은 오죽하겠냐? 보기만 해도 이뻐 죽는다고 헥헥대는데 누가 눈길만 줘도 저 새끼는 뭐냐고 저절로 숨겨둔 단검에 손이 갈 지경이겠지. 하지만 너는 너 나름대로 속상할거다. 너 애새끼는 왜 나를 못 믿느냐면서."


정확하게 둘의 심정을 콕 찝어주자 이내 둘 다 속상한 표정을 짓고 리를 애처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광경에 리처드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 했지만 꾹 참았다.
풋풋한 시기구나. 좋은 시절이야- 아들 내외의 소주질에 흐뭇한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끄덕거리던 리처드는 리가 내어놓은 대안에 반갑게 동의를 해주었다.


"신년 축제가 끝날 때 즈음이면 여우 새끼 너도 몸이 좀 나아지지 않겠냐? 전쟁 준비다 뭐다 둘이 여행도 못해봤으니 봄이 될 때까지는 월렛 가문의 전설인지 뭔지 조사 하는 일을 같이 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레인 대사제의 도움은 받되 수도원에 둘이 함께 가라는 말이다. 본딩 알파가 동행한다면 수도원 측에서도 더 안심할테니까. 알겠냐?"


리처드는 에드워드와 가이 둘 다 반색을 하며 -결혼 직후에 못했던 신혼여행!?- 동의를 한 대안을 멋지게 내어놓은 자신의 알파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방에서 나와 식탁으로 데리고 간 뒤 작은 과자 바구니를 보여주며 뿌듯한 표정으로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리, 아까 이거 선물 받았는데 진짜 먹고 싶은걸 다 함께 먹으려고 꾹 참았어. 나 잘했지?"


하지만 리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좀 안좋은 표정으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터라 리처드는 그냥 먹었어야 했던가? 원조 눈새답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그 속을 너무나도 잘 알것 같은 리는 한숨을 푹 쉬며 리처드의 머리를 어린애 쓰다듬듯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그래, 까까 먹고 싶은거 꾸~욱 참았어요? 어이구 장하다! 우리 리치는 참 착하기도 하지."









저러고 나서 기특하다고 엉덩이 톡톡 두들겨주다가 쳐 맞았음.


젠장, 진행 더디고 늘어져서 ㅁㅇ..ㅠㅠ


2017.02.22 07: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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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사랑해...
[Code: 0066]
2017.02.22 12: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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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는 정말 최고예요!!!!!!!!!!!!
[Code: df70]
2017.03.01 16: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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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ㅠㅠㅠㅠ 언제 오세요?????? 미국간거 아니죠???? 군만두가 식어가고 있으니 어서 오세요 ㅠㅠㅠ
[Code: 3b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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